여호수아 24:14~18
여호수아 24:14~18
스데반이라는 분이 큰 숲을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숲속의 나무를 베어 시장에 내다팔아 생계를 꾸렸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자르고 있는 나무는 180년이나 된 나무입니다. 그 나무는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심은 것입니다. 스데반은 지금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증조할아버지의 덕을 보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180년 된 나무를 베어낸 그 옆에 새로운 묘목 하나를 심습니다. 이 묘목은 자신의 후손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는 묘목을 벨 때마다 그 옆에 새로운 묘목을 심으며 날마다 살아갑니다. 이것이 인생의 단면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과거로부터 연결되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이고 오늘 우리의 행동과 삶을 통해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과거로부터 비참하고도 비극적인 삶을 물려받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할아버지는 많은 사람을 죽였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인신제사를 드렸습니다. 성전 뜰에 아세라 목상을 세우는 등 하나님이 가장 싫어한 일들을 행했습니다. 이 사람의 아버지는 왕이 되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지 그 사람이 죽인 피가 예루살렘의 길가에 흐를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를 살려둘 수가 없어서 이십대 말에 친구들이 그의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과 8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어린 나이에 왕 위에 오른 그는 사람들의 관심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 중요한 것을 남긴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요시야 왕입니다. 성경은 그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주님을 섬긴 왕이라고 말하며 요시야 전에도 후에도 이와 같은 왕이 없었다고 말씀합니다.
요시야가 이와 같이 훌륭한 왕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 분명한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사람을 죽이고 우상 숭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서는 요시야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행위를 따른 것이 아니라 그의 조상 가운데 다윗의 행위를 본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요시야 삶의 모델은 바로 다윗 왕이었습니다.
여러분 누구를 바라보며 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느냐도 무척 중요합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훌륭한 것은 스승인 엘리야를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하나님 나라로 불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가는 곳마다 엘리사에게 그곳에 머물러 있어라 말했지만 엘리사는 계속 엘리야를 따라다녔습니다. 계속 자신을 떠나라는 엘리야에게 엘리사는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영혼을 두고 내가 맹세하노니 절대로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받은 영감의 배를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싶습니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스승을 따른 엘리사는 훌륭한 예언자가 됩니다. 그것은 훌륭한 스승인 엘리야를 모델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델은 누구인가? 누구를 삶의 모델로 삼을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고 자유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새 힘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요시야의 두 번째 선택은 모든 우상들을 다 헐어버린 일입니다. 요시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세워놓은 모든 우상을 헐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동물들은 그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유독 사람만큼은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이로 만드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무를 가꾸거나 동물을 키우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동물에게 아양을 떤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맞지 않은 일입니다. 왜 나무에게 절을 합니까? 나무는 가구나 침대나 식탁을 만드는데 쓰입니다. 해와 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해와 달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것을 주신 것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건강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낮에는 해를 밤에는 달을 주셨습니다. 해와 달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섬기는 데 그 지으신 목적이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해와 달에게 절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될 분은 오직 한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성전을 정리한 후 요시야는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마지막 요시야의 선택은 예배드리는 삶이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요시야가 훌륭한 왕이 된 것은 우상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를 짓는 할아버지 아버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 왕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찬양하며 예배하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루하루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을 선택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