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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율법을 통한 축복

율법을 통한 축복
본문 - 여호수아 1장 7 - 9절; 출애굽기 20장 1 - 17절

본문 - 여호수아 1장 7 - 9절; 출애굽기 20장 1 - 17절(개역개정)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오늘 율법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율법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 5:18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구약의 율법을 쓸모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구약의 율법을 인정하고 주님이 온전케 하신 부분까지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자리에 모세의 시종이었던 여호수아를 세웁니다. 수 1장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지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선택한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여호수아에게 율법 준수를 요구하시는 내용과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요구
   먼저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7절에 보니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을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율법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8절에 보니 율법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고 율법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율법대로 살 것을 요구하시면서 만약 여호수아가 율법대로 살게 되면 주어지는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첫째,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되는 복입니다. 7절에 보면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또 8절에서도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순조롭고 형통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9절에 보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형통의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만 가능한 복입니다. 형통의 대표적인 인물이 요셉입니다. 요셉의 형통함을 다룬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요셉의 형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 39:2을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말씀합니다. 또 창 39:3에도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고 말씀합니다. 또 창 39:23에도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요셉의 형통을 통해서 배워야 할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 진리는 형통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라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니 요셉이 형통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형통을 추구하기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만사 승리가 보장되고 형통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늘 입으로 고백하며 그 말씀대로 살면 주어지는 복에 대해서 말씀한 것처럼 성경은 도처에서 율법을 지키므로 받는 복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시 112:1-3을 보면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고 말씀합니다.
   2절에서는 후손의 복을 약속합니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하게 되고 복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후손들이 풍성한 복을 누리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3절에 보면 부와 재물의 복을 다룹니다. 물질적인 복입니다. 저의 간절한 소원 중에 하나가 성도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마음껏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 재정적인 복도 받기를 바랍니다.
   또 3절에 보면 그 사람의 공의가 서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의인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곳에서 율법대로 사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신 28장 말씀입니다. 신 28장은 율법대로 살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갖게 되는 복만 아니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복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저주가 임합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물질로부터 시작해서 가정과 자녀들 까지도 저주를 받게 됩니다.

3.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율법대로 살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의 교회들의 문제는 율법을 너무나 모른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모르는데 율법을 주야로 묵상할 수 있겠습니까? 율법을 모르는데 율법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율법 교육이 필요하고 성도들은 율법대로 살므로 풍성한 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이 설교를 듣는 분들 중에는 이런 의문을 갖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마경훈 목사는 왜 다시 율법을 강조하는가?’
   물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뛰어넘어서 성령의 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율법은 기본입니다. 기초 위에 건물을 세우듯이 율법이라는 기초 위에 성령의 법이라는 건물이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낮 예배 시간에 마태복음을 순서대로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마 5장에 와서 8복을 다루어야 하는데 바로 8복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8복은 신령한 영적인 복입니다. 8복의 말씀대로 살게 되면 복을 받는 것은 자명하지만 바로 8복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기초공사가 안 되어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기초가 부실한 상태에서 건물을 세우면 그 건물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기초 공사가 안 된 상태에서 바로 8복을 다루면 여러분이 설교를 들을 때는 은혜를 받는 것 같지만 8복의 말씀이 자신의 생활에는 실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초는 무엇입니까? 계명의 기초는 율법입니다. 율법의 기초가 튼튼할 때 신령한 성령의 법을 따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서 주신 법을 말합니다. 율법은 크게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영적인 기능으로 정죄의 기능입니다. 둘째, 육적인 기능으로 축복과 저주의 기능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인 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 스스로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결국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내의로, 내 공로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을 보게 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축복과 저주 앞에 세웁니다. 신 30:19을 보면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율법대로 살면 생명이고 율법을 버리면 사망입니다. 또 율법대로 살면 복이고 율법을 버리면 저주입니다.

