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개역개정)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지난 주일에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 6가지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믿음과 꿈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기도와 성령과 사람의 노력을 통해서 일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 몇 가지를 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공동체로 일하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성부하나님만 일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자와 성령께서 함께 일하셨습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도 성부께서 계획하셨고 성자께서 완성하셨고 성령께서 적용하시는 것입니다. 공동체로 일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도 공동체로 존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6일째에 사람을 만드신 후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독처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홀로 사는 것보다 공동체로 존재하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창조를 마치신 후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사람에게 복을 주신 일입니다. 사람은 만들어지자마자 5대 축복을 받았습니다. “생육하라. 번성하라.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 그런데 이 5대 축복은 아담 혼자만 있어서는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속사를 이루어 가시는데도 공동체를 통해서 일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민족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 민족이 바로 유대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이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구속사를 이루어나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에는 역시 홀로 사역을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공동체로 움직이셨습니다. 제자들도 12사도로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고, 70문도로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전도를 나갈 때에도 둘씩 짝을 지어서 공동체적인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교회 공동체를 무시하고 나 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사 5:8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저지르는 악한 일에 대해서 다루면서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 가운데 홀로 거하려 하는 자들은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에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사람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 4:8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이 말씀은 표준 새번역을 읽으면 아주 쉽게 이해가 됩니다. “한 남자가 있다. 자식도 형제도 없이 혼자 산다. 그러나 그는 쉬지도 않고 일만 하며 산다. 그렇게 해서 모은 재산도 그의 눈에는 차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끔, "어찌하여 나는 즐기지도 못하고 사는가? 도대체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수고를 하는가?" 하고 말하니, 그의 수고도 헛되고, 부질없는 일이다” 가정이 없이 홀로 사는 사람의 슬픔을 노래한 것입니다. 전 4:9-12을 보면 공동체의 유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9절을 보면 혼자보다 공동체가 낫습니다. 공동체로 수고할 때 좋은 상을 얻습니다. 10절에 보면 넘어지면 서로 일으켜줄 수 있습니다. 11절에 보니 공동체로 있을 때 따뜻합니다. 몸만 따뜻한 것이 아니라 마음도 영혼도 따뜻해집니다. 12절에 보면 공동체로 존재할 때 강하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레드우두라는 수령이 4천 년이나 된 나무가 있습니다. 어떻게 4천 년 동안 수많은 태풍이 지나갔는데도 쓰러지지 않고 서있을 수 있었을까요? 비결은 그 나무의 뿌리에 있습니다. 그 나무는 옆에 있는 나무들과 뿌리가 엉키고 엉켜서 폭풍우가 몰아쳐도 4천년 동안이나 쓰러지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는 것입니다. 연합의 힘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공동체의 중요성을 알고 공동체와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는 100만 명이 넘는 교인들이 내 교회가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형교회에 출석하지만 교회에 등록을 하지 않고 익명으로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주일이면 이교회로 저 교회로 떠돌아다니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고 본인들에게도 불행한 것입니다. 성경은 믿는 사람들을 군인으로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를 군대라고 말씀합니다. 군인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소속이 있는 것입니다. 소속이 없는 군인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는 누구든지 자기의 소속이 분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교회를 출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등록을 하고 적을 두고 교회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어린이 주일학교, 학생회, 청년회, 남녀선교회 그리고 구역 등 자신의 소속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개인에게 기름을 부어 인도하시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므로 교우들은 내가 속한 공동체와 운명을 함께 한다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발견한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교회 공동체를 이끄는 목회자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그리고 교우들이 그 일에 동참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십니다. 그러므로 교우들은 목회자를 통해서 받은 교회의 비전에 함께 관심을 갖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동참하여 헌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공동체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2. 하나님께서는 직분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직분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대표적인 직분은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 직분입니다. 이 직분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혹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왕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중보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켰고 광야 40년 동안 인도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모세가 혼자 하기는 너무나 벅찼습니다. 그래서 출 18장에 보면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세워서 모세의 일을 분담하게 합니다. 