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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옥한흠목사

[스크랩] 주의 마음에 합한 사람 - 옥한흠 목사님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



저는 옥한흠 목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세 가지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첫째는, <양치기>, 둘째는, <동굴 우두머리>, 셋째는, <새벽 등대지기>입니다.

첫째, 옥목사님은 치열한 <양치기>로 일생을 사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첫째 사랑도 교회, 마지막 사랑도 교회였습니다. 그분은 만날 일정을 검토하시다가도 교회 일이 있다고 하면 무엇이든 이해하셨습니다. <그럼, 교회 일이 우선이지!> 오해하지 마십시오. 옥 목사님은 좁은 의미에서 개교회 주의자나 교파 주의자는 아니셨습니다. 그는 늘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를 가슴에 안고 사셨습니다. 그러나 목장은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올인해야 할 첫 번째 삶의 자리이셨습니다. 그의 목장의 양떼들은 한 순간도 그의 시선을 비껴 갈수 없었던 사랑의 대상이셨습니다. 그는 그가 지켜야 할 양들의 숫자를 헤아리며 행여나 단 하나의 양이라도 상할까 걱정하며 중보하던 섬세한 목자이셨습니다.

시78:70-71에 보면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양치기 목동 다윗에게 맡겨진 양떼들을 다윗이 성실하게 돌봄을 보고 그를 민족의 양치기로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실성이 다윗으로 하여금 주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옥 목사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양치기에 사역의 우선순위를 두고 목회를 수행하셨고 이런 성실한 목자 옥 한흠 목사님을 하나님은 마침내 목사들의 목사로, 한국 교회의 지도자로, 그리고 민족의 목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둘째, 옥 목사님은 탁월한 <동굴 우두머리>이셨습니다.
저는 옥 목사님을 떠 올릴 때마다 어김없이 동굴의 이미지가 함께 떠오릅니다. 그는 평생 한 굴을 파신 분이십니다. 그는 제자 훈련의 굴을 파시는 일에 일생을 걸고 광인으로 사신 분이십니다. 그는 이 굴 밖으로 나오시는 것을 언제나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는 교회 밖의 집회를 기뻐하지 않으신 특이한 분이십니다. 그에게 가장 열정과 보람을 안겨다 준 곳은 사랑의 교회라는 동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동굴에서 한국 교회의 내일을 준비하셨고 세계 교회의 미래를 묵상하셨습니다. 이 동굴에서 그는 말씀을 또 읽고 다시 읽고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오직 이 동굴을 찾은 병사들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일에 건강을 돌보지 않고 올인하셨습니다. 그가 동굴 밖의 햇빛을 찾아 그의 카메라에 자연을 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건강을 상실한 뒤였습니다. 나는 이 동굴 생활을 옥 목사님이 다윗에게 배우셨다고 생각합니다.

삼상22:1이하에 보면 다윗은 아둘람이라 불리우는 동굴로 자신을 찾은 환난 당하는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그의 가깝고 먼 가족 친구 친지 이웃들 모두를 그의 군대로 삼고 그는 그들의 존경 받는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얼마나 옥 목사님에게 절묘하게 들어맞는 이미지인지요! 그는 한 평생 사랑의 교회와 제자 훈련원 동굴을 벗어날 줄 모르신채 변변한 안식도 여행도 오락도 운동도 외면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일에 그의 평생을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그를 따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사랑받는 우두머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이 한 소명에 순종하시기 위해서 그는 모든 고난을 감수하셨습니다. 그는 골로새서 1장을 어떤 성경의 장보다 좋아하셨습니다. 골1:29(마지막 절)에 보면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이 말씀을 가장 치열하게 자신의 삶에서 붙들고 산 분이 옥 목사님이셨습니다. 이런 옥 목사님을 하나님이 내 마음에 합한 목자라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셋째, <새벽 등대지기>이셨습니다.
그는 밤이면 중보 기도로 밤 바다를 비추시다가 이 땅에 새벽이 밝아오면 나팔수가 되어 잠든 영혼들을 깨우시던 나팔수이셨습니다. 그는 정직하지 못한 것, 투명하지 못한 것, 치열하지 못한 것에 늘 분노하셨고 분노할줄 모르는 무감각한 세태를 통박하시며 꾸짖던 예언자의 후손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차가운 예언자가 아닌 따뜻한 예언자이셨습니다. 아니 그는 꾸짖어 놓고 아파하시고 자신을 질책하시며 다시 따뜻하게 어루만지던 제사장적, 아니 목자- 예언자이셨습니다. 그는 시편57:8의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다윗의 고백에서 이 땅에 잠든 거인 평신도를 깨울 그의 소명을 아마도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평신도보다 깨워야 할 더 중요한 사람들이 이 땅의 목사들임을 절감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자 훈련원을 통해 목사들을 깨우고 교회를 깨우는 일에 몸을 던지고자 하셨습니다. 그는 한국 교회가 깨어나고 한국 교회를 통해 세계 교회를 깨우는 일에 하나님께 붙잡힌 나팔수가 되신 것입니다.

어제 아침 옥 목사님의 부음을 듣고 저의 사무실에서 주께서 옥 목사님을 고통에서 해방하시고 부르신 것을 감사하는 잠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의도하지 않은 노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등대지기>의 노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읽은글에 의하면 이 노래 가사가 본래는 19세기의 찬송가 곡이었다는 사실도 생각이 났습니다.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거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해바라기 곡 노랫말은 더 성경적입니다. “물결위에 지고 있는 등대의 모습은/ 양떼들을 몰고가는 목동과 같아라/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진실로 옥 목사님은 이 땅의 등대지기 이셨습니다. 한국 교회가 진정 등대이기를 그는 밤마다 기도하셨고 강단에 설 때마다 외치셨습니다. 그는 그 사명을 다 하셨습니다. 옥 목사님답게 깨끗하게 한 줄기 빛을 남기고 홀연히 가셨습니다. 다윗을 향해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신 주께서 옥 목사님을 향한 그분의 뜻이 이루신 것을 보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누가 이제 그분이 비추던 그 등대자리에서 등대지기가 되어 이 시대의 밤바다를 비출 것인가?라는 물음입니다. 우리가 만일 옥 목사님, 염려 마십시오. 우리도 부족하지만 옥 목사님을 흉내내어 <작은 예수>외치시던 그대로 <작은 등대지기>가 되겠다고 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옥 목사님을 편히 쉬시게 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옥 목사님, 그럼 우릴 믿어 주시고 편히 쉬소서!

 

                                      의ㅣ우ㅣ물ㅣ 

출처 : 야곱의 우물가
글쓴이 : ♡˚소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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