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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트럭을 운전하시는 기사분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이 분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깊은 산길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산길은 매우 험하고도 꼬불꼬불했습니다. 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천천히 산기슭의 가파른 길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극히 좁디좁은 길목을 만났습니다. 산비탈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였습니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합니다. '이 큰 트럭을 몰고서 저 좁은 길목을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 그는 긴장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큼지막한 팻말이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팻말에는 이러한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당신도 이 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수많은 기사들이 이곳을 안전하게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그의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는 침착하게 운전을 해서 결국 좁은 길목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 길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 눈앞에 언제나 평탄한 길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가파른 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때로는 아주 좁디좁은 길목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엄청난 시련이 임했는가?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전10:13에서 했던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무슨 말씀입니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시험을 당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이겨낸 시험입니다. 다른 사람이 감당한 시험을 왜 우리는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려운 시험에 처했습니까? 겁먹지 마십시다. 우리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낮은 대로 임하소서」의 주인공 안요한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전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디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그의 음성을 듣다 보면 그렇게 활달할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이 분이 어느 고등학교에 초청을 받으셨습니다. 그 분의 간증설교를 듣기 위해서 학생들이 강당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도착해서 강단 위에 오르시다가 그만 놓여있는 마이크에 머리를 세차게 부딪혔습니다. 그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강당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의 마음은 너무나도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당황해야 할 당사자인 안요한 목사님은 마이크를 손에 잡으시더니 그 특유의 맑은 음성으로 이렇게 말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아침에 너무 급하게 오는 바람에 그만 안경을 잊어먹고 빼놓고 왔습니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마이크를 보지 못하고 실례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학생들 모두가 "와!"하면서 박장대소했습니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시는 목사님이 안경을 빼먹고 와서 마이크를 보지 못해서 부딪혔다고 하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분은 자기가 당하는 시련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유있는 유머를 통해서 학생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선사한 것입니다. 그 분은 자기가 맹인인 것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산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시련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는 삼중고를 겪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보지를 못했습니다. 듣지도 못했습니다.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일평생을 다 살고 난 뒤에 숨을 거둘 때 마지막으로 이러한 말을 남겼습니다. "아! 참으로 나의 인생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남들이 이겨낸 시험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자신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야고보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교훈입니다. 편의상 오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시험을 만날 때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2절 말씀이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여러 종류의 시험을 만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물질로 인한 시험도 있고, 질병으로 인한 시험도 있고, 사람 때문에 당하는 시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나라적으로 시험을 만나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시험을 만나든지 간에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임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쁘게 여겨야 그 시험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이겨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기뻐해야 이기는 것입니다. 시험을 만났다고 "죽었다! 망했다!"라며 야단법석을 떨면 이미 그것은 진 것입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시련을 기쁘게 여길 때 그 시험을 우리가 무난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파도를 타는 사람은 큰 파도가 몰려올 때 오히려 기뻐하는 법입니다. 또 칼싸움을 하는 무사도 적수를 만나면 오히려 기뻐합니다.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온전히 기쁘게 여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회 때 장애물 경기를 다 해 보셨을 것입니다. 얼마나 즐겁습니까? 때로는 뛰어서 넘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물 밑으로 기어서 통과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무릎이 까집니다. 그래도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깔깔거리면서 모두가 재미있어 합니다. 때로는 밀가루 속에 숨겨져 있는 사탕을 입에 물기 위해서 손을 뒷짐지고 얼굴을 그 속에 쳐 박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온 얼굴에 밀가루 범벅이 되지만, 그래도 그저 즐겁습니다. 시험을 만날 때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씩 통과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끝까지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중도에서 좌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욥과 욥의 아내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욥은 엄청난 시험을 당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서 먼저 물질적인 시험을 했습니다. 욥의 많던 가축이 다 약탈을 당했습니다. 욥의 사랑하는 열 자녀가 사고로 다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하거나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욥1:21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사탄은 물질을 통해서 욥을 쓰러뜨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또 다시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이번에는 욥의 몸을 쳤습니다. 욥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온 몸에 악창이 솟아났습니다. 욥은 너무나도 괴로워서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지고 자기의 몸을 긁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욥의 아내는 견디다 못해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욥2:9의 말씀입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의 아내는 첫번째 시험은 통과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기 남편 욥이 질병의 시험으로 인해서 고통 당하는 것을 보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시험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욥은 달랐습니다. 욥2:10에서 그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그러면서 이 모든 일에 욥은 입술로 범죄치 아니했습니다. 욥은 물질의 시험을 이겨내었습니다. 질병으로 인한 시험도 이겨내었습니다. 아내 곧 사람으로 인한 시험도 이겨내었습니다. 끝까지 인내하고 견뎌내었습니다. 욥이 그 극심한 시련 속에서 이겨낼 수 있었던 동기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욥23:10에서 그는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내가 당하고 있는 시련 속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 이 사실을 욥은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강도를 당했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지니고 있었습니다. 강도가 총을 들고서 말했습니다. "손들어! 그리고 있는 돈 모두 다 내놔!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내놓지 않으면 총으로 쏴 죽일거야!" 그는 강도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몽땅 끄집어내어 그것을 보자기에 싸서 자기의 허리에 꽉 묵었습니다. 그 뒤 눈을 지그시 감더니 강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쏠 테면 한 번 쏴보시오!" 자기가 죽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은 빼앗기지 않다는 배짱입니다. 과연 이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미련한 사람입니까? 여러분, 돈이 소중합니까? 