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위력/마태복음 20:20-28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 초기의 지도자로 대통령만 못 되었을 뿐 자기가 원하는 모든 중요한 직위를 다 가져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학교를 다닌 기간은 고작해야 2년 남짓이었습니다. 그가 22살이었을 때에 스스로 반문하기를 "내 인생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런 자기 반성을 거쳐 12가지 덕목들을 뽑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첫째-절제: 과음 과식을 하지 않는다. 둘째-침묵: 자신과 타인에게 도움이 되지않는 말을 하지 않는다. 셋째-질서: 물건을 제자리에 놓고 일은 알맞는 시간에 한다. 넷째-결단: 해야 하는 일은 꼭 완수한다. 다섯째-절약: 비싼 것은 사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좋은 것이면 산다. 여섯째-근면:시간은 헛되이 쓰지 않는다. 일곱째-성실: 남을 해치는 책략을 사용하지 않는다. 여덟째-정의: 남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남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 아홉째-중용: 극단은 피한다. 열째-청결: 몸, 옷, 집이 불결한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열한째-평정: 사소한 일에 화를 내지 않는다. 열두째-순결:성을 남용하지 않고 건강과 생산을 위해서사용한다. 플랭크린은 이상의 12가지를 적어서 목사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다 좋은데 한가지가 빠졌군요. 바로 '겸손'입니다. 이 12가지를 다 이루었다고 해도 '겸손'이 없으면 12가지를 다 잃은것과 마찬가지 입니다."프랭클린은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가장 첫 번째 항목에 겸손을 넣고 '예수 그리스도와 소크라테스를 본받는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 단위를 13주 단위로 구분하여 매주 한 항목씩 묵상하고 자신에게 깊이 적용하려고 힘썼다고 합니다.
최고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오늘 날처럼 힘을 강조하는 세상에서 겸손이란 구시대 유물처럼 보이지만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겸손은 참으로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입니다.
기독교의 역사가운데 성자라고 불릴만큼 큰업적과 아울러 흠모할만한 신앙과 인격을 지녔던 어거스틴에게 어떤사람이 찾아가서 질문 했다고 합니다. "신앙 생할에서 첫째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은 "겸손 입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겸손입니다," "그럼 셋째는 무엇입니까?" "셋째도 겸손입니다." 하였답니다. 어거스틴은 "천사를 마귀로 만든 것은 교만이며 인간을 천사로 만든 것은 겸손이다."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겸손은 모든 미덕의 바구니라고" 했습니다. 사랑도, 자비도, 충성도, 온유도, 절제도, 인내도, 양성도 겸손이라는 바구니에 들어갈 때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은 모든 덕행의 기초가 되고 겸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들을 합니다. 겸손은 위력이 있습니다.
1. 겸손의 위력(25-27)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겸손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겸손은 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 스스로 높아져야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낮아지고 섬기면 그것이 위력이 되는 것입니다.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제자들이 서로 높아 지려고 했을 때 예수님은 25-27절을 통하여 세상 방식과는 전혀 다는 위력을 갖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집권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섬기면 커지고 종이 되면 으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역설적 진리입니다. 역설적 진리입니다.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더 높아지고 주면 줄수록 더 많아지고 죽으면 사는 겸손의 위력입니다.
겸손이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 성경을 찾아 보십시오.
1)겸손하면 존귀한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 18:12)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8)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 29:23)
2)겸손하면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얻게 됩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 22:4)
솔로몬이 왕이 되어 먼저 하나님께 겸손하게 예배를 드리고 지혜를 구함으로 부귀와 명예 장수도 얻었습니다(왕상3:11-14).
3) 겸손하면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잠 3:34)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 4:6)
4) 겸손하면 높임을 받고 인정을 받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 4:10)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 29:23)
5) 천국에서도 큰 자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 18:4)
6) 겸손하면 영이 소성케 됩니다.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사 57:15)
7) 겸손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시편 10: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8) 겸손하면 재앙이 물러갑니다.
[역대하 12:6]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가로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역대하 12:7] 여호와께서 저희의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 지라 여호와의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저희가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대강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으로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
10) 겸손하면 풍부해집니다.
[시편 22: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 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11) 겸손하면 여호와께서 붙들어 주십니다.
