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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활하신 주님

부활하신 주님
본문 : 사도행전 1장 1 - 11절 마경훈 목사

본문 : 사도행전 1장 1 - 11절(개역개정)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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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유대인으로서 미국에 살던 노부부가 성지순례차 고향 땅 이스라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장의사를 찾아 시신 처리와 장례 절차를 물었습니다. 장의사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묻힐 경우 축복도 받고 비용도 150달러면 충분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시신을 방부 처리해 미국으로 공수하는 방식인데, 절차도 번거롭고 비용도 5000달러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인은 망설이다 결심했습니다. 비싸더라도 미국으로 시신을 옮겨 묘지에 묻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단한 부부애인 것 같지만 사실은 노인에게 혹시 유대 땅에 묻히면 그 옛날 어느 분처럼 자기 아내가 부활할지도 모르는데, 그게 감당하기 어렵다는 ‘뼈 있는’ 이유였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부활도 중요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흔히 복음을 말할 때 주님의 십자가만을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성경은 주님이 지신 십자가와 동시에 주님의 부활을 말씀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자전거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정상적인 자전거는 두 바퀴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복음은 십자가만이 아니라 부활까지 포함되는 것입니다. 롬 1:2에서는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한 후에 계속해서 주님의 나심과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합니다. 고전 15:1부터 바울이 전한 복음을 설명하면서 예수님이 성경대로 우리를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음을 말합니다. 주님도 자신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언급하실 때는 부활도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마 16장에 보면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부터 주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 17:22, 23에도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설교는 부활을 믿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부활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확신하고 부활하신 주님의 행적을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40일 동안 친히 사심을 나타내시며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성령과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이 때 두 천사가 제자들에게 주님은 하늘로 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럼 부활하신 주님의 행적을 살펴보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봅시다.
1. 부활하신 주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3절에 보면 주님이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시며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40일 동안 많은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40일간의 모든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일]입니다. 그만큼 부활하신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은 눅 17:21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2천년 전에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천국생활도 가능하고 지옥생활도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내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천국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 살아도 마음에 악과 미움과 사단이 역사하면 지옥생활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얼굴이 확실히 밝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 교우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서도 기쁨이 충만했던 이유는 바울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롬 14:17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령 안에서’입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공간적인 개념보다는 통치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나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교회에 있어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나라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는 미국대사관은 한국 땅이지만 한국의 법에 의해서 지배당하지 않는 치외법권지역이기 때문에 한국 땅이지만 어찌 보면 미국 땅인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일군을 세우신 목적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사역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역은 일군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군을 세우기 위하여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하신 후에 12명의 제자를 부르셨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셨으며 그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군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흩어진 제자들을 찾아다니시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사심을 나타내보이셨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행 1:8에 보면 성령이 임하신 목적은 성령 받은 자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그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함입니다. 롬 14:17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능력을 주십니다. 행 1:8에 보면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권능을 받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라고 권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능력 받고 싶어 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습니다. 물질적인 복, 세속적인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성령의 능력을 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그 모든 것을 더하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지 않고 그 모든 것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도 그 모든 것도 오지 않는 것입니다. 마차 앞에 말을 매달면 말이 움직이면서 마차도 같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마차를 앞에 세우도 말을 뒤에다 묶어두면 말도 움직이지 못하고 마차도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능력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고 그 모?! ? 것도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증거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행 1:8에 의하면 우리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이유는 결국 복음을 증거 해서 영혼을 건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성령을 부어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목적을 상실한 채 성령과 능력을 받아서 엉뚱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복음 증거로 확장되는 이유는 결국 사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진 만큼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의 관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도 역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행 28:30, 31에 보면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2년 동안 셋방살이를 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그의 메시지를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둘째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관심이 하나님의 나라였고 사도바울의 메시지의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였다면 우리의 관심은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성령과 능력을 주신 주님의 소원대로 복음을 증거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2.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9절에 보면 말씀을 마치신 주님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하늘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히 12:2). 그럼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이 그곳에서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주님은 지금 몇 가지 일을 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면 신앙생활에 많은 힘이 될 것입니다.
