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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라-요 13:3~15

영등포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선우경식(鮮宇景植) 요셉의원 원장은 21년 동안 극빈층과 노숙자에게 무료로 진료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그는 1969년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킹스브룩 주이스 메디컬 센터에서 내과학을 전공했습니다. 귀국하여 한림대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전문의가 없으니 일주일에 한번만 와서 도와달라는 대학후배들의 요청으로 1983년부터 달동네인 신림동에서 무료진료를 시작했습니다. 변변한 의료시설이 없던 그곳에서 선우 원장은 후배들과 함께 환자를 업고 다니며 의료봉사를 펼쳤습니다. 4년 뒤, 무료자선 병원인 요셉의원을 세우고 본격적인 봉사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호의호식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난한 환자를 도와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무료 진료사업을 시작했다. 힘들고 어려울 땐 차라리 병이라도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지만 돈이 없어 아프다는 말도 못하는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개원 한 달만에 천만원의 적자가 났습니다. 주변에서는 석 달도 버티지 못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직접 쌀과 의약품을 얻어 왔습니다. 후원인이 늘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1997년에는 영등포 역사 뒤편 쪽방촌으로 옮겼습니다. 병원 외에 알코올중독자 재활센터인 목동의 집’, 환자재활을 위한 요셉의원 재활센터를 갖췄습니다. 요셉의원을 거쳐간 환자는 42만 명.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저소득층 환자 사이에서 그는 영등포 슈바이처로 불렸습니다. 1회 한미 참의료인상, 카톨릭대상, 호암상 사회봉사상, 대한결핵협회 복십자대상을 받았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했던 선우 원장은 투병 중에도 틈나는대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요셉의원 관계자는 “2006년 위암 수술을 받은 뒤 통원치료와 입원치료를 반복하면서도 병원을 찾는 일을 잊지 않으셨다. 몸이 조금만 괜찮아졌다 싶으면 병원에 나와 직접 환자를 보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개원 20주년을 맞아 지인들에게 처음 의학을 공부하며 사람을 살리는데 이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밤늦게 퇴근하는 길, 길가에 쓰러져 있는 환자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 치료하고 나면 한 사람을 더 살렸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고 글을 보냈습니다. 그는 마치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에 중독된 사람과 같았습니다. ‘주머니가 부르면 딴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주변에 항상 말해 왔던 선우 원장은 뇌출혈로 2008418일 오전 4시 카톨릭대 강남성모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사자격증 하나만 남긴 채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선우경식 박사, 그는 예수의 정신대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처럼 발을 씻어주는 삶을 몸소 실천하였습니다.

본문은 유대인들의 명절 유월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유월절 만찬을 드시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시던 예수께서 갑자기 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십니다. 일어나서 웃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발을 씻기 위해 놓아둔 항아리에서 물을 퍼서 대야에 담아 오시더니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씩 씻기기 시작합니다.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나 노예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남의 발을 씻겨주는 일은 극히 천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누구입니까? 제자들의 스승입니다.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것입니다. 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까?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서로 발을 씻기라고 하십니까?

첫째로 사랑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히틀러 독재정권에 반기를 들고 앞장섰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목사는 히틀러의 전쟁과 유태인 학살에 대하여 단호하게 비판하고 저항했습니다. “만일 미친 사람이 버스를 몰고 간다면 자기는 목사로서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식이나 치러주고, 그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겠다. 그 대신 달려가는 버스에 뛰어들어 미친 사람으로부터 핸들을 빼앗아버리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나치정권 전복을 계획하며 히틀러를 혹독하게 공격하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감옥에 끌려가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밤, 감옥에서 놀라운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본회퍼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는 평생 히틀러를 비판만 했지, 그의 영혼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그날 밤 본회퍼는 자신의 사랑 없는 항쟁운동을 깊이 회개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삶의 현실에서 얼마나 사랑으로 풀어가고 있습니까? 예수는 제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내가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몸소 행동으로 보이셨습니다. 사랑은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워도 사랑으로 행동하여야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자리에 배신자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발도 씻어주셨습니다. 배신자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예수는 모두를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가룟 유다의 발까지 씻어주심으로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형편과 사정에 따라 사랑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일을 행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상이 누구든지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끝까지 사랑으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는 자기 사람들 즉 제자된 그리스도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이 사랑의 표시입니다.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대신 못 박히시고 대신 죽으신 것도 사랑의 표현이며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서로의 발을 씻기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서 대접만 받고자 하고 있다면 이미 그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랑으로 서로 발을 씻기는 일에 앞을 다투어 나서야 합니다.

