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장에서는 수리아 안디옥을 떠나 구브로와 소아시아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활동이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된 반면 본장에서의 여정인 이고니온(1절)과 루스드라(6절) 그리고 더베(6절)에서의 활동은 고조되는 핍박을 피할 요량으로 찾아다닌 지역들에서 이루어진 가시밭과 같은 사역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본장에서의 복음을 중심으로 한 긴장과 갈등이 구석구석에서 확인되는 바, 그 내용을 '복음을 위한 사람들'과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1) 복음을 위한 사람들. 이 부류에 속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은 두 말할 나위도없이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들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두 사람은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실질적인 책임을 들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두 사람은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실질적인 책임을 진 목회자들로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방 선교를 수행하기 위하여 파송되었다(13:1-3). 13장에서부터 전개되는 이들의 선교 활동은 많은 열매를 맺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사역에 대한 방해가 만만찮다. 그 방해 책동은 다양한 부류와 방법으로 제기되는데, 그 구체적인 실례들은 본장에서 더욱 여실히 나타난다. 그러나 고조되는 핍박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전파의 열기는 꺼질 줄 모르는 활화산처럼 분출하고 있다. 이처럼 이들의 복음 전파의 열정은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대담한 복음 전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핍박을 피하여(13:50) 이고니온 지역으로 도피해 온 두 사도는 여기서도 복음의 전도 사역을 그칠 줄 모른다. 이방인의 구원을 시기하는 유대인들(2절)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음 전파를 방해했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공개적인 복음 전파를 감행했다(3절). 그 결과 바울은 돌에 맞아 죽음의 사경을 헤매기도 했지만, 이런 핍박들은 오히려 복음 전파의 열정을 더 강하게 만들 뿐이었다(21절). 이처럼 복음 전파에 있어 일사 각오(一死覺悟)의 자세로 임한 바울과 바나바의 태도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히 1:38) 복음의 산증인이 취하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나) 지혜로운 피신(5,6절). 전투에서 군인의 도망은 직무 유기로서 비겁한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피신이 다 직무 유기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작전상 후퇴로서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전략상 사용했던 피신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가능한 한, 복음을 대담하게 전했지만, 그 결과 목숨이 위태로울 때는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는 지혜를 보이고 있다. 이 방법은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마 10:23)고 하는 예수의 말씀에 부합되는 것으로서 효과적이고 더 광범위한 이방 선교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했던 방법인 것이다. 더욱이 이 피신의 방법은 기독교를 항상 적으로 간주하며, 핍박과 박해를 상례화한 지역과 시대에서 늘 적용되었던 선교 원칙으로서, 작위적(作爲的)인 순교만이 능사가 아님을 말해준다. 기독교 역사가 순교자의 피로 얼룩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진만 이것을 공식화시킬 수 없는 것은, 선교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하에 진행되는 특별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고로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피신은 하나님의 인도에 따른 것으로서 그들이 처한 상황과 여건하에서는 하나님께서 '순교자의 피'보다 '전도자의 발걸음'을 더 원했던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바울 일행의 피신은 부끄러운 후퇴가 아니라 지혜로운 행보(行步)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 이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불순종한 유대인들과 무지한 이방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불순종한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 선교에 제일 큰 걸림돌로서, 바울 일행의 진로를 방해했을 뿐 아니라(4,5절) 그들의 목숨까지도 노렸던 사람들이다(19절). 유대인들의 박해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구원의 순서에 있어서 유대인의 우선권을 인정하지 않고 이방인들과 동등하게 취급한 바울 일행의 태도를 들 수 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이런 선민 으식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편만해 있던 사상이었다. 따라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모든 이방인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바울의 복음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었던 상황이 종종 발생했었다. 이러한 상황은 본서 15장을 통해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바,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5장 강해를 참조하기로 하자. 그 다음 사도 바울 일행을 핍박했던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적극적 박해에 비할 때 그 박해의 양상이 소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 의하면 이방인들은 주로 유대인들의 사주(使嗾)에 의해서 선동당하는데,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성에서의 박해가 좋은 예가 된다. 특히 루스드라 성에서 야기된 사건은 이방인들의 박해 동기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실례가 된다고 하겠다.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해당 단락 강해를 참조하기로 하자.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본장 전체에는 복음을 중심으로 긴장과 갈등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긴장과 갈등이 수리아 안디옥에 귀환한 사도 바울 일해의 보고를 통해서 해소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복음을 위한 사람과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조정된 긴장과 갈등은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방적인 폭력에 의하여 외형적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바울 일행의 보고에 의하면 그 결과는 정반대다. 바울 일행은 많은 고난과 박해를 받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선교 여행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이 열리는 사실을 목도하였고 이를 교회앞에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복음을 위한 사람들의 궁극적인 승리를 말해주는 중요한 대목이 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속사의 물결이 이방의 바다로 도도히 흐르는 시점에서 복음을 대적하는 무리들의 암초는 일순간 나타났다가 잠겨 버렸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선교 지역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것은 각각 이고니온 전도(1-7절), 루스드라 전도(8-18절), 안디옥으로의 귀환 여행(19-28절) 등으로 구분되는 바, 상세한 내용은 문단 강해를 통해서 상고하기로 하자.
1. 이고니온에서의 전도(14:-17)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은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를 끝을 맺었다(13장). 이 시점에서 바울 일행은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에베소에서 유브라데까지 이르렀던 로마의 대로(大路)는 B.C.6년경에 남부 갈라디아의 중심지까지 연장되었고 이 길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부터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본문은 바울 일행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 쪽을 택하였음을 보여준다. 당시 이고니온은 로마의 식민지로서 철저히 로마화된 번창한 도시였다. 그리고 인종적으로 유대인, 헬라인, 로마인 등이 골고루 섞여 살고 있었다. 누가는 이고니온에서의 사역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훗날 이곳은 선교 확산의 중심지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아마 누가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사역과 이고니온에서의 사역에 있어서 유사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장기간의 체류(3절)를 단 몇줄로 요약해 버렸을 것이다. 로마의 직접적 통치를 받는 대도시일수록 폭도들의 만행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 반면에 이고니온과 같이 로마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폭력이 난무했던 것으로 보인다(5절). 한편 이고니온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복음서에 언급된 여러 사건들과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유사점들은 특히 예수의 행적과 깊은 연관이 있는 바, 이것에 대한 연구는 매우 유익한 교훈을 제공해 줄 것이다. 바울의 이고니온 전도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전파와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그 유사점의 몇몇을 간추려 보기로 하자. (1) 복음 전파의 결과들. 바울의 선교 여행시 항상 뒤따랐던 결과는 사람들의 양분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양분된 사람들의 사람들의 상이한 반응은 복음의 수용과 거절이라는 현상이며 이러한 현상은 이미 예수의 하나님 나라 전파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2) 복음 전파에 따르는 분쟁들. 바울의 이고니온 지방 선교는 허다한 무리의 복음 영접과 유대인들의 박해라는 양분된 여론 형성과 여기에서 야기되는 분쟁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분쟁의 현상은 일찍이 예수의 사역 가운데 항상 뒤따랐던 반응이었다. 그 구체적인 예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특히 예수의 출생, 사역, 그리고 죽음이라는 생의 과정을 통해서 투영해 보면 일목 요연하게 정리가 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복음서의 강해를 참조하기 바라며, 여기서는 예수께서 자신의 사역에 이어 분쟁을 예견했던 사건 하나를 설명하는 데 그치기로 하자. 그것은 마태복음 10:34-39의 말씀이다. 여기에서 예수는 자신의 사역의 결과가 이웃뿐만 아니라 가족간의 분쟁과 불화까지 일으킬 수 있음을 제시하셨고 아울러 복음 전파가 일으키는 분쟁에 동요하지 맒것을 경계하셨다. (3) 피신의 지혜. 바울 일행이 이고니온에서 핍박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저들은 우선적으로 몸을 피신하였다. 이 피신에 대한 전반적 설명은 장 강해에서 언급하였으므로 여기서는 피신의 방법에 관한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초점을 보기로 하자.
예수는 공생애 기간 중 여러 차례 대적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에 직면했거니와 이 때마다 예수는 자신의 때가 임하기 전까지 군중 속으로 피신하셨다. 또한 예수께서는 열 두 제자들을 전도자로 각 고을에 파송할 때, 피신의 방법을 적극 활용할 것을 당부하셨다(마 10:23). 이렇게 볼 때 바울 일행이 이고니온에서 극한 핍박에 직면하게 루스드라와 더베 성으로 피신한 것은(6절) 전도자의 지혜로운 처신이라 볼 수 있다. (4) 핍박의 과정. 이 부분에 관해 더 자세한 내용은 장 강해를 참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핍박의 주체자들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자. 본문에서 바울 일행을 핍박했던 주체자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 그리고 관원들이었다(2,5절). 이 중에서 특히 유대인들은 적극적인 주체로, 나머지는 소극적 주체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다른 입장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복음 전도자들을 핍박했다는 데에 합일점을 가졌다. 이러한 현상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시에도 찾아볼 수 있다. 평소 정치적, 신학적 견해를 달리하는 이스라엘 내의 세 정파와(막 5:35-43 주제 강해 '예수 당시의 주요 사회 계층 및 종교 계층' 참조) 로마 정권으로 대표되는 빌라도 정권의 공생 공존의 합일점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데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에 대한 핍박의 동기와 과정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서 여실히 노출된 것과 같이 기독교의 복음 전파시 나타나는 하나의 전형적인 현상이 될 수 있다. 한편 이 같은 과정 속에서 대비 구조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담대한 진리와 비루한 비진리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의 대적자들은 바울 일행을 박해하기 위해서 선동과 폭력 등과 같은 비합리적인 수단을 동원한 반면 복음의 진리를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하게 설파했다는 점이다. 고로 이러한 진리와 비진리의 접전 싸움은 이미 판결이 난 상태라고 할 수 있는 바, 비진리의 세력은 폭력과 선동에 의지할 때부터 그들의 정당성은 상실했다고 하겠다. 실로 본문 속에서 예수 사역의 새싹이 움트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예수께서 참 생명이시며 유일한 진리되심을 올바르게 전파하는 곳이면 으례히 일어나는 양상일 것이다. 이에 본문의 내용은 현대 교회의 성도들이 전파하는 바 복음의 순도를 측정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루스드라에서의 전도(14:18) 본문에 수록된 루스드라에서의 사건은 매우 극적으로 전개되어 있어 목격자의 생생한 보고를 토대로 하여 기록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 목격자란 루스드라 출신인 디모데였을 가능성이 많다(16:1,2). 이고니온의 남쪽 38km가량 떨어진 루스드라는 B.C.6년경에 로마의 식민지로 흡수되었고 로마 황제 아구스도는 이곳으로 고참 직업 군인들과 그 가족들을 이주시켜 변방도시로 만들었다. 그 주민은 대부분이 교육을 받지 못한 루가오니아인들로서 자기네 언어를 따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 지배 계층은 로마의 직업 군인들로 이루어졌고, 교육이나 상업등은 소수의 헬라인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또한 거기에는 유대인들도 살고 있었으나(16:1-3) 그 영향력은 보잘 것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루스드라의 회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대개 거주지에서 10명이 이상의 유대인들이 생기면 하나의 회당을 건립했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루스드라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기껏해야 10명 이내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먼저 회당을 방문했던 바울의 선교 전략은 루스드라 지역에서는 적용될 수 없었다. 이런 사실은 루스드라 주민들의 신 개념을 추측할 수 있게 해 준다. 적어도 회당이 존재했던 이방 지역의 주민들은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선이해(先理解)가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은 복음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회당이 없었던 지역의 주민들은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으므로 설령 하나님의 계시를 설명한다고 해도 자신들의 신 개념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신앙적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측면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사건이 바로 본문이거니와 그 내용을 '신 개념'이라는 주제하에 살펴보기로 하자. (1) 루스드라 주민의 신 개념. 고고학적 고증에 의하면 루스드라의 주민들은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을 숭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더욱이 이들의 우상 숭배를 더욱 부채질한 것은 그들의 저급한 문화 수준과 문맹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우상 숭배와 신비한 전설에 대해 루스드라 주민들이 바울 일행의 기적을 보고 그들은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의 방문으로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이런 배경에서 기인되는 것이다. 사실 루스드라 지방에는 제우스와 관련된 신화가 퍼져 있었다. 그 신화에 의하면 이들 두 신이 자신들의 신분을 감추고, 이곳 루스드라 지방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필레몬 과 바우시스라는 가난한 부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이 두 신을 경홀히 여겼으며 따라서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그 부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홍수로 몰사시켰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주민들에게 바울과 바나바의 기적은 그들의 지나간 과오를 상기시켰음에 틀림없다. 다시 말하면 또다시 자신들의 지역을 방문한 두 신을 소홀히 취급한다면, 또다른 재앙을 당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걷게 했던 바울 일행을 신처럼 섬기려 제사를 준비한 것은 어쩌면 이들의 신 개념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와 같이 루스드라 주민들의 신 개념은 세상적 신 개념의 한 단면을 잘 보여 주는데, 그 대표적인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라 하겠다. 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본문 주제 강해 '헬라.로마의 신과 예수 제일 신앙'을 참조하기로 하자. 다만 여기서 간략히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루스드라 주민의 세속주의적 신 개념이다. 그들의 신은 인과 응보에 철저한 신으로서, 인간들에게 공양을 요구하는 게걸스러운 신이다. 또한 사람보다 강한 힘을 소유했던 까닭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신은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 힘의 행사는 인간의 지성에 달려 있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는 인간의 범주 안에 갇혀있는 신이다. 이와 같은 신을 섬긴 루스드라의 주민들은 이적을 행한 바울 일행을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끝내 제사를 물리친 바울 일행에게 강한 악감을 품었음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사실은 이들의 신 개념의 한계를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루스드라 주민에게서 볼 수 있는 인간 중심적 신 개념은 오늘날 성도들의 신관(神觀)에서도 흔히 발견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거룩한 삶에 대한 관심과 결단보다는 자신들의 성공을 보장해 주기를 바라는 일체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그들의 마음속에 수호신을 섬기는 것과 같다. 요컨대, 기도와 헌금하는 태도에서도 수호신을 달래고 위로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신앙은 루스드라 주민들이 범했던 오류로서 하나님을 제한하고, 하나님을 바로 증거하지 못하는 크나큰 과오가 아닐 수 없다.