출 18:23에 보면 이스라엘 가운데 직분자를 세우는데 그냥 세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직분자를 세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하실 때에 12명의 사도들을 세우셨고 그들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주님은 밤을 새워 기도하시고서 12명의 제자들을 세우셔서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둘씩 짝지어서 파송하시며 주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게 하셨습니다. 초대교회에는 급속한 부흥이 일어나면서 문제가 생기니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사역에 전무하고 일곱 집사들은 교회의 재정출납, 구제 등의 일들을 하여 사도들의 사역을 도왔습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에는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서리집사, 구역장, 교사, 찬양단 등의 다양한 직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가운데 이런 직분자들을 세우신 것은 직분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명예가 아니라 섬김의 직분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직분이 명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직분은 원래 사역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직분을 받았으면 사역을 해야 합니다.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면 직분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에는 사역은 하지 않으면서 직분을 차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직분을 받았으면 사역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은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충성입니다. 직분자들은 교회의 직분을 세상의 직책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직분자들은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자세로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전옥표씨가 쓴 「이기는 습관」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에버랜드 사원교육을 할 때마다 나오는 한 사람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가족들과 함께 에버랜드에 놀러온 어떤 부인이 실외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 변기에 그만 반지를 빠뜨렸습니다. 부인은 발만 동동 구르며 속상해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유해원’대리가 망치를 가져와 간이화장실 벽과 변기를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마침내 배설물들이 바닥에 질펀하게 드러나자 일일이 손으로 변을 골라가며 1시간여를 헤집은 끝에 기어이 반지를 찾아내 부인에게 전해드렸습니다. 대단하죠. 사실 유해원 대리는 그렇게까지 할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일하는 일터에 찾아온 손님에게 반지를 찾아 주어야 한다는 열정으로 그런 일을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에버랜드의 전설적인 일화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유해원 대리와 같은 자세로 주의 일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을 하지 못하겠어서 주의 일 하면서 코피만 흘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직분에 충성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직분에 충성할 때 하나님의 일은 되어지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능력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달란트와 은사 그리고 후천적 재능입니다. 이 세 가지는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좀 차이가 있습니다. 달란트는 타고난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은사는 후천적인 능력인데 자신의 노력보다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측면이 강합니다. 후천적 재능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습득하게 된 능력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선천적인 것이든 후천적인 것이든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주의 일을 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기왕이면 큰 능력을 갖기를 원합니다. 능력은 도구라고 했습니다. 땅을 팔 때 맨손으로 파는 것과 삽으로 파는 것은 다릅니다. 여러분이 맨손으로 파고 있는데 제가 포클레인을 가지고 나타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달란트의 비유에 보면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을 불러서 각 사람에게 달란트를 맡깁니다. 그리고 타국에서 돌아와서 종들을 불러서 결산을 합니다. 이 달란트 비유에서 우리에서 가르쳐주는 진리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우리가 가진 능력은 주인의 것입니다. 주인이 맡긴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둘째, 우리는 그 능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들은 즉시 장사를 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 달란트를 묻어두었습니다. 우리는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반드시 우리의 능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능력 때문에 주님과 반드시 결산을 해야 합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이 모든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넷째, 결산 후의 생활이 맡은 능력을 사용했느냐 사용하지 않았느냐로 결정 된다는 것입니다. 맡겨진 능력을 사용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는 주님이 많은 것을 맡기시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맡겨진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겨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밥 먹고 사는 수단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단지 돈을 버는 데만 사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 능력을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은 물맷돌을 잘 던지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때 그 능력은 노력을 통해서 습득한 후천적 능력입니다. 다윗은 그 능력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했습니다. 또 다윗은 글을 잘 쓰는 문학적인 능력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능력으로 성경을 기록하는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또 다윗에게는 노래를 잘하고 악기를 잘 다루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음악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이 고통을 당할 때 악귀를 쫓으므로 사울을 도왔습니다. 다윗은 가진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노래를 잘하면 찬양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악기를 잘 다루면 반주자로 섬길 수 있습니다. 손재주가 있으면 그 재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재능기부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재능기부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내가 가진 재능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되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몇 년 전에 전라남도 고흥에 있는 금동화평교회에서 화장실을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금동화평교회 주현광 목사님은 재정지원을 원했는데, 우리교회에서는 건축과 관련된 일들을 하시는 몇 분이 내려가서 화장실을 지어주고 왔습니다. 