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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예배에 관하여

[스크랩]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


- 주일낮 예배를 중심으로 -

 

 

  허도화(미국 드류대학 예배학 Ph.D.)

 

 

 


 *이 글은 주일낮 예배를 중심으로 다룬 한국 성결교회 예배의 경향과 방향에 관한 연구의 한 부분이다. 지면 관계상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에 관한 부분만을 게재한다(편집자주).

 

 

 한국교회의 주일예배가 교단적으로 서로 분명하게 구별되지는 않지만 각 교단은 나름대로 예배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주일예배는 개 교회가 예배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는 현장이었다. 이런 예배 표현의 자유가 같은 교단에 속한 각 교회들의 주일예배에서도 실제로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주일예배의 일정한 형식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 주일예배에 참석하면 같은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서도 비슷하거나 다른 예배 형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각 성결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예배도 통일된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처럼 우리 교단 안에 다양한 형식의 예배가 드려지고 있음은 바로 통일된 예배 진행을 위한 우리의 전통적 예배가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볼 때, 우리에게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가 지닌 독특한 면을 알고 싶고 또한 따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그러면 한국 성결교회의 주일예배는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그 예배는 어떤 특징과 경향을 가지고 진행되었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본 장에서 필자는 먼저 각 시대별로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가 보여준 특징들을 살펴볼 것이다. 각 시대별 초기 성결교회 예배의 특징을 알아보는 연구는 주로 표준 주일예배의 순서들을 분석함으로 그리고 같은 시대의 다른 교단이 드린 주일예배와 비교함으로 가능하다. 그 다음, 각 시대별 주일예배의 특징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점을 중심으로 초기 성결교회 예배의 경향을 정리할 것이다. 예배의 경향을 알아보는 연구는 주일예배의 진행을 돕기 위해 제정된 예배모범을 중심으로 각 시대 예배의 특징들을 결정지은 근거와 기준들을 해석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가 지녔던 특징과 경향을 평가함으로 다음 시대를 위한 예배 갱신의 자료로 삼을 것이다.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 특징


 초대교회의 예배는 그것에 관한 문헌들이 나오기 전에 이미 실행되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성경이 기록되기 전부터 상당한 기간 동안 구전을 통해 전달된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항상 실제보다 늦게 문서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초기의 예배를 연구하거나 그 예배의 원형을 재건한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한국 개신교도 상당 기간 자체에 의한 예식서 없이 선교사들이 소개한 예배 형식을 따라 주일 예배를 드리다가 교단을 조직한 후에야 교리나 교회 정치의 제정과 함께 그 뒷자리에다 주일예배에 관한 규범과 표준 예배순서를 소개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정된 초창기의 예배모범은 장로교와 성결교의 {헌법}을 통하여, 그리고 감리교의 {교리와 장정}을 통하여 각 교회에 전달되었다. {헌법}과 {교리와 장정}은 집례자와 회중이 각각 어떻게 준비하고 행동할 것인지에 관한 간단한 예배규정과 예문들을 소개하였다.
 1907년에 출발한 한국 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시대를 거쳐 1921년에 교단(동양선교회 성결교회)을 조직하였다. 교단을 조직한 후 1925년부터 1996년까지 11회에 걸쳐 헌법을 발행하고 개정하면서 교리 및 조례를 정하였다. 그러나 한국 성결교회의 주일예배의 규범과 순서가 문서상으로 처음 소개된 것은 교회가 시작된 지 약 30년, 그리고 교단이 조직된 지 15년이 지난 1936년의 {헌법}에서이다. 그러면 우리는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모범이 처음으로 나타난 1936년 이전, 특별히 1907년부터 시작되는 선교 초창기의 주일예배에 관하여 그리고 교단이 조직된 1920년대의 주일예배에 관하여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이 초기의 성결교회들은 1910년대와 1920년대에 각각 어떤 형식의 주일예배를 드렸는가?


1. 1910년대

 외국으로부터 선교를 받아 시작된 모든 교파가 그렇듯이 초기 성결교회도 어느 정도 교단이 정착되기까지는 갖추어진 예배의식 없이 설교중심의 강론회(사경회)나 전도집회 형식의 매우 간단한 예배의식을 가졌을 것이다. 한국 성결교회는 시작된 지 15년이 되었을 때까지 개척된 교회(복음전도관)들이 33개에 이르렀으며 1929년까지 75개 교회들이 개척되었다. 이 75개 교회들 중 21개 교회가 1910년대에, 54개 교회가 1920년대에 개척되었다. 그러므로 1910년대 한국 성결교회의 주일예배를 연구한다는 것은 곧 그 기간에 개척된 21개 교회들이 과연 어떤 형식의 예배를 드렸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초기 성결교회는 "복음전도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노방전도 혹은 전도집회 형식으로부터 발전된 형식의 간단한 주일예배를 드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척 초기에 성결교회들이 일정한 형식을 갖춘 예배순서를 가지고 준비된 예배를 드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의 예배는 19세기 미국의 프런티어 예배(Frontier Worship)의 특징인 "찬송 샌드위치"(hymn sandwitch) 형식과 같이 열정적인 찬송과 기도들을 전도설교의 앞뒤로 연결하여 진행하는 부흥집회 형식이었을 것이다. 이런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성결교가 시작된 1907년이 설교와 기도 중심의 한국 전통적 예배를 형성한 때였기 때문이다. 회개와 구원을 강조하는 설교 중심의 청교도 예배 전통이 한국 교회의 보수성을 대변하기 시작하였다.
 노방전도 형식의 예배 이외에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부흥회 형식의 주일예배를 형성한 두 가지 특징 있는 예배모임들이 있었다. 복음전도관시대(1907-1920)의 성결교회에는 새벽기도회와 주일 오전예배 이외에 다른 두 종류의 주일예배 형태인 "성별회(The Gospel Service 혹은 Holiness Meeting)"와 "구령회(The Salvation Meeting)"가 있었다. 성별회와 구령회는 영국에서 시작된 구세군의 주일 낮예배와 저녁예배의 명칭으로 지금도 한국의 구세군은 주일 낮예배를 성결회로, 주일이나 수요일 저녁예배를 구령회로 부르고 있다.
 성별회는 영국인 선교사 B. F. Buxton(1860년 출생)에 의해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이 집회에 참석하여 영향을 받은 정빈과 김상준이 한국으로 돌아와 초기 성결교회의 고유한 예배형식으로 정착하였다. 성별회는 주간뿐 아니라 주일 오전예배 후에 드리는 예배로 믿음으로 받은 성결의 은혜와 이 체험을 확인하기 위하여 초기 한국성결교회가 자주 가졌던 부흥회와 특별기도회의 성격을 가진 집회이었다. 그러므로 성별회는 이미 구원받은 자들의 영적 각성을 촉구하고 성결의 은혜를 경험하려는 의도를 가진 집회이었다. "구령회"는 복음전도관의 주일 저녁예배로 구원받지 못한 이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집회이었다. 이 구령회의 주된 예배순서는 간절한 기도와 찬양, 간증, 설교 등으로 진행되었으며 옥외집회는 주로 전도와 노방설교로 이루어졌다. 성별회가 기존 신자들을 위한 은사집회이었다면, 구령회는 노방전도로 얻은 결신자나 초신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준비된 집회이었다. 그러므로 성별회와 구령회는 "성결의 교리"와 "복음전도"를 강조한 교단의 성격에 알맞은 초기 성결교회의 집회이었다.
 성별회와 구령회는 분명한 목적으로 진행된 예배들로 설교를 중심으로 기도와 찬송을 추가한 부흥회형 또는 노방전도형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특별히 성결의 은혜를 강조한 간증집회 형식이나 복음전도를 위한 전도집회가 1910년대 성결교회의 보통 주일예배에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나 그런 집회형식을 구체적인 주일 예배순서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1. 1920년대

