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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호 11:8-11)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호 11:8-11)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 말기에서부터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이후까지 약 40년간 선지자로 사역했습니다.

 


   그가 사역을 시작하던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시절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최전성기였습니다. 영토를 솔로몬 시대와 같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확장시켰고, 팔레스틴 주변 국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 시기에 백성들은 정치적인 안정 속에서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호세아 선지자의 눈에는 이 시기가 영적으로 가장 타락한 시기였습니다. 왕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까맣게 잊고 율법을 무시했습니다. 영적으로 음란하게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불의를 자행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그 모든 죄악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들은 선지자의 외침을 듣지 않았습니다. 점점 더 타락을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로보암 2세 이후 정치적 안정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가 왕이 된지 6개월 만에 살룸에게 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살룸도 왕이 된지 1달 만에 므나헴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이런 정치적 불안정으로 나라는 급속도로 쇠퇴하게 되었고, 급기야 주전 722년에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나라가 든든히 섰습니다. 정치적으로 안정을 유지했고, 경제적으로 번영했고, 군사 외교적으로 주변 여러 나라에 영향력을 행했고, 백성들의 삶은 윤택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섬기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그 모든 복을 빼앗게 된 것입니다.

 

 

 

 


   ‘삼중고의 성녀’라고 불리는 헬렌 켈러 여사가 쓴 [있을 때 그 소중함을 모르고]라는 글이 있습니다. 앞부분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다가 잃어버린 후에야

 


그 안타까움을 알게 되는 못난 인간의 습성...

 


  내 자신도 그와 닮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매우 부끄러워집니다.

 


  내일이면 장님이 될 것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다른 감각들을 적용해보시길.

 


 

 


  그렇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받아 누리고 있을 때 그 소중함을 모릅니다. 그리고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고 때늦은 후회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를 복되고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모릅니다.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노력해서 그렇게 된 줄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아닌 우상을 섬기기도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 복을 다 걷어 가신 뒤에야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 잘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호세아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하나님께서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실 수 없으시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1-2절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로 저들을 구원해 내셨지만 점점 하나님께서 멀어져만 갔고, 그 때마다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돌아오라 말씀하셨지만 오히려 점점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버리시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버리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하나님께서 이미 저들을 사랑하셔서 아들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일본 근대화의 주역으로 이노우에 가오루를 손꼽습니다. 이 분이 그렇게 큰일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 가슴 따뜻한 일화가 전해져 옵니다.

 


  이분이 어느 날 중대 회의를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던 중에 난데없이 나타난 괴한들의 습격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맞고 또 칼에 찔렸던지 온몸에 성한 곳이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집으로 업혀 온 그는 형에게 애원을 했습니다. "형, 난 이제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어. 차라리 나를 죽게 해준다면 이 엄청난 고통은... "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절박하게 자신을 안락사 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형으로서 사랑하는 동생을 어찌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 머뭇거리는 형을 향하여 동생은 거의 들릴락 말락하는 소리로 애원을 했습니다.

 


  마침내 형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서슬이 시퍼런 일본도가 형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온몸의 힘을 칼끝에 모으고 힘껏 동생의 목을 향해 내리치려고 할 때 어머니가 뛰어들었습니다. 이노우에 가오루의 피투성이가 된 몸 위에 자기 몸을 던졌습니다. 형은 화급하게 칼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의 호소로 다시금 힘을 모아 치료에 힘쓰기로 했습니다. 그 후 이노우에는 의사들의 정성어린 치료와 어머니의 눈물어린 간호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본의 근대화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바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은 포기할 수 있어도 어머니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포기할 수 있어도 어머니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을 자녀 삼으셨기 때문에 포기하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들이 죄로 인하여 그 심령이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모두가 손가락질 하고 자기 스스로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도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 삼으셨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 사랑하십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듯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잘못을 했을 지라도 버리실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부족하여도 포기하실 수 없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오늘 본문에서 버리시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사랑의 매를 드시는 사랑

 