(2) 바울의 신 개념. 루스드라 주민들의 잘못된 신 개념에 대한 바울 일행의 신 개념을 매우 대조적이다. 선천적 불구자인 앉은뱅이를 치유한 바울의 행동 동기는 결코 능력의 과시가 아니었다. 바울은 앉은뱅이에게서 완치의 가능성인 믿음을 보았던 것이다. 이것은 치유의 근원이 바울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확연히 보여준다. 또한 바울의 신 개념은 루스드라 주민의 제사를 거절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바울은 앉은뱅이의 치유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이심을 누구보다 잘 인식했던 반면 루스드라 주민들은 바울을 능력의 신으로 생각하셨다. 이러한 생각에서 그들은 바나바와 바울을 각각 쓰스와 헤메라 부르며 제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바울 일행은 자신들을 우상화하려는 주민들의 제사를 극렬히 반대했다(14절). 이 같은 바울 일행의 단호한 거부는 비상 사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강렬한 거부의 몸짓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결국 바울 일행의 행동은 인간의 신격화나 우상화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유일신 하나님 신앙의 표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바울의 신 개념을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또한 하나님의 힘을 받아 살아가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런 점은 당시 군사적 업적이다 지적 과시를 통해서 스스로 우상화시키려고 했던 로마 제국의 시류와도 대조를 이룬다 하겠다.
* 헬라.로마의 신과 예수 제일 신앙. 우리는 신.구약성경을 통해서 여러 형태의 우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우상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즉 외면성이 강한 구약성경의 우상과 내면성이 강조된 신약성경의 우상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약성경에 나타난 우상들이 주로 자연 현상을 통한 사단의 미혹임에 반해 신약성경의 우상들은 주로 인간의 교만심을 부채질하는 사단의 미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시대적인 배경에서 비롯되는 당위적인 것이라 하겠다. 특히 신약성경의 배경을 이루고 있던 로마 제국은 다신론, 범신론 사상에 젖어 숱한 우상을 신봉하고 심지어 제국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신의 아들'이라는 착각에 빠져 종교적 숭배까지 강요한 적이 많았다. 여기서는 그들의 이런 잘못된 신관의 중심이 되는 헬라.로마 신화의 12주신(主神)을 중심으로 그 특징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무엇보다도 이 신들은 그들 스스로가 창조자가 못되고 당시 사람들이 꿈꾸던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의 신격화로서 자기 중심적 희노 애락(喜怒哀樂)과 권모 술수 특히 육욕과 관련된 숱한 애증 관계를 표출해 내고 있으며 이런 신들이 실제 존재한 것은 아니다. 유일신 앞에서의 자기 존재를 깨닫지 못한 인간들의 억눌린 욕구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즉 그들은 실재(實在)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모든 가공의 신이며 창조나 윤리의 신이 아니라 피조물과 불의한 측면을 충동질하는 신이다. 이러한 신들을 다음 도표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 | 헬 라 명 | 로 마 명 | 속 성 | 성 경 | +------------+------------+---------------------------------+------------- | 제우스 | 주피터 |하늘의 신, 기후의 조절자, 모든 신 | 행 14:12,13 | | (Zeus) | (Jupiter) |과 인간을 다스리는 주신 | | +------------+------------+---------------------------------+------------- | 헤 라 | 주 노 |여성의 신 | | | (Hera) | (Juno) |제우스의 부인 | | +------------+------------+---------------------------------+------------- | 데미테르 | 케레스 |농업의 여신 | | | (Demeter) | (Ceres) |결혼의 수호자 | | +------------+------------+---------------------------------+------------- | 포세이돈 | 녀 툰 |바다(물)의신 | | | (Poseidon) | (Neptune) |지진의 신 | | +------------+------------+---------------------------------+------------- | 하데스 | 플루트 |지하 세계의 신 | | | (Hades) | (Pluto) | | | +------------+------------+---------------------------------+------------- | 아레스 | 마르스 |전쟁과 농경의 신 | 행 17:22 | | (Ares) | (Mars) | | | +------------+------------+---------------------------------+------------- |헤파이스토스| 불 칸 |불의 신 | | |(Hephaistos)|(Vulcanus) |장인(匠人)의 신 | | +------------+------------+---------------------------------+------------- | 디오니소스 | 바커스 |자연, 술, 연회(宴會)의 신 | | | (Dionysos) | (Bacchus) | | | +------------+------------+---------------------------------+------------- | 아프로디테 | 비너스 |미와 사랑의 신 | | | (Aphrodite)| (Venus) | | | +------------+------------+---------------------------------+------------- | 헤르메스 | 메르쿠스 |전령, 사자(使者)의 신 | 행 14:12 | | (Hermes) |(Mercurius) | | | +------------+------------+---------------------------------+------------- | 아폴로 | 아폴로 |목축과 태양의 신 | | | (Apollon) | (Apollo) |시, 음악, 예언, 사냥을 관장 | | +------------+------------+---------------------------------+------------- | 아테네 | 미네르바 |지혜의 여신 | | | (Athene) | (Minerva) |풍요의신 | | +------------+------------+---------------------------------+-------------
현대에 이르러 이런 신들을 믿는 자들은 없다. 하지만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신 격화하며 자기 욕망을 만들어낸 각종 명예, 권력, 쾌락 등을 우상처럼 섬긴다. 시대가 갈수록 그 정도는 병적으로 심해지고 있다. 더욱이 기독교 내에서도 기복주의적 신앙 이 좀먹이 들어오는 것은 극히 경계할 일이다. 끝으로 이것은 현대 서양 사상의 양대 주류인 헬레니즘(Hellenism) 과 헤브라이즘 (Hebraism)의 우열을 논한 것은 아니다. 이는 인본주의적 신앙과 신본주의적 신앙의 질적 차원이 완전히 다름을 강조할 뿐이다. 실체로 참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민족 중 심, 율법 중심의 인본주의적 신앙이 아니라 오로지 자유와 경건의 기쁨을 전해 주는 예수 제일 신앙인 것이다.
* 안디옥 교회로의 귀환(14:19-28) 본문은 바울 일행이 그동안 전도했던 여정을 역으로 돌아보면서 선교의 전초 기지였 던 안디옥 교회로 귀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차 전도 여행을 출발한 바울 일행은 수많은 고초와 어려움 속에서 조금도 동요함 없이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였거니와 이는 매우 귀중한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바울 일행의 선교보고에서도 언급되듯이, 바울은 1차 선교 여행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의 문을 여신 하나님의 섭리를(27절) 깊이 체험했던 것이다. 이 사실은 뒤이은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을 독려(督勵)했을 것 이며 또한 그 비전을 가질 수 있는 근거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한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의 선교 전략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바울이 고난을 받았던 지역과 순방했던 도시의 지명들이 서신서의 내용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착안하여 본문을 상고하고자 한다. (1) 귀환 여정의 의미. 본문에 언급된 지명들은 1차 선교 중 방문한 적이 있던 지역 이었기 때문에 두번째 방문에 해당된다. 즉 더베나 루스드라, 이고니온, 그리고 비시 디아 안디옥 등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많은 성도들이 생겼던 곳이다. 물론 1차 선교 여행의 전반부 여정은 주로 핍박을 피하여 방문했던 까닭에 구체적인 일정까지 짜여있 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후반부 특히 본 단락의 여정은 바울 일행의 계획적인 방문 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기독교 성장의 필수적인 두 요소를 든다면 '선교'와 '교육'을 들 수 있다. 이에 본 문의 여정은 복음 전파의 결실인 성도들에 대한 교육에 강조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 다. 실제로 바울 일행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그리고 안디옥을 돌아보면서 '환난'에 대한 특별한 마음가짐을 당부하였다(22,23절). 이것은 성도수를 늘리기에만 급급한 선 교, 혹은 전도 정책에 혈안이 되어 있는 교회에 경종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2) 서신서와의 내용의 일치. 본문의 내용은 본서의 역사적 진위성에 대한 충분한 보증이 되고 있다. 특히 바울 일행이 당한 핍박과 방문했던 지명은 서신서들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어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다. (가) 핍박 내용의 일치. 본문 19,20절에 의하면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적이 있었다. 이 내용은 고린도후서 11:24,25에 언급되고 있다. 바울은 스데반의 경우처럼 강제로 성 밖으로 끌려나가서 투석을 당하진 않았지만, 그가 루스 드라 거리에서 돌에 맞은 사건은 고린도후서에서 '한번 돌에 맞는'사건과 일치하고 있 는 것이다. (나) 지명의 조화. 본문 23-2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의 여정이 언급되어 있는데, 여 기에 기록된 지명은 거의 디모데후서 3:11의 그것과 일치한다. 한 가지 언급되지 않은 곳이 있다면 '디베'라는 지명인데, 이 차이점은 다음과 같은 설명에 의해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본서에서는 일반적인 여정을 가볍게 언급했던 반면, 디모데후서에서 는 이 도시 중 바울이 핍박을 각별하게 당했던 곳을 강조하여 언급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더베'라는 도시는 바울이 복음을 전파한 도시이지만(20-25절), 그 곳에 서는 안디옥과 이고니온 그리고 루스드라에서처럼 핍박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 2차 전도여행 교회사적 의미에서 바울의 선교 여행을 음미해 볼 때 그 중요성은 막중하다고 하겠 다. 그것은 이전까지 예루살렘과 사도 중심적인 유대교적 기독교에서 환골 탈태(換骨 奪胎)하여 전세계에로 향한 범민족적인 기독교로 전환하게 된 분기점을 바울의 선교 여행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바울의 제1차 이방 선교 여행은 이방인의 세속 사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 진입의 제 일보에 해당하는 이정표로서, 그 파급 효과는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따라서 당시 동방의 도시 안디옥(시리아)에서 별 주목을 받 지 못한 성도들의 거룩한 열심(holy zeal)은 훗날 세계사의 판도를 뒤바꾸어 놓는 기 폭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적으로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 경로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우리는 겨자 씨와 같은 복음의 생명력과 성장력을 다시금 확인하는 바, 그것 은 필경 하나님의 구속사가 지니는 세속의 보편사에 대한 우위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기독교적 역사관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바울의 선교 여행은 그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러한 점을 염두해 두면서 본 장 강해에서는 바울의 선교 여행의 전모를 살펴보기로 하자. (1) 바울의 선교에 나타난 방법들. 당시 로마 제국 내에 존재했던 무수한 종교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기독교가 오늘날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 의 숨은 헌신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서 바울의 이방 선교는 그 방향성을 정 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하겠다. 또한 그의 선교 여행에서 주로했던 선교 방법은 오늘날의 선교학에서도 변할 수 없는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즉 본장에서 사도 바울이 이방 선교를 함에 있어 가장 큰 비중을 두었던 것은 말씀 (12,16-47절)과 이적(11절)을 들 수 있다. 이 방법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기 간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데 주로 사용하셨던 수단으로서, 어쩌면 예수를 구 주로 전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사도로서 바울이 말씀과 이적을 선교의 방편으로 이용 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가) 말씀(16-47절). 