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고상한 염려(고후7:10)0
성도가 받고 있는 축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그중에 큰 축복 중 하나가 모든 염려를 맡길 수 있고 맡아 주시는 분이 있으니 곧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 세상은 근심, 걱정, 이생의 얌려로 모든 사람이 피곤에 지쳐있고 얼국은 웃음을 잃어버렸으며 평화를 잃어 버린 채 허덕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염려와 근심은 살인마이다"사실 그렇습니다
성경에 보면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무려 550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염려라는 것은 무익한 것이요 인간의 생명을 해롭게 하는 것이며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고 이 모든 염려를 맡기라고 하십니다.
세계2차대전 때 일본과 독일을 상대하여 미국이 치열한 전쟁을 한 결과 35만명이라는 미국의 청년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2차대전때 염려로 말미암아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이 전쟁에 나가서 전사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염려와 근심은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백성들은 온갖 염려와 근심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도 염려와 근심 속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염려"라는?.....헬라 원어에 "메림나오"라는 말인데 그뜻은 "메리조"라는 말과 "누스"라는 말로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메리조"란 "갈라 버린다"라는 뜻이고 "누스"는 "마음"이라는 뜻인데 우리들의 마음을 산산조각으로 갈라 버리는 것이 "염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마음을 갈갈가 찢어서 인간을 약하게 하고 실패자로 만들어 인간을 불행 가운데서 울도록 만드는 무서운 약이며 신앙을 타락 시키려는 원수 마귀의 무서운 무기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마6:34에서 친히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요14: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벧전4: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성경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믿으라 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염려가 있습니다.
고후7:10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근심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육적인 근심과 영적인 근심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근심과 영적 근심인데 세상 근심곧 육신적인 근심은 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해야할 근심은 영적인 염려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가져야 할 유익한 것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염려입니다.
이러한 염려를 우리는 다음 몇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하나님으로 부터 떨어질까 염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위하여 근심항 줄 알아야 합니다.
히3:12~19에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의 계속적인 이적과 은혜를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시험한 것은 불신앙이었고 악한 행위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그 마음이 강팍하게 됨을 면해야 할 것입니다.
히3:15~16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케 하지말라.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하나님을 격노케 하고 하나님의 노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신들이아니라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선민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므리바에서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우리를 왜 에서 인도하여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 이곳은 파종할 것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아무것도 없도다. 모세가 총회를 떠나 회막에 이르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며 너희는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불을 내게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와 회중과 짐승이 먹으니라"
하나님은 진노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백성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불순종의 사람이 되어 멸망의 자리에 들어갈까 염려해야 합니다.
모세가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사실입니까? 신앙이 잘못될까 염려해야 합니다.
고전10;10~12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 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우리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하였습니다.
"넘어질까 조심하라"...의심하다가 넘어지고 원망하다가 넘어지고 교만하다가 넘어지고 강팍하여 버림 받는 사람이 부지기수 입니다.
정녕 이 세상적인 염려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의 영적 상태를 보고 탄식하며 염려하는 것은 성도의 아름다운 것입니다.
둘째...성도는 교회를 위하여 염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후11:13~29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며 세번 태장을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퍄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협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협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협과 거짓 형제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벘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놀라운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한 그 손으로 여기에서는 자신이 교회를 위하여 쉬지 아니하는 염려가 잇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진실된 성도라면 자기의 집안 살림 못지않게 주님의 피로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염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근심하며 안타깝게기도하고 봉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 진실한 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영혼을 살려내며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가진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녜수님께서는 주님과 교인들의 관게를 결혼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다가 만인 앞에서 서약하고 결혼함으로 그 사란은 열매를 맺습니다. 결혼할 수 없는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입니다.
진정 주님은 사랑하십니까?...그렇다면 모든 증인들 앞에서 "나는 주님을 사라하고 주님의 신부가 되겠노라"고 서약하는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만 받으면 될까요?...아닙니다. 세례만으로는 완전치는 못합니다.
결혼을 했으면 반드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지 멋한 부부라면 어떠한 이유가 있든간에 불행한 일입니다.
돈이 많아 호화스러운 샐활을 누린다 할지라도 진정한 사랑의 가정을 찾지 못하면 인생 나그네의 외로움은 막을 길 없고 그 삶은 허전한 삶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판자촌으라도 내 집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등록하지 않고 예수 믿는 것이 참 편하다고 말슴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이것은 가정이 없는 부부와 같습니다.
또 아무리 아름다운 가정은 이루었어도 부부만이 살게 되면 허전함이 있습니다.가정은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고달픔도 있지만 보람도 또한 있습니다.
성도는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형제들을 많이 생산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가정이 있듯이 성도에게는 신앙의 가정인 자기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성도에게는 4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내 목자, 내 교회, 내 가정, 내 사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비록 부족한 것이 있을지라도 한 가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내가 훌륭한 것 처럼 땅위의 어느 교회인들 완전한 교회가 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하지 못해도 그곳에 몸담아 충성을 다 하면 그 신앙은 바르게 성장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상급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이유로도 나올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만나러 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 처럼 여러 모양으로 교회에 나오지만 결과는 부활하신 예수임을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성도는 나라를 위하여 염려하여야 합니다.
롬9:1~3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든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크신 역사 안에서 큰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 근심은 곧 자기 종족과 나라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지난 날 나라 없는 설음이 얼마나 컸습니까>
우리 한국의 성도들은 나라가 안전하고 민주적인 자유국가가 되도록 염려하고 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위대한 애국자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고 나라를 염혀해ㅆ는지 그의 슬픈 마음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슬프다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니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하였도다"
그에게는 눈물이, 근심이,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애국은 단순한 애국이 아니고 주 안에서의 애국입니다.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14:34)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크게 염려하는 이유는 그 백성의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의 애국심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든지 민족의 제일 큰 원수는 죄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이스리엘 사람들은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의 제일 큰 원수가 로마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다.
"너희의 제일 큰 원수는 너희 속에 있는 죄"라고 하시면서 "먼저 이 죄를 회개하라"하였습니다.
그럼으로 진정한 애국운동은 회개 운동이며 진정한 애국은 먼저 교회에 서 회개 운동이 일어나는데서 이룩됩니다.
겔9:1~6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자를 불러 예루살렘 성을 심판하시는데 일곱 사람중 여섯 사람이 살육하는 기계를 손에 잡았고 그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먹그릇을 찼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이 사자를 불러 명령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두루 다니면서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들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명에게는 살육하는 기계를 가지고 그 뒤를 쫒아 성읍 붕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자와 젊은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 즉 그 백성들의 가증한 죄임을 인하여 탄식하며 울던 자를 구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심판이 늙은자로 부터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마땅히 근심하고 탄식해야 할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이나 교회가 무감각하여 근심하고 탄식할 줄 모를 때에 누구보다 먼저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심판은 교회에서 시작되며 늙은자 부터 시작됩니다.
늙은 자가 누구입니까?...마음이 굳어진 자들입니다. 자신도 애통할 줄 모르고 교회를 위해서도 무관심하고 나라가 온통 죄악 가운데 있아도 무관심한 자 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사에 오실 때 성전의 늙은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알지 못했고 영접치 않았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날에는 너떠할까요?...늙어버린 현재 교회 지도자들이나 성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겔9:8을 보면 "칼든 여섯 사자가 사람들을 쳐죽이는 동안 나는 홀로 남아서 앞으로 쓰러져 호소하였습니다.
앙구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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