 1920년대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간단히 기술할 필요가 있다. 1920년대의 한국교회는 보수적 신앙과 진보적 신앙이 일체가 되어 참여했던 3.1운동이 성과 없이 끝나자 그 여파로 인하여 두 가지 방향으로 반응을 나타냈다. 한 방향은 소수 지식인들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독립역량을 계속적으로 키우기 위한 의식화운동이었으며, 또 다른 한 방향은 3.1운동의 충격으로 인한 좌절을 달래기 위해 말세신앙, 치유와 이적 및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띤 부흥운동이었다. 이런 한국의 역사적인 상황에서 "목회본위가 아니라 전도를 본위로" 시작한 성결교회는 부흥운동에 의해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으며 부흥회식의 예배를 시도하였다.
 복음전도를 위한 부흥회식 예배를 드리던 동양선교회 시기의 성결교회는 표준 주일 예배순서를 제정하는 것보다 교단의 교리적인 주장을 받쳐주는 입회, 세례, 및 성찬과 같은 예식들에 더욱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성결교회가 1925년에 최초로 발행한 『교리와 조례(敎理及條例)』는 주일 예배순서를 소개하기보다는 교리와 함께 부록에 예식문만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배모범이 소개되지 않은 예식문만으로는 1920년대의 주일예배를 추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1922년부터 발행된 성결교회의 기관지인 {활천}은 1920년대의 주일 예배를 추정하는데 좋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개 교회의 목회내용이나 소식을 전하던 {활천}을 통해 우리는 초기의 한국 성결교회가 1936년에 처음으로 소개한 간단한 예배 순서가 이미 1920년대부터 보통 주일예배의 순서로 사용되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924년에 동양선교회 이사회는 세속화되어 가던 개 교회의 성탄기념 예배를 바로 잡고 "불경건(不敬虔)한 일종여흥적(一種餘興的) 행동(行動)을 방지(防止)키 위(爲)하야" 성탄기념 예배순서를 정하여 근고(謹告: 삼가할 것을 알림)하였다. 이런 목적을 위해 이사회가 제정하여 개 교회에 전달한 성탄기념 예배순서는 1920년대 주일에 사용하던 "보통예배순서(普通禮拜順序)"를 따라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순서를 추가한 것이다. 이 보통 주일예배 순서의 기본구조는 1920년대 후반의 주일학교 주일예배에도 나타난다. 1926년 12월에 이사회가 정하여 개 교회에 통고한 성탄기념 예배의 순서와 1929년 주일학교의 예배순서는 다음과 같다:

[도표 1] 1920년대 성결교회의 주일학교 예배순서

                          1926년            1929년
                                            개회(교장)
   찬송             찬미
    기도             기도(교사중)
    성경낭독         성경낭독(교장 혹 교감)
    성탄찬송         훈화(교장)
                     교수(분반 출석조사, 헌금)
                             문답(교장 혹 교감)
             독창(혹 합창)    특별찬미(생도중)
    설교             설교(직원중)
    합창(혹 독창)     생일축하
    상품수여         신입생환영
                               보고
                               광고(교장)
           찬송              찬미
             기도              기도
             송가와 축도     폐회
 위와 같은 1920년대 후반 주일학교의 성탄기념 예배와 주일 예배순서로부터 먼저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순서들을 빼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국 성결교회의 주일 예배순서의 기본요소인 사도신경, 헌금, 그리고 광고순서를 추가하면 그 당시의 성결교회가 사용하던 보통 주일 예배순서를 추정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추정된 1920년대 성결교의 주일 예배순서를 같은 시기의 장로교와 감리교의 예배순서와 비교해 보면 성결교의 예배의 기원과 성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도표 2] 1920년대 한국 개신교의 주일 예배순서

               [장로교(1922)]         [성결교]         [감리교(1923)]
               [묵도]                 [묵도]            자원하여 주악 혹은 성악
                                      찬송            찬송           
               성경봉독(구약교독)      사도신경        사도신경
               시와 찬미              기도            기도와 주기도
               기도                                   자원하여 주악 혹은 성악
                                                      구약낭독
                                                      삼위찬송(귀영가)
               성경낭독               성경낭독        신약낭독
                                      찬송과 헌금     광고와 수전
                                      광고
               특별찬송               특별성가        찬송
               설교                   설교            강도(講道)
               기도                   기도            기도
               봉헌
               시와 찬미              송가            찬송
               축도                   축도            찬송(1장)과 사도의 축복(고후 13:14)
               폐회

 위의 도표 2에 나타난 장로교와 감리교의 주일 예배순서는 각각 선교사들이 소개한 설교 중심의 선교지향적인 초기의 예배순서로부터 발전된 것이다. 그러나 두 교단의 예배순서를 비교해 보면 처음부터 감리교가 장로교보다 더욱 예전적인 예배를 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미국 감리교의 예배 형식을 따르던 한국 감리교의 예배는 주악이나 성악 등으로 예배의 시작 부분이 갖추어져 있고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이 함께 포함되어 있으며 구약과 신약성경을 함께 낭독하며 그 사이에 삼위찬송을 둠으로 예전적인 성격이 나타난다. 그러나 노방전도를 위한 간단한 예배형식으로부터 발전된 성결교회의 주일예배는 다소 비슷한 초기 전통을 가졌던 장로교의 예배에 가깝게 보여진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이 생략된 장로교의 주일예배 순서는 1922년의 장로교 『헌법』에서 소개된 예배모범을 기초로 정리한 것이다. 이 예배순서는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이 주일예배의 순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예배 인도자와 참석자들을 위한 예배설명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렇게 정리된 장로교의 주일 예배순서는 1895년에 장로교 선교부에 의해 발행된 『位願入敎人規道(위원입교인규도)』가 소개한 예배순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위원입교인규도』는 교리문답으로 1895년 Samuel A. Moffett에 의해 마련되었다. 이것은 장로교 입문서로 다양한 기도 및 찬송과 함께 신앙 초보자들에게 기본적인 교회 정치와 예식을 제공하였다. 여기에 소개된 주일 예배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찬송, 기도, 성경봉독, 기도 (회중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대표로 함), 찬송, 설교, 기도, 봉헌, 찬송. 이렇게 예배의 시작과 마지막 순서가 분명하지 않았던 간단한 예배순서에 축도가 마지막 순서로 추가된 것은 1896년에 Horace G. Underwood가 연합 부활주일 예배를 위해 준비한 한국 최초의 예배주보, 『부활주일예배』에서이다.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으로부터 구체적인 주일 예배의 순서를 제정하지 못한 초기 장로교의 주일예배는 전도설교를 중심으로 구성된 노방전도형의 간단한 예배로부터 시작하여 1907년 대부흥운동의 영향으로 더욱 강화된 설교중심의 사경회형의 비예전적 예배로 발전하였다.
 간단한 장로교의 예배순서에 비해 다소 복잡한 감리교의 예배순서는 1923년에 출판된 감리교의 『교리와 장정』에서 소개된 예배모범을 기초한 것으로 미국 감리교의 예배순서를 옮긴 것이다. 감리교 선교사들은 한국 감리교의 주일 예배가 장로교의 것보다 예전적이기를 희망하였다. 이런 이유로 초기 한국 감리교회의 예배는 미국 감리교회의 『교리와 장정』에 나타난 예배형식을 거의 그대로 옮겨 실천하였다. 1923년 감리교의 예배순서도 1910년에 출판된 『미감리회 강령과 규측』(The Doctrine and Discipline of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 소개된 예배순서를 개정한 것이다. 한국 감리교의 최초 모범 예배순서는 원래 1895년 W. B. Scranton이 한국 감리교의 예배를 위해 Wesley Sunday Service의 일부를 번역한 『주일예배경』에서 소개된 것이다. 이 주일 예배순서는 1898년 세계 감리교 협의회의 모범예배안으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소개되었다: 서주, 찬송(회중은 일어서서), 사도신경, 기도(목사나 회중이 인도하며 회중은 꿇어앉음), 주의 기도, 찬양(성가대), 성경봉독: 제1독서(구약중에서), 시편교독(회중과 교독으로 낭송), 영광송, 성경봉독: 제2독서(신약중에서), 봉헌과 광고, 찬송, 설교, 찬송, 축도. 1923년 감리교의 예배모범은 세계 감리교 협의회의 예배모범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초기 한국 성결교회는 요한 웨슬리의 교리를 주창하면서 미국 감리교회에 속한 창립자들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았다. 감리교의 영향을 받은 동양선교회의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초기 한국성결교회는 목회형태, 정치, 그리고 제도에서 "감리교의 색채"를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이 제정된 1925년 이전의 초기 성결교회들은 자유롭게 감리교뿐 아니라 장로교 모두의 조직과 목회형태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1920년대 한국 개신교의 주일 예배순서를 비교한 도표 2에 의하면, 통일된 예배모범을 가지고 있지 못하던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주일 예배의 기본적 구조가 감리교보다 장로교의 것에 더 가깝게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성결교회가 시작부터 순복음을 전함으로 회심자들을 얻기 위해 복잡한 예전보다는 복음전도를 위한 부흥집회의 예배형식을 취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2. 1930년대

