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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필곤목사

[스크랩] 악감을 품은 반대자 처리 방법/사도행전 14:1-7

악감을 품은 반대자 처리 방법/사도행전 14:1-7

 

제가 서울에 있는 모 교회에서 부목사로 목회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름 성경학교가 되어 개강 예배 순서를 만들어 예배를 드렸습니다. 장로님이 여러분이 계셨는데 사회를 교육부 부장 장로님을 하게 하였고 설교는 담임 목사님 그리고 기도는 초등부 부장 장로님 등과 같이 맡겨 예배를 은혜롭게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고 내려 왔는데 그 교회에서 가장 먼저 장로님이 되신 선임 장로님이 제가 있는 사무실로 들어 왔습니다. 장로님은 들어오자 마자 큰 소리로 "교회 일을 누가 합니까? 김목사님이 교회일 마음대로 다 합니까?"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무슨 일인데요" 정중히 물어 보았습니다. 화가 잔뜩 나있었습니다. 얼굴 색이 붉어졌습니다. 그리고 한 20여분 동안을 소리를 지르며 화를 저에게 풀었습니다. 저는 한 마디 말을 하지 않고 그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이야기의 요지는 수석 장로인데 개강 예배 순서에 아무 것도 넣어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장로님은 그 교회에서 힘이 있는 장로님이었습니다. 돈이 많은 사장이었습니다. 수천 만원 들여 알렌 오르간도 사놓으시고 종탑도 혼자 헌금하여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교인 중에는 자신을 지도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동역자로 생각하는 사람, 성도 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은 자신을 지도자로 생각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회자에게 순종하는 것보다는 목회자를 이용하여 자기 일하기를 좋아합니다. 동역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일에만 관심을 갖지 성숙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들은 다르지요. 목사님의 목회 방침에 순종하고 상담을 받고 기도를 받고 말씀을 아멘으로 먹기를 좋아하지요. 지도자나 동역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 번 문제가 일어나면 참 어렵습니다. 그 장로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부터는 저에게 얼굴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인사도 잘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 매사 부정적이었습니다. 자꾸 다른 사람까지 동원하여 제가 하는 교회 일들을 방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회를 사임할까? 그저 아무 것도 하지 말까? 그러나 저는 그 교회에서 7년 동안을 섬기면서 여러 가지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정상적인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님은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살다보면 어떤 사건을 통하여 악감을 품고 집요하게 방해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업하는 일에도, 공부하는 일에도, 가정 생활하는 일에도, 신앙 생활하는 일에도, 전도하는 일에도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바울과 바나바가 그런 사람들은 만났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첫 번 전도지에서 성공적인 전도를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고니온으로 가서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집요하게 악감을 가지고 전도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믿지 않는 유대들입니다.(2) 자기들만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에게 악감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이정도로 방해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제 관원들 정치지도자들까지 확산되어 조직적으로 핍박을 하고 조롱하고 학대합니다. 그리고 돌로 칠려고 합니다. 돌로 치는 것은 당시 유대인의 사형법입니다. 스데반을 그렇게 죽였던 것처럼 죽이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이 때 악의를 품고 덤벼드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우리의 하는 일을 집요하게 악감을 가지고 방해하는 사람들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1. 악의를 가진 대상을 직접 대항하는 것보다 이루어야 할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그 목표를 이루는 것입니다.
