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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요나의 신앙

요나의 신앙
본문 : 요나서 2장 1 - 10절 마경훈 목사

본문 : 요나서 2장 1 - 10절(개역개정)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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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를 하는 사람은 고기를 낚지, 물을 낚지 않습니다. 낚시할 때는 고기를 잡아야지 물을 퍼 올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교회에 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올려드릴 때 말씀을 낚고 은혜를 낚아야 합니다. ‘이 교회는 전깃불이 밝네, 어둡네.’ 이런 쓸데없는 것만 생각하다가 좋은 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말씀에 집중하고 말씀을 들어야 거듭나게 되고 믿음이 성장하고 사명을 발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므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벧전 1:23에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신앙생활을 출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창 12장에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신앙생활을 출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창 12:1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라고 시작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므로 신앙생활을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은혜를 못 받은 사람도 설교를 잘 들으면 곧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사명의 길을 가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므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사명이 있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되면 그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으로 말씀하시고, 설교로 말씀하시고, 영음으로도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음에 대해서는 부정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속에서 우리의 영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영음을 듣게 되면 그 음성을 분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탄도 성령님을 흉내 내기 때문입니다. 어느 장로님이 많은 돈이 필요해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제게 돈 좀 주세요. 제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새벽,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야, 네가 돈이 필요한 것을 내가 안다. 내일 새벽 기도 시간에 새벽 기도하러 오지 말고 삽과 괭이를 가지고 네 동네에 있는 산에 올라가 기다리고 있어라. 해가 떠오르거든 해에게 열 번 절하고 네가 서 있는 곳의 땅의 파라. 석 자를 파면 항아리가 나올 것이다. 그 항아리 안에 금 은 보화가 가득할 것이니 팔아서 써라.”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이겠습니까? 이것은 마귀의 속임입니다. ‘새벽기도 하지 말라. 태양에게 절하라.’라는 말이 어찌 하나님의 음�! 봉隔黴윱歐�? 일반 교인들도 다 알 수 있는 일인데, 그 장로님은 금 은 보화가 가득한 항아리라는 말에 정신을 잃어 새벽기도도 하지 않고 산으로 가서 들은 말대로 태양을 향해 열 번이나 절하고 땅을 팠답니다. 석 자를 파도 항아리가 나오지 않으니 하루 종일 팠답니다. 그래서 손이 다 부르텄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신 것이 아니라 마귀가 속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태양보고 절하라고 하시겠습니까? 영음도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나서에 보면 하나님은 몇 번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에게 들린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이 확실했습니다. 첫 번째 들린 하나님의 음성은 1:2입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죄악으로 완전히 타락한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으니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음성을 듣는 일이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욥바로 가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길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배를 탄 요나는 배 밑창에 들어가서 잠을 잡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큰 바람이 불게 하시고 폭풍으로 인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공들이 살아보려고 노력하다가 서로 말합니다.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왔는지 알아보자”하고는 제비를 뽑으니 요나가 뽑힙니다. 이 때 요나가 솔직하게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바다가 점점 더 흉용해지니 무리들이 할 수 없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됩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자 하나님이 준비시키신 커다란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게 됩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밤낮 삼일을 있게 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가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고백하자 하나님께서 그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쓴맛을 본 요나가 이번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니느웨로 갑니다. 그리고 니느웨 성을 돌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칩니다. 그런데 니느웨성 백성들이 굉장한 반응을 보입니다.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큰 성인데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쳤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이 베옷을 입고 회개합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행했던 모든 악에서 떠날 것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래 니느웨성을 40일이 지나면 멸망시키시려고 했는데 그들의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요나의 불신앙적인 모습, 요나의 불순종, 요나의 십 이만 명이 넘는 니느웨의 영혼보다 박넝쿨을 더 사랑하는 빗나간 사랑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하나님께서 요나의 신앙의 장점들을 조명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요나의 장점을 보면서 지금까지 요나를 부정적인 면으로만 바라보고 그를 비판했던 우리보다 더 좋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충만히 받으시고 요나보다 나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책임감입니다.
