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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책

[스크랩] 존 웨슬리-2(John Benzamin Wesley;1703-1791)

웨슬레(John Wesley)의 구원관이 현대선교에 끼친 영향





이 동 명





목 차



I. 서 론 .................................................. 1

A. 연구 목적 ............................................. 1

B. 연구 범위 및 방법 ..................................... 3

C. 중요 용어 ............................................. 5



II. 양대 선교개념의 이해 ................................... 7

A.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이해 .............................. 9

B.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의 이해 ............................ 14

C. 기독교와 타종교의 접촉점(Point of Contact)과 대화(Dialogue)

에 관한 논의 .......................................... 18



III. 웨슬레(John Wesley)의 구원론의 구조 ................... 22

A. 하나님의 은총 ........................................ 26

B. 의인(Justification) ................................... 30

C. 성화(Sanctification) .................................. 32

1. 의인과 성화의 관계성 .............................. 34

2.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 36



IV. 웨슬레의 구원론의 현대 선교전략적 의의 ................. 41

A. 웨슬레 은총관의 현대 선교신학적 의의 .................. 42

B. 웨슬레의 의인관의 현대 선교신학적 의의 ................ 47

C. 웨슬레 성화관의 현대 선교신학적 의의 .................. 49



V. 결 론 .................................................. 55



* 참 고 문 헌 ........................................... 61



. 서 론





A. 연구 목적



기독교 선교의 기원은 하나님의 인류 구속의 기원에까지 소급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본격적인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되었다. 교회는 이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선교의 사명이며, 동시에 기독교 역사는 선교의 역사이다. 그러나 선교(mission)라는 단어는 성서적 용어가 아니다. 단지 성서는 하나님자신과 기독교회가 선교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교는 성서적이라고 말할수 있다.

확실히 이 세상은 불타고 있는 건물과 같다. 시간이 늦기전에 구조작업을 해야한다. 이 일이 바로 예수의 부활이후 그의 재림의때까지 일어나는 하나님의 행위인 동시에, 교회의 일로서의 선교이다. 오순절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독교회는 복음전파를 위한 기회와 도전을 받아왔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는 전래없는 선교의 위기를 당하고 있다. 그것은 과학주의, 보편주의, 세속주의등의 시대사상과 계몽주의적 인본주의 철학의 발흥 그리고 과거 기독교 선교의 부정적 측면과 새로운 민족주의의 대두 및 민족종교의 부활, 혹은 타종교의 적극적인 선교의 영향 때문이다. 이로인해 선교개념과 목적, 선교방법과 그 타당성등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일어났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은 선교에 대한 열정을 상실케 하였고, 그 역동성을 상실케 하였다.

그러나 선교는 여전히 기독교인의 삶의 근본적 실체이며, 교회가 세계에 대하여 갖는 관계성에 대한 성서적, 전통적 상징이다. 그러므로 현대교회는 선교의 열정과 그 역동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교에 대한 성서의 원초적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서재가 아닌 현장속에서 적극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또한 정당한 선교신학이 수립되어야 한다.



B. 연구 범위 및 방법



현대 선교신학의 혼란은 웨슬레의 신학에서 안정을 찾고 있다.

한편 웨슬레(John Wesley)는 선교적인 사람이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선교를 위해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사용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기독교인과 기독교회가 선교적 열정과 역동성을 상실하는 것을 경고했다.



나는 메쏘디스트(Methodist)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단지 능력없는 종교의 형태만을 갖고 있는 죽은 단체로 남아있지 않을까 염려한다.



특히 웨슬레는 현대선교의 대표적 고민인 "신앙과 실천",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를 정당하게 결합하고 있다.



고독한 종교는 찾아볼 수 없다. '거룩한 간부(姦婦)'라는 말이 복음과 양립할 수 없듯이 '거룩한 은자'라는 말도 복음과 양립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회적이 아닌 종교를 알지 못한다.



웨슬레의 이러한 신앙과 실천의 종합이 정당한 이유는 그가 성서를 사랑했고, 성서적으로 살았으며, 성서적 신학을 지닌 '한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확실한 체험으로부터 모든 선교사역을 스스로 실천한 선교사요, 설교자이었다.

특히 '선행은총(prevenient Grace), 의인(Justification), 성화(Sanctification), 영화(Glorification)'로 정의되고, 구성되는 웨슬레의 구원관은 현대 선교에 있어서 구원의 '총체성'(Totality)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을 갖게 한다.

웨슬레의 선교적 의의에 대해 조종남교수는 "둘째, 최근에 이르러 웨슬레에 대한 관심과 그에따른 연구가 날이 갈수록 고조되어 가고 있다. 둘째 지난 1974년 7월 로쟌 세계 복음과대회의 발제 강연자의 대부분이 칼빈주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나 그 공동의 선언문은 웨슬레적 신학이었다. 셋째, 웨슬레의 선교운동이 이룩한 놀라운 구원의 역사와 그 영향이 너무나 놀랍게 혁명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웨슬레는 그 자신의 회심 체험에서 시작하여 그 시대의 모든 영역에 걸쳐 선교운동을 실천하였고, 변화와 갱신운동을 성서의 권위아래서 일으킨 선교사였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의 책임의 영역을 강조하였으나, 하나님의 은총과의 불연속성을 강조한 은총의 신학자였다. 인간의 무능을 통감하였으나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회복된 인간성의 가치를 존중하였던 인간적인 신앙인이었으며, 여전히 모든 이성주의와 신비주의적 배경을 극복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따라서 웨슬레는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 '오직 은총만으로'(Sola Gratia), '오직 성경만으로'(Lola Scriptura)의 개혁작들의 전통에 철저했던 복음 주의자이었다.

필자는 현대선교의 혼란이 '무엇이 선교인가?'에 대한 개념정립의 혼란이라고 파악한다. 특히 선교의 본질적 영역인 '복음화'(Evangelization)와 '인간화'(Humanization)의 그 '우선성'(priority)의 논쟁에 있다고 이해한다. 동시에 웨슬레의 구원론의 구조와 그의 신학속에 이러한 혼란을 진정시킬 해결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II 장 양대 선교개념의 비판에서는 반드시 그렇치는 않치만 현대 선교신학을 '복음주의 선교신학'(Evangelical Missiology)과 '에큐메니칼 선교신학'(Eccumenical Missiology)으로 양분하고, 그 특징과 그에대한 비판을 하고자 하며, III 장 웨슬레의 구원의 구조에서는 웨슬레의 구원론의 중요이론인 '하나님의 은총, 복음적 신인협동설(Evangelical Synergism), 의인(Justification), 성화(Sanctification)'의 교리와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마지막 IV 장 웨슬레의 구원관의 선교적 의의에 대해 고찰하고 자 한다.



C. 중요 용어



웨슬레의 인간이해에 나타나는 인간화(Humanization)의 가능성에 대해 : 웨슬레의 인간이해는 철저하게 "은총아래의 존재"로 파악된다. 그렇기 때문에 웨슬레의 "인간화의 가능성"은 무신론적 인본주의에 근거한 혹은 합리주의적 이성에 의한 인간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능성을 지닌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인간을 향한 낙관이다.



I. 양대 선교개념 비판





예수의 위임명령을 수행하려는 열심은 원시 기독교회로 하여금 '왜'(Why) 혹은 '어떻게'(How)를 선교에 있어서 문제시 하지않게 했다. 세계내에서 자신과 교회의 존재자체를 선교적으로 이해하였고, 또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선포(Proclamation)하며, 이방인을 설득(Persuasion)하여 교회 구성원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선교적 열정이 오순절이후 기독교를 세계적으로 확장케 하였다. 중세기에는 로마교회를 확장시키는 일을 선교의 최대의 목적으로 삼았으며, 종교개혁기에는 타락한 신자의 영성회복운동을 선교와 동일시하였다. 산업혁명이후에는 식민주의와 함께 자기교회이식운동이 곧 선교이었고, 1 세기에는 이교정복운동의 성격을 띠고 선교사업이 수행되었다.

그러나 19세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기독교 선교활동이 활성화되었고, 수없이 많은 선교회들이 조직되었다. 현대 선교의 '위대한 세기'(The Great Century)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여파를 타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회는 초교파적 각종 선교대회를 개최하였고, 연합된 힘으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ion)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새로운 선교신학을 수립하고자하는 노력이 경주되었고, 이로인해 전통적 선교관이 비판되고 연구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보쉬(David J. Bosch)는 "19세기가 선교의 위대한 세기였다면 20세기는 초교파적인 세기이다"라고고 평가한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비 기독교적인 여러종교의 부흥이 있었고,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의 변화는 교회로 하여금 감히 손댈 수없는 선교과업을 갖게 하였다. 특히 주 선교대상지였던 제 3세계의 성황은 선교의 위기를 만들어 내었다. '비인간화, 세속화, 다원화'의 시대상황과 새로운 민족주의 운동은 서구 선교사를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러한 20세기 후반의 세계상황은 고전적 선교의 모든 영역에 대한 비판과 아울어 현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신학의 정립을 요청하게 하였다. 이 세계적, 신학적, 선교적 상황은 다양한 형태로 교회의 특징을 표현케 하였다. 전통적 선교신학에 좀더 집중하려는 자들과 모든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부류와 양자를 성서적으로 비판하고 종합하려는 부류로 그 모습이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급변하는 세계속에서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선교' 인지를 밝히고자하는 노력이었다.

필자는 교회선교의 여러운동을 '복음주의자들'(Evangelicals)과 '에큐메니칼주의자들'(Eccumenicals)로 양분하고자한다. 저자는 고전적 선교개념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않고 단지 그 신학적 오류와 선교사업의 모순전등을 반성, 비판, 수정, 보완 하고자 하며, 후자는 모든 전통적 신학체계를 부정하고 새로운 형태의 신학을 정립하고, 그에따른 선교사업을 실천하고자 한다. 본장에서 필자는 그 양진영의 선교신학을 소개하고 비판하고자 한다.



A. 복음주의 선교신학 비판



복음주의자들은 보에티우스(Voetius)가 제시한 '이방인의 회심, 교회의 설립, 하나님의 영광'을 기독교 선교의 삼중목적으로 삼는다. 강조점은 언제나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에 있다. 따라서 복음은 "삶의 길이 아니라, 신앙의 주제"이다. 죄란 하나님을 떠난 것이며, 그 죄가 인간의 가장 심한 고통이다. 따라서 구원이란 이 고통에서 벗어나 내세의 생명과 영광을 얻는 것이다. 수직적, 영적, 개인적 차원의 구원이 강조된다.

전통적으로 구원의 의미가 축소되어 나타났다. "영적인 필요를 채우는 일"이 관심이었다. 따라서 선교의 범위가 축소되었다. 복음의 사회성과 구원의 총체성이 등한히 여겨졌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와 사회행동은 이단시되거나, 수단화되었다. 때로는 선택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리스도인의 전인성(全人性)은 경시되었고, 언제나 '영성'(spirituality)에 종속되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복음주의자들의 이원론(Dualism)을 반영한다. 영혼과 육체,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 개인적인것과 사회적인것, 성(聖)과 속(俗)을 분리하여, 언제나 후자는 전자보다 열등한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므로 세계와 육체를 경멸하며, 세계의 갱신보다는 세계로부터의 구원을 원한다. 신자의 거룩성이란 세속적인 모든 것으로 부터의 분리와 도피를 의미하였다. 또한 어떠한 형태의 현재적 치유와 갱신보다는 미래적 회복에 관심을 두고, 인간의 전인적(全人的) 온전성과 그가 살고있는 사회의 성결과 변화는 언제나 제 2차적인 중요성을 가질뿐이다.

결국 교회란 세상에서 격리된 신자의 요새와 방파제로서 인정되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의 근원이며, 구원의 방법을 가르치고 분배하는 곳이며, 진리의 소유자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예언자적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장적 기능만을 강조하게 되었고, 세례, 학습, 기도회, 예배등이 교회의 일차적인 활동이 되었다. 이로인해 교회는 점점 세계속에서 그 '신뢰성'을 상실하였다. 복음의 '실천'보다는 '방어'에 치중함으로서 그 가치를 '값싸게'하였다. 교회의 모든 활동은 의미없는 종교적 몸짓으로 받아 들여졌고, 이로인해 교회는 '기관화'되고, 그 존재의 '역동성'을 상실했다. 또한 19세기를 '선교의 위대한 세기'로 부르면서도 '제국주의적 문화침략', 혹은 '서구 문화의 이식활동'으로 선교가 전락하였다는 비판을 듣게된 것이다. 그것은 교회가 전도와 교육을 통해 비 그리스도교 신앙을 다 쓸어버리려 했고, 모든 사람을 교회의 울타리로 끌어들어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복음주의자들은 '구원사'(救援史)를 신성시한다. '교회사'(敎會史)는 곧 '선교사'(宣敎史)와 동일시된다. 그러므로 '세계사'(世界史)는 '구원사'(救援史)와 분리되며, 양자는 언제나 평행선을 긋고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성향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하나님'을 분리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라는 시간의 중요성은 사라지고 오직 '종말'이라는 미래적 시간이 현재를 흡수하여 존재케된다. 이로인해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現在性)은 부정되거나,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약화된다. 그러나 창조주와 구속주는 동일한 존재이다. 양자는 동일한 존재의 이 세계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구분되어 나타나는 두가지 특징이다. 구속사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세계사속에서 동일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선교는 창세부터 시작되어 종말을 지향하고 있으며, 구원의 주체자이신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그런데 시작과 종말사이의 현재속에서 기독교 선교는 수행되고 있고, 이 현재는 미래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그 중요성을 갖고 있다. 또한 미래와 종말은 현재의 인간경험에서 경험되는 것이어야 그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실현된 종말'과 '실현될 종말' 사이의 긴장이며, 이 양자의 경계선에 기독교회는 서있다.

따라서 교회역시 '이미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와 '장차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가 공존하는 복합적인 실체이다. 이 말은 교회가 '현재'에 참여하는 동시에 '미래'를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회는 구속사에 참여하는 동시에 세계사에 참여해야 한다. 세계사 속에서 '이미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의 본보기로 존재하며, 이런의미에서 교회존재의 의미는 '선교적'이라 할 수 있다. 이점에서 종합은 이루어진다. 즉 교회는 항상 그리고 동시에 세계로부터 나오라고 부름을 받으며, 또 세계속으로 가라고 보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배와 성례전'을 통해 선교를 수행케하며, 선교는 예배와 공동체를 인도해 주게된다. 또한 교회는 세계내에서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압박에서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권념에 참여하여야 한다. 그리할때 교회는 '제사장직'과 '예언자직'을 동시에 수행하게 된다.

교회가 종말과 현재의 긴장을 유지해야하는 당위성속에 그리스도인 개개인과 인간의 삶의 총체성을 보게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이미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인 동시에 '장래 실현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한 개인은 교회와 마찬가지로 현재와 미래의 경계선에 살고있다. 결코 개인의 현재성이 미래에 흡수되거나 제거되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현존은 선교적 의미가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현실참여는그의 종말적 참여와 함께 긍정 되어야 하며 권장되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으로 부름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그 부름에 책임있게 응답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 부름은 복음(Good News)을 통한 부름이다. 이 복음은 결국 한 인간을 현재와 미래속으로 동시에 참여케하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 구원의 의미이다.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롬 1:16)은 증거(Martyria)되어야 한다. 그런대 이 증거(Martyria)는 성도의 교제(Koinonia)를 축으로 하여 복음의 선포(Kerygma)와 세계를 향한 봉사(Diakonia)로 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증거(Martyria)는 교제(Koinonia), 선포(Kerygma), 봉사(Diakonia)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wholistic) 것이다. 비록 이 셋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서로 분리될 수없는 것이며, 따라서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면서 그 독자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것이든 다른것보다 우등(Superior)하지도, 열등(Inferior)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교를 실천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선교의 어떤 한 측면, 또는 다른측면을, 그것이 해방이건 개발, 인간화, 복음화이건 영구적으로 선택할 수는 없다. 이 모든 부분이 우리에게 맡겨진 선교에 없어서는 안되는 본질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참으로 무엇인가를 보여주는데 있어서 서로를 대립한다면, 그 진상을보이는 것은 비웃음을 사지않고는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복음의 신앙의 대상인 동시에 신앙인의 삶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세계속에 흡수되지 않으면서 세계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독점하지 않으면서 세계와의 정당한 관계를 상실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가 유일하면서 동시에 보편성을 지녔듯이 현대 세계속의 그리스도인도 세계와는 구별되되 분리되지는 않는 존재이어야 한다. 그것은 자의식적 사회참여를 동시에 수행하는 '선교의 포괄성'이다. 만일 기독교 선교가 이러한 포괄성을 상실한다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세계속에서 그 신뢰성과 정체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며, 이로인해 무신론적 과학기술과 사회혁명이 기독교 선교의 영역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B. 에큐메니칼 선교신학 비판



복음주의자들 - 엄밀한 의미에서 고전적 선교신학자들 - 에 이원론적 세계관과 비역사적 현실관등에 대한 반발과 현대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새로운 선교신학을 요구하였다. 또한 비슷한 입장의 학자들과 교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연합하였다. 이러한 선교의 '재개념과 운동'의 선두에는 '세계교회 협의회'를 필두로하는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이 있다.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낙관주의가 배경이 되어, 양자의 가치를 하나님의 가치와 뜻보다 우위에 놓던지, 혹은 신률(神律)을 인률(人律)과 자연법(自然法)에 대하여 상대화(相對化)시킨다. 따라서 인간의 인간답게 사는 사회의 건설과 인간본유의 권리를 함향케 하는 "인간화"(Humanization)가 선교의 근본적인 목적이된다. 다시말하면 "정의롭고, 승인할 수 있는, 참여하는 사회"를 건설하기위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세계질서를 일으키고, 확립하는 모든 행위가 곧 선교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되었다. 또한 "새로운 인간성"(Nw Humanity)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인간의 문제, 즉 모든 압제, 착취, 소외, 가난, 질병, 무지등을 제거하는 행위가 선교의 목적이 되었다. 따라서 복음이란 "신앙의 주제가 아닌 삶의 길"로서만 그 의미를 갖게 되었고, 죄의 의미는 '인간과 사회구조자체'로부터 파생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구원이란 "착취로부터 경제적 정의로, 정치적 압제에서 인간 존업성으로, 소외에서 단결로,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변화"를 뜻하였고, 이구원을 이루기 위한 모든 혁명과 폭력이 정당화되었다. 이 사회속에 하나님의 평화를 구현하기위한 모든 행위와 그 의미가 '수평적으로 재 개념화' 되었다.

모든 변화의 수단이 인간의 손안에 있고, 따라서 인간은 능동적인 주체자가 되어 사회혁명에 참여해야만 한다. 이제 "성서적 신앙의 범주들은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옷을 벗어버리게"되었다. 복음주의자들과 성서의 주장인 복음화는 정치적 활동으로 흡수되며, 구원은 사회정의로 통합됨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 스스로의 택함과 결단인 '회심'(Conversion)의 의미가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인류의 한 식구가 이미된 모든 인류로 하여금 그 사실을 깨닫게 하는일"이 교회의 임무가 되었다. 이것이 에큐메니칼 신학의 구원론으로서 "만인 구원설"(Universalism)이다. 이러므로 "세계는 아직도 화해해야 할 세계로 보고 그 세계안에서 아직도 선교활동을 수행하려고 하는" 교회와 선교는 세계에서 고립되었다. 교회가 세계속에 흡수된 것이다. 동시에 '구원사'가 '세계사'속에 흡수된 것이다. 이미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를 절대화하여 '장차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를 제거하였다.

이러한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은 실존적 인간의 '한계성'과 불완전성을 무시하고 이 땅위에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무신론적 유토피아 건설'의 환상을 지닌 '인본주의 신학'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하나님의 개념속에 '심판주'하나님이 흡수되어 성서적 하나님의 전체성을 축소시켰다. 성서가 말하는 '미래적 종말'이 '현재'속으로 통합되었다. 따라서 선교의 의미란 실현된 종말속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모든 일'을 뜻하게 되었다. 와그너(Peter Wagner)교수는 현대 선교신학의 에큐메니칼 신학적 흐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 요약하고 성서적인 조명을 통해 재정립될 필요성을 강조했다.



① 권위론 - 성경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

② 인간론 - 인간의 죄를 사회적 차원에서 이해한다.

③ 기독론 - 다른 종교에도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의 상대적인 표현으로, 그 특수성을 갖지 못한다.

④ 구원론 - 구속을 사회, 문화적 발전으로 이해하며, 과도한 은혜에 근거한 '만인 구원설'(Universalism)이 강조된다.

⑤ 화해론 - 수평적 화해가 강조된다.

⑥ 교회론 - 교회는 세계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⑦ 선교론 - 교회가 하는 모든일이 선교가 된다.

⑧ 전도론 - 기독자 현존(presence)과 사회봉사가 전도이며 개인구원 보다는 사회구원을 선교의 목적으로 삼게되었다.



따라서 에큐메니칼 신학은 근본적으로 성서의 주장과 복음주의 신학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 본래의 연합목적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하여야 고유의 선교적 대 명제인 세계복음화를 달성할 수 있다. 그 관심을 세계에서 교회로, 인간에게서 하나님에게로 바꾸어야하며, 양자의 균형을 잃치 않아야 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선교는 "하나님의 일"(Missio Dei)이기 때문이다.



C. 기독교와 타종교의 접촉점(Point of Contact) 및 대화(Dialogue)에

관한 논의



본 논문의 전체적인 흐름의 일관성을 위해 이제까지 다루어지지 않았던 문제인 기독교와 타종교간의 접촉과 대화의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대의 '보편주의'와 '상대주의'적 상황하에서 언제나 타종교와의 만남속에서 이루어지는 기독교 선교는 그 '유일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선교의 '효율성'의 증대를 위해 '대화'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입장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 선교는 언제나 타문화권 속에서 수행된다. 그런데 그 문화의 중심에는 그들 고유의 종교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선교는 언제나 타종교와 접촉한다. 이때 던져지는 질문은 "타종교와 기독교의 접촉가능성은 있는가 "라는 것이며, 있다면 "그 한계와 범위는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하여 첫째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절대적인 태도로서 타종교를 거짓것으로 거부해 버림으로서 어떠한 대화의 가능성도 배제된다. 초대교회부터 19세기까지 서구 기독교회는 이와같이 배타적인 자세를 견지해왔다. 바르트(K. Barth)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근본적인 불연속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편성과 하나님의 일반은총 아래있는 인류는 적어도 최소한의 접촉점을 지니고 있다. 사실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자세는 비성서적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서구 문화 우월주의에서 나온 사고이다.

둘째 기독교회는 타종교에 대하여 절충주의적 입장을 견지해온 부류가 있다. 타종교를 배척하지는 않으나 기독교보다는 열등하게 보고, 또한 기독교에 의해 완성되어야 하는 종교이다. 타종교는 여전히 기독교의 정복의 대상이다. 이 입장은 '배타주의'보다는 부드러워 보이나 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언제나 '배타주의'로 회귀한다.

셋째 상대주의적 자세를 취해왔다. 즉 모든 종교의 궁극적 실재와 목적은 동일하나 신앙방법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절대적 상대주의'적 입장이다. 아무리 모든 문화적 상대주의를 인정한다 하여도 그것은 복음의 유일성을 포기하지않는 "상대적 상대주의"이지, 기독교의 본질을 포기하는 "절대적 상대주의"는 결코 아니다.

네째 복음주의자들의 견해로서 "대화적 자세"를 기독교회는 견지해왔다. 이는 복음의 유일성을 포기하지 않은채 타종교와의 접촉의 가능성과 대화의 가능성을 인전하는 "상대적 상대주의"의 입장이다. 대화의 내용을 그리스도로 삼고 타종교인을 그리스도에게로 복종시키기 위해 그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어야 보다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타종교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복적으로하는 대화는 없을 수는 없지만 전도 그 자체는 역사적, 성서적 그리스도를 구주요 주로서 선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개인적으로와서 하나님과 화목함을 얻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타종교의 신자를 단지 비 그리스도인으로 보지않고,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거나, 전도의 의미를 "비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이니 되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종교에 있어서 충실한 종교인이 되게하는 것"으로왜곡하는 어떠한 혼합주의적 사고도 배척되어야 한다.

타종교와의 대화는 그 타당성과 가능성이 존재한다. '신의식', '화', '간의 필요'(needs), 인간의 공통관심'(Common Interests)등을그 대화를 위한 접촉점(Point of Contact)으로 삼아 궁극적으로 복음을 통해 개종시키는 것이 대화의 의미이다. 즉 접촉점 그 자체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은 없다. 오직 복음만이 그 능력을 소유한다. 또한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닌 비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키고, 그 개종의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대화가 긍정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관한 어느정도의 지식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이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거부한다.... 또한 여하한 형태의 혼합주의와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어떤 이념을 통해서든 동일하게 말씀하신다는 뜻에서 진행되는 대화(Dialogue)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시키므로 거부한다.



타종교안에 기독교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접촉점은 존재한다. 따라서 그들과의 대화는 가능하다. 그러므로 기독교회는 이 접촉점을 구체화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접촉점과 대화자체가 복음이 되거나, 구원의 능력이 되지는 못한다. 언제나 복음의 유일성과 보편성, 하나님의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은 균형있게, 동시에 강조되어야 한다.



II. 웨슬레(John Wesley)의

구원론의 구조





웨슬레시대는 근대과학의 발달과 산업혁명의 발생에 의해 물질생활이 전례없이 풍요하였다. 정치혁명, 신대륙의 발견, 중상주의의 영향으로 급진적, 비판적, 실험적 사고가 발달하였고, 이로인해 기존의 전통사고는 도전받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물질적, 도덕적으로 진보한다는 신념이 싹텄고, 이로인해 모든 가치를 상대화시키는 상대주의적 사고가 발달하였다. 또한 주지주의, 도덕주의, 신비주의등을 시대적 특징으로 말할 수 있다.

18세기의 영국교회는 칼빈주의적 경향이 강했다. 계몽정신은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의 연속성을 주장하게 하였다. 이신론(Deism)은 창조주와 심판주를 분리하게 하였고, 어떠한 초월적인 힘이나 사건을 인정하지 않았다. 캐논(W. Cannon)은 웨슬레 당시의 이신론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7세기와 18세기 종교가들은 ①계시와 이성을 조화하기 시작했다. ②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계시의 가능성과 전통적 초자연주의에 대하여 질문을 제기하며, ③ 마침내 신앙을 이성에 예속시키는 일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영국교회는 교인을 지도함에 있어서 성례전을 강조하였다. 성례전을 구원의 중요한 선행으로 여겨졌다. 교회의 성직매매와 교역자의 윤리적 타락이 교회의 세계에 대한 신뢰성을 상실케 하였다. 일반대중의 무지와 빈곤은 부도덕한 사회를 만들고 있었고, 노예매매, 음란, 혹세, 창기, 폭행등의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웨슬레는 성장했기 때문에 초기의 그의 신앙과 신학은 공교회적인 경향이 강했으나, 1738년도의 올더스게잇 회심이후 복음주의적 신앙과 신학을 지니게 되었다. 웨슬레 신학의 특징은 그가 이신론자들에게 던진 세가지 질문과 명제속에 잘 나타나 있다.



①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

② 참되고 순수한 기독교란 무엇인가 ?

③ 기독교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가장 확실하고, 알기쉬운 증거는 무엇인가 ?



이러한 명제는 역사적 기독교의 진리성을 순수이성에 의해 결정하려는 이신론자들과는 달리 철저하게 그리스도인의 신앙체험에 의해 확인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던 웨슬레의 신학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이때의 신앙체험은 그리스도가 그리스도교회의 구심적 영역안에서 일어나는 한 개별적 사실로서의 종교경험이며, 이 종교경험을 웨슬레가 신학의 자료로 사용함으로써 그는 사색적, 철학적, 인본주의적 종교를 극복하였다.

웨슬레신학의 또다른 특징은 '신앙과 실천'의 종합이다. 웨슬레는 신앙의 본질을 실천적인 삶속에서 찾으려했다. 또한 실천의 동기와 원리를 하나님을 향한 신앙속에 두고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말과 행동, 이성과 실천, 성서와 체험등을 하나로 연결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웨슬레신학의 특징은 그의 찬송시집의 서문에 잘 나타난다.



고독한 종교는 찾아볼 수 없다. '거룩한 간부'라는 말이 복음과 양립할 수 없듯이 '거룩한 은자'라는 말도 복음과 양립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회적이 아닌 종교를 알지 못한다. 사회적 성결이외에 다른 거룩함은 없다.



따라서 웨슬레의 '성결'사상은 복음의 현재적 실천의 중요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동시에 복음과 구원의 현재성, 객관성이 그 미래성 주관성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윤리적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웨슬레 신학의 최대의 강점은, 또한 웨슬레 자신의 삶의 특징은 '선교적'이라는데 있다. 자신의 회심체험을 기반으로하여 그는 복음과 실천을 창의적으로 종합하였고, 그 복음의 진리됨을 힘을 다해 전하였다. 그래서 그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 외에는 아무일도하지 말라"고 가르쳤고, "죄인을 데려와 회게하게 하는 일에 자신이 쓰여질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했다. 또한 이러한 선교적 사명을 잃어버린 "꼅데기 뿐인 교회"를 경계하였다. 이러한 웨슬레 신학의 선교적 의의에 대해 조종남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첫째, 최근에 이르러 웨슬레에 대한 관심과 그에따른 연구가 날이 갈수록 고조되어 가고있다.

둘째, 지난 1974년 7월 스위스 로쟌에서 있었던 세계복음화대회의 신학적 성격이, 참석자들과 발제자들의 신학적 배경과는 달리 웨슬레 신학적 성격을 띄었다.

세째, 웨슬레의 선교운동이 이룩한 놀라운 구원의 역사 자체가 너무도 놀랍게도 혁명적인 것이었다.



웨슬레 신학은 현대에 있어서, 특히 현대 선교에 있어서 재강조되어야 한다. 이는 웨슬레신학은 위에서 밝힌 몇가지 특징만으로도 현대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웨슬레 신학의 이러한 특징은 특별히 그의 구원론속에 잘 나타나 있다. 본 장에서는 그의 구원론의 여러 중요신학을 기술하고자 한다.



