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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세 의 은 혜 누가복음 9: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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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세 의 은 혜

 

 

누가복음 9:28-36

 

 

 

예수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일관되게 그것을 말씀하여 주셨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좌우로 흔들림 없이 일직선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모든 내용의 거의 대부분이 그의 죽음과 부활하실 일에 대한 것입니다.

다른 성인들은 살아서 업적을 남기고 많은 교훈을 남기는 일을 했으나 예수께서는 오직 죽는 일에만 관심을 두셨고 죽음으로써 가장 위대한 사상, 업적, 교훈을 남겼습니다.

예수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빵을 먹이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셨습니다.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위로의 손을 펼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세상에 온 목적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알려주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9:22)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아직도 자기를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자신이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임을 알려 주시려고 계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변형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용모가 변화된 것은 예수의 생애 최대의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이적의 사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생애와 직접 관련된 것은 예수의 모습이 영광스럽게 변화된 사건입니다. 이는 예수의 탄생과 십자가 수난 사이에 있는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서 예수의 전 생애의 영광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이 변화의 사건은 예수의 영광을 보여주는 최대의 사건으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수난을 당하지만 결국 부활의 영광에 이르며 죽음을 정복하는 승리자로 자신의 영광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게 되실 영광과 동시에 재림에서 실현될 인자의 영광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영광스런 변화의 사건 속에서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은 진리가 바로 별세의 신비였습니다.

31절에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라고 했습니다.

별세(e[xodo")는 출애굽 또는 탈출을 의미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 애굽을 탈출하듯 새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라 죄악된 세상을 떠난다는 뜻입니다.

죽음이란 영혼이 육체로부터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죄악으로 인한 죽음의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로 인류를 탈출시키는 의미가 됩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모세는 율법, 엘리야는 선지자로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증언하는 사명자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별세하러 오신 것을 신비하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는 이 광경이 참으로 좋아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3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황홀한 감정에 도취되었을 뿐 별세의 깊은 신비를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하는 일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변화 사건의 핵심은 예수의 별세의 사건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또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35). 예수의 별세의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하늘에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별세의 말씀을 모르면 신앙이 헛되고 설교를 듣는 것이 헛되며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신앙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 중 특별히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이들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가셨습니다. 이것은 따로 받아야 할 은혜요, 높은 산에서 받아야 할 은혜(17:1, 9:2)였습니다. 참으로 큰 은혜였기에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세상에 보내주셔서 예수의 별세를 통하여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별세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는 신비한 용어입니다.

우리말로 별세(別世)떠날 별()’, ‘세상 세()’이므로 세상을 떠나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E 다른 의미는 다를 별()’, ‘세상 세()’ 다른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신비한 세계입니다. 이 속된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아주 다른 세상, 별세계(別世界)를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죽으심으로 다른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하나님 우편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별세는 죽는 별세를 통하여 다른 세상을 사는 영광스런 별세의 약속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세상에 살기 위함이 아니라 이 세상을 별세시키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별세는 죽는다는 것보다 새롭게 산다는 데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죽는 별세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의 별세는 절망이요, 불행이며, 인생의 종말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죽는 별세와 사는 별세가 동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별세는 영광스러운 것이며,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별세의 은혜를 이렇게 받으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의 별세와 우리의 별세는 다른 것입니다.

누가복음 923절에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자기가 죽는 별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제자의 길입니다. 배우고, 닮고, 본받고, 함께 하려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결국 별세하려고 따르는 것입니다. 별세의 예수를 본받으려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따르고 결국 예수의 부활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는 길입니다.

예수께서는 단번에 별세하실 것이며 우리는 날마다 별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지금 살아서 별세하라는 의미입니다. 살앗 죽고 살아서 새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날마다 삶의 현장에서 별세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일반 은혜는 예수와 따로 받는 은혜입니다. 병을 고쳐도 내 병고친 것이요, 사업이 잘 되어도 내 사업 잘 되는 것이요, 환난에서 건짐 받아도 내가 도움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별세는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함께 받는 은혜입니다. 예수께서 죽어야만 내가 죽고 예수께서 살아야만 내가 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지 않고는 받을 수 없는 은혜가 별세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생명 바쳐 주신 최고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에 이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변하게 됩니다.

 

첫째, 별세는 변화의 은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29). 이는 영광스런 변화를 말합니다.

이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유행도, 사상도 변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도 변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겉사람이 늙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에는 땅의 것으로 돌아가려는 변화가 있고 하늘의 것으로 돌아가려는 변화가 있습니다. 땅의 것으로 돌아가려는 변화는 썩는 변화이며 하늘의 것으로 돌아가려는 변화는 영광스런 변화입니다.

