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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일반 예화

[스크랩] <무서운 놈-감정>

<무서운 놈-감정>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이렇게 독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캔디에게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에게 정서와 감정을 허락하셨습니다. 문제는 정서와 감정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보다 그 반대의 역할을 할 때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난 이제 안해. 절대로 봉사 안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닙니까? 교회에 다닌 지도 오래되었고, 신앙의 고백도 분명하고, 헌신의 내용과 수준도 뛰어나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 이처럼 무너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사람의 사고의 영역 안에는 이성과 감정이 제각각 일정부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이 두 실체들이 싸움을 벌이게 될 때 감정이 승리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감정의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신앙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감정이란 놈은 삶의 다양한 원인들로부터 쉽게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그 영향력 또한 굉장합니다. 이것이 감정이 지니는 무서움입니다.

 

감정은 냉혈한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도 자신만이 개척해놓은 루트로 침투하여 한 사람의 영혼을 무장해제 시켜버립니다. 차가운 논리와 침착한 이성도 압도해버립니다. 소위 기분대로현실을 파악하고 행동하도록 무서울 정도의 압력을 가하는 존재가 감정입니다.

 

이처럼 감정은 이성과 믿음을 무너뜨리고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갈 수 있는 가공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정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객관적 사실과 믿음과는 별개로 우울, 분노, 원망, 자기연민의 자리로 삶이 내몰리게 됩니다.

 

감정의 문제는 한 사람의 신앙과 믿음의 성숙의 정도와 상관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삶속으로 찾아와서 부정적인 영향을 행사합니다.

 

공무원 시험의 압박감에 사로잡힌 청년, 퇴출 통보를 받은 아버지, 암 선고를 받은 주부, 이웃교회의 성장에 스트레스를 받는 목사, 왕따의 위기에 처한 청소년, 사채 시장에서 빌린 이자의 압박에 시달리는 동네 아저씨. 이 모든 사람들이 감정으로 인해 신앙의 무너짐을 경험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분의 뜻대로 온전한 신자의 삶을 살기위해서는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말일까요? C.S 루이스는 감정과 관련한 너무나 정확한 일성을 날립니다. “자신의 기분에게 비켜날 때를 가르치지 않는 한, 당신은 절대 건전한 그리스도인이나 하다못해 건전한 무신론자도 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감정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지고 사람을 넘어지게 할 때 이용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고독관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와가 언제 무너졌는지를 확인해보십시오. ‘동산을 홀로 걸을 때였습니다. 혼자 있을 때, 지극히 주관적인 사고를 냉철한 이성적 사고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보통 남자들이 집과 아내를 떠나 호텔방에 홀로 있을 때 무서운 일탈의 감정에 노출되어 집니다. 혼자 있을 때 방어하기 어려운 최고 수준의 부정적 유혹들이 감정을 통해 침투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그 항목 안에 반드시 포함 시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나 자신은 어떤 인간이 되는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위대하게 쓰임 받았던 불세출의 종들도 홀로 있을 때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비통과 절망의 자리로 떨어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누구의 고백입니까?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고백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가 무엇입니까? ‘스스로입니다. 혼자서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입니다. ‘내어버렸다는 단어를 영어성경<NIV>으로 보니 ‘have forggtten’입니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자기 혼자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전부 거두어 갖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객관적 팩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란 물리적인 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인의 장막 속에서도 나 홀로의 세계는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관계성에서 오는 감정의 손상도 심각합니다. 교회 안에는 우리의 예상과 기대를 넘어서는 원수들이<?>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목사에게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 헌금 낸 돈을 다시 돌려 달라고 하는 사람, 모든 소식을 이곳 저곳으로 전달하는 사람, 교회에 남은 반찬을 전문적으로 가져가는 사람, 어떤 사람도 감당할 수 없는 변덕의 달인, 집사 안 시켜 준다고 삐치는 사람. 일은 잘하는데 인격은 모가 난 사람. 교회에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이런 사람들과 만나서 교제하고 한 주님을 섬기다 보면 하나님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직접적인 신앙의 문제가 시험을 가져오기 보다는 사람 때문에 시험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인간들로부터 오는 상식 이하의 경우와 상식을 넘어서는 경우를 동시에 만나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을 통해서 만나는 무 경우가 우리의 감정에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목사님. 정말 교회 옮기고 싶어요. 더 이상은 김 집사와 함께 지낼 수가 없네요오늘날 목사들의 서글픈 현실은 목회의 본질적 내용을 가지고 고민하는 시간보다는 감정의 손상을 입은 삐친 사람 달래기에 목회의 절반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계성에서 오는 감정의 무너짐은 인간에 대한 실망을 동반하고 찾아오기 때문에 고독한 삶의 자리로 몰아가서 감정 손상의 2라운드를 다시 시작하게 합니다. 그래서 더 위험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감정을 다스리고 이겨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마틴로이드존스의 저서<영적 침체>보다 더 선명하고 명확한 답을 제공해주는 그 무엇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당신 삶의 불행은 다분히 당신이 자신에게 명령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사실 때문임을 깨달은 적이 있는가?” 무슨 말입니까? 자신의 감정을 향하여 단호한 지시를 내리지 않고 감정의 말만을 일방적으로 들을 때 우리는 감정의 노예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위대한 설교가 로이드 존스는 내안의 타자인 영혼을 향하여 나무라고, 비판하고, 타이르고, 격려하는 일을 계속해야 됨을 강조합니다. “절대로 그에게 끌려가지 말고 그가 당신을 우울하게 만들도록 그냥 두지 말라얼마나 귀중한 표현입니까?

 

여러분 안에 객관적 실체로 자리 잡고 있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감정이나 충동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기질과 성품의 연약한 점을 부지런히 확인하셔서, 경건의 연습과 훈련으로 감정을 능숙하게 다스릴 줄 아는 자리에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김관성목사

출처 : 믿음으로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글쓴이 : 덩울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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