이것은 주로 회당에서(14절) 사용된 선교의 방편으로서 사실 말씀 전파는 기독교 진리를 가장 극명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본질적인 방법이다. 비 록 이적 역시 선교의 한 방편으로 채택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 역시 말씀 전파에 동 원되는 부차적인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바울이 자신의 이방 선교에 있어서 말씀 전파를 가장 중요하게 취했던 사실은 오늘날 비복음적 말씀의 난무(亂舞) 와 비성격적 수단의 무차별적 유입이라는 커다란 세속적 파도에 완전 노출되어 있는 한국 교회에 중요한 귀감이 된다. (나) 이적. 성경에서 축귀(逐鬼)나 병고침과 같은 이적들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실현의 가시적 현상으로 동원되고 있다. 본장에서 나타나는 이적 또한 이와 같은 맥락 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총독 서기오 바울로 하여금 복음을 영접하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된 것은 유대인 거짓 선지자였다(6절). 이 유대인 거짓 선지자는 사단의 직접 적인 사주를 받은 사단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거니와 하나님의 자녀인 사도 바울은 이 사단의 자식을 소경되게 하였고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현존적 임재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의 이적이 복음 전파에 가장 충실하게 기여했던 한 결과로 총독 서기오 바 울이 복음을 영접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2) 바울의 복음 전파의 결과들. 본 항목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들은 본서에서 계 속 반복되는 현상들로서 바울의 선교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수반된 결과들이었다. 즉 이방인들은 복음을 감격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유대인들은 배타적으로 시기하는 상반되 는 반응이 본장에 두드러진다(45,48절).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이방인 구레 네 시몬과 그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했던 유대인들의 대조된 반응과 동일한 연장선상에 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복음 배척과 이방인의 복음 영접이라는 상반 현상이 수차에 걸쳐 반복된 사실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 다는 소명을(15:7) 더욱더 강하게 확신하게 해주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울의 선교에 대한 전모(全貌)는 무리들에게 두 가지 역사 이해를 제공해 준다. 첫째, 선교의 방법과 관련해서 우리는 기독교인의 사회에 대한 접근 방법에 대해 생 각해 볼 수 있다. 예수의 교훈처럼 이기적 자아와 온갖 우상으로 치부된 세상에 대한 성도들의 접근은 오직 말씀과 여기에 근거한 하나님 나라의 증거에 있다. 복음의 능력 은 비록 겨자 씨와 같이 작아서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나는 것 같지만 그 생명력 때문 에 결국은 승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이방인에게 뿌렸던 복음의 씨앗이 성장 하여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기독교가 탄생했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따라서 세상 속 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무기는 복음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둘째, 선교의 결과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遺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시기와 이방인의 수용이라는 공식은 지금도 동일하게 반복되는 현상 으로서, 복음의 수납은 은혜로서, 그리고 복음의 배척은 저주로서 이해될 수 있다. 따 라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아직도 사단의 영향아래 신음하고 있는 약속의 자녀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열심히 전파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1-3절)은 제1차 전도 여행 의 출발을 다룬 내용이며 둘째 단락(4-12절)은 구브로에서의 사역을, 그리고 셋째 단 락(13-52)은 소아시아 지방에서의 선교를 다룬 내용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본장의 내 용을 통해 바울이 이방 선교의 주역으로 활동함을 알 수 있다. 1장 강해에서 언급한 바거니와 복음 사역의 주요 등장 인물을 중심으로 본서를 구분할 때 1-7장은 베드로 가, 8-12장은 베드로와 바울이, 13-28장은 바울이 복음 사역의 주역으로 묘사되고 있 거니와 본장부터 전개되는 마지막 대문단(13-28장)은 이른바 '바울 행전'이라고 불린 다. 또한 본서를 지리 중심으로 구분할 때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이 시작되는 본장부 터는 복음 전도 활동의 무대가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이방 지역으로 확대되는 획기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1.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된 안디옥 교회(13:1-3) 예루살렘 교회 이외에 이방 지역에 최초로 설립한 교회는 안디옥 교회이다. 안디옥 교회는 복음의 무차별성에 소극적이었던 예루살렘 교회와 비교해 볼 때 이방인 선교에 더 적합한 조건들을 지니고 있었다. 요컨대, 유대인들로만 구성된 예루살렘 교회는 아 직도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복음'이라는 복음주의적 신학보다는 율법과 복음의 조화 문제를 두고 갈등하는 저급한 신학을 지니고 있었다. 급기야 그들 중 일부는 복음을 율법의 빛 아래서 해석하는 등 복음의 진수(眞髓)를 충분히 증거하지 못하는 지경에까 지 이르게 되었다. 반면 안디옥 교회는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였던 까닭에 복음의 핵심을 받아들 이는 데 장애물이 될 만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은혜의 복음으로 인해 하나님 께 대한 감사와 열심이 남달랐다. 이러한 이유로 안디옥 교회는 이방 선교를 위해 정 열적으로 헌신하기에 더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이방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될 수 있었던 안디옥 교회의 인적 구성과 운영 방식을 고찰해 보기로 하 자. (1) 인적 구성. 본 단락에서는 안디옥 교회를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실질적인 선지자와 교사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들의 구체적인 역할과 위상에 관해서 자세하게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이들은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는 데 주된 임무를 맡았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 중에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발전 도상에서 영입된 사람들이었다(11:19-30). 특히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부흥 소식을 접한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견된 사람으로 서 안디옥 교회의 설립이 하나님의 직접적 역사임을 친히 목격한 바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안디옥 교회의 계속되는 양적 부흥에 질적 성장을 접목시키고자 다소에서 활 동 중이었던 바울을 초빙하였다(11:25,26). 그 후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실 질적인 지도자로서 안디옥 교회가 후일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되는 데 견인차 역할을 감 당하게 되었다. 한편 스므온과 루기오 그리고 마나엔은 바나바와 바울과는 달리 안디옥 교회의 토착 인물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니면 스데반의 순교 이후 핍박을 피하여 안디옥에 이르 렀던 구브로나 구레네 사람(11:19)일 것이다. 어쨌든 이들은 비유대인들로서 이방인 전도에 적극적 열정을 가질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니게르'라는 시므온은 이름의 어원에 비추어 보건대 흑인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마나엔은 분본왕 헤롯의 젖동생으로서 신분상 고위직에 속했던 사람이었다. 이렇듯 안디옥 교회는 다양 한 신분과 출신으로 구성된 교회였지만,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열심으로 하나의 신앙 공동체가 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성의 공존으로 말미암아 이방인 설교를 진행 하는 데 적합한 교회가 되었다. (2) 운영 방식.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들과 집사라는 제도를 역할에 따라 구분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6:1-6) 안디옥 교회는 아직도 미분화(未分化)된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문에서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와 교사들을 언급한 것은 교회 조직에 대 한 암시라기보다는 일반적인 명칭을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안디옥 교회의 운영 방식과 관련해서 눈여겨 볼 것은 안디옥 교회가 금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안디옥 교회의 운영 방식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거니와 예루살렘 초대 교회와 마찬가지로 안디옥 교회 역시 금식과 기도를 교회 운영의 중요한 방식으로 삼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금식과 기도의 진정한 의미가 그렇듯이 안디옥 교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굴절없이 나타나기 를 원했던 것이다. 이것은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 파송과 관련해서 잘 증명되고 있다. 사람의 생각과 입장에서는 당시 안디옥 교회를 실질적으로 관할했던 담당 목회자인 바 울과 바나바를 낯선 땅에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이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하게 비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사람의 계산과는 달라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인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이 더 유익했다. 아무튼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 은 교회의 모든 일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경륜에 의탁하였고 따라서 교회를 향하신 하 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대로 이방 선교의 대업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기에 이르렀 다. 이상과 같은 사실에서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이 행했던 금식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기 위한 자기 비하(自己卑下)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오늘날 자신의 뜻 을 더욱 확신있게 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자해적(自解的)인 금식과는 천양지차(天壤之 差)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의 인적 구성과 교회의 운영 방식은 안디옥 교회가 이방 선교의 전초 기지로서의 충분한 여건과 신앙적 자질이 겸비되었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따라서 안디옥 교회의 모범적인 실례는 현재 신도를 교회 유지인 방편이나 구색 정도로 여기는 교회에 경종이 된다고 하겠다.
* 초대 교회의 선교사(宣敎史). 처음에 사도들은 전도의 지상 명령의 범위(마 28:19;막 16:15)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였다. 때문에 회심한 유대인, 즉 유대인 개종자 들로 구성된 유대인 교회를 세우려고 작정하였다. 그러나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복음의 보편적인 부름을 깨닫고는 이방인들이 함께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게 되었고 순 교와 헌신으로 말씀을 전파하게 되었다. 다음 삼단계 도표는 (1) 유대(조직기)와 (2) 사마리아(전환기)와 (3) 땅끝(확장기) 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 대명(The Great Commission)이 어떻게 그 짧은 시기 안에 갖은 박해와 불신을 이기고, 또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아무 내세울 것이 없는 사 람들을 통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참고적으로 아래의 도표는 예수의 승천부터(A.D.30)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하기까지 (A.D.67)의 초대 교회 선교사를 개관하였으며, 도표에 명기된 연대는 절대적으로 정확 한 것은 아니다. 성경의 역사 고증에 있어서 정확성을 기하기로 정평있는 독일 개혁 교회의 교회사가(敎會史家)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의 말처럼 성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성경의 절대적 연대기보다는 상대적인 관련성에서 만족을 얻어야 할 것이다.
