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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죄인들의 손에 팔리신 예수님 (막 14:43-47)

죄인들의 손에 팔리신 예수님 (막 14:43-47)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있는 어느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음식을 드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그 동안 오래토록 지켜 내려오던 유월절을 종료하시고, 그 대신에 성찬을 새롭게 제정하셨습니다.  

성찬이 시작되기 전, 가룟 유다는 다락방에서 나갔습니다.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겨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성찬이 끝난 후,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 열한 제자들을 데리시고 감람 산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요18:2 말씀과 같이, 겟세마네 동산은 가끔 예수님이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도 하시며, 또한 제자들과 조용한 시간을 보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가룟 유다도 그 곳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그들보다 좀더 동산 안쪽으로 들어가셔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홀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절히 기도하시는 중에도, 제자들을 잊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와 기도 사이마다, 그들에게 돌아오셨습니다. 그 때마다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깨우시면서, 그들에게 기도하라고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기도가 끝났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 있는 막14:41∼42 말씀입니다.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죄인들의 손에 팔리시는 광경입니다. 가룟 유다는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시기 위해, 가룟 유다가 이끌고 온 무리에게 잡히셨습니다. 이렇듯 오늘 본문의 말씀은 비극적인 내용입니다.

본문에는 예수님 이외에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 예수님을 입맞춤으로 팔아넘긴 가룟 유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행동한 제자가 나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무리가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막14: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세 번 같은 내용으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당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잤습니다. 기도를 다 마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깨우시면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좀더 정확히 번역하면, 이제도 자고 쉬느냐)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이 때의 유다는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를 가리킵니다. 앞에 나오는 가룟은 지명이고, 뒤에 나오는 유다는 인명입니다. 그는 로마의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대제사장의 아랫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난 삼 년 동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늘 함께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이처럼 가룟 유다는 놀라운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로, 그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짓을 행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성찬이 시작되기 전, 가룟 유다는 그 곳을 나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넘겨주기 위해 대제사장들을 찾아갔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과만 함께 계셨습니다. 따라서 이 때가 예수님을 넘겨주기에 가장 좋은 기회라고 여겨졌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말을 들은 대제사장들은 즉시 산헤드린, 곧 공회를 소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을 모두 소집한 것입니다. 그들도 이 때가 예수님을 잡을 적기라고 판단하고, 그 즉시 무리를 파송했습니다.

마26:47 말씀과 같이, 이 때 공회는 예수님을 잡기 위해 “큰 무리”를 파송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들의 아랫사람들만 파송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눅22:52 말씀과 같이, 이 때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도 직접 따라 나섰습니다.

그 뿐 아니었습니다. 요18:3 말씀과 같이, 무리에는 군대도 들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로마 군대를 가리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군대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18:12 말씀과 같이, 이 때 천부장이 로마 군대를 통솔하고 있었습니다.

천부장은 말 그대로 천 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지휘관입니다. 비록 이 때 천 명 전부가 동원되지는 않았더라도, 수백 명은 천부장을 따라나섰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때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의 수는 모두 합쳐서 일천 명 가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날 밤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들은 로마 군대의 천부장이나 로마의 총독 빌라도를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로마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말하면서, 얼른 잡지 않으면 예수님이 백성을 선동해서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거짓으로 모함했을 것입니다. 

며칠 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열렬하게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이는 천부장도 또한 총독 빌라도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막15:7 말씀과 같이, 바로 얼마 전 로마에서 벗어나려는 민란이 실제로 일어났었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의 입장에서 보면, 또다시 유대인들 사이에 민란이 일어난다는 것은 큰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천부장을 위시한 군대를 보내서 예수님을 잡도록 했습니다.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어우러져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그들은 검과 몽치를 가지고 왔습니다. 검은 로마 군대가 지니고 있는 무기였습니다. 예수님을 잡는데 방해가 되면, 그들은 가차 없이 검으로 찌르고자 했을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몽치는 짤막하고 단단한 몽둥이를 가리킵니다. 몽치는 성전의 경비대가 지니고 있는 무기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성전의 경비대는 성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몽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요18:3 말씀처럼, 그들은 등과 횃불을 들고 왔습니다. 때는 유월절이었기에, 보름달이 떠서 주변은 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등과 횃불을 준비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디에 숨으시더라도, 샅샅이 뒤져서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43절 끝 부분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와 함께 하였더라.” 그러니까 가룟 유다가 앞장을 서서, 무리를 그 곳으로 데리고 왔던 것입니다. 물론 가룟 유다는 무리를 이끌고서, 먼저 예루살렘에 있는 다락방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그 곳을 떠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어디에 계실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바로 감람 산의 겟세마네 동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리를 이끌고, 곧이어 겟세마네 동산으로 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에게 무슨 죄가 있었습니까?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을 내쫓아주셨습니다. 배고픈 자들을 배불리 먹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잘못도 행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오도록 큰 무리를 파송했습니다. 이에 무리는 검과 몽치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등과 횃불도 준비했습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무리는 검과 몽치를 들고,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무리는 등과 횃불을 들고,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이처럼 정신없는 짓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 줄을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예수님을 배척하며 기독교를 폄훼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죽으셨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날마다 힘써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가룟 유다는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막14: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예수를 파는 자가.” 가룟 유다를 가리킵니다. 그는 예수님이 이 세상의 왕이 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대가 어긋나자, 그는 예수님과 함께 했던 세월을 보상받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그는 자기가 맡고 있던 돈궤에서 도적질했습니다.

