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고후 8:6~9
‘끝없이 도전하고 아낌없이 나눠라’는 책은 김용복(金龍福)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힘들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미군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로 영어를 배우고 운전을 하면서 주경야독으로 건국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1975년에 사우디로 건너갔습니다. 채소를 재배하는 일에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가 그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밤낮 술에 취해 지내다가 독실한 크리스천 부인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은혜 받고 새 출발하는 마음으로 다시 사우디로 건너가서 4년만에 채소 재배에 성공을 하였습니다. 교회부터 건축하겠다는 약속대로 농장에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확실하게 가졌습니다. 그 후 농장은 사우디 농과대학생들의 필수 견학코스가 되었고 밀 경작까지 성공해 11만kg의 밀을 농림부에 납품하는 사우디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1989년 14년의 사우디 생활을 접고 고향 강진에 들어와 70만평 땅에 영동농장을 세워 가난한 학생을 돕는 뜻으로 10억 재산으로 ‘용복장학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100억을 내놓아 ‘한사랑 농촌문화재단’을 설립하여 농업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에게도 후원을 하며 지금도 선한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년 초에 유서를 쓴다고 합니다. ‘내 몫의 재산은 물론 장기까지도 필요한 곳에 사용할 것이다’하고 유서에 써놓고 남아있는 부동산도 처분하여 불우한 어린이를 돕는 사업을 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돈은 분뇨와 같아서 한 사람이 너무 오래 가지고 있으면 부패하고 구린내가 납니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면 향내가 나고 비료가 되어 죽어가는 생명도 살리게 되지요. 세상은 저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물으십니다. ‘네 소유를 어떻게 사용했는가?’ 이 물음에 당당하게 대답하는 종이 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저의 간절한 소망이요 꿈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발전소에서 보내는 전력을 기계에 연결시켜야 동력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나의 의지와 지성과 인격을 하나님과 연결할 때 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본문 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의 ‘부요하게’는 ‘플루테세태’인데 ‘풍부하게 만들다’라는 뜻의 부정과거 가정법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부요하며 또한 앞으로 더욱 부요하게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구제 연보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기에 우리들이 영적으로 부요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 받아 자발적으로 이웃과 형제들을 구제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해야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첫째로 끝까지 성취하여야
록펠러(John D. Rockefeller)에게 친구가 찾아와 광산에서 금을 캐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산을 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속은 것입니다. 아무리 파도 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돈은 점점 떨어지고 광부들은 임금을 독촉했습니다. 록펠러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광산 한 쪽 모퉁이에 주저앉아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죽기 전에 너무도 억울하여 한탄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저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어머니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성경도 열심히 읽고 기도도 열심히 했고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소연을 하다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위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돈을 벌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을 목표로 세웠지만 실제로 돈을 벌어 자기를 과시하려는 것이 목표였음을 깨닫게 되어 원망의 눈물이 회개의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뜨거워지며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 음성을 듣고 자신이 주저앉은 곳을 한 번 더 파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그 땅에서 금 대신 원유가 터졌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터지면서 원유도 터진 것입니다. 어려울 때는 포기할 때가 아니라 회개의 눈물을 터뜨릴 때입니다. 회개의 눈물이 터지면 축복의 샘물도 터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시작한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그마한 난관이 오면 쉽게 낙심하고, 기도하다 응답이 없으면 기도를 포기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충성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떠한 시련이 와도 끝까지 성취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부요하게 하시는 복을 내려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이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행했던 구제사역을 끝까지 성취할 것을 종용하는 권면입니다. 시작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끝까지 이루는 것입니다. 특히 선한 의도로 시작하였다면 그것을 성취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고린도교회는 구제사역을 잘 시작했지만, 일 년이 지난 후 구제금을 채우지 못하였습니다. 끝이 흐지부지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주님의 선한 일을 이루려고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시작된 것은 반드시 성취하여야 합니다. 물론 끝을 맺는 것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고통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우리가 말씀에 응답한 것이라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성취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감격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섬기는 은혜이어야
