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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신적 신앙을 극복하자! (딤전 1:3-4)

미신적 신앙을 극복하자! (딤전 1:3-4)

 

 

 

 


   기독교인들 차 안에 십자가를 매달아놓은 것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왜 십자가를 차안에 매달아놓았을까요? 아마도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는 자기가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표현일 것입니다. 차에 달아놓은 십자가를 보면서 그리스도인답게 운전을 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차의 주인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간접적으로 전도를 하려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운전 중에 사고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사 하는 간절한 바람의 표현일 것입니다. 특히 십자가를 달아놓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마음의 위안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실제로 차에 달아놓은 십자가의 영험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문제입니다. 자칫 이 차에 달아놓은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당에게 돈주고 받은 부적을 달아놓은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미신적 신앙 현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에 여러 가지 미신적 신앙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점점 심화되어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미신적 신앙 현상은 기복신앙입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가장 우선적인 이유가 복을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신앙 현상입니다. 그래서 “축복성회”라는 이름으로 집회도 많고, 또 복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모입니다. 또한 헌금도 강요합니다. 헌금을 많이 할수록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교인들을 미혹합니다.

 


   또 다른 미신적 신앙 현상은 예언 제단들입니다.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예언을 합니다. 아이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지 여부, 사업에 성공할 수 있는 지 여부, 결혼을 해야 하는지 여부, 등 교인들의 관심사를 예언합니다. 심지어 예언하며 헌금을 받고, 또 아예 가정에서 제단까지 차려놓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를 사칭한 무당 행위인 것입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미신적 신앙 현상은 치유사역입니다.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교인들을 위해 치유사역을 합니다. 집중적으로 안수하고, 또 안찰이라는 것까지 개발하고, 더 나아가 성령수술이라는 것까지 자행합니다. 그리고 헌금을 강요하고, 더 큰 문제는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적할 수 있는 미신적 신앙 현상은 신비주의적 양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비정상적인 영적 현상에 집착합니다. 지나치게 신비한 체험을 추구합니다. 꿈이나 마음에 일어나는 신비한 동요를 마치 하나님의 음성인양 붙잡습니다. 그리고 열광적 집회 분위기 속에서 영적 카타르시스를 사모합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에 이와 같은 병적인 미신적 신앙 현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교인들의 의식 속에 이와 같은 미신적 신앙의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미신적 신앙 현상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한 마디로 이런 미신적 신앙 현상들은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경륜이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이요, 또한 하나님의 시간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크게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타락한 피조세계를 구원하시고, 궁극적으로 심판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이를 이룰 구체적인 시간표를 정해 놓고 계십니다. 그리고 작게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뜻을 세워 놓고 계시고, 이를 이룰 구체적인 때를 정해 놓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그런데 미신적 신앙은 이런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고 이에 순종하는 일에 걸림돌이 됩니다. 미신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관심은 없고, 그저 자기가 복 받고 자기의 소원을 이루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신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때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지금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미신적 신앙은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는데 큰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 가야할 신앙의 부정적인 측면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미신적 신앙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기복적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복적이라는 점입니다.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달래서 화를 면하거나 복을 받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미신행위 가운데 하나가 굿입니다. 통상 굿은 네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첫째는 청신과정입니다. 무당이 귀신을 모셔드리는 과정입니다. 둘째는 가무오신과정입니다. 초청된 귀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춤을 추고 소리를 하는 과정입니다. 셋째는 신청과정입니다. 무당이 귀신의 소리를 듣고 전달하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귀신의 요구사항이 전달됩니다. 그리고 송신과정입니다. 귀신을 돌려보내는 과정입니다.

 


  굿을 하는 사람들은 인생사의 모든 우환은 다 귀신 때문에 생긴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 귀신을 모셔서 요구사항을 들어드리고 달래고 기쁘게 해 드려서 우환을 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생사의 복도 귀신을 통해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귀신에게 잘 보여서 남다른 복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를 면하고 복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섬기는 대상을 달래려고 애를 씁니다. 귀신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빕니다. 필요하면 비싼 돈을 주고 굿도 하고 부적도 사서 간직합니다. 정성을 다해 치성도 드리고 시주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신의 진노를 피해서 우환을 모면해 보려고 합니다. 신에게 잘 보여서 기대하는 복을 받고자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 생활하는 목적이 인생의 화를 면하고 남다른 복을 받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철저하게 성수주일합니다. 혹시라도 주일을 범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화를 내릴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사람들은 헌금도 철저하게 합니다. 교회 봉사도 정말 열심히 합니다. 하나님께서 잘 보셔서 남다른 복을 주시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수주일을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헌금도 최선을 다해서 드려야 합니다.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목적이 달라야 합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받은 복에 대해 감사하기 위해서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미신적 신앙을 극복하려면 우리 신앙의 초점을 복 받는데 두지 말고 내가 복된 사람이 되는데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복을 받을까를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될까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뜻에 맞게 신들을 변화시켜보려고 합니다. 신들의 힘으로 자기 주변의 환경을 바꿔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코 자신은 변화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신에는 회개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나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변화된 내 모습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복은 받는 것이 아니고 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복은 받아서 가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살면서 이루어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주술적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신의 또 다른 특징은 주술적이라는 점입니다. 주술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국어사전을 보면 '주술'을 '불행이나 재해를 막으려고 주문을 외거나 술법을 부리는 일'이라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예컨대, 가뭄에 비가 오도록 하늘에 주문을 외우며 제사를 지낸다든가, 여러 가지 술법을 통해 마을이나 국가 등 집단의 안녕을 기원한다든가 하는 행위 등을 주술이라고 하고, 그러한 성격을 주술적 성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하여 기원 혹은 노력하는 행위를 주술적이라고 합니다.

