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 9. ”복 있는 사람” 시편1:1-6
I. 한국인의 행복 지수
2011년 새해 모 신문사가 「2011, 한국인이여 행복하라」는 주제를 내걸고 한국갤럽에 의뢰하여 한국인의 행복지수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전세계 표본국으로 덴마크, 말레이시아, 미국, 베트남, 브라질, 인도네시아, 캐나다, 필란드, 호주 그리고 한국이 선택되었습니다. 한국은 선택된 다른나라들 보다 조건면에서 모자람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1인당 GDP 2만달러, 경제규모 세계 13위, 무역규모 9위, 수출규모 7위, 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 명성을 높였습니다.
그런데 조사대상국 가운데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단연 꼴찌였습니다. “나는 매우 행복합니다”라고 답한 사람이 브라질 57%에 비해 한국은 7%에 불과했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른 나라는 모두 “나 자신”이라는 답이 가장 높은 반면 한국인은 “빌게이츠”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를 두고 관련기사는 한국인의 “물질집착” 수준이 행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인은 자기 나라에 대한 자긍심도 모자라 기회가 되면 다른 나라에 살고 싶다는 지수도 가장 높아 무려 37.5%에 달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세계 어디를 가나 종교인들 특별히 크리스챤들의 행복지수가 누구보다 높다는 사실입니다. 2011년 한해동안 “행복한 동행”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듣게 될텐데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교회와 함께 걸어가는 행복, 자녀들과 함께 사는 행복, 우리시대 우리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행복이 이 한해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독일의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임금님이 신하 두 사람을 불러, 한 사람에게는 나라의 전역을 다니면서 잡초가 얼마나 있는 지 조사하라고 했고, 다른 사람에게는 꽃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1년이 지난 후에 잡초의 종류를 연구했던 신하는 “우리나라는 온통 잡초나라입니다. 온 나라가 잡초로 뒤덮여 있습니다”라고 보고했고, 꽃을 찾아 나섰던 신하는 “우리나라는 온 국토가 수많은 꽃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꽃동산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잡초와 살고 있습니까, 꽃과 살고 있습니까? 사람이 어떤 마음과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세상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사막을 여행하다 물이 반병쯤 남았을때 물이 반병밖에 남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고 물이 반병이나 남았네라고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II. 행복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오늘 본문은 시편 1편입니다. 히브리인들은 가장 중요한 것, 특히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을 앞에 놓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시편 1편은 시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시편 전체의 서론이요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의 주제는 “복있는 사람”입니다.
옛말에 망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복있는 사람은 넘어져도 금덩어리 주워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경상도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이 그 마을 사람들에게 알아듣기 쉬우라고 그랬는지 시편 1편을 경상도 방언으로 이렇게 번역해 놓은걸 보았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있재 못된 얼라들의 꼼수를 따라가지 않는기라. 그라고 죄를 짓는 얼라들과 함께 놀지도 않고, 모가지 빳빳하게 힘주고 으시대는 눈꼴사나운 얼라들 사이에 꼽사리 끼지도 않는 기라. 니는 어떤노. 내 말 잘 듣거래이. 그런데 복 있는 사람은 있재 죽으나 사나 여호와의 율법을 억수로 좋아하며 밤잠도 안자고 그 율법을 마 깊이 묵상하는 사람이 아닌게배. 그 사람은 도랑가에 심어놓은 나무가 사시사철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맺고 그 잎파리가 시퍼런 것 같이 그 하는 일들이 모두 다 억수로 잘 되는 기라. 악인들 가들은 바람에 펄펄 날리는 검불과 같은기라. 억수로 안됐재. 그렇기 때문에 나쁜 얼라들은 불구덩이 심판을 배겨내지 못하고 죄를 짓는 얼라들이 의로운 사람들 틈에 꼽사리 낄수도 없다 아이가. 참말로 의로운 사람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지만은 나쁜 얼라들에게는 끝장 나는 기라. 니들도 조심 하그래이. 알겠재.”