방해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이루어야 할 목표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사람은 감정이 있기 때문에 이런 악랄한 사람들을 만나면 감정적으로 대하고 싶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대하면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멱살을 잡고 싸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이 맞대응하며 혈기 부리며 고함지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바나바도 멱살을 잡고 싸울 수도 있고 그렇게 살다가 지옥에나 가라고 욕하고 나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어떻게 처신합니까?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과 대항하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전해야 할 복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리더와 레이맨(팰로우)가 다른 점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 하나님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끝없이 상황을 보며 불평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게리 윌스가 쓴 "시대를 움직인 16인의 리더"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역사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와 실패한 지도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를 질문합니다. 저자는 리더십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추종자'와 '목표'라고 말합니다. 지도자에게 있어서는 목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목표를 이룰 것인가 이것이 그의 삶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정치를 보면 전혀 다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5년 내내 어떻게 정권을 잡을 것인가에만 연연합니다.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에게는 능욕을 당하든 죽음을 당하든 자존심이 상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복음만 증거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수모를 당하든 복음만 증거되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자신들을 보낸 목적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보세요 3절에 그 험악한 상황에서도 담해히 은혜의 말씀만을 전합니다. 7절에 보십시오. 피해서 다시 전하는 것도 복음입니다. 오직 복음 전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 살면서 집요하게 방해하는 악의에 차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이라는 것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를 보십시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 인간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사명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러므로 집요한 방해가 있을수록 목표에 그 방해 요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루어야 할 목표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별은 더 빛나는 것입니다. 인생에 성공하려면 명확한 목표 선명한 목표가 필요한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을 통해 우리의 목표는 더욱 명확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실패자들은 집요한 반대를 만나면 그 방해물들을 보다가 그만 목표를 잃어 버려 실패하고 맙니다.
위드라 윌슨은 "사람들은 나름 대로의 꿈을 가지고 산다. 시련과 역경이 닦쳐오면 절대 다수는 다 포기하지만 그 중에 극 소수는 오히려 어둠속에서 비전과 꿈을 창조하고 그 놀라운 꿈을 이룬다. 어둠이 없는 곳에는 꿈이 없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어둠이 있기 때문에 꿈은 더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매년 1월 15일은 연방 공휴일입니다. 이날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날입니다. 그의 생일날을 기념하여 미국사람들은 쉬고 있습니다. 그는 목사이면서 인권 운동가이었습니다. 그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dream"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의 꿈은 "흑인이 백인이 다니는 화장실, 학교, 식당에 갈 수 있는 편견과 차별없는 아름다운 세상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지금처럼 흑인 차별이 없는 밝은 사회였다면 이런 꿈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어둠이 있기 때문에 고난과 역경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쳐나갈 꿈을 가지는 것입니다. 시련과 역경 속에서 새로운 꿈을 가질 수 있는 자가 고난과 역경을 기회와 축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실패자들은 시련과 역경이 닦쳐 오면 그것으로 꿈을 잃어 버리고 주저 않지만 소수의 성공자들은 시련과 역경이 올 때 오히려 그것을 꿈을 이루는 축복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복음을 전하는데 얼마나 집요하게 사람들이 방해합니까? 옥에 갇힙니다. 수없이 매를 맞습니다. 39대의 매를 다섯 번 맞습니다. 세 번 태장을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을 당합니다.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은 생활을 합니다.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3)" 자신은 죽어도 복음만 증거되면 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꿈을 꾼 사람입니다. 곡식단들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 위대한 인물이 될 꿈을 꾼 사람입니다. 그러나 집요하게 그 꿈을 이루는데 방해하는 것들이 다가 옵니다. 가장 가까운 형제들이 악의를 품습니다. 형제들에게 인신매대 됩니다. 억울하게 중년 아줌마의 유혹을 받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떻게 대처합니까? 감정적으로 싸웁니까? 원망하고 꿈을 포기합니까? 아닙니다.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목표는 더욱 선명해졌을 것입니다. 그는 당대 최대의 나라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악의를 품은 반대자를 만날 때 오히려 목표를 분명히 하는 기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20세기 마감하면서 타임지는 20세기의 인물을 뽑았습니다. 가장 위대한 인물은 아인슈타인 차점자 루즈벨트 대통령이었습니다.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은 에디슨, 차점자 아브라함 링컨이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 하나는 무엇입니까? 장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에디슨 어릴 때 학습 장애인이었습니다. 루즈벨트 중증 소아마지 장애인있습니다. 그러나 12년 동안 장애인으로 대통령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였습니다. 링컨 부인은 정서 장애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 되어 "오늘날 내가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은 모두가 어머니의 덕분이다. 왜냐하면 나는 어머니로부터 꿈을 꾸는 것을 배웠고 시련과 역경속에서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가꾸고 보호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2. 