A. 하나님의 은총



웨슬레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에 의해 창조된 죄없는 존재였음을 긍정한다. 그래서 원초적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었다." 또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 곧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서 다 어느 피조물 보다도 뛰어난 존재였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림으로서 본래 지녔던 원의(原義)를 상실하였다. 이로인해 인간은 "많은 악덕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후의 모든 실존적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악덕을 지닌 타락한 존재이며, 죄책과 형벌을 지닌 존재가 되었다. 동시에 자신이 지녔던 자유의지까지 상실한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므로 스스로 구원에 이를만한 어떠한 가능성도 다 상실하였고, 위로부터의 도움 곧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웨슬레는 인간의 "전적타락"(Total depravity)과 "하나님의 은총"(Grace)이라는 개혁자들의 전통위에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웨슬레는 하나님의 은총이모든 실존적 인간과 모든 그리스도인의 전 삶에 역사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은총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구원의 과정전체에 나타난다. 의인(Justification)이전의 모든 실존적 인간에게 역사하는 "선행은총"(Prevenient Grace), 실존적 인간의 죄책을 제거하는 "의인은총"(Justifying Grace), 의인된 그리스도인의 부패성을 이기게하는 "성화은총"(Sanctifying Grace), 그리고 인간의 모든 허약성과 제약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영화은총"(Glorifying Grace)은 웨슬레의 은총개념의 구조가 인간의 전생애와 관련되어 있고, 특히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와도 긴밀이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웨슬레의 은총관의 특징은 선행은총에 있다. 타락한 인류전체에게 공통으로 역사하고 있는 은총, 즉 의인(Justification)이전의 모든 인류가 하나님께 받고 있는 은총이 선행은총이다. 전적으로 타락한 자연적 인간으로하여금 그 원죄의 죄책에서 벗어나게하는 것이 바로 이 하나님의 선행은총(Prevenient Grace)이다. 인간은 이 선행은총에 의해 상실했던 하나님의 형상과 자유의지를 부분적(部分的)으로 회복되었다. 따라서 실존적 인간은 모든 하나님의 선행은총 아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고,(We can Work) 또한 응답해야만 하는(We must Work) 책임적 존재이다. 다시말해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에의 초청에 응답할 수 있기 때문에 회개하며, 믿어야만 한다. 결국 인간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응답하지 않기때문이다. 웨슬레의 구원론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주도되나, 인간의 책임을 동시에 강조하는 것이다.



그의 선한 기쁨에 의해 그대 안에서 뜻하시고(will) 행하시도록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대 안에서 역사하시므로 그대는 역사해야만 한다 (빌 2:12-13)



이러한 웨슬레의 은총관은 복음에 있어서 신.인 교호작용의 신비를 해결한다. '은총과 자유의지', '율법과 복음', '신앙과 신천'등이 이 선행은총의 교리안에서 종합되고 발전되고 있다. 이에대해 스타키(L. M. Starkey)는 "복음적 신인 협동설"(Evangelical Synergism)이라고 불렀다.

한편 이 선행은총은 예수의 구속사에 근거를 둔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은 모든 실존인간의 오성과 자유 의지의 힘을 다시 새롭게 하였고, 이로인해 인간 경험속의 도덕생활과 그 윤리성을 제공한다. 따라서 웨슬레의 선행은총론은 인간의 심리적, 도덕적 행동을 가능케하며, 하나님을 예비적으로 발견함으로서 구원에 이르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가 되게한다. 이렇게볼때 웨슬레에게 있어서 인간의 구원이란 어떠헌 법적인 선언 이상의 인간의 도덕적, 사회적 책임을 포함하는 전인구원(全人救援)의 성격을 지닌다.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의역사는 온 세계안에 작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으로하여금 지금 여기서 자진하여 기쁨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나누어 갖기를 원하신다는 그 사실은 기독자의 실존적 책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 영적, 윤리적 삶의 갱신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힌슨(Leon O. Hynson)은 "웨슬레는 세계를 긍정하고 있으며, 인간화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웨슬레의 윤리는 법의 구조에 있어서 ... 하나님에 의해 지배되며, 우주안에서 갖는 자유와 책임의 특징을 지닌 약속의 윤리"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웨슬레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긍정과 낙관은 양자의 본래적인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양자의 가능성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한다. 따라서 세계자체에 목적을 부여하고, 그것이 본래부터 구원의 능력을 소유한 것으로 여기는 모든 자연신론은 웨슬레에 의해 배격된다. 동시에 인간 자체의 능력을 낙관하는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 역시 배격된다. 웨슬레의 세계와 인간의 낙관주의는 본질적으로 은총의 낙관주의이다. 특별히 인간의 책임성의 강조와 하나님과의 상호작용의 가능성 및 당위성은 모든 정적주의나 신비주의를 극복한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의 능력이 회복되어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고, 응답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며, 부분적인 것이기때문에 인한 것이며, 부분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선행은총외에 구원에 이르게 하는 또다른 은총을 요구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을 의롭게하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B. 의 인 (Justification)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에 의해 부분적이지만 하나님을 발견하고 응답할 수 있게 된 인간은 아직은 하나님에게 받아들여 질 수 없는, 구원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불충분한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인간이 구원에 충분히 이르도록 역사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깨닫게 하는 은총'(Convincing Grace)이며, '의인케하는 은총'(Justifying Grace)이다. 이 은총에 응답하는 자만이 의롭게 되어 하나님께 받아 들여진다. 이때 '의인'(Justification)이란 "사망선고를 받은 죄인을 생명으로 옮겨놓는 하나님의 선언"을 의미한다. 웨슬레는 이 의인(義人)의 조건으로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의 대속, 그리스도를 믿는 참되고도 산 믿음"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대속을 선행적으로 받아 원죄의 모든 죄책에서 벗어나게된 실존적 인간은,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총'(Convincing Grace)에 의해 자신의 죄와 죄인됨을 깨닫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돌아서는 '회개'를 하게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실과 능력을 확신하고 자신을 그에게 맞기도록 신뢰성을 갖게 되는 '믿음'의 사람이 된다. 아무리 하나님의 선행은총에 의해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고, 행한다 하여도 그 선행은 결국 인간을 의롭게 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이... 행위에 의해 의인될 수 없으며... 믿음에 의해 (하나님의 의는) 향유된다... 그러므로 신앙은 의인의 필수조건 입니다... (롬 3:28)



이러한 '오직 믿음'만으로의 구원은 1738년의 올더스케잍 사건이후에 형성된 교리이다. 올더스케잍 회심체험 이전에 그의 구원관은 '선행'을 구원의 조건으로보는 카톨릭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모든 봉사와 사역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하기위한 것이었다. 의무감과 자아탐구의 관심이 그의 행위의 동기였다. 그러나 회심체험 이후 그의 봉사와 선행의 동기는 변했다. 구원을 받기위한 자의식적 행위가 아닌, 구원을 받은 존재의 감사와 사랑의 자발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사랑을 낳았고, 이 믿음에서 성숙한 사랑이 선행을 하게 되었다. 즉 선행이 구원에 이르는 조건은 될 수는 없지만, 믿음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사랑과 선행'의 삶이다.

이러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웨슬레 구원관의 현재적 최종목적이다. 사랑에 의한 선행은 의인속에 통합되며, 의인도 그것이 출발시켜놓은 모든 행위로부터 분리되어 존립하지 않는다. 의롭게하신 하나님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관심을 가지신다는 것은 "내가 책임질 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웨슬레의 의인관 속에는 '믿음'과 '선행'의 창조적 긴장이 있다. 양자가 분리되지도, 흡수.통합되지도 않고 그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믿음에 의한 의인을 설교하는 이보다 더 나아가 믿음의 온갖 열매와 보편적인 거룩함을 역설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 전체를 선포하지 않는 사람이며 결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가 아니다.



결국 웨슬레의 의인관에서는 "첫째, 객관적 은총(forensic Grace)만을 강조하여 내세를 바라보는 모라비안 교도의 정적 주의와 루터교적 신비주의가 극복되며, 둘째, 실제로 공동체와 은총의 수단을 등한히 하고 인간의 내적인 빛만을 바라보는 그의 스승 로우(William Law)의 '합리주의적 신비주의'가 극복된다". 따라서 웨슬레의 의인관은 복음의 총체성(Totality)을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러므로 웨슬레의 의인관은 기독교의 전체 범주속에서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현대의 사변화된 신학과 기관화된 교회속에서 그 생명력과 사회적 신뢰성을 회복시켜주는 통찰있는 지식이 될 것이다.



C. 성 화 (Sanctification)



웨슬레의 구원은 '현재적 구원'과 '미래적 구원'으로 구분된다. 의인과 성화는 현재적 구원이며, 영화(Glorification)는 미래적 구원이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구원의 현재성과 미래성은 동시에 강조되며, 또한 양자가 서로에게 통합되지 않고 그 적절한 관계를 유기적으로 맺어가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사건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에 의해 완성될 뿐이다. 의인과 성화의 사건은 하나님에 의해 우리 인간이 응답해야 할 것이 요청된 영역이다. 따라서 하나님에 의해 부름을 받고, 응답한 기독교인과 기독교회는 의인과 성화의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

현재적 구원에 있어서 의인과 성화는 서로를 배척하거나 어느 하나로 흡수되지 않는다. 자기의 영역을 지키면서 서로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또한 현재라는 시간속에서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양자는 충분히 구별된다.



그들 (영국교회 성직자들)은 의인을 성화와 동일한 것, 또는 의인을 성화의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다. 나는(웨슬레 자신) 의인은 성화와 완전히 구별되는 것으로 믿으며, 또 성화  의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믿는다.



웨슬레는 불(Bull)감독이 그의 저서 [사도적 조화] (Harmonica Apostolica)에서 "최초의의인과 최종적 의인을 구별하고서, 내적.외적인 선행이 전자의 조건은 되지않으나 후자의 조건은 된다."는 진술에 동의한다. 그러므로 웨슬레에게 있어서 의인과 성화는 충분히 구분(Distinction)되나 양자가 분리(Separation)되지는 않는다. 양자는 정당한 자리에 놓여져야 하며, 동시에 양자의 정당한 관계가 긍정되어야 한다. 본장은 웨슬레의 성화를 의인과 관계하여 그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1. 의인(Justification)과 성화(Sanctification)의 관계성



의인과 동시사건으로서 신생(New Born)의 교리는 웨슬레의 의인과 성화간의 차이설명을 위해 중요하다. 의인의 사건이 법률적 의미를 지니는 반면, 신생은 윤리적 의미를 지니며, 의인이 자범죄의 죄책에서 해방되는 것인 반면, 신생은 자범죄의 부패성을 이기는 것이다. 따라서 신생은 성화의 단계에 있어서 초기에 속한다. 특히 신생의 표적인 "믿음, 사랑, 소망"은 웨슬레의 구원신화의 확대된 의미를 보게한다. 즉 웨슬레의 구원의 구조가 법률적인 동시에 윤리적이며,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며,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이고, 내면적인 동시에 외면적이라는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의인과 성화는 구분된다. 의인이 우리를 위해(for)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반면에 성화는 우리 안에서(in)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또한 의인의 사건은 순간적이지만, 성화는 의인 이후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과정에 걸쳐 계속된다. 이러한 양자간의 차이에 대해 린드스트롬 (Lindstr m)은 "의인은 본질적으로 객관적인 변화이며, 죄로부터의 구원을 포함하지만, 성화는 주관적인 변화요, 인간 자신의 현실적인 변화이며, 죄의 권세와 그 뿌리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비교한다.

웨슬레의 구원의 구조는 확실하게 분화되어 나타난다. 또한 구원의 의미가 총체적인 동시에 일련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점진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대해 러넌(D. Luynyo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웨슬레가 '최종적 의인'이라는 말을 사용할때는 처음의인과 다른 기초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에 의한 칭의는 성화의 전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위한 유일한 근거로 남는다. 새로운 점은 의인의 본래적인 목표, 혹은 목적(Telos)의 수정이다. 의인은 더이상 일차적으로 천국(내세)을 지향하지 않는다. 방향이 역전된 것이다. 천국은 이땅에로 끌어 내려지는데, 유토피아적 이거나 휴머니즘(Humanism)적인 형태로서가 아니라 의인이 성화를 통해 이 세상의 삶의 재생을 위한 하부조직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끌어내려 진다. 따라서 책임의 문제가 의인으로 끝날 수는 없다. 그이상 책임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의인을 종말과 동등시하는 것이며, 역사를 전락시켜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성화의 과정은 역사를 정화하는 것으로서 마지막날에 설 수 없는 사회나 개인적인 삶의 요소들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결국 의인은 의인으로부터 기인하는 모든 것속에 흡수되고 통합되는 것이다. 의인은 그것이 출발시켜 놓은 역사가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 웨슬레의 의인과 성화의 관계성을 설명한다. 결국 의인은 성화의 근본적인 기초이며, 성화를 이루는 힘의 근원이다. 성화는 의인의 목적이며, 의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형태(Life Style)이다. 그러므로 참된 구원이란 영적인 동시에 육체적, 정신적인 것이며, 미래적인 동시에 현재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웨슬레에게서 발견 할 수 있다.



2.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의인의 조건으로 회개와 믿음을 웨슬레는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믿음은 성화의 조건이기도 한다.



나는 공석에서나 사석에서난 우리들이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것과 같이 성화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다고 계속증거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이 성화의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이 유일한 조건이며, 또 성화를 위해 충분한 조건입니다.



그런데 이 믿으믄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을 통해 구체적으로 역사하는 실제적인 힘을 지닌 실천적인 믿음입니다. 따라서 성화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졌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이 사랑은 완전한 사랑을 향해 성화를 이루어가며, 동시에 이웃을 향해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웨슬레의 성화론의 절정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있다. 그것은 종교자체이며 복음의 목적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의인에 그 뿌리를 둔다. 언제나 이웃을 향한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전제로 할때 그 의미를 상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웃사랑은 하나님 사랑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웨슬레의 성화론이 관게의 수평성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지만 여전히 수직적 관계를 상실하지 않고 종합되고 있다.



믿음은 ... 거룩한 사랑을 회복시키는 위대한 수단이다. 본래 인간은 거룩한 사랑속에 살도록 창조되었다. 비록 믿음 그 자체는 가치가 없을지라도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사랑의 법을 다시 새롭게 수립하는 목적을 달성하게 만든다.



이렇게 볼때 웨슬레에게 있어서 '믿음, 사랑, 성결'은 하나이다. "성결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범위는 단순히 영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좀더 포괄적으로 규정 되어야 한다. 성령의 열매를 통해 구체적으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



믿음자체, 곧 그리스도인의 믿음,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자의 믿음, 하나님을 믿는 활동적인 믿음만이 여전히 사랑의 시녀이다... 그렇다. 믿음의 영광이 거기에서 나와 사랑하게 만든다. 믿음은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위대한 잠정적 수단이다.



이 믿음은 살아있는 것이다. 분주하게 활동하는 능력이 있다. 믿음은 끊임없이 선행을 하지않을 수 없다. 이 믿음에 의해 사랑을 증진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하는 사랑은 이웃사랑으로 인도된다.



믿음은 한가지 힘과 작용을 갖는다. 행함은 또 다른 작용을 갖는다. 믿음의 힘과 작용은 행함 전에 있다. 그리고 믿음은 행함과 함께 역사한다. 행함은 믿음에 생명을 주지않는다. 그러나 믿음이 행함을 낳는다. 그리고 믿음은 행함에 의해 온전케된다. 믿음은 행함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행함으로 인하여 믿음이 온전케 된다.



믿음으로인해 생겨나는 선행은 경건의 일이다. 그 속에는 기도, 성만찬, 성서읽기, 금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 경건은 개인적, 내면적 경건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역사하는 경건은 자비의 일이다. 감옥에 있거나, 병들었거나, 외롭거나, 헐벗었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영혼과 몸을 돌보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이요 외면적 경건이다. 성결은 내적인 사랑과 외적인 사랑으로 이해하는 웨슬레는 선행을 경건과 자비의 일로 이해하였다. 즉 의미있는 선행은 양자를 모두 동시에 충족시킨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회적이 아닌 종교를 알지못한다. 또 사회적 성결이 아닌 성결은 없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최고이다.



웨슬레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개인적 성결과 사회적 성결을 함께 이룰 수 있는 진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결은 어느 한 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순간순간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 이 성결의 상태는 지속될 수 있다. 비록 하나님의 '거룩케하는 은총'에 의해 순간적으로 끌어올려지는 차원이 있다 할지라도 성화는 언제나 점진적인 것이다.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은 순간부터 은혜안에서 성장하는 점진적인 성화가 있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보면 거기에는 또한 순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즉 무엇이 있는 마지막 순간과 무엇이 없는 처음순간이 있어야만 한다.

성화의 윤리에 있어서 문제는 완전성에 대한 그릇된 생각에 사로잡혀 '이미 도달했다'는 느낌을 갖고, 자기만족에 빠지는 위험이다. 과도한 영적 심리화는 기독교 사회윤리를 상실케한다. 따라서 가장 거룩한 성인일지라도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필요로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번에 성결의 보따리를 안겨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순간순간 성결을 공급받지 않는다면 그들은 거룩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웨슬레는 도덕폐기론(Antinominism)과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를 극복할 수 있었다. 웨슬레의 성화교리는 한 그리스도인과 기독교회의 신뢰성을 회복케한다. 기독교 복음의 생명력을 이 세계속에 불어넣는 힘이된다.



그대들 다른 종파들이여, '보라, 여기 그리스도가 있다.' 말하는 그대들이여 그대들보다 강한 입증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는 곳을 내게 보여주시오. 그들은 주장한다. 슬프도다 ! 그대들은 입증할 수 없다. 그대들은 사랑의 순수한 표를 갖고 있지 않다.



V. 웨슬레(John Wesley)의

구원론의 선교적 의의





웨슬레는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비젼이 있었고, 헌신된 삶을 통해 평생을 전도인의 일을 행하였다. 또한 그의 동료들에게 "여러분의 할 일은 한가지 뿐입니다. 곧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라고 권면하며 설교했다. 따라서 그는 자연신교들처럼 사변적인 논쟁을 경계하였고, 생활속에서 성경의 원리를 실천하는데 관심을 두었다.



여기에 내가 각별히 바라는 것이있다. 첫째로는 얼굴만을 하늘로 향하고 있는자, 곧 형식주의에 빠져 마음의 종교에서 이탈된 단순한 의식적 종교를 경계하기 위한 것이요, 둘째로는 마음의 종교와 사람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아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율법을 무효하게 만들어 마귀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웨슬레는 '신앙과 실천'을 하나로 보았다. 또한 신앙과 실천의 근본적인 토대를 성경에 둔 '한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선교적이었으며, 그가 속한 교회가 기관화되어 선교적 열정을 상실하게 될까봐 고민하였던 전도자이었다. 더욱이 단순한 마음의 종교나 사변적인교리로 전락하는 것을 염려하였고, 주어진 세계를 변화시키고자한 '자의적 개혁자'였다. 그는 그의 생애를 통해 사회의 개혁과교회의 갱신, 성서적 성결을 몸소 실천했고, 가르쳤다.

이러한 웨슬레의 신학은 현대 선교학의 잘못된 극단적 사고를 극복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책임을 정당하게 강조한다. 신과 인간의 연속성과 불연숙성이 균형있게 강조된다. 특히 현대 선교의 '대화. 복음전도. 사회참여'등의 대립된 개념들과 그 관계성들이 그의 신학속에서는 질서있게 종합된다. 본 장에서는 웨슬레의 구원신학속에 나타난 여러 신학적 개념을 현대 선교의 제반 갈등과 연결시켜 그 해결점을 찾고자 한다.



A. 웨슬레의 은총관의 현대 선교적 의의



웨슬레의 은총관은 그의 구원론의 축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인간의 전체적 삶속에 언제나 그 주도권을 지니고 역사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범죄함을 인하여 모든 분별력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통해 인간의 원죄의 죄책을 해결하시고, 완전히 상실했던 하나님의 형상과 자유의지를 부분적으로나마 회복시키셨다. 이것이 모든 실존적 인간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이며, 이 선행은총에 의해 인간은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고, 또 응답해야하는 책임적 존재가 되었다. 즉 구원의 질서에 있어서 인간의 오성과 의지, 선택의 자유의 힘이 새로와졌고, 도적인 인간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인간은 회복된 양심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구원의 길로 돌아설 수 있는 가능성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선행은총만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단지 불완전한 상태로의 가능성만을 제시할 뿐이다. 인간이 완전한 구원에 이르기위해서는 하나님의 또다른 은총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깨닫게하는 은총'(Convincing Grace)과 '성화케하는 은총'(Sanctifying Grace)이다. 전자는 실존적 인간을 '의인'(Justification)케하며, 후자는 '완전한 성화'에 이르게한다. 종국적으로 인간의 모든 제약성과 한계성은 하나님의 '영화케하는 은총'에 의해(Glorifying Grace)제거된다. 이러한 웨슬레의 구원의 구조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총의 현대선교적의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회로 하여금 세계를 긍정하게하고, 세계속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것을 가르친다. 세계내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자신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거울이다. 또한 전적으로 선한것이다. 비록 인간의 범죄를 인해 결함을 갖게 되었으나 여전히 아름답다. 죄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내에 잠재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교회는 세계를 긍정해야한다. 세계내의 모든 불의에 대해 과감히 도전하고 개혁해야 한다. 그러므로 구속사를 세계사로부터 불리하여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여전히 이 세게는 구속의 때를 탄식함으로서 기다리는 결핍된 세계이기 때문에 세계사가 신성시 되어서도 않된다. 세계사와 구속사는 하나님의 경륜속에서 종합되어야 한다. 기독교 선교는 그렇기때문에 세계내의 죄와 전쟁, 기근과 압제, 환경오염과 폭력등에 대항하여야 한다. 도피하거나 무관심해서는 않된다. 도리어 책망하고 바르게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은총은 기독교회로 하여금 '인간화'(Humanization)를 긍정하게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인간 본연의 존엄성이 존재함을 말해준다. 비록 타락으로 인해 그 본래의 존귀함을 상실했었으나, 하나님의 선행은총에 의해 그 가치가 부분적으로라도 회복되었다. 따라서 은총아래에 있는 인간은 어느정도는 선하며,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다. 따라서 기독교회는 인간사회의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권념에 참여해야한다. 사라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기 때문에 인종.종교.피부.문화.계습.성.연령의 구분없이 존중되어야 한다.

셋째, 웨슬레의 은총관은 그리스도의 보편성과 유일성을 기독교회가 동시에 강조해야 할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선행은총이란 그리스도의 대속의 결과이다. 이 선행은총은 모든 실존적 인간에게 동등하게 역사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보편성을 갖고있다. 그러나 선행은총하의 실존인간은 아직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이는 여전히 자신의 불의로써 진리를 억압하고 있기때문이다. 오직 그가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할때만이 그는 의롭게 되어 하나님께 열납되는 것이다. 인간은 여전히 자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고 하나님의 '확신케하는 은총'(Convincing Grace)에 의해 구속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 14:6).

기독교회가 아무리 예수를 '세계의 구주'로 전한다 할지라도, 반드시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궁극적으로 구원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모든 종교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원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회는 예수는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유일한 이름임을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전해야 한다 (행 4:12). 이렇게 볼때 현대의 '만인 구원론' ( Universalism )과 '혼합주의' ( Syncretism ) 그리고 '상대주의' (Relavatism)는 웨슬레의 은총관에 의해 배격된다.

네째, 웨슬레의 은총론은 기독교회로 하여금 '타종교와의 대화'를 긍정하게 한다. 하나님의 선행은총은 인간의 '양심.도덕.지각능력.자유의지'등을 어느정도 회복시켰다. 따라서 인간은 어느정도는 선하며, 그 판단력도 어느정도는 정확하다. 따라서 기독교와 타종교사이에 '신의식.문화.도덕.인간의 기본 욕구. 인간의 공통적 흥미'등의 유사성이 존재함을 인정해야하며, 이러한 것들을 내용으로하여 대회에 참여함으로서 기독교 선교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긍정해야 한다.

우리는 자연에 나타난 일반계시를 통해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관한 어느정도의 지식이 있음을 인정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인고로 인간문화의 어떤것은 대단히 아름답고 선하다... 그리스도의 전도자는 겸손하게 자기를 전체로서 비어버리기를 힘써야한다.



다섯째, 웨슬레의 은총관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함으로서 구원에 있어서 신과 인간의 연속성을 현대 기독교회에게 가르친다. 비록 하나님이 일하시고, 또 인간으로하여금 일하게 하셨기 때문이기는 하나 인간은 하나님에게 응답할 수 있는 통찰력과 응답해야하는 책임을 갖게 되었다. 동시에 인간의 전체적인 삶이 하나님의 은총아래서 세계를 향해 책임있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을 말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러한 신과 인간사이의 연속성의 존재는 인간자체의 능력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낙관이기때문에 기독교선교에 있어서 성령에 의해 통제받지 않은 모든 세속적인 방법은 거부되어야 한다. 또한 복음을 제거한 사회행동은 배척되어야 한다. 이로보건데 사람과의 화해는 하나님과의 화해에 종속되며, 정치적 해방은 영적해방을 전제해야 한다. 새로운 인간성의 창출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회학적, 심리학적 치유는 성령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웨슬레의 은총관은 인간의 책임성과 가능성을 긍정하면서도 철저하게 '무신론적 인본주의' 신학과 선교를 반대한다. 또한 이러한 사회혁명이나 인간해방운동이 그리스도를 떠나서 이루어지는 것을 반대한다.

여섯째, 웨슬레의 은총관은 선교의 가능성과 역동성을 제공한다. 선행은총에 의해 회복된 양심과 도덕 및 오성과 자유의지는 인간으로 하여금 복음에 응답하도록 작용한다. 이러한 확신은 복음의 본래적 능력과 더불어 기독교 선교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하나님에게 응답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복음을 전할 용기를 갖게되는 것이다. 설득될 수 있기때문에 기독교인은 복음을 설명하며, 깨달을 수 있고, 돌아설 수 있는 존재이기때문에 기독교회는 복음을 선포한다.

이상과 같이 웨슬레의 은총관은 현대선교의 여러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웨슬레는 중요하다.



B. 웨슬레의 의인(Justification)의 선교적 의의



의인(Justification)이란 죄인을 생명으로 옮겨놓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종교의 현관인 '회개'와 종교의 문인 '믿음'을 통해 사람은 의롭다 인정받는다. 웨슬레자신도 올더스게잍 회심체험이후 '누가 나를 구원할 것인가 ?'라는 인간 실존의 본질적 소외로부터 구원받았다. 사실 회심이전 웨슬레 자신은 구원받기위해 선행과 봉사의 일을 하였으나 이 본질적인 소외는 해결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결국 자신의 죄와 죄인됨을 깨닫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돌아섰을때,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확신하고 예수를 신뢰하였을때 모든 소외에서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 의인과 동시사건을 웨슬레는 신생이라하였다. 이 신생은 인간의 죄된 부패성을 극복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믿음. 사랑. 소망'은 신생의 표적으로서 의인의 범위가 사회성까지 포함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그거은 세상에 대한 침묵이나 도피가아닌 자의식적인 개혁에로의 참여를 뜻한다.

웨슬레의 의인관의 현대선교적 의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웨슬레의 의인의 교리는 복음의 유일성을 확증한다. '의인'되지 못하면 종교인이 될 수 없기때문에 모든 실존적 인간은 의인을 받아야만 한다. 즉 실존적 인간은 아직은 자신의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회개하여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과, 자기의 능력으로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교만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를 '윤리적 종교'로 전락시킨 모든 상대주의 신학과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만인 구원론은 배척되어야 한다. 현대에서도 기독교회는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의 복음을 타협해서는 않된다.

둘째 의인의 교리는 현대선교에 있어서 '하나의 메시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죄의 실재. 죄의 형벌.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승천. 재림 그리고 심판이라는 일련의 기독교 복음은 시대를 따라 변할 수 없는 절대진리임을 깨달아야 한다. 기독교회는 성서적, 역사적 그리스도만이 구주요 주되심을 선포하여야만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개인적으로 나아와 하나님과 화목해 질 수 있다는 복음의 능력을 확신하여야 하낟.

세째 의인의 교리는 기독교 선교의 목적을 분명히 한다. 기독교 선교의 목적은 한 개인과 집단을 그리스도께 순종케하며, 그로 하여금 변화된 삶을 통해 교회를 형성하며, 세계속에서 책임있는 존재가 되게하는데 있다. 신앙의 대상이 변한 개인과 집단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변화를 격게되며 모든 환경을 변화시키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선교의 목적은 개종(Proselytism)이다.

기독교 현대선교에 있어서 '타종교인을 더욱 성실한 종교인이 되게'하는 것이 선교의 목적이라는 주장과 타종교 안에도 그리스도와 같은 구원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하는 모든 혼합주의는 복음을 타협한 절충주의이다. 그러므로 세계내에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나 "익명의 교회"등의 개념은 성서적인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네째 의인의 교리는 동시에 신생의 사건을 수반하는 것이므로 참된 구원의 범위를 보다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의인의 사건이 비록 법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하여도 그 사건은 인간의 윤리적,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 변화를 동시에 수반하는 사건이기때문에 의인은 복음의 총체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의 구원은 그의 전인격(Whole Person)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선교는 이러한 총체적인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수행되어야 한다.

한편 의인의 사건이 없이 행하는 모든 사회행동이 결코 복음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인간 본질적 소외가 해결되지 아니한 어떠한 봉사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복음전도와 사회행동의 관계는 전자가 후자보다 논리적으로 우선한다는 사실을 의인이 신생보다 논리적으로 우선하는 웨슬레의 교리에서 배울 수 있다.



C. 웨슬레의 성화(Santification)의 현대 선교적 의의



성화는 웨슬레의 현재적 구원에 있어서 최종적인 목적이다. 그러나 이 성화의 교리는 의인의 교리와 결합되어 있기때문에 양자를 분리하면 '신앙과 실천', '교리와 윤리', '복음과 사회행동'의 분리가 나타난다. 의인은 하나님의 은총에로의 회복이며, 성화는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뜻하기때문에 양자는 인간 실존의 구원의 총체성을 나타내는 두가지이다. 그러므로 양자는 하나의 두 부분이다. 언제나 동시성을 지닌다.

한편 웨슬레는 종교 자체로본다. 따라서 구원에 있어서 현재적 최종목적이다. 기독교인의 완전이 개개인의 목표가 근본적인 희망이 생기며, 동시에 현재속에서 개인적인 변혁의 과정을 지속시켜주는 비판의 날카로움을 갖게한다. 더 나아가 자기의 영역에서 사회적인 영역에까지 개혁을 위한 끊임없는 동기를 유발하며, 보다 완전한 세계를 위한 부단한 변혁을 일으키도록, 참여하도록 자극한다. 결국 이 성화의 교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젼가운데 뚜렷이 나타나는 피조물의 갱신을 가능케하며, 확신케한다.