진실하게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십시다. 여러분 참으로 행복하십니까? 여러분이 아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 정도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알고 보면 그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아픔과 근심 염려 걱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여건, 환경을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재물을 가져보면 또 내 소중한 아이들이, 내가 멋진 대학에 들어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제법 잘 사는 100명 정도의 재벌들 그리고 100명 정도의 최고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진실로 행복하십니까? 그랬더니 87%가 자신 만만하게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13% 정도만 글쎄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미국 워싱턴 쏘니엔 박물관에 가면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인도산 45캐럿 다이아몬드의 이름은 호프 - 희망의 다이아몬드입니다. 그런데 이 보석을 소유했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이 보석을 소유했던 사람 페르시아 총독은 보석을 도둑에게 빼앗기고 그 자리에서 살해당합니다. 두 번째 소유자는 페르시아의 왕이었습니다. 그도 역시 반란군에게 처형을 당합니다. 세 번째 소유자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넘겨졌으나 그도 단 한번 목에 걸어보고 천연두에 걸려 죽습니다. 이어 왕비 마리앙뚜아네뜨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녀도 단두대 이슬로 살아지지요. 결국 이 보석은 영국 최고의 재벌 헨리 필립 호프에게 넘어가 자기 이름을 따 희망의 다이아몬드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호프 다이아몬드라 이름이 붙여지지만 그때부터 호프 가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두려움에 아무도 이 다이아몬드를 소유할 사람이 없었던지 미국 워싱턴 쏘니엔 박물관에 보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지고 싶은 것 가져보면, 남들보다 좀 더 가져보면, 남들이 갖지 못한것 가지면 우리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다. 여건이 환경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 아닙니다. 행복은 나 자신에게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복된 환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제게 사람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가운데 어떤 계절을 제일 좋아합니까? 묻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한결같은 대답을 합니다. “사계절을 모두 다 좋아합니다.” 봄에 막 돋아나는 새싹들의 연초록 빛을 아십니까? 저는 그 색깔을 미치도록 좋아합니다. 산자락 눈을 녹이는 봄날 따스한 햇살을 좋아합니다. 여름철 울창한 숲을 보노라면 삶의 생기가 용솟음쳐 납니다. 푹푹찌는 더위에 곡식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노라면 사는 맛이 납니다. 가을에 단풍과 쌀쌀한 날씨와 풍성한 열매는 인생의 의미와 맛을 가르쳐 줍니다. 겨울날 쨍하고 추운 날씨는 정신이 번쩍 들어 좋습니다. 밤이 길어 공부하고 기도할 시간이 길어서 저는 겨울을 참 좋아합니다.
혹자들은 봄의 꽃샘바람이 싫고 여름은 덥고 땀이 나서 싫고 가을은 처량하고 허무해서 싫고 겨울은 눈도 바람도 추위도 싫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 갖다놓아도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일이 많으면 쓰임 받아서 좋습니다. 일이 없으면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쉴 수 있어서 좋습니다. 건강하면 활기차게 일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잠시 아파 누워보면 기도할 수 있어 좋습니다. 순탄할 때 감사할 수 있고 평안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역경 가운데 나 자신을 단련하고 내 영혼을 정화시킵니다. 겸손을 배우는 시기이지요.
복은 환경이나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소유냐 존재냐? 복은 적어도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복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꼭 지옥에 갈 거라고 생각하고 불안하게 나날을 살아가다가 정말 죽었습니다. 천국 문 앞에 섰는데 베드로가 천국 가고 싶소 지옥 가고 싶소? 묻더랍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냥 지옥 가! 그러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왕 선택권을 주시려면 천국이 어떤 곳인지 지옥이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구경을 하고 오라고 하더랍니다. 천국에 갔더니 성도들이 찬송을 합니다. 흰옷을 입고 둘러앉아 예배하고 하나님과 함께 또 노래를 합니다. 며칠을 지내는 사이에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더랍니다. 지옥에 내려갔더니 카지노도 있고 술집도 있고 아가씨도 있고 왁작지껄 살만 하더랍니다. 세상에서 늘 보던 그 모습 그대로 자기가 지내던 그 모습 그대로 괜찮더랍니다. 베드로에게 돌아와서 나는 아무래도 지옥체질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내려갔습니다. 그랬더니 웬걸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야단법석이 났습니다. 안내하는 천사에게 항의를 했겠지요. 내가 보았던 카지노나 술집 아가씨들은 다 어디 갔냐고? 그랬더니 그가 하는 말이 그때는 관광비자로 왔고 지금은 영주권을 가지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살아야 한다고 하더랍니다.