+---------------+------+--------+----------------------------------------------+ | 삼단계 기간 | 연대 |사도행전| 중 요 한 사 건 | +---------------+------+--------+----------------------------------------------+ | |A.D.30| 1:4-12,|* 그리스도 승천 이후 10일간 기도하면서 맛디아 | | 1. 조직기 | | 15-26| 를 유다 대신에 사도로 세우다. | |교회의 구성원을| +--------+----------------------------------------------+ |유대인에 국한시| | 2:1-13 |* 오순절 성령이 믿는 자들 위에 강림하여 봉사할| |키고 이방인은 | | 2:14-36|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함. 베드로의 설교로 삼| |제외함 | | | 천 명이 회개하다. | | | +--------+----------------------------------------------+ | | | 3:1-4:1|* 첫 박해, 앉은뱅이를 고치고, 담대히 설교한 베| | | | 4:23-33| 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잡힌 후에 놓임을 받고 | | | | | 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큰 능력 | | | | | 이 나타남. | | | +--------+----------------------------------------------+ | 예루살렘이 | 30 | 5:1-11 |* 무서운 심판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위에 떨어져 | | 중심 | | | 즉시 죽음, 이 슬픈 사건은 교회가 급격히 성장| | | | | 하고 이적적인 능력이 충만히 나타날 때에 일어| | (1-7장) | | | 났음. | | | | | 핍박이 일어나고 사도들이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 | | | 구출을 받고 박해를 무릅쓰고 열심히 전도 사업| | | | | 을 계속함. | | | +--------+----------------------------------------------+ | | 30 |6:1-7:60|* 일곱 집사를 세움. 그중 기적을 행하고 능력있 | | | | | 는 설교를 했던 스데반은 첫순교자가 되다. | +---------------+------+--------+----------------------------------------------+ | | | 8:1 |* 첫번째 복음 전도 운동. 다소 사람 사울의 핍박| | 2. 전환기 | | | 으로 전역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 | | | | | 밖에서 복음을 전파함. | | | | 8:4-17 | 빌립, 베드로, 요한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 | |복음을 이방인들| | | 하여 성령이 임하심. 이방 전도의 전조가 됨. | |에게 전해야 할 | | 8:25-40| 부흥의 물결이 전지역을 뒤엎었고 빌립은 가사 | |교회의 임무를 | | | 로부터 가이사랴에 이르기까지 해안 도시들에서| |점차적으로 인식| | | 전도함. | |함 | +--------+----------------------------------------------+ | | 34 | 9:1-22 |* 다소 사람 사울의 회심. 다메섹으로 교회를 핍 | | | | | 박하러 가는 중에 회심하여 기독교 역사상 큰 | | 예루살렘이 | | | 영향을 끼침. | | 중심 | | | 그는 먼저 다메섹에서 전도하였고 그후 아라비 | | | | | 아로(갈 1:17) 물러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와 | | (8-12장) | | | 서 유대인들에 의해서 추방될 때까지 거기서 일| | | | | 함 | | | | 9:26-30| 그후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교회를 돕고자 하| | | | | 였으나 그에 대한 증오심이 커서 할 수 없이 자| | | | | 기의 옛집이 있는 다소로 돌아옴. | | | | 9:31 | 그가 떠난 후 교회가 평안한 기간을 맞이함. | | | +--------+----------------------------------------------+ | | | 9:32-42|* 베드로의 환상. 사도가 전도 여행을 하는 중 룻| | | | 10:9-17| 다에 와서 애니아를 고치고 욥바에서 다비다를 | | | 35 | | 살림. 여기서 베드로는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 | | | | 의 집에서 이방인들에게 설교함. | | | | | 성령이 이방인 위에 임하여 베드로의 전도를 증| | | | | 명함. | | | +--------+----------------------------------------------+ | | |11:19-21|* 이방 전도의 여명. 핍박으로 인해서 예루살렘 | | | | | 밖으로 나간 그리스도인들의 전도 사업이 구브 | | | | | 로, 페니키아, 수리아의 안디옥에까지 미침. | | | | 11:22 |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함. 바| | | | | 나바는 여기서 좋은 일터를 찾았고 다소에 있는| | | | | 사울을 불러 일년간 함께 일함. 나중에 이방 전| | | 41 | | 도의 중심지가 된 튼튼한 교회가 세워짐. | | | +--------+----------------------------------------------+ | | | 12장 |* 두번째 박해. 이즈음 예루살렘 교회는 헤롯 아 | | | | | 그립바에 의하여 큰 핍박이 일어났는데 그가 요| | | | | 한의 형제 야고보를 처형하였다. | | | | | 베드로 역시 체포되어 감금되었으나 천사의 구 | | | | | 출을 받음. | +---------------+------+--------+----------------------------------------------+ | |47-49 | 13장 |*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행 13:1-14:28 | | 3. 확장기 | | 13:1-3 | 성령의 지시로 안디옥 교회는 사울(후에는 바울| | | | | 로 개명함)과 바나바를 이방 전도자로 세워서 | |이방 전도 사업 | | | 파송함. 요한 마가가 동행하다. | |의 확장 및 성장| | 13:4-13| 그들은 먼저 구브로 섬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그| | | | | 다음 소아시아 버가로 갔는데 요한 마가는 중도| | | | | 에서 떠나다. | | | |13:14-52|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전도 활 | | | | | 동을 전개하고 거기서 남쪽으로 이고니온과 루 | | | | | 스드라로 갔다. | | | |14:1-19 | 여기서 바울은 돌에 맞았고 일행은 더베로 향함| | | | 20-26| 더베에서 다시 돌아와서 버가와 앗달리아에 이 | |교회 지도자의 | | | 름. 여기서 처음 출발지 수리아 안디옥으로 향 | |안목이 넓어짐 | | | 하여 배를 타고 떠남. | | | | | 이들의 여정은 약 2,400km 가량되고 2년 정도 | | | | | 걸렸음. | | +------+--------+----------------------------------------------+ | |50-52 | |*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행 15:36-18:22 | | | | 15:40 | 안디옥에서 실리와 함께 출발하여 1차 전도 여 | | | | | 행 때에 세운 소아시아 교회들을 돌아보다. | |유대인들의 의식| | 16:6 | 새로이 갈라디아와 브루기아까지 가고 서쪽으로| |과 예식을 행하 | | | 드로아로 내려감. | |지 않고도 이방 | | 16:9-12| 전도단은 환상으로 지시를 받아 유럽으로 건너 | |인들이 동등한 | | | 가서 빌립보에 이름. | |권리를 갖는 것 | | 16:26 | 매를 맞고 투옥되었으나 기적으로 지진이 일어 | |이 허락됨 | | | 나 구출됨. 떠나기 전에 여기서 교회를 세움. | | | | 17:1-4 |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여 교회를 세움. | | | |17:10,11| 베뢰아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에 열심인 것을 발| | | |17:22,23| 견함. 그러나 아덴 사람들은 복음의 씨앗이 자 | | | | | 랄 좋은 땅이 아니었으므로 고린도로 향함. | | | |18:1-18 | 여기서 큰 반대 세력에 부딪쳤으나 환상으로 격| | | | | 려를 받고 남아서 든든한 교회를 세움. | | | |18:19,21| 안디옥으로 출발하여 가는 길에 에베소에 잠시 | | | | | 머무름. 이들의 여행은 약 삼년 반 정도 걸렸고| | | | | 약 5,600km의 먼 거리였음. | | | +--------+----------------------------------------------+ |안디옥이 이방 | | |*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행 18:23-21:16 | |전도의 중심지가|53-58 | 18:23 | 안디옥 교회를 떠나서 바울은 갈라디아와 보르 | |됨 | | | 기아 교회들을 찾아 보고 에베소로 감. | | | |18:24-28| 바울이 가기 전에 아볼로가 전도의 기초를 쌓음| | (13-28장) | | | 설교와 이적을 행한 능력은 그들에게 큰 감동을| | | | | 주었다. | | | | 19:1-20| 마술을 행하여 백성을 속이는 자들에게 큰 혼란| | | | | 을 야기함. | | | |29:23-41| 큰 일이 성취되었고 교회를 설립되었으나 소동 | | | | | 때문에 바울은 떠나서 마게도냐와 헬라로 감. | | | |20:1-12 | 고란도에 3개월 머무르고 그 다음 마게도냐를 | | | | | 다시 방문한 뒤에 드로아로 옴. 밤에 설교하는 | | | | | 중 유두고가 떨어져 죽었으나 다시 살림. | | | |20:17-38| 예루살렘으로 오는 도중 밀레도에 머물러 에베 | | | | | 소 장로들을 불러 고별의 권면을 함. | | | |21:28-32| 예루살렘에 도착하여서 자신이 증오의 대상이 | | | | | 되어 있음과 음모가 있음을깨달음. | | | |21:33-40| 무고로 체포되었으나 로마 군병들이 폭도들에게| | | | | 구출함. 로마 시민권이 그에게 얼마간의 권리를| | | | | 줌. | | | +--------+----------------------------------------------+ | | |23:31-35|* 로마 여행. 바울은 가이사랴에 호송되었고 2년 | | |59-61 | | 간 죄수의 신분으로 있었음. | | | | 24-28장| 벧릭스와 베스도와 아그립바 앞에 섬. 그러나 | | | | |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므로 로마의 보내어짐. | | | | | 자기에게 오는 모든 자들에게 전도함. | | | 67 | | 이 기간에 자기가 세운 교회들에게 서신을 보냄| | | | | 최후로 로마에서 죽음. | +---------------+------+--------+----------------------------------------------+
2. 구브로에서의 선교(13:4-12) 이제 바야흐로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이 시작된다. 바울과 바나바가 도착한 첫번째 선교지인 구브로는 안디옥의 서남방에 위치한 섬으로 바나바와 출신지였다(4:36). 여 기서 이들의 복음의 능력은 무속(巫俗)과 대결하여 그것은 단숨에 거꾸러뜨렸는데 이 는 이들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향후 험난한 선교 사명을 감당해야 할 바울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우리는 여기서 본 사건의 상 징적 의미와 본 사건에 개입한 복음 사역의 주역이라는 두 가지 사항에 주목해 볼 필 요가 있다. (1) 상징적 의미. 서기오 바울의 공식 직책은 로마 총독이었다. 당시 로마의 총독 (governor)은 특정한 지역을 효과적으로 치리하기 위해서 로마의 황제가 임명하였다. 특히 총독은 로마제국을 대신하여 그 지역을 관할했는데(벧전 2:14), 이들에게는 사형 권과 사법권이 주어졌으므로 그 권한은 절대적이었다고 하겠다. 한편 구브로의 총독인 서기오 바울은 당시 로마의 원로원 의원과 같은 가문 출신으 로서 B.C.58년에 악명 높았던 배교자(背敎者) 루시어스 서기오 카스틸라와도 동일한 가문의 귀족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구브로의 총독 서기오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이기에는 가장 큰 장애가 있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은 복음에 대해 생소함을 말하며 또한 그가 로마의 귀족과 총독이었다는 사실은 복음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했음을 말해준다. 이 같은 상황에 서 구브로 총독 서기오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사실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하나님 의 구속사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 첫째, 그가 바울의 이방 선교를 통한 최초의 공식적인 개종자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있어서 한 특정한 시기에 구속사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유대 민족의 임무가 실질적으로 마감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 사건 이후로 전 개되는 구속사의 실질적인 대상이 이방인이 되므로 이 사건은 복음을 유대교적 범주 속에서 재해석하려는 유대인의 모든 시도를 부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둘째, 이 사건은 오늘날 세대주의자들의 견해를 정면으로 공박하고 있다. 그들은 종 말에 천년 왕국이 건설될 때 유대 나라의 복귀와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피제사가 거행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바,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구속사의 최종적 목적을 망각한 소 치로서, 유대인 역시 구원의 대상임을 거부하는 교만한 성경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2) 사역의 실질적인 주역. 모든 사역의 진정한 주체가 하나님임은 이론(異論)의 여 지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하나님께서 그 사역의 도구로 서 반드시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이다. 본문에서 서기오 바울의 개종 사건의 실질 적인 주역은 사도 바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통해서 1차 선교 여 행의 중요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으니, 그것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하나님께 부름 받았음을 다시 한번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15:7). 그는 자신을 '빚진 자'(롬 1:14)로 표현할 정도로 이방인의 사도로서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였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선교가 자신을 통해서 전개된다는 신앙 아래 필설 로 다할 수 없는 고초와 위험 속에서도 이방 선교의 발길을 그치지 않았다. 이런 사실 들은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미명 아래 자신의 헌신을 기피하는 게으른 성도들에게 적절한 교훈을 주고 있다.
* 바울의 이름 연구. 본서 12장까지 바울이 사울이란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본 장에서부터 비로소 바울이란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는 바울이 본장에서부터 이 방인의 사도로서 공식적 선교 활동을 편 사실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본서나 기타 성경의 기록에는 바울로 고쳐 부르게 된 사실에 대해서 그 직접적 동기나 이유를 말하고 있지 않다. 이에 본 주제 강해를 통하여 바울의 이름에 관련된 문제를 간략하게 고찰해 보기로 하자. (1) 문제 제시. 통설적인 견해에 의하면 '바울'이란 이름은 사울이 개종한 이후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할 때의 사울고, 예수를 전도하는 바울 과의 대조를 통해서 바울이 된 사울의 회심이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은혜를 끼쳐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바울'과 '사울'이란 이름의 연관성에 대한 성경적인 근 거는 어디에 있는가 ? (2) 답변. 본문 9절에 의하면 바울과 사울이라는 이름이 나란히 언급되어 있다. '바 울'이란 이름은 헬라식 이름으로 '작다'라는 뜻을 지닌다. '사울'은 히브리적 이름으 로 '구하였다', '하나님께 청함을 받다'라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 확대 해설이 출발하 고 있는 바, 흔히 바울의 히브리식 이름인 '사울'의 의미가 종종 '큰 자'라는 뜻으로 곡해되고 있는 것이다. 즉 예수를 핍박하며 스스로 '큰 자'로 자처했던 '사울'이 예수 를 영접한 후 '작은 자'로 자처했다는 근거 없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 경에서는 사울이 본서 9장의 개심 뒤에도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기록되고 있을 뿐 아 니라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예수를 열심히 전파했다고 전하고 있다 (9:19,22,26,28). 또한 그는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 선교사로 파송받을 때도 '사울'이 라는 이름으로 지명되었다(1절). 이 같은 사실들을 미루어 보건대 '바울'과 '사울'이란 이름은 사울의 회심과는 무관 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이 두 이름간의 연관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이것은 선교의 기능적 용도에 따른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즉 히브리식 이 름인 '사울'은 주로 이방 선교 여행을 하기 전 사용된 반면 이방 선교 여행이 시작된 이후부터 '바울'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13절 이후 '사울'이라는 이 름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라는 이름이 이방인들에게 더 친 숙한 이름으로서, 바울의 선교 기능적인 측면에서 고려된 이름임을 알 수가 있다.
