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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베드로전서 4장 7 - 11절(개역개정)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베드로 전서는 베드로 사도가 네로 황제에 의한 본격적인 기독교 박해가 시작될 즈음에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외적 박해에 대해서 인내 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입니다.
베드로는 수신자들이 세상의 종말과 주님의 재림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로 위로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고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베드로 전서가 기록된 시기를 주후 63-64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950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1950년 전에 베드로 사도는 세상 종말과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고 말했다면 그때로부터 195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는 세상 종말과 주님의 재림이 얼마나 임박했겠습니까? 이제는 우리의 눈앞에 종말이 있는 것입니다. 마라톤으로 비유하면 그 때가 출발점이었다면 지금은 골인지점입니다.
베드로 시대의 성도들이 세상 종말과 주님의 재림으로 위로를 받았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 때보다 더욱 세상 종말과 주님의 재림으로 위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종말이 오면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본문에서 만물의 마지막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말세지말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1.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7절)
말세를 사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마지막 시대에는 마귀의 역사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계 12:12에 보면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고 땅과 바다는 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고 크게 분내어 땅으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마귀가 이 땅에서 더욱 발악을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는 죄악이 더욱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를 보면 마귀가 발악을 하는 시대가 맞는 것 같습니다. 예전 같으면 부끄러워서 말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전혀 부끄러움 없이 말합니다. 예전 같으면 그런 사건이 하나만 일어나도 온 나라가 말세라고 시끌시끌할만한 일들을 요즘은 거의 매일 매스컴을 통해서 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고 하더니 그 시대처럼 지금은 죄악이 가득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마귀의 발악입니다. 사람들은 요즘 문화가 그렇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믿는 자들을 쓰러뜨리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해야 합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막 9장에 보면 한 아버지가 귀신들려 물에도 넘어지고 불에도 넘어지는 아이를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제자들은 그 아이에게 붙어 있는 귀신을 쫓아내려고 노력했으나 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변론을 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산 위에서 기도를 마치시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역사하는 귀신을 꾸짖고 그 아이에게서 내쫓아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아이를 고치신 후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 기도 외에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영적 싸움에 승리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싸움에 승리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교훈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정신 차려 기도하지 않다가 큰 시험에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철야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 때 주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고 말았습니다. 기도하시던 주님은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지만 베드로는 계속해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깨어서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큰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너무나 시험이 많은 시대입니다. 그만큼 마귀가 강하게 역사하는 시대입니다. 이제 머지않은 시간에 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666 짐승의 표를 받아야 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건강보험법이 통과되었습니다. 2013년 3월 23일까지 미국 시민의 몸에 쌀알만한 베리칩을 이식하여야 합니다. 만약 그 칩을 받지 않으면 처음에는 벌금을 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정부주의자로 몰려서 감옥에 가야 합니다. 종말론 학자들 중에는 상당수가 이 베리칩이 계 13장에서 말하는 짐승의 표라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이 시행하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시혐의 때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 싸움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하라(8절)
베드로 사도가 말세에 대한 교훈을 주면서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하라고 권면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말세의 특징 중에 하나가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24장에 보면 주님께서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12절에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면 하나님을 섬기는데도 문제 될 것이 없고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면 다 해결 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풀어져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 13:10에서는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인간적으로 지키기에 어려운 계명이나 지키기 어려운 하나님의 명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명령이 아브라함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르밧 과부에게는 3년 6개월의 흉년 중에 자기에게 마지막 남은 가루로 주의 종 엘리사를 섬기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사실 자식이 굶어죽게 생긴 상황에서 그 양식으로 주의 종을 섬긴다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믿음 앞에서는 그 명령이 걸림돌이 될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믿음과 사랑이 없는 것이 문제지 명령의 크기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교회 일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믿음이 식어지고 사랑이 식어져서 그런 것입니다. 어떤 때는 내가 이런 일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사랑이 식어져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무거운 짐도 사랑하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식어질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사랑하면 문제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만 어려워도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는데 어떤 사람은 정말 힘들어 보이는데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행복해 합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것 아닙니다. 