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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고전16:13~18/6월 25일 설교

주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
고전16:13-18 
2006년 6월 25일 주일낮예배 설교 최일환 목사
13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14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5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이 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17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18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

설교:
설교를 듣기 전에 옆의 분과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평안하시지요? 반갑습니다.

여러분은 어릴 적에 별명이 있었습니까? 별명이란 대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게 마련입니다.
대체로 별명은 신체적인 생김새, 그의 습관과 어투,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의 독특함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짱구, 똑순이...

성경에서도 별명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그의 원이름은 시몬이고 게바입니다. 요한은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흔히 ‘믿음의 조상’이란 별칭이 있습니다. 야곱은 남을 많이 속이며 살았기에 ‘사기꾼’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기에 ‘망령된 자’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별명은 아닌데 이름을 부르면 생각나는 단어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나바하면 ‘동역자’, 다윗과 요나단 하면 ‘우정’, 그리고 다니엘하면 ‘신앙의 정조’ 같은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삭개오하면 ‘키가 작은 사람’, 나아만 장군 하면 ‘문등병자’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도마하면 의심많은 자, 유다 하면 ‘배신자’ 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이 이름을 지을 때 요한, 바울, 야고보, 스데반은 많이 지으나 유다라는 이름은 쓰지 않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양받다”는 좋은 뜻인데 ‘가롯’유다가 버려놨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이란 이름도 좋은데 북한의 그 사람들이 버려놨습니다.

성도 여러분!
남들이 여러분의 이름을 대하면 어떤 이미지를 가질까요? 최일환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이왕이면 좋은 이미지를 가진 단어들이 떠오르는 사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과 함께 동역했던 사람 중 드러나지 않았던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스데바나’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의 뜻은 “면류관을 쓰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사람을 부각시키면서 고린도 교인들도 이 사람처럼 자신과 함께 동역할 것을 원했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한마디로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번역본을 보면 “이 사람들은 나의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왜 스데바나는 바울에게 이렇게 인정을 받았을까요?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가는 곳마다 화평케 하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시원케 하는 사람, 얼마나 멋있는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누구를 시원케 해야 할까요?
오늘 봉독하지는 않았으나 1절부터 18절의 내용을 통해 은혜를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시원케 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오늘 본문을 보니 3가지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화목함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고전16장 1~4절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을 위해 헌금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예루살렘교회는 여러 번 박해를 받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특별 헌금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거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구제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교회와 고린도교회 사이에 막힌 담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자신들만 ‘선택된 백성’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고린도같이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방인과 유대인이 서로 대화가 되지 않고 있자 바울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예루살렘교회를 고린도교회가 도와줌으로 막힌 담이 무너지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구제를 요청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야만인이나 모두 한 식구입니다. 한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나 북한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나 다 한 가족입니다.
그러기에 모두가 하나 되어 세계복음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화평케 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직분을 맡든,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습니다.
사단은 분쟁을 일으킵니다. 파당이 나뉘게 하고 시기 질투하여 하나 되지 못하게 합니다. 뭐가 맘에 안 든다고 교회를 떠나고 누가 싫다고 교회를 옮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심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내가 가까이 하기 싫은 사람에게도 찾아가 손 내밀고 화목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2)삶의 계획을 주님께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의 사역 스케줄을 밝히고 있는데 스케줄 잡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7절을 보면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아니하니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
여기서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이라는 말을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자신의 인생 스케줄을 자신 마음대로 잡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참으로 멋있는 말입니다. 이말 속에는 기도 가운데 성령의 세밀한 인도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가 성령의 세밀한 인도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교회의 시간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확한 성령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인도를 받지 못하면 바벨탑이 됩니다. 열심히 하는데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특히 매주 주보에 실리는 광고를 세밀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기도담당자인가? 누가 헌금했나? 내 이름은 어디 있나? 이런 것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도 봐야 하지만 주보는 그야말로 주간 보도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광고에 교회 스케줄이 나오기 때문에 놓치면 안 됩니다. 교회 행사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단순히 담임목사의 일이고 참여하면 좋고 안 해도 상관없는 일이 아닙니다.
왜요? 교회가 성도의 몸이고 그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러기에 교회 행사에 여러분의 스케줄을 맞추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스케줄에 교회가 맞추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 주간 교회 일이 여러분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하고 그래야 제대로 성령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교회 광고가 여러분의 기도제목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3)전도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8절 9절을 보세요.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함은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
여기서 바울이 스케줄을 정하는 최우선 순위가 전도 현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자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더 머무르도록 스케줄을 잡은 것은 전도 때문이었습니다.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이 말은 복음전할 수 있는 기회가 확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에서 더 머무르며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영혼구원 중심으로 스케줄을 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희한한 방법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가정, 지역, 학교, 직장, 사업장에 구원 얻기로 작정된 자가 있습니다.