 선교사들이 전해준 예배형식을 따라 예배를 드린 지 반세기가 되던 1930년대는 한국 개신교의 예배사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중요한 시기이다. 교회 밖으로는 김교신 중심의 무교회주의자(주지주의자)들에 의해 그 동안 한국 개신교에 영향을 끼쳤던 길선주의 말세신앙, 김익두의 신유와 이적 추구의 집회, 그리고 이용도의 신비주의 등 주정주의에 바탕을 둔 부흥회식의 예배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성봉의 부흥회는 1907년의 사경회식 예배 전통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예배의 변화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는데 각 교단이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된 예배의 규범, 순서, 그리고 용어를 한국의 상황에 적절하게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어떤 면에서 1930년대는 한국 개신교가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예배를 중심으로 예배에 대한 규범과 설명을 강조하던 "예배모범"의 시대로부터 오늘날 주보에 게재되는 것과 같이 간소화된 "예배순서"의 시대에로 나가는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장로교의 주일예배의 기본 정신과 표현은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에 근거한다. 이 예배모범은 예배의 핵심적인 요소들인 공중기도, 성경봉독, 시편송, 설교, 성례전 등 14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로교는 1904년부터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의 일부를 번역하여 소요리 문답으로 사용하다가 1907년에 총회를 조직하여 {헌법} 안에 소요리 문답을 중심으로 간단한 예배모범을 추가하였다. 또한 장로교는 1922년의 {헌법}에서 미국 남장로교의 예배모범을 번역하여 최초의 예배모범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장로교의 예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교리와 소요리 문답을 중심으로 1922년의 {헌법}을 개정한 1934년의 {헌법}에서 시작된다. 1934년의 예배모범은 1977년의 {예식서}가 출판될 때까지는 장로교의 주일 예배순서를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처음부터 미국 감리교회가 사용하던 주일 예배의 순서를 거의 그대로 옮겨 사용하던 한국 감리교의 예배에 나타난 변화는 주로 예배순서에 나타난 용어의 변화이었다. 구체적인 설명이 따르는 미국 감리교회의 예배모범은 예배행위에 대한 설명까지 추가되어 자연히 길게 표현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1910년에 출판된 『미감리회 강령과 규측』(The Doctrine and Discipline of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 실린 예배순서를 번역하여 한국교회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예배용어의 변화는 당연한 것이었다. 1930년에 이렇게 단순한 예배용어의 변화와 함께 문장으로 표현되던 감리교의 주일 예배순서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 감리교는 1930년에 총회를 조직한 후에 발간한 『기독교 조선감리회 교리와 장정』을 통해 새로운 예배모범을 제정하고 각 교회에 소개하면서 먼저, 이전에 사용하던 설명식의 주일예배 순서를 오늘날 주보에 나오는 형식의 예배순서로 단순화하였다. 또한 1930년의 예배모범은 용어에 대한 적절한 표현--예로, 傳道(1910)와 講道(1923)에서 설교로, 삼위찬송(1910)과 귀영가(1923)에서 찬송으로--뿐만 아니라, 새로운 순서들의 추가 (묵도, 감리교 교리적 선언낭독, 헌금 기도, 축도 후의 묵도), 같이 진행하던 순서들의 분리 (헌금과 광고, 폐회찬송과 축도), 그리고 적절한 순서이동 (신약낭독을 설교 전으로) 등을 통해 감리교의 한국형 예배모범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때에 제정된 감리교의 주일 예배순서는 1931년에 생략되었다가 1935년부터 다시 등장하는 "감리교 교리적 선언낭독"을 제외하면 1962년의 발전된 주일 예배순서가 나올 때까지 거의 변화가 없다.
 이와 같이 1930년대에 각 교단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예배의 변화로 인하여 한국 개신교의 예배 형식은 많은 유사점을 지니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뚜렷한 공통점은 설교 중심의 비예전적인 예배순서가 정착되면서 헌금과 광고가 설교 앞부분에 위치한 것이다. 또한 기도의 순서가 다양해지면서 예배의 앞부분에서 공동기도의 성격을 띠던 기도가 평신도가 담당하는 대표기도로 변하였다. 더구나 흥미 있는 공통점은 한국 개신교가 주악이나 성악으로 시작하던 미국교회형의 주일 예배에 묵도를 첫 순서로 등장시킨 것이다. 한국 개신교는 엄숙하고 경건된 예배를 진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예배당 안에서의 묵도를 강조하면서 감리교는 1930년부터, 장로교는 1934년부터, 그리고 성결교는 1936년부터 선교사들이 전해준 예배의 요소가 아니었던 묵도를 예배의 순서로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로부터 선교를 받은 지 25년 만인 1933년 4월에 제 1회 총회를 열어 자치선언을 한 후, 1936년 {헌법}의 예배규정에서 "예배당(禮拜堂)에 들어오는 자(者)는 반드시 묵도(默禱)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성결교회의 예배에서 묵도가 예배의 순서로 자리를 잡은 것은 1945년의 헌법에서부터이다.
 이미 언급한대로, 1907년에 출발한 초기 한국 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시대를 거쳐 1921년에 교단(동양선교회 성결교회)을 조직하였으며 1925년부터 헌법발행과 개정을 통하여 교리 및 조례를 정하였으나 주일예배 순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또한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가 1933년에 발행한 『성결교회 임시약법 교리(聖潔敎會臨時約法敎理)』에도 주일 예배순서에 관한 언급은 없고 예식문만 소개되어 있다. 성결교회의 구체적인 예배순서는 1936년 {헌법}에서야 처음으로 주일예배의 규범과 함께 소개된다. 그러므로 1936년의 예배모범은 최초로 문서화된 성결교회의 예배이다. 1936년 성결교의 주일 예배순서를 그 이전 1930년의 감리교와 1934년의 장로교가 사용하던 주일 예배순서와 비교하면 그 특징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면 1930년대의 성결교회가 사용하던 주일 예배순서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도표 3] 1930년대 한국 개신교의 주일 예배순서

       감리교(1930)                장로교(1934)           성결교(1936)
       묵도(주악)                                        *[묵도]
      찬송                        *찬송(1장 혹은 2장)     성가
      감리교 교리적 선언낭독     첫기도
       사도신경                    사도신경              사도신경
       기도(주기도문까지)           찬송                  기도
       구약(시편)낭독               시편교독
                                  *정식기도
       찬송(혹은 귀영가)            찬송
                                  *성경낭독              성경낭독
       헌금과 기도                 광고                  성가를 부르는 중에 헌금
                                   연보                  감사기도
       광고                        연보기도              광고
       찬송(혹 특별음악)            특별찬송             (특별성가)
       신약낭독
       설교                       *설교                   설교
                                                         (은혜좌)
       기도                        기도                  기도
       폐회찬송                    찬송                  *송가
       축복                        축도                  *축도(혹은 주의 기도)
       묵도(주악, 산회)             폐회


장로교 『헌법』(1934)의 예배모범에는 *찬송을 시와 찬송으로, *정식기도를 공식기도로, *성경낭독을 聖經拜               讀으로, 그리고 *설교를 講道로 표기하였다.

