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에서 음성이 들린다! (눅 2:1-7)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은 링컨입니다. 링컨을 불행하게도 극장에서 총에 맞아 암살당하였습니다. 링컨이 극장의자에 앉아서 암살당하여 죽은 의자가 지금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피자국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 의자를 보면 이런 음성이 들립니다. <으악!> <노예들을 해방하라>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영원할 것이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를 가본 적이 있습니다. 히틀러가 유대인들 600만명을 학살할 때에 가장 많이 학살한 자리입니다. 그 곳에 가면 유대인들의 울분이 들립니다. <우리는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 않는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에는 남대문과 동대문은 있어도 북대문과 서대문은 없습니다. 4 대문이 있었는 데 왜 두 대문은 없어지고 두 대문만 남은 것일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일제 시대 일본 장군들이 서울에 입성할 때 동대문과 남대문으로 들어 왔습니다. 서대문과 북대문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사용하지 않은 문이라고 헐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두 대문을 볼 때마다 당당하게 서울을 점령하던 일본 장군들의 함성이 들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구유에 탄생하셨습니다. 그 구유를 보면 무슨 음성이 들릴 까요? 우선 예수님이 구유에서 탄생하시게 된 동기부터 살펴 보려고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 전체는 거의 로마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 아구스도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는 전체 나라에 호적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세금을 효과적으로 거두어 드리려는 정책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 때 정혼한 상태였습니다. 말하자면 약혼을 하였습니다. 둘이는 호적을 신고하러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호적을 신고하러 모인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잘 곳을 구하지 못 하였습니다. 마침 마굿간이 비어있었습니다. 둘이는 마굿간에 머믈게 되었습니다. 그 날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예수님을 구유에 누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 어린 주 예수 구유에 있네. 그 귀하신 몸이 구유에 있네 저 하늘 별들이 반짝이는 데 그 어린 주 예수 꼴 위에 자네>
구유를 보면 우리는 이런 음성이 들리는 것을 듣게 됩니다.
1. 겸손하라. 예수님은 만왕의 왕십니다. 그런데 왕궁에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부잣집에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이는 겸손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구유는 우리에게 외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겸손하라>
솔로몬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6;18-19)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었습니다. 터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터키인들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알루메니아 사람들을 핍박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터키인이 알루메니아 인이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서 마구 학살할 때였습니다. 남매가 살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오빠를 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동생을 죽이려고 하는 데 그는 요행히 도망쳐 간신히 살아 났습니다. 직업은 간호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수 개월이 지났습니다. 병원에 한 환자가 들어 왔는 데 얼굴에 부상을 당하여서 얼굴이 누구인지 알아 볼 수도 없었고 형편이 없었습니다. 그 간호원은 정성을 다하여 치료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난 후 그 얼굴을 보니까 자기 오빠를 죽인 이였습니다. 그 여자의 마음에서는 번민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치료를 포기하고 그대로 두면 죽게 되니까 그렇게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는 데 내가 이 사람을 죽여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이 사람을 잘 치료하여 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 사람이 회복되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눈을 뜨고 자기를 그 동안에 치료하여 준 여인을 보는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자기가 죽이려던 여자였습니다. 가만히 그는 물었습니다. <당신 오빠가 수 개월전에 죽었지요?> <예> <누가 죽였는 지 아십니까?> <예. 알지요> <누가 죽였습니까?> <바로 당신이 죽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를 이렇게 정성껏 치료시켜 주었습니까?> <나는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독한 마음을 먹었었지요.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더 열심히 치료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나은 것을 보니 얼마나 기쁜 지 모르겠습니다> 터키인은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믿는 기독교가 이와 같은 것이라면 나도 이제부터 예수를 믿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어거스틴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덕목은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이 대답하였습니다.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겸손이다. 둘째는 겸손이다. 셋째도 겸손이다> 한국 교회사에 감동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탐정리 섬에서 출생한 이자익이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항상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배가 고파서 친척집에 가서 머슴을 살지만 배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곡창지대인 김제에 와서 어느 부자집을 찾아가 ‘밥만 먹여주면 머슴이 되겠다’고 사정했습니다. 그를 긍휼히 여겨 그 집 마부로 머슴을 살게 했습니다. 그 즈음 미국 남장로교의 최의덕이라는 선교사가 김제에서 선교활동을 했는데 이 분이 마방을 드나들면서 이자익 청년을 전도하고 주인 가족도 함께 전도해서 이 사람들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무식한 이자익은 주인 아들이 독방에서 한문자 읽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암송하면서 한문자를 배웠습니다. 