먼저 주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들이 주님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해주십니다. 히 4:14, 15을 보면 주님은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은혜의 보좌입니다. 그 은혜의 보좌 앞에 주님을 힘입어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힙 입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우리들은 주님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할 수 있고 은혜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는 말이 좋습니다. 햇빛이 필요할 때는 햇빛을 바람이 필요할 때는 바람을 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은 찰스 시어즈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폭풍우 허리케인으로 얼마나 바람이 센지 호수의 제방이 무너져서 호숫가에 살던 찰스 시어즈 집에 물이 잠겼습니다. 아내, 3명의 자녀와 함께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물은 점점 불어오고 꼼짝없이 죽게 됐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이젠 틀렸어요. 다 죽게 됐어요.”라고 하니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여보 우리는 살 수 있어요.” 아내가 ‘우리는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생각이 나더래요. 오랫동안 하나님을 잊고 교회를 떠나 살았는데 그래도 예수님이 생각이 나는데요. 힘이 생기더랍니다. “여보! 우리가 주님을 잊고 있었네요. 주님이 살려주실 거예요.” 그러는 순간에도 물이 점점 차올라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가족들은 겨우 목만 물 밖으로 내 놓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물속에 잠깁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도우시는 예수님을 ?! 珝▤求? 힘이 나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432장) 찬송을 부르는데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는지 소망을 감당할 수 없어서 찬송을 부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겁니다. 그 순간 주님이 내려다보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놀라운 일은 호숫가에 있었던 한 낡은 배 하나가 자기네 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족은 그 배를 타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려울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를 따라서 크신 은혜를 주십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중보기도 해준다면 그것은 굉장한 힘이 되는 일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중보기도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중보기도 가운데 특히 자녀를 위한 부모의 중보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윤정순 권사님 아들 세권이가 지금은 캐나다에 언어연수를 가 있는데 이 친구가 군대생활을 하다가 뇌에 피가 가득 고여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뇌가 한쪽으로 밀릴 정도로 피가 가득했는데 아무런 이상 없이 건강한 몸으로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중보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역사라고 믿고 있습니다.
전에 조덕례라는 집사님이 계셨는데 그 아들이 군대에서 운전병을 했습니다. 하루는 차량운행을 하다가 실수로 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었고 그는 두려워서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의 기도하는 환상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동차가 낭떠러지에서 옆으로 비스듬히 뻗어있는 나무에 걸려서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들은 자녀를 위하여 새벽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이 어머니의 기도를 통해서 자녀들에게 역사하십니다.
사람들의 중보기도도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롬 8:34에 보면 주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지금 우리들이 거할 영원한 천국 집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요 14:2, 3을 보면 주님이 우리를 위한 거처를 예비하기 위하여 하늘나라에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거처를 예비하시면 우리를 영접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서 부자로 살지는 못해도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은 영원한 천국 집이 준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지금도 저와 여러분이 거할 방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김명혁 목사님은 천국은 기쁨과 축복이라고 말하면서 세 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첫째, 천국은 주님을 만나 보는 곳이고 앞서 간 성도들을 만나 보는 곳이기 때문에 기쁨과 축복입니다. 중세 수도사들의 삶의 목적은 ‘비지오 데이’(Visio Dei) 즉 하나님을 만나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높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도 하고 높은 기둥 위에 올라가서 기도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꿈에서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천국은 고통과 아픔과 슬픔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기쁨과 축복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힘들어지는 일도 많지요. 어떤 때는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요. 천국은 고통과 아픔과 슬픔이 없는 곳입니다. 셋째, 천국은 상급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기쁨과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팔복의 말씀을 다 하신 다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2)고 말씀했습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여야 할 이유 중의 하나는 천국에서 우리가 받을 상이 크기 때문이라는 말씀! 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세상에서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하고 고생한 사람들은 천국에서 받을 상이 큽니다.
