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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랑의 성탄 (요일 3:13-18)

사랑의 성탄 (요일 3:13-18)
 
 
 

  여러분은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의 일부분을 보셨습니다. 이 영화는 1914년 12월 24일 영국, 프랑스, 독일 병사들 간에 실제로 일어났던 기적 같은 ‘크리스마스 휴전의 감동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는 세 나라를 대표하는 세 병사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독일 병사 스프링크입니다. 이 사람은 독일 베를린 오페라 하우스 소속 베터랑 테너입니다. 또 한 사람은 영국 병사 파머입니다. 이 의무병으로 지원했는데 원래는 스코트랜드 성공회 신부입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프랑스 장교 오드베르 중위입니다. 이 사람은 임신한 아내가 있는 북 프랑스 마을이 독일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 이 전투에 임했습니다. 이 세 사람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독일군이 점령한 북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서 한 사람은 독일군으로 다른 두 사람은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으로 불과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서로 한 치의 후퇴도 없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밤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잠시 총격이 멈춘 틈을 타고 스코틀랜드군의 ‘파머’ 신부는 백파이프를 불며 분위기를 돋웁니다. 이에 질세라 독일군도 ‘스프링크’의 멋진 목소리와 함께 크리스마스 캐롤로 화답을 합니다. 프랑스군까지 분위기에 휩싸여 결국 세 나라가 합의하에 ‘크리스마스 임시 휴전’을 선언합니다.

  모두의 손에 쥐어져 있던 권총은 바닥에 버려지고, 서로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음식과 술을 나눕니다. 이제 세 나라 병사들은 ‘파머’ 신부의 집례로 함께 성탄 예배를 드립니다. 이 때 자신의 연인 스프링크를 위해 이 전장까지 따라온 ‘안나’가 3국의 병사들을 위해 아름다운 성가를 노래합니다. 다음 날인 크리스마스 아침, 세 나라의 군 책임관들은 전사자들을 묻어주기 위해 다시 휴전에 합의합니다. 안식 기도를 올리며, 축구를 하며 이미 하나가 된 그들은 이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성탄 이브 병사들은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찾았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병사들은 성탄 이브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 아기 예수를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병사들은 그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니 적군도 귀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나아가 적들까지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병사들은 잃어버렸던 사랑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세상

   사실 병사들은 원치 않는 전쟁에 내 몰려서 살기 위해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저 살벌한 전쟁터에서 저들은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도 우리네 삶의 현장은 마치 저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언젠가 우연히 TV 프로그램을 본 일이 있습니다. MBC의 스타서바이벌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20팀이 출전해서 각종 게임 등을 통해 한 팀씩 차례로 탈락시킨 후, 그중 7팀만 꿈에 그리던 무대 공연을 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입니다.

  실력이나 음악적 재능과 관계없이 게임이나 프로그램의 룰에 따라 어찌 보면 운이 없는 팀이 탈락하게 됩니다. 탈락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애처로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탈락한 사람들이 떠나는 버스를 바라보며 준비했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는 모습에서는 가슴 아픈 눈물이 눈가에 맺혔습니다.

 


   대부분 우리네 인생이 이런 상황 속에 있습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남들은 늘 경쟁자요 심할 경우 적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 모두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인터넷에서 사진 하나를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각박한 세상]이란 제목으로 올려 진 블로그 사진입니다.

  요즘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자전거 타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를 도둑맞는 일이 많아진 모양입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자물쇠로 잠거두는 일이 익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니 자전거를 자물쇠로 잠거두었는데도 두 바퀴를 떼어가고 몸체만 남았습니다. 어찌도 이리 세상이 각박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오늘 날 가장 큰 질병은 나병이나 결핵이 아닙니다. 아무도 자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고 돌보는 사람이 없으며 모든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악은 사랑과 자비가 없는 상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주변의 이 각박한 현실 속에 나 또한 각박함을 더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며 인생을 힘들어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성탄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잃어버린 이 세상에 사랑을 회복시키기 위해 친히 나서셨습니다. 먼저 사랑을 잃어버린 우리를 친히 사랑해 주셨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외아들을 주신 사랑은 그야말로 사랑의 절정입니다.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로마서 5:7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대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였다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보내셨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랑을 하되 “때문에”의 사랑을 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 사랑을 받을 자격과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또 세상 사람들은 “만약에”의 사랑을 합니다. “때문에”의 사랑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랑하려고 할 때 “만약에”의 사랑을 합니다. 비록 지금은 그래도 만일 네가 앞으로 내게 잘한다면 내가 너를 사랑할 것이다. 만일 네가 앞으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왔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때문에”의 사랑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앞으로 잘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만약에”의 사랑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죄인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입니다. 앞으로도 잘 하겠다고 다짐은 커녕 여전히 하나님이 없다고 하며 살던 우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점을 깨달은 사람들은 모두가 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됩니다. 그 사랑 때문에 놀라고 그 사랑 때문에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아들까지 주시는 사랑”입니다.