믿음과 사랑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그런데 사랑이 식어지면 감사도 사라지고 행복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모든 사람에게 666 짐승의 표를 받게 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경제적인 활동이 불가능합니다. 매매를 못하게 되니 경제적으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충만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부가 진짜 진짜 아주 많이 사랑하면 경제적인 어려움도 괜찮습니다. 힘든 것도 다 참을 수 있습니다. 힘든 것을 사랑이 다 녹여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 전선에 문제가 생기면 좋은 환경 중에서도 불평이 나오고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중에는 로마의 핍박 때문에 지하 동굴 카타쿰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동굴에서 태어나서 동굴에서 살다가 동굴에서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동굴은 환경적으로 너무나 힘겨운 곳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불행했을까요? 행복했을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고 사랑의 주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행복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지옥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면 내게는 그 사람을 극복할 만큼의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를 사랑해버리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앞으로 참된 기독교 신앙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지배하는 때가 되면 참된 기독교 신앙을 지켜내려면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환난과 핍박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때도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공부해보면 언제나 핍박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핍박 중에 믿음을 지켰습니다. 핍박 중에 믿음을 버린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면 핍박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진짜 문제는 사랑이 식어진 것입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시험에 드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결국 사랑이 식어서 시험에 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이웃을 뜨겁게 사랑한다면 문제 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 것은 처음 사랑입니다. 성령을 체험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그 사랑의 강도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날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된다는 말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환경이 변화되고 주변의 사람들이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계2:4에 보면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 중에서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지금 이 시대의 교회를 책망하신다면, 주님이 지금 이 시대의 성도들을 책망하신다면 에베소 교회와 동일하게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사랑을 회복합시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합시다.

3. 원망 없이 봉사하라(9,10절)
사도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하면서 서로 봉사할 것을 권면합니다. 베드로가 종말을 언급하면서 서로 봉사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는 종말 이후를 준비케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지상에서 천년왕국이 세워지고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천년 동안 왕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천년 왕국이 끝나면 온 인류가 심판을 받는 백보좌 심판이 있습니다. 이 때 심판을 이긴 자들은 영생에 들어갑니다. 영원천국에서 세세토록 왕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믿음으로 살아서 그 심판을 잘 통과하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 심판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서 영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이 땅에서 조금 낫게 살고 조금 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므로 영생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을 통과하는 조건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입니다. 믿는 자는 영생이요 불신자는 영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믿음이 진짜 믿음인가 가짜 믿음인가를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행위입니다. 진짜 믿음은 행함이 있는 것이고 가짜 믿음은 말은 있지만 행함이 없는 것입니다.
마 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오는데 거기서 심판을 통과하는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행함으로 이웃에 대한 봉사를 말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섬겨준 것이 주님을 섬긴 것이고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지 않은 것이 주님을 섬기지 않은 것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은 결국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고 주님을 위하여 봉사한 사람들은 내세에서 그만한 보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봉사하는 우리들이 어떤 자세로 봉사해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원망 없이 봉사해야 합니다.
9절에 보면 “서로 사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원망 없이 섬겨야 하는 이유는 심는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성경 마 7:12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남을 대접하면 나도 대접을 받게 됩니다.
시인 에메슨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라 그리하면 사람들은 그대에게 봉사할 것이요, 만약 그대가 한 평생을 걸고 사람들에게 봉사한다면, 아무리 교활한 사람일지라도 그 보상을 그대에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돕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원망 없이 봉사하십시오.

2) 은사대로 봉사하십시오.
10절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남 흉내 낼 필요 없습니다. 은사대로 하면 됩니다. 노래를 잘하면 노래로 섬기고, 기술이 있으면 기술로 섬기는 것입니다.
맥도날드 창시자의 부인 조앤 크로크 할머니는 돈이 많아서 돈으로 봉사했습니다. 그 할머니가 몇 년 전에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달라고 8,000만 달러를 구세군에 내놓았습니다. 이것은 구세군 133년 역사상 최대 규모라 합니다. 그러더니 또 얼마 후에는 15억불(약 1조 5천억 원)을 기부 했습니다. 그리고 또 돌아가시면서 구세군에 15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5조원을 기부했습니다. 이분의 은사는 돈이었습니다. 그래서 돈으로 봉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처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만한 돈의 은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봉사는 은사대로 하는 것입니다.
은사 중에 기도의 은사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기도로 섬기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초림 하셨을 때 성전에서 예수님을 뵈었던 여자 선지자가 있습니다.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선지자입니다. 안나 선지자는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습니다. 그분은 자기의 은사대로 기도로 섬긴 것입니다.