성결교(1936) *[默禱]: 禮拜堂에 들어오는 者는 반드시 默禱할 지니라.
             *頌歌: (이천지간만물들아 전능성부성자성신, 복주시는주여호와 찬송하고찬송하세)
             *祝禱: (或은 主의祈禱를 외일지니라)
                  (주예수그리스도의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사랑하심과 성신의감화하심이 우리무리에게있기                    를 원하나이다 고후13:14)

 한국 개신교의 주일 예배순서를 비교한 도표 3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1930년대 성결교의 예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1930년대 성결교회의 예배순서는 매우 간단한 형식으로 구성된 비예전적 순서이다. 같은 시기의 다른 교단의 예배와 비교할 때, 전체적으로 성결교의 간단한 예배순서는 예전적인 감리교(1930년)의 예배순서보다 장로교(1934년)의 것에 더욱 가깝다. 생략된 순서들이 많이 보인다. 아직 묵도가 예배의 기본요소가 되지 못하였으며 장로교의 특징인 시편교독과 감리교의 특징인 주기도문이 생략되어 있다. 또한 예배의 시작에서 설교까지 한 번의 찬송으로 만족하였다. 이와 같이 예배 앞부분에서의 간소화는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주일예배가 복음전도를 강조하여 회심자들을 얻기 위한 설교 중심의 부흥회식 예배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설교를 강조하기 위해 헌금과 광고 순서를 설교 전에 진행하였으며 또한 필요에 따라 설교 다음에 설교자의 기도대신 은혜좌(恩惠座)라는 특별한 순서를 진행하여 설교의 열매를 얻으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설교와 은혜좌 순서에 비중을 두어 마지막 순서로 진행하기 위하여 헌금과 광고를 성경봉독과 설교 사이에 위치시킴으로 성경봉독과 설교의 연결이 약해졌다.
 초기 성결교의 은혜좌는 예배자들이 들은 설교에 대하여 응답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순서로 초기 미국 감리교회가 설교 후에 찬송을 부르면서 진행하던 "초청의 시간" 혹은 "결단의 시간"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 감리교회는 이 순서를 1910년대 말부터 1920년대에 얼마동안 진행하다가 1930년대 이후에 생략하였다. 그러나 감리교는 이 순서의 전통과 필요성을 느껴 "신(새)신자 견신"이라는 이름으로 1962년부터 다시 부활하였다.
 둘째, 1930년대 성결교회의 예배순서가 보여주는 간단한 비예전적 형식이 장로교의 것에 가까운 반면, 예배 진행에 대한 규범이나 설명은 감리교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장로교는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을 통하여 그리고 감리교는 교리와 장정을 통해 예배순서를 올바르게 진행하기 위한 내용들을 지시하였다. 선교 초기에 구체적인 예배모범의 필요성을 느낀 성결교도 주일 예배의 진행에 관한 지시 사항들을 표기하였다. 그래서 먼저 성결교의 예배모범은 묵도가 아직 정식 예배 순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경건한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예배당에 들어오는 모든 예배자들에게 묵도를 의무화하였다. 또한 성결교는 예배의 폐회 직전에 부르는 찬송을 송가(頌歌; Doxology)로 구분하여 이에 적절한 찬송("이 천지간 만물들아")을 지정하여 1990년대까지 성결교 예배의 전통으로 지키고 있다. 축도를 위해 바울 사도의 축도(고린도후서 13:14)를 사용할 것을 명시하였다. 이와 같이 폐회찬송(송가)과 축도의 내용을 지정한 것은 감리교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셋째, 유연성 있는 예배 진행이 돋보인다. 찬송을 부르면서 헌금순서를 진행하도록 "성가를 부르는 중에 헌금"으로 표기한 것은 한국 개신교의 주일 예배순서에 나타난 특이한 표현이다. 오늘날 개 교회에서 실제적으로 예배의 실용적인 진행을 위해 헌금을 하는 동안 찬송을 부른다. 그러나 예배순서를 통해 광고와 헌금, 헌금과 기도, 기도와 주기도, 또는 폐회찬송과 축도의 두 순서가 함께 진행하도록 나타내는 경우는 있어도 성가와 헌금을 묶은 것은 성결교가 처음이다. 또한 성결교는 성직자가 부족하던 초기에 축도권을 가진 자가 참석하지 않아도 주일예배를 주기도문으로 폐회할 수 있게 하였다 (주기도문이 장로교의 예배에서는 생략되고 감리교의 예배에서는 대표기도와 함께 연결되어 진행된다). 이처럼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폐회하도록 한 것은 후에 주일 저녁예배나 수요기도회 등에 적용된 한국 개신교의 전통이 되었다.
3. 1940-50년대

 1930년대 말부터 한국교회 내에 일기 시작한 신사참배는 예배의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예배의 정치적 의미에 대한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신사참배문제에 대한 찬반으로 분열되었던 한국교회는 해방 직후에도 분열의 아픔을 겪었다. 이후 한국교회의 예배는 1950년의 한국동란으로 인하여 한때 결속과 화해의 의지가 보이는 듯 했으나 신앙과 신학이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장로교가 1952년에, 감리교가 1954년에 분열되어 다시 신흥종파와 사이비신앙의 등장을 부채질하였다. 여러 가지 아픔과 유혹이 계속되던 이런 와중에 장로교와 감리교의 주일예배에 변화를 기대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그러면 1940-50년대에 성결교회의 예배가 어떤 변화를 경험하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1936년의 주일 예배순서와 비교해보자.

[도표 4]  1940-50년대 한국 성결교회의 주일예배 변화

         1936년         1945년
          [默禱]            默禱
     聖歌           聖歌
     使徒信經         使徒信經통독
     祈禱          *祈禱
                                  主의 祈禱
                  詩篇交讀
                  聖歌
                  獻金
                  感謝祈禱
     聖經朗讀         聖經奉讀
     聖歌와獻金       廣告
     感謝祈禱
     廣告
    (特別聖歌)       *(特別讚揚)
     說敎            說敎
    (恩惠座)
             祈禱           +祈禱
     頌歌            頌歌
     祝禱(主의祈禱)   祝禱
                                *[閉式宣言]

 1945 *祈禱: 一同이 着席하고 代表로 祈禱할 것
           *(特別讚揚): (1955년 예배순서에서 절대요소가 됨)
           +祈禱: 說敎者나 或은 會衆에서 指名된 사람
           *[閉式宣言]: 祝禱가 끝난 後 會衆은 敬虔히 默禱하고 牧師의 閉式宣言이 있은 後에 散
                     會할지니라 (1955년의 예배순서에는 생략됨)

