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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강해집

[스크랩] 히브리서 11장의 믿음*하용조 목사

아브라함의 믿음 /하용조 목사

히브리서 11장의 믿음

 

약속이 있는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약속이 있다면 죽은 자도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 불릴 만큼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1절) 믿음은 내가 바라고 기대하고 꿈꾸는 것들의 실체입니다. 실체란 내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미래에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믿음의 현재는 내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실체와 같은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여러분,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증거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보지 못했지만 본 것처럼 증거가 내 마음에 있습니다. 증거가 있고 실체가 있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현실에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그렇게 해 주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막연하게 생각하고, 막연하게 믿는 것. 믿음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희미하게 생각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믿음을 진짜 가지고 있다면 그 실체가, 증거가 내 안에 잡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
 
 2절에 보면 믿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이 인정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 없는 사람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니고 봉사를 많이 해도 방황하고 흔들거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지 않으십니다. 참으로 조상들은 이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2절) 나는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들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하나님의 관계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대해 사명을 주시고, 그 계획하신 일을 정확하게 시키시는 그런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막연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구체적이고 정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어떻게 믿습니까. 이성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으로 믿는 것도 아닙니다. 천지창조는 믿음으로 믿는 것입니다.(3절) 믿음으로 이 세상을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과학보다 한 단계 위고, 이성보다 한 단계 위에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과연 누구며 어떻게 믿음으로 살았습니까. 히브리서 3절을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됐고 따라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지어지지 않은 것을 압니다.”


여러분, 꽃 한 송이를 볼 때, 하늘의 구름을 볼 때, 하늘의 별을 볼 때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보십시오. 내가 이성으로 만들어졌겠습니까. 내가 과학으로 만들어진 로봇이겠습니까. 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만들어주신 아주 고귀하고 가치 있고 매력 있는 우리는 정말 아름다운 인간입니다.


오늘 성경은 믿음의 조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는데 그 조상마다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믿음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 똑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특징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특징을 다른 말로 하면 은사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모두에게 이 믿음을 주셨습니다. 믿음은 자기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주시는 믿음을 내가 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봉사하는 은사가 있고, 어떤 사람은 뒷바라지하는 은사가 있고, 어떤 사람은 질서 지키는 은사가 있듯이 모두 은사가 다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은사가 다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일 먼저 아벨이라는 믿음의 사람을 소개해 줍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고, 이로써 그는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예물에 대해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믿음으로 여전히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후에도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 사람들의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죽어서 이름을 안 남긴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믿음입니다. 믿음은 계속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행동은 이렇게 위대하고 값진 것입니다.
 
믿음은 예배드림
 
아벨에 의하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제사를 드리는 것이고 더 나은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예배입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예배를 드릴 줄 압니다. 정성 없이 교회 오지 않습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러 오기 위해 깨끗이 옷을 갈아입고 목욕도 하고 마음과 정성을 모읍니다. 미리 헌금도 준비하고 먼저 와서 기도로 준비합니다. 이것이 다 믿음입니다. 더 나은 제사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태도가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보기에도 경건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냥 막 교회에 오는 것보다 준비가 다 돼서 교회 오는 사람들은 사람들도 존경을 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믿음의 첫 번째 특징은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올 때 성경 가지고 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교회 가면 찬송가가 있겠지’라는 태도는 정성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몸도 마음도 태도도 다 잘 준비해서 가야 합니다. 뭐든지 그렇습니다. 준비가 잘 된 사람은 대학시험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준비가 잘 되고 제 시간에 간 사람들은 허둥 되지 않습니다. 준비가 잘 된 사람들은 무엇이 빠졌는지 정성스럽게 생각하면서 기다릴 줄 압니다. 이것이 바로 아벨이 보여준 믿음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두 번째는 에녹입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들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들려가기 전에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에녹은 들려가지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교제라고 다 교제는 아닙니다. 건성으로 교제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인간이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습니까.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웠던지 죽음을 보지 않고 바로 직통으로 승천해 버렸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한 걸음을 걷더라도 하나님과 함께 가고, 걸어가도 버스를 타도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늘 하나님께 껌같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에녹의 믿음처럼 하나님과 교제가 깊어지거나 동행을 하는 사람은 죽음을 보지 않습니다.
 
조건 없는 순종
 
네 번째 노아입니다. 7절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경고를 받고 자기 집안의 구원을 위해 경외함으로 방주를 지었으며 이로 인해 그는 세상을 단죄했습니다. 또한 그는 믿음으로 인해 의의 상속자가 됐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인간의 화려한 말과 설득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어느 날 어느 시점에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셨을 때 어떤 사람은 그 말을 소홀히 여기고, 어떤 사람은 그 음성을 아주 귀하게 여깁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사람이었습니다. 산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대로 했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런 어마어마한 일들을 아무 조건도 붙이지 않고 하나님이 시켰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미쳤고 정신 나간 행동이지만 순종했습니다. 조건 없는 순종입니다.