은사 중에 금식의 은사가 있습니다. 행 13:2에 보면 안디옥 교회는 주를 섬겨 금식했습니다. 제가 이 말씀으로 응답을 받고 40일 금식을 했잖아요. “안디옥 교회가 주를 섬겨 금식했는데 너도 나를 섬겨 금식할 수 없느냐” 그래서 아무런 기도제목 없이 순종해서 40일 금식으로 섬겼는데 섬기고 보니 내게 오히려 유익이 되었잖아요. 교회 명의 문제가 해결 되었고, 교회 옆 땅 317평도 사게 되었잖아요. 남 흉내 낼 필요 없습니다. 은사대로 섬기는 것입니다.

3) 청지기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니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청지기는 자기의 것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것입니다. 관리자이기 때문에 가진 것이 많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가진 것이 적다고 기죽을 것도 없습니다.
청지기에게 중요한 것은 주인의 뜻대로 하고 있느냐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내 입장에서 일을 할 때가 많은데 그것은 청지기의 자세가 아닙니다. 청지기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인의 뜻을 생각하고 주인의 뜻을 따라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망 없이 봉사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11절)
11절에 보면 말할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봉사할 때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범사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미켈란젤로 아시죠? 그는 위대한 조각가이면서 위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미켈란젤로 될 수 있었던 것은 미켈란젤로의 스승인 버톨도 지오바니라는 사람 때문입니다.
미켈란젤로가 14세가 되었을 때 버톨도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그를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 스승이 테스트를 해 보니까 이 아이가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승이 묻습니다. “너는 위대한 조각가가 되고 싶으냐?”, “예 그렇습니다”, “위대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14살짜리 미켈란젤로가 대답했습니다. “저의 재능과 기술을 더욱 열심히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스승이 남겨준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네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너는 네 기술을 무엇을 위하여 쓸 것인가에 관해서 반드시 결정해야 한다.”그러면서 그 날 이 스승은 어린 미켈란젤로의 손을 잡고 두 곳에 데려가 조각상을 구경 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먼저 간 곳은 술집 이었습니다. 술집입구에는 아름다운 천사의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스승은 이 조각상을 가리키면서 “이 조각은 아름답다. 그러나 이 조각상을 만든 조각가는 술집을 위해서 이 조각을 사용했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스승은 다시 어린 미켈란젤로의 손을 잡고 아름답고 거대한 성전 입구에 세워진 아름다운 조각상을 보여 주면서 다시 묻습니다. “너는 이 천사의 조각상이 아름답게 느껴지느냐? 아니면 아까 그 술집 입구에 있던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 두개의 조각은 모두 똑 같은 조각이지만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워졌고 또 하나는 술 마시는 사람들의 쾌락을 위하여 세워졌단다. 너는 네 기술과 재능을 무엇을 위하여 쓰기를 원하느냐?” 이때 어린 미켈란젤로는 세 번씩이나 같은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스승님,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쓰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전 10:31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똑같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두 종류로 나눠서 보십니다. 하나는 자기의 목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가족을 위하든, 사회를 위하든 자기 목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내게 손해가 되어도 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라면 내게 유익이 되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몇 사람하고 식당에 간 일이 있습니다. 그날 그 식당에 손님이 많이 와서 그랬는지 종업원이 민첩하게 서빙을 하질 못했습니다. 음식이 나올 때도 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좀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종업원을 불러서 따지더니 또 조금 있다가 주인을 오라고 해서 따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말도 약간 반말 비슷하게 하면서 따지는데 상대가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기분이 나빴을 것 같았습니다. 그 정도 되니까 제가 목사인 것을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더군요. 그분들이 생각할 때 ‘예수 믿는 것들이 상당히 까다롭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조금 전에 종업원과 사장에게 따졌던 사람이 큰 소리로 제게 “목사님”이라고 말 하면서 자꾸만 교회 이야기, 선교 이야기를 하는데 제 얼굴이 화끈거려서 혼났습니다. 제가 판단할 때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불편한 것이 싫고 손해 보는 것이 싫을 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 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지난주에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을 만났습니다. 거의 가족처럼 지내다시피 했는데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연락이 끊겼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업도 자리를 잡은 것 같고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신앙을 다 까먹어 버리고 교회를 나가지 않더군요. 그 친구 부인은 제 아내 친구인데 둘 다 교회를 나가지 않고 세상적으로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제게 자기에게는 전도하지 말라고 했는데 제 마음에는 이 친구가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니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전도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전도를 해야겠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 중요합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하여 열심히 사느냐 무었을 위하여 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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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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