3. 소아시아에서의 선교(13:13-52) 본 단락은 구브로 성을 떠나 소아시아 지방에서 있었던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현황 을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바울의 공개적인 설교(16-47절)와 그 반응(48-52절) 이 양 축(軸)을 이룬다. 바울의 설교는 본장 이외에도 여러 번 언급 되어 있거니와(14:14-18;17:22-31;20:17-35;21:40-22:21;22:30-23:9;24:10-21,25;25: 10,11;26:1-29;27:21-26;28:17-20,25-28) 베드로나 스데반의 설교와 유사하다. 즉 이 스라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약술한 다음 구약성경을 인용해 가면서 기독론을 전개시키는 것이 공통된 설교의 체계인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설교는 베드로나 스데 반에 비해 교리적으로 진일보한 흔적이 역력하다. 즉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이신 칭의(以信稱義) 의 원리(39절)는 바울의 설교에서만 볼 수 있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 내용이다(롬 1:17). 참고적으로 16-41절에 수록된 바울의 설교를, 탁월한 역사 의식으로 유대인들 의 완악한 불신앙을 견책한 스데반의 설교(7:1-53)와 비교하면 다음 도표와 같다.
+------------+--------------------------------+--------------------------------+ | | 바 울 | 스 데 반 | +------------+--------------------------------+--------------------------------+ | 성 경 | 16-41절 | 7:1-53 | +------------+--------------------------------+--------------------------------+ | 설교장소 | 비시디아 안디옥 | 예루살렘 | +------------+--------------------------------+--------------------------------+ | 대 상 | 흩어진 유대인(Diaspora)과 이방 | 유대인 | | | 인(16절) | | +------------+--------------------------------+--------------------------------+ |설교에 포함 | 출애굽-그리스도의 부활(B.C.1446| 아브라함의 소명-그리스도의 죽음| |된 역사 기간| -A.D.30) | (B.C.2091-A.D.30) | +------------+--------------------------------+--------------------------------+ | 내 용 |출애굽->광야 생활->가나안 점령->|아브라함의 소명->이삭과 야곱->애| | |사사 시대->왕정 시대->다윗을 택 |굽으로 팔린 요셉->하나님이 요셉 | | 전 개 |함(언약을 주심)->세례 요한->예수|을 높이심->흉년으로 야곱의 가족 | | |의 출생->예수의 죽음과 부활->그 |이 애굽으로 내려감->모세의 출생 | | 과 정 |의 부활을 믿음으로 인한 구원 |과 성장->모세의 소명->출애굽->다| | | |윗과 솔모론->의인을 죽임 | +------------+--------------------------------+--------------------------------+ | 설교의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그분의 사|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조상들의 | | 중심주제 |랑과 죄인의 구원 |패역한 모습을 통하여 현재 유대인| | | |들의 죄를 지적 | +------------+--------------------------------+--------------------------------+ | 중 심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 | | 구 절 |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39절)|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53절) | +------------+--------------------------------+--------------------------------+ | |설교를 다시 청하고 바울과 바나바|마음이 찔렸으나 회개하기 보다는 | | 청중의 |를 많이 좇았다. |오히려 그를 돌로 쳐죽이고 더 심 | | 반 응 | |하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다. | +------------+--------------------------------+--------------------------------+
위의 도표에서 눈여겨 볼 것은 청중의 반응 부분이다. 바울과 스데반의 설교를 대표 적으로 거부했던 자들은 유대인들이었다. 특히 이들이 스데반을 죽이고, 사도 바울을 핍박했던 중요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 때문이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수욕과 죽음 및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와 그 사역의 영향이 이방인의 구원에까지 미 쳤다는 바울의 설교는 유대인의 교만한 신앙에 거슬리는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 바울의 선교 원리. 바울이 선교 여행을 하면서 처음 말씀을 전파했던 것은 회당이 었다(5,14절). 여기서 하나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바, 바울은 스스로 이방인의 사 도로 자처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바울을 회심시켰다고까지 하 였는데(9:15) 그는 왜 처음부터 이방인의 거주지로 가지 않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을 찾아갔겠는가 ? 이 질문은 사도 바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 다.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하면서 바울의 신학까지 곡 해하고 있다. 즉 바울은 애초부터 그의 소명 가운데 이방인에 대한 선교의 열정은 없었다고 주장 한다. 그러던 중 복음을 전파할 때 나타난 유대인의 배척과 위협을 절실하게 느낀 나 머지 자신의 선교 방향을 이방인에게로 향했다는 것이다. 이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또한 바울 신학의 핵심인 '이신 칭의'도 초기 바울 신학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 교 리는 이방인 선교를 하면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기에 고안해 낸 신학 사상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들은 바울의 중요한 선교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소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회당을 주로 이용했던 까닭을 선 교 전략적 차원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1) 실질적인 차원. 당시 유대 땅 이외에 존재했던 회당은 주로 흩어진 유대인 즉 디아스포라들을 위해서 존재했다. 이곳을 통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신앙적 결속 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 회당들이 아빙인 세계에 있었던 관계로 약간의 이방인들도 이 곳에 출입을 했으며 이들은 성경에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언급되었다(43절;10:2). 이 들 이방인들은 자신의 거주지에 있는 유대인들과 회당을 통해서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갖고 있었던 자들이다. 따라서 회당에서의 사도 바울의 설교는 이들 이 방인들에게는 복음이 되었던 것이다. 이를 생각해 보건대 사도 바울이 회당을 이용할 때에는 이들 경건한 이방인들까지 염두에 두었다고 할 수 있다. (2) 신학적인 차원. 로마서에 의하면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관계에 대하여 자세 하게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 로마서 10장 11절에 보면 바울의 회당을 이용했 던 신학적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즉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다는 사실 은 부동의 사실이다(15:7;갈 2: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유대인들이 죽음을 이루는 회당을 이용했던 것은 그의 선교 전략적 용어를 빌리자면 유대인들의 시기를(롬 11:11,13;행 13:45) 촉발시키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하면 회당에서의 복음 전파 이후 이방인들의 열렬한 복음 수용은 유대인들의 엄청난 시기를 야기시켰는데(15:45) 바울 은 유대인의 소수라도 구원할 요량으로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롬 11:13). 사도 바울은 이방의 사도로 자처했지만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라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원하였던 것이다(롬 9:1-3;10:1). 고로 상기한 두 가지 측면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바울은 애 초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던 사람으로서, 그의 회당 출입은 결코 그의 이방 사 도직의 위임을 희석시키는 요소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오히려 그가 이방 인 선교에 매우 용의 주도한 계획을 가지고 임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고 하겠 다.
앞장에서 예루살렘 공의회가 이방 기독교의 승리로 종결되었거니와 본장에서는 기독 교가 이방 세계로 뻗어 나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제1차 전도 여행이 성공리에 끝 나고 이제부터는 약3년간에 걸친 제2차 전도 여행으로 위대한 이방 선교사 바울의 활 동이 전개되고 있는 바, 복음은 소아시아를 떠나 지중해를 건너 유럽까지 진출하게 되 었다. 본장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주의깊게 고찰되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문맥상의 유의점. 앞장 후반부(15:36)에서부터 시작하여 18장까지 계속되는 바 울의 제2차 전도 여행은 그의 이방 선교 사역 중에서 가장 기 여정(旅程)으로서 기독 교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뜻있는 여행이었다. 예루살렘 회의의 결 과로 지금까지 문제시되었던 교회 내부의 교리적 갈등이 일소(一掃)되었으니 이로써 복음의 이방 진출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복음이 유대 땅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처럼(8:1) 예루살렘 공의회라는 어려운 고비를 넘김으로써 복음은 소아시아를 넘어서 유럽 땅으로 진출하 게 되었다. 참으로 유대주의와의 대결에서의 기독교 승리는 기독교로 하여금 복음의 내용을 확고히 정비(整備)하게 함으로써 민족주의적(民族主義的)를 극복하고 세계 종 교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을 제공해 준 것이다. 이제 온 인류를 구원하는 능력인 복음은 (롬 1:16) 소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그리고 마침내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 제국에 까지 확산되어 나갈 것이었다. (2) 하나님의 선교 계획. 본서 전체를 통하여 익히 알 수 있는 사실은 복음 사역이 인간의 계획에 따라 진행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 이다. 즉 선교의 주체(主體)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의 유대인과 유대교의 귀의(歸依)한 헬라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 으나 하나님의 강권적인 지시에 의해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바 있었다(10 장). 본장에 수록된 마게도냐 환상 기사 역시 선교 사역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간섭과 계획을 잘 보여준다. 바울은 소아시아의 더베, 루수드라, 이고니온 등지의 여러 지역을 방문한 후 로마의 대로(大路)를 따라 중요한 해안 도시였던 에베소로 가려고 했으나 성령의 제지(制止) 를 받자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 비두니아 지역으로 북상(北上)하려 하였다. 그러나 예 수의 영(靈)이 그것도 허락지 않으시고 마게도냐로 가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의 선교 계획은 바울이 아시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유럽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 이었다. 바울은 그의 서신을 통하여 복음 전파의 행로(行路)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육적 뜻을 따름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것임을 고 백하고 있다(고후 11:16-22). (2) 믿음의 증인들. 본서에는 복음 사역의 결실(結實)로서 믿음의 증인들이 등장한 다. 스데반과 빌립을 비롯한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가(6:5) 있었으며, 베드로에 의해 회심(回心)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된 백부장 고넬료(10:44). 바울의 이적을 보고 그리스도를 믿게 된 총독 서기오 바울(13:12), 그리고 디모데와 루디아가 본장에 등장 한다. 이중에서 디모데는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시 복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추측되는 바, 후에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증인으로서 그 사명을 장 감당하였던 자이다. 루디아도 바 울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인 자로서 그녀는 빌립보 사역의 첫 열매였으며 바울의 빌립 보 사역을 전심전력(專心專力)으로 도와 주었다(빌 4:3). 또한 본장에는 바울의 실라의 투옥(投獄) 기사가 등장하거니와 간수들과 그의 가족 이 구원받는 사건이 수록되어 있다. 간수들 역시 믿음의 증인들로서 바울의 이방 사역 이 본격화되면서 맺은 전도의 결실들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이들은 모두 초대 교회 의 믿음의 산 증인들이었으니 이들로 인하여 복음이 널리 확장되어 나갈 수 있었다. 저자 누가는 본장에서 이방 사역에 대한 중간 보고(報告)를 하고 있는 바, 여러 교회 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 하였다고 증언한 것은 이방 선교의 사역이 풍 성한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5절). 한편 본장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에는 바울이 그의 여행에 디모데 를 합류(合流)시키고 환상에 의해 마게도냐로 떠나는 장면이 나오며(1-10절), 둘째 단 락은 빌립보에서의 사역 중 루디아의 회심 이야기와 귀신들린 여종을 고친 이야기가 나오고(11-18절), 마지막 단락은 바울 일행의 투옥 기사와 이적적(異蹟的) 구출 이야 기가 수록되어 있다(19-40절). 참고적으로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경로를 통해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 바울이 디모데를 택하여 마게도냐로 떠남(16:1-10) 본문은 소아시아의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행한 바울의 사역에 관하여 간략하게 묘사 되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장차 복음 사역의 큰몫을 담당할 성실한 동역자 디모데를 선택하여 일행에 합류시켰다. 또한 본문에는 복음 전파 행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마 게도냐 환상이 기록되어 있는 바, 바울의 일행은 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복음의 돛을 내리게 되었다. 