집요하게 방해를 할 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실패하는 방법이 아니라 성공하는 방법을 택한다는 말입니다. 목표를 이루는 것, 비전을 이루는 것은 비전을 이룰 만한 방법이 늘 있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우연히 공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나름대로 공부하는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부산에 가려면 부산 가는 길로 가야합니다. 반대가 있고 방해가 있으면 그것이 포기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이룰 방법을 찾으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집요하게 반대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면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결국 목표를 이루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그릇된 방법을 택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를 보십시오. 이방인들이 선동하여 자신들이 복음을 전하여 기독교인으로 만든 사람들이 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때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3절에 보십시오. 오래 그곳에 머물러 설득합니다. 그리고 5절에 보십시오. 이제는 정치 권력까지 이용하여 조직적으로 핍박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 때는 어떻게 합니까? 6절 보십시오.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집부리면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피합니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음이 두려워 피하는 것 아닙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 아닙니다. 더러워서 피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피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겁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겁이 아닙니다. 복음을 효율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전도하러 갔다가 말 안 듣는 다고 싸우고 뺨을 치고 나오면 그게 전도가 되겠습니까? 제가 그 장로님과 한바탕 싸웠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울과 바나바는 지금 죽을 때가 아닙니다. 방법의 다양성입니다.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지혜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목적을 이룰려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공하려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자가 되며면 부자가 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잘하려면 전도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여야 합니다. 존경받는 인격자가 되려면 존경받는 인격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학자가 되려면 학자가 되는 방법을 택하는 것입니다. 능력있는 신앙인이 되려면 능력있는 신앙인이 되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을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앞문이 막혔으면 뒷문으로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열리지 않는 앞문 바라보고 분노하며 발길질 할 것 없는 것입니다. 지름 길이 막히면 우회 도로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대로가 막히면 소로로 가면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명문대학인 시카코 대학이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이 시카코 대학을 두가지 면에서는 따라 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노벨상 대상자 많이 배출하는 것과 대학 총장 많이 배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려 이 학교 출신이 노벨상을 탄 사람이 7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학교가 이렇게 유명한 대학이 된 데는 1929년 취임한 로버트 허친스 박사 때부터라고 합니다. 아무리 해도 3류 4류입니다. 그는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에게 100권의 고전을 읽어야 졸업을 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백권의 고전을 읽고 가장 존경하는 사람,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을 모델로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달라졌습니다. 모델이 생기니까 그 사람과 같이 되겠다고 열심히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방해가 많고 방해물이 많을 때는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목표가 있으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입니다.
인물이 되려면 인물을 만나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목표를 이루려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만나야 합니다.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를 50살에 났습니다. 쉰동이입니다. 그의 어릴 때 꿈은 대통령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은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친척 아저씨 중에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 26대 대통령인 시어더 루스벨트였습니다. 그 루스벨트를 롤모델(역할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가 갔던 길로 그대로 따라가면 그가 이룬 대통령의 자리에 자신도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어더 루즈벨트가 하버드대학에 들어갔으니 자신도 하버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변호사가 되었으니 자신도 변호사, 뉴욕주 상원 의원이 되었으니 자신도 뉴욕주 상원의원, 해군 차관보가 되었으니 자신도 해군 차관보, 부통령 후보에 출마하여 부통령이 되었으니 자신도 부통령에 출마했습니다. 그런데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도전을 하였지만 패배 이듬해에 과로로 소아마비가 되었습니다. 당시 나이 39세입니다. 모두가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 때 그는 시어더 루스벨트가 아니라 헬렌켈러의 길을 택했습니다. 헬렌켈러가 어떻게 3중고의 어려움을 딛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는가를 생각하며 그분의 길로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헬렌 켈러를 통하여 용기를 얻었습니다. 일어 서 혼자 연설할 수 만 있어도 재기하리라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재활의학이 없을 때였습니다. 그는 사재로 조지아에 웜스프링 재활 센타를 지어 온천 물에 수영을 하며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치료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무려 7년을 치료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미국 사상 유래없이 대통령으로 12년간 집권하였습니다. 그가 재활을 꿈을 꾸었던 웜스프링 재활센타를 지금은 리틀 화이트 하우스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 곳 정문에는 양문에 두 개의 문구가 쓰여있는데 한 쪽 문에는 헬렌 켈러의 말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불가능해라고 속삭이는 동안 그 불가능은 이미 가능으로 되었노라"