둘째로 겸손으로

헨리 나우엔(Henri J. Machiel Nouwen)은 하버드 대학의 교수가 되면서 인생의 가장 높은 정점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하버드 대학의 교수직을 내려놓고, 캐나다 토론토 근교의 데이 브레이크라는 공동체에 장애자들을 섬기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이 결단은 교수로서 끝난 것이며 마치 죽음을 택한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죽음의 자리, 이 공동체에서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위대한 영성작가 헨리 나우엔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공동체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감동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합니다. 작은 공동체를 넘어서서 우리 시대에 수많은 이들의 눈물을 씻어주고 고귀한 삶을 일깨우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더니 하나님이 고귀하게 쓰신 것입니다. 나우웬은 생애의 마지막이 가까웠던 때에 진정한 리더십에 대한 글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리더십은 세상이 시사하는 방향처럼 높은 곳을 향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직결되는 저 낮은 곳을 향한 움직임이다. 지배의 지도력이 아니라 고난 받는 종이신 예수가 보여주신 스스로 낮아지는 겸손의 길이다. 바로 여기에 진정한 지도력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높아지기를 구하는 자마다 낮아지는 겸손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자신을 쳐서 스스로 낮추며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것부터 먼저 행하여야 합니다. 낮아지며 겸손하여지는 순간 비로소 바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행위에서 예수의 겸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기는 것은 겸손으로 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비하로 스스로 종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더할 나위 없는 겸손을 드러내셨습니다. 큰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겸손을 행동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세상은 낮은 자가 큰 자를 섬기지만 성경은 큰 자가 오히려 작은 자를 섬기라고 명령합니다. 이러한 겸손만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일은 언제나 겸손에서 비롯합니다. 그러므로 맡은 직분이 크면 클수록 겸손히 섬겨야 합니다. 직분이 권세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발을 씻기는 일을 위해 주어진 것으로 알고 겸손히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직분은 존귀하게 될 것이요 비로소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직분이 될 것입니다.

 

셋째로 섬김으로

일본에 유명한 정치가 가타오카 켄기치(片岡健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정치범으로 감옥에 들어갔을 때 가장 더러운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수많은 죄수 중에 왜 하필이면 나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키나요?” 그리고 반발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한복음 13장을 읽다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도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다. 나 같은 죄인이 화장실 청소를 못 할 것이 무엇이냐? 화장실 청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죄수들의 발을 모두 닦아 주자.” 가타오카는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만나는 죄수마다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감옥에서 가장 밑바닥 일만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살다가 형기를 마치고 나와 국회위원에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2대 국회의장이 되었습니다. 국회의장이 된 다음에도 출석하는 고오치 교회에서 언제나 현관에서 들어오는 교인들의 신발을 받아 신장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갈 때 제일 먼저 신장 앞으로 가서 신발을 꺼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발을 닦아 주는 섬김은 아랫사람을 섬긴다는 의미입니다. 발을 닦아 주는 섬김은 숨은 곳을 섬긴다는 의미입니다. 발을 닦아는 주는 섬김은 숨은 곳을 사랑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발은 닦아 주고 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얼굴은 닦아주고 나면 표시가 납니다. 표시나지 않는 섬김이 우리가 해야 하는 진정한 섬김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께서 너희들도 이렇게 행하라고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서로 섬기는 모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큰 자인가로 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안목으로 섬김을 받기만 원했지, 섬김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섬김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발을 씻기는 것은 섬기는 일입니다. 무지하고 세상적인 판단 기준을 버리고 서로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섬기는 자들의 반열에서 기뻐하는 자들만이 참된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이 일에 선구자가 되셨고 자기를 따라서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오직 섬기는 일로 인생의 승부를 거는 존귀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시베리아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벨딩 줄무늬 다람쥐(Belding ground squirrel)는 주행성 쥐목동물입니다. 이들은 천적인 오소리가 접근할 때 위험 신호를 다른 동료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이 신호를 보낼 때 나는 소리로 자신의 위치가 발각돼 천적으로부터 공격받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신호를 보낼 경우,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공격받을 확률이 평균 2.5배정도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면서 숨거나 도망치기보다 목숨을 걸고 다른 동료에게 신호를 보낸다고 합니다. 가족과 동료를 위해 신호를 보낸다는 것은 먼저 천적을 발견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천적을 피해 도망친다면 살아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가족과 동료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면서 위험신호를 보내는 줄무늬다람쥐는 자신은 공격을 받아 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무엇인지 작은 미물이 그 깨달음을 보여줍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의 발을 내밀 뿐 겸손히 무릎을 꿇고 남의 발을 씻기려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모두 높은 데 마음을 두고 섬김을 받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에 따라 서로 발을 씻겨야 합니다. 스스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베푸신 사랑이 희미해지려고 할 때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며 발을 씻어주시던 그 자리로 가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려고 할 때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기시며 낮아지셨던 그 자리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섬김만 받으려고 할 때마다 섬김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던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본을 보이신 예수처럼 사랑으로, 겸손으로, 섬김으로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제자로 변화되어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06-18 15:1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