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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동호목사

무엇보다 귀한 자녀 (10) 김동호 목사 2004.08.01 1502 높은 이상을 갖게하라

무엇보다 귀한 자녀 (10)  김동호 목사  2004.08.01 1502  
엡 6:4, 마 5:8.

 

몇 주 전 텔레비전을 보니 30대 초반의 부부가 10년 동안 10억원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달에 7,8천 원 정도 드는 쓰레기 봉투를 아끼기 위하여 버릴 쓰레기를 들고 온 동네를 다니며 미처 채우지 않고 버린 쓰레기 봉투를 찾아 거기에 자기 쓰레기를 함께 채워 버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모습을 보면서 저 부부들 정말 10년 동안에 10억원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달성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촬영을 하던 기자가 10억 원을 모아서 무엇을 하려고 그러느냐를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그 부부의 대답은 정원이 딸린 집을 사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며칠 동안 계속해서 그 부부를 생각했습니다. 그와 같은 집념이라면 10억 원이 작은 돈은 아니지만 모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저의 생각은 10년 후 10 억 원을 모아 정원 딸린 집을 사면 과연 저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거의 그와 같은 식으로 살아 정말 정원 딸린 집을 산 몇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정원 딸린 집을 산 후에도 한 달에 7,8천 원 하는 쓰레기봉투 사는 것이 아까워서 계속해서 자기 쓰레기를 들고 남의 집 쓰레기통을 뒤지며 다니는 삶을 그만두지 못하고 평생을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재산은 많이 늘어났지만 그 많은 재산에 세상과 하나님께 의미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정작 자기 자신과 가족들에게도 큰 의미가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정상적인 생활 때문에 생활의 리듬이 깨지고 가족간의 관계도 좋지 못해 고통을 격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그 30대 부부도 거의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 보였습니다.

다음은 제가 상상으로 지어낸 낸 이야기입니다. 어느 젊은 부부가 결혼하여 셋방에서 살았습니다. 셋방에 살았지만 저들은 행복했습니다. 어디서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하고 사느냐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아이가 밤에 좀 울고 시끄럽게 하자 집 주인이 그 젊은 부부를 찾아와 방을 빼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마음에 상처를 받는 말 중에 하나가 ‘방 빼’라는 말인데 그만 그 말을 듣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그 부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 날부터 절약을 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어느 날 조그마한 집을 하나 사게 되었습니다. 비록 화장실이 마당에 있는 작고 초라한 집이었지만 저들은 참 행복했습니다. ‘방 빼’ 소리를 안 듣게 된 것이 저들은 너무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아파를 사서 이사를 했다고 집들이를 하였습니다. 친구의 아파트를 다녀온 후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 것을 보고 그 젊은 부부는 화장실이 마당에 있는 자기 집이 못 마땅했습니다. 다시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고 안 입고 안 먹고 안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저들도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 아파트를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밤에 화장실을 가기 위하여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저들은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전에 집들이를 하였던 친구가 아파트 평수를 늘려 이사를 했다면 다시 집들이를 하였습니다. 집들이를 하는 친구의 아파트를 가보니 평수가 넓어 화장실이 두개나 되었습니다. 화장실이 두개나 있는 친구의 아파트를 본 순간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는 자기 아파트가 또 못 마땅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고 허리띠를 단단히 동여 맨 후 또 안 입고 안 먹고 안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돈을 모아 결국 화장실이 둘 있는 아파트를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안 있어 저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말이 쉬어서 화장실 둘 있는 아파트이지 우리 한국에서 그와 같은 아파트를 장만하려고 하면 시간이 보통 많이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저들 부부는 몇 년 동안 화장실 둘 있는 아파트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부부는 평생 뭐하다가 죽은 사람입니까? 예, 저들은 평생 화장실 즉 변소 간 바꾸다가 죽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제가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인생의 목표가 변소 간 바꾸는 것입니다. 열심히 변소 간 바꾸다가 나이 들어 늙어 죽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들 중에 저와 여러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먹고 사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사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관심이 많았다기 보다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셨고 가난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나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어려서부터 참 많았습니다. 때문에 저는 제가 지금 큰 걱정 없이 먹고 살며, 뿐만 아니라 자식들까지 먹여 살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스스로 또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저는 겉멋이 들어서 먹고 사는 일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며 사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먹고 사는 일의 해결은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먹기 위하여 사느냐?’ ‘살기 위하여 먹느냐?’라는 질문을 하곤 하였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게 차이가 없는 애매한 질문일 줄 알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먹기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하여 먹는 것입니다.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은 먹어야만 합니다. 때문에 먹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는 것은 삶을 위한 수단과 도구일 뿐 삶 그 자체는 아닙니다.

