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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다니엘(박상훈)

[스크랩] 다니엘서강해/제41강 나무를 베고 멸하되 그루터기는 남기라(4:22-24)

제41강 나무를 베고 멸하되 그루터기는 남기라(4:22-24)

 

4:22-24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 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멸하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청초 가운데 있게 하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 하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더라 하시오니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명정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

다니엘은 20∼21절에서 왕의 꿈을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을 이야기하는 동안 정확하게 들었다는 것을 먼저 밝힌 뒤에 오늘 본문부터 느부갓네살 임금의 꿈을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해석을 하는지 보십시다.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땅의 중앙에 한 큰 나무가 서 있었는데 그 나무는 곧 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느부갓네살 임금도 어느 정도 마음속에 그럴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신뢰하고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다니엘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을 보십시다.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나무가 자라고 더욱 튼튼해지는 것처럼 느부갓네살 임금의 권세가 더욱 강성해질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하늘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합니다. 그러면 나무가 자라서 하늘에 닿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느부갓네살 임금이 자기를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사람들이 모여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성과 대를 쌓고 그 꼭대기가 어디에 닿게 하자고 했습니까? 하늘에 닿게 하자고 했습니다. 교만한 생각이었습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 때 선악과를 따먹은 후 계속 하나님같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높아지려고 하다가는 낮아집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거꾸로 짐승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자는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이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역사가 찰스 에이 베어드라는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역사를 연구하고 나서 얻은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찰스 에이 베어드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첫째로, 어느 시대 어느 문명이든지 간에 권세욕에 빠진 사람은 방자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망해가기 바로 직전을 보면 교만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벌을 받아 짐승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나라 박정희 대통령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한 두 번 하다가 그만 두면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을 텐데 계속해서 하려고 하다가 자기도 죽고 가정도 풍비박산 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이 아닙니까?
두번째는,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쉬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을 행하는 사람은 악으로 보응하시고 선한 사람은 하나님이 복 주시고 선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맷돌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도는데 지금도 쉬지 않고 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하나님은 인간의 악까지도 초월 통치하셔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거역하고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도 결국은 다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사탄이 시킨 것입니다. 사탄이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의 일을 해준 것입니다. 인류의 구속, 구원의 사역을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네번째로, 캄캄한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듯이 역사적으로 어두운 시기에 오히려 소망의 별이 반짝이더라는 것입니다.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절망적이다, 희망이 없다고 여겨질 때 자세히 보면 소망의 별이 더욱 반짝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인 줄 압니다. 느부갓네살 임금도 하늘에 닿고자 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존재를 망각해 버리고 마치 자기가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다가 결국 짐승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계속 보시겠습니다. 23절입니다. 왕이 교만해서 어떤 벌을 받았는지 보십시다. "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했으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 천사입니다. 순찰자는 잠을 잡니까? 안 잡니까? 자지도 않고 왔다갔다하면서 살피는 사람이 순찰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것처럼 천사도 자지 않습니다. 인간사를 살피고 있습니다.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멸하라." 나무를 베고 멸하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자기가 자랑하고 욕심부리던 권좌에서 쫓겨나서 어려움에 처할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고"라고 했습니다. 비록 나무가 잘려지더라도 그루터기가 남아 있으면 산 것입니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이 비록 벌을 받아 권좌에서 쫓겨나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루터기에서 싹이 돋고 움이 트고 가지가 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느부갓네살 임금이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난 뒤에는 다시금 회복될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루터기를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라고 했습니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정신병원에 가면 쇠고랑으로 채워서 남을 해치거나 스스로를 자해하지 못하도록 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이 정신병에 걸릴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철과 놋줄로 동인다는 말을 "철과 놋줄로 두른다, 울타리를 치다"는 말로 번역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느부갓네살 임금이 정신병에 걸려서 미친 사람처럼, 짐승처럼 살아갔지만 왕이고, 또 회복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호위병들을 시켜서 왕을 보호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것을 들 청초 가운데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왕궁에서 쫓겨나서 산과 들에서 거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집에서 거하는 것이 아니라 들에서 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슬에 젖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들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 하며"라고 했습니다. 분량이라고 하는 것은 음식의 분량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소가 풀을 뜯어먹는 것처럼 느부갓네살 임금도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풀을 뜯어먹는 신세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워 울프"라고 해서 사람이 보름달이 뜨면 자기를 늑대로 생각하고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피를 먹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일종의 정신병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도 이런 병에 걸렸습니다. 자기를 짐승처럼, 소처럼 생각하는 병에 걸린 것입니다.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더라 하시오니." 하나님께서 정하신 칠 년 동안 그런 고통을 당하리라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깨닫고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회개하기까지 칠 년을 정신병으로 고통을 당하리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마지막 24절을 보시겠습니다.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명정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 명정이라는 말은 명하시고 정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순찰자를 통해서 명하시고 정하신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왕에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자기 위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행동하려고 하다가 짐승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그 사실을 생각하면서 내 위에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의미로 모자를 씁니다. 비록 우리 머리 위에 그런 모자를 쓰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한 순간이라도 내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 지금도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초리로 나를 살피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 임금처럼 나를 높이려고 하지 말고, 오늘도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함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고 이웃을 섬길 수 있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복이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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