죄가 인류에게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기보다는 남의 탓을 하는 죄성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아담은 하와에게 핑계를 하고, 하와는 뱀에게 핑계를 합니다. “내 탓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저 사람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요나는 이런 면에서 훌륭합니다. 풍랑이 거세지니 뱃사공들이 이 풍랑이 누구로 인함인가 제비를 뽑았습니다. 하필이면 요나가 뽑히게 됩니다. 이 때 요나는 “무슨 소리, 왜 나 때문에 풍랑이 일어납니까? 나는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 탓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뱃사공들이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라고 묻자 요나는 “나를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라고 대답합니다. 요나는 자기 때문에 폭풍을 만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 책임을 지고 바다에 던져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책임을 알고 책임지�! � 사람입니다. 김동호 목사님이 영락교회 부목사시절에 알게 된 집사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분이 친구 보증을 섰는데, 친구가 갚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빚쟁이들이 그 집사님을 찾아와서 빚을 갚으라고 독촉을 합니다. 그 집사님이 “내가 집을 팔아서 갚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빚쟁이들이 집사님의 말을 믿지를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집사님이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한다고 하면 합니다”라고 말하고 그 당시 세검정의 집을 팔았습니다. 그 당시 세검정의 집은 값이 꽤 나갔습니다. 그 집사님이 그 집을 팔고 빚을 갚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보증을 선 사람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집사님이 세검정 집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변두리에 집을 산다고 한남대교 리버사이드 호텔 아랫골목에 120평짜리 집을 샀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변두리 가격이 오르더니 지금은 한남대교 집을 팔아서 옛날 세검정 집을 3채를 사고 돈이 조금 남는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친구의 빚보증을 책임을 지니 하나님께서 그분을 책임져 주신 �! 痼都求�. 우리 모두에게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할 내 몫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책임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목사의 책임과 평신도의 책임은 다른 것입니다. 장로의 책임과 평신도의 책임도 다른 것입니다. 목사가 평신도 정도의 책임만 지려고 한다면 목사로서 실격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의 책임, 말씀의 책임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재정의 책임까지도 감당하려고 합니다. 제가 계산은 안 해 봤지만 작년 한해 최소 3천만 원 이상은 헌금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제가 이 교회의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대구의 한 장로님이 꿈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얘야,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 “예. 아들도 잘 키우고 딸도 잘 키우고 예배도 잘 드렸습니다”, “그것은 평신도도 다 한다. 너는 장로인데 장로로서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 그리고 보니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특별하게 보고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십일조 드리고, 예배드리고, 평신도도 다하는 그런 것밖에 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섭섭해 하시는지... 이분이 꿈에서 깨어난 후! 에 헛된 삶을 살았던 자신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한참 울었답니다. 그분이 그 후에 교회를 21개나 지었다고 합니다. 목사는 목사의 책임이 있고,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선교회 회장, 임원, 주일학교 교사, 찬양단원 등등 우리 모두는 요나처럼 책임감을 갖고 신앙생활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대하게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는 남다른 책임감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가 목동 일을 할 때는 양을 책임졌던 사람입니다. 양을 지키다가 곰이나 사자가 나타나면 도망가지 않고 곰과 사자와 싸웠습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서 목동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했던 사람입니다. 한번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습니다. 거기서 골리앗이라는 거인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울왕이나 이스라엘의 잘나가던 장수들도 두려워서 골리앗을 상대하지 못하는데 다윗은 군인도 아니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와 민족에 대한 특별한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리더의 자질입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골리앗을 상대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그 모습을 기뻐하시고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 러뜨리게 하셨습니다. 그가 왕이 된 후에 한번은 이스라엘 가운데 큰 재앙�� 내렸습니다. 그 재앙은 다윗이 하나님 보다 군사의 숫자를 의지한 결과 찾아온 재앙이었습니다. 그 재앙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칠만 명이 죽게 됩니다. 이 때 다윗 왕이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나가서 얼굴을 땅에 데고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그는 자신의 잘못을 자신이 책임지려고 합니다. 남의 탓을 하지 않고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기도를 합니다. 대상 21:18에 보면 다윗의 기도의 내용이 나옵니다.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가정에 무슨 일이 있을 때 가족들 탓하지 말고 요나처럼 “내 탓이요”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가 이렇게 무법천지가 된 것도 우리 그리스도인 탓입니다. 여야가 임시국회를 파행으로 치닫게 만들고 국회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쇠톱이 동원되는 등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 琯湧� “우리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해서 그렇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더 많이 기도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하고 책임을 지고 중보기도에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2.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는 신앙
바다에서 던져진 요나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쳐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이라고 해도 요나가 쳐한 상황보다는 못할 것입니다. 바다에 던져졌는데 큰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요나를 삼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밤낮으로 3일을 보냅니다. 이보다 더 절망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나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2:1-9에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지금 물고기 뱃속에 있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은 상태가 아닙니다.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기도는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2절에 보면 자기가 물고기 뱃속에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고백합니다. 4절에 보면 지금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으나 다시 주의 성전을 보겠다고 고백합니다. 5,6절에 보면 자기가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실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미 건지셨다고 고백합니다. 7절에 보면 자신이 현재의 상황 때문에 지쳐있지만 자기가 하나님을 생각만 해도 그것이 기도가 되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고백합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릴 것이며,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갚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런 절망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희망을 접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절망 중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놓지 않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나에게 희망이 있다”
기도는 신비입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며, 희망의 표현입니다. 우리나라 최고 타월 회사의 경영주이신 J장로님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6.25전쟁 때 이북에서 넘어오셔서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장사는 하고 싶어서 수건 가게 옆에 앉아 매일 수건을 쳐다보며 “하나님, 저도 수건을 좀 팔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가게 주인이 물었습니다. “얘야, 너 왜 남의 가게 옆에 계속 앉아 있냐?”, “아저씨, 저 수건 좀 팔고 싶어요. 열 개만 빌려 주시면 팔아서 갚을 게요.”, “너 정말 그러겠냐?”, “제발 좀 하게 주세요”, “그래라” 그 아저씨가 수건 열 개를 주더랍니다. 그것을 금방 팔고 와서 또 가지고 가서 또 팔고, 그래서 그 가게보다 아이가 수건을 더 많이 팔았답니다. 그런 그가 결국 우리나라의 타월 왕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착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기도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어린 피난민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수건을 팔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그를 한국 최고의 타월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십시오. 예수님이 최고입니다. 예수님이 삶의 전부입니다. 이방 여인, 천대 받는 여인, 먹을 것이 없어서 이삭을 줍는 가난한 여인 룻이 보아스를 만나자 경제 문제가 해결되고 그 지역에서 최고로 존귀한 여자가 되고 다윗왕의 할머니가 됩니다. 보아스를 만나니 룻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한 여자가 복 있는 남자를 만나도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데 하물며 예수님을 만난 우리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모든 것의 해답이십니다. 하늘의 일과 땅의 일을 다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최고입니다.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십시오. 절망적인 환경에 눌리지 마시고 그 모든 환경을 초월 하실 수 있으신 예수님을 믿으시고 늘 소망 중에 사시기를 바랍니다.