나는 하늘보좌 우편에 계시는 주님 때문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고, 그분이 나를 위하여 중보기도 하고 계시고, 나를 위한 거처를 예비하고 계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주님 때문에 염려 없이 살 수 있습니다.

3.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은 심판자로 다시 오십니다.
11절에 보면 주님이 승천하실 때 나타났던 두 천사가 주님은 하늘로 올려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 25:31에 보면 다시 오시는 주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모든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영광의 보좌에 않으시고 온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심판의 결과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마 25:46에 보면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합니다. 심판의 결과는 영벌과 영생입니다. 영생과 영벌을 나누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마 25:1-13에 보면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했느냐 아니면 등은 있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느냐로 영생과 영벌이 결정됩니다. 마 25:14-30에서는 주어진 달란트에 충성했느냐 불충했느냐에 따라서 영생과 영벌이 결정됩니다. 마 25:31-46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를 섬겼느냐 섬기지 않았느냐로 영생과 영벌이 결정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영생과 영벌은 믿음으로 결정된다고 알았는데 마 25장 내용만을 보면 마치 영생과 영벌이 인간의 행위로 결정되는 듯한 인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전체를 보면 영생과 영벌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할 때 우리 편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지만 사실은 하나님 편에서 그만한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몇 일전에 아내 생일을 맞이해서 가족들이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아주 비싼 식당은 아니었지만 우리 아이들이 계산하기는 좀 어려운 가격이었지만 제가 아이들을 대신해서 대가를 치렀습니다. 아이들은 저 때문에 아무런 계산도 하지 않고 자기들이 계산할 수 없는 식사를 한 것입니다. 요 3:16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치르신 엄청난 대가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몸을 채찍에 맞아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고 이미 탈진된 상태에서 60kg이 넘는 십자가의 가로막대를 짊어지고 600m의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으며 양손과 양발이 대못에 박힌 채로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스위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관광버스가 손님을 싣고 관광지에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관광객들은 모두가 지쳐 잠에 빠져 있었는데 마지막 내리막길에 들어선 순간 운전사는 브레이크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로 내리막길에 접어든 버스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당황한 운전사의 떨리는 눈동자에서는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에 펼쳐진 다섯 개의 급 커브길이 보였습니다. 버스에 점점 가속이 붙자 눈을 뜬 관광객들은 뭔가 이상이 생긴 것을 눈치 채고는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고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운전사는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커브 길을 한 개, 두 개, 잘 운전해 나갔습니다. 마침내 그는 마지막 커브 길을 통과하였고, 모든 관광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저 앞에 자신들의 마을이 보입니다. 이제 마을 모퉁이 어디엔가 버스가 자연히 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때 마을 입구 신작로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란 운전사는 경적을 울리며 피하라고 소리까지 쳐댔습니다. 모든 어린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피! 했지만 아직 한 아이가 그 자리에서 우물거리고 있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순간 운전사는 관광객을 살려야 할지 저 어린아이를 살려야 할지 갈등하다가 결국 어린아이를 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버스는 예상대로 건너편 언덕에서 멈춰 섰습니다. 운전사는 차가 서자마자 그 아이에게로 뛰어갔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품에 안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살인자! 살인자! 하며 야유를 하였습니다. 그 순간 어느 젊은이가 외쳤습니다. "모두들 그만둬요, 저 아이는 바로 운전사의 아들이란 말이예요." 하나님은 그분의 독생자를 죽이시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 당신을 살리기 위해 준비해 주신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세상 이치는 소원리가 대원리에 지배를 당합니다. 예를 들어서 서울시에서 어떤 조례를 만들었습니다. 그 조례는 헌법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도 은혜의 법의 지배를 당합니다. 왜냐하면 은혜의 법이 율법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법에 의하면 믿으면 영생입니다. 율법은 행위로 영생과 영벌을 결정하지만 은혜의 법은 믿음으로 영생과 영벌이 결정됩니다. 롬 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요일 5:11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은 심판자로 다시 오시는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들은 그분을 모시고 있으며, 그분을 모신 결과 이미 영생을 소유했으니 심판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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