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강해/사도행전 로마서강해

[스크랩] (제3강)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행 1:9-14)

《제3강》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행 1:9-14)

 

  현대인들은 남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날마다 신문을 뒤적이고 뉴스를 보면서 남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잘 알아야 할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준비는 하지 않으면서 남의 일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기독교는 내 문제 때문에 생긴 종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고, 나 때문에 성령이 오셨고, 나 때문에 교회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도 나 때문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내 가족이 구원받아야 합니다. 내 나라가 잘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 영혼이 먼저 잘 되어야 합니다. 나의 영적인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내가 믿음 위에 바로 서고, 기도하면 나머지 문제는 해결됩니다. /할/
  ▶기독교의 3대 기본 교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의 3대 교리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하고 무시하고 외면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 남부 도시에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두 장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무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연히 그들은 예수에 관한 모독적인 이야기가 주로 화제였습니다. '잉가솔' 대령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그 예수라는 친구 있지 않습니까? 예수쟁이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이니 하면서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고 승천했다는 헛소리를 하는데 예수라는 친구를 멋진 연애쟁이로 만들어 에로틱한 소설을 쓰면 어떨까요? 그러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웰레스' 장군이 응수를 합니다. "거참 좋은 생각이고 좋은 아이디어야, 훌륭한 소설 한편이 나올 거야!"
  그 후 그들은 제대를 했습니다. 제대를 하고 이것저것 할 일을 찾았으나 별로 신통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전에 기차를 타고 가다가 예수에 대한 에로틱한 소설을 써 '베스트셀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웰레스' 장군은 예수에 대한 비판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집중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수집을 했습니다. 또 성경을 읽고 성지까지 가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가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예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면 할수록 그의 마음이 변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목적한 소설의 원고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계획했던 소설과는 정반대로 흘러간 소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원고의 마지막 장을 끝낸 '웰레스' 장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이렇게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소설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그 유명한 '벤허'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지금도 살아 있는 종교입니다. /믿/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뉩니다. ▶9-1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의 약속'이고, ▶12-14절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들어가 기도에 전력하는 장면'입니다. ◀제목소개!▶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승천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의 승천사건은 주님이 지상에 오신 모든 목적을 다 완성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 구름이 가려 다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제자들 곁에 서서 말을 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는 올라가신 것을 본 그래도 다시 오실 것이다"하고 재림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9절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무슨 말씀을 마치셨습니까? 4절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또 5절에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인데,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말씀은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입술로 예수를 증거하고 행동과 인격으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또 그리스도의 증인은 자기의 생활 속에서 예수가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은 빌1:20절에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예수님이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도 살든지 죽든지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이 높아지고 예수님이 나타나고 예수님이 증거 되어야 합니다. /할/아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 후에 "저희 보는 데서 올리어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70인의 전도단과 120문도가 보았습니다.
  "올리워 가시니" 승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승천하실 일에 대해 미리 미리 예언을 하셨습니다.
  ▶요3:13절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6:62절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요13:1절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요14:2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14:12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요16:5절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요16:10절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16:28절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요20:17절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이렇듯 주님께서는 자신이 하늘로 승천하실 것을 여러 차례 예고하시고, 그 예언대로 마침내 승천하신 것입니다.
  "저희 보는데서" 어떤 학자는 '120문도가 보는데서'라고 했고, 어떤 학자들은 '500여 형제가 보는데서'라고 합니다. 고전15:6절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습니다.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이 구름은 실제의 구름입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합니다. 변화산상에서 구름이 예수와 제자들을 에워쌌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의 광경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승천의 광경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재림의 광경과 같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승천이 환상이나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주님의 부활이나 승천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기절하였다가 다시 살아나서 구름이 많이 낀 산 속으로 들어가 행방불명이 되어 죽었다고 주장합니다. 또 주님을 사모하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환상을 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곳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 후 베다니 촌 가까운 감람산에서 열한 제자들과 오백여 문도 들이 보는 데서 올라가셨고, 그 올라가심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아멘!/

 