 1920년대 이후 성결교회는 1936년과 1945년 2회에 걸쳐 헌법을 통하여 예배순서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1940년대 장로교와 감리교의 주일예배에 변화가 없으나, 성결교의 경우 1936년의 예배모범과 1945년의 예배모범 사이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 1945년의 예배모범은 1936년의 성결교회의 특징적인 예배로부터 한국 개신교의 공통적인 예배에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성격을 띠면서 1950-6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도표 4에 의하면, 1940-50년대의 예배모범은 1936년의 것으로부터 여러가지 변화를 나타낸다. 특별히 예배 순서의 추가, 표기, 그리고 진행에서 변화가 나타난다.
 첫째, 1936년의 예배에서 생략되었던 예배의 기본요소들을 추가함으로 예배의 틀이 갖추어졌다. 감리교의 예배와 같이 대표기도 후에 주기도를 연결하였으며 장로교의 예배와 같이 시편교독을 추가하였다. 1945년 성결교회의 예배순서는 감리교와 같은 배열로 사도신경, 기도, 주기도, 그리고 시편교독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1945년에 만들어진 이 배열에 1970년대부터 기도가 빠져나가면서 사도신경, 주기도, 시편교독은 하나의 고리처럼 연결되어 진행된다. 이 세 순서의 연결은 1996년 『헌법』이 소개한 주일 예배순서에까지 나타나 성결교회 예배의 특징이 된다. 이 세 순서들의 연결이 다른 교단의 주일 예배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감리교의 주일 예배에서는 시편교독, 사도신경, 주기도의 순으로 연결되지만 그 사이에 성삼위영가(혹 찬송) 순서가 배치된다. 장로교의 주일 예배는 이 세 가지 순서들에 많은 변화를 준다. 장로교는 1930년대부터 주일 예배순서에서 주기도를 생략하였으나 1970년대부터 예배의 기본요소로 회복한다. 그러나 장로교는 시편교독을 주기도 앞에 진행하면서 그 둘 사이를 찬양으로 연결하지만 사도신경을 설교 후로 이동시킨다.
 둘째, 1945년의 예배모범은 순서의 표기에서 변화를 주었다. 예배순서의 명칭이 가지고 있는 예배학적 의미를 발견함에 따라 그 시대에 적절한 표현으로 표기하는 것은 예배 갱신의 첫걸음이다. 성결교 1945년의 예배는 먼저, 찬송의 회수를 늘이면서 찬송, 찬양, 그리고 송가로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의 예배모범은 단순히 "특별"이라는 형용사만으로 회중이 부르는 성가와 성가대의 성가를 구분하였으나 1940년대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회중이 부르는 노래를 성가로 표기한 반면, 성가대가 부르는 노래를 찬양으로 구분하여 표현하였다. 그리고 1930년대의 예배에서 폐회 직전에 불렀던 송가(Doxology)를 전통으로 지켰다. 또한 1930년대의 한국 개신교가 모두 성경낭독 혹은 성경배독(장로교)으로 부르던 것을 성결교는 1940년대에 성경봉독으로 표기하였다. 장로교와 감리교는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성경낭독을 성경봉독으로 새롭게 표기한다.
 셋째, 1945년의 예배는 진행에서 변화를 나타낸다. 먼저, 예배 진행의 변화를 줌으로 예배의 엄숙함과 경건성을 강화시킨다. 묵도 순서를 예배의 기본요소로 정하여 예배를 준비하게 할뿐만 아니라, 축도로 예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목사의 폐식선언이 있을 때까지 모든 예배자들이 받은 은혜 간직하고 새로운 결단을 다짐하면서 세상으로 파송되는 것을 기도로 준비하게 하였다. 이렇게 예배의 시작과 마지막 부분에서 묵도를 통해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를 강조하였다. 또한 예배 진행의 변화는 서로 관련이 있는 순서들을 더욱 가깝게 배치함으로 자연스러운 예배 를 시도하게 하였다. 감리교의 예배와 같이 대표기도를 주기도문과 연결하였고, 장로교의 예배와 같이 시편교독을 추가하여 예배의 앞부분에서 고백과 간구의 성격을 지닌 순서들의 연결이 강화되었다. 또한 헌금과 광고 사이에 성경봉독 순서를 진행하여 1930년대의 예배 진행보다 성경봉독과 설교와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지금까지 우리는 초기 한국성결교회의 주일예배를 각 시대별로 살펴보았다.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는 각 시대에 따라 다양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었다. 다음은 그 특징들을 중심으로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가 나타낸 전체적인 경향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 시기의 예배가 나타낸 전체적인 경향에 관한 연구는 그 예배의 부분적인 특징들의 공통점을 찾음으로 가능하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주일 예배순서를 중심으로 살펴본 각 시대의 성결교회의 예배 특징들은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음 3가지의 공통점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엄숙-경건하고, 2) 실용주의적이며, 동시에 3) 자유스러운 예배 진행. 이 특징들은 곧 초기 한국성결교회가 예배의 전통을 세우면서 보여준 예배의 경향을 잘 나타낸다. 다음에 구체적으로 살펴볼 세 가지 초기 성결교회 예배의 경향들은 주일예배의 순서에서뿐만 아니라 예배모범 속에서도 잘 나타나기 때문에 예배모범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 경향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 경향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그들이 한국에 정착하기 전 이미 형성된 독특한 토양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성결교회의 예배는 19세기 말부터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에 심어준 선교지향적인 예배와 1907년에 일어난 한국 개신교 자체의 부흥회식 예배가 강하게 자리잡은 토양에서 싹트기 시작하였다.
 초기 한국에 파송된 청교도형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19세기 미국의 부흥운동과 선교운동으로부터 강하게 영향을 받은 자들로 한국의 장로교회와 감리교회에 매우 선교지향적인 예배를 심었다. 피선교지의 예배의 경향은 전적으로 선교사들의 주된 관심(선교 사명)과 소개(예배 배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성서를 통하여 한국인들에게 접근한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에 성경을 중심으로 교리와 회심을 목적으로 한 전도설교 중심의 예배를 형성하였다. 회심자들을 얻으려는 전도설교 중심의 예배는 회심자들을 즉시 교회공동체에로 전입시키려는 세례예식으로 연결되었다. 각 교단이 자체의 확장을 향한 선교 열정에 의해 때로는 예배가 선교 서약을 강조하는 시간이 되었으며 심지어 한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세례를 받는 조건이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 초기의 정책(네비우스)에 의해 예배 참석자 숫자에 대한 경쟁이 일어난 토양에서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도 회심을 목적으로 한 설교와 세례의식을 강조하던 예배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성결교회가 한국에서 시작된 1907년은 한국 개신교의 예배 전통을 낳은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해이었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경험은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자유형식의 열렬한 기도(통성기도)와 열정적인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되어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 교회에 소개된 비예전적 예배를 더욱 공고하게 하였다. 비예전적 예배에서 찬송이나 다른 순서들은 효율적인 기도와 설교를 위한 보조적 역할의 의미를 가질 뿐이었다. 이와 같은 부흥회 중심의 성령운동은 한국의 모든 교회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3.1운동의 충격으로 인한 좌절을 달래기 위한 종말신앙, 신유와 이적 추구, 신비주의 등의 주정주의에 바탕을 둔 1930년대를 전후한 한국교회 예배의 특징이 되었다.
 초기 한국의 성결교회는 요한 웨슬리의 교리를 주창하면서 미국 감리교회에 속한 창립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미 20년 가까이 먼저 출발한 장로교와 감리교가 형성한 토양에서 생성되어 교단의 특징을 살리는 예배를 형성할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의 장로교와 감리교의 주일예배와 비교할 때 초기 성결교회의 주일예배는 매우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초기 한국성결교회의 예배는 "순복음(純福音)"을 전하려는 교단의 사명을 가지고 그 시작부터 회심자들을 얻기 위한 복음 전도중심의 노방예배와 성령의 역사에 의한 완전한 은혜 곧 성결의 은혜를 강조하는 부흥운동집회의 예배형식으로부터 점차 선교와 예배 두 가지를 모두 포괄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성결교회는 예배를 복음전도와 분리하지 않았다. 초기 성결교회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보여준 것처럼, 교회가 참되게 예배를 드린다면 예배자들 모두가 미신자와 복음을 나누려는 동기를 부여받아 복음전도자들이 될 수 있음을 예배를 통하여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1933년에 동양선교회로부터 자치선언을 한 성결교회는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에 큰 영향을 주는 대소도시에서의 천막 대부흥 전도집회를 주도하였다. 특별히 1936년의 예배규범과 순서에 나타난 대로,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의 중심이었던 설교와 은혜좌(恩惠座)의 주된 기능은 노방전도와 함께 주로 예배 참석자들에게 회심을 요구하거나 회심의 순간에 경험했던 열정을 다시 불타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와 같은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 전통은 19세기초부터 주로 미국의 변두리 지역(the Frontier)의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회심자들을 만들려는 열정적인 부흥회식 예배(Frontier Worship) 전통과 연결된다. 하나의 새롭고도 독특한 예배 모델로 발전한 이 부흥운동 집회형식의 예배가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런 독특한 예배형식이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주일 예배순서를 매우 단순하게 만들었다. 이제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독특한 예배형식이 예배 전통을 형성하면서 보여준 중요한 3가지 경향들--엄숙-경건하고, 실용주의적이며, 동시에 자유스러운 예배 진행--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  