특히 웨슬레의 성화의 교리는 '초기로부터 완전'에로의 점진적인 과정을 지니고 있다. 한 인격의 변화와 성장은 순간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변화와 환경의 변화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성화의 교리가 주는 개혁에 대한 동기부여는 "하나님의 조용한 사랑과, 상호간의 사랑, 정의, 자비 그리고 진리의 한결같은 실천"을 통해 그 변화에 참여할 것을 가르친다.

웨슬레 성화론의 진수는 '완전한 성화' 혹은 '기독자의 완전'에 있다. 이 기독자의 완전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종말론적인 목표이며, 사회적 차원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기능에 병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의 실현이 인간 노력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끝없는 은총의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전적인 성화는 이세상과 그 삶가운데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또한 현시대에 인간화를 긍정케하는 하나님 나라의 권능이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부족함이 없도록 끊임없이 주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지금 때가 찿다고 생각해보라... 이 땅에서 전쟁이 끝나고... 억압도 없다... 착취도 없으며, 강도질이나 학대, 약탈이나 불의도 없다... 그들 중에는 부족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모든 자기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전한 성화'에 도달한 사람은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며 이 사랑을 현재의 삶속에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상과 같은 웨슬레의 성화론은 현대선교에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

첫째 성화의 교리는 기독교 선교의 범위를 확정한다. 그 논리적 순서에 있어서는 의인이 성화에 우선한다. 그러나 목적에 있어서 성화는 의인보다 우선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회 선교의 목적은 성화를 지향해야 한다. 개인적 성결과 법적인 변화에서 끝이 나는 구원은 반쪽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가 듣는이들에게 '거룩한 삶을 가져다 주는가 ?'를 물어야 한다. 또한 실제로 그들이 얼만큼 변했으며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의인과 성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것이든 동시에(Both / And) 강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의인은 정화를 지향하지만 성화는 의인을 전제로 하기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복음전도는 사회참여를 지향해야하며, 사회참여는 복음전도위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결국 복음화는 인간화를 포함하며, 인간화는 복음화를 전제로 해야한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관게성이 인정될때 기독교회는 복음의 총체성과 구원의 총체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참된 의미의 선교를 수행하는 것이다.

둘째 성화의 교리는 기독교 복음의 신뢰성을 한층 강화한다.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며,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되듯, 그리스도인의 전하는 복음은 그의 거룩한 삶에 의해 그 의미를 강화하게 된다. 만일 복음이 말로만 전해지고 실천적인 사랑이 없다면, 가난한자에게 가진 부를 나누어주지 않거나, 배고푼 이웃에게 먹을 것을 주지않는다면, 혹은 사회의 모든 불의와 악에 대하여 언제나 침묵만 지킨다면, 복음은 더이상 신뢰성을 갖지 못할 것이다. 기독자의 현존은 그의 선포를 듣는 이들에게 의미있게하며, 마침내 그들을 설득하여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자기를 세계를 향하여 개방하고, 그 세계속에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빛으로 소금으로 나타나야 한다. 아무리 사람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며, 사회행동이 곧 전도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모든 영역에 있어서 방향을 제시하며,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셋째 성화의 교리는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확장하며,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속에서 맛보게 한다. 기독교 선교가 종말을 향하고 있으며, 기독교회가 현재와 종말의 경계선에 살면서 종말을 구현한다는 사실은 성서적 성결의 삶을 구현해야하는 교회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다. 결국 성화의 교리는 세계내에서 교회의 존재의미와 그 목적을 성실히 수행하도록 교회를 자극한다.

네째 성화의 교리에 나타난 '점진성'은 세계변화의 방법에 대해 그 성격을 규명케한다. 아무리 세계내의 변화에 그리스도인이 자의식(自意識)을 가지고 참여한다 하여도 '혁명과 폭력'을 통한 급진적 변화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빛과 소금이 되어 자기를 먼저 희생하는 겸손함과, 누룩처럼 사회내의 모든 불의와 약속에 침투하여 종국에는 성서적 성결을 구현하고자하는 인내심을 지닌 '사랑'의 힘으로 그 모든 변화에 참여해야한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이기적이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불의도 기뻐하지 않고, 상대를 향하여 무례히 행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계내에 존재해야하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되, 언제나 사랑과 겸손을 가지고 빛으로 소금으로 누룩처럼 나타나야 한다.

다섯째 완전한 성화에 이르는 길은 점진적은 발전은 물론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순간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며, 이러한 완전의 상태에서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순간적으로 언제나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은 기독교 선교의 완성은 성령님의 사역에 의한 것이라는 성서의 증언을 재 확인케한다. 웨슬레의 구원론의 축은 '은총'이다. 즉 그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고, 믿게하시니 우리는 믿을 수 있고 의롭게 되는 것이며, 거룩케 하시니 우리는 성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구원에 이르도록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 선교는 사람이 아닌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께서 오늘날 복음을 듣는이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아오게하며, 변화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세계내에 참여하여 세계의 모든 압제, 착취, 불의, 폭력등을 제거하도록 권념하신다. 선교는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에 현대의 모든 무신론적 사회혁명이나 유토피아 건설, 그리고 모든 과학주의가 기독교 선교에 참여할 수 없다.



우리는 전도에 있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증거가 절대 필요하며, 따라서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없이는 중심이나, 새로운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



. 결 론





2000년대의 세계인구는 60역에 달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인구의 3분의 1이 명목상 그리스도인이다. 나머지 40억 그 절반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들었으며 그 나머지 반은 듣지도 못하고 있다. 이와같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등한시 되고 있다.

오늘의 세게는 또한 과학기술과 함께 산업화되어가며 경제질서의 변화가 일어났고, 도시화되어가는 새로운 세계문화의 출현이라는 "현대성"(Modernity)의 영향을 받고있다. 이로인해 현대인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게되었고, 이로인해 현대교회는 새로운 선교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첫째는 세속주의(Secularism)이다. 이로인해 교회의 거룩성과 신자의 도덕성 및 신앙이 황폐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초자연적인 사실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현대는 '혼합주의', '종교적 상대주의'등의 위협이 존재한다. 둘째는 도시화이다. 1900년도에는 세계 인구의 9%만이 도시에 살았다. 그런데 2000년에는 50%이상이 도시에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로인해 현대는 비인간화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또한 농촌문제, 환경문제, 교통난 및 주택난등의 새로운 사회. 문화적 위기를 당하게 되었다. 셋째 대중매체의 발달이다. 전파와 영상은 말을 대신하게 하였고, 이로인해 진리와 권위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었다. 또한 인간 대중의 사고가 확실화되었고, 국경이 매체를 통해 무너지게 되었다. 네째 새로운 민족주의 운동이 발흥하였고, 고대 민족종교가 부활되고 있다. 이들은 선교사와 복음에 대해 더욱 냉랭해지며, 거부하고 있다. 다섯째 타종교들은 그 어느때보다 성장하고 있으며 최선을 다하여 포교에 힘을 쓰고 있다. 여섯째 세게의 모든 가치가 다원화되고, 지식의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인간과 세계는 진보하고 있다는 생각은 인간과 세계의 능력을 낙관하게 하였고, 이로인해 절대가치의 존재가 부정되며, 새로운 인본주의가 유행하게 되었다.

교회는 전래없는 부담과 문제를 갖게 되었다. 동시에 선교적 위기를 다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선교신학은 도전을 받게 되었고 심지어 기독교의 정체성(Identity)까지 의문시 되었다. 현대 기독교 선교는 전통적 선교관에 좀더 가까운 복음주의 진영과 모든 과거의 신학적 전제에서 벗어나 새롭게 개념화하고자 하는 에큐메니칼 진영으로 대분된다.

그러나 양 진영의 극단적인 무리를 제외하고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님의 선교를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과거의 교회가 인간과 세계, 그리고 역사와 종말의 현대성을 등한히 하였고, 성과 속, 영혼과 육체, 은혜와 율법등을 날카롭게 구분하려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지녔기 때문에 복음과 구원의 수평성과 포괄성을 상실하였다면, 현대의 극단적인 에쿠메니칼 주의자들은 하나님과 게시, 그리고 종말의 미래성을 인간. 이성. 현재속으로 통합하였고, 세계와 교회의 경계선과 성과 속의 경계선을 제거함으로서 역시 복음과 구원의 수직성과 전체성을 상실하였다.

어느 경우이든 복음의 변형을 본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본질상 존엄성과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창조주와 또다른 피조물로부터 소외되었다. 이 소외가 인간이 격는 모든 한계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죄는 또한 반사회적인 행동을 감행한다. 따라서 죄는 개인성과 사회성을 갖고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구원이란 인간을 이러한 소외로부터 구출해 내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와의 화목은 물론 또다른 피조물과 화목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 방황. 착취. 압제. 가난. 고독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결국 죄를 제거함으로서 이 구원은 이루어지는데 그 범위는 개인적인 죄뿐 아니라 사회적인 죄도 포함한다.

물론 인간은 아직도 이웃을 사랑하고 품위있는 행동을 하며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할 만한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는 죄와 죄책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종류의 자력구원도 불가능하다. 오직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한 회개와 믿음에 의해서만 새창조를 입게된다. 그러므로 어떠한 인본주의(Humanism)나 유토피아적 환상도 거부된다. 또한 세속주의나 만인 구원론과 같은 혼합주의(Syncretism)도 거부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때문에 미래적 종말은 현재적으로 맛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예수의 성육신에서 실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선교는 세계내에서 사회적 현실. 비애와 고통 그리고 압제세력에 항거하며 정의를 위하여 투쟁하는 모든 노력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곧 제도화된 폭력, 정치적 부패, 사람과 땅에 대한 온갖 착취, 가정파괴, 낙태, 마약유통, 인권의 유린과 같은 파괴적인 폭력에 대한 예언자적 지적과 참여를 의미한다. 따라서 언제나 세계사와 구속사는 동시에 하나님의 경륜속에 나타난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열등하거나 우등하지 않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동시에 구원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창조주와 구속주가 분리될 수 없듯이 구속주와 심판주는 분리될 수 없다.

현대 선교의 혼란의 원인은 성서의 권위의 상실에 있다. 성서적 복음은 언제나 개인과 사회, 영혼과 육체등의 전체를 위한 총체적인 복음이며, 성서적 구원은 '현재와 미래', '세게사와 구속사' 전체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구원이다. 예수의 성육신 사건속에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와 '장차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가 공존하듯 기독교인의 삶과 교회의 존재역시 그러하여야 한다. 예수의 삶속에 '현재의 윤리'와 '미래의 윤리'가 하나로 나타났듯이 기독교 선교는 두가지 모두를 현세속에서 구현해야 한다.

이러한 통합이 웨슬레(John Wesley)에게서 나타난다. 그의 은총관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었고, 현재와 미래의 연속성과 하나님과 인간, 계시와 이성의 연속성(Continuity)을 회복시켰다. 따라서 웨슬레에게는 인간화(Humanization)에 대한 강한 충동이 있다.

또한 웨슬레의 의인(Justification)의 교리는 그리스도의 보편성 속에서 유일성을 찾게한다. 또한 복음의 보편성속에서 유일성을 갖게한다. 여전히 기독교회는 세계속에 존재하지만 세계속에 흡수되거나 동화될 수는 없다. 세계로부터 부름을 입은 교회는 이미 세상과는 분리되며, 세상으로 보냄을 받음 교회는 그 본질을 잃지않고 세계에 참여해야 하는 책임적 존재이다. 의인의 교리를 현대 선교에 있어서 교회와 복음의 정체성을 갖게한다.

웨슬레 신학의 진수인 '성화'(Sanctification)의 교리는 의인의 교리보다 그 목적(Telos)에서 앞선다. 즉 성화는 종교자체로서 구원의 목적이다. 의인은 성화를 지향하게 된다. 따라서 웨슬레의 성화의 교리는 기독교 선교의 목적과 방향을 분명하게 한다. 또한 구원의 범위를 더욱 포괄적으로 만든다. 그런데 이 성화의 교리는 단순히 내적, 개인적 차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성화의 상태는 곧 외적인 열매와 사회적 성결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화의 삶은 사는 자는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할 뿐아니라 사회의 변혁과 갱신의 일에 자의식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웨슬레에게 있어서 의인과 성화는 분리되지 않는다. 의인은 그 이후의 모든 삶속에 흡수되어 모든 행위의 전제가 된다. 의인의 순간 인간은 신생이라는 초기단계의 성화를 시작하게 된다. 성화가 의인을 더욱 풍성하게하듯 의인은 성화를 의미있게 한다. 의인과 성화는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이러한 의인과 성화의 관계성은 현대의 '복음화인가? 인간화인가?'의 논쟁이 무의미함을 나타내준다. 또한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우선순위'(Priority)의 논쟁을 의미없게 한다. 즉 구원의 순서에 있어서는 의인이 논리적으로 성화에 우선하기 때문에 의인이 우선이나, 그 목적에 있어서는 성화가 의인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성화가 우선이다. 그것은 '한 본질의 두 특성'(One Substance Tow Character)이다. 따라서 '복음화와 인간화' 역시도 구원이라는 한 본질의 두 속성이며,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한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도 선교라는 한 본질의 두 속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현대세계는 복음을 필요로 한다. 이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을 지닌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딤후 4:2). 이는 듣지못한 이름을 부를 수 없고, 믿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롬 10:14). 예수의 초림과 재림사이를 채워야 하는 선교의 임무를 위임 받음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기독교회는 기도와 성경연구, 그리고 성령의 무기로 무장하여야 한다. 또한 겸손과 섬김의 종의 모습으로 이 세계내에 존재해야 한다. 동시에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좇아야 한다. 그리할때 복음은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져 듣는이와 그의 삶을 변화시키며, 그가 속한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다(살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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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생애


Life of John Wesley


존 웨슬리의 생애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는 1703년 6월 28일 영국 엡워드교구 목 사 사무엘 웨슬리와 아내 수산나의 15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친가의 독실한 종교생활 환경에서 자라나 그 믿음이 신실했다. 그의 어머니는 집안에 [가정학교]를 만들어 열아홉명의 자녀들을 직 접 가르치며 교수과목과 교육방침도 결정했다. 자녀교육의 제일의 목표를 [규칙생활]로 정해 아이들의 방종을 제 재함으로써 착실한 종교교육을 시켰으며 매일 저녁 시간을 정해놓고 개별 상담과 기도도 해주었다. 요한 웨슬리가 위대한 종교지도자가 된 것은 이런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일년에 한번 엡워드교구 목사의 집에서는 [알파벳잔치]라는 것이 있 었다. 이는 자녀가 다섯살이 돼 첫 공과를 배우기 시작하는 날로 첫날은 ABC를, 다음날부터는 창세기를 보며 철자법, 독법, 서법 등을 가르치며 산수, 문법, 역사, 지리도 차례로 가르쳤다. 그러나 요한이 6세 되던해 엡워드 목사관에 불이나 [가정학교]는 잠 시 중단된다. 1707년 2월 7일, 집을 삼킬듯한 불길이 목사관을 휩싸자 식구들은 깜짝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아이들은 형들과 함께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런데 어머니가 그들을 점검해보니 한 아이가 없었다. 그때 [사람살리라] 라는 소리가 목사관2층에서 들렸다. 웨슬리가 창문에 몸을 내밀며 소리치 고 있었다.


아버지가 뛰어 올라갔으나 사나운 불길에 쫓겨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한 농부가 다른 사람의 목마를 타고 올라가 웨슬리를 구해 내려오자 마자 목사관의 지붕이 내려앉았다. 이 위험한 사건을 겪은 웨슬리는 어린 나이였지만 [하나님의 존재] 를 확실하게 믿었고 그의 80여년의 생애동안 [화재]와 [구원]에 대한 인 상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요한 웨슬리는 11세가 되자 런던의 [차터하우스] 중학에 입학했다. 그는 지식의 풍요로움을 위해 열심히 탐구하고 노력했으나 신앙면에 서는 성장하지 못했다. 당시의 신앙생활의 게으름을 후에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외부에서 가하는 억제가 없어졌을때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게을러 졌다. 그래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마저 소홀히 했다.] 그는 6년만에 차터하우스의 교육과정을 마친후 옥스퍼드로 갔다. 웨슬리는 1년에 40파운드의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대학의 그리스도 교회대학에 입학했다. 웨슬리는 재학중 우수한 성적을 얻기위해 밤낮으 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논리가 뛰어나 학우들과 논쟁하면 언제나 상 대를 꺾고 말았다.


1725년 22세때 그는 생애에 큰 전환기를 맞게된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깊이 생각한 웨슬리는 마침내 성직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사람의 눈으로 보아 흡잡을게 없었으나 성직을 맡기엔 부족한 것이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영적경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작은 것이었다. [ 나는 아직 내마음의 성결에 대한 관념조차 갖지 못하였다.


나의 종교생활은 다만 습관에 지나지 않았고 명백한 죄를 범하면서도 뉘우치는 마음이 없었으며 도리어 그 죄에 만족하였다.] 그가 먼훗날 그 때를 회고하며 한 말이다. 웨슬리가 사도직을 걷기로 작정하는데 큰 영향을 받은 책은 토머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와 제레미 테일러의 [거룩한 삶과 죽음] 이다. [하나님의 인도로 나는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게 되 었다. 나는 이책을 읽음으로써 참된 종교는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 는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은 우리의 언행뿐 아니라 우리의 사 상에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표로 본 요한 웨슬리


년 도
월 일
나 이
내 용

1703
6.28


born in Epworth in England

1709
2
6
화재에서 생존함을 "타는 불에서 꺼낸 부지깽이"(스3:2)로 비유

1714


10
런던 챠트하우스 입학

1720


16
옥스퍼드(Oxford) 대학 입학

1724


21
인문학 석사

1725
9.19
22
영국 성공회 목사가 됨(4대째 목사)

1727


24
옥스퍼드 대학 조교수 활동

1729


26
Holy Club 시작됨

1735
10.14
31
미국 죠지아로 선교 출발 , 풍랑가운데 중요한 신앙체험

1736
2.5
32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항 도착

1737
12.2
33
미국 선교 실패 귀국길에 오름

1738
2.1
34
고국 도착

1738
5.24


올드스케이트에서 회심체험

1742




브리스톨에서 속회조직

1791
3.2
88
사망



웨슬리는 이때부터 하루에 두시간 이상을 신앙생활하는데 보냈으며 내적 성결을 위하여 힘썼고 기도도 열심히 하여 그리스도에게 몸바칠 각 오로 살았다. 그리고 이 책으로 말미암아 이전에 갖지 못했던 그리스도인 의 헌신과 성결에 대한 도리를 깨달았다. 웨슬리가 쓴 [그리스도인의 완 전론]의 기본 사상은 아켐피스의 저서에서 영향 받은 바 크다. 또한 제레미 테일러의 [거룩한 삶과 죽음]이란 책은 그가 아켐피스 에게서 얻은 신념을 더 굳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중 한없는 감동을 받았다. 나는 나의 생명 전체 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했다. 내 자신을 자신에게 바친다는 것은 결국 악마에게 바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시기는 웨슬리의 생애에 있어서 큰 전환기였다. 그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중생의 경험은 이로부터 13년뒤에 얻었으나 하 나님과 인류를 위해 몸바쳐 살겠다는 목적을 세우기는 이때였다. 요한 웨슬리가 집사안수를 받은 것은 그가 22세때인 1725년 9월19일 이었다. 옥스퍼드 그리스도교회대학 교회당에 옥스퍼드감독 요한 피터에 게 안수를 받았다. 목사안수는 그로부터 3년뒤에 받았지만 가끔씩 설교를 했다. 그의 설교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당시 설교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술 회했다.



[1725년부터 2년동안 나의 설교는 실패였다. 나는 그때 청중이다. 신자이므로 회개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회개의 도리와 복음의진 수를 설교의 생명으로 삼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대속에대한 신앙을 전파하지 않은 까닭으로 내 설교에는 힘이 없었고 감화력이 없었 다.] 1726년 3월 11일 웨슬리는 링컨 대학의 특대학생이 되었다. 이 대학에 간지 얼마 안되어 그는 희랍어 강사직과 토론회의 심판장 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희랍어 성경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그의 신학사 상을 그들에게 불어 놓어주기에 힘썼다. 또한 주일은 제외한 토론회에서 학생들의 언론을 비평하고 평가해주었다. 그가 문학사의 학위를받은 것은 1727년 이었으나 당시 그는 웅변가로서의 명성이 높았다. 웨슬리의 부친 사무엘 웨슬리는 65세의 고령인데도 엡원교구와 우릇 교수 둘을 맡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혼자서 두 교구를 맡기엔 힘이 벅 차 아들 요한 웨슬리를 부목사로 초빙했다.



웨슬리는 2년 3개월동안 부친 교구에 봉직한후 1729년 옥스퍼드대학 조교수로 피선돼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한편 요한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가 옥스포드 그리스도교회 대 학에 입학한 것은 1726년 그의 나이 20세가 채되지 않아서였다. 그는 남달리 영리하고 비범한 재사였고 형이 오기전부터 교내에서 몇 명의 동지들과 함께 종교모임을 가졌다. 서로 뜻을 같이하는 그의 동지들 과 함께 매일매일의 학과 일정표를 만들고 종교적 의무를 지키며 침식시 간을 될수 있는대로 줄이는등 신앙향상을 위해 많은 시간을 썼다. 그들은 이러한 규칙 생활로 동창학우로부터 [규칙장이들](metho-dists)라는 별명 까지 듣게 되었다.



요한 웨슬리는 옥스포드로 돌아온 후 즉시 동생이 조직한 단체 [신 성구락부] (holy club) 의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1729년. 타락한 조국을 바로잡고자 뜻있는 청년 몇사람이 조직한 [신성구락부]는 신임회장 요한 웨슬리를 맞았다. 회원 네명중 세명은 대 학조교수였고 나머지는 대학재학생이었다. 웨슬리는 이들을 지도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신으로 신중히 하 였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했으며 일반회원들에게 항상 겸손했다. 그 들은 매일밤 모여 기도하고 희랍어 성경과 고전문학을 연구했다. [신성구락부]의 성경연구의 첫 열매는 구제운동이었다. 그들은 부채 자를 방문하고 병자위문을 하는등 여러가지 봉사사업을 펼치게 되었다. 옥스포드 감독의 허가로 그들은 감옥 뿐 아니라 시내의 가난한 가정 도 심방하였으며 무산아동들을 모아 가르치기도 했다.



한번은 남루한 옷 을 몸에 걸친 소녀 하나가 웨슬리에 구걸했다. [너는 대단히 배가 고픈 모양이로구나. 옷은 그것밖에 없니?] 웨슬리는 그 소녀에게 돈을 주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으나 돈 이 없어 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의 서재 벽에는 훌륭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 그림들은 마치 자신을 꾸짖는 것 같았다. [나는 가련한 소녀의 배고픔을 면케 해줄만한 돈으로 내집의 벽을 장식하지 않았는가. 아 - 내 마음엔 공의도 없고 자비도 없다. 이 그림들 은 저 가련한 소녀의 피 값이 아닌가?] 이때부터 신성구락부 회원들은 그들의 수입중에서 생활비를 제외한 잔액 전부를 구제비에 썼다. 웨슬리는 연수입 30파운드를 제외한 2파운드를 내놓았고 이듬해는 60 파운드의 수입중 생활비 28파운드를 제외한 32파운드를 구제비로 썼고 다 음해 역시 90파운드 수입중 생활비 28파운드를 제외한 62파운드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썼다.



1735년 4월 25일, 웨슬리의 부친 엡윗교구 목사는 72세를 일기로 세 상을 떠났다. 한편 웨슬리가 몇몇 신성구락부 회원들과 식민지 북아메리카 조지아 로 선교여행을 떠나고 남은 신성구락부 회원들은 계속 모임을 갖다 졸업 후 목사직을 받고 각자 흩어지고 말았다. 이 단체가 해산된 이후에도 그들이 남긴 향기는 얼마간 옥스포드 학원에 머물렀다. 그들의 신앙과 생활은 처음엔 한 대학을 깨우쳤고, 그 다음엔 영국 전역에 믿음의 불을 일으켰고 나중에는 바다를 건너 북아메 리카 대륙과 전세계에 신앙의 불꽃을 일게 하였다. 감리교가 처음 일어난 곳이 바로 이 신성구락부였다. 웨슬리는 그의 끝없이 타오르는 종교적정열로 완고한 영국교회의 안 일주의와 의식에 치중한 생활을 박차고 믿음의 요람인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직을 사직하고 북아메리카로 전도여행을 떠난다.



이 전도단은 1735년 10월 18일 시몬주호를 탔는데 이 배에는 모라비 아인들과 80명의 영국이민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그들이 미대륙에 도착하기까진 8주나 걸렸는데 이 항해는 웨슬리에 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특히 선객들중 모라비아 교도들과 교제를 통해 그들의 굳건한 신앙과 용감한 정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항해도중 여러차례의 풍랑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웨슬리는 공포에 떨 었다. 그러나 독일 모라비안교인들은 전혀 두려움이 없이 태연했다. 폭풍이 지난후 웨슬리는 한 모라비아교인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폭풍이 두렵지 않습니까?] [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만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여자와 아이 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날 웨슬리는 그의 일기장에 [나의 일생중 가장 영광스런 날이었 다.]고 기록했다. 그 영광은 웨슬리가 구원의 빛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웨슬리가 일생 처음으로 그 구원의 빛이 존재함을 깨달은 것이다. 1736년 2월 6일. 웨슬리 일행이 탄 배를 조지아에 도착했다. 배가 도 착하자 웨슬리는 자신의 신앙이 무언가 잘못돼 있음을 깨달아 모라비아교 목사 스팽겐베르크에게 신앙상담을 요청했다. 웨슬리는 조지아에 도착한 후 모리비아교단의 스팽겐베르크목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새로운 신앙 체 험을 한다. [웨슬리 선생, 성령께서 친히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고 계 십니까?] 이 물음에 웨슬리는 무슨말로 대답할지 몰라 주저하였다. 이때 스팽 겐베르크목사는 다시 질문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웨슬리가 많이 들어 본 것이었다. 웨슬리는 대답했다. [네. 그는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구원하셨다 는것을 믿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팽겐베르크목사의 [당신은 자신을 잘 알고 있습니까?]라고 되묻는 말에 웨슬리는 [나는 ...알죠]라며 입속에서 겨우 웅얼웅얼 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영적생활의 실태를 이렇듯이 심각하게 검색하 는 질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이 문답이야말로 그의 항해중 얻은 최대의 수확이었다. 스팽겐베르크 목사와 대화하면서 웨슬리의 마음속에는 섬광이 번쩍였다. 그러나 이 섬 광은 극히 순간적이었고 그의 마음속에는 다시 어둠이 찼다. 그후 웨슬리는 사바나시에 도착해 첫 주일은 맞아 고린도전서 13장 을 낭독하고 [사랑]이란 주제로 설교했다. 사바나에서의 활동은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일반신도들이 사치품을 멀리하고 귀부인들도 검소한 의복으로 교회에 출석했다. 그는 그곳에 주간학교를 설립한 후 아이들을 직접 가르쳤다.



웨슬리는 주일마다 분주했다. 오전 5시 새벽기도회를 열었고 11시 에는 성찬식과 설교를 했으며 오후1시에는 프랑스인 예배에 참석하고 2시 에는 유년들을 모아 교리문답을가르쳤다. 또 3시에는 기도회를 인도하였 으며 6시에는 모라비안인 교회에 나갔다. 토요일에는 사바나시 부근에 있는 2개 마을에 들러 독일인과 프랑스인들의 기도회를 인도했으며 평일 에는 스페인출생의 유대인에게 전도할 목적으로 서반아어를 공부하였다. 웨슬리는 이와같이 주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고 노력하였지만 신도 들을 젖으로 먹이지 않고 그들이 먹기 어려운 극단의 교회주의와 금욕주 의의 굳은 음식으로 먹인 까닭에 그 비상한 활동과 노력은 아깝게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몇가지 예를 들면 그는 영국 교회에서 세례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 찬을 허락지 않았으며 국교도 자녀에게는 다시 세례를 주었고 영국 교회 에서 세례를 받지않은 자에게는 장례식 예배를 거절했다. 또 세례는 반드시 침례로 해야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엄격한 태도 때문에 그는 일반신도들의 호감을 잃었다. 그와 때를 같이해 생긴 불행한 연애사건으로 그의 조지아 선교사업 은 끝나고 말았다. 그는 사바나 식민지 장관의 딸 소피아 합키라는 미 모의 여인과 서로 열렬히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사정이 생겨 그 여자와 의 결혼을 단념했다. 어느날 웨슬리가 성만찬식을 집례하는데 이 신혼부부가 예고도 없이 나타나자 웨슬리가 이 부부를 내쫓았다. 이에 분개한 그녀의 남편은 여러 가지 불명예스러운 구실을 만들어 웨슬리를 고소하였다. 그러나 고소의 내용은 그다지 대수로운 사건들이 아니었을뿐 아니라 동기가 웨슬리를 실 각케하자는 의도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돼 기각되었다. 비록 아무 근거없는 고소사건이었으나 그에게는 불명예스런 일이었 고 그때문에 신도들의 불만이 노골적으로 표시돼 웨슬리는 조지아선교를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1737년 12월 2일 웨슬리는 귀국의 여정에 오른다. 사바나를 떠난 웨슬리는 천신만고 끝에 찰스타운에 도착,영국행 범선 을 타고 1738년 2월1일 고국에 도착했다. 도착후 그는 조지아 선교때의 일을 일기에 기록했다. [나는 인도인(아메리카)을 회개시키려 아메리카로 건너갔었다.



그러 나 나를 회개시킬 자는 누구인가. 나는 외관상으로는 훌륭한 신자다. 위 험이 없는 한 설교도 잘하고 믿음도 좋다. 그러나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네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라고 외칠수 있는 신앙을 원한다.] 조지아선교 실패로 인해 그는 지극히 낮아졌다. 웨슬리는 본국으로 돌아온 후 모라비아교단의 신도들과 신앙교제를 했다.그들 중 페터 볼러와의 대화는 웨슬리의 신앙에 큰 교훈을 주었다. 그는 볼러로 말미암아 그의 불신앙을 깨닫게 되었다.



