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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송수천목사요약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4: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4:17)


  '이때부터' 특별한 시점을 표현할 때 쓰는 단어로써 예수님의 생애에 중요한 전환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예수님의 복음의 첫 외침이요, 예수님의 선교의 첫 주제입니다. 이 말씀은 마3:2절에서 세례요한도 했습니다. 그러나 말의 형식은 같다 할지라도 그 개념과 사상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오시는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외쳤으나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막1:15절에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여기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할/

  ①'전파하여 가라사대'
  여기 전파한다는 말은 '선포하다, 설교하다, 나타내다'는 말로 예수님의 사역은 세 가지입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신 사역'입니다. 우리 교회 표어도 '가르치며 전파하며 고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 가장 중요한 사역이 바로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사역입니다. 오늘날은 예배의 60%가 바로 설교의 사역입니다. 설교란 분명한 사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설교와 같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에는 어떤 권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설교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전파한다는 말은 '선언한다.'는 의미로 어떠한 지식에 대한 설득, 토론이나 또한 어떤 유의 논쟁이나 공격을 허용하는 이론전개가 아닙니다.
  이 선포는 도래되는 천국에 대한 일방적인 선언이며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명하신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지체 없이 전하는 것입니다.
  전파의 주요 원액은 복음,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뜻 있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오늘날 교회의 설교가 타락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신문기사거리나 민주화의 이야기, 신문의 사회면을 설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사회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설교가 아니라 강연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입니다. 정견 발표가 아니고 도덕 강연도 아닙니다. 설교는 성경 안에 있는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교가 죽으면 교회는 죽습니다.
  강단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회복되면 교회는 부흥되어지고 성도들의 영혼이 삽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들을 때 찔림을 받아야 하고 그 설교를 들을 때 꼭 나만 두고 나를 향해서 설교하는 것 같다고 느껴져야 합니다.
  설교는 무섭도록 자기를 분해하고 찌르고 파괴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회개의 탄식이 터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는 자가 '전파'하는 것은 전도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최초의 관심도, 최후에 관심도 영혼구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도 '영혼구원을 최우선 순위로' 두어야 합니다. /믿/
  ⑴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영혼구원입니다. 요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할/
  ⑵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신 목적도 영혼구원입니다. 그렇습니다. 죄 값으로 지옥에 갈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대속의 피를 흘려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막10: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할/
  ⑶영혼구원은 지상의 명령입니다. 마28:18-2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⑷성령을 부어 주시는 목적도 영혼구원입니다.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⑸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도 영혼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지옥 갈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딤전2: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눅15:7절에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⑹전도자에게는 사단을 지배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70인의 제자들이 전도하고 돌아와서 기뻐하며 보고하기를 눅10:17절에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님께서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하시면서 19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할/
  ⑺전도자는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됩니다. 이 땅에서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은 잠시 잠깐 후에 인기가 떨어지거나 죽으면 끝나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은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된다고 했습니다. 단12:3절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아멘!/
  ⑻전도자에게는 기쁨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시126:5-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전도하고 영혼구원 하다 보면 욕도 먹고 억울한 일도 당하고 슬퍼 눈물 흘릴 때가 있지만 참고 거두면 큰 기쁨의 단을 거두는 때도 온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영적인 기쁨이지만 육신적으로도 기쁨을 누리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내세의 기쁨이 우선이겠지만 현세에서도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②'회개하라!'
  이 말의 헬라어원으로는 '메타노이아'인데 '생각을 고친다. 방향을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생각과 행동을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자신의 길을 가던 발걸음을 돌이켜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을 향하여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란 단순히 죄를 슬퍼하거나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근본적인 마음의 회심을 말하며 결단을 하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⑴자기의 죄를 자각해야 합니다. 눅18:13절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⑵자기의 죄를 원통히 여겨야 합니다. 죄에 대한 심각한 수치심과 혐오감, 그리고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것, 즉 세리의 기도와 같습니다.
  ⑶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요일1: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⑷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려야 합니다.
  ⑸죄를 떠나야 합니다. 인생의 궤도를 수정해야 합니다. 곧 마음과 사상과 행동과 생활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⑹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눅15: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탕자의 절규입니다. 우리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믿어야 합니다.