    먼저,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규범과 순서는 예배의 엄숙함과 경건함을 강조하였다. 초기 성결교회는 헌법에서 교단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7가지 "지도원리(指導原理)" 또는 "7개(七個) 강령(綱領)"을 강조하고 있다. 이 7가지 강령은 감리교의 8가지 교리적 선언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성결교는 예배에 관한 5번째 강령을 통하여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행위이기 때문에 항상 "엄숙하고 경건하며 질서 있게" 진행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또한 초기 한국 성결교회는 1936, 45, 55년의 {헌법} 앞부분에서 "공예배(公禮拜)의 순서(順序)"에 관한 항목을 제시하여 개 교회가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를 진행하도록 지도하였다. 특별히 한국 성결교회의 1936년과 1945년의 두 가지 예배모범을 비교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묵도" 순서의 변화이다. 1930년대에는 "예배당(禮拜堂)에 들어오는 자(者)는 반드시 묵도(默禱)할 지니라"는 예배규범으로만 소개되어 예배순서에 포함되지 않던 묵도가 1940년대에는 예배의 첫 순서로 결정되어 지금에까지 이른다. 이와 같은 주장들은 초기 한국 성결교회가 예배의 엄숙성과 경건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초기 성결교회가 예배의 엄숙과 경건을 강조한 것은 예배자들이 예배를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는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의식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들은 예배의 첫 번째 의무는 거룩하시고 초월적인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 분과 개인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성결교회는 마치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 분위기에서 이사야가 하나님을 깊게 의식한 것처럼, 그리고 초대교회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기다릴 때 갑자기 불의 혀같이 임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던 것과 같은 경험을 기대하였다. 그들은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의 심판과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초기 성결교회는 예배의 엄숙성과 경건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의 예배규범들을 제시한다. 초기 성결교회는 엄숙함, 경건함, 그리고 질서 있는 예배를 진행하기 위하여 모든 예배자들이 다음과 같이 예배의 시간과 태도에 대한 여러 가지 준수사항들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첫째,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를 시작하는 시간을 준수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1936년의 헌법은 모든 예배자들에게 "공예배(公禮拜)는 반드시 정(定)한 시각(時刻)에 개회(開會)할지며..."라고 요구한다. 이와 같은 요구는 반드시 일정한 시간을 작정하여 그 시간에 예배를 드릴 것을 강조한 감리교의 예배 강령과 규칙과 비슷하다.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자들은 어떤 이유에도 정해진 시간에 예배를 시작함으로 하나님에게 드리는 예배의 엄숙성을 경험하였다. 또한 그들은 정확한 시각에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기 위해 최선의 준비를 다함으로 예배의 경건성을 경험하였다. 
 둘째, 초기 성결교회는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예배자 각자가 묵도함으로 예배를 준비할 것을 강조하였다:  "예배당(禮拜堂)에 들어오는 자(者)는 반드시 묵도(默禱)할지니라." 성결교는 묵도의 당위성을 강조하지만 감리교는 묵도의 자세를 강조한다. 일반 건축물과 다를 바 없이 보이던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던 초기의 예배자들에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에서 그 분에게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묵도로 준비하는 것이 필수적인 순서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초기 한국의 개신교는 예배당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엄숙한 태도와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준비하도록 단정하고 엄숙하며 경건한 자세로 자신들 뿐 아니라 예배를 인도하며 설교할 목사와 다른 예배자들, 그리고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자들까지 포함하여 모두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요구하였다.
 셋째, 초기의 성결교회는 특별히 1945년의 주일예배에서 마지막 순서에까지 엄숙함과 경건함이 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배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특별한 폐회 순서를 제시한다: "기도(祝禱)가 끝난 후(後) 회중(會衆)은 경건(敬虔)히 묵도(默禱)하고 목사(牧師)의 폐식선언(閉式宣言)이 있은 후(後)에 산회(散會)할지니라." 묵도로 경건한 예배를 준비한 자들은 또한 묵도로 경건한 예배를 마칠 필요가 있다. 예배를 마침과 동시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회중에게 묵도는 각오를 다짐하는 순간이었으며 이런 회중에게 목사는 어떤 형식의 말로든 예배의 폐회를 선언하였는데 이것은 파송사("이제는 예배에서처럼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세상으로 담대하게 나가시오")와 같은 성격을 나타낼 수 있었다. 또한 축도가 끝난 후 진행되는 파송의 말씀과 같은 폐식선언에 대해 회중은 할렐루야, 아멘, 또는 박수로 화답하여 축제의 분위기로 예배를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넷째, 초기의 성결교회는 예배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이해하였다. "예배(禮拜)는 신성(神聖)한 예식(禮式)"이기 때문에 예배에 참석한 자는 누구든지 예배를 진행하는 자에게 복종하여야 하며 예배 진행 중에는 정해진 예배 순서에 대한 "변경을 강요"하거나 예배 중에 "질문(質問)이나 소요(騷搖)"를 일으켜 예배를 문란하게 할 수 없었다. 만일 이 예배규정을 어겨 예배를 문란하게 하는 자는 "결(決)코 순량(純良)한 교인(敎人)으로 인정(認定)"받지 못하여 "권면(勸勉), 질책(詰責), 책벌(責罰), 출교(黜敎), 예배출석금지(禮拜出席禁止)"를 당하도록 명시하였다. 이와 같이 엄한 예배규정은 특별히 순조로운 설교 진행을 위하여 강조된 것이다. 설교 시간에는 조는 것은 물론 귀엣말이나 곁눈질 그리고 웃음까지를 합당하지 못한 행동으로 규정하였다. 1937년 무교정교회(현재의 중앙교회)와 아현교회의 주일예배를 탐방한 활천 기자는 예배자들이 얼마나 엄숙하고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탐방 기자는 설교 시간에 어린아이들의 우는소리까지 무척 귀에 거슬린다고 보도함으로 예배의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초기의 한국 개신교는 미국의 교회들과 같이 모든 가족이 같은 예배당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문제삼지는 않았지만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능한대로 어린이들을 위한 예배를 따로 준비하였다. 