중생의 기쁨을 체험하지 못했음을 깨달은 그는 [내가 전도를 중지하 는 것이 옳지 않은가?]라고 묻자 볼러는 [그런 말씀하지 마시오. 선생은 믿음을 얻을 때까지 그 믿음을 얻은 후에는 그 믿은 믿음을 전하시오.]라 고 대답했다. 웨슬리는 볼러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이튿날 아침 옥스포드 감옥에 있는 한 사형수에게 믿음으로 구원얻는 도리를 전도했다. 다음주일 웨슬리는 퀘이커교 예배에 참석했다. 이것은 웨슬리의 부 흥운동 뿐 아니라 감리회 예배의식 발전상 중요한 계기가 됐다. [나는 폭스 (퀘이커교 창설자)회에 참석하였는데 내 마음속에는 형 언할 수 없는 감격이 넘처 흘러 그동안 해왔던 기도문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자유로운 기도를 했다.] 영국교회의 의식과 기도문에 따라서만 기도했던 그는 자유기도가 더 은혜로움을 깨달았다.



1738년 5월 24일, 웨슬리는 중생의 기쁨을 체험한 다. 이날 그는 런던시 올더스게이트가의 성경연구와 기도를 목적으로 한 작은 집회에 참석했다. 한 낭독자가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그때 웨슬리의 마음엔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 이 상스럽게도 나의 마음이 뜨거워 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주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또한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사하시고 나 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 중생의 경험은 웨슬리의 성격과 전도방법에 큰 변화를 주었다. 이때부터 엄격한 의식주의자였던 요한 웨슬리는 복음주의의 구원과 생명을 전도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다. 웨슬리가 중생한지 18일후 옥스포드대학 앞뜰에서 [너희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이 설교의 내용은 감리회 신앙개조의 표준이 되었다. 이 설교는 그 의 중생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인만큼 그의 중생 이전의 이론과 그 내용 이 완전히 달랐다.


영국국교는 웨슬리를 의식을 깨뜨리는 자로 간주, 그를 배척하기 시 작했다. 벌써 런던에 있는 교회들도 그에게 강단을 허락하지 않았다. 1939년에는 네 교회만 그에게 설교를 허락했다. 또 뉴케이트 감옥에 수용된 죄수들에게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종전에 해오 던 방법으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돼 그는 야외설교를 시작했다. 웨슬리는 영국교회 지도자들의 반대에 개의치 않고 1739년 4월 2일부 터 야외설교를 시작했다.


예의범절만 찾던 영국교회의 목사들은 제복차림으로 노천에서 전도 하는 그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다른 목사들의 비위를 상하게 했지만 그날 오후4시 나는 거리에서 복음을 선포했다. 약 3천명의 군중들이 모였다.] 웨슬리는 야외설교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의 새로운 선교방법에 대 해 성도들이 걱정을 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말씀에 하나님은 나에게 내 능력에 따라 무지한 자를 가르치고 악한 자를 바로잡고 덕이 있는 자를 견고하게 해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다른 교구에서 일하는 것을 막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누 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나는 이 세계를 나의 교구로 생각합니다. 그렇 기때문에 내가 세상 어느 곳에 있더라도 기쁜 구원의 소식을 듣기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위슬레 대헌장의 요지다. 그러던 중 웨슬리 일행에게 일대 수난이 다가왔다. 찰스 스투얼이 영국 왕위에 오르자 감리교도들에게 박해가 심했다.



그들이 갖는 [속회]와 [야간집회]를 교황권운동이나 왕권 회복운동으로 오인, 교구목사들과 지주들이 폭도를 매수해 집회를 방해했 다. 이러한 폭도들의 행패는 1757년까지 계속됐다. 1742년 웨슬리는 브리스톨에서 속회를 조직하고 첫 모임을 가졌다. 속회는 대략 12명이 한팀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간증과 성경공부 모임을 갖는다. 이 모임은 오늘날까지 감리교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다. 1776년 처음 발표된 총회통계를 보면 감리교엔 목사 97명, 성도 1만 9천7백61명, 순회지구 40개로 나타나있다. 그 일년후에는 성도가 2만5천9 백11명으로 증가했다.



조직이 커지고 양적으로 발전한 감리교는 1984년 웨슬리는 기독교사 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지만 그의 첫 사랑의 상처때문에 평생을 독신으로 살려고 했으나 나이 48세때 미망인인 파질부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러나 부인의 변태 행각과 질투로 별거하게 됐으며 얼마후 부인은 병으 로 세상을 떠났다. 결혼생활이 불행하게 끝난 반면 웨슬리가 받은 복은 컸다. 건강한 몸으로 장수한 그는 그 시대에서 가장 분주하고 많은 많은 일을 했다. 영국 전역과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등을 순회하며 전도집회를 열었으며 4천번이상의 설교를 했고 일생을 통해 선교여행한 총거리가 40 만km 에 달했다.



1790년 6월 28일 87회 생일을 맞은 웨슬리는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 이 기록했다. [오늘부터 나는 87세가 된다. 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느끼겠 다. 그러나 신체 어느 부분이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생명의 물결이 멈추기까지 육체가 점점 쇠약해져 가는 것 뿐이다.] 그해 10월 웨슬리는 수섹스주 윈첼시교회 뜰에서 마지막 야외설교를 했다. 그날 설교의 제목은 [만날만한때 주를 찾으며 그가 가까이 계실때 부르라.]는 것이었다. 다음날부터 그는 심한 열로 앓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일을 중지하 고 시티 로드교회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병석에 눕게 됐다.



1791년 3월 2일. 그의 작은 방에는 열 한사람이 모여 있었다. 침상위에 누운 웨슬리 는 친지들에게 [평안히 계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88세였다. 그의 유해는 시티 로드교회 뒤뜰에 안장되었다. 영국사회를 믿음으로 구원한 믿음의 아버지 웨슬리는 다른 여타의 유럽국가들이 유혈혁명으로 타락된 산업혁명이후 사회에서 벗어난 것과 달리 영국에 명예혁명이라는 영광스런 사회변혁의 중심적인 사상을 제공 한 사람이었다. 그는 개인구원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구원을 이뤄야 한다는 사회구원론의 효시였다. 그의 후계자인 우리도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선언한 그의 선언대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우리의 선교 대상으로 삼고 그들에게 구제, 교육 등 갖가지 방법으로 선교를 펴야 할 것이다.


통계로 본 요한 웨슬리


전도생활
50년간 말을 타고 지구 10바퀴이상 되는 거리를 다님

선교거리
40만Km

하루평균 다닌 거리
32Km

저술
200권이 넘음

설교회수
4000번 이상 설교

60년간 변함없는 생활
새벽4시 기상 기도와 설교

찬송생활
동생 챨스 웨슬리와 함께 만든 찬송가중 525곡을 선정 찬송가만듬

사망5일전 생활(88세)
32Km떨어진 곳에 복음 전도

함께한 사역자
죠지 휫필드, 챨스 웨슬리 등





웨슬리 회심일 날의 일기


- 1738년 5월 24일 (수) -


그날 저녁에 나는 올더스게이트 가에 있는 기도모임에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나 참석했다.


거기서 어떤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고 있었다. 밤 9시 15분 쯤, 그
낭독자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변화를 가져 오시는
일을 묘사하는 말을 듣는 중에 나는 내 마음이 이상스럽게 뜨거워 짐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있음을 느꼈고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만을
의지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없이 하였다는 확신이 생겼고
나같은 자의 죄를 다 사하시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나를 구원해 주셨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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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구원론


soteriology of John Wesley


존 웨슬리의 구원론

웨슬리의 구원론

웨슬레의 구원론은 간단하게 구원의 순서에 따라서 진술하도록 하겠다.





가. 선행의 은총


웨슬레는 칭의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하는 은혜의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칭의 받는 믿음은 사람의 노력의 산물이거나 은혜에 대한 사람의 응답이라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같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행위이다.


여기에서 딜레마가 생긴다. 그럼 인간은 칭의 받는 은혜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믿음이 칭의의 은혜를 주게 한다면 왜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믿음을 주시지 않는가? 이런 질문은 자연스럽게 칼빈의 예정론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한다.


그러나 웨슬리는 위의 질문에 대해 다른 대답을 내린다. 즉 믿음을 받기 위해 인간이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이 믿음의 선물을 거절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믿음의 선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능력을 웨슬리는 선행의 은총 또는 모든 사람안에서 하나님의 값 없이 주시는 은총이라고 표현한다. 이 은총은 모든 능동적 응답의 근원이며 선한 욕망즉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살아가려한는 욕망이 이것으로부터 나온다. 또한 이 선행의 은총은 받기를 기다릴 필요없이 모든 자연인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응답의 능력이다.


그래서 웨슬레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성취함에 있어서"라는 설교에서 하나님이 먼저 활동하시니 인간도 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이유는 인간편의 책임인 것이다.


이 선행의 은총으로 인간은 믿음을 주시기에 앞서서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 주시는 회개의 촉구를 받아들이고 회개의 합당한 행위를 하려고 노력한다. 先行하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하나님의 역사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진 인간의 마음이 감각적이 되고, 둔감해 있던 마음이 민감하게 열리기 때문이다.


그럼 이렇게 하나님의 율법을 통한 활동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는 하나님은 실패한 것인가? 아니다. 여기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욱 분명히 할 수 있다. 웨슬리는 자연인은 전적으로 부패해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선행적 은총을 주어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 아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웨슬 리가 이해하는 인간의 실존이다.


그런데 믿음이 생기기에 앞서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율법으로 회개의 촉구를 하신다. 웨슬리에게 있어서는 믿음이 생기기 전에 회개를 해야 한다. 선행의 은총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왜 인간은 믿음을 받아들이기에 앞서서 회개해야 하는가? 웨슬리는 그의 인간관에서 모든 인간은 아담의 타락이래로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되었다고 한다.


웨슬레의 구원론은 모든 인간이 처해 있는 죄인으로서의 상태에 관한 그 자신의 이해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가 이해하고 있는 바의 인간의 상태는 세가지로 설명이 되는데, 첫째는 자연적인 인간의 상태이고, 둘째는 율법 아래에 있는 인간의 상태이고, 셋째는 은총 아래에 있는 인간의 상태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특별히 자연적인 상태의 인간에 대한 진술은 인상적이다. 웨슬레는 자연적인 상태의 인간은 자신의 속에 하나님의 은총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의 인간이라고 진술하였다. 자연인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태는 다른 말로 원죄 즉 죄의 세력에 사로 잡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원죄로 인해서 사람은 교만하여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인간 자신에게 돌리며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보다 더 우선되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구원을 이루려고 한다. 자기사랑하여 육체의 정욕대로 움직여 세상의 것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즉 칭찬받고 싶어한다. 또한 우상 숭배(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존중하고 필요로하며 영광을 돌림)의 죄를 저지른다. 이로써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며 죄의 결과로 인간은 심판의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자연상태의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웨슬레에게 의하면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상태에 있는 인간을 그대로 방치해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양심 속에서 선행적인 은총으로 역사하여 자연적인 상태의 인간을 율법의 심판 아래로 이끌어 들임으로서 타락의 조건을 인식하게 한다. 선행의 은총으로 인간은 이 사실을 어느 정도 받아 들이기 시작한다. 사실 그 양심으로 죄책감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선행의 은총을 양심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죄인임을 깨달음으로 구원은 시작되는 것이다.





나. 확신의 은총


선행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욕망이 있게 되며 어느 정도 죄인임을 깨닫게 될 때에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 즉 율법으로 회개의 촉구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또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민감해지고 자신의 죄에 대해서 자각을 한 인간에게 구원은 "확신적 은총"에 의해서 수행된다. 확신적 은총은 하나님에 대해서 자신의 죄의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인식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보다 깊은 자각을 일으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확신의 은총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전적으로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인간은 아담 이후로 타락하였다. 그래서 인간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즉 아담 이후로 인간에게서 구원의 가능성은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확신의 은총으로 이제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받기를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확신의 은총으로 죄인임을 깨달아 인정하며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받기를 포기한다면 결국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이렇게 죄인임을 인정하고 포기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회개이다. 이 회개는 이제 선행의 은총으로 아는 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믿음은 회개 이후에 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죄인인 인간을 참회로 이끄시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웨슬레는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을 갖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참회 또는 죄의 확신을 신앙보다 앞서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 웨슬레의 구원론은 초기의 종교 개혁자들의 이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초기 종교 개혁자들에게 있어서 참회는 신앙 이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 이후에 신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신앙의 업적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참회에 따르는 업적의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마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처럼 기회가 없는 경우도 있기도하다.


이로 인하여 참회의 신앙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에 합당한 열매로서의 업적을 이루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와같은 참회의 업적이 구원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업적은 참회의 신앙의 열매로서 의인을 위하여 간접적으로 필요한 요소일 뿐이다. 즉 하나님이 인간 안에서 계속적인 역사의 조건으로 참회의 신앙에 따르는 자유로운 응답을 요구하시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응답의 수준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어서 그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인간의 측면에서의 참회의 신앙에 따른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으로서의 열매가 갖는 성격은 다만 하나님의 계속적으로 주어지는 선물을 받을만한 준비가 되었다는 표시로서의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신앙의 업적은 참회의 신앙의 열매인 동시에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 된다. 도덕적 의미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의인의 신앙을 용납하도록 허용한다는 인간의 입장에서의 표시에 불과한 것만은 아닌 것이다.





다. 칭의의 은총


확신의 은총으로 진정한 회개를 했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때 하나님은 복음으로 역사하신다. 그 복음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칭의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칭의에 있어서 유일한 조건이 되는 믿음은 어떤 것인가?


믿음은 그리스도의 복음 전체에 대한 동의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보혈에 전적으로 자신을 의뢰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공로를 신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사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죄인의 죄를 대속하셨고 그럼으로서 생명이 되신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존하는 것이다. 이 믿음은 관념적이거나 사변적인 믿음이 아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시어서 내적 변화를 일으키고 그럼으로서 하나님께 확고히 의뢰하는 믿음이다. 한마디로 고난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라. 의인이 됨


1) 의인의 조건


웨슬레에 의하면 의인, 곧 칭의를 받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오직 `믿음' 밖에는 없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웨슬레에 의하면, 하나님의 先行하시는 은총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죄를 인식하고 뉘우쳐 참회하게 되는데, 참회의 열매는 `믿음'을 간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따라서 이제 참회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믿음'인 것이고 이를 근거로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그 사람을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 따라서 의인의 조건은 오로지 믿음이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믿음"은 칭의받기 위한 유일한 조건이 되는 동시에 반드시 회개,곧 참회의 과정이 수반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웨슬레는 이때의 참회를 인간 자신의 극복할 수 없는 죄성, 무력감을 깨달아 아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 믿음은 관념적이거나 사변적인 믿음이 아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시어서 내적 변화를 일으키고 그럼으로서 하나님께 확고히 의뢰하는 믿음이다.





2) 의인의 내용


그렇다면 "의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속죄, 곧 죄의 용서이다. 사망선고를 받은 죄인을 생명으로 옮겨놓는 하나님의 선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인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선포로 이루어진 구원받은 상태이다. 그럼 이 믿음으로 칭의받아 얻는 구원은 무엇인가?


첫째 현재의 구원이다. 둘째 모든 죄(원죄,자범죄)에서의 구원이다. 셋째 죄책으로부터의 구원이다. 현재의 구원이란 현제 이 땅에서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다. 모든 죄에서 구원이란 이제 더 이상 죄를 짓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습관적인 죄나 고의적인 죄 그리고 죄된 욕망에서부터 나온 죄를 짓지 않는다. 죄책으로의 구원은 율법으로 부터의 구원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주고 정죄한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죄책에 대해서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의인받은 사람의 실제 생활이 사실에 있어서도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거나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죄가 없어서 하나님이 의롭게 여겨주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죄로 인정하시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인간을 유죄로 선고하시지 않는 것을 뜻한다.





마. 신생


웨슬레의 구원론에 따르면 의인의 사건에 동반되어 일어나는 사건으로 "거듭남"이라고도 말하는 "신생"의 사건이 설명된다. 이 신생의 사건은 의인과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굳이 순서를 논한다면 논리적인 순서가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성령께서 인간의 영혼 속에 역사하신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둘이 동일한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서로 상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의인이 상대적인 변화를 뜻한다면 신생은 진정한 실제적인 변화를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의롭다고 여기심으로서 인간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시지만 인간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심으로서 인간 안에서 일하신다.


따라서 의인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외적인 관계성을 변화시킴으로서 원수의 관계였던 것을 자녀의 관계로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신생은 인간의 내적 영혼을 변화시킴으로서 죄인을 성자가 되게 한다.


그리고 의인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위치로 회복시키는 것이라면 신생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의인은 죄책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신생은 죄의 세력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시간적으로는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성격에 있어서는 상이한 것이다.





1) 신생의 본질


사람을 영적인 세계로 인도하는 신생은 자연적인 출생과 흡사하여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고, 그래서 은총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무감각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다.





2) 신생의 증거


신생은 신생하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큰 변화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영혼을 살리실 때, 혹은 인간의 영혼을 죄로 인한 죽음의 상태에서 義의 생명의 삶으로 일으키실 때에 인간의 속에서 역사하여 외양으로 나타나는 삶의 변화된 모습이 나타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인한 신생의 증거는 무엇인가?


첫째는 "화평"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평화가 그의 마음을 주장(골3:15)"하는 것이며 "흑암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이 상태는 하나님 이외의 어떠한 세력에 의해서도 칭의의 상태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상태이다.


둘째는 `소망'이다. 이것은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빌1:23)"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 상태는 죽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희망은 "빛나는 형상" 즉 마지막 심판주로 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자신의 영혼이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완전히 새로워지는 일" 즉 신령한 것으로 다시 지음 받은 몸이 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영생을 받는 것이다. 희망은 "영광의 면류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분깃"을 기다리는 것이다


셋째는 `기쁨'이다.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과의 용서를 받아서 기뻐한다." "하나님의 영이 그의 영과 함께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해 주시는 것을 기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희망을 가지고(롬5:2) 크게 기뻐한다"


네쨰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그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마음에 부은바 되었습니다.(롬5:5)" 이런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들이 되었으며 "하나님은 그가 보고자 하는 대상이었고 마음의 기쁨이었으며 시간과 영원에서의 그의 분깃(영생)"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유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먼저 사랑을 확신시키시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행위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현제 믿는 바의 구원을 하나님이 구속하실 것을 소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한다.






바. 믿는 자의 회개


신생한 사람에게도 죄가 있는가? 아니면 이들에게는 죄가 전혀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 웨슬레는 바울의 주장을 따라서 육체의 정욕에 의한 악한 성질이 신생한 자에게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그의 `신자안에 있는 죄에 대하여'라는 설교에서 그는 갈5: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둘이 서로 대적하느니라"라는 말씀을 통해 믿는 자도 육체의 소욕과 싸워야 함을 말한다.


그럼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성서의 말은 무엇인가? 신자안에 아직 싸워야 할 죄의 세력이 남아 있다면 신자는 부분적으로 새로워진 것이 아닌가? 바울의 말을 우리는 분명히 해석해야 한다. 이 말은 믿음으로 신자는 과거의 죄책에서 완전히 새로워졌다. 즉 과거의 죄책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이다.


웨슬리는 이렇게 이 악한 정욕과 성령이 서로 대적하는 세력으로 신생한 자의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신자가 성령을 따를 때에는 항상 우세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웨슬레의 생각은 신자에게는 죄가 없고, 육체에 속한 정욕도 없고, 타락의 경향성도 없다는 생각과는 반대되는 생각이다.


따라서 신생한 자도 그 마음 속에 남아있는 죄성 곧 교만,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우상숭배, 불신 등을 항상 느끼며 산다면 신자가 칭의와 신생함을 받은 후에도 회개가 계속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신자안에 남아 있는 죄는 무엇인가?


고집이다. 하나님의 뜻보다 나의 원하는 것을 가지려는 의지를 더 중요시한다. 자만이다. 아직까지도 자신의 구원이 자신이 책임지려고 한다. 또한 세상을 사랑한다. 이것으로 인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생긴다. 분노와 탐심도 신자안에 있는 죄이다.


그래서 계속하여 깨어 있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때때로 자만,고집,분노를 나타내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기도 하고 안락을 더 사랑하고 세상의 명예와 향락을 좇게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태만도 죄이다. 죄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지 않는 것도 죄이다. 태만은 내적으로 선한 생각을 품으려 하지 않고 외적으로 사랑과 경외의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웨슬레는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해서 말하는데, 웨슬레가 이 때 말하는 회개는 신생한 자의 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고집과 우상숭배의 경향성, 곧 불신앙으로 기울어지는 마음의 경향성을 깨닫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과거의 죄책으로 죽게 되었던 것을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마지막으로 우리 스스로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신자와 신생한 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웨슬리는 신생하지 못한 사람은 죄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다. 이에 비하여 신생한 자는 죄에 순종하여 살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신생한 사람은 범죄의 가능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죄에 대적하여 싸우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신생한 자도 죄의 세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죄의 지배 아래에 있지는 않다. 그래서 죄의 세력과 맞서서 있는데, 그 맞선 상태는 대항해서 싸우는 상태인 것이다.






사. 성령충만과 성화


1) 성화의 기준으로서의 십계명


신생한 자는 "그리스도를 닮지 않는 모든 성품" 즉 "격정과 교만, 육욕과 허영, 야심과 탐욕"에서 구원 받았다고 말하고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에서 초연하다(요일2:16)"고 한다. 신새한 자는 삶에서 말로서 죄짓는 일들 즉 "거짓말, 허위, 사기, 궤사, 정의나 자비에 어긋나는 말, 비방"을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고의로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행위는 십계명에서 지적하는 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런 자는 성화된 자이다.






2) 성령충만과 은혜의 수단



우리의 칭의와 성화가 하나님의 역사가 없이는 되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물주심"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물주심"은 성령충만이다. 이것을 받기 위해서는 "날마다 하나님의 정하신 모든 의식 곧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정해진 수로를 계속 지키는 것" 즉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살 때에 성령충만을 받는다.


웨슬레는 구체적으로 `은혜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종교의미로는 예배와 찬송 ,기도이며 도덕적 의미로는 선행, 구제 등이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다.


초대기독교의 구원받은 개인들은 "단순히 악을 행하는 일을 구만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초대기독교들의 영혼은 "선을 행하는 일을 갈망"했다.


"단순히 악을 행하는 일을 구만둔 것"은 소극적인 것 겸손, 인내 등이다. "선을 행하는 일을 갈망"은 적극적인 것으로 구제하는 것등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는 행위인 예배도 적극적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3) 점진적이며 순간적인 성화

웨슬레의 이 성화론은 몇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지적할 수 있는 특징은 점진적인 성장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칭의를 포함하는 초기의 성화의 단계로부터 완전한 성화의 단계로 점차 성장해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거듭난 이후에도 그 사람의 신앙은 계속하여 성장한다는 것이다.


웨슬레가 이처럼 점진적인 발전을 하는 것으로 이해한 성화의 시작은 신생이었다. 신생의 순간적인 경험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내적인 새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부은 바 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초기의 성화를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성령의 도우심으로 육의 악한 성질,악한 생각과 싸우면서 성화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 성화의 발전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죄에 대해서 죽으면 죽을수록 하나님을 향하여는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둘째 특징은 성화의 이 점진적인 과정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인하여 어느 순간에 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끌려 올려지는 단계가 있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웨슬레가 이처럼 성화의 과정에서의 순간적인 발전의 단계가 있다고 보았던 것은 `성화'는 인간적인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그 자신의 이해가 있었던 때문이었다. 그것은 특별히 그 자신의 올더스케이드街에서의 하나님 경험으로부터 얻어낸 결론으로 생각할 수 있다.





4) 웨슬레의 `그리스도인의 완전론'의 특징


첫째, 웨슬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기독교의 진수였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얻을 수 있는 것으로서의 완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이기도 하였다. 웨슬레는 이 목표로서의 기독교인들의 완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것은 의도의 순수성이요 삶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그것은 온갖 더러움과 모든 내적.외적 불결을 탈피하는 마음의 할례이다. 그것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두번째의 특징은 동기와 사랑 안에서의 완전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웨슬레가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말할때에 그것은 인간 자신의 무지나 실수 등의 제약성을 탈피하는 자유를 얻게 된다고 본 것은 아니었다. 이와같은 제약성으로부터 벋어나는 자유는 "영화"의 순간으로 미룬다. 그렇다고 이와같은 제약성을 죄로 여긴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마음 속에 죄가 있는 상태와는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동기가 되는 문제로 보고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문제도 그 동기의 순수성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인간의 한계성을 가진 그대로의 완전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완전한 사랑 안에서 완전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의해서 이루어진 관계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웨슬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다.그래서 마음에는 사랑과 반대되는 그릇된 性情이 전혀없고 생각과 행동의 전부가 순수한 사랑에 의하여 지배되는 상태의 것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완전한 사람들의 생활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된다.


세번째의 특징은 순간 순간 주를 의지함으로 유지되는 완전이었다. 이것은 웨슬레의 죄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는 특징이다. 웨슬레는 죄를 이중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하나는 율법을 의식적으로 범하는 죄이고, 다른 하나는 율법을 무의식적으로 범하는 죄였다.그리고 성결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 가운데에서 의식적으로 범하는 죄는 피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자신의 연약성으로 인하여 무의식적으로 범하는 죄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성결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삶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의식적 죄 때문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순간 순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웨슬레가 말하는 완전은 순간 순간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가능한 완전인 것이다.


네번째의 특징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전도와 봉사의 원동력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성결은 윤리적 또는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 웨슬레에 의하면 사랑의 행동이 나타나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행동은 복음 전파와 사랑의 봉사의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대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해야 되는 일이 아닌가.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을 살리고자 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도 이와같은 사랑이어야 한다. 즉 복음 전파와 사랑의 봉사의 생활로 이루어지는 사랑이어야 한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어두운 세상을 밝게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한다". 이와같이 웨슬레가 말하는 성결론은 복음 전파와 사회 봉사의 동기와 기초를 제공하는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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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레의 성령론



구원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이며, 따라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어떠한 변화도성령의 역사이다. . .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아무도 크리스챤이 아니다. . . 성결이나 기독자 완전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역사이다.


구원자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죄인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지만, 인간 심령 속에서의 구원의 역사와 성결의 성취는 성령을 통하여 이루신다. 성령 하나님은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서 인간 주체성의 내면으로부터 활동하시면서 인간을 살리시고 성화시키 신다. 따라서 성화는 성령이신 하나님의 행위인데 하나님께서 성령에 의해 영혼을 죄로부터 해방시키시며, 성령 충만에 의한 사랑으로 온전케 하시는 은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웨슬레가 성결을 성령론적인 용어로 설명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는 주로 기독론적인 용어로 성결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웨슬레 역시 구원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라고 보았으며, 나아가 성화를 성령세례로 보는 플레쳐의 견해에 대해서도 부정하지 않았고, 플레쳐의 견해도 성화의 한 면으로 인정하였다.







A. 요한 웨슬레의 성령론의 특징과 성결


1.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


- 성령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이는 삼위일체적인 틀 안에서의 현존이다.


- 구원론적인 면에서 볼 때에 성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현재화 구체화시키는 사역을 감당하신다.


- 만약 사람위에 강림하는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그리스도는 하나의 모형이나 영원히 도달할수 없는 이상으로 남게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심과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은 성령의 임재로서 실현된다.


- 웨슬레의 성령관에서 중요한 점은 성령이 하나님의 내재를 나타내며 또한 그가 사람의 요구를 섬기기 위해 항상 함께 계신다는 점이다.






2. 구원의 사역자(Redemtive Agent)


모든 진실한 믿음과 선한 사고와 행동 즉 구원의 전 과정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


- 하나님은 성령에 의해서 죄인을 깨우치시고 회개케 하시며 믿음으로 인도하여 거듭남은 물론 성결케 하신다. 이러한 구원사역은 우리 안에서 인격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자신인데, 곧 성령이신 하나님이다.


- 웨슬레의 관심은 언제나 사람의 구원에 있었으므로 성령론에 있어서도 구원론적 직능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


- 성령의 구원 사역은 죄의 자각, 죄값으로서의 사망을 일깨움, 인간 지성의 계몽을 통한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깨닫게 하심, 인간의 의지와 감정에의 작용을 통한 선한 생각의 환기이다. 즉 성령은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거룩한 것과 선한 것의 원천이 되신다.


- 성령의 주요 과제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용납하도록 도와주고 또한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계시하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주의할 점은 성령은 인격적인 분으로서 성부와 성자의 구원 계획을 수행하는 "자발적인 사역자"라는 점이다.






3. 성결의 영(롬 1:4)


우리를 모든 진리와 성결로 인도하는 것은 바로 성령이시다. 성령이 오심은 단지 우리 이성의 만족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 마음과 생활의 회심과 온전한 성화를 위함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역은 경외심을 가지고 영접해야 한다.


-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이 중생하고 성결케 하심으로 성결을 그에게 전달해 주시며,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에 참여하는 자', `그의 성결을 나누어 받는 자'가 되게 하신다. 성결은 그 시작에서부터 완전에 이르기까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4. 경험할 수 있는 영


나는 언제나 참되고, 성서적이고, 경험적인 종교를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종교의 알맹이를 빼놓지 않고, 또 종교의 알맹이가 아닌 것을 첨부하지도 않기 위함이다. 우리는 성서와 경험에 의하여 알거니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은 상관 관계에서 역사하신다.


- 웨슬레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 웨슬레가 의미하는 경험이란 인간이 사랑의 하나님의 임재를 뚜렷이 직감하는 것이다.


- 웨슬레는 자신의 복음적 회심 체험에 근거하여 성령에 의한 마음과 생활의 변화를 강조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참 종교란 하나님과의 산 관계에서 이룩되는 것인데 이는 성령에 의해서 가능하다. 성령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산 관계를 맺게하고, 하나님과 인간 영혼의 교제를 가능케 한다.


- 그렇지만 모든 궁극적 권위는 성서에 있다. 성령에 의한 신앙 체험은 다양하고 가변적이기에 경험은 규범적일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경험은 성서의 시금석에 종속되어야 한다.







B. 성령의 사역 : 성결의 단계


웨슬레에게는 기독교는 곧 구원이요, 구원은 곧 성결을 의미한다. 구원이 종말론적인 목표로 상승하는 것이라면, 성결은 여러 단계 또는 과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결의 단계가 서로 다른 종류를 뜻하는 것이 아닌 정도(Degree)의 차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진 성도는 더욱 거룩해질 수 있다.





1. 관계적 성화(Positional Sanctification) : 칭의 / 객관적, 외적 변화.


우리가 칭의되는 것과 동시에, 바로 그 순간에 성화가 시작되는 데, 우리가 다시 나며, 성령으로 나는 것이다. 그 순간에 관계적 변화 뿐만 아니라 진정한 변화가 생기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내적으로 새로와지는 것이다.


- 관계적 성결이란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서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죄인이 하나님의 백성 즉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 칭의는 실제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용서를 뜻하며,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그에게 전가(Imputed)된 것이다. 즉 거룩하다고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 칭의의 조건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령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이다(눅17:5; 고전 12:9).