  ⑺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힘써서 새 생활을 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회개란 '성격의 변화요 생각의 변화요 의견의 변화요, 방법의 변화'입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진리는 임하고, 성령도 임하고, 은혜, 은사, 축복'도 임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회개가 희망입니다. 회개하면, 회복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면 희망의 문이 열립니다. 회개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대하7:14). /할/
  ⑻그렇다면 시대적인 사명을 안고 이 땅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우리는 회개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회개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회개의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죄의 지적보다는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합니다. 남의 잘못은 잘 지적해도 자신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 치명적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밧세바와 간통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아를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다윗의 태도입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올 때까지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그의 죄를 깨우쳐줄 때 그때서야 다윗은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의 무뎌진 마음은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의 어두운 눈은 죄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쉴 새 없이 죄의 담을 높여갑니다. 알고 범죄하고, 모르고도 범죄를 합니다. 생각으로, 눈으로, 입으로, 귀로도 범죄 합니다. 손과 발로도 범죄 합니다. 이렇게 죄의 늪에 빠져들면서도 안전하다고 착각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첫 선포는 회개입니다.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회개 없는 신앙, 회개 없는 기도, 회개 없는 삶은 가짜이고 죽은 신앙입니다. /믿/ 그러므로 우리는 그동안 회개하지 않았던 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주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아멘!/
  ㈁우리는 용서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용서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용서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어떠한 사람이라도 용납하셨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할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용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주님은 주기도문으로 가르쳐주십니다(마6:12). 만약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마6:15). 우리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요셉의 삶을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는 총리의 위치를 이용해서 형제들에게 보복할 수 있었지만 요셉은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하고, 모든 식구를 돌보아줍니다.
  형제들을 용서할 때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창50:20).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그러나 훗날 되돌아보면 별 것 아닙니다. 이제 부모, 부부, 친구, 성도와의 관계에서 용서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읍시다. 마음에 쌓인 아픔과 상처를 다 털어놓고 용서하지 못한 것을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십니다. /아멘!/ 시34: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할/
  ㈂희생하지 못한 것, 봉사 안 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봉사는 사랑의 표현이고, 행위입니다. 봉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봉사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희생봉사가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시간을 뺏기는 데도 좋아합니다. 물질을 사용하는 것도 기뻐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해줄까?'를 고민합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 삼기 위해서 7년을 하루같이 봉사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은 봉사하는 일입니다. '과연 나는 봉사가 행복한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봉사를 귀찮아하고 있지는 않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웃 앞에 무관심한 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보면 '왜 부자가 지옥에 갔는지' 나오지 않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부자가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무관심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말씀해주었다고 합니다. ▶부자는 땅의 것에 관심이 커서 천국에 무관심했습니다. 부자는 부에 관심을 갖느라 이웃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때 나사로는 바로 부잣집 앞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날마다 호화롭게 살며 먹을 것이 넘쳐났지만 집 앞에 있는 나사로에게는 무관심했습니다.
  혹시 이 부자가 내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도우심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우리 집 앞에 있는 불신자에게 무관심하지는 않습니까? '무관심은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가장 예의 바르고도 잔인한 방법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사회가 병들어 가는 것은 무관심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벧전4:8절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이 관심입니다. /아멘!/
  ▶그리스도인에게 몇 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⑴회개의 의무가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⑵성결의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
  ⑶봉사의 의무가 있습니다. '너희는 서로 봉사하라'
  ⑷사랑의 의무가 있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⑸기도의 의무가 있습니다.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하라'
  ⑹전파의 의무가 있습니다. '온 천하에 복음을 전파하라'
  ⑺기뻐할 의무도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할/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 맨 밑바닥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무슨 죄를 짓고 여기 왔느냐?'고 물으니까 안내하는 사람이 '다른 죄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세상에 살 때 믿는다고 하면서 기쁘게 살지 못하고 늘 우울하게 한숨만 쉬며 산 죄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했습니다. 이왕이면 기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합시다! /할/

  ③'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여기서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곳입니다.
  지금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통치하는 곳에 '심령 천국, 가정천국, 교회천국, 지상천국'이 이루어지고 또 재림천국왕국건설이 이루어지며 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신천지가 새롭게 열리게 됩니다. /믿/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