2. 실용주의적 예배

 초기 한국 성결교회는 예배에서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나 시도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런 초기 성결교회 예배의 실용주의적 경향은 예배의 목적, 순서, 그리고 순서 담당자의 선택에서 나타난다.
 첫째, 초기 성결교회 예배의 실용주의적 경향은 1936년 헌법에서 제시된 예배의 목적에서 잘 나타난다: "하나님께 기도(祈禱)하며 그 거룩한 교훈(敎訓)을 들으며 심령(心靈)의 새로운 은혜(恩惠)를 받으며 그 성호(聖號)를 영화(榮華)롭게 하기 위(爲)하여 매(每) 주일(主日)에 반드시 예배당(禮拜堂)에 회집(會集)하여 경건(敬虔)되이 하나님께 예배(禮拜)할지니라." 성결교회가 말하는 예배의 목적은 기도하고, 말씀 듣고, 은혜 받고, 그리고 영광 돌리는 것으로 매우 구체적이다. 이 구체적인 예배의 목적 가운데 "심령의 '새로운' 은혜를 받기 위함"은 더욱 성결교의 실용주의적 예배를 강하게 나타낸다. 성결교회의 실용주의적 관심은 회심자들을 포함한 예배 참석자들이 예배와 설교를 통해 "심령의 새로운 은혜"를 받게 하려는 열정에서 잘 나타난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날마다 새로운 성결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는 예배가 필수적이며 실제적인 유익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예배를 통하여 영적인 그리스도인을 형성하려는 성결교의 경향은 요한 웨슬리의 전통을 잘 나타낸다.
 또한 성결교 예배의 실용주의적 경향은 그 예배의 목적을 같은 시기의 다른 교단들의 것과 비교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감리교의 경우, 1930년의 교리와 장정은 "공중예배(公衆禮拜)는 교인(敎人)들이 주일(主日)마다 조석(朝夕)으로 예배당(禮拜堂)에 모이어 하나님께 예배(禮拜)하며 성경(聖經)을 강론(講論)하는 것을 이름"이라고 설명함으로 예배의 중심이 설교임을 강조한다. 또한 장로교의 1934년 {헌법}은 예배의 목적에 대한 설명보다 집례자와 회중들을 위한 예배모범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둘째, 초기 성결교회 예배의 실용주의적 경향은 특별히 회심자들을 만들기 위하여 설계된 1936년 주일 예배의 "은혜좌(恩惠座)"라는 순서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恩惠座는 복음전도관시대(1907-1920)부터 시작된 성결교회의 독특한 예배순서이었다. 초기 성결교회의 부흥회식 열정적인 설교의 주된 주제는 죄, 회개, 구원, 성령으로 충만한 성결의 삶, 그리고 전도이었다. 이와 같은 구원의 복음(순복음)을 전하기 위한 설교를 들은 자들은 설교가 끝난 후 20-30명이 기도를 받으러 앞으로 나와 사죄, 평화, 정결함, 그리고 능력을 경험하였다. 이 恩惠座 순서는 19세기초 신앙부흥운동으로부터 발전된 예배순서의 하나로 세 부분--찬송이나 찬양에 의한 준비(warming up), 회심으로 부르는 설교, 그리고 새로운 회심자들에 대한 수확--으로 구성된 통상적인 주일예배의 마지막 단계에 속한다. 이런 점에서 성결교의 주일 예배에서 은혜좌는 실제적인 결론 부분이다. 복음주의적 전통의 예배를 따르던 초기 성결교회는 "초청의 시간" 혹은 "결단의 시간" 순서를 통해 설교를 들은 후 그 주일 처음으로 나온 자가 믿기로 작정하거나 재헌신을 다짐하는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오도록 "은혜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또한 이 은혜의 자리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거나 삶의 문제와 싸우는 자가 회심이나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기 위해 기도를 드리도록 강단 앞에 마련된 "애도자의 자리(a mourners' bench)"이기도 하였다.
 "자유롭게" 진행되었던 이 순서는 부흥운동에 영향을 받은 전도중심의 예배에 가장 적절한 순서이었다. 1936년 초기 한국성결교회의 주일예배 순서에 처음 등장했다가 1945년의 예배에서 사라진 이 순서는 초기 미국의 감리교, 복음주의, 그리고 연합형제교회(United Brethren)가 주기적으로 천막집회에서나 개 교회에서 신앙의 갱신이나 부흥을 위한 예배에서 설교 후에 진행한 초청순서와 같은 성격을 띤다. 이와 같이 회심자들을 수확하기 위한 실용주의적 예배에서는 그 목적을 위한 직접적인 효과를 제공하는 설교가 가장 중요한 초점이며 절정을 이루도록 예배 순서에서 보다 뒤쪽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초기 한국성결교회의 예배는 헌금과 감사기도, 광고 순서를 설교 전에 위치하였다. 이와 같이 주일 예배에서 헌금과 광고가 설교 전에 진행되던 한국 개신교의 공통적인 경향은 교회의 양적 성장에 대한 열정을 예배 속에서 강조하던 1960년대 말부터 점차 바뀌기 시작하면서 그 순서들이 모두 설교 뒤쪽으로 이동한다.
 셋째, 초기 성결교회 예배의 실용주의적 경향은 예배 순서 담당자를 선택할 때에도 잘 나타난다. 1936년의 "恩惠座" 순서가 1945년의 예배모범에서 생략되어 있지만 그 순서가 1940년대에도 복음전도나 부흥집회의 성격을 띤 예배에서 계속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恩惠座" 의 전통이 약간 변형되어 1945년의 예배모범에 등장한다. 그것은 설교 직후 설교자가 진행하던 기도 순서를 "설교자(說敎者) 혹(或)은 회중(會衆)에서 지명(指名)된 사람"도 맡을 수 있도록 한 배려이다. 이것은 1936년의 恩惠座 순서에서 설교를 들은 자들이 자유스럽게 강단 앞으로 나아가 초청에 응답하도록 한 것과 같이 1945년의 설교 후 기도 순서에서도 설교자 자신이 아니라 예배공동체 가운데서 한 사람이 들은 설교에 대해 결단하며 적절하게 응답하게 하여 공동체의 예배 표현을 이끌어내도록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설교 후에 진행하는 기도의 변형은 오늘날 설교 후의 기도를 통성기도로 대치하여 회중 각자가 스스로 결단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과 같은 의도로 이해된다.
 또한 1936년의 예배모범에서 "찬송을 부르는 중에 헌금" 순서를 진행하는 것과 "주(主)의 기도(祈禱)" 순서를 예배의 마지막 순서에 위치시켜 특별히 지역교회에서 축도권이 없는 교역자가 진행하는 예배를 돕도록 배려한 것은 초기 성결교회 예배만이 지닌 또 다른 실용주의적 경향이다. 주의 기도는 같은 시대 장로교의 예배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감리교의 예배에서는 "주기도문"으로 표기되어 예배의 앞부분에 위치한다. 이와 같이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폐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한국 교회의 주일저녁이나 수요일저녁 예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한 경향이 되었다.


3. 자유스러운 예배 진행

    초기 한국성결교회는 자신들의 실용주의적 예배를 교회법규나 예식서 등에 의해 억제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진행하는 자유를 누렸다. 이런 자유스러운 예배 진행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진행되는 예배 규정과 열정적인 찬송과 설교에서 잘 나타난다.
 첫째, 초기 성결교회가 예배를 자유롭게 진행한 경향은 1936년 성결교회의 예배규정에서 잘 나타난다. 이 예배규정은 예배의 순서를 정한 이유가 공예배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지만 "이 순서(順序)가 성령(聖靈)의 자유(自由)스러운 역사(役事)를 방해(妨害)치 않도록 힘쓸지니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는 어느 교단보다 선교사들이 전해준 미국의 예식서나 예배규범의 지배로부터 더 많은 자유를 누렸다. 성령의 자유스러운 역사에 대하여 민감하며 개방적이었던 초기 성결교회 예배의 전통은 최근에 다시 1996년 『새예식서』의 예식서 수정위원회가 표준 예식모범을 제공하기 위한 원칙들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다. 1936년까지도 계속 복음전도의 열정을 유지하고 있던 초기 성결교회의 지도자들과 교인들은 주일 예배를 드린 후에도 각 지역을 순회하며 노방전도에 힘쓰기 위해 장로교회나 감리교회처럼 미국 교회의 예식서를 근거로 잘 짜여진 긴 예배 순서를 따를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초기 성결교회가 예배를 자유롭게 진행한 경향은 정열적인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찬송에서 잘 나타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열정적인 찬송들로 진행되는 노방전도와 부흥회식 예배로 유명하던 초기 성결교의 예배는 19세기 미국의 프런티어 예배(Frontier Worship)와 같이 "찬송 샌드위치"(hymn sandwitch)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형식은 찬송을 가운데 두고 다른 순서들을 그 앞과 뒤에 배치하여 예배의 기본적인 구조가 찬송으로 구분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형식으로 진행되는 예배는 자유롭게 즐거움과 축제 기분을 가지고 찬송을 큰소리로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자유로운 예배 진행이 예배 참석자들 서로가 친밀감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게 하였다. 그들이 복음전도의 성격을 지닌 예배에서 사용한 찬송의 기능은 회개와 회심을 전할 설교를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본래 예배자들이 "경건한 마음과 뜨거운 마음으로 주의 성호를 찬양"하는 것이 찬송의 기능이지만, 새로운 회심자들을 준비시키는 찬송이나 찬양은 예배에서 찬송 자체의 기능을 넘어서는 것이다.
 열정적 전도, 뜨거운 기도, 그리고 구원에 대한 찬양에 훌륭한 도구인 찬송의 특별한 기능을 이해하였던 성결교회는 창립되던 1907년부터 일본 유학생이던 이장하에 의해 160여곡으로 수집 편찬된 전도 본위의 『복음가(福音歌)』를 예배에서 사용하였다. 초기 한국성결교회는 1917년에 이장하와 선교사 토마스 부인은 『영미성결찬송집(Magnificant Collection of Choicest Holiness Hymns)』에서 100여곡을 번역하여 161장으로 된 『곡조복음가(曲調福音歌)』를, 1919년 『福音歌』에 50곡을 추가하여 211곡에 이르는 『신뎡곡됴복음가(新訂曲調福音歌)』를 내놓았으며 1934년에는 『부흥성가(復興聖歌)』라는 이름으로 교단 찬송가를 발행하여 사용하였다. 성결교의 해산과 함께 『復興聖歌』도 1941년에 폐간되었다.
    초기 성결교회가 예배에서 사용한 찬송들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신앙부흥운동 집회에서 사용하던 복음성가와 같은 성격을 가질 뿐만 아니라 전도표제인 순복음적인 4중교리를 노래한 것으로 열광적, 명상적, 감상적으로 부르기에 적절하였다. 성결교회가 사용한 부흥전도집회에 적절한 찬송들은 주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하고 구원 얻은 기쁨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간증하는 내용,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불쌍히 여겨 전도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부흥의 밑거름이었던 復興聖歌의 영향을 받은 초기 한국성결교회의 예배는 찬송을 "聖歌"로 표기하였다. (장로교는 "시와 찬미"로 표기한 1934년의 예배 이후부터, 감리교는 처음부터 "찬송"으로 표기하였다.) 초기 성결교회의 부흥성가 전통은 1973년의 예배모범에까지 계속된다. 
 셋째, 때때로 초기 성결교 설교자들의 열정적인 설교 또한 자유스러운 예배 진행의 한 경향을 나타냈다. 복음전도관시대(1907-1920)부터 노방전도를 위한 옥외집회에서 다져진 성결교회의 부흥회식 열정적인 설교는 실제 예배 시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1939년 {활천}에 "설교시간(說敎時間)에 관(關)하야"라는 글에서 허인수(Paul E. Haines)선교사는 설교가 너무 길어 청중들을 지루하게 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勿論 說敎時間을 制限치는 못할 것이나 假令 四十五分間이라든지 或은 그 以內라도 所期한 目的만 達成한다면 形便에 依하야 處地대로 增減할 수 있다. 何如間 說敎의 目的은 聽衆을 本位로하야 그들 靈魂에 有益을 주는 것에 있나니 이 點을 忘却하면 아니 된다. 疲勞를 느낀 聽衆은 더 큰 恩惠를 구할 勇氣가 없으나 說敎者의 意義깊은 說敎에 熱情이 타게되면 恩惠를 더욱더욱 思慕케 된다.   