 

 

 

 


  일전에 고사 현장에 가 본 일이 있었습니다. 큰 빌딩을 준공하고 입주 직전 고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회장과 중역들이 모두 다 참석했습니다. 회장이 먼저 절하고 돼지 머리로 다가가더니 10만원짜리 수표를 돼지 입에 넣는 것입니다. 이사들도 하나 둘씩 따라서 했습니다.

 


  고사를 끝내고 참석했던 중역들 중에 안면이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소위 일류대학을 나와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인테리였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지금 누구에게 절하셨습니까? 제가 보기에 죽은 돼지 머리에 절을 하셨던데...” 이 분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글쎄요. 누구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 빌딩이 잘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저 앞으로 이 빌딩이 잘되도록 빌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대상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아니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대상에게 절하면서도 뭐라고 불러야 할 지 궁색합니다. 돼지 머리 앞에서 절하면서 “돼지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귀신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딱한 노릇입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에 대해 잘 모를 뿐 아니라 그 신과의 인격적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성황당 돌  무더기 앞에서 복을 빌며 그 비는 대상과 자기와 아무런 인격적 관계를 설정하지 못합니다. 그저 오다가다 누군지 모르지만 줄 수 있거들랑 복을 좀 달라고 비는 형국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술적 특징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하나님에 대해 잘 모르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오래 교회를 다니고서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은 또 누구신지, 그리고 성령은 어떤 분이신지 잘 모릅니다. 아니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정말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교회를 다닐 뿐입니다. 그저 정성을 다해서 예배드릴 뿐입니다. 그저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런 미신적 신앙을 극복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나아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성령님이 누구신지 잘 알고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도마가 고백한 것처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고백하며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숙한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요,  참된 신앙고백과 사랑의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셋째, 이기적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신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이기적이라는 점입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기가 복을 받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척이나 인색합니다. 수억 원씩 돈을 들여 굿을 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단돈 한 푼도 기부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자기가 복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저주하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이기적입니다. 자기중심적입니다.

 

 

 

 


  한 충청도 할머니가 온천 여행을 가셨습니다. 대중탕 한 쪽에서 때를 밀고 있는데 미국 여자가 옆에 와 앉았습니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서 얼굴을 닦았습니다. 가까이서 미국 여자를 처음 본 터라 반갑기도 하고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인사를 건넸습니다. “왔시유...?”

 


  미국 여자는 놀라면서 할머니를 바라다 봤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생각했습니다. “What see you?(왔시유)” 뭘보느냐고 묻는 줄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답했습니다. “mirror" 나름대로 거울을 보고 있다고 답을 한 것입니다.

 


  할머니는 자기 말에 미국인이 대답하는 것이 너무도 신기해서 그 말이 무엇인지 또 생각했습니다. "미러"(mirror) 할머니는 등의 때를 밀어달라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때 수건을 들고 등 뒤로 다가갔습니다.

 


  이 미국여자는 기겁을 하고 벌거벗은 채로 도망을 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이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다른 사람의 형편을 생각하지 못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남이야 어떻든지 자기만 복 받으면 그만입니다. 자기가 잘되는 과정에서 남들이 피눈물을 흘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남들이야 어떻든지 나만 복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은혜 받고 내 기도가 응답 받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남들을 배려하지 못합니다.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올바른 기독교 신앙은 나 외에 하나님을 생각할 줄 아는 것입니다. 또한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그것이 내가 소원하는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그것이 내게 유익이 되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된다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내가 하고 싶지 않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고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내게 손해가 된다고 해도 그것이 공동체에 덕을 세우는 일이라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기적인 생각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성숙한 신앙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미신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신앙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미신적 신앙으로 전락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미신적 신앙을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우선 기복적 신앙을 벗어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술적 신앙을 벗어버려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이기적 신앙을 벗어버려야 하겠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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