   롬 8:3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주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얼마 전 아들을 군에 입대시키고 돌아서며 눈물짓는 어머니를 본 일이 있습니다. 아들이 백혈병에 걸리자 의사에게 내 골수라도 다 빼줄테니 제발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머니도 있습니다. 아들이 시험에 실패했다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 쉬던 아버지도 있습니다. 모두가 다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들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인간이 되어 이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저 십자가에 달려 고통 가운데 죽게하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까지 주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점을 깨달은 사람들은 모두가 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됩니다. 그 사랑 때문에 놀라고 그 사랑 때문에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찬송가 294장을 보면 작사가 미타니는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외아들을 주시는 데까지 세상사람 사랑하니 참사랑이로다” 2절에서는 또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난 우리 원수같이 대적하나 사랑하여 주네” 그리고 후렴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죄악에 빠졌던 우리까지 사랑하니 참 사랑하닌가?”

   사랑하는 여러분! 구주 성탄은 사랑의 성탄입니다. 진정 이 땅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참 사랑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영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병사들이 서로 성탄 찬송을 부르다가 서로를 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함께 참호 속에서 고생하는 동료 병사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리 높여 얼싸안고 함께 성탄 개롤을 불렀습니다. 다음으로 저 건너편 자기들과 대치하고 있는 적군을 보게 되었습니다. 말은 달라도 같은 찬송을 부르는 그들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다가가 음식을 나누고 어깨동무하고 찬송을 부르고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나신 이 성탄 아침 사랑의 의미를 다시 깨닫고 잃어버렸던 사랑을 되찾게 되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먼저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을 되찾았다면 먼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의 눈으로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일전에 해외토픽 기사 가운데 조그만 사진 하나를 보았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쌍둥이가 인큐베이터 속에서 서로 마주보며 누워 있는 사진입니다.

  이 쌍둥이가 태어났을 때 나중에 태어난 동생이 심장이 약해서 곧 죽을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한 간호사가 이 둘을 한 인큐베이터 속에 넣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병원 수칙에 위배되었지만 어렵게 허락을 받아서 두 아이를 한 인큐베이터 속에 나란히 뉘어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건강한 형이 팔을 뻗어 아픈 동생을 감싸 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생의 심장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동생은 조금씩 나아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해서 무럭무럭 잘 성장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신문기자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서로를 포옹하고 있는 모습을 사진 찍고 “생명을 구하는 포옹”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의 사랑은 죽어가는 동생을 살립니다. 성탄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제 가까운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가족들을 돌아보십시오. 교우들을 돌아보십시오. 가까운 이웃들을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사랑하십시오.

 


다음으로 원수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성탄의 사랑은 형제 사랑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원수 사랑까지 나아갑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갑니다.

 


  미국에서 아직 노예제도가 살아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노예를 사기 위해서 농장 주인이 신실한 한 노예 [조우]를 데리고 노예 시장을 찾았습니다. 주인은 아무리 둘러봐도 쓸모 있는 노예를 찾기가 힘이 들어서 조우에게 사야할 노예를 골라보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조우가 건강하고 젊은 노예를 사려고 하지 않고 굳이 병들과 늙은 노예를 고집하더랍니다. 워낙 신뢰하는 노예였기 때문에 주인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자는 대로 그 노예를 사서 데려왔습니다.

  집에 와서 주인이 물었답니다. “도대체 왜 저 노예를 샀느냐?” 그 때 조우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저 노예는 저를 유괴해서 노예 상인에게 판 장본인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노예 시장에서 병든 채로 노예로 끌려온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때 제 마음 속에 강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 사람이 하나님께 갈 때까지 돌봐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사자고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탄하신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은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성탄의 아침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깊이 깨닫고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형제를 사랑하고 나아가 원수까지 사랑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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