제가 유행가 한 토막 할까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 천국은 아무나 가는 것입니까? 천국 체질이 되어야 가는 것입니다. 찬송이 싫고 예배가 지겨운데 어떻게 천국 가서 어떻게 살겠다는 겁니까?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운 왕으로 알려진 루이 14세는 그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뭐든지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가지고 또 가진다 할지라도 직성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갈증을 느끼고 느끼다가 심각한 질병으로 앓아눕게 되었습니다. 용하다는 의사를 다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진단을 내리는 사람도 처방을 내리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의사가 오더니 이 세상에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빌려서 입어보면 이 병은 나을 것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부하들과 함께 온 나라 장안을 뒤지는데 행복한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목동이 양을 몰고 지나가는데 마냥 즐거워만 보였습니다. 너는 걱정도 근심도 없냐? 이 세상 살아가는데 무슨 걱정 근심이 있겠습니까? 그래? 너는 참으로 행복하냐? 나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속옷을 빌려달라 얘기를 했습니다. 폐하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지 드릴 용의는 있습니다. 그리고 겉옷을 벗는데 속옷이 없더라지요. 그때 루이 14세가 깨닫는 바가 한 가지 있습니다. 아 행복이라는 것은 환경이나 여건에 있는 것 아니구나. 두 번째 행복의 옷은 남의 것을 빌릴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재물을 따라만 다니는 사람이 있고 재물이 따라 오는 사람이 있듯이 행복을 쫓아만 다니는 사람이 있고 행복이 따라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 있는 존재가 되면 내가 복을 따라 가지 않아도 복이 따라 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새해에 인사로 복 많이 받아보세요. 인사를 해 보지만 복은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복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내가 복 있는 존재가 되고 나면 어떤 힘이 어떤 권세가 내게 주어집니다. 본문에 의하면 불행을 거절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복 있는 존재가 되고 나면 내게 물밀 듯이 밀려오는 불행을 거절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생긴다는 것입니다.
III. 1절
이 시편은 “행복”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멸망한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열망하는 “행복”이라는 말과, 가장 싫어하는 “멸망”이라는 말이 시작과 끝에 나온다고 하는 것은 이 시는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문학에서는 행복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불행도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두 가지의 길이 그 앞에 놓여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길, 멸망이라는 길, 복된 길과 저주스러운 길이 놓여 있습니다.
유명한 플라톤이라는 철학자는 인간의 행복한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셋째, 사람들이 자신이 자만하고 있는 것에서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넷째,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
플라톤은 이 다섯 가지가 있으면 행복할 줄 알라고 합니다. 고대 철학자의 겸양의 미덕을 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란 완벽하고 만족할만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라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편 1절을 보십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절)
1절은 히브리문학에서 가장 탁월한 기법 중 하나인 삼중 병행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쫒다, 서다, 앉다는 동사 병행이요
둘째는 꾀, 길, 자리라는 병행이요
셋째는 악인, 죄인, 오만한 자라는 병행입니다.