- 따라서 웨슬레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은총, 용서와 변화의 능력은 성령과 동일하다.






2. 초기의 성화(Initial Sanctification)


우리가 중생할 때에 성화, 내적 외적 성결은 시작된다.


- 칭의와 중생은 시간적으로는 동시적이지만 논리적으로는 구분된다. 칭의가 단지 법적인 사죄 선언이라면, 중생은 실제로 의로워지는 내적 영적 변화이다.


- 웨슬레는 중생을 가리켜 성화의 시작이며 문이라고 했다. 중생은 성화의 첫 단계이다. 이것을 초기의 성화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3. 점진적 성화(Gradual or Progresive Sanctification)


칭의와 중생은 그 자체가 완전 성화는 아니며 이것은 성화의 문이요, 입구이므로 완전 성화까지는 계속적인 성장과 발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중생한 자는 물론 성화된 자임에 틀림없고, 따라서 죄가 그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며, 또 정죄 받음도 없으나 그에게는 죄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난 자는 비록 성화되었다 하나, 이것은 부분적일 따름이요, 그 속에는 죄성이 그대로 남아있어 육체는 성령을 대항하여 싸우고있다.


- 점진적 성화는 의인, 중생에서 온전한 성화까지의 과정을 말하며, 이러한 과정은 신자의 성장 과정이다. 이 때에는 내적 신앙의 외적 증거이며 열매로서 선행의 필수성, 중요성이 나타나게 된다.






4.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


온전한 성화는 순수한 사랑-죄를 물리치며 마음과 생활을 지배하는 사랑-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그것은 죄를 추방하는 사랑이다. 마음을 채우며 영혼의 전체 기능을 지배하는 사랑이다. 사랑이 마음의 전부를 지배하고 있을 때, 그 마음에서 죄가 발붙일 곳이 있겠는가?


- 온전한 성화는 바로 "온전한 사랑" 또는 "순수한 사랑"이며 이 사랑 때문에 죄를 짓지 않게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즉 칭의에서 자범죄의 죄책이 용서받으나, 원죄의 부패성은 성화에서 변화된다("원죄에서 씻음받는다").


웨슬레는 온전한 성화는 언제나는 아니지만 대부분 순간적인 역사라고 결론짓는다(Common-ly, if not always). 이 순간적인 체험을 통하여 신자는 마음 속에 남아있는 죄성으로부터 정결하게 씻김을 받으며, 사랑과 봉사에 더 큰 힘을 얻어 승리 생활의 원동력이 된다.


- 성화를 가져오는 신앙에 의해서 신자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얻는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이다(롬5:5).






5.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


완전은 성결의 다른 말일 뿐으로 같은 사실의 두 다른 낱말이다. 성경적 의미로 볼 때 성결한 자는 완전한 자이다.


- 기독자의 완전이란 인격의 완전이며 이는 곧 사랑이다. 이러한 완전이란 완전하고 조화된 인격을 의미하며 이는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라는 이념에서 형성된 것이다(H.Lindstrom).


- 웨슬레가 말하는 완전은 절대적, 천사적, 아담적인 완전이 아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완전이란 무지, 과오, 결점, 유혹받을 가능성 등에서의 완전이 아니다. 이렇듯 그가 말하는 완전은"제한적 완전"이라 할 수 있으며, 인간의 연약성을 인정하는 "인간적 완전"이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현세에서의 완전은 끝이 아니다. 완전한 자라도 계속 은혜 안에서 성장하여야 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최종적인 칭의를 얻어야 한다. 이것이 곧 "최종적인 완전" "영화"라고 한다. 바로 이 상태에서만이 타락하고 부패한 연약한 인간성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완전함에 이를 수 있다.






C. 성령 충만과 성결


1. 성령세례와 중생 - 두 가지 입장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입장 / John R.W. Stott, Anthony A. Hoekema 등


: 성령의 세례는 그리스도를 주(主)로 영접하는 순간에 동시적 사건으로 성령세례를 받게되며, 이는 다시 반복되지 않으므로 신자는 이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


중생과 성령세례는 별개의 경험이라는 입장 / Andrew Murray, C.H.Spurgeon 등


: 성령세례는 중생과는 별도로 행해진 성령의 사역으로서, 중생한 신자는 성령세례를 따로 받아야 한다(19세기 미국의 성령 부흥운동에서 주로 발견).






2. 성령세례와 성결


- 대부분의 웨슬레안들은 오순절적인 체험을 신자가 중생한 후에 이차적으로 체험하는 온전한 성화와 연관하여 이해하려 한다. 전통적인 웨슬레안의 입장에서는 성령세례는 두번째 은총의 경험으로서 성결의 체험을 의미하며, 이는 성령충만과도 동의어이다.


- 웨슬레안들은 성령세례를 죄로부터 정결케 하여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완전케 하며, 그래서 유능한 기독교의 증거자로 세우는데 중점을 두고 해석한다(William Greathouse).


- 성령세례는 순간적인 역사이며, 이는 오직 이미 회개하고 믿어 신자된 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행2:28). 따라서 회개의 물세례를 받은 이후에야 비로소 성령세례를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성령세례는 정결케 하는 역사이며(눅3:16,17), 섬김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준다(행1:8).


- 성령세례 : 은사로서의 성령을 주심과 정결케 하심의 최초의 충만.


성령충만 : 새롭게 하심과 능력 주심이 따르는 성령세례의 계속적 상태(행4:8, 13:9).






3. 성령충만과 성결


- 웨슬레는 이차적인 성결의 체험을 성령세례로 부르는 것은 간접적으로만 승인하였다. 그는 1770년에 이차적 체험에 대해서 "성령을 받는다"라고 부르기를 꺼려했다. 그 까닭은 모두가 칭의되는 순간에 이미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이차적 체험이 중생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웨슬레는 이를 "완전한 성화"라는 용어로 대체했다.





a. 구속사의 단회성 : 성령세례 / 구속사적 관점에서 본 오순절 사건의 의미.


- 성령세례는 오순절날 보혜사 성령이 교회에 거하시기 위해 인격적으로 왔을 때 유일회적으로 주어졌는데, 이것은 구원의 단회적 완성이며 지금까지 진행된 그리스도 구속 역사의절정이다.


- 약속으로 주어졌던 성령세례는 오순절에 단회적으로 성취되었다. 따라서 성령세례는 반복될 수 없다.






b. 경험적인 연속성 : 성령충만


- 구속사적인 면에서 오순절 사건은 반복될 수 없으나 경험적인 차원에서는 오순절의 체험은 신자들의 경험속에서 반복되어질 수 있고, 또한 반복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오순절은 유일회성과 함께 영속성을 동시에 지닌다. 따라서 오순절 이후 초대교회의 성령받은 사건들과 오늘날 교회에서의 성령의 역사는 구속사 사건의 현재적 경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성령세례는 구속사적 용어지만 성령충만은 양(Quantity) 또는 정도(Degree)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는 유일회적으로 반복될 수 없으나, 성령충만은 거듭 거듭 반복될 수 있다(행2:4, 4:8,31, 9:17, 13:9; 엡5:18).


- 구속 역사의 현재적 체험의 영속성으로서 성령충만은 개인의 성화의 경험으로 보아야한다.


성령충만을 통해 죄씻음(행15:8,9), 능력받음(눅24:49; 행1:8), 사랑의 충만(고전13장)을 받음으로 사랑 안에서의 완전(요일4:16,18), 즉 성결을 이루어야 한다. 성령세례는 객관적 역사적 사건이며, 성령충만은 주관적 현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D. 성결의 확신 : 성령의 증거



1. 교리의 근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은 이와같은 진리의 중요성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 . 그리하여 하나님 자녀의 독특한 특권의 하나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확신에 관하여 나는 초대교회가 이 주제를 기쁘게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 . 그러나 나는 로마의 클레멘트, 익나시우스, 폴리갑, 오리겐, 그 외의 교부들을 주의깊게 읽으면, 그들 자신이 이 확신을 소유했거나 이 확신을 가진 참 신자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음을 의심할 수 없다.


루터, 멜랑크톤 및 개혁자들 중에(모두는 아니라 할지라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든 신자는 자기가 하나님께 용납되었다는 의식과 이것이 초자연적 증거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빈번하게 그리고 강하게 주장한다.


- 웨슬레의 확신의 교리는 성화론과 더불어 그가 기독교에 공헌한 요소 중의 하나로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인정되고 있다.


- 확신의 교리는 일차적으로 성서에 증거되어 있으며 이성에 의해 해석되어지고 초대교회 시대부터 강조되어 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오늘날 신자의 경험으로 확증된다. 실제로 웨슬레의 올더스게이트에서의 신앙 체험은 이 교리를 더 분명하게 해주었다.





2. 증거의 성격과 내용


- 성령의 증거에는 성령의 직접 증거와 간접 증거의 두 종류가 있다.


성령의 증거는 영혼 위에 나타나는 하나의 내적 인상인데, 하나님의 영이 이것을 통하여 나에게 직접 증거하는 바는. . .(직접 증거) 아주 똑같다고 할 수 없으나 거의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증거와 같은 것이니, 이는 우리가 우리 영 안에서 느끼는 것을 곰곰히 생각하여 행하거나 또는 이성적으로 추리한 결과에서 오는 확신이다. 엄격히 말해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체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 .(간접 증거)


- 웨슬레가 강력히 주장한 것은 이 모든 것 배후에는 우리의 어떤 의식보다 선행하고, 어떤 형식이나 예식과는 별도로 성령의 직접적이고 본래적인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 성령의 증거 : ①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다"라는 것을 내게 말해준다.


② 우리 영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증거한다.


③ 성령과 우리 영은 우리 자신의 칭의, 중생, 양자됨을 증거한다.


④ 성령은 우리가 성결케 되었음을 강조한다.






- 확신의 폭 또는 정도의 3단계


① 신앙의 분명한 확신 : 의심과 두려움이 섞여있는 신앙,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반적인 특권으로 설교되는 것.


② 신앙의 충만한 확신 : 의심, 두려움없이 용서에 대한 완전하고 내재적인 신앙.


③ 희망의 충만한 확신 : 영광 중에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에 대한 완전한 확신.


- 이 중에서 희망의 충만한 확신은 신자가 온전한 성결 안에 거한다는 조건 위에서 순간순간 계속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한번 성령의 증거가 있었다고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즉 우리가 범죄할 때에는 이 성령의 증거는 소멸된다는 것이다.


이것(확신)을 부정하면 우리들의 종교는 형식적인 것으로 떨어져 버릴 위험이 있다. . . 그리고 이것을 인정한다고 하여도 무엇을 인정하는가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면 열광주의의 방종에 뛰어들기 쉽다. . . 이 중대한 진리는 성서적, 이성적으로 확증해야 한다.


- 웨슬레는 당시의 이성주의에 물든 영국 국교회와 무절제한 신비주의자들을 경계하면서 외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확신의 또다른 증거로 강조했다. 이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에 의한 그리스도와의 신앙 관계는 내적 및 외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그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 이러한 확신의 교리는 오늘도 성도의 신앙 생활에 현재적 구원에 대한 확신과 함께 미래의 구원에 대한 산 소망을 제공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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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교육신학


Life of John Wesley


존 웨슬리의 교육신학





제 1 장 존 웨슬리의 교육신학


제 1부에서는 존 웨슬리의 사상을 신학과 교육의 관계성이란 관점에서, 문헌고찰의 방법으로 접근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신학적으로 존 웨슬레는 문화의 신학자이다. 극는 복음을 그 시대의 일반 민중들에게 어려운 사상의 내용일지라도 평이한 표현 방법으로 소개했으며, 복음 전도자의 메시지를 통하여 대중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한 민중신학 였다.


그는 18세기에 살았던 영국의 교육실천가였다. 18세기 영국 역사상 교육의 근거와 발전에 순조롭지 못한 시가였으나 우연한 행운으로 웨슬리는 그의 종교적 사명을 완수 하는데 교육이 기초가 됨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교육의 이론적 체게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도시대에도 부끄럽지 않을 이상적인 학교를 건설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존 웨슬리의 신학 사상을 오늘 우리 시대의 상황과 어떻게 연관시켜서 해석하느냐 하는 과제는 앞으로 존 웨슬리 신학의 새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제 2 장 기독교 교육자 존 웨슬리


존 웨슬리는 민중신학자이며 민중교육의 실천적인 창시자였다. 존 웨슬리는 통상적인 교육보다 더 나은 교육을 실천 하고자 결심하였다. 먼저 그는 그 시대에 있어서 교육적으로 잘못된 점들을 지적하였다.


첫째는 그시대의 교육제도가 야만적이고 가혹하다는 점에 대해 지적하였고, 둘째는 ㅡ 시대의 특징이었던 `이교도 교장들'의 불 신앙적인 가르침에 대항하여 진정한 종교적 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들고자 하였다.


존 웨슬리의 교육이론을 정립하는 데 크게 영향을 준 인문주의자 몇 사람이 있다. 특히 존 록크의 사상이었는데, 록크는 "교육이란 규율이다"라고 주장했는데 그의 사상은 그 시대의 성공적인 교육의 근거를 이루는데 기여하였다. 존 웨슬리가 록크에게서 영향받았다고 보여지는 내용은 존 웨슬리의 `가정교육'에 관한 설교에 나타나 있다. 즉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피조물을 가장 잘 알고 계시며 회초리를 아끼는 사람은 그 아들을 미워한다'란 표현이다.


18세기 영국의 귀족께급은 빈민층에 대한 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주일학교는 주중의 일과 겹치지 않는 날을 택해서 빈민층의 자녀에게 교육을 실시하였다. 존 웨슬리는 당시 가장 이상적인 학교를 세우려고 결심한 후 영국 네덜란드 독일에서 이름난 몇개의 학교들을 탐방하고 조사 하였다. 존 웨슬리는 교육의 문제점들을 다섯 가지로 비판하고 있다.


첫째는 학교가 나쁜 환경에 위치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둘째는 좋은 학교에 난잡한 아이들이 입학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셋째는 종교교육의 극단적인 결함을 지적하고 있다.


넷째는 종교의 선택을 지적하고 있다. 아이들이 선한 종교를 바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였다.


다섯째는 종교교육의 방법과 범위에 대한 결함을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존 웨슬리는 당시의 학교들이 종교와 종교적 동기에 대한 태도에서 전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존 웬슬리는 조지아에서 독일인 목사 스팡겐버그로 부터 모라비안 교회의 교육과 신앙의영향을 받았다. 헤른허트에서 코메니우스가 가르친 `교수의 방법론'의 내용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코메니우스에게서


존 웨슬리는 교수방법론의 아홉 가지 원리를 배웠다. 첫째, 무엇이나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가르쳐야만 한다. 어떤 대상이나 사상을 가르칠때는 형식이나 상징을 쓰지 말고 직접 아이들에게 실물 교육을 시켜야 한다. 존 웨슬리는 이 사상을 그의 교수방법에 적용시켜서 "어린이에게 태양을 보여라. 나무와 꽃을 보여라"고 말한다. 이것은 코메니우스의 실물교육 교수방법으롯거, 존 웨슬리는 이 방법을 자연을 큰 교과서로 삼아서 하늘과 땅, 나무들 그리고 바람에게서 배우게 한 것이다. 또한 모라비안 교도의 교육철학이 존 웨슬리에게 준 가장 큰 공헌은 아마 어린이의 의지를 교사의 의지에 전적으로 항복시키도록 하는 것이다.헤른허트의 모라비안 교도에게서 배운 교육은 "학생들의 의지를 고쳐 주는 것"이었다.이것은 이미 존 웨슬리가 어머니 수산나 존 웨슬리에게서 전수 받은 것이다.


그의 교육과정에서 앵글리칸이즘, 즉 성공회주의란 공동생활의 형태를 띤 기독교인의 생활로서 모든 사람을 전통 속에 묶는 신앙 형태를 의미한다. 또한 퓨리탄이즘, 즉 청교도주의란 개인이 구원받기 위한 노력으로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신앙의 형태를 의미한다. 존 웨슬리의 교육적 관심은 계몽주의 시대의 교육과 문화 위에 세원진 기독교 신학의 틀을 벗어나 진정한 기독교의 신앙 위에 다시 교육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즉 그는 계몽주의 시대의 이성과 상식에 근거한 이신론의 신앙 위에 종교의 기초를 놓으려던 `기독교 지식 진흥협회'를 배격 하였다.


킹스우드 학교의 이상과 실천을 살펴볼면 가난한 자를 위한 교육이었다. 미국 조지아 주로 선교여행을 떠났을때 가난한 아이들은 양말과 신발을 신을수가 없어서 맨발로 그냥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잘 사는 집 아이들은 신발과 양말은 물론 옷차림도 잘 하고 학교에 다녔다. 그래서 학생들이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가난한 집 아이들과 부유한 집 아이들이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일이 심해졌다.


웨슬레의 조지아 선교초기 교육사상의 특징은 하층계급을 교육시키는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과 종교와 교육은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실천하였다는 것 그리고 어린학생들에게도 참된 회심이 일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었다는 것이었다. 조지아 선교후 일년이 지났을 무렵 존웨슬리와 휫필드는 킹스우드학교를 세웠다. 존 웨슬리와 횟필드의 교육 목적은 첫째, 교육의 목적은 어린이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었다. 둘째, 교육의 목은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필수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일치했다. 학생들에게는 엄격한 6가지 규율을 적용시켰는데 이 규율은 건전한 종교적 훈련을 이루고 완전한 통제를 위한 것이었다.


웨슬레의 기독교 교육을 평가함에 있어서 이제는 사회과학적 이론의 접근 방법에 따라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존 웨슬리의 기독교 교육을 미래의 교육적 과제로 접근해 간다고 하면, 그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다. 최근의 체계적 종교교육의 특징은 기독교 교육의 이론적 근거를 신학적 접근이라든지 사회과학적 접근이라든지 하는 편파성을 벗어나서 양자를 모두 포함하면서 다학문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존 웨슬리의 기독교 교육에 대한 평가도 이러한 기초 위에서 새롭게 접근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첫째 존 웨슬리 신학에 대한 해석은 어떤 하나의 신학적 조류에 따라서 접근해 갈 것이 아니라 기독교 2천년의 사상사의 조명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 의 이론적 근거도 에큐메니칼 신학의 맥락에서 접목되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 존 웨슬리의 신학에 대한 최근 해석은 해방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려는 작업인데, 따라서 이러한 해석학적 접근에 일치해야 할 것이다.존 웨슬리의 신학을 해방신학의 조명으로 해석할 때 그리스도-실천을 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셋째, 존 웨슬리의 사상은 한 교단의 신학이나 한 교단의 교육으로 독점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놀도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에 이상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다라서 그의 사상은 계속 실천되어 가야 할 교육으 ㅣ실천과제로 이해되고 있다.





제 3장 웨슬리의 회심과 교육


기독교 교육이 회심의 문제를 접근할 때 우선 두 가지 역사적 흐름의 배경이 도식화 된다. 하나는 미국의 부흥운동의 핵심을 이루었던 대각성운동으로써 죄, 전적 타락, 회개 일변도의 경험, 즉 회심의 순간적 돌변이 강조되었으며 여기서 교육은 시간과 존재의 비연속성이란 근거 위에서 인간을 해석하려고 하기때문에 교육의 한계성이 노출된다. 다른 하나는 종교교육학파 운동의 아버지가 된 호레이스 부슈넬로써 그는 크리스챤 가정에서 부모의 자녀에 대한 종교교육을 강조하고 특히 신앙교육에 대한 어머니의 책임을 부각시켰다. 이 운동은 알버트 죠지코오등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회개하는 돌변보다는 인간은 나면서부터 언약공동체인 가정이라는 유기체를 통해서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회심"이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방향을 전환하는 운동의 행위를 의미하며 회심한다는 것은 U-turn하는 것과 같다.


구약성서의 배경에서 볼 때 회심은 때때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거짓된 예배에서 돌아서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거룩하신 하나님의 참된 신앙으로 전향하여 돌아 오라는 신적 도전과 관련된다.


신약에서 회심과 관계된 낱말들, 즉 회개, 신생과 같은 모든 낱말들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메시지와 직접 관계되고 있다. 이것은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의 전환을 뜻하며 정신적으로 거듭남, 혹은 거듭남으로, 또는 불안정한 생활에서부터의 희생,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짐, 사탄으로부터 떠나 하나님께로의 전환, 피조물이 전적으로 새롭게됨이며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인간성을 입는 일 "자신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의 회심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그 결과를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선교의식으로 나타난다. 다시말해서 바람직한 기독교의 회심의 의미는 남에게 전도하는 사명을 지는 일인 것이다.


회심의 목적은 성서적 관점에서 볼 때 회심에는 중립적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성서에서 우리는 내적자아, 종교의식, 인격적 도덕성, 지적인 신념, 정치적 소신 같은 것으로 규정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성서의 회심은 또한 자아성취의 과정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성서에서 말하는 회심이란 인간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나아가 내 자신의 존재를 내맡기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역사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위해 개인에게 회심의 사건이 일어나도록 하는데 회심의 목적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시켜 나아가려는데 그 뜻이 있다.


기독교 교육은 역사적으로 볼때 회심과 양육을 그 대상으로 하면서 서로 각각 다르게 강조해 왔다. 회심이란 주체적으로 신앙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 것이다. 이 삶의 변화는 변력적이며, 근원적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고, 감정, 의지 및 인간 영혼을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한다. 크리스챤 교회는 회심된 사람을 양육해야 한다.


회심과 양육의 관계란 밀접하게 성립되며 양육과 회심은 급격한 것이거나 일상적인 것이거나 간에 상방은 모두 필요로 한다.


최근 프린스턴 신학대학의 실천신학 교수인 제임스 E 로더는 회심체험을 학문적으로 규명해 보려는 노력을 시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진리의 접근 방법에서 객관성과 주관성만을 바탕으로 하는 진리이해의 태도와 전제에서 오는 모순과 오류를 지적하고, 이 양자의 극단적인 논리의 모순을 배격한다. 로더는 `신념의 체험'을 인식하는 사건, 즉 변형의 논리 접근 과정을 다섯 단계로 설명한다. 즉 1. 갈등, 2.사건에 대한 검증, 3.환상에 대한 건설적 행위, 4.해방과 개방, 5.해석등의 다섯 과정의 논리적 관계를 원리로 삼고 있다. 여기서 로더가 `신념의 체험'을 해석하는 변형의 논리 배경에는 그의 해박한 심리학적 이해와 신학적 사고의 통합적 이해의 깊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심리학적인 물음에서 회심이란 청년의 정체위기나 혹은 도덕적인 개인의 실패,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기 위한 치유적 욕구와 관련된다. 또한 사회학적으로 볼 때 회심은 문화와 역사적 상황을 다리하고 일어난다.


중세의 배경에서, 회심에 나타난 신학, 심리학, 역사적, 혹은 사회학적 요인을 분석해 볼 때, 인간의 질문과 하나님의 주권 사이의 관계가 신비스럽지 않고 분명하였으므로 회심에 관한 내적 관념이나 감정의 변화에 있어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고백하는 것이 곤란하였기 때문이었다.


회심의 이해의 차이는 외적으로는 교회와 교단의 횡적인 경계선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신조와 공동체를 포기하기도 한다.또 내적으로는 고도의 황홀경을 경험하고 안정과 휴식에 이르며 지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그러므로 회심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들과 체험이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와 연관된 변화의 모습으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사랑과 용서를 증거하는 생활 방식이어야 한다.


회심체험에 대한 해석이 신학, 심리학, 사회학적으로 다양하고 그 내용이 여러가지 형태인 것과 같이 또한 회심의 이해에 대한 비판과 평가도 다양하다.


로더는 회심체험의 이해에 있어서 합리주의자들은 회심과 같은 사건을 객관성에 근거한 합리주의적인 논리로 해석하려고 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종교적인 메시지에 대하여 필요한 진리의 인식에 있어서 분명한 오류를 저지른 결과를 가져왔다. 이들은 항상 객관적인 검증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신념의 체험에 대해서 그릇된 해석을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존 웨슬리의 회심은 올더스게잇가의 집회를 방문했을 때였다.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는 것을 듣고 존 웨슬리의 가슴은 "이상스럽게 뜨거워 짐을 느꼈다"고 한다. 존 웨슬리에게 준 루터의 영향은 다음과 같다. 존 웨슬리의 회심은 선행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구원의 확신으로 변화된다는 사상이다. 청년 웨슬리는 신앙 서적들을 탐독하며 인간 중심적인 신앙에서 벗어나려고 고민하고 심리적 갈등을 느끼면서 변화되고 있었다.


존 웨슬리의 사상과 신학의 형성 과정에 있어서 가정의 경건훈련은 중요한 영향을 주었고 그어머니 수사나의 역할이 지배적이었다.


존 웨슬리에게 구원은 3단계의 과정으로 이루어 진다. 의인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즉, 자기를 아는 것인 회계가 첫 단계이고 구원하는 믿음, 혹은 믿음으로써의 의를 말하는 의인이 두번째 단계이며 온전한 사랑의 성취요 기독자의 완전을 향해가는 과


정인 성결이 그 마지막 단계이다. 그러나 의인의 단계는 구원이 완성되는단계는 아니다. 의인은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받는 단계이지 성취되는 단계는 아니다. 죄의 용서를 넘어 신생된다. 웨슬리의 구원관의 핵심은 구원의 과정이며 그 핵심은 의인과 성결의 단계이다.


영적 성숙을 위한 기독교 교육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성숙한 삶을 살수 있도록 인간행위의 변형을 위한 의도적인 과정을 의미한다. 기독교 교육의 출발은 하나님의 본성과 그 목적을 바탕으로 삼고 그 핵심도 신학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제 4 장 역사적 웨슬리에 대한 이해


19세기초 대서양의 웨슬레안들은 로마 카돌릭 교회와 여국교회의 탄압과 갈등으로 올더스게잇에서 있었던 회심만을 강조하였고 그것을 "프로테스탄트적 회심"이라는 말로 대체시키면서 축하하려는 경향으로 치우쳤다. 또한 웨슬레의 성례전에 대한 관심, 영국교회에 대한 비판의식, 미국의 개체교회가 상위교회에 대하여 자의식을 가지고 투쟁하였던 점들은 무시되었다. 오직 회심의 신학에 대한 신학적 문제만을 관심있게 다루었다. 19세기 말 자유주의적인 트로테스탄티즘이 일어나므로 존 웨슬리의 사상적 검토도 없이 무조건 복음주의적인 존 웨슬리로 부터 경험신학자 존 웨슬리가 될 수 있도록 단순화 시켜 버리고 말았다. 경건주의 이후 웨슬리에 대한 연구는 다양화되었는데 즉, 모라비안과의 연구, 신비주의와의 연구, 로마 카돌릭과의 연구, 영국 청교도와의 연구, 바르트 신학의 입장에서의 연구, 동방정교회와의 연구, 성결의 전통에서의 연구들이 그러한 연구들이다.


특히 영국교회와의 맥락에서 관련시켜 연구한 학자들도 있었고 기독교 윤리의 차원에서 관련시켜 연구한 학자들도 나타났다.


근대에 들어서며 오늘날의 에큐메니칼운동과 로마 카돌릭의 제2 바틴칸 회의 운동과 관련시켜 연구하려는 새로운 조명이 일어났고 오순절운동의 맥락에서 연구하려는 학자들도 나타났으며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존 웨슬리의 역사적인 모습을 원인에서 보다 결과에 치중하여 보려는 견해들도 나타났는데 그들은 웨슬리를 사회 혁명가로 보았다. 이들 연구가들의 연구에서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면 학문적으로 완성시키려는 시도가 없었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입장에 따라서 연구해 왔다는 것이다. 한편 감리교 세계협의회가 후원한 제 6차 옥스포드 갑리교 신학연구원은 오늘날의 해방신학에 대한 웨슬리의 유산을 관련시켜서 그 관계성을 연구하였다.





제 5장 웨슬리 연구의 해석학적 접근

알버트 C.아우틀러 박사는 웨슬리의 연구동향을 3시기로 구분하였는데, 제 1기는 감리교인들의 연구로 국한되었으며 폐쇄적인 연구 형태를 띠우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점은 웨슬리와 감리교의 밀접한 관련성이다.


존 웨슬리 연구의 제1기는 존 웨슬리의 저술에 대한 논쟁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감리교파와 그 창시자에만 몰두했던 한 교파주의의 학문적 작업의 모습이었으나 영웅주의나 승리주의는 에큐메니칼정신의 등장과 후기 현대주의의 시작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웨슬리연구의 제 2기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웨슬리연구의 제2기는 신학자로서의 웨슬리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갖는 시기가 되었다.


웨슬리연구의 제2기의 특징은 존 웨슬리 저작의 원문에 대한 관심의 충실도가 약하다는 사실이다. 제3기에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웨슬리의 연구를 보다 폭넓은 역사적 배경과 콘택스트속에서 다시 이해하려고 했다.


제 3기 에서는 웨슬리신학을 대중신학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 3기의 웨슬리 연구에 있어서 잇슈는 존 웨슬리 연구에 있어서의 방법론적인 과제이고 자료의 문제이며 현재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웨슬리 연구를 통하여 해결하려고 할 때 그 근거의 타당성은 복음주의, 갱신, 사회변혁에 두고 현대 기독교인 모두가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존 웨슬리 연구의 제 3기를 미래적인 과제로 삼으려고 할 때 깊이 관심있게 다루어야 할 개념은 감리교회는 사회복음에 대한 새로운 평가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오늘의 여러가지 큰 위기에 대처될 수 있는 신학이 존 웨슬레 신학이 되고, 이 힘으로 우리 감리교회와 타교파들, 그리고 도 다시 에큐메니칼의 차원으로 승화 되어 갈 때, 우리 시대의 문제들은 희망차게 해결 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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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신학의 재발견



김홍기 목사(서울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Ph.D.)









21세기를 맞이하면서 한국교회와 미주 한인교회는 개혁과 갱신을 도모하고 있다. 양적 성장은 이루었으나 신학적 성숙은 이루지 못하였다. 건전한 신학 위에서 건전한 성장과 성숙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항상 교회개혁은 역사 속에서 나타난 지혜를 재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종교개혁도 역사의 재발견에서 일어난 운동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웨슬리 신학의 재발견을 통하여 오늘의 한국교회와 민주한인교회의 신학과 목회와 영성의 개혁을 제안하여 보고자 한다.

