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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감사, 하나님의 명령 (출 23:14-17)

감사, 하나님의 명령 (출 23:14-17)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특히 애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시기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이 말씀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이 말씀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맥추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추수감사절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농사를 짓고 추수한 뒤에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 사람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받은바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감사를 알고 감사를 실천하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훈련하시기 위해서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왜 감사를 명하셨는가?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감사를  명령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실 감사란 깨닫고 느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와서 자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베푼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에게 “너 나한테 감사해!”라고 명령한다면 제대로 된 감사는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명령한다면 감사한 시늉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한 척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감사를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감사를 명하셨을까요?

 

우선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은혜를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받은바 은혜를 너무도 쉽게 잊고 또 때로는 배은망덕하게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이나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바로의 압제가 너무도 견디기 힘이 들어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출애굽 시켜주셨습니다. 바로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광야 생활하는 동안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저들을 보호해 주시고 또한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매일 아침 만나로 먹여주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셔서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저들과 동행하시면서 세밀하게 보살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눈앞에 조그만 어려움이 닥치기만 해도 그새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을 쏟아놓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애굽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하며 불평을 쏟아놓습니다. 상대하기 힘든 적들이 나타나면 두려워 떨며 하나님 앞에 불평을 쏟아놓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불평을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감사를 명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감사 거리가 있을 때 감사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감사를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잊지 않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세우려고 훈련을 시키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받은바 은혜를 하나씩 기억하며 감사할 때, 우리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는 말씀까지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 기독교의 큰 어른 가운데 왕훼이런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작년에 별세하셨습니다만 약 30년 동안 양회주석으로 섬서성 기독교를 이끄셨습니다. 저도 이분과 약 15년 교제를 했습니다.

  이분은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깐세 주!”(주님 감사합니다)입니다. 저를 만나시면서 첫 마디가 “깐세 주!”입니다. 박 목사님을 보내주셔서 주님 감사합니다. 그런 뜻입니다. 서로 안부를 묻다가 우리 교회와 교우들이 두루 평안하다고 말씀드리면 또 “깐세 주”입니다. 그리고 어떤 논의를 통해서 무엇을 결정하면 또 “깐세 주!”입니다.

  한 번은 여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늘 “깐세 주”를 하실 수 있느냐고... 이분 말씀이 중국 문화혁명 때 목사라고 투옥되어 18년 감옥생활을 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풀려나셨답니다. 그리고 다시 교회로 돌아와 목회를 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다 감사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후에는 자기도 모르게 “깐세 주!”가 나오더랍니다. 정말 저는 이분이 한 번도 불평하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범사에 감사하는 분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분을 보면서 감사도 훈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극심한 고난을 겪으면서 감사를 훈련받으셨습니다. 훈련을 통해 감사가 몸에 배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가 이분의 소중한 신앙 성품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를 훈련하십시오. 감사할 거리가 있으면 바로 바로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때를 정해 놓고 감사해 보십시오. 감사가 여러분의 소중한 신앙성품이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감사의 능력을 덧입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감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사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감사하고 싶어도 감사가 안 되는 사람들도 많습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한다고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요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데스다연못에 누워있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병자에게 다짜고짜 명령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그 명령을 수행할 능력이 전혀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명령하신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람은 그 명령을 따르려고 했고, 그 말씀대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주님께서 그에게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셨고,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가 다만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자 주님께서 그 명령을 따를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일어날 수 있었고,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능력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감사하라 하셔서 다만 그 말씀만 믿고 순종하기 위해 감사하려고 할 때,  주님께서 감사의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워너 솔맨(Warner Sallman)이라는 젊은 화가가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젊은 나이에 중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당신은 임파선 결핵입니다. 당신의 그 운명은 이제 3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석 달밖에 살 수 없다는 말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뜻밖의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여보 석 달밖에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석 달이나 축복의 날을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합시다. 3개월이 얼마나 우리에게 귀한 날들입니까? 이 황금같이 귀한 날들을 아름답게 만들어 갑시다.”