  ▶주께서 승천하신 것은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⑴하늘 본향으로 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오셨으니 하늘은 주님의 본향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믿는 성도들의 본향 역시 하늘나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으로 순례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은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⑵성도의 부활의 첫 열매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성도들이 장차 얻게 될 영광의 예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것처럼, 그리스도의 승천은 장차 부활 승천하여 영광을 얻게 될 성도들에 대한 예표입니다. /믿/
  ⑶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려고 승천하셨습니다.
  시110:1절에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고 했고, 또 히1:13절에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승천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기 위해서입니다. 우편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존귀'를 의미합니다. 또 '보호와 인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은 겸손과 복종에 대한 하나님의 보답이십니다. 빌2:7-8절에 보면 '자기를 낮추시고 종의 몸을 입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일간 음부에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높이 올려 제일 좋은 자리인 당신의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할/
  ⑷예수께서는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기 위해서 승천하셨습니다.
  요14:2절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예수께서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신 후에는 다시 오셔서 우리를 당신이 계신 곳으로 영접하기 위해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설레는 소망입니까?
  ▶부자이지만 인색한 집사님이 꿈에 죽어서 천사에게 호송되어 영원히 살집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오막살이 움집에 무 뿌리 하나가 걸려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말하기를 "당신은 여기서 영원히 무 뿌리를 빨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가 막힌 집사는 항의하기를 "하늘나라 장부에 잘못 기재된 것이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그 때 천사가 말하기를 "아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하늘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 뿌리가 전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고, 그 후로는 크게 깨닫고 열심히 하나님께 봉사하고 헌신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의 기도의 제목은 "하나님 뜻대로 쓰임 받게 하소서!"로 바뀌었고, 그의 신앙의 모습이 "지상의 부한 집을 천국의 하려한 집으로 바꾸자"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것은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믿/
  ⑸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기 위해서입니다.
  요16:7절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부탁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당신의 사명을 다 마치시고 남은 사역을 성령께 일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성령의 시대, 즉 성령님이 일하시는 시대입니다. /아멘!/
  ⑹우리의 중보기도자가 되시려고 승천하셨습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의 자격으로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롬8:34절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요일2:1절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그분이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대변하고 계심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⑺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시려고 승천하셨습니다.
  본문에도 예수님의 재림이 나옵니다만 성경에 보면, 구약에서 360회, 신약에서 380회가 예수님의 재림을 예언했습니다.

 

  ▶10절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주님이 승천하실 때,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았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제자들은 어쩌면 '지상에 임할 황홀한 왕권'을 연상하고 있다가 예수님의 승천을 보고 비로소 주님의 실존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복음의 왕국은 이 세상이 아니었구나! 그토록 고난을 통한 부활의 승리는 저 하늘나라를 위한 영원한 사역이었구나!' 깨닫고 하늘을 처다 보는 제자들! 그들은 비로소 하늘나라의 실재를 믿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하늘에 우리의 영원한 나라가 있구나!' 가슴에 소망을 품고 힘을 내자고 다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소망도 여기에 있습니다. 저 영원한 하늘나라가 우리의 영원한 소망입니다. 오늘의 이 세상은 영원한 우리의 처소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제자들처럼 하늘을 바라보는 슬기 있는 인생의 좌표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골3:1-2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흰옷 입은 두 사람" 천사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흰옷은 순결과 존귀를 상징한 것입니다. 흰옷은 예수님의 피에 의해서 씻겨진 새 옷입니다.
  ▶그러므로 흰옷은 ⑴예수의 피로 씻음 받은 의의 옷이요, ⑵예수님의 말씀으로 무장한 진리의 옷이요 ⑶예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거룩한 옷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옷을 입은 천사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십니다.

 