손양원(孫良源) 목사는 예수의 제자로 섬김의 비전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애양원에서 나환자들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손양원 목사의 아내 정양순 사모도 섬김의 비전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남편이 감옥에 갔을 때 “‘여보! 신사참배에 응하면 내 남편 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도 후에 자녀들에게 “네 어머니 신앙이 오늘날 나를 있게 했다. 감옥에 있을 때도 네 어머니가 신앙의 보조를 맞춰 주었기에 이기고 돌아 올 수 있었던 거야. 신앙도 손발이 맞고 호흡이 맞아야 함께 정진할 수 있는 거지 혼자서는 어렵다. 아무렴, 대학 열군데 나오면 뭐해. 믿음이 중요하지”라고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가 48세에 순교했을 때 정양순 사모는 남편의 시신 앞에서 비통해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평생 동안 주의 일을 하게 하시고, 손양원 목사가 소원하던 순교를 허락해 주신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정양순 사모는 마지막까지 한센병자들을 섬기다 천국에 가기 전 가슴에 꼬깃꼬깃 간직했던 돈을 꺼내어 딸에게 전하며 말했습니다. “이 돈을 밀양교회에 전해 주어라.” 밀양교회는 건축 중에 있던 한센병자 교회였습니다. 평생 섬기는 은혜로 살았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여기의 ‘모든 일은’ ‘믿음, 말, 지식, 모든 간절함’입니다. 이를 보면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이 내적으로 성숙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풍성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은혜’라고 표현된 ‘이웃에 대한 실제적인 섬김’이었습니다. 실제적인 행동이 그들에게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 또한 그런 것이 아닙니까? 신앙의 내적 성장에는 관심이 많지만 봉사하자거나 구제하자는 소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구제와 봉사를 이야기하면 줄행랑을 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그렇다면 내적 신앙성숙을 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유익과 만족 때문입니까? 성경지식이 넘쳐난들 남을 이롭게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내적 성숙뿐 아니라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외적 성숙도 함께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남을 섬기는 은혜가 더욱 풍성해져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부요하게 되는 은혜를 입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증거된 사랑이어야
정치가요, 학자요, 주한 미대사를 지냈던 제임스 레이니(James T. Laney)가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여 에모리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건강을 위해 매일 걸어서 출퇴근하던 어느 날, 쓸쓸하게 혼자 앉아 있는 노인을 만났습니다. 레이니는 노인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말벗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 후 시간이 날 때마다 노인의 집을 찾아가 잔디를 깎아주거나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2년여 동안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노인을 만나지 못하자 노인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노인이 전 날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장례식장을 찾아가 조문하면서 그 노인이 바로 코카콜라의 회장을 지낸 분임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다가와 “회장께서 당신에게 남긴 유서가 있습니다”라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힌 봉투를 건넸습니다. ‘우리 집 뜰의 잔디도 함께 깎아 주고, 커피도 나누어 마셨던 나의 친구 레이니에게, 당신은 2년여 동안 내 집 앞을 지나면서 나의 말벗이 되어 준 친구였소. 고마웠어요. 당신에게 25억 달러와 코카콜라 주식 5%를 유산으로 남깁니다.’ 제임스 레이니는 노인에게 베푼 따뜻한 사랑으로 엄청난 부가 굴러 들어왔지만, 그 부에 도취되어 정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부를 학생과 학교를 위한 발전기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에모리 대학 총장으로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였습니다. 제임스 레이니는 자신의 사랑을 행동으로 증명하였던 사람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구제 연보를 통하여 그들의 사랑이 보고 싶다는 적극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구제연보를 조속히 실행하여, 형제에 대한 사랑의 진실성을 입증해 보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언제나 구체적인 사랑의 행동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반드시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가 뒤따르게 됩니다. 구체적인 행동이 없는 사랑의 말은 진실된 사랑으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에 대한 사정을 들으면서, 안타까움으로 기도하고 구제를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채우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그들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들의 진실이 삭감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증거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기독 실업가 아더 미다스(Arthur Midas)는 미국의 10대 재벌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재산을 선교사업을 위하여 사용했습니다. 선교 재단을 설립하기 위하여 7억 달러를 헌금했고, 한국의 대학생 선교단체에 50만 달러를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기자가 그에게 성공적 인생을 살게 된 비결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다섯 가지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주일 성수요, 둘째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요, 셋째는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하는 것이요, 넷째는 가정의 주인을 예수로 모시는 것이요, 그리고 다섯째는 시간과 돈을 선한 사업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원하시는데, 그 뜻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요하게 되는 삶을 원하십니까? 영적 체험도 있어야 하지만 더 소중한 것은 깨달음대로 살아야 합니다. 회개의 중요성을 알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사랑의 위대함을 알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말씀의 필요성을 알지만 말씀을 읽지 않으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신앙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들은 깨달음으로 모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깨달은 것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가난하게 되심을 알았다면, 가난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옷 입고, 먹고, 마시라는 말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자신을 드린 희생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찌 남을 위해 한 푼도, 한 시간도, 한 번도 희생하지 않는데 주의 희생적인 사랑을 맛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모름지기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처럼 가난하게 됨을 몸소 배워야 합니다. 예수의 가난하게 되심이 삶으로 증거 되지 않는 사람은 진정 주님을 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한 선한 일은 끝까지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섬기는 은혜가 나타나도록 힘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이 증거 되어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