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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직분론

[스크랩] 창골산 칼럼 제1725호 /몸살을 앓고 있는 몇몇 교회를 보며(2)

창골산 칼럼 제1725호 /몸살을 앓고 있는 몇몇 교회를 보며(2)

 

 제17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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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살을 앓고 있는 몇몇 교회를 보며(2)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바울사도 일행이 3주 정도밖에 복음을 전하지 못한 교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본질인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가 있는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단시일 내에 그러한 교회가 될 수 있었던 원인을 성경은 복음을 전한 바울 사도의 일행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본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살전1:6-7).

 

    작금의 교회 중에는 왜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은 교회를 찾기가 어려운 것일까.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바 교회가 세상의 모델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세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성도들이 생존을 위해 교회와 진리를 멀리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진리를 멀리하는 시대의 조류에 물든 성도들의 마음 탓일까.

 

   물론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건데 그 원인은 아무래도 목회자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바울사도 일행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그리스도의 본을 끼침으로 그 교회가 세상의 본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목회자가 본을 끼친다면 여전히 그러한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와는 다른 시대상으로 인하여 그 어려움이 당시보다는 클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목회자가 본을 끼치지 못함으로 교회가 갈등하며 몸살을 앓는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의 하나를 들자면 성도 특히 장로와의 갈등발생 시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갈등해결의 역기능적 대처이다.

 

    오래 전에 탄탄했던 모 교회가 불과 2, 3년 만에 두 동강이가 난 사례가 있었다. 담임목사인 P목사가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교회는 한두 차례의 불미스런 일로 인하여 일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일이 있긴 했지만 그 일로 인하여 오히려 남은 성도들은 더욱 더 잘 해보자며 한 마음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러나 P목사님이 부임한 후 교회는 완전히 두 동강이가 났다. 얼마의 성도들은 교회를 떠났고 남아있는 성도들도 두 파로 나뉘어 반목을 일삼았다. 다행히 새로운 목회자가 부임하여 각고의 노력 끝에 하나가 되긴 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교회가 두 동강이가 난 원인은 이랬다. P목사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장로님 중에 한 장로님이 목사의 하는 일에 이따금 이의를 제기하고 간섭과 지적을 했다. P목사는 기분이 상하고 자존심이 상하기까지 했다. 장로님의 간섭이 지나쳤는지 아니면 P목사가 간섭과 지적에 유난히 민감하여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P목사는 어느 순간부터 가시(?) 같은 그 장로님을 소외시켜버렸다. 그리고 다른 장로와만 가깝게 지냈다. 그러자 소외당한 장로는 더욱 더 사사건건 목사가 하는 일에 간섭을 하며 꼬투리를 잡아 대항을 했다. 반면 목사는 노회 내의 다른 목사, 장로들에게 그 장로의 흠을 들춰냈다. 삽시간에 그 장로는 나쁜 장로, 목사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못된 장로로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서로가 성도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며 교회는 걷잡을 수 없이 목사파와 소외당한 장로파로 나누어져버린 것이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역기능적인 대처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크게 네 유형으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한 유형은 공격형이다. 이 유형은 상대방의 면전에서 직접적으로 비난을 하거나 따지거나 고함을 지르는 등 당사자와 직접 맞서며 맞대항을 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는 유형이다.

 

    다른 한 유형은 수동형이다. 이 유형은 할 말을 가슴 속에 담아두는 유형으로 참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을 하거나 아니면 우울증이나 설사 등 병으로 터져 나오는 유형이다. 간혹 가족 등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또 다른 유형은 회유형이다. 회유형은 상대방의 비위를 맞춤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는 유형을 말한다. 회유형은 수동형과 비슷하나 수동형이 속이 끓어오름에도 불구하며 참아내며 갈등을 해결하는 유형인데 반해 회유형은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는데 워낙 익숙하여 별로 끓어오르지 않고 비위를 잘 맞추어내는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수동 공격형이다. 이 유형은 당사자와 직접 맞서며 공격을 하는 유형이 아니라 당사자의 뒤에서 공격을 하는 형으로 소극적으로는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만을 골라서 하거나 아니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협력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않는 소문을 퍼뜨려 여론을 조성하여 혹은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고 상대를 소외시킴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는 유형이다. P목사님의 갈등해결 유형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와 같은 건강치 못한 방식을 쓰는가? 그것은 자신의 성장과정과 관련이 있다. 자랄 때 주로 가정에서 부모가 쓰는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간에 혹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 시 부모가 사용하는 방식을 보고서 어려서부터 그대로 행하다보니 그 방식이 자신의 갈등해결 유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건강한 갈등해결 방식으로 여러 가지를 든다. 그 중의 둘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조건적인 수용이다. 상대방도 자라면서 자신의 부모의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학습함으로써 무례하게 간섭하고 지적하는 사람이 되었을 수 있다. 혹은 어려서부터 부모나 선생님 등으로부터 자신의 의견을 수용 받은 경험이 적어 고집이 세어져 자신의 의견을 지나치게 고집할 수도 있다.

 

   그렇다 손치더라도 일단은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줘야 한다. 설령 그 사람의 의견과 지적이 터무니없어도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예, 그런 점도 있군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등의 말로 일단은 받아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특별히 잘못된 의견이 아니라면 상대방의 의견을 따라주는 것도 서로의 관계와 신뢰를 위해서 좋다. 그러다보면 점점 간섭과 지적이 줄어들고, 고집도 누그러지며 적극적인 협력자로 변한다. 칼 로저스는 스스로 변화하도록 도울 수 있는 최고의 도구로 무조건적인 수용을 들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킬 때에도 바로 이 방법을 쓰신 것이 성경에 수없이 기록되어 있다.

 

   둘째, 협의이다. 협의란 상대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합의를 이끌어내는 협상 방식 중 하나이다. 그것은 내 의견을 따르도록 설득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상대방의 의견을 통해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경청하며 수용하며, 공격적 방식이나 수동적 방식이 아닌 혹은 회유적 방식이나 수동 공격적 방식이 아닌 자신의 의사 또한 부드럽게 표현을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의견에 합의가 이루어져 어느 한편이 승자가 되어 상대로 하여금 패배감을 갖게 하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승자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승자가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아직도 갈 길이 먼 내가 이런 글을 쓰고 보니 부담이 된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송남용목사

(창골산 칼럼니스트)

 wdjl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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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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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책을 사랑하는 기술
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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