1. 복음적 신인협조설(Evangelical Synergism)

웨슬리는 루터의 신앙의인화(justification by faith)의 영성 신학에 철저히 근거하면서도 성화 신학을 칼빈보다 더욱 발전시켰다. 그의 성화 신학이 칼빈의 성화 신학보다 더욱 행동주의를 강조하는 이유는 복음적 신인협조설에서 나타난다. 칼빈의 성화는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서 인간 속에서 행하는 행동이지 인간은 노예 신세이다.


거기에 반하여 웨슬리의 성화는 하나님의 성령이 먼저 역사 하지만 거기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의 응답으로 곧 신인 협조로 성화가 이루어진다. 신앙의인화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으로만 이루어지고 그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거듭남도 성령의 내재의 은총으로 되어지지만 성화는 믿음(하나님의 선물)과 사랑(인간의 선행적 참여)으로 이루어진다고 웨슬리는 생각한다.


웨슬리는 어거스틴의 원죄설을 받아들인 루터와 칼빈의 개신교 전통을 따라서 인간의 타락과 원죄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형상의 부분적 회복이 가능함을 믿는다. 다시 말해서 회개의 신앙 이전에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은총, 곧 선재적 은총을 믿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양심, 종교성, 자유의지라는 빛을 주셨다고 해석한다.


그리스도께서 비추시는 은총은 모든 사람이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고,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걷도록 하신다. 그의 성령도 때때로 모든 사람 속에서 일하신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들을 가능한 한 억누르거나(stifle), 후에 잊어버리거나(forget), 부인한다(deny)고 웨슬리는 해석한다.


그러나, 이 인간의 선행을 가능케 하는 자유의지는 본성적-자연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재적 은총(prevenient grace)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펠라기우스나 중세 천주교의 반 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의 자유의지론-본성적으로 자유의지를 갖고 태어남-과 다르다. 웨슬리에 있어서 인간은 모두 원죄를 갖고 태어났다. 그런데 성령의 선재적 은총으로 믿는 성도나 안 믿는 자연인들 속에도 부분적인 자유의지의 회복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한다.


이 선재적 은총은 자유의지뿐 아니라 양심과 종교성으로도 나타난다. 이 선재적 은총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구원을 향해(은총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을 뜻한다. 또한 구원의 은총을 열망하는 열심과 사모하는 마음도 의미한다. 그리고 의롭다 함을 얻고 거듭난 성도라도 자유의지 때문에 타락할 수도 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계속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성령의 은총의 주도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적 응답과 참여에 의해 구원이 완성된다. 이러한 웨슬리의 복음적 신인협조설은 동방 교회의 Gregory of Nyssa와 John Chrysostom의 영향, 서방 교회의 Augustine의 영향, 그리고 James Arminius의 영향 등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이 알미니우스적 자유의지론은 칼빈의 불가항력적 은총론을 거부한다. 하나님의 은총은 인간의 인격적 응답과 책임적 결단을 무시하고 거부할 수 없도록 불가항력적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알미니우스적인 자유의지론은 또한 칼빈의 제한된 속죄론을 비판한다. 곧, 제한 속죄론은 그리스도의 보혈이 제한된 사람, 예정을 비판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믿는가 혹은 안 믿는 가라는 믿음의 조건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다. 뿐만 아니라 예정된 성도들은 하나님이 끝까지 타락하지 않도록 지키신다는 칼빈주의적 견인의 은총을 비판하면서, 성도라 할지라도 자유의지 때문에 타락할 수도 있다고 해석한다.


웨슬리는 이러한 알미니우스적 선재적 은총론을 받아들여서 선재적 은총인 자유의지에 의하여 구원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 수도, 열지 않을 수도 있으며, 구원받은 성도라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완성할 수도 있고 다윗의 실수처럼 타락하고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해석한다.


특히 웨슬리는 펠라기우스의 자유의 지론을 거부하고 어거스틴의 선재적 은총론을 받아들여 그의 설교,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룩함에 관하여"에서 "우리 없이 우리를 창조한 하나님은 우리 없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다"는 어거스틴의 표현을 인용한다. 어거스틴은 불가항력적 은총을 펠라기우스와의 논쟁(De Gratia et Libero Arbitrio)에서 강조했지만, 선재적 은총과 자유의지를 마니교화의 논쟁(De Libero Arbitrio)에서 강조했다. 따라서 웨슬리의 선재적 은총론은 알미니우스적이면서도 어거스틴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먼저 역사하면 하나님이 응답하는 것(human-Divine cooperation)이 아니라(인간 50% 하나님 50%) 하나님이 먼저 역사하면 인간이 응답하는 것(Divine-human cooperation)이다(하나님 100% 인간 100%): "먼저 하나님이 역사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일할 수 있다(can). 둘째로, 하나님이 역사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must)... 만일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면 당신은 당신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웨슬리는 그의 선재적 은총론을 동방 교회에서 배웠다. 동방 교회의 교부들, 니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와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을 통하여 자유의지적 책임성을 배웠다. 그들은 은총에 응답하는 인간의 의지적 결단을 강조하였으며, 믿음으로 의로워질 뿐 아니라 사랑의 에너지로 채워지는 믿음을 주장했다. 인간의 의지적 참여인 사랑의 행동이 없는, 사랑으로 역사 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생각한 동방 교부들의 사상을 웨슬리는 받아들인다.


웨슬리의 선재적 은총이 구원의 과정에서 갖는 역할을 다시 요약하면:

첫째, 구원을 사모하는 열심

둘째, 마음의 문을 여는 결단

셋째,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자유의지적 참여 등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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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의 성화와 오늘의 윤리


조 병철 목사(나단 교회 담임)

Ⅰ. 서 론


1955년 여름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한 강연에서 セ요한 웨슬리는 현대 신학
을 논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ソ고 평하였다. 이는 웨슬리
의 창의적 종합에 대해 현대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에 한 좌표를 제시할 수 있
는 가능성을 표방한 것이다.


곧이어 1959년 호주의 신학자 콜린 윌리암스(Colin Williams)는 ぢ존 웨슬리 신
학의 현재(John Wesley's Theology Today)っ를 통해 웨슬리는 카톨릭전통, 고전 개
신교 전통 및 자유주의 교회 전통을 창의적으로 종합했더고 다시 한번 강조하였
다. 이러한 웨슬리 신학의 재발견은 그 신학과 실천 즉 개념과 윤리를 상실한 감
리교회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웨슬리 신학은 의화(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라는 두 촛점에 맞추고
있으며 실제로 그는 성화에 치중하고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웨슬리의 성화관을
통해 그의 윤리적 사상을 간단히 이해해 보고자 한다.





Ⅱ. 웨슬리의 성화관


(1) 성화관의 형성 배경


웨슬리의 성화 개념은 어려서부터 어머니 수잔 웨슬리에게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경험과 그의 폭넓은 독서와 회심 경험은 그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
었다. 그는 학생 때 과외로 공부할 것을 정해서 스스로 연구하곤 하였다.


먼저 제레미 타일러 감독(J. Tylor)의 セ거룩한 삶과 죽음ソ, 수도자 토마스 아 켐피
스 (T. A. Kempis)의 セ그리스도를 본받아(Immitatio Christi)ソ, 그리고 월리엄 로우(W.
Law)의 セ 그리스도인의 완정에 대하여ソ 와 セ경건하고 거룩한 삶에의 부름ソ이라는 명
저들을 통해 그는 종교의 형식보다는 내면성을 중시하는 것과 목적의 단순성, 사랑의
순결성, 언행의 합일 및 자기 부정과 전적인 헌신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두번째로 그는 성서와 초대 교부의 문헌 연구를 통하여 성화의 개념을 명확히
하였는데 이는 신성클럽(Holy Club) 회원인 클레이톤의 도움으로 성화의 규범적
교리를 접하였고,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완전이며, 그것은 상태가 아닌 과정이라
는 사실을 인지하였다.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사람들은 매커리어스(Macarius), 사
이러스(E. Syrus)로써 이들에게서 완전에대한 명확한 개념을 얻었으며, 익나시우스
(Ignatius), 클레멘트(Clement) 등을 통해서는 참된 성결과 교리와 체험이 관게의 긴밀
성을 이해하였다. 웨슬리는 초대 교회와 동방 교회의 문헌을 통해 거룩함의 관념은
훈련된 사랑임을 깨달았고, 영국교회의 이상적 사랑이 바로 그 전통의 실현이라 보고
이를 종합하였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실천적 영향을 끼친 것은 2회에 걸친 회심사건과 야성회에서
의 성령체험이었다. 그의 1차 회심으로 불리는 사건(1725년)에서 그는 하나님께 자신
을 완전히 바치겠다는 율법 아래서의 종의 신앙을 소유하였고, 1738년 5월 복음적인
2차 회심을 통해 은혜 아래 서있는 인간이 되어 아들의 신앙을 체험하였다. 그는 자
신이 ぢ마음이 이상스럽게 따뜻해짐을 느낌っ으로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음을 확신하
게 되었다. 특히 1738년 연말에 페터레인에서 모인 야성회(철야기도회)에서의 성령의
강한 임재는 그를 순수한 사랑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실천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것은 성령의 증거인 동시에 그의 경험이었다.




(2) 성화와 의화의 관계


웨슬리에게 있어서 의화와 성화는 그의 신학과 실천에 있어서 중추적인 두
핵심이다. 의화는 인간을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해 성령의 역사가
운데 의롭게 되어지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통해서 확신하는 은총
을 받는 것이다.


의화와 더불어 신생(新生)함으로써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추구하며,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나아가
는 것이다. 그러나 의화는 상대적인 변화이므로 실제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으
며, 의식적인 변화만이 일어난다. 의화는 우리를 위한(for all) 하나님의 은총이며,
성화는 우리 안에서(in all)의 성령의 역사이다. 전자는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외
적 관계를 의미하고, 후자는 우리의 내적 영혼을 변화시키므로 죄인이 의인되고
성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의화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이 형성되고 성화됨
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화는 그리스도의 삶이 유일하
고 지속적인 근거이므로 그리스도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나 성화는 그리스
도의 구속적 역사에 대한 내적 타당성의 결과이므로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
도의 형상대로 변화되어 간다.


웨슬리는 이 과정을 구원과 관련시켜 구원을 세속적 의미의 지옥에서의 구출
또는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의 현재적 구원ゝ,゛신적 본성의 회
복ゝ,영혼을 원초의 건강으로 회복ゝ,゛영혼의 본래적인 순결성ゝ,゛우리의 영혼이 의
와 진리의 거룩함과 정의와 자비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ゝ, 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의화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객관적 또는 율법적으로 보아 그리스도
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결과로 우리가 죄책에서 용서를 받는 상태적인 변화
를 말하며, 성화는 주관적으로 보아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안에서 일하시는 결과
로 우리 속에 있는 죄의 근원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실제적인 변화를 말한다. 본
질적으로 의화와 성화는 연속성을 가지지만 그것 나름대로 톡특성을 지니고 있
으며, 구분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3) 성화와 기독자의 윤리


웨슬리는 성령의 일반적인 역사를 영감(Inspiration)이라 한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이해시키며, 촉진시키며, 우리의 뜻을 바로 잡으며, 거룩하고 성결케
하시는 우리 안에서의 성령의 내적인 도우심,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선한 나무가 선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루터의 입장을 뛰어넘어 웨슬리는
선한나무란 가능성을 보고 그 열매를 맺기 위한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틸리히는 성령의 체험을 삶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ぢ 참다운 종교
의 신비 경험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욱 이성적이 되게하고, 더욱 책임적이고 윤리
적이 되게하며, 그 결과 사랑을 실현하며 고매한 윤리적 삶을 구현한다.っ 또한
이점에 대해 베버(M. Weber)는 ぢ정서적으로 일단 각성된 후에는 완전을 향하여
합리적인 투쟁으로 연결되었다.っ고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밝히고 있
다.


웨슬리가 성화를 강조함으로써 관심의 촛점을 의화된 자기의 삶 속에서 성령
의 변화시키는 삶 속에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은총의 낙관주의
(Optimism of Grace)는 강력한 윤리의식과 도덕적 행동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것
이 인본주의적이면 의화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고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기에 은초
의 낙관주의가 된다.


웨슬리의 이 성화에 기초한 사랑의 윤리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과 권능을 가장 강력하게 인정하는 성령론적 윤리이다. 이 성화의 윤리는 그
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개인의 변화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완전 성화를 목표
로 삼는 발전과 성장의 윤리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성화, 나아가서 완전 성화는 주체
적 자율도 아니며, 객관적 타율도 아닌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 안에서 작용하시
고 역사하시는 신율(神律:Theonomy)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하나님 안에서의 윤리적인 삶, 도덕적인 삶이며 이
로써 정치적, 자연적 형상을 되찾는 그리스도의 재연이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
랑을 순수한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Ⅲ. 결 론: 사랑의 역동성


웨슬리의 성화관은 성령론적 윤리의 구현이다. 웨슬리는 성령의 역사와 그리
스인의 사랑에 의한 역동적인 삶을 동시에 강조하였다. 그는 개인의 윤리의 변화
를 통해 공동체가 변화하고 나아가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변혁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성공회(聖公會)라는 한계영역을 넘어 어느곳이나 어느 장소에서
든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였다. セ세계를 나의 교구로써 생각한다(I Think the
World as my Parish!)ソ는 그의 열린 사유는 오늘날 편협한 우리의 의식에 새로움
을 던져준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했던 웨슬리에게 있어서 그
사랑은 자기 사랑과 이웃 사랑간에 균형이 잡히고 조화를 이루었다. 이것이 진정
한 사랑이다. 결국 이 역동적인 사랑의 윤리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성화에로 전진해 나
가야 한다.


사랑이 메마른 현대 사회 특히 우리 감리교회에서 웨슬리가 성령에 사로잡혀
신율에 의한 이 사랑의 역동성을 통해 이룩한 18세기의 감리교 부흥운동과 같이
성령론적 윤리의 삶을 구현해야 한국감리교회가 살고 우리 공동체가 살 것이다.



ぢ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내 형
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っ 나아가서 내가 형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들 사이에 분열이 있어서는 결
코 안된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 그대와 함께 있는 것처럼 그대의 마
음도 그런가?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겠다. 만일 그렇다면 서로 약속하
자. 의견이나 말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파괴하지 말자. 그대는 하나
님을 사랑하고 섬기는가?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그대에게 우정의
오른손을 내놓는다. 그리스도 안에 어떤 권면이나 사랑의 어떤 위로나
성령의 교제나 연민과 자비가 있다면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노
력하자.


----감리교인의 성격에서, 존 웨슬리






경고와 지침


1. 자랑하지 않도록 계속 기도하라.


2. 열광주의를 조심하라.


3. 신앙을 가지고 율법을 폐하거나 율법의 어느 부분 만을 폐하는
반율법주의자들을 조심하라.


4. 행하지 않는 죄를 주의하라.


5. 하나님외에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6. 교회내에 분열을 조장하는 분파를 주의하라.


7. 자신의 잘못을 감추지 말고 지도자에게 고백하라.




--- 감리회 신도회내의 위대한 고뱍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와 지침
웨슬리의 창의적 종합(Both -and) --- 콜린 윌리암스


카톨릭의 강조: 사제들이 충실치 않다하여도 그리스도는 교회를 버리지 않으
시며, 그가 마련한 성례전에 계속해서 늘 임재하신다.


고전적 개신교의 강조: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순수한 증거는 사람을
불러 신자되게 하는 새로와지는 사건이 필요하다.


자유교회의 강조: 참신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위하여 성령 안에서 살
면서 성장하기 위해 함께 모여야만 한다.


감리교회의 표준 : 성서 て 전통 て 이성 て 경험


한국 감리교인 : 진정한 기독자, 진정한 감리교인, 진정한 한국인
-- 웰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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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의 선행은총론(先行恩寵論)




1. 머리말

2. 은총의 개념

3. 선행은총의 의미

4. 웨슬리와 선행은총

5. 구원을 위한 예비은총으로서의 선행은총

6 선행은총의 작용

7. 선행은총의 요소 : 선행은총과 원죄 / 선행은총과 이성 / 선행은총과 율법 / 선행은총과 양심 / 선행은총과 자유의지

8. 선행은총의 보편성

9. 선행은총과 구원 : 이방인의 구원 / 어린아이와 정신이상자의 구원

10. 선행은총과 신인협력설

11. 맺음말




1. 머리말



선행은총은 구원론을 중심으로 하는 웨슬리 신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개념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웨슬리 신학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웨슬리에게 하나님의 은총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특히 웨슬리는 은총의 화두로 선행은총을 말하고 있다. 선행은총 없이 웨슬리 신학에서는 인간의 원죄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은 이성, 율법, 양심, 그리고 자유의지 등과 같은 속성들도 소유할 수도 없다. 이같은 인간의 속성들은 모든 인간에게 에외없이 보편적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이런 속성들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관계할 수 있는 접촉점을 구성한다. 이렇게 구성된 접촉점들을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응답할 수 있게 된다. 웨슬리에 의하면 이러한 모든 속성들은 하나님의 선행은총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웨슬리 신학의 체계는 원죄와 선행은총을 근간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웨슬리 신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선행은총론의 내용을 살펴서 차후에 논의될 인간론의 전이해로 삼고자 한다.


2. 은총의 개념




웨슬리 전문 신학자 아우틀러(A. Outler)가 진술한바와 같이 은총이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활동"이다. 은총은 인간의 실존을 향한 하나님의 행동하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은총'을 이야기할 때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는 '사랑'을 전제한다. 따라서 은총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행동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리고 우리를 전적으로 성화시키기 위해서 성령 안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정의 될 수 있다. 웨슬리도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은총으로 보았다. 은총의 본질은 사랑이다. 사랑은 강제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강제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본질도 아니고 사랑의 본질도 아니다. '사랑으로서의 은총'은 일반적으로 '신적인 사유와 용서', 또는 '우리 본성을 갱신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이 은총을 받으면 하나님의 용서와 사유가 있게되고 또한 인간의 갱신을 동반한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유 그리고 인간의 갱신을 동반하는 은총은 인간의 구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은총없이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구원받은 자는 어느 누구나 다 하나님의 은총아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은총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우선적으로 요청된다. 은총이란 죄인인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베푸시는 지배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하기 때문에 웨슬리에게 있어서 은총은 구원의 근원(foundation)이요. 신앙은 구원의 조건(condition)이 된다.




3. 선행은총의 의미


선행은총에서 '선행'의 의미는 착한 행위의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보다 앞서, 먼저, 예비하는' 뜻으로서의 선행(先行)을 의미한다. 따라서 선행은총은 보다 먼저 오는 은총(grace that goes before), 우리의 회심이전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은총, 구원받기 이전에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가는 은총, 즉 아직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이다(롬 5:8). 인간이 구원받기 이전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인간에게 역사하고 있으며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며 구원을 준비시킨다. 이러한 은혜를 웨슬리는 선행은총(prevenient grace)이라 한다. 또한 선행은총은 만인을 위한 은총(universal grace)이며 만민 안에 작용하는 보편적 은총이다. 뿐만 아니라 거저 주시는 은총으로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골고루 주시는 은총이다. 따라서 인간이 간구하기 이전부터 이미 인간 자체 안에 주어져 존재하는 은총, 즉 미리 역사하는 은총이다. 타락한 인간일지라도 이 은총밖에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선행은총 없이 존재하는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선행적으로 값없이 만인에게 주시는 선행은총은 주로 이성 또는 자기결정을 위한 자유의지 등의 '정신적인 본성'과 도덕적으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 '자연적 양심'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어느 정도의 욕망을 말한다.


아담의 타락으로 원죄아래 있는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지향할 수 없으므로 구원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은총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에게 유일한 희망은 인간 자체에게는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행은총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께 의존해야 하고 하나님께 응답하기 위한 최소한의 은총이다. 따라서 선행은총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역사와 성령께서 때때로 모든 사람에게 역사하며 깨닫게 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4. 웨슬리와 선행은총


역사적으로 선행은총에 대한 구체적 신학적 개념은 터툴리안(Tertullian),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오리겐(Origen), 키프리안(Cyprian) 등과 같은 초대 교부들의 신학자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펠라기우스(Pelagius)는 "선을 향한 인간의 본래의 타고난 능력"을 선행은총으로 생각하였으며, 어거스틴(Augustine)도 역시 은총은 모든 것에 선행한다는 선행은총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은총은 인간이 선을 행하기 이전에 선행하며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선행하는 은총에 뒤따른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총이 먼저 선재하고 그 다음에 그 은총에 대한 인간의 긍정적 반응의 결과로 인간은 선을 행할 의지를 얻게된다.


웨슬리의 선행은총에 대한 사상은 초대고부로서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인 크리소스톰(Chrysostom, c. 347-407), 16세기 화란의 신학자인 아르미니우스(Jacobus Arminius(1560-1609), 그리고 16-17세기의 영국 국교회의 신학적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웨슬리는 크리소스톰으로부터 거저 주시는 은총(Free grace), 은총에 대한 응답의 필요성, 은총 안에서의 성장과 퇴보, 그리고 은총의 보편성에 대한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칼빈의 예정론이 성서의 가르침과 모순된다고 주장한 16세기 화란 신학자 아르미니우스로부터 예지에 기초한 조건적 선택과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반응에 따라 제한되는 만인구속설을 배웠다.


웨슬리의 선행은총의 교리는 먼저 인간의 전적 부패와 함께 모든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행은총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칼빈주의를 떠나 아르미니우스주의에 입각해서 웨슬리는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은 자유의지가 결여된 상태에 있다고 보았다. 자연인(The natural man)은 완전히 타락하여 전적으로 부패하였으며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인간이며, 이들은 구원의 능력이나 가능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았다. 이들의 자유의지는 악을 선택하는데만 자유롭기 때문에 이들은 진노의 자식이며 죄의 종이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간섭에 의하여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와 통찰력이 부여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이 배푸시는 구원에 대한 수용여부를 자유롭게 결단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있듯이 칼빈주의의 이중예정론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에 의하여 구원받은 인간과 멸망받을 인간을 구별한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칼빈주의와는 달리 하나님은 인간이 멸망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웨슬리는 아르미니우스의 이러한 견해는 성서가 말하고 있는 바와 일치한다고 보았다. 웨슬리는 성서도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계심을 말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멸망을 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행은총으로 주신 우리의 자유의지를 인간이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웨슬리는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주장과 같이 인간은 선행은총에 의하여 도덕적인 상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의 계시와는 별도로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행은총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고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5. 구원을 위한 예비은총으로서의 선행은총


웨슬리는 인간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데 신학적 관심을 두고, 인간이 택해야 할 길을 보여주며, 그 길을 걷도록 도와주는 '은총'을 제시해 준다. 웨슬리는 선행은총이 구원의 출발점으로서 기능한다고 생각하고 "구원은 일반적으로 선행은총과 함께 시작된다"고 말하였다. 의심할 바 없이 "웨슬리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과 이에 대한 인간의 적응에 관한 것이다." 웨슬리 신학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은 하나님의 선행 은총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양심과 같은 선행 은총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간접적으로 계시하시고, 그 다음에 복음의 은총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다. 따라서 선행은총은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웨슬리에게 있어서 구원은 선행은총과 함께 시작된다. 실제로 구원의 과정에서 은총의 역사는 선행은총(Prevenient grace)으로부터 시작한다. 웨슬리 신학에서 구원의 순서는 1) 선행은총의 역사, 2) 칭의 전의 회개, 3) 칭의, 4) 신생, 5) 칭의 후의 회개와 점진적 성화, 6) 완전성화의 순서를 따른다. 구원의 순서에서 보듯이 선행은총은 구원의 첫 단계에 서있다. 따라서 선행은총은 웨슬리의 구원단계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구원의 시작이 선행은총이라면 선행은총의 목표는 구원이다. 선행은총은 넓은 의미에서 구원의 시작일 뿐이지 실제적으로 구원의 사건(칭의, 중생)을 일으키는 은총이 아니며 더군다나 구원의 완성을 가져오지 않는다. 선행은총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사역에 있어서 일시적이고 제한된 정도에서만 적용된다. 인간의 본질적인 변화는 선행은총을 넘어서 하나님이 인간을 신앙으로 일깨워 사랑의 힘을 갖게 하는 새로운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비추는 선행은총의 빛으로 구원의 완성은 불충분하다. 웨슬리는 영국교회의 열번째 조항에 의거하여 선의 실행은 선행은총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 선행은총은 신앙에 의해서 시작된 은총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구원을 위한 예비적 은총에 불과하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충분한 은총은 될 수 없다. 선행은총은 단지 구원의 시작과 완성 전체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으로서 구원을 위한 예비은총으로 기능하지 구원 자체를 위한 충분한 은총으로 기능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6. 선행은총의 작용


하나님의 선행은총의 작용으로 나타난 결과 가운데 무엇보다도 제일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깨달음을 촉발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선행은총이 가져오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감각을 일깨워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로서 우리의 찬송과 기도가 살아나고 성경 말씀이 역동적으로 우리의 삶에 다가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율법과 양심과 이성 등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게 하는 것은 선행은총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선행은총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선행은총의 작용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에 우리 자신의 의지를 구사하여 은총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다. 선행은총의 작용으로 받은 능력은 부정적 능력과 수용적 능력 모두를 포함한다. 따라서 인간은 매순간마다 은총에 순종할 수 있고 반항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을 갖게된다. 이런 능력으로 인간은 회개에 이르게 되어 구원을 향한 첫 걸음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행은총의 작용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응답의 능력은 인간을 책임적 존재가 되게 한다.


셋째로 선행은총의 작용으로서 우리의 양심과 이성, 그리고 의지의 자유 등이 회복되어있다. 인간이 현재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 양심, 선악 개념, 하나님과 내세(구원)에 대한 소망 등은 선행 은총에 의해 회복된 은혜의 선물이다. 성령을 통하여 활동하는 은총은 인간으로 하여금 선행은총으로 이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한다. 타락에 의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은 선행은총에 의하여 부분적이나마(자연적, 정치적 형상) 회복되어 타락전후의 인간성은 연속성을 지니게 된다. 선행은총은 사실상 아담 이후 인간이 의롭다고 인정되기 전부터 역사하고 있었으며 그 결과 그리스도의 대속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져 타락으로 완전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이 부분적이나마 회복된 것이다. 선행 은총은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이 예외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먼저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7. 선행은총의 요소


선행은총의 요소들은 주로 인간의 자유의지, 분별력, 양심, 율법 등을 들 수가 있다. 웨슬리에 의하면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이 주신 선행은총의 요소들을 가지고 인간이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를 영접하며, 의와 불의, 진리와 비진리를 식별하고, 양심을 통하여 악을 깨달아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다고 하였다. 회심 또는 회개는 하나님이 주신 선행은총에 의해 시작된다. 즉 선행은총에 의하여 진리이신 예수님을 분별하고 영접하여 죄사함을 받고 의인으로 칭함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므로 회개와 의인의 반열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행은총에 의한 것이다. 그러면 선행은총으로 회복된 요소들과 그 관계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선행은총과 원죄


웨슬리에게서 원죄는 인간의 죄책과 죄성을 말한다. 이 원죄는 영원한 사망을 초래한다. 그러나 웨슬리에 의하면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원죄 때문에 죽지 않는다. 만약 죽게 된다면 그것은 원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 개인이 의도적으로 지은 자범죄로 인한 것이다. 따라서 개인이 영원한 죽음을 당하는 것은 원죄 때문이 아니라 자범죄 때문이다. 선행은총에 의하여 원죄의 죄책은 태어나자마자 제거되었다. 원죄의 죄책은 나의 의지와 상관이 없이 지워진 연대책임이라면 원죄의 죄책 역시 선행은총에 의하여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연대사면된 것이다. 원죄의 죄책이 연대 사면될 수 있는 근거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이다. 선행은총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만인에게 적용되게 함으로써 만인은 원죄의 죄책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선행은총과 이성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상실되었을 때 이성도 본래 기능을 상실하였으나 선행은총으로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이성은 이해력, 판단력, 토의력의 기능을 수행하는 능력이다. 선행은총으로 회복된 이성을 통해 인간은 어느 정도 신을 알게 된다. 회복된 이성이 신인식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성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선행은총 안에서의 이성은 계속되는 하나님의 은총인 믿음을 통하여 일깨워지는 이성이 되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찰하게 한다.


이성은 다음의 세 가지 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첫째, 지각(perception)으로서 마음에 사물을 느끼게 한다. 둘째, 판단(judgement)으로서 인식을 서로 비교한다. 셋째, 담화(discourse)로서 하나의 판단으로부터 또 다른 판단에 이르는 마음의 진보를 이룬다. "이성은 어떻게 사물들이 서로 작용하는지를 파악하게 한다. 즉 질서와 관계를 식별하게끔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올바르게 판단을 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게 한다."


선행은총에 의하여 인간은 어느 정도 합리성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과 세계를 향한 인간 실존이 취해야 할 태도는 신앙과 합리성이다. 인간이 합리성이 있다고 하여 모든 것에 대하여 합리성을 추구할 수 없다. 인간은 세계에 대해서 신앙적 태도를 취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에 대해서 합리적인 태도로 접근해서도 안된다. 인간의 세계에 대한 태도는 합리성에 있다. 세계는 피조물이지 신이 아니다. 따라서 세계에 대한 신앙적 태도는 상대의 절대화, 우상숭배인 것이다. 그러나 세계관리는 신앙적이 아닌 합리적으로 해야한다. 따라서 인간은 세계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이성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선행은총으로 주어진 이성은 기독교 진리를 해석하는데 필요불가결의 도구이기는 하나 기독교 진리의 내용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선행은총과 율법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선이 무엇인지 분별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의 마음속에 부분적으로 다시 하나님의 법을 주셨다.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과 동시에 내면의 율법인 도덕법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하셨다. 이것이 선행은총이다. 어느 정도 회복된 도덕법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선행은총이 작용한 결과이다. 선행은총이 구원의 충분한 은총이 아니듯이 선행은총으로 주어진 율법도 죄를 깨닫게하며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역할만 하지,. 죄인을 의롭게하여 구원을 얻게 하지는 못한다.




선행은총과 양심


우리는 본질상 죄 중에 죽어있는 상태에 있지만 어느 누구도 자연적 양심을 져버린 사람은 없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으로부터 우리는 양심을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에게나 양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양심이 모든 사람에게 발견된다는 의미에서 양심은 자연적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적 인간이 지닌 양심은 웨슬리에 의하면 자연적이 것이 아니라 자연적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초자연적 선물인 선행은총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양심과 선행은총을 동일시하고 죄인이 지닌 양심을 선행은총의 증거로 본다. 웨슬리에게 양심이 모든 사람에게 발견된다는 점에서 자연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사실상 자연적 양심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양심은 우리의 기질, 생활, 사고, 언어, 행동의 본성과 본질을 통찰하고, 어떤 기준에 의하여 우리가 행동해야 할지를 인지한다. 양심은 하나님의 명령과 관계되어 자기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능력이다. 양심은 제한된 정도로 의와 불의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웨슬리는 이 양심을 "세상에서 온 모든 영혼에게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그들의 마음이나 삶, 그들의 견해, 사상, 말과 행실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혹은 힘"이라고 정의하였다.


