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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평강의 왕 (사9:6~7)

평강의 왕


이사야 9:6-7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다음 세가지 증언을 들어야 합니다.


 


첫째, 예언자들의 증언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메시야로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탄생과 인격과 사역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에 이르기까지 예언하고 있습니다.


캐논 헤이그(Cannon D. Hagu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500년전 세익스피어가 태어날 것을 예언했는가? 누가 250년전 나폴레옹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는가? 그러나 스물 다섯명 넘는 성경의 기록자들이 뚜렷하고 명백하게 예수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중 아무도 그들이 오시리라고 예언했던 주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창세기 3:15을 보면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인의 후손은 여인의 후손으로 태어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성경의 예언은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연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사야 7:14을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고 창세기 49:10을 보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미가서 5:2을 보면 태어나실 장소도 예언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들레헴이 작은 고을이지만 메시야가 거기서 태어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느날 갑자기 우연히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오신 것입니다.


 


둘째, 사도들의 증언입니다.


복음서와 사도들의 서신을 보면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고 복주시려고 세상에 오셨고 그 일을 위해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사도들의 증언이었습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증언입니다.


"섬기러왔다, 목숨을 주러왔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 하신 그 말씀만으로도 왜 오셨는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신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일하는 목적과 사는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지 못합니다. 정해진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매년 교회없는 동네에 하나씩 교회를 개척하여 짓겠다는 목표를 정한 크리스천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목표달성을 위해 목표를 정한 날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자기를 위한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회사를 키워나갔습니다. 목적이 분명하고 선하면 하는일이 분명하고 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너무나 확실하고 분명했습니다. 그랬기에 주님의 삶은 한점 부끄러움이 없었고 한오라기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이사야서 9장은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의 사역에 대한 예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별명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임마누엘(7:14), 기묘자(9:6), 모사(9:6), 전능하신 하나님(9:6), 영존하시는 아버지(9:6), 평강의 왕(9:6)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본문은 오실 예수님이 하실 일을 밝히고 있습니다. 함께 살펴 나가면서 은혜를 받도록 합시다.




1. 흑암을 물리칩시다.


1절을 보면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 흑암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2절을 보면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1-2을 보면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시기 전의 세상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절을 보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고 했습니다. 빛을 만드사 흑암을 물리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경우 죄와 절망과 죽음의 흑암에 빠져 신음하고 살던 사람들을 위해 빛을 비춰 주심으로 살길을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주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요9:5)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4을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전에 고통하던자 흑암에 행하던 백성 사망의 그늘진 땅 무겁게 멘 멍에 어깨의 채찍 압제자의 막대기 피묻은 복장" 이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통, 흑암, 사망, 멍에, 채찍, 압제, 피......" 이런것들은 인간을 괴롭히는 도구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겪었던 고통이 그런것들이었고 광야에서 겪었던 고통들이 그런것들이었고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 겪은 고통들이 그런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루하루 겪는 것들이 바로 그런것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것들을 제거하고 빛을 비추시기 위해 오신것입니다. 본문속에 "고통, 흑암, 사망, 멍에, 채찍, 압제, 피"라는 단어가 등장하는가 하면 "영화, 큰 빛, 창성, 즐거움, 평강, 공평, 정의"라는 단어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고통, 흑암, 사망, 멍에, 채찍, 압제, 피를 제거하고 영화, 큰 빛, 창성, 즐거움, 평강, 공평, 정의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큰빛이십니다. 큰 빛이 비추면 어둠은 물러가도록 되어있습니다.제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내 인생길이 캄캄해도 빛되신 주님이 빛을 비추시면 길이 환하게 밝아지고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429장 찬송은 뉴맨(Jhon Henry newman)이 1833년 32세때 지은 찬송입니다.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하소서


이전에 방탕하게 지낼 때 교만하여


맘대로 고집하던 이 죄인 사하소서


내 지은 죄 다 기억마시고


주 뜻대로 늘 주장하소서


이전에 나를 인도하신 주 장래에도


내 앞에 험산준령 당할 때 도우소서


밤 지나고 저 밝은 아침에


기쁨으로 내 주를 만나리"


가사도 곡도 아름다운 찬송입니다.


주님은 큰 빛으로 어둠을 내쫓고 광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한 달동안 햇빛이 비치고 바람이 통하는 과수원에서 일한 사람과 밀폐된 지하 공장 전등불빛 아래서 일한 사람을 비교 조사 했습니다. 지하에서 일한 사람보다 햇빛을 받으며 일한 사람이 시력도, 호흡기도, 심장도 정신도 건강했습니다.


빛 없는 세계에서 어둠을 벗하고 사는 사람보다 큰 빛이 되신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천배만배 건강하고 건전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내 마음과 내 가정과 이 민족 역사속에서 흑암을 추방하고 밝은 빛을 비추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2. 기쁨을 주십니다.


3절을 보면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시며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며 즐거움같이 즐거워 하오니"라고 했습니다.


즐겁다는 단어가 4번이나 반복됩니다. 웃을 일도 없고 웃을수도 없는 백성에게 기쁨을 주셔서 기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평강을 주시는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세계역사를 보면 평화를 만든 지도자가 있고 전쟁과 살상을 조장하고 부추긴 지도자가 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 이태리의 무솔리니, 소련의 스탈린, 북한의 김일성, 회교과격파 빈 라덴 등 이런 사람들은 전쟁과 살상과 피를 불러일으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화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가면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평화로워 집니다. 이유는 예수님은 평안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27에서 주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녀야하는 우울증 환자가 있었습니다. 약물치료, 한방치료, 입원치료 안해본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치료도 불면증과 불안초조 증세를 치료하지 못했습니다.


길은 하나, 죽기로 했습니다. 죽기로 결정하는데 3개월이 걸렸습니다.


막상죽기로 결정은 했지만 걸리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죽느냐, 어디서 죽느냐, 언제 죽느냐가 문제 였습니다.


한강에 뛰어내리느냐 달리는 차에 뛰어드느냐 수면제를 먹느냐? 수면제를 먹기로 하고 이약국 저약국을 돌며 치사량을 구입했습니다.


어디서 죽느냐? 안방, 화장실, 서울역, 남산공원? 여기저기 생각하다 동네교회로 정했습니다. 웬지 거기가 좋을 것 같았습니다.


언제 죽느냐? 그건 때를 보아가며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저녁 갑자기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네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잘됐다 싶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통곡소리, 악쓰는 소리, 외치는 소리가 교회당안을 메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처럼 한많고 서럽고 죽고싶은 사람들이 모여 악쓰며 울고 있는가보다라고 생각하고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날 그 시간 그 교회는 철야기도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그녀는 그 자리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죽을수도 죽을 이유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그날 밤 잃었던 평안을 찾았습니다. 평강의 왕이신 주님께서 그녀에게 생명과 구원과 평강을 주신것입니다.


예수 믿고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편해졌다"고 대답합니다. 평안은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그 평강을 주시려고 주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작가 게오르규는 "하나님의 인간적 얼굴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예수님이 인간으로 태어나셨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 평강의 시간성입니다. 하루나 이틀 반짝 평안한 것이냐 아니면 영원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 7절을 보면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라고 했고 "자금이후 영원토록"이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더하며, 무궁하며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감사합니다.


히브리서 13:8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더하시고 영원하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믿을수록 좋고, 가까이 할수록 행복하고, 부를수록 평안한 예수 그리스도!


평강의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주님의 성탄을 함께 기뻐하며 영광과 존귀를 돌립시다. 아멘.



출처 : 여호와닛시♥
글쓴이 : 주님의숲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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