3. 좋으신 하나님을 아는 신앙
요나의 믿음이 대단한 믿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요나의 신앙이 뭐가 대단합니까?”라고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사실 그의 믿음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여러분!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 앞에 당돌했던 이유를 아십니까? 4장에 보면 아주 당돌하게 하나님과 대화를 합니다. 요나가 하나님께 “내 생명을 거두어 가십시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낫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얼마나 건방진 기도입니까? 또 요나가 니느웨성 동쪽 높은 곳에서 니느웨성이 어떻게 되는가 보려고 앉아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셔서 요나를 가리게 하십니다. 머리에 그늘이 지자 요나가 크게 기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벌레를 예비하셔서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십니다.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니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합니다. “하나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가 나으니이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요나의 대답이 가관입니다.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얼마나 건방지고, 얼마나 분수를 모르는 말입니까?
요나의 불순종이 잘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불순종으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쓴맛을 봤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했던 이유, 또 그가 하나님과의 대화에서 그렇게 당돌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4:2절에 그 답이 나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그가 무엇을 알았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알았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나의 표현을 한 마디로 말하면 어떤 하나님을 알았다는 것입니까?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없습니다. 성경의 핵심구절이 어디입니까? 요 3:16입니다. 거기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입니다.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셨습니까? 죄악으로 영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독생자를 대속의 제물로 주시고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길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몇 년 전 흥행에 가장 성공한 우리 영화에 출연했던 주연 배우 이야기입니다. 배우로 나서려고 할 때 아버지가 심하게 반대했지만 그는 그 길로 계속 매진했습니다. 드디어 그가 주연한 영화가 개봉되는 날, 그는 아버지가 극장에 오시기를 기대했는데 아버지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히트를 치고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축하를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섭섭했고 미운 감정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를 만날 일이 있어 아버지의 회사에 갔습니다. 사장인 아버지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의자에 한 번 앉아 보자.’ 하고 아버지의 빈 의자에 앉아보니 세상에! 아버지의 책상 유리 밑에 그의 사진이, 그가 주연 배우로 연기한 사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가슴이 뭉클하면서 진동했습니다. “아버지! 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줄 알았는데...” 그는 아버지가 그에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책상에 그의 사진을 두고 날마다 보신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난 후 그는 아버지와의 사랑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 불효하는 것은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부모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누구나 효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느끼기에 좋은 것을 주실 때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주시는 것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원하지도 않는 풍랑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요나가 원하지 않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요나가 기뻐했던 박넝쿨을 벌레로 하여금 먹게 하시고, 요나가 원하지 않는 뜨거운 동풍이 불게 하셨고, 요나가 원하지 않는 뜨거운 해 빛이 요나의 머리에 쪼이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요나는 사명의 길을 가게 되었고,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들을 둘이잖아요. 그런데 두 아들의 많이 다릅니다. 모세는 듬직해서 좋고, 하은이는 귀여워서 좋습니다. 모세는 무슨 일이 있으면 표현을 잘하지 않고, 하은이는 표현을 잘합니다. 어릴 적에 아이들이 몸이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가면 반응이 완전히 반대입니다. 모세는 주사를 맞아도 울지도 않고 표정에 별 변화가 없습니다. 대견해 보이데요. 그런데 하은이는 주사실 들어가면 울고 펄쩍펄쩍 뛰고 난리가 납니다.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간호사가 감당을 못하니까 제가 하은이를 잡아서 누룹니다. 그러면 간호사가 하은이 엉덩이에 주사를 잽싸게 놓습니다. 그 때 하은이 생각에는 아빠에 대한 감정이 어떨까요? 아빠가 밉겠지요. 이 때 아빠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아빠는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아이를 붙들고 주사를 맞게 한 이유는 아이를 사랑해서입니다. “너 주사 맞고 골탕 좀 먹어봐라”가 아닙니다. 아이를 사랑해서, 빨리 병이 나으라고 주사를 맞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든지, 우리가 보기에 좋지 않은 것! 을 주시든지 뜻이 있어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나의 신앙 본받읍시다. 무슨 일이든지 책임을 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는 신앙생활합시다. 아무리 어려워도 물고기 뱃속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으로 아십시오.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즉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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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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