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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시선 헌신예배설교
학생 헌신 예배
오늘은 색다른 면에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모들이 자식들을 하나님께 헌신시켜야 자녀들이 형통하게 된다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난 아들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바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바친다는 것은 “바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죽여 각을 떠 태워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요새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살인죄 그것도 존속 살인죄로 감옥에 갈 것입니다.
첫째, 이 시련은 축복의 시련입니다. “네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에게는 이 이상의 시련과 고민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큰 일이 났습니다. 외과 의사들은 자기 식구들의 수술을 못한다고 합니다. 손이 떨리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떻게 아들을 죽여 각을 떠 하나님에게 드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떤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잡아 보신탕을 해 먹고 그 아버지는 아이들이 철들 때까지 못 쓸 아버지, 잔인한 아버지 누명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식을 죽이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하나님 제가 대신 죽으면 안될까요?”라고 묻게 될 것입니다. 시련 중에도 시련이요, 어려움 중에도 큰 어려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아브라함아 네가 제사장이 되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네가 제사장이다. 네 손에 제물을 잡고 이삭의 가슴을 푹 찔러 그 살과 뼈가 다 타서 없어 질 때까지 지켜 서서 보고 있어야 한다” 순식간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흘씩이나 모리아 산으로 아들을 데리고 가야하고 그 아이가 제가되기까지 지켜보고 서 있어야 하고 더욱이 한번이라도 “억울하다, 너무 하신다”는 불충한 생각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무자비한 요구를 아브라함에게 하셨을까요? 이 시련의 핵심은 하나님을 위하여 인간적인 모든 애정을 사정없이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 하나님보다 더 귀한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욕심이 많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라시는 요구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기 전에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받쳐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부모님은 자식에게 바라시는 것이 많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이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당연하며 자식이 부모님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불효를 한다 하고, 하나님은 불효한 지식은 돌로 처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많습니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요구하실 수 있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요구에 기꺼이 순종해야 합니다. 자식까지도 기쁘게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기들의 부모, 남편, 형제, 자매, 농토, 재산보다 더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자신, 자기 감정, 자기 연민, 자기 실력, 재산, 건강, 아내, 남편, 자식, 집, 사업, 직장, 오락, 취미, 시간 등등, 오늘 우리가 하나님에게 무엇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습니다. 모두 제 살 날을 생각하여 적당하게 사랑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둘째,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 하나님의 요구를 순종했습니까?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들의 자식을 하나님께 헌신시키고 드린다는 의미를 바로 이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 자식은 우리가 키울 테니 필요에 따라 적절한 도우심만 주시면 됩니다 라는 헌신은 헌신이 아니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2) 무조건 하나님에게 순종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불 신앙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순종과 믿음을 한 단어로 쓰시기도 하셨습니다. “(요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대한 우리들의 대답은 오로지 “예” 밖에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비유하여 말씀하시기를 어떤 고을에 두 아들이 있는데 큰아들은 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예라고 대답은 했으나 놀려 가 버리고 작은아들은 아니오 라고 대답은 했지만 일을 하려 갔으니 어떤 아들이 순종하는 자들인가 라고 물으셨습니다. 두 아들이 다 나쁘지만 예하고 안하는 자식 보다 아니오 했지만 순종한 자식이 더 났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예하고 순종하면 더 말할 필요 없이 좋은 자식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요구에 대하여 항의를 하지 않습니다. 탄원의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구원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한번만 더 봐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을 드리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명령을 거두어 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처음 약속과 다른 약속이라고 따지지 않습니다. 아내나 이삭 장본인과도 의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데 머뭇 거리 지도 않습니다. 아침 일찍 그는 제물로 지정된 사랑하는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다른 곳으로 도망 갈 생각을 추호도 없습니다. 이삭이 반항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 그리고 순종입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재산, 그보다 더 귀한 가정, 그 보다 더 귀한 아내, 자식, 그리고 자기 자신 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3) 그는 기쁘게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습니다. 이런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받혔습니다. 이삭을 한줌의 제가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이삭의 제 속에서 똑같은 이삭을 만들어 아브라함에게 주셨다는 말입니다. 아니 이런 말도 됩니다. 이삭을 바치고 집에를 왔더니 하나님께 바친 이삭이 역시 집에 있어 “아버지 이제 오십니까?”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보다 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시어 제자들을 만나시고 은혜를 주신 것과 같습니다.
4). 부활의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둘째, 이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이 어떻게 자식을 하나님께 드립니까?
1. 예배를 잘 드리도록 받혀져야 합니다.
2. 자식들을 위한 물질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3. 자식들이 몸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해야 합니다. 그 외에도 기도 생활, 말씀 듣고 보는 생활 등을 잘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리 일이면 무슨 일이던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셋째,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엄청난 축복을 받습니다. ① 아브라함은 다시 하나님에게 믿음을 테스트 받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설교한 이 설교문을 여러분들에게 모두 나눠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설교문 가운데 이삭이라는 이름 대신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것을 적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에 여러분의 이름을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과 감정을 솔직히 하나님에게 말씀해 보십시오. 모두 만점을 맞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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