먹고 사는 일을 우습게 여기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 문제는 먹고 사는 일을 삶 자체로 여기고 그것을 가장 중요한, 아니 유일한 삶의 의미와 목표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유행어 중에 하나는 웰빙(wellbeing)입니다. 사람들은 웰빙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가장 큰 삶의 목표는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와 같은 식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저 밥이나 먹다가, 기껏 해서 잘 먹다가 인생을 마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크고 좋은 집에서 좋은 차 타고 호의호식하다가, 그 짓만 하다가 인생을 마치고 싶은 생각은 정말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시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그 뜻과 목적으로 내 삶의 목적과 목표를 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저는 제 사랑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기껏 좋은 집에서 좋은 차타고 호의호식 하는 것과 화장실이나 바꾸는 것에 두고 사는 자식들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그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 중에 ‘높은 이상을 갖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적어 넣고 있습니다. 평범한 말 같으나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이루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뜻 밖에도 많은 부모들의 자녀를 위한 기도는 그저 ‘우리 아이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십시오’라는데 머물러 있습니다. 오로지 그 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공부를 시키고 유학을 보내며 아이들을 들볶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자녀들이 그보다 높은 이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녀가 되기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는 생각 밖에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자신과 사랑하는 자녀를 위하여 중요한 것은 높은 이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좋은 집에서 살려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좋은 집은 죽어 천당에 가면 널려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좋은 음식이나 먹고 좋은 옷이나 입고 살려고 태어난 존재들이 아닙니다. 화장실이나 바꾸려고 태어난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다 각기 다른 하나님의 뜻과 기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도 하찮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사람들이며 더 중요한 하나님의 기대를 충족시켜 드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우리의 삶의 중요한 의미와 목표로 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모두가 다 그와 같은 근사한 목표를 이루고 사는 근사한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비젼이 되어야 하고 이상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의미가 되어야 하고 목표가 되어야만 합니다.

제게는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비젼이 있습니다. 꿈이 있습니다. 이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믿습니다. 추상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믿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그 길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 그보다 더 어린 청소년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저는 정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최선을 다하여 복음 전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청년들에게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제 꿈과 희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살던 시대에 청년들이 가장 교회에 많이 다니고 열심히 다니고 뿐만 아니라 열심히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사는 동안에는 청년들이 교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말을 없게 하는 것입니다. 건방진 이야기이고 잘못하면 매우 위험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제가 전도사와 목사로 있었던 교회는 언제나 청년과 청소년들이 왕성했었습니다. 제 욕심은 제가 있었던 교회에 청년들이 왕성해 지는 것이 아니라 제가 살았던 시대가 청년들이 왕성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죽기 전에 바른 교회의 틀을 잡는 것입니다. 바른 교회의 표지와 틀을 연구하고 그것을 실천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답게 하는 일에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죽은 후에 하나님이 주인이신 바른 교회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는 평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그것이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기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뜻과 그 기대를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고 싶습니다.
저는 제 사랑하는 자녀들이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기대에 민감한 자녀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하나님의 뜻과 기대로 삶의 목표를 삼아 그 목표를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자신의 온 삶을 헌신하는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목표를 향하여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평생을 경주하듯 살아가는 자녀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저와 제 자녀들이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깨끗한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기대를 이루어 드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근사한 삶을 살아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하여 하는 저축은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더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한 저축과 더 넉넉한 생활비를 쓰기 위한 저축은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늙어서 지금보다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지금 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싶고, 지금 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욕심을 현재 자리에서 끝내려고 합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만큼 마음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만큼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보이면 하나님의 뜻이 보이고 하나님의 뜻이 보이게 되면 그 하나님의 뜻으로 내 삶의 목표와 이상과 비전을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산상보훈에 보면 마음이 청결한자가 하나님을 본다 하였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하여 욕심 없는 가난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맥아더 장군은 그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 중에 높은 이상을 갖게 해달라는 말 앞에 그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 달라는 기도문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깨끗한 마음이 없이는 절대로 높은 이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이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는 돈 벌어서 출세하고 남보다 좋은 집에서 남 보다 좋은 차를 타며 남보다 좋은 옷을 입고 남보다 풍족한 생활비를 쓰면서 사는 것 이상의 목표와 꿈과 이상과 비전이 있으십니까? 혹시 여러분들도 정원 딸린 집에서 사는 것을 위하여 남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가고 계시는 것은 아니십니까? 여러분 그렇게 살면 나중에 여러분들도 결국 화장실 바꾸다가 죽은 사람이라는 비명(碑銘) 밖에는 얻지 못할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깨끗한 마음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좋은 집에서 더 좋은 차를 타면서 더 좋은 음식을 먹는데 인생의 목표를 두지 마시고, 그것을 위하여 돈을 벌거나 모으지 마시고, 시간을 보내지 마시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기대를 이루어 드리는 데 욕심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돈을 벌고, 모으고, 쓰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이름은 높은 뜻 숭의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의 높은 뜻은 하나님의 뜻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우리 인생과 교회의 목표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와 교회의 이상이 되어야 하고 비전이 되어야만 합니다.

욕심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높은 이상과 비전을 품고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짧은 인생을 근사하게 마무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