본문에 부각되는 다음 사항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바울의 선교 방침. 본문에는 바울이 신실한 제자 디모데를 택하여 그의 이방 사 역에 참여시키며 또한 그에게 할례를 행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거니와 여기에서 바울 의 두 가지 선교 방침을 찾아볼 수 있다. (가) 바울은 이방 사역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여러 동역자들과 협력(協力)하였으 며 후계자를 양성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선배 바나바와 결별한 후 유능한 일꾼인 실라 를 택하였으며, 제2차 선교 여행시 드로아에서 의사 누가를 택하여 그의 사역에 동참 시켰으니(10절)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主治醫)로서의 역할을 하며 끝까지 바울의 사역 을 도왔고, 누가복음과 본서를 기록하는 역사적 업적을 남겼다. 본문에는 바울이 성숙 한 신앙을 소유하였던 디모데를 택하여 동역자로 삼는 장면이 나오는 바, 바울에 의해 발탁되어 훈련을 받은 디모데는 후에 에베소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서 역량(力量)을 발 휘하게 되었다. (나) 적절하게 상황을 이용하였다는 점이다.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전도 여행을 떠나기 전 그에게 할례를 행하였는데, 이는 유대인들에게 거치는 장애 요소를 제거하 고 그들에게 원활하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방인의 할례와 율법 강요는 반대했으나 유대인에게는 금하지 않았으니 각자 그들이 물려받은 문화 양식을 유지하 면서 더욱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신은 유대 인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유대인같이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것이 바울의 두번째 선교 방침이었다. (2) 성령의 인도하심. 본문에는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으나 성령께 서 그것을 막고 유럽 쪽으로 인도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복음으로 아시아 를 정복하려는 욕망(慾望)이 간절하였는데 예수의 영(靈)은 그것을 허락지 아니하였으 니 유럽 전도가 더 시급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복음은 아시아에 머물지 아니하고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본서에 나타난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인간의 뜻이나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 지하여야 할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처음으로 성령을 체험한 이후부터 성자(聖子) 시대가 끝나고 성령(聖靈) 시대로 접어들었거니와 초대 교회는 오로지 성령의 인도하 심에 의하여 이룩되고 발전되어 온 것이다. 베드로가 삼천 명을 회개시킨 놀라운 사건(2:37-41)이나 그가 베푼 많은 표적과 기 사들(3:5;5:12-16)도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 여 교회가 흩어진 것도 복음을 더욱 확장시키려는 성령의 강권적 역사하심에 기인한다 (8:4). 또한 핍박자 사울을 회심시켜 이방인을 위한 복음 증거자로 세우신 것도 성령 의 역사였고, 바울의 선교 사역에 함께 하사 능력을 베푸시고 방향을 제시하시며 인도 하신 분도 성령이었다. 이제 바울을 유럽으로 인도하신 성령께서는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로 인도하셔서 복음을 증거케 하실 것이었다(23:11). (3) 복음 전파자의 소명. 복음 전파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치 않았더라면 오 늘의 교회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본문에는 자신의 소명을 확인하고 하나 님의 뜻에 순종하는 바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호소 (呼訴)하는 환상(幻想)을 보고 지체치 아니하고 순종하였으니 복음 전파자로서의 불타 는 사명감을 지녔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신 것은 저들을 구원하기 위함이 라는 확실한 소명 의식이 바울로 하여금 환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순교하기까지 진리 를 증거케 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주의 성령께서 이끄시는 곳이며 어디든지 순종하며 나아갔고 이로써 구원의 세계 전역(全域)에 거하는 이방 민족에게 임하게 되었거니와 복음 전파자의 태도는 확고한 소명 의식과 더불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유아 세례의 성경적 근거. 본문에는 루디아 집안 사람들과 간수(看守)의 모든 식 구들이 바울에게 세례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당시 유아(乳兒)들도 세 례를 받았을 가능성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이에 본 주제 강해에서는 현재 복음주의 교 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유아 세례의 성경적 근거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1) 구약성경의 근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언약의 표징으로 서 아브라함으로부터 대대로 집안의 남자들에 대해서는 생후 8일만에 할례를 시행할 것을 명하셨다(창 17:9-14).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세례를 할례와 결부시키며 복음 아래 서는 세례가 할례를 대신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골 2:12).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징표로서 어린 아이들이 생후 8일만에 할례를 받은 사실은 유아 세례에 대한 구약성경의 근거라 할 수 있겠다. 구약에서는 부모에게 내린 약속이 그들의 할례받은 자녀에게까지 해당되었던 바, 오순절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언 약 백성의 징표로서 세례와 이에 따른 성령의 인치심에 대한 약속을 언급하면서 그 자 녀에게까지 이 약속이 적용됨을 밝히고 있다(2:38,39). (2) 예수의 가르침. 예수께서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록은 복음서에 나 타나 있지 않으나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셨으며 나아가 어 린 아이들을 천국에 들어갈 사람의 모형(模型)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신 바 있다(막 10:14-16). (3) 사도들이 행한 유아 세례. 본서에는 베드로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유 아 세례를 행했다는 흔적이 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안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 었으며(10:44-48), 바울도 루디아와 빌립보 간수의 모든 식구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14,15,32-34절). 온 식구들 가운데 어린 아이가 배제(排除)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어 른들과 더불어 어린 아이들도 함께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남편이나 아내의 자녀들을 긴밀하게 결 합시켜 거룩하다고 부르고 있으며, 어린 아이들도 부모의 믿음을 통해 거룩한 상태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고전 7:14). 이상의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유아 세례는 충분한 성격적 근 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빌립보에서의 사역(16:11-18) 바울은 실라, 디모데, 누가 등으로 새롭게 전도단을 조직하여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마게도냐를 향하여 떠났다. 본문에는 바울 일행이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關門)인 빌립 보에 도착하여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빌 립보에서의 사역은 그 성과가 뛰어난 든든한 교회의 기반을 이룩하였다(빌 1:3-5). 다 음 세 가지 항목을 통하여 본문을 숙고해 보기로 하자. (1)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사도들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선포되었 으나 모두가 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나타난다(17:32). 본문에는 빌립보 사역의 첫 열매로서 루디아의 회 심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루디아는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공경하는 여인으로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그 녀는 유럽 지역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최초의 사람이었으며 또한 본서에 등장하는 여자 중에 최초로 그리스도인이 된 자이다. 이후에 잇따른 여자들의 개종이 있게 된다 (17:4). 예수 시대에도 신실한 여인들이 끝까지 주를 따랐던 것처럼 루디아라는 여인 역시 복음을 받아들이고 바울과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던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녀 는 상인(商人)이었으며 독신(獨身)이나 미망인(未亡人)으로 추측되는 바, 하나님께서 는 비천한 여인을 들어 바울의 훌륭한 동역자로 귀하게 사용하신 것이다. (2) 귀신 들린 여종과의 만남. 본문은 주로 바울과 여인들과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 다. 루디아의 개종(改宗) 이후 바울은 귀신들린 한 여종을 만나게 되었으니 자신의 점 (占)치는 능력으로 인하여 주인에게 악용(惡用)당하고 있던 자였다. 그녀는 바울을 보 자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임을 알아보고 큰 소리로 외 쳤다. 이 장면은 귀신들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소리지른 일들을 연상케 한다(막 1:24;3:11;5:7;눅 4:34,41;8:28). 바울은 그녀의 속에 사단이 역사하고 있음을 곧 알아차렸고 그녀가 무고(無故)하게 고통을 당하며 악인(惡人)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동정을 느꼈음이 분 명하다. 전도자의 눈은 비천한 여인의 눈과 또 한 번 마주치게 되었다. 주위에 모인 수많은 무리들의 시선은 바울과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3)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이것은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자들에게 주신 능력들 가운 데 하나였다(막 16:17).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 기간 동안 많은 귀신들을 쫓아냄으로 써 예수 자신으로 인하여 사단의 권세가 정복당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음을 암시 하셨다. 또한 예수의 12제자들과 70인의 전도대는 예수께로부터 귀신을 꽃아내는 능력 과 권세를 부여받았다(마 10:1;막 6:7;16:17;눅 9:1;10:17). 축사(逐邪)의 표적이야말 로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이심을 나타내 주는 증거였다. 본서에서도 예수의 사도들 역시 표적을 행하는 가운데 많은 귀신들을 쫓아내었을 것 이나 다 수록되지 않고 오직 본문의 사건만이 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예수의 후계자(後繼者)로서 예수께서 행하신 축사의 이적을 이방 여인에게 행 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이방 민족에 게도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단의 권세로부터 자유케 된 이 비천한 이방 여인은 곧 그리스도의 증인(證人)이 되었을 것이며 루디아와 함께 빌립보 교회의 초대 교인이 되었을 것이다.
* 신약 시대의 여행과 통신. 본서에는 여행에 관한 기록이 많이 등장한다. 예수께서 전도 여행으로 3년간의 공생애를 보내셨듯이 바울도 전도 여행을 통하여 일생을 복음 전파에 전력하였다. 이에 본 주제 강해에서는 신약 시대의 여행이 어떻게 이루어졌으 며 어떠한 통신 수단이 존재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여행. 여행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여행 거리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가) 여행의 목적. 신약 시대에는 여행이 보편화된 것이 아니었으며 소수의 사람 들만이 멀 곳으로 여행을 했을 뿐이다. 여행의 목적은 주로 사업을 위해,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 친지들을 방문하기 위한 것이었고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종교적 절기를 지 키기 위하여 순례여행을 하였던 것이다. 또한 운동 경기나 학문, 의료 시설의 중심 도 시들도 여행자들을 끌어들였다. (나) 여행의 방법. 여행은 주로 육로(陸路)와 수로(水路)를 통하여 행해졌다. (a) 육로. 로마의 도로는 매우 복잡한 양식으로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훌륭한 도로와 다리의 건설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안전하게 여행을 하게 해주었다. 여리고에 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눅 10:30-37)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유명한 도로 가운데 하나 였다. 육로로 여행할 때에는 수레나 마차, 병거 그리고 짐을 싣는 동물들, 즉 낙타나 당나귀, 코끼리, 말 등의 수단을 이용하였다. (b) 수로. 도로 이외에 많은 사람들은 수로를 이용하였으니 수세기에 걸쳐 선원 들은 강풍과 싸우며 지중해를 항해하였다. 로마로 가는 길에 지중해를 지나간 바울의 여행은 폭풍우 속을 항해한 극적인 사건이었으며(27장) 바울의 이 경험은 당시 여행자 들의 상황을 잘 말해준다. (다) 시간과 거리. 여행에 소요되는 시간은 여행의 방법, 날씨, 여행자의 신체 조 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도보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평균 24-32km 정도 걸을 수 있었다. 예수께서 다니신 최장 거리는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에서 갈릴리 지경까지 의 길로서 약 130km 정도이다. 초대 교회의 복음 전도자들은 여행이 어려웠음에도 장 거리 여행을 통하여 곳곳에서 복음을 전했다. 특히 바울은 육로와 수로를 통하여 소아 시아 전역과 마게도냐 지방을 수차례 방문하였던 바 지중해 주변을 왕래한 그의 여행 은 복음 전도에 대한 그의 정열이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 겠다. (2) 통신. 로마 제국은 무역을 활성화시키고 광범위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하여 몇 가지 형태의 통신 제도를 설치하였다. 최초의 우편 제도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 (B.C.522-486)에 의해 만들어졌다. 정부 우편 제도는 공적인 일을 위해 사용되었으며 일반 시민의 우편물은 거의 취급하지 않았다. 개인 서신들은 보통 여행자들에 의해 전 달되었다. 교회와 신자들에게 보내진 초기의 편지들은 육로와 수로를 이용하는 전도자들에게 의핸 전달되었던 것이다. 로마인들은 속달 우편과 유사한 파발 제도를 갖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많은 정거장을 만들었고 이 정거장들은 여관으로도 사용되었다.