[시편 147:6]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 드리시는 도다
우리가 억지로 높아지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영광을 받으려고 재물과 영광을 얻으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겸손하면 이것들은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겸손은 위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들의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메리카가 낳은 장로파 최대의 신학자이며, 유명한 부흥사이기도 한 에드워즈(Edwards, Jonathan 1703-58)는, 노덤턴(Northampton)교회의 목사가 된후, 근 23년 간이나 사역하면서 <대각성 Great Awakening>이라는 신앙 부흥 운동을 일으켰는데, 1750년(47세 때)에는 그 교회에서 배척을 받아사면했습니다. 그러나 찾는데도 없어서 그곳에서 열 아이를 데리고, 그의 부인이 뜨게질을 하면서 살아 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곳에서 아무 불평도 아니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교회가 다시 도와 달라고 할 때에는 또 겸손히 도와 주었다고 합니다. 후에 그는 스톡브리지(Stockvridge)라는 고산에 있는 작은 교회에 부름을 받아 한 인디안 교회를 좀 돕도록 되었습니다. 그는 거기가서 7년간 목회를 하면서 불평 없이 지내고, 한편 저술도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1757년 미국에서도 유명한 프린스톤 대학의총장으로 초빙되어 드디어 취임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는 별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고 겸손했다고 합니다. 그는 지위가 높을 때에도 겸손했고, 낮아진 때에도 겸손, 또 좋아져도 겸손, 그저 겸손을 일관하여 기독교계의 가장 빛나는 인물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천사가 겸손하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다가 사탄으로 전락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려고 하다가 결국 에덴 낙원으로부터 추방되었습니다. 교만하게 바벨탑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바로(출5:2)도, 웃시야(대하26:16)도, 히스기야(대하32:25)도, 하만(에3:5)도, 느브갓네살(단4:30)도, 벨사살(단5:23)도 결국 교만 때문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2. 위력있는 겸손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 위대함에 있어서 세상적인 견해를 따르려는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21,24).
세상은 계속 우리를 유혹합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존경받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한 번 사는 세상인데 멋지게 살아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전혀 알아 주지도 않은 일에 아무도 보지 않는데서도 열심히 일하고 박수갈채도 받으려 하지 않고 은밀하게 일하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지배당하는 것보다 지배하고 사는 삶이 훨씬 가치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사는 우리이게 때문에 교회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됩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처럼 예수님 좌우편에 앉는 것이 출세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21). 야고보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마27:56; 막15:40)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자매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마4:21 막16:1; 막15:40; 요19:25). 예수님과 이종 사촌간입니다. 그러니 혈연 관계를 통하여 새로운 나라에서 서열을 정하는데 먼저 높은 직을 선점하려고 한 것입니다. 신앙보다 기득권에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예수님을 자동 판매기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 어머니의 요구만은 아니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가 직접 간구하였습니다(막10:35). 우리가 이 현장에 있었다면 어떤 태도를 취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볼 때 다른 10제자들처럼 분노합니다(24). 마치 교회의 직분도 계급처럼 생각을 합니다. 목요일 날 노회가 있었는데 노회에서 어는 장로님이 기도하는데 기도하는 중에 "장로를 교회의 감독자로 세워 주심을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장로가 섬겨야 할 종이지 어떻게 목사를 감독, 감시하고 교회를 감독 감시하는 감독자가 되겠습니까?
어떤 목사님을 보니까? 기사를 두고 스스로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왜 운전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권위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권위가 있다면 무슨 권위이겠습니까? 말씀대로 사는 권위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주기철 목사님과 사제지간이 되고 주목사님 교회의 장로로시무하시던 조만식 장로님이 있었읍니다. 조 장로님은 오산학교에서 교장으로 있을 때, 주 목사님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 조장로님이 예배시간이 지나도록 손님과 이야기 하다가 교회에 들어오셨습니다. 주 목사님은 설교를 하다가 "조 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앉지 마시고 서서 예배를드리시오"하고 호령을 했습니다. 이럴 때 보통사람 같았으면 그냥 나가든가, 의자에 앉아서 목사에게 욕을 하며 험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장로님께서는 그대로 서서 예배를 보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주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는 "서 계시는 조장로님, 기도해 주십시요"하니 기도하시는데 "하나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요시 한 죄를 용서하옵소서"하고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서서 예배를드리신 장로님을 본 교우들은 큰 감동을 받고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장로님의 신앙을 우리는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 당시 얼마나 자존심과 인격의 손상을 당하셨을까?그러나 기도와 순종으로 극복했을 때 역사의 위대한 인물로 빛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2)"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며 자신의 영달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단6:4)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 아닌 것을 싫어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조그마한 일을 해놓고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는 것이 사는 것이라는 것 섬기는 것이 높아지고 종이 되는 것이 영광을 받는 다는 겸손의 위력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사탄의 노예가 된 세속적인 가치관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는 우리가 속한 교회 전체를 보면 어느 한 부분만 볼 것이 아니라 나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살아야 합니다(22-23).
천사가 타락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기 위치를 모르고 날뛰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타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서야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자리를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간들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전체를 보면서 필요한 자리에 제자들을 있게 만들 것입니다. 이 제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순교의 자리요 고난의 자리였습니다. 야고보는 순교를 하였고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말년까지 고난의 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우리가 겸손의 힘을 가질려면 우리의 위치를 잘 알고 그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위치를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목사는 목사의 자리가 있습니다. 전도사는 전도사의 자리가 있습니다. 집사님은 집사님의 자리가 있습니다. 권사님은 권사님의 자리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 아들은 아들의 자리, 딸은 딸의 자리, 사장님의 사장님의 자리, 직원은 직원의 자리, 선생님은 선생님의 자리, 학생은 학생의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이 자리를 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유한 성을 깨닫지 못합니다(왕상3:6-9).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합니다.(눅18:13,14)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지 못합니다(눅15:17-21)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였던 무디는 원래의 직업이 구두직공이었답니다. 그런데 그가 회심의 체험을 한 뒤에 전도자가 되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15분 동안 설교를 하였는데, 그 설교후에 어느대학 교수가 다가와서 "무디선생, 당신이 지금 15분간 설교하면서 문법에 맞지 않는 것이 16군데나 되어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데도 이런 식으로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투리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가? 반복어는 몇 번이나 하고 있는가? 목사님의 틱은 무엇인가만 관찰하며 세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한자로 겸손(謙遜)은 '자신에 대한 부족을 느끼고 자신을 누르며 주제넘게 참견하지 않는다'는 자기비하의 뜻이 있습니다. 힘이 없는 상태에서 자리에 연연하는 것은 비굴이 될 수 있지만 힘이 있는 가운데 자리를 잃지 않는 것은 겸손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빌2:6-11)
3) 우리는 섬김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28).