최의덕 선교사의 전도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자 금산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주인 조덕삼과 머슴 이자익을 교회 영수로 함께 임명을 했습니다. 최의덕 선교사는 선교 활동 반경이 넓어져서 주일 예배를 인도할 수 없게 되자 이자익 청년을 조사로 임명하여 설교를 맡아 하게 했습니다. 그때 조덕삼 영수는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머슴으로 일하던 일꾼이 교회의 조사가 된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리고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단하에서 그 설교를 들으면서 교회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1908년에 금산교회에서 장로를 선출하는데 조덕삼과 이자익이 나란히 장로 후보로 나왔습니다. 투표 결과 이자익 영수는 장로로 피택되고 조덕삼 영수는 떨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 결과를 놓고 웅성거렸습니다. 그때 조덕삼 영수가 일어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 교우들, 참 감사합니다. 저는 나이가 많아서 교회에 봉사하기 어려운데 이자익 영수를 장로로 선출하여 일하게 하였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어 교회를 잘 섬깁시다.> 1년 후에 조덕삼 영수도 장로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자익 장로는 평양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고 한국 장로교의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낮아져서 머슴인 이자익 목사를 잘 받들어 섬겼던 조덕삼 장로는 집안 대대로 하나님께 크게 세움을 받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구유는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자부심을 가지라. 구유에서 들리는 두 번째 소리가 있습니다. 구유는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예수를 모셨으니 자부심을 가져라>
마굿간에서 말들이 먹이를 먹는 먹이통에 불과한 구유입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셨으니 얼마나 귀한 구유가 되었는 지 상상을 불허합니다. 나는 로마 관광중에 한 성당에서 예수님이 누우셨다는 구유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안내원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세계에 예수님이 누우셨다는 구유를 다 모으면 산같이 많을 것입니다> 구유가 귀한 것이 아닙니다. 구유에 누우셨던 예수님이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구유는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를 모신 사람은 다 천국에 VIP다. 다 귀하다. 자부심을 가져라>
바울도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가졌으니 귀한 그릇이다>
그렇습니다. 전 두환 대통령이 전주 어느 농가에서 하루를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 집 앞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비석을 나는 본 적이 있습니다. <전 두환 대통령이 기거한 집> 대통령이 기거한 집은 그 분 때문에 귀합니다. 예수님이 거하고 계신 영혼은 그 분 때문제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구유는 외치고 있습니다.
<자부심을 가져라>
경상도 영주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이황이 공부하던 서원이 1000원짜리 돈에 그려져 있습니다. 영주에 있는 서원입니다. 그 그림에 보면 나무 한 그루가 서있습니다. 박 정희 대통령이 그 곳을 방문하였다가 기념으로 심은 나무입니다. 박 대통령이 심은 나무라고 자부심이 대단하였습니다.
음식점에 가보면 그 음식점을 찾아 식사한 연예인 사진을 찍어 즐비하게 걸어 놓았습니다. 곤지암 소머리 국밥집에 가보니 대단한 집이 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구유가 외치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신 영혼은 자부심을 가져라>
3. 사람을 살리라 구유는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말이나 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의식주> 이 세가지입니다. 그 중에서 옷이나 집은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먹는 것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구유는 먹을 것을 공급하는 도구입니다. 구유는 오늘도 우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먹을 것을 주어라. 그래서 사람을 살리라>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이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6:47-51)
예수님은 떡이십니다. 우리는 살리는 생명의 떡이십니다. 구유는 오늘도 우리에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라> 몇 일전 뉴스에서 우리는 한 37살 된 아버지가 한 살된 자기 딸의 병을 고치려고 자기의 간을 3분의 1을 짤라 간 이식수술로 자식을 살려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수술은 위험률이 대단히 높아서 수술하다가 아버지가 죽을 확률이 50대 50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사랑하여 간을 짤라 주었습니다. 놀라운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 지고 죽으심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어 죽음에서 영생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병에서 건강으로 흑암에서 광명으로 문제에서 해결로 운명이 바뀐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유명한 사상가 루소는 예수를 안 믿다가 예수님을 알고 나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오, 쏘크라테스는 철인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쏘크라테스는 비교할 수 없다> 쏘련의 톨스토이도 예수님을 안 믿다가 믿고나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35년간 사회혁명가로서 아무 것도 믿지 않은 허무주의였다. 그러나 5년 전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는 데 그 뒤 내 생애는 변화되어 절망과 허무는 사라지고 죽음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였다> 세익스피어도 말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확실히 믿으며 나의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나의 영혼을 맡긴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기쁜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이 마굿간 구유에 누우셨던 날입니다. 그 구유는 오늘 우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겸손하라> <자부심을 가지라> <사람을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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