3 바울과 실라의 투옥(16:19-40) 앞문단에서 바울은 귀신들린 여종을 치유하였거니와 본문에는 그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여 옥에 갇히게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바울을 박해 한 자들은 동족(同族)인 유대인이었으나 본문의 핍박은 최초로 이방인들이 행한 것이 었다. 다음 항목들을 통하여 본문을 주의깊게 살펴보기로 하자. (1) 고난받는 사람들. 본서에는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셨듯이 예수의 제자들도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숱한 고난을 받았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그의 제자들에게 환난을 예고하셨고(요 16:33) 사도 바울도 고난을 전제(前提)로 하고 그의 이방 사역을 전개(展開)하였다(14:22). 시작부터 극심 한 반대를 받아오던 초대 교회는 스데반과 야고보를 비롯한 순교자들을 냈으며, 그밖 의 사도들은 안으로는 유대인과 밖으로는 이방인의 이중적 핍박을 받으며 복음을 증거 하였다. 감옥에 갇혀 매를 맞은 것은 비단 바울과 실라뿐 아니라 베드로도 당하였던 일로서(12:5-19)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 당시의 고통스러웠던 상황을 회고하고 있다 (고후 11:23-27). 본장에서는 본격화된 이방 전도가 이방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순탄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 고난과 더불어 어렵게 시작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이방 전도자 바울에게는 종교적으로는 유대인들의 핍박과 정치적으로는 이방 민족의 핍박이라는 이 중적인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 찬미하는 사람들. 예수께서는 의(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셨거니와(마 5:10)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이 받는 고난이 결코 무익(無 益)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받은 종으로서 의 고난이라는 특권(特權)을 누리는 자들이었으니 비록 육적으로는 매를 맞고 투옥된 처지에 있었으나 영적으로는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었다(마 5:11,12). 바울은 지금 당하는 환난이 장차 주어질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에 비할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하며 (고후 4:17;엡 3:1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게 된 사실에 감사하여 기도 하며 기쁨으로 찬미의 제사(祭祀)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본문은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인정하며 순복(順服)하 는 자들에게 기적적 능력이 임함을 보여준다. 바울과 실라가 옥중(獄中)에서 찬미(讚 美)하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며 모든 죄수들의 쇠사 슬이 다 벗겨졌으니 성령께서는 믿음의 분량대로 역사하셨던 것이다. (3) 구원받은 사람들. 당시 로마법에는 간수가 죄수를 놓칠 경우 그 죄수의 형량 만 큼의 형을 간수가 대신 받도록 되어 있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퇴역 군인 출신이 었으므로 그가 지키던 바울 일행의 신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자 엄격한 책임감 때문에 자결(自決)하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바울과 실라는 구출 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간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였으니 바울은 위기의 순간에 그 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바울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며 그 자신뿐 아 니라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체험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던 바, 바울과 실라의 환경을 초월한 믿음(롬 8:38,39;빌 4:4;히 3:6)이 빌립보의 간수와 그의 가정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본장에는 바울 일행이 유럽에서의 첫 사역지였던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루디아와 그의 가족, 귀신들린 여종, 간수와 그의 가족들로 미약하게 시작된 빌립보 교회는 점점 굳건하여 져서 훗날 유럽 교회의 발상지(發祥地)가 되었으며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빌립보 교회 의 여러 훌륭한 모습들을 격려하고 있다(빌 1:5,27-30;2:17,18;4:3,14,15).
* 명예로운 석방(釋放). 본문에서 간수(看守)를 회심시킨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 권을 내세워 떳떳이 감옥문을 나서게 되었다. 그 상황과 저자의 기록 의도 등을 본 주 제 강해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빌립보에서의 사역은 루디아의 개종, 귀신들린 여종의 치유 등으로 매우 박진력(迫 眞力)있게 시작되었으나 바울 일행은 몰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최악의 상태에 직면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놀라운 이적적 사건을 체험하고 바로다음 날 석방 명령을 받았다. 로마 당국은 공적인 타협과 하룻밤의 투옥으로 그들의 소요죄 (騷擾罪)를 용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로마 당국의 석방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조용히 빌립보를 떠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그렇게 매듭지어 지지 않았다. 바울은 사건이 그렇게 간단히 처리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지 닌 로마 시민의 권리를 내세웠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실라도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 다. 그들은 상관들이 친히 와서 로마 시민에게 합당한 예의를 보여주고 그들이 호위 (護衛)하는 가운데 옥에서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당시 로마법은 죄목이 드러나기 전에 로마 시민을 죽이거나 채찍으로 때러거나 고문하거나 감금(監禁)할 수 없었다. 또한 만일 형이 선고되었다면 그 판결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재판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울과 실라를 투옥한 것은 대단한 과오(過誤)였던 것이 다. 로마 당국은 바울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며 자신들의 불법적인 처사에 대해 공적으 로 사과하고 빌립보를 떠나 줄 것을 요청하였다. 바울의 빌립보 사역은 핍박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명예롭게 막을 내린다. 이 장면은 바울이 그의 이방 사역에 있어서 계속적으로 로마 당국의 호의와 배려를 받게 되는 바, 그 첫번째 사례(事例)가 된다 하겠다. 바울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로마의 보호 아래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 장면이 앞으로 많이 등장하겠거니와 거기에는 저자 누가의 변증적이며 선교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본서 후반부에서 수차례 언급 된 것이다.
본장은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열정적으로 일했던 에베소 활동기를 그리고 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하고 돌아오는 길에 에베소를 잠시 들렀으며, 거기 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 바 있다(18:21). 이제 평소부터 염원 했던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3차 전도 여행 중에 이루었거니와, 에베소에서 이루어진 전 도 사역은 바울의 3차 선교에 있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바울은 무려 3년간 (A.D.53-56년경)에 걸쳐 에베소 지방의 목회에 심혈을 기울였던 바, 이는 다른 지역에 서 찾아볼 수 없는 수고와 헌신의 기간이었던 것이다. 구체적 내용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본장 전체에 부각되어 있는 다음 두 가지 사항 에 초점을 모으기로 하자. (1) 우상의 도시 에베소. 에베소는 소아시아 서쪽 카이스터 계곡의 입구에 자리잡은 항구 도시로서, 교통과 무역의 관문(關門)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에베소는 한때 '아 시아의 보고(寶庫)'라 불리울 정도로 번창하였다. 로마 제국이 세계를 제패한 당시 동 양과 서양이 함께 교차하는 소아시아에는 수많은 소도시들이 각기 독특한 문화와 부 (富)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자기 지역에서 통용되는 주화(鑄貨)를 주조할 정도로 독립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들 중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에베소라 하겠다. 상업과 교통의 요지인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및 아가야의 제도시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우상과 미신 숭배였다. 18장 강해에서 언급한 바거니와 고린도의 엄청난 부는 아프로디테 신전의 우상 숭배 및 여기서 파생되는 도덕적 타락 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었듯이, 에베소의 상업적 번영은 다산(多産)의 모신(母神)인 아데미 숭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아데미 숭배의 음란함은 이 여신상의 형상을 볼 때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아데미 여신상은 많은 수의 유방을 가지고 있고, 사자, 황 소, 수양들이 그 어깨와 다리 위에 양각되었으며 발 위에는 한 마리의 꿀벌 모양이 새 겨져 있었다. 인간과 짐승과 식물의 다산을 보증하는 의미를 갖는 아데미 숭배에는 고 린도의 아프로디테 신전에서와 같이 수많은 고급 매춘부들이 사제(司祭)로 봉사하고 있었다. 이처럼 에베소의 아데미 숭배가 도덕적 부패와 타락의 온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우리는 에베소가 고린도와는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고린도의 우상 숭배가 도덕적 문란함과 직결된다고 하면 에베소의 우상 숭배는 상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성격을 갖는다. 에베소는 이방 미신 숭배의 중심 역할을 하였던 바 (19절), 원근 각처에서 사람들이 매우 빈번하게 방문하는 순례지였으며 이들은 갖가지 부적과 우상적인 공예품들을 기념으로 사갔다. 소위'에베소 주문(呪文)'을 몸에 지니 고 다니면 만사 형통한다는 신념이 그와 같은 구매욕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리하여 에 베소에는 아데미 우상과 각종 부적들은 만드는 은장색(銀匠色)이 성행하게 되었고 이 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커다란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다. 더욱이 에베소 사람들이 아 데미 신전에 의존하여 생활의 근거를 세우게 된 것은 로마의 속국이 된 후부터였다. 로마 제국의 필요에 의해 엄청난 벌목과 목탄 연료의 사용 및 방목(放牧)의 결과로 에 베소 항구가 침적토(沈積土)로 막히면서 그 주민들은 그들의 부와 계속적인 번영을 위 해 더욱 아데미 신전과 각종 미신으로 인한 상업에 크게 의존하는 도시였다 하겠다. (2) 바울의 담대한 복음 증거. 각종 미신들과 이방 종교들(24절) 그리고 이로 인해 파생되는 기타 여러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무려 3 년간에 걸쳐 에베소에 머무르며 교회를 굳건히 성숙, 확장시켜 나갔다. 이렇게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 아데니 신전의 우상 숭배자들은 바울을 결사적으로 공격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 전파로 인해 우상 숭배의 지반(地盤)이 흔들리자 그들의 수입 에 커다란 타격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 로 세례를 주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론하며 권면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 어느 때보다 강권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따라 치유와 축귀(逐鬼)의 능력을 행함 으로써 왕성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모든 사건으로 인해 많은 에베소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주 예수 의 이름을 높이며, 바울이 더욱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시 시때때로 교묘한 사단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이를 이길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 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1-7절)은 바울이 에베소에 이르러 세례를 베풀고 말씀을 증거한 내용이며 둘째 단락(8-20절)은 에베소에서 성행 한 미신과 주술을 타파한 내용이다. 셋째 단락(21-22절)은 바울의 방대한 전도 계획을 밝힌 삽입 부분이다. 그리고 넷째 단락(23-41절)은 에베소 은장색들의 소요 사건 속에 서 바울 일행이 어떻게 위험을 모면하게 되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1. 에베소 교회의 성령 강림(19:1-7) 에베소에는 아볼로의 영향을 받아 요한의 세례만 아는 자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다 (18:24,25). 아볼로는 복음을 확실히 깨달은 후 고린도 지방으로 갔지만, 그에게 가르 침을 받은 자들은 여전히 에베소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세례 요한의 금욕주의적 신앙 자세와 회개의 교리를 붙잡고 있었고, 성령의 현존 의식에 관해서는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아볼로의 미성숙한 목회의 흔적을 감지한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세례를 주는 것으로 에베소 사역을 시작하였다. 물론 바울이 궁극적 으로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성령 세례를 처음부터 성령 세례를 강조하면 충격을 줄 것 을 고려하여 먼저 예수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를 준 후 성령 세례까지 연결시켰던 것이 다. '성령 세례'에 관한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본서 1:1-5 주제 강해를 참조하기로 하자. 사도 바울의 이러한 선교 방법은 피선교지에 가서 처음부터 너무나 이질적인 일을 시작하여 거부감이나 불안감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방법론상 현명한 것이었 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행하고자 하는 사업의 목적이 선하다고 하여 무조건 감행 할 것이 아니라 방법론적인 문제에도 현명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 물 세례 연구. 흔히 요한이 베푼 세례를 가리켜 '물 세례'라고 한다(1:5;마 3:11; 막 1:8;눅 3:16). 본 주제 강해를 통해 물 세례의 역사적 배경, 의미, 효율성에 대하 여 간략히 고찰해 보기로 하자. (1) 역사적 배경. 세례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구약 시대의 3대 사건은 노아 홍수(벧 전 3:20,22)와 홍해 사건(고전 10:2) 및 할례 의식(골 2:11,12)이다. 물론 고대 동방 세계와 유대교의 일부 종파 사이에서도 세례 의식을 통하여 신생(新生), 단체에의 가 입 서약, 신과의 신비적 합일을 상징하였으나 역시 그 직접적 배경은 구약의 3대 사건 이라 하겠다. (2) 세례의 의미. '세례'는 죄의 씻음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의미를 지닌 다. 즉 이전의 죄를 씻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 증인의 생활을 하겠다는 의지를 공증하고 서약하는 것이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행하는 물 세례가 주로 인간의 서원을 강조한 형식적 행위라면, 성령 세례와 불세례(9:17)는 그리스도와 성도 간의 내적 연 합을 강조하는 실질적 세례라고 할 수 있다(1:1-5 주제 강해 '성령 세례' 참조). 요약 하면 세례의 의미는 과거의 몸을 씻고 새 생활, 새 단체, 새 신조에 연합, 가입되는 것이며 성경적으로 이 말은 과거의 죄를 씻고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을 하여 영적 공동 운명체가 되는 것을 상징한다(롬 6:3-6). (3) 효율성. 물 세례는 물론 우리의 내적 신앙 고백을 형상화한 상징적 행동이다. 따라서 적극적 측면에서 보면, 물 세례는 이웃과 자신에게 자기의 신앙을 공표함으로 써 스스로 결단과 근신을 주는 것인 반면 소극적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히 상징 적 행위이지 그 자체가 구원의 필수 조건이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할례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축복과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 에게 그 순종과 믿음의 표시가 되는 것이며(창 17:9-14), 오늘날의 세례 또한 예수 그 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있어 믿음의 표시가 되는 것이다(롬 4:9-13).