목숨이 소중합니까? 가치관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사실 그 사람만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미련할 때가 많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찮은 것을 가지고 가실 때도 있습니다. 영적인 것이 귀중하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런 것들은 하나도 귀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소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 시시한 것, 별 볼일 없는 것을 가지고 가실 때도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합3:17∼18의 말씀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얼마나 큰 시험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빌4:4의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온전히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자세입니다. 둘째로, 시험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왜 우리가 시험을 만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까? 시험이 주는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유익이 무엇인지 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군인은 훈련을 통해서 더 강해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신앙은 무엇을 통해서 더 강해지고 깊어지는 것입니까? 시험과 시련을 통해서 강해지고 인내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니까 "믿음의 시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순수하고, 강하게 해서 우리의 인내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을 했습니다. 홍해를 건넜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앞서 가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성급했습니다. 인내심이 없었습니다. 조금만 잘된다 싶으면 기뻐하면서 찬송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어려우면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인내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인내심을 만들어 줄 필요를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단시키셨습니다. 광야에는 마실 물이 없습니다. 먹을 양식도 없습니다. 가축을 키울 수가 없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굶어죽지 않았습니다. 목말라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반석에서 생수가 나게 하셔서 그들의 갈한 목을 축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와 그들을 먹여 주셨습니다. 사십 년 광야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신8:3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 인내를 만들어 나갔던 것입니다. 하루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배를 타고서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배의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편안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센 풍랑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큰 물결이 쳤습니다. 물이 배에 부딪혀서 뱃속으로 물이 들어와 배가 잠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다 죽었다! 망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우리가 다 죽게 되었는데 왜 우리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님이 깨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 말씀 한 마디에 바다가 고요해 졌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딱 한 말씀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왜 제자들이 풍랑이라는 시험 앞에서 야단법석을 떨었습니까? 한 마디로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이 있으셨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맡기시고, 갈릴리 거센 풍랑 속에서도 평안히 주무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사건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이 더욱더 강해졌을 것입니다. 만일 그들에게 똑같은 사건이 다시 한 번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까짓 풍랑쯤 예수님은 끄떡도 안하셔!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있는데 안전할거야!" 그런 믿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시련을 통해서 믿음이 더욱더 강해지고 인내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시험의 궁극적인 목적을 살펴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십니까? 4절 말씀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온전하고"는 시간적인 개념입니다. "구비하여"는 공간적인 개념입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꽉 차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아브라함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곳에 가서 일평생 동안 고생하며 살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명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은 또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게 번제로 드려라!"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아브라함을 살인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믿음, 귀한 믿음을 만백성들에게 보여주심으로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는 놀라운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과 같이, 땅의 티끌과 같이 창대케 되는 놀라운 자손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그렇게 시험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 옛날 욥의 아내처럼 중도에 좌절하지 마십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다. 그래서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인내를 이루되 온전히 이루라고 했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 못지 않게 성급한 기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죽 했으면 세계 사람들이 대한민국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단어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바로 "빨리빨리"입니다. 얼마나 조급하고 성급했으면 "빨리빨리"가 우리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겠습니까? 「한국인의 의식구조」라는 책을 쓴 이규태씨의 칼럼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고쳐야 할 의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쿼터리즘(Quarterism)"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15분주의입니다. 영어의 "쿼터"라는 말은 1/4을 뜻합니다. 한 시간의 1/4은 곧 15분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15분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문을 읽어도 15분 이상을 보지 못합니다. 사설도 좀 꼼꼼히 읽고 해야 할텐데 그저 후닥닥 15분만에 읽어버리는 것입니다. 또 식사를 할 때도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면서 먹는 것이 아니고, 15분만에 끝내버립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15분을 견디지 못합니다. 초조하고 불안해 집니다. 어린 아이들은 그보다 더 심합니다. 5분을 못 견딘다고 합니다. 그 분이 지적을 했습니다. 유원지에서 노는 어린 아이들은 한 놀이기구에 앉아서 5분 이상을 보내지 못합니다. 5분만 지나면 초조해 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 놀이기구에서 내려와 다른 기구로 달려갑니다. 우리가 느긋하게 사는 훈련을 해야될 줄 압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우스개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일본 사람과 미국 사람과 중국 사람이 상금을 걸고서 인내심 시합을 했습니다. "누가 더 오래 견딜 것인가?" 그것을 보기 위해서 세 사람을 밀폐된 돼지우리 속에 돼지와 함께 넣었습니다. 오래 견디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있다가 제일 먼저 일본 사람이 뛰어나왔습니다. "더러워서 도저히 안되겠네! 질식하겠어!" 또 한참 있더니 미국 사람이 뛰어나왔습니다. "더 견디다가는 실신해 버리겠네! 더 못 견디겠어." 한참 기다렸습니다. 중국 사람이 안나오는 것입니다. 심사위원들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돼지우리 문을 열고 쳐가 보았더니 중국 사람이 돼지를 베개 삼아서 함께 자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또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결국은 뛰어나왔는데 누가 뛰어나왔습니까? 돼지가 뛰어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 사람의 만만디 기질입니다. 그들의 저력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내를 이루되 온전히 이루어나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셔서 골탕먹이시려고 시험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큰 축복 속에 우리가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우리에게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인내를 이루되 온전히 이루어서 하나님이 마련하신 축복 속에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한 번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합니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끝까지 기뻐하는 것입니다. 웃으면 이기는 것입니다. 울며불며 난리를 피우면 그것은 이미 진 것입니다. 다음으로 시험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인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시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골탕먹이시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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