한 쪽 문에는 루스벨트 말이 쓰여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마음의 속의 공포뿐이다. 내일의 성취는 오늘의 꿈으로 결정된다. 우리가 꿈과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전진합니다." 경제 공황 때 한 말입니다. 목표를 이루는데 방해물이 있고 악감을 가지고 집요하게 반대하는 세력이 있으면 방법을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방법을 바꾸어 보아도 아무리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 가보아도 끝없이 난관은 다가오고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3. 악감을 가진 자들을 이기고 목표를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누구의 힘을 의지합니까? 누구의 힘으로 복음 전하는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냅니까? 3절에 보십시오. 주를 힘입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 분이 누구입니까? 자기의 은혜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주님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믿기로 작정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친지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말씀을 전할 때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않될 때는 주님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고집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무한한 존재가 아닙니다. "리더여, 두려움을 극복하라"라는 책을 쓴 조직 심리학 박사인 앨런 다운스는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조건은 단지 세 가지 뿐이라고 단정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신뢰할 것, 자신의 열정을 추구할 것, 두려움을 물리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게리 월스도 CEO로서 자신의 경력을 성공적으로 꾸려 나가는 것은 자신의 열정, 재능, 그리고 자신감이 열쇠이고 오직 그것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여건 맞지 않으면 취직도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간 오늘 본문을 놓고 묵상하면서 설교를 하려고 하는데 본문의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목요일 새벽 기도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 이번 주에도 오늘 말씀으로 설교를 하여야하는데 어떻게 전해야 하겠습니까? 성도님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기 원하십니까?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문든 오늘의 구조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전하기로 마음먹고 준비를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의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의지할 때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내 힘 없다고 악감을 가진 세력들이 너무 많다고 포기하거나 좌절할 필요없습니다. 내 힘의 한계를 느낄 때는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라고 하는 때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을 때 그 때 주님께 항복하라는 때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로버트 쉴러 목사님은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벽가까이 오라고 하여가니 절별 끝까지 오라고합니다. 절별 끝에 간신히 서있으니 하나님은 나를 밀어 떨어뜨렸습니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날개를 가지고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에게는 이미 날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주신 날개 말입니다. 나의 힘으로 이룰 것 포기하면 우리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를 다 쏟았습니다. 이제 거지처럼 살 사람이 아닙니다. 실패자로 인생을 살 사람이 아닙니다. 사명자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주님이 주신 목표를 이루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사 40:29)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 40:31)"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를 통해 보여 주듯이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사 45:3)"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연약한 가운데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면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너의 인생을 보니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라는 고백을 할 것입니다.
갈멜산의 엘리야를 보십시오. 850명의 악감을 가진 반대자 이방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 때 엘리야는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왕상 18:36-37)"
이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늘에서 불이 내려옵니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과 도랑의 물을 다 태워 버립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구경하던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소리칩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지금도 살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하십니다. 다윗의 물멧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장애인에후의 그 왼손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창기 라합도 사용하십니다. 바람둥이 삼손도 사용하십니다. 겁쟁이 기드온도 사용하십니다. 욕심쟁이 야곱도 사용하십니다. 가난뱅이 사르밧 과부도 들어 쓰십니다. 농부 엘리사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며 되는 것입니다.

집요하게 악감을 가지고 반대하는 들이 있습니까? 해도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데 장애물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까?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까? 전도하려고 하는데 반대하는 세력들이 많이 있습니까?
1. 악의를 가진 대상을 직접 대항하는 것보다 이루어야 할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그 목표를 이루십시오
2. 실패하는 방법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택하십시오
3. 내 힘 의지하지 말고 목표를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힘을 전적으로 의지하십시오.
우리의 약한 것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우리의 생애를 알고 하나님을 부인할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하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풍랑이 있습니까 그것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목표가 주님의 힘과 주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503장) 큰 물결 일어나 나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악감을 품은 반대자 처리 방법/사도행전 14:1-7/김필곤 목사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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