망하는 자는 악을 머리로 생각하다가 그 다음엔 행동으로 옮기고 결국엔 악습이 라이프 스타일이 된다는 겁니다. 뒤따라 가다가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되고 마침내 앉아서 악을 즐기게 되는 겁니다. 점차 강도가 강해지는 점진적 병행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쫓지 않는다. 악인의 길을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악인의 길인 줄 알고 왜 갑니까? 욕심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속이는 자도 나쁘지만 걸핏하면 속아 넘어가는 사람도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 속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욕심이 있기 때문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욕심없이 살아가면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악한 길인 줄 알면서 헛된 욕망의 길인 줄 알면서 왜 쫓아가는 것입니까?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선다는 말은 망설인다는 말입니다. 갈까 말까 할까 말까 망설이는 거지요. 뭘 망설이는 것입니까? 산뜻하게 돌아설 때에 복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새해에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가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까?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까? 이제는 제대로 살아야지 몇 번이고 결심하다가 그러지 못한 것 있습니까? 끊어야지 끊어야지 결심하다가 끊지 못한 것 있습니까?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면서 버리지 못한 것 있습니까? 산뜻하게 돌아서는 신년 새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오만한 자가 연회를 열었습니다. 거기 앉아서 뭘 얻어먹겠다는 것입니까? 내가 오만한 자와 자리를 같이한 하나만으로 내 인생의 운명의 진로가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낚시 밥이 작아 보이고 거기에 고기가 걸려들 수 있는 것입니다.
새해가 되면 집집마다 복조리를 걸어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복조리를 집 앞에 걸어 놓으면 지나가던 누가 또는 천사가 와서 거기에 복을 담아 주는 줄로 압니다. 옛 어른들이 왜 거기에 복조리를 걸어 놓는 줄 아십니까? 무엇이 복이라고 옛 어른들은 생각을 했을까요? 조리라 하는 것은 쌀을 일 때에 쓰는 도구입니다. 돌을 골라냅니다. 겨를 골라냅니다. 좋은 쌀을 잘 걸러 밥을 짓는 것입니다. 조리로 돌을 골라내듯이 내 인생의 저주와 상처와 잘못된 것과 악한 것들을 걸러낼 수 있는 지혜가 복조리라는 것입니다. 새해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될 일들, 보아야 될 일과 보지 말아야 될 일들을 잘 골라 내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IV. 시냇가에 심은 나무
복 있는 사람은 오늘 본문에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Trnasplanted" 즉 좋은 곳으로 옮겨 심은 나무라는 뜻입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나무, 어쩌다 보니 돋아난 나무가 아닙니다. 정원사가 의도를 가지고 심은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이 땅에 보내주실 때는 분명한 의도가 있습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도 모진 찬바람 맞습니다. 눈이 내리면 나뭇가지가 부러지기도 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도 세상 사람이 당하는 불경기 불황 어려움 다 당합니다.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실패를 맛볼 수 있습니다. 질병을 앓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물어도 영향을 공급받을 수 있는 힘의 원천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할 수 있는 사람, 은혜가 필요할 때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 성령이 필요할 때 성령이 나를 떠나지 아니하고 지켜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하는 것입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보면 기독도가 장만성을 떠나서 천성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데 설명의 집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저 마다의 불꽃을 가지고 있더랍니다. 악마가 그 불꽃을 끄기 위해서 온갖 바람을 일으킵니다. 어떤 불꽃은 부채질 한번 하니까 꺼지더래요. 어떤 불꽃은 바람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크게 솟아오르더랍니다. 불꽃이 꺼지고 나니까 이 땅에 재난과 환란과 걱정과 근심과 문제가 얽히고 설히고 야단법석이 나더라지요. 그런데 불꽃이 타오르니까 그의 신앙이 성장합니다. 가정이 번창합니다. 사업이 왕성합니다. 건강이 회복되어 집니다. 교회가 부흥됩니다. 어떤 불은 작은 바람에도 꺼지고 어떤 불은 바람이 강할수록 더욱 커집니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있는가? 