4. 율법의 요약
   율법의 요약은 십계명입니다. 율법은 모세오경을 말합니다. 마 22:35-40절을 보면 모세 오경을 요약하고 요약하면 두 계명이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고 둘째는 이웃 사랑입니다. 이 두 계명을 10개로 나눈 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게명 중에 1-4계명은 하나님 사랑을 말합니다. 5-10계명은 이웃 사랑을 말합니다.
   저는 수지 산성교회 황규식 목사님의 설교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교인들이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축복은 행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무엇을 행함으로 복을 받습니까? 율법입니다. 율법의 축소형인 십계명입니다.
   시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따라서 열매를 맺으면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세상과 구별된 사람입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즐거워하고 율법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교회가 율법의 요약인 십계명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성도들이 십계명을 모르고 십계명을 모르기 때문에 십계명대로 살지 못하고, 십계명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5. 십계명
   십계명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받아온 계명입니다. 십계명은 두개의 돌판에 기록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계명을 새겨주셨습니다. 출 20장과 신 5장에 십계명이 나옵니다.
   십계명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출 20:2에 보면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상기시켜줍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말씀합니다. 십계명을 주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시고, 십계명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통과하여 어린양의 희생으로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십자가를 통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십계명은 세상 사람들에게 주신 계명이 아니라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십계명의 내용을 살펴보면 십계명 속에도 축복과 저주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나옵니다. 출 20:5,6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율법을 버리는 것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율법을 묵상하고 입으로 고백하고 지켜 행하는 것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3,4대까지 저주가 임합니다.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대까지 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하겠지만 십계명이 기초임을 알고 십계명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복이 자자손손 내려가기를 축원합니다.
   십계명의 순서는 중요도에 의해서 정해진 것 같습니다. 첫째 계명이 가장 중요합니다. 갈수록 강도는 약해지고 마지막 계명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앞의 아홉 계명 보다는 강도가 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십계명을 간략하게 살펴보는데 설명의 편리성을 위하여 마지막 계명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10계명,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입니다(출 20:17).
   길을 가다가 멋진 집을 보면 ‘야! 멋있다. 나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야! 멋있다. 저 집에 사는 사람을 쫓아내고 내가 살아야 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이웃의 집을 탐내는 것입니다. 또 길을 가다가 예쁜 사람을 보면 ‘참 예쁘게 생겼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눈이 달린 사람은 다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예쁘네, 저 여자를 내가 빼앗아서 함께 살아야 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역시 탐심입니다.

   제 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입니다(출20:16).
   거짓말에는 먼저 고의적인 거짓말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해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없는 일을 만들어서 있는 것처럼 말해서 상대를 함정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이런 거짓말을 하면 당장은 자신에게 유익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자신이 율법의 저주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말 중에는 의도하지 않았던 거짓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의 말을 했는데 그 말이 거짓말이 될 수 있습니다. 남에게 들은 말을 전달했을 뿐이지만 그 말이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예전에 허참씨가 진행하던 ‘가족 오락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게임을 통해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장수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지금도 몇 개의 게임이 기억납니다. 그 중에 ‘문장 전달하기 게임’이 있습니다. 제일 앞 사람에게 종이에 적인 한 문장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첫 번째 사람이 그 다음 사람에게 그 다음 사람은 또 그 다음 사람에게 문장을 말로 전달합니다.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 시끄러운 음악을 털어주고 반대편에서는 방해 공작을 합니다. 그러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사장님이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을 냈습니다”라는 문장이 마지막 사람에게 가서는 “사장님이 재혼을 하는데 축의금은 얼마를 해야 하느냐”는 식으로 변형됩니다.
   이 문장 전달하기 게임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거짓말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정확하게 확인한 내용이 아니면 말을 전달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게 왜곡된 사실을 전달할 수 있게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왜곡된 사실을 전달하면 나는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며 십계명을 어기는 결과를 낳고 율법의 저주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에 대하여 수군수군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전달하는 행위들은 고쳐야 합니다.

   제 8계명은 “도둑질 하지 말라”입니다(출 20:15).
   도둑질은 남의 재산에 피해를 입혀서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행위입니다. 성경에서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남의 것을 도둑질하여 자신의 재산을 늘리면 그 당시에는 늘어나는 것 같지만 세월이 흐르면 율법의 저주로 말미암아 결국 가져온 것 보다 더 잃게 될 것입니다.
   어떤 회사에서 자꾸만 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것입니다. 잠깐 사람들이 자리를 비워도 지갑이 없어지고 금고가 털리면서 돈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한 사람이 자신의 돈에다가 빨간 볼펜을 가지고 아무도 모르게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도 누군가가 사무실에 들어와서 그 사람의 돈을 훔쳐갔습니다. 퇴근할 시간이 되자 평소에 행동이 조금 수상한 사람에게 돈을 잃어버린 사람이 다가가서 집에 갈 버스비도 없으니 돈을 조금만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선뜻 돈 몇 만원을 꾸어 주더라는 것입니다. 이때에 돈을 잃어버린 사람이 그 돈을 찬찬히 들여다보니까 아무도 모르게 자신이 빨간 볼펜으로 표시한 돈을 발견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동안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의 돈을 훔쳐간 범인을 잡게 되었습니다.