  ▶11절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갈릴리 사람들아!" 예수님의 12제자들 중 가룟 유다만 제외하고는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는 비천한 지방입니다. 천사가 '갈릴리 사람들아!'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여 우월감이나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고 천한 갈릴리 사람들의 겸손을 늘 잊지 말라고 부른 것입니다(학자들의 견해).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⑴하늘로 올라가셨으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입니다. ⑵눈으로 보이는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으므로 또 눈으로 보이는 구름을 타고 내려오실 것입니다. ⑶육신의 눈으로 보이게 올라가셨으니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게 재림하실 것입니다. ⑷신령한 몸으로 올라가셨으니 신령한 몸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⑴주님이 언제 오실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막13:32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⑵우리는 그 날을 예비하여야 합니다. 마24:24절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⑶그 날이 가까울수록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히10: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2-14절은 기도에 전력을 다한 제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12절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제자들의 출발지는 '감람원이라 하는 산'이었고, 그들의 도착지는 예루살렘입니다. 여기서는 '감람원이라 하는 산'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보통은 줄여서 '감람산'이라고 부릅니다. 마26:30절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감람원은 우리 예수님이 습관을 좇아 기도하신 곳입니다. 눅22:39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이곳에는 감람나무 곧 올리브나무가 많이 있어서 감람산이라고 불렸습니다. 감람산 한 쪽 기슭에는 '겟세마네'(기름 짜는 틀)라는 동산이 있어서, 예수님이 자주 그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남쪽으로 길게 뻗은 산입니다. 이 산의 남쪽 기슭에는 베다니라는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다니 마을 입구에서 승천하셨습니다. 눅24:50-51절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여러분! 왜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승천하셨을까요? 예컨대 갈릴리에도 얼마든지 많은 산이 있었습니다. 변화산도 있고, 팔복산도 있습니다. 오병이어로 기적을 베푸셔서 오천명을 먹이시고 그 남은 것을 열 두 광주리에 채울 정도로 남게 거두었던 산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갈릴리에 있는 그런 산에서 승천하시지 않고 하필이면 감람산에서 승천하셨을까?
  본문 12절 '하'에 있는 말씀을 보세요!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감람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과 어떤 관련이 있는 곳이었습니까?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곳입니다. 또한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님을 받도록 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예루살렘은 복음의 전파가 시작이 되어야 할 곳입니다. 눅24:47절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그리고 본문의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복음의 전파는 예루살렘에서 시작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가깝고도 한적한 곳인 감람산에서 승천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감람산은 예루살렘에서 얼마나 가까운 곳입니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전까지는 안식일에 걸어가기 알맞은 길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안식일에 먼 길을 가지 못하도록 규례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큰 모험이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에는 제자들을 잡아죽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함에도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죽음도 결사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가리켜 믿음의 조상으로 배웠습니다. 그가 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 세 가지 큰 순종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⑴창1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향해 "너는 고향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자 '아멘!' 하고 순종했습니다.
  ⑵창21:10절에 보면, '하갈과 이스마엘을 버리라'고 했을 때, '아멘!' 하고 순종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이런 결단을 할 때는 쉽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결단은 보통 어려운 결단이 아닙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할 때 이런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끊을 것은 끊고, 자를 것은 자르고, 쫓을 것은 쫓아내야 합니다.
  ⑶창22:2절에서 '독자 이삭까지라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고 하니 '아멘!' 하고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어려운 결단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명하시니 군소리 없이 아멘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이런 순종의 본을 보인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라는 말은 복의 샘 줄기라는 의미입니다. 퍼주고 퍼주어도 고갈이 없는 샘 줄기의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하자 생명을 걸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13절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그들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유하는 다락에 올라갔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집에는 맨 위층에 다락방이 있었습니다. ▶다락방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행9:36-37절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이처럼 다락방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한 동안 안치해두는 곳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 당시 다락방은 맨 위층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뜨일 염려가 없습니다. 그래서 조용하게 모임을 가지기에는 가장 적합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다락'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들었던 그 다락방입니다. 막14:13-15절 "예수께서 제자 중에 둘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베풀고 예비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라 하신대"
  이 '다락'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을 말합니다. 이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성찬예식을 거행하시던 방입니다. 제자들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을 집회 장소로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사도시대에는 개인의 집을 예배당으로 사용한 예가 많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자주장사 루디아의 집에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도하여 교인들이 생기면 적당한 가정집에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집 다락방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복 받을 일입니다.
  오늘날 다락방은 어디입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이 앉아서 예배드리는 이 장소가 다락방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락방은 오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처소입니다. 예배는 ⑴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⑵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말씀의 축복을 받는 곳입니다. ⑶헌신을 다짐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⑷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우리는 집에서도 산에서도 들에서도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어디서나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본 절에 보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난 뒤에 이미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열 한 명의 이름만 등장합니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는 가룟 유다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열한 제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했습니다. 그냥 예수님의 열한 제자라고 해도 되는데 왜 일일이 이름을 기록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증인의 대표로 삼고 각자에게 사명을 주셨기에 이름 하나하나를 다 기록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를 한번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써,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붙어 주신 새 이름입니다. 카톨릭에서는 영세를 받으면 새로운 세례명을 주는데 아마 이러한 성경의 습관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이 처음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너는 장차 게바라 하리라'입니다. '게바라는 말은 본래 수리아 말이고 베드로라는 말을 헬라어'입니다. 두 말의 뜻은 똑 같은 반석입니다. 지금 베드로를 보고 예수님께서 반석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베드로는 혈기가 대단했습니다. 다혈질인 베드로가 어떻게 반석처럼 듬직한 인격을 갖게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시몬에게 당장 '반석이 되리라'고 하시지 않고 장차 '반석이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장차 반석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될 줄 믿습니다.
  베드로는 정말로 자신이 부셔지고 깨어져서 반석과 같은 신앙으로 수제자의 사명을 다 감당한 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순교했습니다. 베드로의 순교는 교회사를 통해서 소상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가 박해를 피해서 로마교회 어느 언덕을 넘어갈 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깜짝 놀란 베드로가 주님께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나는 네가 버리고 간 양 떼들이 있는 로마에서 죽기 위하여 들어간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다시 불타는 로마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초대교부 오리겐 교부에 의하면 "나는 감히 주님이 매달려 돌아가신 십자가의 모습 그대로 죽을 수 없다. 나를 거꾸로 매달아 죽여 달라." 그의 요청이 받아들여졌고, 그는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주님을 찬양하며 죽여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주님의 1등 제자들입니다. 요한은 우리 주님이 가장 사랑한 제자입니다. 요13:23절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1,2,3서를 기록한 자입니다. 또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밧모섬에 귀향을 갑니다. 그 곳에서 그는 기도하다가 성령이 그를 감동시켜 하나님의 위대한 계시를 보여주었고 그것을 기록한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요한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독사 굴에 던짐을 받고, 한번은 끓은 물에 던짐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를 살리십니다. 그렇지만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들 것에 실려 나왔습니다. 그는 들 것에 실려 있으면서도 집회에 참석해 설교를 했는데, 그의 설교의 주제는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주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성도가 '선생님 우리는 이 설교를 수십 번도 더 들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설교를 해 주시지요?' 요한은 다시 말하기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설교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순교자로서 A.D. 100년 경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최초로 헤롯왕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행12:2). 그래서 야고보를 가리켜 최초의 순교자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셋만 간추려 보았습니다.