재능기부입니다. 우리교회에서 여러분들의 헌신으로 필리핀에 사랑의 집짓기를 하고 있습니다. 10채를 지었고 지금 또 한 채를 짓고 있습니다. 8채는 순교한 조태환 선교사님이 지었습니다. 한 채는 사모님이 3년 만에 지었습니다. 또 한 채는 우리 교회에서 건축 일을 할 줄 아는 분들이 단기선교를 가서 지어주었습니다. 그 집을 짓고 나오는데 쌍무지개가 떴었습니다. 재능을 기부한 것입니다. 재능 기부는 나의 재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되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업의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은 물질로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내년 1월에 미자립 교회 청소년 무료 수련회를 하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약 1천 5백만 원 정도의 돈이 든다고 합니다. 이럴 때 물질의 능력을 받은 분들이 있어서 물질로 섬겨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제가 가진 능력 중에 하나가 기도의 불을 붙이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청소년 수련회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성령을 받았고 그 결과 제 인생이 완전히 새롭게 변화 되었습니다. 저는 겨울 수련회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사역을 통해서 저와 같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경험하는 학생들이 나올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성악가 중에 호세 카레라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987년 7월 오페라 「라보엠」의 주인공을 맡아서 촬영하던 도중에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백혈병이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면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노래하겠습니다.” 그는 기도 응답으로 백혈병에서 완전히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 후 그는 백혈병 재단을 세우고 자신의 공연비의 50%를 떼어 백혈병 환자들에게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전도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성경의 핵심 구절은 요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원인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께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게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누구도 실수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해도 하나님은 그 실수까지도 이용하셔서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모두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전 심지어 중증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까지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신 것만이 아닙니다. 사람을 양육해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양육하시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부모의 마음에 부어진 사랑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양육하시는 방법 중에 아주 요긴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의 마음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사랑의 마음 때문에 부모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태어나면서부터 골칫거리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울기 시작하죠. 젖 달라고 보채죠. 시도 때도 없이 똥 싸지요. 자식은 가정 살림에 조금도 보탬이 되질 않습니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재산을 축내는 입장입니다. 어린이집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돈이 들어가는데 한정 없습니다. 다른 아이들한테 뒤지면 안 되니 학원 보내야지요. 남들한테 맞고 다니면 안 되니 태권도도 가르쳐야지요. 음악도 잘했으면 해서 피아노 학원도 보내지요. 대학 들어가면 학비는 얼마나 비싸요. 재수라도 해보세요. 수 억 써가며 졸업시켜놓았더니 직장생활 하면서 월급을 타면 부모에게 줍니까. 용돈 몇 푼주면서 얼마나 생색을 냅니까.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는 일도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결혼식만 해주면 됩니까. 남자아이는 방이라도 마련해줘야죠. 여자아이는 혼수 장만해야죠. 결혼하면 끝나나요. 자식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 재산 빼먹을 생각하지요. 그런데 부모들은 이런 것 다 알면서 달라는 대로 주고 필요를 따라 공급해줍니다. 허리가 휘도록 고생하면서 자식 뒷바라지 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하나님께서 부모의 마음에 자식사랑을 ! 부어주셔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의 마음에 있는 사랑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청각 전도사 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전 인간적인 조건으로 보면 장가가기 힘든 형편이었습니다. 제가 아내를 만날 때 제 한 달 사례비가 5만원이었습니다. 생활은 교회 유아실에서 했고요. 결혼할 때 축의금은 아버지 빚 갚는데 썼고요. 돈이 없어서 신혼여행은 제주도도 못 갔습니다. 그 때 몸무게가 58kg 이었으니 뭐 볼게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정을 이루게 하시는데 어떻게 하셨는지 아십니까? 제 아내 눈에 콩깍지를 씌워가지고 저한테 반하게 하신 것 아닙니까? 물론 서로 반했지만 말입니다. 아내가 저를 사랑하게 되니 저를 위해서 헌신해서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고 목회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내의 마음에 있는 저를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서 일하신 것입니다. 목회자가 되어 교인들을 보니 감사한 일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데 새벽기도 하는 사람들, 중보기도 하는 사람들, 철야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청소 쉬운 일 아닌데 말없이 봉사하니 감사하고요. 교회 관리에 손길이 필요하면 말없이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일이면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교회에서 수고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열심히 교회 일을 하면서도 주님 앞에 기도할 때는 충성하지 못했다고 회개합니다. 수요일이나 금요일에는 하루 종일 세상에서 일을 해서 피곤할 텐데 교회로 달려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직장일로 예배에 늦기라도 하고 빠지기라도 하면 목사보기 미안해합니다. 교회 행사가 있으면 몸 드리지요. 물질 드리지요.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목사는 감사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를 위한 이런 무보수 수고가 재 정신으로 가능할까요? 재 정신으로는 안 됩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살전 1:3에서 ‘사랑의 수고’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수고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상대를 위해서 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사랑을 부어주시니까 돈도 받지 않으면서 열심히 수고하고, 정성을 다해서 교회를 돌보고, 내 돈 써가면서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