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강해/아모스(박상훈)

[스크랩] 아모스서/제44강 아모스가 본 네번째 묵시(8:1-3)

제44강 아모스가 본 네번째 묵시(8:1-3)

 

8:1-3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이시며 가라사대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가로되 여름 실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 그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 버리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 본문은 아모스 선지자가 본 다섯 가지 묵시 가운데 네번째에 관한 것입니다. 아모스는 네번째 묵시에서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았습니다.
우선 오늘 본문의 구조에 대해서 잠시 살펴봅니다. 세번째 묵시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크게 일곱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 묵시의 기원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아모스가 본 묵시는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2) 묵시의 내용입니다.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았습니다. 3)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4) 아모스의 답변입니다. 아모스는 대답했습니다. "여름 실과 한 광주리이니이다." 5) 묵시의 설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름 실과 한 광주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모스에게 일깨워주셨습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운명이 끝장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용서치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6) 심판의 결과입니다.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그날 궁전의 노래는 애곡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잔칫집이 초상집으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7) 심판의 이유입니다. 4∼10절까지 비 묵시적인 내용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여름 실과와 같은 이스라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제 한 절씩 읽어가면서 네번째 묵시를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8:1)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이시며
"주 여호와께서"라는 말은 묵시의 기원을 밝혀줍니다. 아모스는 시장 바닥에 놓여 있는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본 것이 아닙니다. 이웃집 선반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본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또 내게." "또"라고 하는 것은 이미 아모스가 이전에 하나님께로부터 묵시받은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이미 세 번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주신 묵시를 받았습니다. 이번이 네번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무엇을 보여주셨습니까?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광주리 안에 어떠한 여름 실과가 들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습니다. 포도일 수도 있고, 감람일 수도 있고, 무화과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과일일 수도 있습니다. 과일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여름 실과라는 것입니다. 여름 실과라는 것이 무엇을 상징하겠습니까? 여름철이 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수확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지금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이제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영적 추수기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2절 말씀을 봅니다.
(8:2) 가라사대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가로되 여름 실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
네번째 묵시에서도 세번째 묵시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아모스 사이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묵시와 두번째 묵시에서는 드라마틱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컨데 첫번째 묵시에서는 황충이 땅이 풀을 다 뜯어먹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묵시에서는 불이 깊은 샘을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고 하는 장면이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세번째와 네번째 묵시에는 하나님이 선지자 아모스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확인하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가라사대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여기에 대해서 아모스가 대답을 합니다. "여름 실과 한 광주리니이다." 아모스는 자기가 본 묵시의 대상에 대해서는 분명이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대해서는 하나님의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묵시의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
세번째의 묵시 때와 마찬가지로 네번째의 묵시 때도 동음이의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름 실과"(   , 카이츠)라고 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끝"(  , 케츠)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단어가 발음이 서로 유사합니다. 아모스가 본 여름 실과의 묵시는 이스라엘의 끝을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도, 긍휼도, 사랑도, 인내도 이제는 다 끝이 났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운명도 이제는 끝장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호세아서에 나오는 것처럼 일시적인 이혼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더 이상 용서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멸망뿐입니다.
성경에 보면 발음이 유사한 단어를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신 경우가 종종 등장합니다. 예레미아서를 보면 우리가 잘 아는 경우가 나옵니다.
(렘1:11∼12)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예레미야가 본 "살구나무"의 발음이 "지킨다"는 단어와 발음이 서로 유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시겠다는 것을 더욱더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 가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3절로 넘어갑니다.
(8:3) 그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 버리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날에"라고 했습니다. 그날이 되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날이 되면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도, 부강한 경제력도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종교적인 안전지대도 완전히 끝장입니다. 이미 그것을 7:9에서 잘 설명해주었습니다.
(암7:9)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훼파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다시 아모스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궁전의 노래가"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마리아 궁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이든지, 또는 벧엘의 금송아지 신전에서 들리는 노래 소리든지 간에 그것이 변해서 애곡이 될 것입니다. 처절한 울부짖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가 뒤에 나옵니다.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 버려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상황은 이제 더 이상 잔칫집이 아닙니다. 초상집입니다. 그러니 축제의 노래는 사라지고, 초상집의 애곡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처처에 내어 버리리라"고 했습니다. 시체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일일이 묘를 만들어서 묻을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도처에 넘쳐나는 시체들을 위해서 더 이상 매장지를 찾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사망이 이스라엘 땅에 넘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시체를 묻지도 않고 되는 대로 땅에 내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의 밥이 되든지 말든지 상관 않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아주 경멸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8:29)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 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질 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
(수10:27) 해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하매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리어 그들의 숨었던 굴에 들여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왕상14:11)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하셨나니
(왕하9:25∼26) 예후가 그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취하여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 아비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 아래같이 저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젯날에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시체를 취하여 이 밭에 던질지니라
(렘22: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시체를 내던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모습을 보세요. 무엇이라고 묘사를 했습니까? "잠잠히"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다는 것입니다. 울 만한 기력조차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무감각해졌습니다. 그래서 되는 대로 집어 내던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모스는 자신이 보고 들었던 묵시의 신적인 권위를 재확인하기 위해서 전달자 양식으로 네번째 묵시를 끝맺음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제가 마지막으로 물어봅니다. 아모스가 본 첫번째 묵시는 황충이 풀을 다 먹어 버리는 예언이었습니다. 계절적으로 언제이겠습니까? 왕이 풀을 벤 후 다시 풀이 움돋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봄입니다. 두번째 묵시는 계절적으로 언제이겠습니까? 불이 깊은 샘을 다 삼키고, 육지조차 먹으려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여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네번째 묵시는 계절적으로 언제이겠습니까? 수확의 계절인 가을을 의미합니다. 묵시가 시간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의 다림질 묵시에서는 이스라엘의 산당과 성소와 궁궐이 훼파될것을 말했습니다. 네번째 묵시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아모스가 본 묵시는 점점 더 강도가 센 방향으로 발전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묵시로 보여주셨습니다. 여름 실과가 겉으로 보기에는 먹음직합니다. 그러나 그 속은 익을 대로 익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얼마 가지 않아서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로보암 당시의 이스라엘은 겉으로 보기에는 번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부는 깊이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종말을 고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합니까? 인간이 자신의 육체적 번영과 안일과 향락과 교만에 사로잡혀 스스로 그 속에 머리를 처박게 되는 때에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종말이 예언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일이 다 썩더라도 그 속에는 썩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알차게 영근 씨앗입니다. 또 나무가 다 베어져도 그루터기가 남아있을 때 그 나무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사회의 그루터기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썩지 않는 씨앗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철 지난 여름 실과 한 광주리처럼 썩어가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우리 무두가 그루터기로서, 영근 씨앗으로서 이 사회에 소망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복된 모습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