웨슬리는 선과 악을 구분하여 선을 위하여 자신을 결단하는 인간의 능력은 좌우간에 하나님의 은사임을 확신한다. 양심은 인간 자신의 견해와 행동에 대한 판단의 능력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양심을 따를 때 만족감을 얻으며, 거부할 때 불안을 느끼게 함으로써 어떤 방향으로의 행동을 유도하는 도구로 양심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인간이 양심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면 양심은 무디어 지고, 양심에 순종하면 그 양심은 더욱 새로워진다.


웨슬리는 양심을 선한 양심(good conscience)과 부드러운 양심(tender conscience), 그리고 굳어진 양심(harden conscience)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는데 선한 양심은 하나님을 향한 양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을 가로막는 것을 피하는 양심이다. 부드러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날 때 즉각적으로 후회하고 자기를 반성하여 탄식으로 크게 부르짖게 하는 양심이다. 굳어진 양심은 하나님의 금하신 것을 행하는 화인맞은 양심이다.


윌리암즈(C. Williams)는 인간은 선행은총에 응답하고 자기의 양심에 복종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피력하였다. 웨슬리에 의하면 양심을 가진 인간이 범죄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은총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은총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선행은총의 사용이 인간의 공적이라고 믿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보급된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응답이 되고, 또한 구원의 길은 하나님이 그의 은총으로 우리를 계속적으로 북돋우어 줄 때에만 열려질 수 있다." 인간은 선행은총으로 주어진 양심을 부인하면 구원에서 멀어진다. 양심도 이성이나 율법처럼 구원의 은총이 아니다.


런연(Theodore Runyon)은 선행 은총 안에서의 양심의 역할을 이렇게 말한다; "양심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으며, 우리 죄의 심각성과 회개의 필요성을 일깨움으로 건강한 역할을 감당한다." 양심은 회개를 유발시킨다. 따라서 양심은 구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이로서 양심은 성령의 목적에 봉사하며 선행은총에 의해 사용되는 하나의 도구가 된다.




선행은총과 자유의지


웨슬리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책임적이며 하나님을 용납 또는 배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은 선행 은총을 통하여 응답 또는 반항 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선행 은총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용납 또는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속에 창조한다.


선행은총으로 우리는 선과 악을 택하는 자유, 즉 의지의 자유(Freedom of will)를 가지고 있다. 의지의 자유는 단순히 의지의 작용이 아니고 인간 영혼의 한 속성으로 각 영혼의 정서와 이성, 그리고 의지를 관장하는 능력이다. 이 자유는 인간의 영혼의 본성에 속하며 모든 인간- 신자이건 불신자인건-이 이 본성을 가진다. 이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선행은총에 의하여 회복된 것이다.


선행은총에 의해서 회복된 의지의 자유의 유용에 따라 선악의 행위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행동에 책임적인 존재가 된다. 인간은 강요받은 선택에 책임지지 않는다. 인간은 계속해서 도덕적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선행은총에 의하여 인간은 자신의 원죄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 따라서 인간이 원죄에 눌려 구체적으로 악한 마음을 가지고 죄를 범하게 되면 그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육체의 죽음은 거쳐야 하지마는 영원의 죽음을 피할 수 있는 힘이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행사하지 않은 인간의 무책임 때문에 그 형벌을 받는다. 인간의 주체성의 강조와 자유의지에 의한 결단에 대한 강조가 웨슬리 신학에서 눈에 띄게 나타난다.


신앙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지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웨슬리의 선행은총의 교리는 트렌트공의회(Council of Trent, 1545-1563)의 카톨릭 교회의 선행은총의 교리는 아니다. 로마카톨릭 경우는 인간이 하나님의 선행은총과 협력함으로서 사랑에 의하여 형성되는 신앙을 획득하게 된다는 다분히 사변적이다. 웨슬리의 경우는 유대교 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의 이해와 비슷하다. 자유와 결단과의 역설은 '나와너'의 만남의 중심에 존재한다. 자기결단의 한 복판에서 그 결단 자체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의 선물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속죄는 오직 택함을 받은 자에게만 유효하다는 칼빈의 예정설에 반대한다. 구원을 받음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개인의 책임을 주장한다. 인간이 자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으나 구원받으려는 열망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개인의 책임과 자유의지가 중시된다. 의지의 확립이 없는 어린아이에게는 선악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본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선행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그들이 져야한다. 웨슬리는 알미니우스주의의 신인협력설을 따라, 무조건적 선택설이 아닌 조건적 선택설을 수용하였다. 선행은총과 의지의 자유의 문제는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응답에 대한 문제로 발전하여 웨슬리의 신인협력설로 발전된다.




8. 선행은총의 보편성


타락으로 인하여 도덕적 형상이 상실된 인간은 죄짓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개입 없이, 인간 자신의 어떠한 종교적 또는 도덕적인 노력을 통해서 자신의 본질적 변화를 시도할 수 없다. 자연적 인간은 사랑에 대해 무능력하며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하다. 자연적 인간의 상태를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1) 영적으로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한다. 2) 신적인 것에 대한 어떤 인식도 불가능하다. 하나님에 관하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3) 복음적 성화에 관하여 어떤 표상도 갖고 있지 못하다. 3)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는 행복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결과는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점을 모르고 따라서 그가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웨슬리는 선행은총이 없는 자연적 인간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한다. 모든 인간은 선행은총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 신학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멀리 떠나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완전히 이탈된 자연적 상태의 인간은 없다. 따라서 "인간이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은 선행은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받은바 은혜를 올바르게 간직하여 이를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을 따르고 악을 버리라는 요청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요청도, 이성과 합리성을 존중하라는 요청도, 이 요청을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도 모두 선행은총의 활동인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성령의 선행적 역사를 회심 시기에 한정하고 있는데 웨슬리는 사람이 세상에 출생할 때에 이미 인간 안에 성령이 역사하고 있다고 보았다. 즉 선행하는 성령의 역사가 회심에로 인도한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신앙을 성령을 통하여 처음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이해한 까닭에 신앙이전에 생기는 죄의 확신과 회개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칼빈은 회개를 중생과 동일시하고 그 양자를 신앙 이후에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웨슬리는 인간이 회심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는 접촉점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인간은 보편적으로 주어진 접촉점 즉, 선행은총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도적인 구원의 행위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사는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각각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부여되어졌다는 것이 웨슬리의 확신이다. 기독교적인 선행들의 어느 정도는 하나님의 선행은총의 활동에 의해 의롭다함을 받기 이전의 인간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양심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모든 이슬람교도들과 모든 이교도들 심지어 야만인들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양심은 선행은총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선행은총에서 제외된 인간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웨슬리 신학은 인간이면 누구나 선행은총을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선행은총의 보편성을 주장한다.




9. 선행은총과 구원




이방인의 구원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만으로 인간이 의인(義認)될 수 있다면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의 구원의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서 웨슬리는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웨슬리는 세상에서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그리스도는 그들 속에 감추어진 방법으로 역사하신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들은 이 은총에 대한 반응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고 믿었다. 도덕은 그리스도인은 물론 기독교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존재한다. 그러나 도덕은 그리스도인에게는 구원을 위해 힘을 발하지 못한다. 성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하나님은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이교도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우리는 기독교 밖에 있는 사람들 - 이교도나 이슬람교 등 - 이 모두 저주를 받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의 운명은 하나님께 있다. 기독교권 밖의 사람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근거를 웨슬리는 그들의 도덕성에 두고 있다. 웨슬리는 이에 대한 근거를 그의 선행은총의 교리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분명히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받으실" (행 10:35) 것이기 때문이다.


런연은 웨슬리가 미국 감리교회에 보낸 종교강령(the Articles of Religion)에서 영국 교회의 제18조 강령("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얻는 영원한 구원에 관하여")을 뺀 것으로 보아 하나님은 이교도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냐 거부하느냐에 따라서 심판하지 않고 그들이 받은 은혜로운 계시의 빛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에서 복음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역사 하신다고 본다. 복음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그들 속에 감추어진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이 은총에 대한 그들의 반응에 따라 심판된다고 믿는다. 웨슬리는 복음을 들은 적은 없으나 그들의 영혼 속에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선행 은총의 역사에 응답한 자들은 그 응답의 열매로 의인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고백하기 이전의 인간도 성령의 예비적인 역사에 응답함으로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것을 종용받는다. 그러나 익명적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주님의 완전한 계시에 의하여 구원을 받게된다. 이런 면에서 린드스트롬(Lindstrom)이 말한 바와 같이 웨슬리에게서 자연신학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계시 이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웨슬리에게서 찾아 볼 수 없다.


웨슬리의 선행은총은 모든 이에게 역사하신다. 웨슬리는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그들 속에 감추어진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선행은총에 따라 심판된다고 믿었다. 즉 복음을 들은 일이 없으나 그들의 영혼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의 선행은총에 응답한 자들은 그들에게 종말에 나타날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신앙으로 칭의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와 정신이상자의 구원


어린아이는 원죄에 저항할 힘도 없으며 도덕적 분별력이 없으며, 의지적으로 죄를 범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 만약 이 상태에서 어린이가 죽는다면 그 어린이의 구원의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웨슬리에 의하면 어린아이는 원죄를 지니고 있을지라도 이 경우의 어린아이는 선행은총에 의해서 구원받는다고 보았다. 그 까닭은 선행은총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속죄 공로가 온 인류(어른, 어린아이 모두)의 죄책을 사면해 주기 때문에 어린아이에게는 선행은총이 구원의 은총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는 도덕적 무능력자, 정신박약아, 정신이상자에게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어린아이에 해당되기 때문에 구원받는다고 본다. 따라서 선행은총이 어린이에게 구원의 은총이듯이 이들에게도 선행은총은 구원의 은총이 된다.




10. 선행은총과 신인협력설


이미 구원의 출발점이 하나님의 선행은총임을 밝혔다. 그러나 선행은총은 구원을 위한 예비은총이지 구원의 충분은총이 아니다. 선행은총의 개념은 인간이 구원을 얻기위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이룸에 있어서 책임을 진다. 왜냐하면 선행은총으로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므로 인간의 멸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게 되기 때문이다. 은혜를 받고도 활용하지(응답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다. 웨슬리는 칼빈주의의 예정론도 선행은총론으로 인하여 배격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점에서 칼빈과 웨슬리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은혜의 역사 방법에서 다르다. 칼빈에게 은혜는 제한적이며 특수적이다. 웨슬리와 칼빈의 차이점은 선행은총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응답할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의 책임이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좌우되므로 인간에게 책임이 없으나, 웨슬리는 모든 사람이 선행은총으로 자기의지의 결정에 따라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선행은총의 개념은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한다. 누구나 하나님의 선행은총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갈 수 있으므로 인간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다. 은총에 응답하면 구원이요, 거절하면 멸망이다. 이 점에 있어서 인간은 하나님과 협력한다. 은총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구속사업에 협동하는 것이다. 인간이 선행은총을 상실하지 않으려면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선행적인 활동에 상응하게 행동해야 한다. 따라서 웨슬리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통한 구원의 작업에 인간의 동참은 필연적이다. 웨슬리의 사상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먼저 하나님의 선행은총이 있어야 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의 의지 속에서 응답해야 한다. 성령은 인생의 각가지 단계에서 죄로부터 성결에 이르기까지 지도하신다. 인간은 성령의 역사에 협력해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총과 자유의지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복음적 신인협력설(Evangelical Synergism)이다. 그러나 웨슬리가 주장하는 신인협력설은 반펠라기우스주의나 중세 카톨릭의 주장처럼 하나님의 협력과 인간의 협력이 절반씩 나눠 맡는 협력이 아니다. 웨슬리의 신인협력설은 구원의 주도권은 언제나 하나님에게 있으며 인간은 그 주도권에 대한 인간의 응답적 능력을 강조한다.


콜린 윌리암즈(Coollin Williams)는 인간이 선행은총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응답하는 것을 인간의 공적이나 수고의 행위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복음적 신인협력설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책임있는 위치에서 함께 호응하여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선행은총은 구원의 시작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으며 웨슬리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어거스틴이나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상통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웨슬리는 기본적으로는 칼빈주의의 하나님으로부터 오시는 은총에 대하여 동의하지만 칼빈주의적인 은총관은 자유를 포함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지 않을 수 있음을 말하였다. 웨슬리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라 동방교회 교부들에게 나타나는 '협동적인 은혜'를 추종하였다. 즉 "우리 없이 우리를 창조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없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말한 어거스틴과 같이 구원의 모든 단계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협력하는 신인협력(synergy)을 주장하였다.


청교도들은 39개조 종교강령 중 제17강령, "예정과 선택에 관하여(이 강령은 웨슬리가 미국 감리교회가 사용하도록 보낸 종교강령에서는 제외시켰다)"라는 교리에 의해서 예정론의 합당함을 주장했다. 웨슬리의 추종자들 가운데서도 이 예정론에 설득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조오지 휫필드(G. Whitefield), 헌팅톤 여사(Huntington), 웰쉬의 칼빈 감리교 연회(Welsh Calvinist Methodist Conference)와 후에는 찬송가 작가인 어거스트 톱 레이디(A. Toplady) 등이 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며 불가항력적인 칙령의 능력에 의해서 한 부류의 인간은 확실히 구원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확실히 멸망한다"는 예정론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나타나는 약점에 대해서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1) 모든 설교가 헛될 것이다. 설교에 상관없이 선택받은 자는 구원받을 것이요 선택받지 못한 자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예정론은 모든 설교를 헛되게 만들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령인 설교를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청한 거룩성을 파괴시킬 것이다. 예정의 교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룩한 삶에 대한 지향성을 삭감시킬 수가 있다. 3) 기독교의 행복과 종교의 위로를 파괴할 것이다. 이미 예정되었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행복과 위로를 찾을 수 없다. 4) 선한 일을 위한 열심을 파괴하여 버릴 것이다. 우리의 선행과 사랑을 줄어들게 한다. 왜냐하면 이미 멸망으로 예정된 자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의미는 물론 열매도 없기 때문이다. 5) 예정의 교리는 우리의 복되신 주님을 위선자요 백성을 속이는 분으로 나타낸다.


웨슬리에 의하면 칼빈주의자들의 근본적인 잘못은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미리 결정하신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자유를 위한 준비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죄를 지을 것을 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가 죄지을 것을 아시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죄를 짓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것을 아시는 것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웨술리는 선행은총을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유로이 응답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유의지의 결단에 따라 하나님께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였다. 물론 구원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으나, 웨슬리는 칼빈주의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주도권에 대한 강조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주도권에 대한 인간의 협력적 응답을 강조하여, 구원의 각 단계마다 인간과 신이 함께 협력하는 신인협력의 길을 열어 놓고 있다.

11. 맺음말




웨슬리의 은총 개념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개념으로 출발한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서의 은총은 무조건적으로, 값없이, 선행적으로, 보편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다. 이러한 은총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웨슬리의 선행은총이다. 웨슬리의 선행은총론은 구원을 위한 예비은총의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이 예비은총은 만인에게 주어진다는 의미에서 보편적 은총의 성격을 지닌다. 웨슬리의 선행은총론에서 중시되는 것은 하나님의 선행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적 책임이다. 인간이 선행은총으로 회복된 형상들을 통해서 인간이 응답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책임 사상은 기독교 신학의 중심이 된다. 웨슬리의 신학을 인본주의로 오해하는 것은 은총안에서의 응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응답인 책임은 언제나 은총안에서 이다. 인간의 자력에 의한 회개의 행위에 의하여 구원이 성취되지 않는다. 죄의 자각을 획득하는 것도 하나님의 선행은총에 의한 것이지 인간의 자력적 행위는 아니다. 선행은총은 모든 외적인 경건, 회개와 선행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잠정적이고 상대적이다. 그렇게 때문에 선행은총은 구원을 위한 예비은총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한 보다 큰 은총이 요구된다. 이 은총은 영구적이며 절대적이며 지속적이다. 성령의 은총이 그것이다. 이미 부여된 선행은총 위에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구원을 얻도록 하는 믿음과 성화를 촉진시킨다. 이로서 선행은총은 구원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보다 계속적인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성령의 역사 속에 종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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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의 인간론 이해




I. 들어가는 말



독일의 세계적인 신학자 판넨베르크(Pannenberg)는 우리들은 인간학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오늘날 시급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묻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인간학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과연 인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인간의 정체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인간이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물음들은 인간이 언제나 추구해온 물음이지만 아직도 계속해서 묻고 있는 물음이기도 하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여섯째 날에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러나 그 창조된 인간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존재인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많은 학자들은 인간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생물학적 인간학, 타인과 비교함으로써 인간을 이해하려는 문화적 또는 인류학적 인간학, 신과 비교함으로써 인간을 이해하려는 신학적 또는 종교학적 인간학 등 다양한 인간학이 우리 시대에 연구되고 있으나 모든 인간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아직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의 생명공학 기술은 인간 게놈(genome) 지도를 완성하여 인간을 보다 생물학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나 인간은 단지 생물학적으로만 생각되어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이해의 시도 역시 인간 이해를 위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학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인간에 대하여 갖고 있는 가장 오래되고 믿을 만한 정보는 초기 원시인들이 고대의 동굴 벽에 그려 놓은 자신들의 그림과 동물들의 그림들뿐이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인간이 언제 어떻게 기원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확증적인 결론을 맺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의 기원과 연대에 대한 수많은 과학적 이론들은 매우 사색적이고 억측에 가까운 것들로서, 고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 몇 개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분석한 결과에 근거하고 있거나 유전학적 연구 결과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의 이성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이해하는데 제한되어 있다. 인간 이해의 이성적 제한은 신학적 인간학에 귀를 기울이게 하였고 또한 신학적 인간학에 의존하게 하였다. 신학적 인간학은 인간의 기원과 본성, 운명, 존재의의, 가치, 사명, 죄와 악 그리고 죽음 등에 대하여 성서적으로 이해한다. 웨슬리의 신학적 인간학은 인간의 기원과 성격에 대한 이해를 성서적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웨슬리 당시 이성은 진리의 기준과 심판이었다. 이성에 기초한 합리주의가 시대정신이 되었고, 그 결과 기독교에도 이신론(Deism)이 성행하였다. 그러나 웨슬리의 인간론의 대원칙은 자연질서가 아닌 영적질서 안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이해를 기본구조로 하여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되고 하나님의 선행은총에 의하여 다시 그 형상이 회복되는 구원론적 인간론을 전개한다. 웨슬리는 인간을 구원의 대상(사랑의 대상)으로 보면서, 인간이해의 핵심을 '하나님의 형상'에 두고 있다. 이런 웨슬리의 인간 이해는 그의 복음사역의 동기와 목적을 제공한다. 감리교회의 창설자인 웨슬리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오늘의 신앙적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삶을 진단하게 하고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르게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웨슬리의 인간론에 대한 연구는 현대를 사는 감리교인의 인간관의 본질을 조명해 주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본고에서는 웨슬리가 이해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이란 개념을 통하여 조명해보고자 한다.




II.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본래적 인간




우리가 인간을 이해하려 할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을까? 덴마크의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키에르케고르(S ren Kierkegaard)는 "사람이 사람됨은 그가 하나님과 관계를 갖고 있다는데 있다"고 하였다. 신학적 인간학이 이야기하고 있는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심미적 존재, 윤리적 존재, 종교적 존재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웨슬리는 그의 설교 "종의 영과 양자의 영"(The Spirit of Bondage and Adoption)에서 자연적 인간의 상태와 율법아래 있는 인간의 상태 그리고 은총아래 있는 인간의 상태로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자연적 상태(Natural State)에 속한 인간은 죄의 종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죽음에서 잠자고 있는 상태의 인간이다. 이 상태의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암흑상태에 있는 인간이다. 이 상태의 인간들은 죄에 대한 싸움도 없으며 또한 그로 인한 승리도 없다. 이들은 거짓 평화를 누리며, 고의로 죄를 범한다. 웨슬리는 자연적 상태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자신이 함정에 빠져있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세상의 쾌락을 탐한다. 그는 날마다 죄를 짓기에 언제나 죄의 종이다. 그러나 그는 마음의 근심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얽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율법적 상태(Legal State)의 인간은 죽음의 잠으로부터 깨어난 상태의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고의로 죄를 범하지 않는다. 이들은 죄와 싸우기는 하나 죄를 극복 또는 정복하지는 못한다.


복음적 상태(Evangelical State)에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된 인간의 상태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찬 빛을 보고, 평화와 자유를 즐기면서, 죄를 범하지 않고, 죄와 싸워 이긴다. 그러나 복음적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어떤 때는 율법적 상태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 이전 단계인 자연적 상태의 특징을 경험한다. 따라서 복음적 상태의 인간은 선천적 상태(자연적 상태), 율법적 상태로 전락하여 다시 한번 이전의 회개를 필요하게 될 위험성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상태로 갈 위험성을 언제나 지니고 있다.




1. 인간 창조와 하나님의 형상


전술한 바와 같이 웨슬리의 인간론의 관심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불가분리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이런 관계성의 출발은 웨슬리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로 이해하고 있는데서 찾아볼 수 있다(창 1:27). 웨슬리는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영원성의 형상' 즉 부패하지 않는 영광의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으셨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웨슬리 인간관의 핵심이라고 웨슬리 연구의 대가인 아우틀러(Albert Outler)는 주장하였다.


인간의 창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의미한다. 인간 창조에 앞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협의가 있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1:26,27)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협의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이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형상을 갖고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여기서 주목 할 사항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다고 해서 하나님을 그대로 복제해 놓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며 또는 하나님이 될 수도 없다.




2.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


웨슬리 연구의 대가인 데오도레 런연(Theodore Runyon)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을 통한 새로운 창조가 바로 기독교의 핵심임을 웨슬리를 통하여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데오도레 런연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은 타 피조물과는 달리 인간만이 지니는 어떤 재능이나 능력, 즉 이성이나 양심 등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웨슬리가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이와는 달리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어떤 재능이라고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살아있는 관계성이라고 보았다. 런연은 웨슬리가 의미하고 하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관계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런연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비록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긴 하지만 그 자체에 의해서 영위되는 독립된 인자(因子)가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받아야 할 어떤 인자로 본다.


웨슬리는 창조된 인간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을 세 가지 형상으로 설명한다. 첫째 형상은 자연적 형상(the natural image of God)으로 인간은 영원한 존재로서 불사(不死)의 존재이며, 이해력과 의지의 자유 그리고 사랑의 감정의 기능을 지니고 있는 영적 존재(Spiritual Being)로서 고통을 경험하는 일이 없는 존재임을 말하는 형상이다.


런연은 하나님의 형상의 제1의 특성이 자연적 형상이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자연적 형상이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의식적인 관계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영이신 것과 같이 자연적 형상은 영으로서의 형상을 말한다. 이 형상의 기본적인 자질로서 '이해'(understanding 혹은 이성) '의지'(will, 혹은 결단), '자유'(freedom, 혹은 해방)를 들 수가 있다. 이러한 자질과 기능들은 사물의 본질과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웨슬리는 아담이 자연적 형상의 첫째 기능인 '이해력'(understanding)에 있어서 완전하였다고 보았다. 만물을 분명하게, 신속하게, 그리고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아담의 완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의 이해력이 절대적으로 완전한 것이 아니고 그의 이해력은 한계가 있어서 한편으로는 무지하여 실수하거나 유혹 당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자연적 형상의 둘째 기능은 아담이 가지고 있는 '의지(will)'인데 이 기능은 다양한 감정을 유발하는 기능으로서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 등을 유발한다. 모든 인간은 이 의지를 통하여 감성의 활동을 한다. 이 중에서도 사랑의 감성은 모든 감성 중에 으뜸가는 감성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랑이듯이 태초의 인간은 사랑이 충만한 인간이었다.


자연적 형상의 셋째 기능은 '자유'(freedom)이다. 이 자유는 외적인 압력이 없이 스스로 선택하고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의지는 감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자유는 선택과 결단의 기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자연적 형상의 둘째 기능과 셋째 기능인 의지와 자유 이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만일 인간에게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선택과 결단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은 바람직한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가 있는 인간이야말로 사랑의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유가 없는 인간은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자유가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자유가 배제된 행위에 대하여 인간은 책임을 질 수 필요가 없 다. 자유하지 않은 사람은 단지 대리인에 불과하다. 후에 논의되겠지만 이 자유의지는 칸트(I. Kant)가 의도한 바와 같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초자연적인 것으로 신의 선물이며 타락한 피조물을 책임적인 존재로 설 수 있는 힘을 준다. 이런 자연적 형상들은 하나님을 형상화하고 반영해야 하는 소명을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이것을 남용하거나 오용하면 이것들은 쉽게 왜곡될 수 있다.


둘째 형상은 정치적 형상(the political image of God)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제2의 형상이다. 이 형상은 인간은 다른 피조물을 관리하는 능력(창 1:28), 즉 인간이하의 피조물들 - 즉 바다의 고기와 땅위에 있는 것들 - 을 다스리고, 인간들 사이의 교제를 합리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수행하는 존재임을 말하는 형상이다.


웨슬리에 의하면 다른 피조물(동물)도 어느 정도 하나님의 자연적 형상- 이해력과 감정과 의지- 을 공유하고 있지만 정치적인 형상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자질이라고 하였다. 정치적 형상은 한편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의 치리자라는 것을 증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의 치리자가 된다는 것을 증거한다. 정치적 형상이 주는 중요한 의미는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을 다른 피조물에게 중개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치적 형상의 기능이 바르게 행사될 때 짐승은 인간을 통해 행복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짐승은 인간에게 순종함으로써 만물은 행복을 누리게 된다. 이런 본래의 정치적 형상은 오늘의 생태신학과 생명신학의 현장에서 서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신학적 틀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도덕적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의 제3의 형상이다. 도덕적 형상은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의롭고 거룩한 존재임을 말하는 형상이다. 도덕적 형상은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과 같이 인간의 시조 아담에게도 사랑의 기질이 침투되어 아담의 사고와 행위의 지배적인 원칙이 사랑이었으며 죄에 대하여 무구(無垢)하였음을 말하는 형상이다. 따라서 도덕적 형상은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사랑, 자비, 정의, 진리, 그리고 성결의 품성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뜻하고 있다.


도덕적 형상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최고의 형상으로서 아주 민감하여 손상 받기 쉬운 형상이다. 이 도덕적 형상이야말로 인간을 타 피조물로부터 결정적으로 구별하는 형상이다. 인간은 이 도덕적 형상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예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이 형상은 인간의 거룩성을 의미하는 상징이기 때문에 인간의 자연적 형상과 도덕적 형상의 기능이 왜곡될 때 이들 형상은 완전히 상실되지 않지만 도덕적 형상은 완전히 상실된다. 따라서 도덕적 형상은 죄에 대하여 매우 민감한 형상이라 할 수 있다.


"도덕적 형상은 인간성 안에 있는 재능도 아니고 창조주를 떠나 독립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능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피조물들이 창조주로부터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고, 그 받은 것을 중개해야 하는 관계성 안에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형상은 영적 호흡에 해당되는 형상이다. 이 형상은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정의, 자비, 진리를 받아들이고 이것을 계속적으로 행사하고 더욱 교통해야 하는 형상이다.


웨슬리는 이 세 가지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서 도덕적 형상을 인간의 본래적 형상으로 보아 중시하였다. 왜냐하면 도덕적 형상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유성들 중에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우주 속에서 홀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특수성에 해당된다. 타 피조물들은 이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도 이 형상을 가지고 있느냐의 유무에 달려 있다. 인간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등의 피조물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진정한 차이이다.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인간의 완전이라면,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은 동물의 완전이다.




3.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본래적 인간의 특징


타락 이전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상태는 어떠하였을까? 타락 이전의 인간은 하나님이 그가 만든 세상에서 보시기를 원하는 가장 바람직한 인간 즉 본래적인 인간이었다.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은 사랑의 객체로서 우리 인간을 그의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다(요일 4:16).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유, 이성 등의 기능을 바르게 사용하여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였다. 바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나눌 수 있다는 이점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본래적 인간의 첫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이성, 감정, 의지가 아니라 인간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데 있다.


본래적 인간의 두번째 해당하는 특징은 거룩하고 무죄한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창조시 인간은 거룩하고 의로운 존재로 창조되었다. 창조시 인간의 본성은 거룩하고 성결했다. 따라서 창조 당시의 인간은 거룩한 인간이었다. 창조된 원 상태로서의 인간 즉, 타락이전의 인간은 의롭고 성결하였으며, 사랑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타락 이전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본래적 인간은 최초의 아담으로서 무죄한 인간이었다. 즉 최초의 아담은 원죄와 함께 태어나는 모든 인류와는 달리, 원죄 없이 창조되었다.


세번째 특징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으며 원죄 없이 태어난 본래적 인간은 신보다는 못하지만 모든 피조물중의 으뜸가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따라서 본래적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가운데서 무죄한 인간으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책임과 권리가 있었다. 웨슬리에 의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모든 피조물의 으뜸이며,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타락 이전의 인간의 원 상태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그분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거룩하고 무죄한 인간으로서 원의를 즐기며 피조물을 돌볼 책임과 권리를 갖고 있는 피조물 중 최고의 존재였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가치는 그가 하나님의 창조의지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유일한 존재로서 하나님과 영적 교제는 물론,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데 있다. 여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유일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타 피조물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존재의 가치를 지닌다.




4. 인간 창조의 목적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왜 인간을 창조하셨는가? 웨슬리는 인간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이런 목적을 위해 영광스럽고, 신비스럽게 창조된 피조물이다. 웨슬리는 "어떤 목적 때문에 생명이 사람의 자녀들에게 수여되었는가? 왜 우리는 세상으로 보내졌는가?"라는 물음에 "그것은 한 가지 목적, 즉 '영원을 준비하기 위하여"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오로지 이 목적 때문에 사는 것이고 그리고 이 목적 때문에 "생명이 주어졌고 계속 되는 것"이라고 웨슬리는 주장한다. 이처럼 웨슬리에게 있어서 인간의 창조 목적은 영생을 준비하기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위대한 창조주를 알고, 사랑하며 그를 섬겨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맡긴 자연세계와 은사를 활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종교개혁자이며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빈도 웨슬리와 같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간 창조의 목적으로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배우며, 우리를 강권하는 어떠한 궁핍에서도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온갖 선한 일들을 찾으며, 마음과 입으로 하나님만이 모든 선한 것의 창조자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하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에 의하면 극소수의 인간들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신뢰하고 경외한다고 보았다.