 

그리고 그는 미리 경고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지상에 있는 모든 인류를 쓸어버리기로, 심판하기로 결정했는데 노아는 그런 일들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조건 없는 순종이며 또한 불가능한 일이라도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순종의 영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인 아브라함을 만나게 됩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해 장차 유업으로 받을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8절에서 12절까지 5가지 사실이 나타납니다. 그는 순종으로 장차 유업으로 받을 곳으로 나아갔지만 그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역시 조건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집밖으로 나가라고 하니까 일단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가라고 할 때 순종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믿음과 비슷합니다. 방주를 지으라고 하시니 무조건 산꼭대기에 방주를 짓고 수많은 세월을 사람들의 비난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순종한 사람이 노아가 아닙니까. 그러면 아브라함을 통해 보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아브라함의 믿음
 
첫째, 믿음은 부름의 응답입니다. 부르면 대답하셔야 합니다. 못들은 척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설교 가운데, 기도 가운데, 성경을 읽는 가운데 찔림을 주십니다. 설교를 들을 때 ‘어떤 사람이 내 얘기를 목사님에게 다 일러 바쳤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특정한 누구를 두고 설교하거나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되니까 설교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에 토를 달지 마십시오.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축복이 됩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아브라함이 떠나야 할 곳은 어떤 곳입니까. 부모와 친척들이 사는 익숙하고 편안한 고향이 아닙니까. 믿음은 떠나서 가는 것입니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익숙한 것, 그 자리를 떠나야 믿음은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이면 여러분이 잘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러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는 미지의 곳으로 가십시오. 믿음은 이런 의미에서 순종입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험이고 도전이고 시험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긴장감과 도전의식, 모험의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입니까.


둘째, 믿음은 외국에서 나그네처럼 사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믿음으로 그는 약속의 땅에서 다른 나라에 사는 이방 사람처럼 잠시 머물렀는데 그는 동일한 약속을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했습니다.”


믿음은 벽돌집이 아니라 장막에 사는 것입니다. 언제나 걷고 떠나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왕국을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가볍게 떠날 수 있도록, 그저 하룻밤 자고 떠나는 나그네처럼 괴나리봇짐을 가볍게 만드는 것입니다. 금은보화와 세상의 것으로 무장하면 못 떠납니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 다 걸립니다. 여러분, 집에 불이 나면 뭐부터 가지고 나가겠습니까. 장롱을 들고 가겠습니까. 그런 것들은 다 불타게 나둬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을 딱 붙잡아야 합니다. 믿음의 생활이라는 것은 내가 익숙한 곳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외국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외국에서 10년, 20년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하면서 살아도 외국은 어차피 남의 나라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이 선교사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최초로 이방인으로 사신 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천국에 계시다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을 때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곳도 머물러있지 않았습니다. “내가 여기 살고 싶다”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목적지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대로 사셨습니다.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외롭고 처량하고 고독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익숙한 고향의 땅, 친척들이 사는 땅, 가족들이 사는 땅을 떠나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믿음은 여행입니다. 땅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곳으로의 여행입니다. 그렇지만 그 땅은 약속의 땅이요 축복의 땅이요 하나님이 지시한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방인들이 다 살고 있는 그런 땅으로 갔습니다. 불안했을 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 불안함 가운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했습니다.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이방나라 땅, 내일 죽을지 모르는 그런 불편한 땅에 살면서도 마음에 평안이 있었던 것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
 
셋째, 믿음은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견고한 터 위에 세워진 도시를 고대했기 때문입니다.”(10절)
믿음은 막연한 것 같지만 막연하지 않고, 맹목적인 것 같지만 맹목적이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약속이요, 미래요, 축복입니다. 확실히 있는 것입니다. 현재는 내 손에 아무 것도 쥔 것이 없지만 믿음으로 나가면 약속은 성취되는 것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희망도 없고, 꿈도 없고, 미래도 없고, 비전도 없는 것입니다. 절망과 고독과 외로움뿐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고백합니다.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알맹이가 없는 것입니다.


넷째, 아브라함의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입니다. 11절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비록 그 자신이 너무 늙고 사라도 단산됐지만 임신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는 그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한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불가능 앞에 휩싸여 있으며, 믿음은 절망의 한복판에 존재합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이고 사라는 경수가 끊어진 90세인데 어떻게 임신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왜 여기까지 그들을 끌고 오셨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절대 애기 못 낳는다’라고 말하고, 사라 자신도 ‘이제는 포기하자’라고 하는 나이, 즉 자타가 불가능을 인정하는 때까지 하나님이 끌고 가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포기하고 완전히 불가능이라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이삭을 낳았을 때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능력이 좋아서, 사라의 건강이 좋아서 낳았다고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를 특별히 주신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수많은 남자 중 한 사람이 아버지와 수많은 여자 중 한 사람인 어머니가 만나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나는 고귀하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독특하고 변할 수 없는, 바꿀 수 없는 미션이 있는 것입니다. 약속이 있는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약속이 있다면 죽은 사람이라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만 입이 내게 있어도 하나님의 하신 일들 어찌 다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약속과 축복들을 어찌 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살고 여러분에게 주신 약속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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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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