 

  ▶14절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 쓰니라"
  "여자들" 예수님을 따라 다닌 여자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섬겨오던 여자들이 있었습니다(눅8:1-3).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낼 때까지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눅23:49절 "예수의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그런데 14절에서는 여자들 가운데서 특별하게 한 인물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입니다. 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그때 그 자리에니까? 그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에 힘쓰기 위해서 그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모친이라고 해서 그에게 특별한 위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면, 마리아가 우리의 기도를 받아 하나님이나 예수님에게 전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비 성경 적이요, 잘못된 사상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이름이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되고 그 이상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만일 마리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된다면, 기독교의 교리를 다루고 있는 서신서에 그의 이름이 분명 언급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신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도행전에서조차도 그의 이름은 더 이상 언급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예수님의 동생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했습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를 숭배의 대상으로 높이지만 성경의 내용을 보면 마리아는 순종해야 할 위치에 있는 여인입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이 죽기 전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요7:5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어라"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된 것입니다.
  ▶이제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의 숫자가 몇 명입니까? 120명입니다. 감람산에서는 500명이 있었는데 380은 제 갈 길로 갔으며 120명만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무엇을 했습니까? 기도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 재림을 약속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준비가 다 된 셈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준비가 있다 하더라고 기도의 준비가 없으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불을 받기 위해 그들이 기도한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⑴더불어 기도했습니다. 성도의 모임과 활동은 더불어 시작되고 진행되어야 합니다. 더불어는 합력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불어 기도하는 그 소리를 기뻐하시고 응답하십니다. /믿/
  ⑵마음을 같이 했습니다. 한 마음으로 같이 기도했습니다. 당시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오직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주십시오!" 우리는 기도할 때 이렇게 마음을 같이 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⑶전혀 기도에만 힘썼습니다.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생명을 내어 건 기도가 전심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