  이분이 어렵게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합니다. 감사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 잠에서 깰 때 감사했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마지막 그림을 그리기로 작정합니다. 정말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림이 잘 됩니다. 그래서 그려낸 작품이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지금까지 그려진 예수님의 얼굴 중에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바로 그 그림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감사한 마음으로 그 그림을 그리는 동안 병이 나았습니다. 3개월이 지났는데도 죽지 않고 병이 깨끗이 나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감사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따를 때 감사의 능력은 주님께서 주십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도 감사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려 하면 감사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보너스로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a’로 갖가지 문제도 해결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는 감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은혜를 기억하라고 감사를 명하셨습니다. 감사의 능력을 주시려고 감사를 명하셨습니다. 감사를 순종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감사하라고 명하셨는가?

   본문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추수감사절을 지키라 명하시면서 구체적인 감사의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하나는 수고하게 하심에 감사하고, 다른 하나는 수고의 열매를 거두게 하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선, 수고에 대한 감사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말씀을 들을 당시 자기들의 땅이 전혀 없습니다. 농사지을 땅이 없습니다. 수고하고 싶어도 수고할 일 거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지을 수 있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때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수도원과 감옥은 따지고 보면 비슷합니다. 세상과 단절되어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 정해진 음식, 정해진 노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릅니다. 수도원에 거하는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이런 소중한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나 감옥에 거하는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불평합니다. 자유를 빼앗긴 채 지내야 하는 시간을 불평하는 것입니다.

   특히 수도원에 거하는 사람들은 정해진 노동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소중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감옥에 거하는 사람들은 정해진 노동에 불평합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내몰려 강제 노동을 당한다는 생각에 불평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일터가 감옥이 되느냐 수도원이 되느냐는 우리의 마음 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일터를 주시고 일거리를 주시고 일 할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하면 그곳은 거룩한 자리 곧 수도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터에서 불평하고 일거리에 불평하고 일을 해야 함에 불평한다면 그곳은 저주의 자리 곧 감옥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력 신문 <런던 타임즈>가 일반 시민들에게 행복한 사람에 대한 정의를 공모한 일이 있습니다. 그 결과가 재미있습니다.

  1위는 모래성을 막 완성한 어린이, 2위는 아기를 목욕시키고 난어머니, 3위는 세밀한 공예품을 만든 뒤 휘파람을 부는 목공, 4위는 어려운 수술을 성공리에 마치고 막 생명을 구한 의사였습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공통점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감사한 마음으로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수행할 때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고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수고의 열매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시는 이 말씀은 저들이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 간 뒤에 지키게 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땀 흘려 수고하여 농사를 짓게 될 때 열매를 거두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열매 중에 첫 열매를 거둘 때 이를 감사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대전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고를 해도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의 수고가 있었기에 열매를 맺는 측면도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분이고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는 점입니다.

   빙산을 생각해 봅니다. 북극이나 남극에 빙하가 잘라져 바다에 떠 있는 것이 빙산입니다. 그런데 바다에 떠 있어서 눈에 보이는 빙산의 부분은 전체 빙산의 1/9 밖에는 안 됩니다. 8/9의 절대 다수의 부분이 바닷물 속에 잠겨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수고하고 땀을 흘려서 열매 맺게 하는 것들은 빙산처럼 그저 눈에 보이는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열매를 맺게 하는 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햇빛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비도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람도 불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농작물이 자라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잊게 쉽습니다.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을 열고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닷물 속의 빙산의 거대한 부분이 있음을 알 듯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가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은혜에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찬 301장 1절 가사처럼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사할 수 없더라도 감사를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여 감사를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감사할 것들이 하나 둘씩 생각나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할 마음이 샘 솟듯 ?아납니다. 그리고 감사의 능력이 부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사의 사람이 됩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마음으로 입으로 예물로 더욱 적극적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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