지난주 중국에서 수련회를 잘 마쳤습니다. 목요일에 모든 일정을 마쳤는데 목요일 오후에 북경에 계신 목사님이 제가 중국에 있다는 것을 알고 학교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겠다 하시기에 저는 오후에 좀 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행하신 P목사님이 소개할 사람이 있다하여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청도의 청양구에 호텔 사장인데 꼭 만나자는 것입니다.
별로 탐탁하지 않았으나 그분이 인도대로 따라 갔습니다. 갔더니 호텔 사장 한사람과 젊은 사장 한사람이 우리를 기다렸다가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호텔 사장은 알고 보니 제가 3년 전에 만났던 사람이었습니다. 참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그가 데려온 젊은 사장이 문제였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인데 식사 후 상담을 하는데 혈압이 200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는 고혈압 환자였습니다. 보통 높은 혈압이 항상 290대, 낮은 혈압이 150에서 190대랍니다. 별 약을 다 써도 안 되고 내로라하는 병원마다 다 특이한 환자로 손든 사람입니다. 그런데 너무 혈압이 높으니 불안하여 약값으로 한 달에 600만원씩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먹어도 안 먹어도 별 차이는 없는데 불안하니 그렇게 먹는다하여 제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함께하신 목사님과 제가 복음을 구체적으로 전하고 제가 영접기도까지 시키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왜 하나님이 동행하신 목사님을 통해 그를 만나게 하셨는지를 알게 되어 감사 드렸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자를 주님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장소와 시간을 정해서 복음을 전하는 현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말씀 성취의 맛을 볼 수 없습니다.
주어진 현장이 복음 증거의 아지트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하고 대상을 찾아보세요.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저는 복음을 전해달라는 곳은 어디든 갑니다. 그곳이 아무리 멀어도, 그리고 상대가 누구든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브라질에도 루마니아에도, 필리핀과 태국에도 갔습니다.
제게 가장 큰 복음전도의 장은 이곳 강단입니다. 강단에서 설교하면서 전도합니다. 우리 교회를 찾는 분들이 다 구원 받은 분들은 아닙니다. 전혀 들어보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중부경찰서도 제게는 전도현장입니다. 서장과 과장, 지구대장들을 앉혀 놓고 전도합니다.

요즘은 해달라는 청년들이 없어서 잘 못하지만 결혼식 주례는 황금어장입니다. 결혼식 때는 일가친척이 축하하러 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객들 중에 복음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결혼주례를 하려고 하는데 도대체 우리 청년자매들이 장가를 안갑니다. 이제 줄줄이 이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장례식도 전도의 장입니다.
요즘은 인터넷도 복음전파의 수단입니다. 제 설교 까페와 불로그도 전도현장입니다. 하루에 접속 숫자가 60명에서 100명입니다. 그러기에 일주일에 적어도 4~500명이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자료 검색을 하다가 제 설교를 대합니다. 그들이 읽든지 말든지 전할 수 있는 전도 현장입니다. 제 설교까페 회원이 139명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모든 스케줄도 영혼구원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중국을 향한 어마어마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명의 학생을 3년 공들여 졸업시킵니다. 저들이 어떤 일을 할지, 어디에 들어 쓰임 받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근세기에 들어와 세계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 움직였습니다. 앞으로는 중국이 세계무대를 주장할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큰 문을 열어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여름휴가를 이 중국과 우리 3학년 학생들 졸업식에 맞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의 결단을 하시고 세계 현장을 봄으로 영의 눈이 떠지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누구 마음을 시원케 해야 하는가?
2. 주의 종과 성도의 마음을 시원케 해야 합니다.
본문 17절~18절을 보세요.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

바울은 스데바나와 그 일행들이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케 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있었기에 지금 고린도교회의 문제에 대해 주변 상황을 정확하게 잘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답을 줘야 되는데도 사건을 잘 몰라서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스데바나 일행이 에베소에 있는 바울을 찾아와 자세한 상황을 설명해주자 바울이 그 원인을 알고 고린도교회를 향해 세밀하게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정한 동역자와 사역자는 스데바나처럼 목회자의 가슴을 시원케 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저 장로님, 저 집사님, 저 권사님은 무엇을 맡기면 편안하다, 믿음직스럽다.’그런데 사역을 잘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은 조금 힘들고 어려우면 견디지 못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스데바나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15절에 보면 스데바나는 바울이 아가야에서 거둔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 바울을 통해 복음을 깨달은 스데바나는 복음을 듣고 영적으로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교인의 믿음이 자라면 목회자는 정말 기쁩니다. 바울은 스데바나가 자신의 마음을 시원케 했을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도 시원케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여기서 밝히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주의 종과 성도사이, 하나님과의 사람과의 사이에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감당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섬기는 곳입니다. 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섬기는 것은 다른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도와주고 돌봐주고 교제하는 것이 섬기는 것입니다. 스데바나는 교인들을 섬기기로 작정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디에 가든지 스데바나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인정받는 신앙인이 되길 바랍니다. 혼자 신앙생활하고 아무도 모르게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3. 그러려면 주의해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바울은 스데바나를 천거하기 전에 13~14절에 동역자가 가져야 할 세 가지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1)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2)남자답게 강건하여라 3)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왜 이 말을 여기서 할까요? 다음에 소개할 스데바나가 그렇게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1)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닙니다. 마귀와 싸웁니다. 마귀가 뿔 달고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마음속에 와서 가라지를 뿌립니다. 영의 눈과 생각이 열려야 합니다. 육신적 감각으로 살면 속습니다.
복음의 뿌리를 분명히 내리고 있지 않으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2)또 ‘남자답게'라는 말은 담대하게 적극적으로 주의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강건하여’라는 것은 사단과의 영적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3)그리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행하면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을 시원케 할 수 없고 사람을 시원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21세기는 무한 경쟁시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우리 자신이 먼저 과감하게 영육 간에 변해야 살아남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변해야 합니다. 복음으로 무장하고 맡긴 직분에 목숨 걸고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정말 변화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시대적인 축복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성도가 교회의 방향과 직분에 여러분의 인생 스케줄을 맞추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현장전도 제자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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