   제 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입니다(출 20:14).
   간음이란 결혼한 남녀가 불륜관계를 맺는 것과 정당한 혼인관계를 떠난 부정한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간음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당해낼 사람이 없습니다. 다윗 같이 경건한 사람도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넘어가서 간음을 했습니다.
   간음은 부정한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 5:28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음욕을 품기만 해도 간음함이기 때문에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최소한 두 가지는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는 기도생활입니다. 빌 4:6,7을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감사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로 마음을 지키십시오.
   또 하나의 노력은 좋은 것만 보고 악하고 음란한 것은 보지 말아야 합니다. 보는 것은 마음에 들어오게 됩니다. 보면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음란한 것들이 너무나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음란합니까? 또 TV에 얼마나 음란한 것들이 많이 나옵니까?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19세 이하가 볼수 없는 것은 보지 마십시오. 선정성과 폭력성 때문에 금하는 것입니다. 19세 이하가 보면 해로운 것이 19세 이상이 본다고 이롭겠습니까?

   제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입니다(출 20:14).
   살인은 생명을 해하는 일입니다. 타인의 생명을 해하는 것은 십계명을 어기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자살도 10계명을 범하는 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대 자살하면 안 됩니다.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하는 경우는 병에 걸려서 그렇게 한 것이니 자살이 아닌 것처럼 포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울증에 걸렸어도 자살하면 안 됩니다.
   주님은 이 계명을 여기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라가’는 히브리인의 욕설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욕설을 하면 하늘나라의 법으로는 살인한 죄와 같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욕설을 하는 것은 6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제 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출 20:12).
   부모 공경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엡 6:1-3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를 공경하려면 건강해야 하고 물질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효도하는 사람에게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4계명은 “안식을 거룩하게 지키라”입니다(출 20:8-11).
   구약시대에는 창조를 기억하며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주일을 지킵니다.
   주일은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낮예배만 드리고 나머지 시간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오후예배까지는 드려야 합니다. 100m 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70,80m 잘 달렸다고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100m를 다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대소사로 주일을 범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해보십시오. 주일에 행사가 있다면 그 전날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축의금도 좀 더 넣어서 드리십시오. 여러분이 결혼식장에 가면 많은 손님 때문에 여러분이 왔다가 갔는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 전에 가면 여러분을 확실히 각인 시킬 수 있습니다.

   제 3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입니다(출 20:7).
   ‘망령되이’라는 말의 뜻은 ‘공허, 헛됨, 허무, 거짓’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볍게 취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여기고 불경하게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부모님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그 함자를 함부로 부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버지의 성함이 홍길동이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꼭 ‘홍자, 길자, 동자를 쓰십니다’라고 소개를 합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지존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가 어찌 가볍게 여기고 불경스럽게 부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저는 기독교 서적을 읽으면서 ‘예수’라 쓴 내용을 보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문법적으로야 맞는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이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2계명은 “섬김의 대상으로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입니다(출 20:4-6절).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이 제사문제입니다. 이 제사 문제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들겠지만 제사 문제는 타협하면 안됩니다.
   고전 10:20에서는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신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행위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머리는 숙이지만, 이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다른 남자하고 자면서 자기 남편하고 잔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제 1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입니다(출 20:3).
   세상에는 신으로 일컬음을 받는 많은 존재들이 있지만 사실 신은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은 한 분이시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존재를 올려놓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집으로 이명막대통령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대통령만 초대하면 분위기가 썰렁하니까 부녀자 납치와 강간과 살인으로 유명한 강호순을 같이 초대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드디어 약속한 날짜가 되어서 강호순도 집으로 오고 대통령도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때에 이명박 대통령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식탁에 앉아서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십중팔구는 “어떻게 나를 저 추잡한 놈하고 함께 초대할 수 있단 말이오?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고 이렇게 무시한단 말이오?”하면서 화를 내고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그 앞에 세상의 잡다한 신들을 섬기고 우상의 형상을 만들어서 빈다면 어떻게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으면 당연히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는 십계명도 중요합니다. 1층을 올라가야 2층을 올라갈 수 있습니다. 10계명을 기본적으로 행하는 사람이 성령의 법을 잘 다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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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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