우리를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으면 교만해질 수가 없습니다. 종종 보면 아무것도 없으면서 교만 떠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가문과 지위가 교만(마13:55)하게 합니다. 재물이 교만(눅9:58)하게 합니다. 존경이 교만(요1:46)하게 합니다. 풍체의 교만가(사53:2) 교만하게 합니다. 아름다움이 교만하게 합니다. 눈 쌍카풀 수술하면 당장 달라집니다. 신앙 경륜이 교만하게 만듭니다. 평판이 교만(눅7:34)하게 합니다. 학식이 교만(요7:15)하게 합니다. 성공이 교만(사53:3)하게 합니다. 능력이 교만하게 합니다(요5:30) 지식이 교만하게 합니다.(요8:28) 영적 능력이 교만하게 합니다. 겸손의 위력은 섬김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있다고 교만하면 되겠습니까? 그것들이 영원히 내것입니까? 모든 것이 내 스스로 얻은 것입니까? 아름다우면 얼마나 아름답고 있으면 얼마나 있고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어는 대학 박사님이 여름 방학에 농촌에 하기 봉사를 학생들과 함께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농촌에 가보니까 농촌 초등학교 아이 만큼도 아는 것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벼와 피도 구분 할 줄 몰랐고, 경운기의 시동을 걸어서 움직이게 할 줄도 몰랐고, 콩을 심는데 그 구멍의 깊이를 얼마만큼 해야 하는지, 수박넝쿨의 순은 어디를 잘라 주어야 하는지, 하늘의 구름이 어떤 모양일 때 소나기가 몰려 오는지, 어떤 풀이 토끼가 먹지 못하는 독풀인 도무지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아는 것이 얼마나 미약한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알고 겸손히 그것으로 교회와 이웃, 하나님을 섬기는데 쓰임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겸손의 위력이 나타납니다.
전신전보의 발명가 모스는 유명해지고 나서 사람들로부터 『교수님은 큰업적을 남기셨습니다.교수님의 이름은 우리의 자랑이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사실 전 이런 찬사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제가 전신전보를 발명한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누군가에게 그 일을 시켜야만 하셨고 그 대상이 바로저였던 까닭에 지나지 않습니다.전신전보는 제 작품이 아닙니다』
1808년 유명한 작곡가 하이든이 작곡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연주되었습니다. 그 연주 회장에는 하이든도 참석했습니다. 연주가 모두 끝난 후, 사회자는 이 곡을 작곡한 하이든 선생이 이 자리에 참석하였다고 소개하였습니다. 모든 청중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이든에게 우뢰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때에 하이든은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작품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깊은 신앙이 그로 하여금 대작을 작곡하게 한 영감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는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신앙은 겸허한 신앙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섬김으로 겸손을 실천해야 합니다.
요즘 보면 교회의 큰 병중의 하나는 "멋진 교회 병"입니다. 신앙인들이 뭣진 교회를 만나기 위해 교회 헌팅을 하고 다닙니다. 그들이 말하는 멋진 교회에 대하여 들어보면 담임목사의 설교가 훌륭해서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 당회장과 장로 및 제직들 사이에 갈등이 없어 평화로운 교회, 교회의 재정이 교회를 치장하거나 교회자체 행사에 쓰여지는 것보다 외부의 선교와 구제에 쓰여지는 것이 많은 교회, 평신도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교회, 담임 목사님이 청빈하고 윤리적 삶의 본을 보이는 교회, 자녀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 잘 짜여진 교회 등을 멋진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멋진 교회라고 교만이 가득찬 목사, 교만이 가득찬 성도들을 때때로 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자랑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 때문에 헐벗고 주님 때문에 고난받고 주님 때문에 교회를 개척하고 주님 때문에 작은 교회를 섬기는 것을 자랑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어 선으로 장사를 하면 그것이 기독교적인 것이겠습니까?
멋진 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해야 십자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겸손은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더많이 배우면 더 겸소해지지고 더 많이 가졌으면 더 겸손해지고 더많은 권력과 더많은 명예, 더많은 신앙의 경륜과 더많은 조건이 있다면 더 겸손해 져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겸손해져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어떻게 가면 갈수록 겸손해졌는가를 성경을 찾아 보십시오. 1)고전15:9,10 2)엡3:8 3)딤전1:15
겸손은 위력이 있습니다. 겸손합시다.
겸손의 위력/마태복음 20:20-28/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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