뒤로 갔더니 설명이란 사람이 설명을 하는데 금방 꺼지는 불꽃은 뒤에 기름탱크가 말라 붙어버린 것들입니다. 그러나 바람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큰 불꽃들로 타오르는 불꽃들은 뒤에 큰 기름탱크가 붙어 있어서 바람이 커지면 기름탱크에서 기름이 더 많이 공급되기 때문에 더 크게 불꽃이 솟아 오르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기름탱크, 은혜의 기름탱크, 말씀의 기름탱크, 사랑의 기름탱크, 믿음의 기름탱크, 비전의 기름탱크, 예수님 마음의 기름탱크를 모두 가슴에 품고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동남풍이 불면 불수록 서북풍이 불면 불수록 행복의 기름이 더 힘있게 공급되어져서 행복과 사랑의 불꽃이 더 커지는 복된 삶을 이 한해동안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름탱크가 마르지 않는 사람,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그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시냇가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가슴에 인생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 말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성품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갈 줄 아는 사람, 주의 말씀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능력 가운데 말씀의 능력 기도의 능력 보다 더 큰 능력이 없습니다. 기도의 자리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사람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즉 말씀에 뿌리 내리고 교회 중심의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이 늘 흔들리는 사람은 믿음이 제대로 자랄 수 없습니다. 변죽만 울리는 구경꾼 신앙입니다. 변두리에서 놀던 신앙, 벗어 던지고 새해에는 신앙의 중심의 자리로 달려오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예배의 자리에 앉더라도 한 칸만 앞자리에 앉으세요. 예배에 오분만 먼저 오세요. 기도를 해도 오분을 더 하십시오. 셀에 가더라도 한번 더 가십시오. 찬송을 해도 목소리를 조금 크게 해 보세요. 손을 들어도 1센티만 더 높이 드십시오. 여러분의 은혜가 축복이 커지고 높아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주의 궁정에 심겨진 나무처럼 말씀 제단 중심에 교회 중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V. 복의 열매
이런 사람들은 열매를 맺습니다. 잎이 시들지 않습니다.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노닐게 되는 것입니다. 꽃이 피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향기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바람이 불지만 오물은 악취를 풍기고 백합은 향기를 풍깁니다.
복 있는 사람은 내 가슴속에 넘치는 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당신 때문에 난 행복합니다. 엄마 아빠 때문에 난 행복해. 얘들아 나는 너만 보면 행복하단다. 내 환경 어디서든지 행복의 열매를 봅니다. 장애물에서도 복을 보고 고난 중에도 복을 맺습니다.
어떤 임금이 한 마을을 시찰하다가 네거리에 큰 바위 하나를 갖다 놓았더랍니다. 그리고 나무 뒤에 숨어서 구경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놈이 길거리에 이 큰 돌멩이를 갖다 놓았냐고 투덜거리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그것을 피해 가더랍니다. 무슨 사연인가? 이게 왜 여기에 있을까? 내가 이해가 안되지만 납득이 안되지만 피해 가더랍니다. 한 농부가 수레를 끌고 지나가다 보니까 마을 네거리에 큰 돌멩이가 있습니다. 수레를 잠깐 세우더니 힘을 다해서 소와 함께 바위를 옮겨 놓더랍니다. 바위를 다 옮겨 놓고 보았더니 그 밑에 큰 자루가 있는데 이런 글귀가 씌어져 있었습니다. “이 돌을 옮기는 사람은 이 자루를 가져가도 좋습니다.” 자루 안에는 금돈 은돈이 가득 담겨져 있더랍니다.
축복은 가끔 검은 보자기에 싸여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열고 보면 지난 한해동안 여러분들이 겪었던 어려움과 고난과 실패와 상처와 아픈 모든 것들도 믿음으로 잘 감당하고 옮겨놓고 보면 은혜로 잘 극복하고 나면 그 밑에 황금보자기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줄 믿습니다. 불평하지 마세요. 불평형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불행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원망하지 마세요. 원망형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튼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되지만 찬양하는 것입니다. 납득이 안되지만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복 있는 존재가 되고 나면 복은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동서남북 어디서든지 시절을 쫓아 복의 열매를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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