지금 우리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다 썩고 후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안에 있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만이 하늘 생명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변화의 모습을 보이신 것은 영광스런 별세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은혜를 받되 예수 안에서 별세의 변화되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용모의 변화는 인격의 변화요, 삶의 변화입니다. 예수께서는 최대의 변화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변화도 우리의 죽음과 부활 생명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자기 별세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변화하려고 하는데 안된다고 탄식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 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예수와 함께 죽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었다고 믿을 때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예수와 함께 죽었다고 믿는 신앙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먼저 고백할 일은 예수 안에서 별세를 선언하는 일입니다. 이때 가치관의 변화와 삶의 목적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인간의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삶의 목적의 변화입니다. 삶의 목적이 변하면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고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됩니다. 사는 목적을 하나님께 둡니다. 위하여 살 대상이 달라집니다. 나를 위하여 살고,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삶으로 바뀝니다. 자기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삶의 목적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죽었다는 고백 때문에 세상이 변화된 것입니다.

 

둘째, 별세는 최고 영광의 은혜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3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고 싶어하신 은혜가 별세의 은혜였습니다. 그것은 별세가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별세를 말씀하실 때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나타났고 예수의 영광도 보았습니다. 별세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요, 최고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의 별세로 나타났고, 우리도 별세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영광스런 존재가 됩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셨기에 예수께서는 인자의 영광을 그의 죽음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12:23)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토록 존경하고 흠모하며 사랑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자기를 별세하여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예수의 별세의 영성을 따라 자기를 희생하며 사는 사람들은 역사에 길이 영광스런 인물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영광스런 존재로 세우기를 원한다면 자기 자신을 별세시켜 오직 예수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는 길이 있다면 오직 자신을 별세시키는 길뿐입니다. 자기를 죽이면 그때 그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영광스런 존재가 됩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모든 신앙이 자기 중심의 기복신앙이 됩니다. 자기 욕구를 채우는 열심을 낼뿐입니다. 별세의 신앙에 근거하면 사나 죽으나 영광이 됩니다.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어떤 환경에서든지 영광이 됩니다.

 

셋째, 별세는 행복의 은혜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33)

베드로가 잠깐이지만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고백한 것은 비록 그의 감정에서 나온 고백이지만 행복의 극치인 것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가정을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 여기가 좋사오니얼마나 은혜로운 표현입니까? 천국은 바로 나도 세상도 간 곳 없고 예수가 전부가 되어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고백하는 곳입니다.

베드로는 순간일지라도 별세계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매우 잘 아셨기에 전혀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별세는 자기 별세를 받는 은혜이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별세되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요, 다른 세상이 됩니다.

베드로는 감정적이지만 별세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게 되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어디서든 별세를 살게 됩니다. 자신을 별세시키면 어떤 남편과 살아도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고백할 것이며, 어떤 직장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사는 조국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 애국자가 될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로 시골 교회에 갔을 때 몹시 좋았습니다. 어느 정도로 좋은가 하면 사는 집의 문이 작아서 늘 드나들면서 헤딩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주여!” 소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를 낮추어 주시옵소서.” 그때 주님은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집이 너무 좋아서 여기가 좋사오니하는 눈물의 감격으로 살았습니다. 지금 회상하면 그때가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른 세상은 이 세상이 바꾸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로 살면 어디를 가든 예수로 만족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됩니다.

초대교회 제자들이 성령받고 별세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들은 가난해도 좋았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도 좋았습니다. 저들은 죽으면서도 찬송을 불렀고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자를 용서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을 빌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별세되었기에 자기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죽음에서 자기 죽음을 선언하고 예수 부활 생명으로 사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별세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별세의 사람들을 이 세상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감옥에 가두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재산을 빼앗아도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들의 모든 보화가 예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죽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죽으면 예수와 함께 영생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별세의 사람들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신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이 좋았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별세를 살기에 찬송을 불렀습니다.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사슬이 풀리자 그 앞에서 간수가 엎드려 선생님,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소리쳤습니다.

오늘 우리가 받아야 할 은혜가 바로 별세의 은혜입니다. 별세의 은혜를 받으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이 신앙고백이 오직 예수입니다. 남편을 보면서 오직 예수만 보이면 그때 남편의 아내가 아니라 주를 섬기는 천사가 됩니다. 자기를 천사로 만들어 살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존경하면서 오직 예수님만 보인다면 그때 그는 하늘이 보낸 효자로 천사처럼 됩니다. 자기 존재의 영광스러움을 볼 것이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신을 보면서 놀라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은혜를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별세의 은혜를 받도록 기도합시다. 가정에서 서로 별세하면 그곳이 천국이 됩니다. 직장에서 별세하면 그 자리가 바로 거룩한 곳이 됩니다. 이때 하늘을 품고 사는 별세의 사람이요, 미래의 하늘 천국을 미리 지금 체험하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