며칠 전 베다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하여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그러자 가룟 유다는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돈을 허비시켰다고 불평했습니다. 바로 그 날 밤 그는 대제사장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은 삼십을 받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넘기기로 했습니다.

은 삼십은 노예 한 사람의 값으로 일백 이십 데나리온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는 그가 놓친 삼백 데나리온의 삼분의 일 정도를 대신 챙겼던 것입니다. 그는 은 삼십에 눈이 어두워서,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가룟 유다와 그가 이끌고 온 무리 사이에는 이미 약속된 군호, 곧 신호가 있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가룟 유다의 입맞춤을 받는 자가 그들이 잡아야 할 목표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보름달이긴 했지만, 감람나무들 때문에 주변은 어두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에게 후광이 비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제자들 중 하나가 스스로 예수님을 대신해서 잡힐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실수가 없도록, 그들 사이에 신호가 필요했습니다.

본시 입맞춤은 사랑이나 존경 또는 감사를 표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입맞춤은 예수님을 파는 하나의 신호일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곧이어 그의 실제적인 의도가 밝혀집니다.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가룟 유다는 그의 손으로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이가 바로 예수다”라고 크게 외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했더라면 차라리 덜 가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그러니 그는 너무도 가증스러운 짓을 행했습니다.


막14: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예수님을 즉시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그가 이미 무리와 짠 군호대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랍비여.” 이는 제자가 스승을 부를 때 쓰는 말입니다. 랍비의 뜻은 선생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면서 짐짓 반가운 척하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도 역시 위선적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하려는 짓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눅22:48 말씀을 보면, 입맞춤이 있기 전에 예수님은 그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장에라도 가룟 유다를 멸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셨습니다. 시41:9에 있는 말씀, 곧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한 성경을 응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문 45절 끝에 있는 말씀입니다. “입을 맞추니.”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지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전연 개의치 않았습니다. 요13:27 말씀과 같이, 이미 가룟 유다는 사탄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입을 맞추다”라는 동사가 헬라어에서는 강조형입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는 큰 동작을 하면서, 열렬하게 예수님에게 입을 맞추는 행동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가 이끌고 온 무리에게 예수님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확실하게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막14: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가룟 유다의 입맞춤을 신호로 무리는 예수님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요18:12 말씀처럼, 이방인인 군대와 천부장 그리고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합세하여 예수님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도망을 치시면 안 된다는 듯이, 그들은 예수님을 결박했습니다.

이로써 가룟 유다는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았고, 예수님은 죄인들의 손에 팔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위선적인 입맞춤도 참으시고, 죄인들의 손에 결박당하시는 부끄러움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기도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룟 유다는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우리도 겉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의 쾌락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역시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고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도, 이 세상 명예와도, 이 세상 행복과도 바꿀 수 없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없기에,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이와 같은 고백대로 살며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어떤 제자가 충동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막14: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무리가 예수님을 잡아서 결박하려 들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곁에는 막 잠에서 깨어난 제자들이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무리에게 잡히시는 것을 보더니, 그들 중 한 사람이 돌발적인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성급하게 나서기를 좋아하고, 또한 충동적으로 행하는 기질이 있는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베드로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요18:10 말씀을 보면, 이 때 무모한 일을 저질렀던 사람은 다름이 아닌 베드로였습니다.

“칼을 빼어.” 눅22:36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검을 가질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눅22:38 말씀과 같이, 그 때 제자들에게는 검 둘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를 베드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가진 칼을 빼서 휘둘렀습니다.

“대제사장의 종을 쳐.” 요18:10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 종의 이름은 말고였습니다. 그는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의 종이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나 경호실장에 해당할 만큼, 그는 아주 막강한 인물이었습니다.

무리 중 로마 군대는 천부장이 통솔했습니다.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은 대제사장의 종 말고가 통솔했습니다. 아마도 그 때 말고가 무리 전체를 총괄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무리의 맨 앞에 서 있다가, 그만 베드로가 휘두른 칼에 변을 당했습니다.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베드로는 전문적인 칼잡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말고는 얼른 고개를 숙여서, 다행스럽게 그의 목이 떨어져나가는 것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대신 그의 오른편 귀가 칼에 베여서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언뜻 보면, 베드로의 용기가 가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어리석은 짓을 했을 뿐입니다. 그는 잠자다 일어나서 정신없이 객기를 부렸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요한복음 18장 말씀을 읽어보면 분명해집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그들에게 나아가서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에게 자신을 밝히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예수님에게서 목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또다시 그들에게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두 번씩이나 그들에게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습니까? 제자들을 보호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요18:8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계속해서 그 다음 절인 요18:9 말씀입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한 사람도 잃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지키실 것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무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끝까지 지키신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를 행하려고 들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살인미수죄나 업무방해죄로 바로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체포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즉시 나서서 베드로를 보호하셨습니다. 눅22:51 말씀처럼, 예수님은 말고의 귀를 만져 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새 귀를 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 사이에서, 말씀으로 제자들을 보호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예수님은 능력으로 그를 구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말씀으로 지켜주십니다. 우리가 위험에 처하면, 예수님은 능력으로 우리를 구해주십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우리도 무리처럼, 무턱대고 예수님을 배척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도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사랑하는 척하며 우리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내세우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한 주를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으로 가득하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을 의지하며, 예수님의 인도를 받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증인이 되어, 날마다 힘써 복음을 전하는 복 된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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