이처럼 긴 설교에도 불구하고 신앙부흥운동의 성격을 띤 설교는 청중으로 하여금 "할렐루야"와 "아멘" 소리로 그들의 긍정이나 열렬한 응답을 유발하였다. 1937년 {활천}에 실린 "무교정교회(武橋町敎會; 성결교회의 母敎會로 현재의 중앙교회) 순례기(巡禮記)"에 의하면, 4월 25일 주일 아침 성경공부를 끝내고 진행된 예배에서 설교를 듣던 120-30명의 신도들로부터 자주 아멘 소리가 나왔다고 전한다.


평가


 초기 한국성결교회의 예배자들은 교회 공동체로서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려는 목적으로 성전에 함께 모였다. 그러나 그들이 성전으로 모일 때 그들이 몸담고 생활하던 세상을 함께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고 세상 속에서 한 주간 자신들을 구속하신 분을 일시적으로나마 나타내기 위해 구원받은 그러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전에 서 있었다. 그들은 고백하고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기 위해, 감사하고 축하하기 위해, 그리고 변화된 백성, 구속받은 백성, 회복된 백성으로 다시 세상으로 파송되기 위해 성전에 모였다.
 매 주일 초기 성결교인들이 찾아 간 곳은 성전이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들이 드렸던 예배는 종교적인 행사이나 사회적인 모임, 또는 주기적인 안식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배에서 활동적이 되고, 관계를 맺고, 요구를 받고, 시간을 투자하고, 그리고 자신을 부인하였다. 전통적인 우리의 예배는 예배자들에게 자극적이며, 예언적이며, 참견하며, 침략적이며, 그리고 그들의 중심을 꿰뚫었다.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는 열정과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예배는 예배자들에게 도전하고 죄를 깨닫게 하며 그들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켰다.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실하게 예배드리지 않을 수 없었고 변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는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있었으며 그 열매를 거두었다. 그들은 예배 계획과 진행에 지혜로웠으며 또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앞에서 우리는 예배의 엄숙-경건함과 실용주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자유스럽게 진행되던 초기 한국 성결교회 예배의 경향들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은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의 경향들은 삼위일체적인 성격을 띠면서 예배자들을 경험적인 예배에로 인도하였다. 그들은 예배를 통해 단순히 이지적으로 알고 있던 믿음을 하나의 실체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삼위일체적인 성격을 지닌 예배의 세 경향은 서로 협력하면서 다음의 경향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첫째,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의 내용"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예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이다. 특별히 성결교회는 예배자들이 예배 속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도록 예배의 준비, 예배의 정확한 시작 시간, 예배의 분위기 조성, 그리고 마지막 파송 준비에 이르기까지 예배의 엄숙함과 경건함을 강조하였다. 가정교회와 같은 초기의 열악한 예배 환경 속에서 초기 성결교회는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 분위기를 강조함으로 모든 예배자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기억하도록 하였다. 그들의 예배 권위는 성직자나 예배 인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이런 경향은 그들이 하나님을 위한 예배에 충실하였다는 증거이다.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의 첫 부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자는 곧 말씀을 들음으로 그리스도를 경험하도록 인도된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예배공동체는 삶의 문제들과 기도 제목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가져올 수 있으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초대됨으로 새로운 삶을 경험할 수 있다.
 둘째,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의 구조"는 "부름과 응답"이라는 구조를 통해 실용주의적으로 운영되었다. 처음부터 교회 확장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순복음을 전하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초기 성결교회는 예배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부름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행위로 이해한 것이다. 예배의 앞부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한 자들은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진지하게 응답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예배를 순수한 복음전도와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성결교회의 실용주의적인 예배 진행은 회심자들을 얻기 위하여 그리고 심령의 새로운 은혜를 얻기 위해 설교와 은혜좌 또는 응답기도 중심의 부름과 응답이라는 구조를 통해 잘 표현되었다. 그들의 예배는 회심자들이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신앙과 삶의 변화를 경험(중생의 체험)하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배자들이 세상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그와 같이 살기 위해 그리스도의 실체를 경험(성결의 체험)하게 하였다. 이렇게 예배에서 그리스도의 부름에 응답한 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열매를 맺도록 인도된다. 
 셋째, 초기 성결교회의 "예배의 형태"는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예배 경험을 위해 자유스럽게 진행되었다. 예배를 진행할 때 성령의 감동을 잃지 않도록 진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초기 성결교회는 초대 기독교가 경험한 것처럼 예배 속에서 예배공동체 모두에게 임하는 성령의 자유스런 역사에 민감하였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가 예배를 의식의 차원을 넘어 생동감 넘치는, 진정한 자유를 회복하는 장으로 만든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들은 항상 성령의 역사에 대해 개방적이며 자유스럽게 예배를 진행함으로 자신들의 표현이 형식주의에 빠지지 않고 항상 "심령의 새로운 은혜"를 사모하는 열정적인 예배가 되게 하였으며 신유의 체험까지 경험하게 하였다. 비이성적인 부분이 있어서 예배 진행에 일관성이 부족하기는 하나 감정에 풍부한 예배는 한국인의 직관성과 관련하여 예배의 감동을 극대화하여 예배를 풍부하게 하였다.
 그러나 초기 한국 성결교회의 예배가 지닌 전늘 우리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이 있다. 1920-50년대의 상황에서 초기 한국성결교회의 실용주의적인 예배 경향이 특별히 복음전도 중심의 예배와 설교를 통해 회심자들을 얻으려는 그들의 목적에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복음전도를 위한 목적 지향적인 예배는 성경이 말하는 바람직한 예배라고 볼 수 없다. 예배에 대한 바른 질문은 "이 예배가 무엇을 성취하는가?"가 아니라, "이 예배가 무엇을 나타내는가?"이다. 예배는 사람들을 위해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를 축하하는 것임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란 예배자들에게 또는 그들을 위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전도적인 예배의 핵심은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특별히 그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맺게 하여 회심자를 얻으려는 의도로 진행되는 것이다. 선교와 개종이 예배의 주된 목적이 되어 회심을 목적으로 한 전도설교 위주의 아주 단순한 교육적인 예배가 되면 예전적 성격이 배제된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일시적인 행사나 양적 성장을 성취하려는 교회의 수단으로 취급될 수 있다. 이것은 특별히 초기의 성결교회의 예배 전통을 이어가야 할 오늘의 성결교회가 기억해야할 점이다

출처 : 하얀 비둘기
글쓴이 : 하얀비둘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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