2. 에베소의 전도 성공(19:8-20) 에베소에서 바울은 일찍이 그를 호의적으로 영접하했던 자들 덕택에(18:19,20) 유대 인 회당을 이용하여 3개월간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방하는 무리들이 늘 어나자, 바울은 두란노 서원을 장소를 옮겨 무려 2년간 사역을 계속했다(9절). 두란노 서원에 대해 확연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순회 강연자들에게 제공한 강연 장소였거나, 혹은 두란노라는 저명한 철학자 내지는 수사학자와 철학을 강론한 강의장이었던 것으 로 추측된다. 서방 사본(Western Text)에 의하면 바울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 서원을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이 시간은 대개 무더위를 피해 쉬는 때였다. 서방 본문의 기록 이 사실이라면,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자신의 생계를 해결함과 동시에 쉬 는 여가를 이용하여 복음을 증거했던 것이 된다. 여하튼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날 마다' 주의 말씀을 강론했는데, 이와 같이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사역으로 말미암아 에베소는 물론 그 주변의 성읍에까지 복음이 확장되어 나가는 풍성한 결과를 거둘 수 있었다(골 1:7;2:1;4:16;계 2,3장). 한편 본문에는 유대의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이들은 성령의 돈을 주고 사려고 했던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8:9-24)과 구브로의 유 대인 거짓 선지자요 박수인 엘루마(13:4-12)와 일맥 상통하는 바, 불순한 동기와 이기 심으로 치병(治病)과 축귀(逐鬼)를 하려다가 불상사를 당하였다. 현대인은 자연 과학 적 사고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좀처럼 마술을 신뢰하지 않지만, 고대와 신약 시대 초기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에베소는 미신과 주술이 성행했던 대표적인 지역으 로서 여러 질병들 특히 정신병을 귀신의 침입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마술은 정상적이며, 보편적인 직업에 속했다. 즉 마술사가 어떤 사람에게 들어 있는 귀신보다 더 강한 귀신을 부르게 되면, 먼저 들어 있던 약한 귀신이 쫓겨난다고 사람 들은 믿었다. 이러한 전이해(前理解)를 바탕으로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였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을 전혀 모르는 이들의 행위 는 도리어 화를 부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예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했다가 큰 봉변 을 당한 이 사건은 에베소에서 '예수'의 이름이 큰 위엄과 영광을 얻는 데 그리고 복 음이 뿌리를 내리게 하는 데에 일조(一助)를 하였다. 오늘날도 우리 주위에는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장사하는 무리들이 무수히 많다. 기도와 성령의 능력에 힘입기보다는 인간의 완력(腕力)에 의하여 강제로 축귀나 치병 을 하려고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 이들은 마술적 방법으로 하다가 안 되면 구타 를 하거나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며 절식(絶食)을 시켜서 고귀한 인간의 인격 훼손을 물론 생명까지도 잃게 한다. 성도들은 이러한 무리들에게 속지 않도록 자신의 눈과 귀 와 입과 발걸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단속해야 할 것이다(시 119:105;요일 4:6).
3. 바울 선교의 비전(19:21-22) 본문은 본서의 나머지 부분들에 대한 서론과 같은 역할을 한다. 즉 에베소의 마술사 들이 회개하고 그들이 모든 책들을 불사르는 사건이 발생한 후 바울은 먼저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메가도냐로 보내고 본인은 후에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을 방 문하고 계속해서 로마로 갈 계획을 세웠다. 이처럼 바울이 로마로 갈 결심을 한 것은 서바나로 전도 여행을 떠나기 앞서 로마 교회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자 했기 대 문이다(롬 15:23,24).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에는 다른 복음 전도자들이 세운 교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유럽 전도의 거점으로 로마를 삼 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이미 다른 전도자가 복음을 전파한 곳에 가서는 전 도하지 않겠다는 그의 목회관과 일치한다(롬 15:20). 결국 바울이 계획했던 서바나 전 도 여행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훗날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였고 거기서 죄인된 신분으 로 로마 여행을 하게 되었다(28:16). 한편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려고 한 데에는 한 가지 큰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그 가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서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이방 교회를 두루 돌면서 구제금을 거두었던 바(고전 16:1-4) 이제 그것을 형제들의 사랑과 함께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롬 15:26). 이렇듯 사도 바울은 세상 도처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위험 을 무릅쓰는 와중에서도 전 교회의 하나됨과 교제를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고전 10:17).
4. 에베소의 소요(19:23-41) 본문은 에베소에서 바울이 이권 단체(利權團體)와 충돌하게 된 사건을 수록하였다. 에베소의 이권 단체란 에베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주도하고 있던 아데미 숭배 자들의 조합을 말한다. 당시 이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가는 에베소의 북동쪽에 위 치했던 아데미 신전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족히 이해할 수 있다. 아데미 전각(27절)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주 하나로서 한 면의 길이가 120m이고 다른 면의 길이는 60m로 솔 로몬 성전의 34배가 되었다고 한다. 에베소는 이방 종교의 총본산이요 수많은 순례자 가 끊임없이 이곳을 방문하였고 에베소 사람들은 신전을 중심으로 경제 생활을 이루었 던 바, 이들의 근간을 형성하는 은장색(銀匠色) 조합의 영향력은 에베소에서 가장 지 대하였다 하겠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문에 부각되어 있는 다음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자. (1) 데메드리오의 선동 동기. 데메드리오는 은장색 조합의 우두머리 격인 듯하다. 당시의 사람들은 가정보다는 크고 국가보다는 작은 사회 기구들을 많이 형성하고 있었 다고 하는데(S.Dill) 그 기구는 은행가, 염색업자, 건축업자, 이발사, 수송업자, 의 사, 설계사, 철공, 석공, 도제공 등 각종 상업 및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기 들의 이익을 위하여 함께 결합한 단합체였음을 물론 사회적 협력 기구의 역할을 하였 다. 본문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가 종사하는 은장색 조합은 그과 같은 기구의 일종으로 서 아데미 여신의 은감실, 즉 모조 은신상을 제조하는 일을 하였다. 바울이 에베소에 서 복음 전도에 성공을 거두자 이 은장색 조합은 경제적 타격을 입음은 물론 그 기반 까지 흔들리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데메드리오는 자신의 지반을 옹호하고 이득을 지키기 위해 은장색들로 하여금 소동을 일으켜 바울을 대적하게 하였다. 표면상 데메드리오가 바울을 공격한 동기가 '아데미'여신에 대한 종교적 열성에서 기인한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돈벌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즉 이 은장색들은 순례자들 에게 아데미 신상이나 신전의 작은 모형을 기념품으로 팔아서 수입을 올리는 자들이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전파는 당장 그들의 생업(生業)을 위협하는 것으로 파 악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은 소위 군중 심리(群衆心理)를 격발시켜(32절) 아예 바울 을 여지없이 파쇄시켰다. 후대에 아데미 신전이 로마 황제 차스티니안에 의해 성소피 아 성당의 건축 재료로 사용된 사실(F.Torey, M.Machaby)은 육체적 안녕과 재물을 위 해 복음을 거부한 진리 배척자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역설적으로말해주며 죽은 우상과 달리 역동적으로 역사하는 복음의 초월적 능력을 깨닫게 해준다(삼상 5:1-5). (2) 죽음도 불사한 바울의 신앙 의리. 데메드리오의 선동에 의해 움직인 은장색들은 지방색과 종교색이 짙은 우매한 군중들과 합세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 연극장은 에베소의 동맥 구실을 하는 아카디안 대로(Arcadian Way)의 동쪽에 위치한, 이만 오천 명 가량 을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노천 극장(露天劇場)이었다. 바울은 자기 대신 동행자가 고 초를 겪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 연극장으로 뛰어들어가려고 하였다. 동료를 구하든 못구하든 새사 고락을 함께 하려는 바울의 이러한 행동은 말만 앞세우고 행동은 따라 가지 못하는 오늘날의 세대에 훌륭한 귀감이 된다. (3) 이교도에 대한 바울의 태도. 바울은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라고 복음을 전파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방의 토속 종교를 향해 공격을 가하지는 아니하였다. 예컨대,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이 숭배하는 아데미 여신에 대해 비난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그들에게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데메드리오의 선동에 의해 소요가 일어났을 때 이 소요를 진정시킨 서기장의 발언을 살피면 잘 알 수 있다. 즉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 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37절)이란 서기장의 말을 감안할 때 바울이 3년간 에베소 전도에 종사하면서 우상에 대하여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우리 는 여기서 복음 전도자가 유의해야 할 사항을 깨닫게 된다. 복음을 전하기 앞서 우상 을 비난하거나 파괴한다면 군중들의 반감을 조장하고 결과적으로는 전도의 열매를 거 두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신앙은 인간의 중심에서 이루어지는 일인고로, 외부에서 강압 하기보다는 먼저 참된 신관과 신앙의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 사도행전에 나오는 각종 신(神). 본서에는 구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신인 물론, 즉 몰렉(레 18:21;왕하 23:20) 외에도 쓰스와 허메, 아데미, 레판과 같은 이방 신이 언급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 주제 강해는 이것들이 어떤 신인지에 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1)쓰스(Zeus). '쓰스'는 우리가 흔히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그리이스의 최고 신이다. 그런데 로마인들은 이 신을 '쥬피터'(Jupiter)라는 이름을 불렀다. 이 신은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주관하는 신인 동시에 날씨를 주관하는 신이었다. 그러므 로 호머(Homer)는 그의 서사시(敍事詩)에서 제우스를 '정의의 수호자'이자 인간과 각 양 '신들의 아버지'로 묘사하였다. 한편 본서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이적을 행하는 것 을 본 루스드라인들이 바나바를 가리켜 '쓰스'라고 칭한 사건이 언급되어 있다 (14:12). (2) 허메(Hermes). '허메'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로서 로마인들이 '머큐리'(Mercury)와 동일한 신이다. 그리이스 신화에 의하면 이 신은 '제우스'의 아 들로서 신들의 전령자요 제우스의 대변인으로 말에 능했을 뿐 아니라 말의 창시자였 다. 따라서 루스드라인들이 바울을 가리켜 '허메'라고 했던 것은 바울이 훌륭한 설교 가였기 때문인 듯하다(14:8-12). (3) 아데미(Artemis). 보통 '아르테미스'로 불리는 이 여신은 '제우스'의 딸이다. 이 여신은 처녀의 수호신이자 출산과 풍요를 주관하는 신으로서 특히 에베소인들에 의 해 열렬히 숭배되었다(34절). 에베소 사람들이 이 여신을 숭배한 것은 다산(多産)과 풍작을 기원하며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다산의 신'인 바알을 숭배했던 가나안 농경 문화의 우상 숭배와 궤를 같이 한다(삿 2:11;삼상 7:4;왕상 16:31,32;왕하 10:18;렘 2:8). (4) 레판(Rephan). 분명치는 않으나 고대 애굽인들이 섬기던 목성신(木星神) '레파' (Repa)이거나 근동인들이 섬기던 토성신(土星神) '렘판'(Remphan)인 것 같다. 그런데 본서에 나오는 스데반의 언급(7:42,43)에 의하면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인도 이 신을 숭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