   오늘 본문에서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민족 가운데 유독 이스라엘만 특별하게 사랑하셨다는 이야기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이스라엘을 아들 삼으신 뒤 어릴 때부터 사랑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친히 걸음을 가르치셨고, 그 팔로 안아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사랑의 줄로 이끄셨고,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손수 양육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이 철부지 아이처럼 하나님의 속을 썩였다는데 있습니다. 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마치 사춘기 아이들이 아빠 엄마에게 반항하듯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매를 드셨습니다. 5-6절을 보면 그 매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앗수르라는 나라가 쳐들어와서 이스라엘을 무참히 짓밟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속국처럼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저들이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입니다. 저들이 견디기 힘든 매입니다. 그동안 저들이 누려온 그 평안이 다 깨져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저들이 누려온 그 윤택함이 다 사라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저들에게 좋은 세월은 다 지나가고 눈물과 한숨의 세월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 가운데 던져 넣으시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으시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분명 사랑의 매일 뿐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주시되 결코 버리시지 않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에게 고통의 시간을 주지만 이것은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고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드시는 사랑의 매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홍서봉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어머니 유씨는 어린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린 홍서봉은 워낙 말썽꾸러기였고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어머니 여긴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다못한 어머니는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매로 쳤습니다. 피가 날 정도로 호되게 매를 들었습니다. 물론 매를 든 날이면 어머니는 골방에 들어가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맞은 데가 아파서 잠을 못 이루는 아들을 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어머니의 매서운 회초리 덕에 서봉은 점차 착실한 어린이가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글공부도 스스로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이때부터 매를 멈추고 회초리를 가장 아끼는 비단에 싸서 장롱에 넣어두었습니다. 서봉이 19살이 되 해 진사 시험에 합격했고, 2년 뒤에는 대망의 장원 급제를 하게 됐습니다.

 


  금의환향해 큰절을 올리는 홍서봉에게 어머니는 장롱 속에 숨겨뒀던 비단 보자기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풀어 반들반들해 진 회초리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오늘 장원급제를 한 것은 이 매 덕이다. 너에게 더없이 고마운 스승이다.”

 


  홍서봉은 어머니의 큰 사랑에 감격하여 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후 어머니에게서 받은 ‘사랑의 매’를 늘 곁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게으르거나 부정한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사랑의 매를 보면서 마음을 바로 잡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매도 매이기에 맞을 때는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매에는 사랑이 담겨있기에 단지 우리에게 고통만 주지 않습니다. 우리를 고치는 약이 됩니다. 우리를 성장시키는 에너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때로는 우리에게 사랑의 매를 드십니다. 때로는 질병으로 매를 드십니다. 때로는 경제적인 시련으로 매를 드십니다. 때로는 명예를 손상시키는 매를 드십니다. 때로는 가진 것들을 잃게 하심으로 매를 드십니다. 또 때로는 모든 관계를 깨뜨리심으로 매를 드십니다.

 


   이때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셨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사랑의 매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매를 달게 받아야 합니다. 그 고통의 매를 맞으며 그 안에 담긴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칠 것을 찾아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믿음이 성숙해져 가야 합니다.

 


2. 회복시키시는 사랑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매를 드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들을 돌이켜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매를 드셨으나 그 마음이 편치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매를 맞는 우리는 몸이 아프지만 매를 때리시는 하나님은 그 마음이 아프시다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본문 8절에서 하나님의 그 아픈 마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불붙듯 뜨겁게 타올랐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홍서봉의 어머니가 매를 때리고 골방에 들어가 소리 없이 울었던 바로 그 마음입니다. 그리고 매를 맞아 아파서 잠을 자지 못하는 아들 생각에 그 마음이 아파 잠을 자지 못하던 바로 그 마음입니다.

 


   우리는 고통 중에서도 함께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이 고통 가운데 눈물 흘리고 있을 때 결코 모른 척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 고통을 무심히 바라보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함께 아파하시고 함께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 중에서도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라는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매를 맞고 고통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라보시며 마음으로 아파하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구체적으로 회복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십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을 회복의 길로 나아오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11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는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결국은 그 고통 가운데서 건져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매를 맞았으나 싸매주시고 회복시켜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미국 보스턴의 한 정신병원의 지하 병동에 한 소녀가 격리 수용돼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심한 정신병을 앓던 중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서 치료를 해 보았지만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회복 불가능이라는 진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도 어찌할 바를 몰라 아이를 포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한 은퇴한 간호사가 이 소녀를 찾았습니다.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 동안 끊임없이 주님의 사랑으로 이 소녀를 품었습니다. 그러자 소녀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세상을 향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정신질환이 깨끗이 치유되었습니다.

 


  마음의 빛을 찾은 이 소녀는 어둠 가운데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바로 이 소녀가 헬렌 켈러를 세상의 빛으로 이끈 앤 설리번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사람들이 포기할 사람일지라도 그 능하신 손길로 회복시키십니다. 자신도 스스로 포기한 사람일지라도 그 능하신 손길로 회복시키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자녀로 사랑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저질러 드리더라도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회초리를 드셔서 매를 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를 회복시키셔서 굳건하게 세우십니다. 어버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사시기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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