5. 인간의 구조


웨슬리는 인간은 몸(Body), 혼(Soul), 영(Spirit)의 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삼분설(Trichotomy) 보다는 육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이분설(Dichotomy)을 주장한다. 웨슬리는 인간 육체의 구성성분은 만물의 4성분인 흙, 물, 불, 바람으로 되어 있으며, 혼(Soul)은 생각, 판단, 상상, 기억 등의 오감의 능력을 갖는다고 보았다. 웨슬리는 인간은 물질적 존재만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라 보고 인간은 인간의 육체와 구별되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웨슬리는 인간을 구성하는 영혼의 정체를 '하나님의 형상'에서 찾는다. 하나님이 물질이 아니라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은 영에 속한다. 그런 까닭에 혼은 육(Body)과는 다른 존재로서 육체의 사멸 후에도 계속 존속된다. 육과 혼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부활 후에도 몸과 혼으로 구성된 존재로(영적인 몸) 있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웨슬리는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지 않지만 구별되는 것으로 보면서 이 영혼이 불멸을 확증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현재 육체와 영혼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듯이 부활할 그 때에도 다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될 것이라는 점을 웨슬리는 수용한다.


웨슬리는 육과 혼 이외에도 '영'의 요소를 추가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이라는 요소가 있다고 본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혼(Psyche), 육(Soma), 영(Pneuma) 중에서 영은 기독교인에게서만이 발견되는 하나님의 은사이고 이것은 초자연적 요소인 성령이라고 했다. 웨슬리도 바울과 같이 혼과 육을 인간의 자연적 구성 분자로 보고, 영은 기독교인에게만 발견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선물이라고 하였다.




6. 인간의 의지와 자유


웨슬리는 인간 영혼의 여러 속성들- 생각, 판단, 상상, 기억 등- 외에 '의지와 자유'를 또 하나의 심적 요소로 보아 이것으로 행동의 결단과 선악간의 선택을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의지(will)는 인간의 육체적 요소와 연관된 감정에 속하고, 인간의 자유(freedom)는 인간의 자기 결단의 능력에 속한다. 자유는 의지의 작용이 아니라 인간 영혼의 독립된 속성으로서 영혼의 모든 심리작용과 신체의 동작을 관장하는 능력이다. 자유가 결단의 능력이라면 의지는 행동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자유는 행동을 결단하며 선과 악을 선택한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이나 악을 택한 자유가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불변하게 창조된 것 아니다. 따라서 인간은 시험에 견딜 수는 있으나 타락하기 쉬운 존재다.


웨슬리는 본래적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속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이 완전한 인격적 피조물에게 완전한 법을 주시어, 그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완전한 복종을 하도록 요구하였다. 사랑의 법에 복종하면서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경험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 자신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게 된다. 웨슬리에 의하면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의 상실은 인간의 자유 남용에 의해 즉, 인간의 자유 의지를 바르게 행사하지 못함으로써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의지의 자유가 악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용한 인간이 악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의 자유의 오용으로 비롯된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의 상실의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관점을 인간의 타락과 죄의 문제로 돌려놓는다.






III.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타락한 인간


1. 인간의 타락




타락 이전의 인간의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었다. "인간에게는 창조주를 반사하고 반영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중개하는 자연적 형상, 정치적 형상, 도덕적 형상으로서의 최고의 역할이 주어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형상을 상실하게 되었다. 보다 현실적인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의 타락과 원죄에 대한 웨슬리의 이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처음 인간은 사랑이 충만하였으며, 그 사랑은 인간의 본성, 사고, 언어, 그리고 행동의 유일한 행동의 원리가 되었다. 사랑과 진리가 충만하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거룩하고 무죄한 인간이었다. 따라서 창조시의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자유, 이성 등의 기능을 바르게 사용하여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나누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시험에 견딜 수는 있을지라도 불변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타락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이었다. 창조시의 인간은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타락하게 되었다.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는 하나님의 통치에 반역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나누지 못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거역했다는 것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의 자유가 있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의 결정으로 창조주의 뜻 대신에 인간 자신의 뜻을 택하였다는 것은 곧 악을 택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선택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위이며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자신에게 수여된 자유의지를 오용하여 취해진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이러한 인간의 불순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어지게 하였으며, 이 관계를 깨어지게 한 인간의 불순종은 인간의 원죄가 되었다. 따라서 웨슬리는 죄의 기원을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의 불순종으로 보며 그것을 인간의 원죄로 보았다. 웨슬리는 죄의 도입에 관하여 마귀에게 그 원인을 돌린다. 웨슬리는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천사들 중 일부가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고 이 사탄은 뱀의 몸 안에 자신을 감추고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의 행복을 질투하여 인간을 유혹했다고 본다. 만약 인간의 범죄가 사탄의 유혹에 위한 것이라면 인간의 범죄에 사탄이 책임이 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웨슬리는 비록 뱀이 유혹했을지라도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때까지는 유혹은 단지 유혹(temptation)일 뿐이며, 하나님은 아담에게 절대적인 자유를 주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선택은 인간의 책임적인 결단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죄는 인간 본성의 창조적인 독립적인 행동이며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이다. 따라서 죄의 기원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인간 자신 안에 있는 것이다.




2. 인간의 원죄와 유전


아담은 전 인류의 시조이기 때문에 전 인류의 운명은 아담에게 의존되어 있다. 모든 인류의 대표자인 아담이 범한 최초의 범죄는 모든 인류를 대표해서 지은 죄였다. 따라서 아담의 타락과 그 죄책은 전 인류에게 전가되었는데 이것이 곧 인간의 원죄이다. 웨슬리는 이 원죄를 계속번지는 고집스러운 악이라 했다. 원죄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하려는 인간의 오만스러운 죄악이며 인간의 활동을 통해 죄를 창조하는 죄이다. 웨슬리는 모든 죄의 뿌리는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려는 욕망이라고 말한다. 독립과 자기충족은 하나님의 뜻을 싫어하여 하나님보다는 피조물 속에서 자기 자신을 성취하려는 고집으로 귀착된다(롬1:25). 인류의 대표자 아담이 계약한 하나님과의 약속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고, 순종하지 않으면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과의 약속에 실패하게되자 전 인류는 아담과 함께 타락하게 되었으며, 원죄로 인하여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였으며,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의 자식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그들 스스로 어떤 죄를 범하기 전에 이미 원죄성을 지니게 되었다.


원죄에 대한 교리의 중요성을 위해 웨슬리는 존 테일러(Dr John Taylor of Norwich)가 1750년 런던에서 출판한 "원죄의 성서적 교리"(The Scripture Doctrine of Original Sin)에 대한 답으로서 약 272쪽이나 되는 분량의 "원죄의 교리"(The Doctrine of Original Sin according to Scripture, Reason and Experience)란 책을 쓴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테일러(Taylor)는 죄를 개인의 행위로부터 보려한다. 개인의 행위는 반복을 통해 습관이 되고, 이 개인의 행위는 인간의 성향과 기질에 영향을 끼쳐 사람의 독특한 성격을 형성한다. 테일러는 인간의 죄는 환경의 영향으로 조성된 나쁜 습관의 결과라고 보았다. 나쁜 습관은 나쁜 교육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았다. 그는 죄는 인간 본성이 물려받거나 타고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테일러는 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는 악도 아니고 의도 아닌 중립적인 것이며, 중립에서 선과 악은 자유로운 선택에 의하여 어느 한 쪽의 계속적인 습관을 만들어 낸다고 하였다. 그는 이성과 의지의 힘이 어떤 모델이나 도덕적인 덕을 따른다면 죄로 향한 인간의 경향성은 극복되고 따라서 악의 세력은 점점 제거될 것으로 보았다. 테일러는 원죄는 인간의 책임성을 회피하게 하는데 인간의 책임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이 원죄의 교리는 사라져야 할 교리로 보았다. 그러나 웨슬리는 테일러와 같이 인간의 자유성과 책임성을 강조하지만 테일러와 같이 원죄의 교리를 사라져야 할 교리로 보지 않고 오히려 중시하였다. 웨슬리의 논리는 선한 행위가 행해지기 전에 인간 그 자체가 선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인 인간은 악한 행위만 반복한다. 이것은 인간 안에 원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웨슬리의 원죄사상은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견해, 즉 바울, 어거스틴, 루터, 칼빈의 사상과 거의 동일하다. 웨슬리는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그 성품과 영혼이 완전히 부패하였으며,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악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즉 인간은 범죄로 본래 소유한 하나님의 형상인 원의에서 떠나 본질상 악한 성향을 갖게된 것이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은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 나갈 희망도 없다.


타락한 인간의 인간성 그 자체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수여한 그 분과의 관계 복원이 없이는 회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시 한번 인간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질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회복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새로운 창조이며, 새로운 인간의 출현이다. 다시 인간들이 인간 창조의 원초적인 목적에 합치하려는 협력작용(synergy)이 존재할 때 새로운 인간의 출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성 그 자체로는 이 협력작용을 주도해 나갈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주도권은 인간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있기 때문이다.


원죄에 대해서 웨슬리와 칼빈은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원죄는 하나님이 미리 예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에게 유전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웨슬리와는 달리 칼빈은 원죄는 하나님이 미리 계획적으로 예정해 놓으신 것이라고 하였다. 웨슬리도 칼빈과 같이 인간의 전적타락(Toatal depravity)을 주장한다. 이에 대한 어거스틴(Augustine) 견해는 타락 이전의 아담은 순수한 자연 상태에 놓여있었던 것이 아니고 은혜의 도움 아래 있다고 보았다. 은혜의 도움이 아담을 그와 같이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였다. 타락 이전의 아담은 항상 죄를 범할 위험에 처해있는 위태로운 존재였다. 이에 반하여 웨슬리와 종교개혁자의 견해는 타락 이전의 아담은 초자연적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선의 상태 즉, 아담의 완전한 상태(Adamic perfection)를 주장한다. 타락 이전의 아담은 죄가 없는 전적으로 무흠한 존재, 이해력과 사랑 그리고 의에 있어서 완전한 존재, 타 피조물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었던 낙원에 사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같이 거룩한 존재였다.


원죄론은 웨슬리 신학에 있어서 중심적인 교리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 웨슬리는 구원론을 전개하면서 인간의 범죄사실을 중요시하며 인간의 죄의 진상과 범람하는 죄와 그 기원을 원죄로 설명한다. 웨슬리는 자신의 원죄를 아는 것은 은혜를 받은 이들에게만 알려진 진리라고 보면서, "이방인들은 전혀 자기의 원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웨슬리는 자기의 원죄를 아느냐의 유무가 이방인과 기독교인을 구분하는 근거가 된다고 하였다. 웨슬리는 자신의 죄를 자각하게 될 때에 구원이 시작된다고 보고, 그는 그의 설교 "원죄"(Original Sin)에서 '원죄'를 부정하려고 하는 자들은 이교도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따라서 원죄설은 기독교 교리의 중심교리이며 이것을 신앙하는 여부로 기독교와 이교를 구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웨슬리는 복음 선교를 할 때에 항상 청중이 죄인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여기에 기초해서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제시하였다.


아담은 인류의 원형 또는 대표이므로 모든 인류의 상태는 아담에게 달려있다. 그의 의지적 범죄로 모두가 타락하였고 고통, 슬픔, 온갖 불행을 상속하였으며, 또 죄성을 얻어 세상을 더럽히는 모든 죄와 악덕을 낳았다. 죄의 결과로 인간에게 죽음이 왔다. 어린이가 아직 범죄하지 않았어도 아담안에서 함께 죽음을 당한다. 이 죽음에는 영혼의 영원한 죽음도 포함된다. 이 퍼져나가는 원죄의 저주는 아담을 넘어 모든 사회적 관계와 조직 및 피조물을 함께 타락시켜 고통을 겪게 한다. 모든 피조물에 번지는 악은 타락의 직접적 결과이고 증거이다.


우리가 원죄를 가지고 있다면 원죄는 어떻게 유전되었을까? 웨슬리는 아담이 전 인류를 대표하는 시조로서 그의 후손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표로서 행동하였는데 아담 한 사람의 타락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며 그 죽음은 온 인류에게 임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웨슬리는 실제로 원죄가 어떻게 유전되는지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원죄의 유전을 설명할 학설이 없다고 하여도 문제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서와 체험에 의하여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하여 알고있지 않으며 또 알려고도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원죄는 어떻게 유전되었을까? 하는 질문은 무익한 호기심의 충족을 일삼는 것으로서 대답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일반적으로 원죄는 성적인 결합에 의하여 유전된다고 보았다. 원죄는 인간성을 통하여 육체적으로 출생할 때에 부모로부터 아이에게 옮겨진다. 아이의 순수한 영혼이 수태시에 여자의 태 속에서 인간적으로 생겨난 육체와 결합되면, 아이의 영혼은 그러한 결합으로 더렵혀지게 되며 타락한 인간 본성에 참여하게 된다. 부모는 그들 자신의 본성을 아이에게 전달해 주면서 자식을 낳는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죄책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죄의 값은 사망(롬6:23)인데 영아가 죽는다는 사실은 영아의 원죄를 입증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영아도 원죄를 물려받은 죄인이며 그리스도의 속죄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어린아이도 원죄의 사슬 아래 있다고 보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담의 죄의 댓가인 사망이 영아들에게까지 선고될 수 없을 것이다."




3. 원죄와 특수한 죄


웨슬리는 죄를 원죄와 특수한 죄로 구분하는데 양자간의 관계는 유기적이고 밀접하다. 원죄는 인간본성의 내적 타락으로 열매맺게 하는 악의 뿌리이며 특수한 죄는 원죄에서 나온 악한 싹이다. 웨슬리는 특수한 죄 즉, 자범죄(voluntary transgression)를 둘로 나눠 내적인 죄(inward sin)와 외적인 죄(outward sin)로 본다. 내적인 죄는 유혹을 받을 때 물리치지 못하고 싹트기 시작하는 죄이며 외적인 죄는 죄의 싹이 성장하여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죄를 말한다. 자범죄는 하나님에 대한 법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로서 인간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이다. 인간을 실제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원죄가 아니라 자범죄 때문이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죄와 비고의적인 죄로 웨슬리는 무지, 오류, 이해력의 결여, 상상력과 기억력의 빈곤, 실언, 실수 등이 있는데, 이들을 실제로 죄로 보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이러한 죄들도 모두 속죄의 보혈을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모든 잘못된 것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누구든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웨슬리는 자범죄 가운데 소극적인 내적인 죄가 있는데 그것은 무관심의 죄와 태만죄라 하였다. 이는 인간의 하나님과 멀어짐과 형제의 죄를 책하지 않음과 경건의 훈련을 게을리 하는 것 등이다. 무관심의 죄와 태만죄를 방치하면 결국에는 신앙과 사랑이 사라져 범죄하게 된다. 또 다른 내적인 죄는 자랑, 성냄, 하나님 이외의 것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피조물에서 행복을 얻으려는 욕망 등에서 나타난다. 인간의 내적 죄는 성장하여 결국 영혼을 어둡게 만들어 외적인 죄로 노출된다. 곧 특수한 죄는 인간 본성에 잠재한 죄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원죄 즉 죄성은 모든 다른 죄의 씨앗이며 인간 마음과 생활에 나타나는 모든 특수한 죄의 원인이 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중생한 신자는 이 죄성을 발견하고 이 죄성의 퇴치를 위해 하나님의 은총을 요청하여 사랑으로 충만하여 성결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무한히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자기자신과 자신의 성취를 무한히 사랑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원죄의 실제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웨슬리에 있어서, 죄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 형상으로 피조된 다른 인간에 대하여 사랑의 원리를 침해할 때 죄이다.


원죄의 해결로서 웨슬리는 '선행은총'(prevenient grace)의 교리를 강조하였다. 선행은총이 아담의 후손에게 전가된 죄보다 우선하거나 앞서며, 아담의 후손을 사면해 주신다. 이러한 선행은총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하다.


마틴 슈미트(Martin Schmidt)는 기독교와 이교의 차이점은 죄의 보편성에 대한 교리에 있다고 하였다.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그리고 자신의 인격 안에서 죄된 본성, 기질, 행동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서 떠나있다. 인간의 원죄성은 죄의 보편성을 의미한다. 웨슬리는 인간의 죄의 보편성과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의 보편성과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편성을 강조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복음의 출발점은 죄인으로서의 인간은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임을 전제한다.




4. 인간의 타락의 결과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나타난 타락의 결과는 너무나도 가혹하게 나타났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은 지음 받을 때 지녔던 자연적 형상은 비록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을지라도 부패되었고, 정치적 형상도 그 재능은 유지하고 있을지라도 그 통치가 부패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결과는 아담이 지니고 있었던 도덕적 형상은 완전히 소멸되고 대신에 악마와 짐승의 형상을 입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날 그 시간부터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됨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이 박탈당하자 곧 불행하게 됨과 동시에 악마의 형상인 교만과 아집에 빠지게 되었고, 멸망할 짐승의 형상인 관능적인 욕망과 정욕에 빠지게 되었다.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인 도덕적 형상과 자연적, 정치적 형상이 비뚤어져 버렸다. 이로 인해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는 모든 인류의 자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을 상실하였고,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이성과 의지의 자유의 기능은 부패되었으며,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사랑은 자기사랑으로 바뀌었다. 또한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가지고 있었던 모든 의와 성결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로 태어난다. 따라서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악마의 형상과 짐승의 형상을 지니게 되었다.


둘째로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인간은 하나님과 교류할 수 있는 접촉점을 상실했다. 만일 인간이 타락시에 하나님의 전체 형상을 완전히 훼손했거나 상실했다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를 수 있는 또는 인간과 교류할 수 있는 접촉점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아담의 범죄는 인류에게 전적인 부패를 가져다주어 온 인류가 타락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타락이후 인간의 완전성은 변하였고 그 본성도 완전 부패한 것으로 본다. 물론 타락이전의 아담은 공의(original righteousness)하였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공의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파괴되었다. 하나님과의 관계 파괴는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로 연결되고 이로서 인간은 육체적, 영적 죽음을 보게 되었다


셋째로 타락의 결과는 죄책과 악에로의 경향을 지녀 행복을 상실하고 고통과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 죄는 인간들 사이의 교제(Communion)를 침해하며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웨슬리는 하나님과의 접촉점을 상실한 인간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이미 영적으로 죽어있으며,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은 계속해서 죽음을 재촉하여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육체와 영혼의 파멸을 서두른다고 하였다. 죄의 저주로서 사망이 왔다. 사망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형벌이다. 물론 웨슬리는 육적인 죽음만을 말하지 않고, 영적인 죽음 -하나님의 생명과 형상을 잃어버림- 까지 말했다.


아담의 타락의 결과는 죽음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고통을 가져와 인간의 행복을 거두어 가버렸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할 때만이 행복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타락의 결과로 인간의 정신생활과 인간의 육체적 생활의 모든 분야에 걸쳐 도덕적인 죄와 무서운 오점이 나타나게 되었다. 육체적 약함과 결함이 나타나게 되었다. 육체는 영혼을 압박하여 영혼의 활동을 방해하고 인간의 지력은 오류와 무지를 초래하였다.


하나님이 창조시 창조한 세계는 결함과 오점, 부패, 파괴, 죽음, 죄, 고통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 이외의 것에서 행복을 찾아보려는 시도 속에서 자신과 모든 피조물을 죽음 속에 쓸어 넣었다. 하나님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 왜 고통이 존재하느냐? 그것은 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악을 택하여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와 죽음과 여러 고통이 오게 되었다.


넷째로 아담의 타락의 결과는 인간과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를 흐트러지게 하였다. 인간에게는 정치적 하나님의 형상이 있었다. 하나님의 정치적 형상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인간 이하의 피조물과의 교제의 매개자가 되게 하였다. 인간 이하의 피조물은 운동의 방향을 조장할 수 있는 원리와 어느 정도의 이해력과 그리고 행복과 불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간이하의 피조물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땅은 저주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파괴되고, 동물과의 신뢰관계가 파괴되는 등 모든 피조물은 죽음과 고통에 내던져지게 되었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 많은 피조물들이 인간에게서 달아나고 있으며, 인간의 증오스런 현존을 피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피조물들은 인간에게 공공연히 반항하며 그들에게 힘이 주어진다면 인간을 파멸시키려고 합니다." 인간의 죽음과 고난의 원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아담의 타락의 결과이다.


인간의 타락의 결과에서 보듯이 자유의지를 남용한 결과 타락한 아담에 의해 죄성을 지닌 자연인은 영적 수면 상태에 있다. 그는 하나님이나 그의 법도, 영적 선물, 영적 사건을 전혀 모르며 항상 위기 가운데 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자신에 대해서도 무지하며 범죄하면서도 자책감이 없는 죄의 종이다. 웨슬리는 자연인을 우상숭배자로 규정한다. 그것은 마음속에 하나님 보다 자신을 더 섬기고,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타락 이전에 완전한 자유를 지녔으나, 타락이후 자연인은 원하는 대로 악을 선택할 자유는 있어도 선을 택할 자유는 잃었고, 하나님 대신 마귀의 속성이 그에게 있는 것이다. 이런 자연인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고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며 하나님과 관계회복을 위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담은 인간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악을 어떤 것인지 알고 선택했을까? 웨슬리는 아담은 악을 선으로 착각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아담은 절대 무오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담이 악을 선으로 착각한 것은 그 이전에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였을 것이라는 전제가 따라 온다. 이 전제는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시조 아담을 그처럼 타락으로 이끈 정체는 어디로부터 왔는지에 대하여 묻게 한다. 과연 아담의 타락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웨슬리는 악에서 오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악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웨슬리는 타락한 천사 루시퍼(Lucifer)를 악의 기원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새벽별 루시퍼는 자유를 행사하여 최초에 죄를 범하여 이 세상에 악을 끌어들인 존재이다. 루시퍼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오만과 자기 뜻대로 하려는 욕심을 가지고 죄에 떨어져 그 자신뿐만 아니라 천사의 1/3을 길동무로 삼았다. 그 결과 영광된 행복을 상실하고 하늘에서 추방당했다. 추방당한 루시퍼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의 행복을 부러워하고 질투하여 인간의 행복을 빼앗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뱀의 모습으로 숨겼다(창 3장). 하나님을 위해 창조된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존전에서 추방되었다는 점에서 지옥의 형벌의 본질이 존재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으므로 악도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러나 전파의 법칙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지마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악마는 그의 자유와 책임으로 타락했다. 웨슬리는 이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은 하고있지 않다.


우리는 위의 문제에 이어서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아담의 타락을 저지하지 않았을까? 물어 볼 수 있다. 웨슬리의 대답으로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의 부패와 고뇌를 체험한 제2의 아담인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대한 신앙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편이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던 경우보다는 인간에게는 더 큰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웨슬리에 의하면 아담의 타락이 없다면, 첫째로 하나님의 아들이 희생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 역사 속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인간의 신앙, 이웃 사랑도 없을 것이다. 둘째로 아담의 타락으로 고난과 죽음이 와서 그 덕분에 우리는 인내의 신앙을 기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셋째로 인간의 고난은 이웃을 향한 봉사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사랑의 성장을 가능케 하고 하늘의 상급을 더 풍성케 했을 것이다.


웨슬리의 인간이해는 타락한 인간 이해에서 뚜렷해진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죄의 기원과 인간 타락의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으며, 죄에 대한 책임도 역시 인간에게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인간의 불순종은 인간의 자유를 남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 타락의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 웨슬리는 펠라기우스(Pelagius)에 빠지지 않으면서 인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인간의 책임을 주장하였다. 웨슬리 신학에서 인간이 구원을 못 받았으면 그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있다.




5. 타락한 인간과 하나님의 선행 은총


만약 우리가 계속 인간이 되려고 한다면, 즉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한다면,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생명이신 하나님과 계약(covenant)을 맺어야 한다. 웨슬리는 이것을 '은총의 계약'(the covenant of grace)이라고 부른다. 이 은총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a gift of God)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사명을 실현하도록 초대하는 하나님의 초청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인 은총으로 인해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웨슬리는 그것을 '선행은총'이라고 부른다. "구원은 이른바 일반적으로 일컫는 선행은총과 함께 시작된다."


하나님은 타락한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아니하고, 선행적 역사를 통하여 인간을 율법 아래로 끌어들임으로써 그들의 타락을 인식하게 한다. 하나님은 그의 선행은총으로써 인간의 타락을 인지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 회개로 이끄신다. 웨슬리는 율법의 첫째 목적은 죄의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지만 율법으로 죄인들을 확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였다.


웨슬리는 인간은 전적으로 원죄 아래에 있어서, 나면서부터 선이 부패되어 있어 많은 악덕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대속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였다. 웨슬리는 올더스게이트의 회심 전까지는 18세기의 합리주의 영향력 아래에서 낙천적인 인간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회심 이후에는 죄인으로서의 인간이라는 인간관을 지니게 되었다.


인간의 유일한 희망은 타락으로 인한 영원한 죽음의 죄책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희망 또는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에서만이 가능하다. 계속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믿음으로 수용하느냐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의지는 원죄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다는 것을 웨슬리는 "선행은총"의 개념을 가지고 설명한다. 타락으로 인간이 지녔던 하나님의 형상을 모두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 인간은 그의 원죄를 용서받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하여 원죄의 죄책을 해결받게 된다. 따라서 "모든 하나님의 형상도 부분적으로 회복되고, 선택의 자유의지도 부분적이나마 회복된다."


웨슬리의 인간관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임을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 하나님의 은혜아래 있는 존재임을 말한다. 타락한 인간도 하나님의 선행은총을 받고 있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도 선행은총에 의하여 원죄의 죄책이 제거된다고 믿었다. 웨슬리의 인간관은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는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설명되고 있다. 비록 인간이 타락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타락한 인간과 관계를 맺으신다. 이 관계는 선행 은총의 개념을 통하여 설명될 수 있다. 웨슬리에 의하면 선행 은총은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기 이전에도 모든 인류에게 역사하고 있었다고 본다. 인간이 먼저 타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먼저 모두에게 값없이 은혜를 주심으로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은혜를 예비적으로 받고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 신학에서는 인간이 은혜가 없어서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고 있음에도 인간이 그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타락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는 모든 인간에게 미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선행은총을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셨다고 웨슬리는 말한다. 웨슬리는 아담이 선이나 악을 선택할 자유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선행은총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았다. 웨슬리의 인간관은 인간을 추상적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인간론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인간론은 단순한 인간론이 아니라 신학적 인간론이다. 웨슬리가 이해하는 인간은 "부패성을 가지고 있으나 원죄의 죄책에서 해결되어 있으며, 자유의지가 부분적이나마 회복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함께 협동할 수 있으므로 자기 구원을 위해 일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구원에 있어서 인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은 그 하나님의 은총에 호응하며 함께 일하여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를 신인협동설(Synegism)이라 한다. 그러나 웨슬리가 주장하는 신인협동설은 인간이 절반, 하나님이 절반 나누어 맡는 식의 협동이 아니라, "인간 의지가 성령의 역사에 대해 수동적으로 협동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니시어티브'에 아무런 이의 없이 협동하는 것"을 말한다.


웨슬리 신학은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의 관계에 있어서 이중택일의 원리를 적용하지 아니하고 양자를 택하고 창의적으로 종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의 주도권을 인간의 책임에 두기보다는 하나님의 은총에 둠으로써 인간은 그의 의를 주장할 수 없게 만든다. 웨슬리는 오늘날 인간과 하나님의 양극단의 모습을 지양하고 복음적 신인협동설을 주장함으로써 인간이 신 앞에서 성실히 순응하는 삶을 살게하는 신학을 제공해주고 있다.


웨슬리는 은혜만을 강조하는 신학과 인간의 의를 강조하는 신학의 양극단 신학의 갈등에 빠지지 아니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의 심각성에 빠져 비관주의에 빠지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에 의한 인간의 낙관적 삶을 제시하였다. 왜냐하면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로 말미암아 구원은 시작되고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누구나 하나님의 은총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의 은총은 누구에게나 임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구원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가능성과 희망은 인간의 책임을 요청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웨슬리는 만인구원설과 예정론에 빠지지 아니하고 인간의 책임을 요청하는 은총으로만의 구원의 교리를 확립하였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 사이의 변증법적인 긴장을 유지하면서 이 양자를 창의적으로 종합하는 복음적 신학을 정립하는 공헌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웨슬리의 선행은총과 칼빈의 예정론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구원에 대해서는 같은 견해를 지니고 있지만 웨슬리는 칼빈의 무조건적인 이중예정은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칼빈의 "무조건적인 선택의 교리"는 구원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차단하고 그들의 자유의지 행사권을 무효화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곳에서 진술한바와 같이 웨슬리는 모든 사람에게 우주적으로 주어지는 선행은총의 교리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을 인간이 자유의지로 받아들여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웨슬리가 성경에 나오는 예정에 대해서는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웨슬리도 하나님은 그의 예지(foreknoweledg of God)로 많은 사람들을 택하셨음을 알고 있다. 웨슬리에 의하면 고레스 왕은 성전 건축을 위하여, 사도 바울은 선포를 위해 선택되었으며, 또한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영원한 복을 누리도록 택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이 출생하기 전에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라고 하셨고, 그리스도를 "창세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 양"(계13:8)이라고 하였으며, 아직 택정되지도 않은 신자를 "창세 때부터 택한 자"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갈3:26)가 되었을 때 비로소 실제적으로 택함을 받은 자가 되는 것이며, 또한 베드로의 말대로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는"(벧전1:2) 때에만 실제로 택함을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웨슬리가 예지론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믿는 자는 구원을 받지만 믿지 않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웨슬리의 예지론(Foreknowledge)은 다음과 같은 논법을 따른다. 하나님은 영원에서 영원에 걸쳐 아들을 믿는 모든 사람들만이 구원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멸망한다는 결정을 하셨다. 이 결정을 기초로 하나님은 창세 이전에 하나님의 행동 계획을 세웠다. 그 행동 계획 중에 예정된 사람들을 구원의 자리로 부르셨는데 이 사람들은 그들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는 것을 예지하셨다. 웨슬리의 예지론에 따르면 1)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범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2) 그러나 인간이 죄를 범하는 것은 그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은 아니다. 3) 인간은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보상과 형벌을 받게 된다. 4) 하나님은 영원에서 모든 일을 동시에 아신다. 따라서 하나님에게 후지(afterknowledge)도 없고 예지(foreknowledge)도 없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영원은 현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가지 일을 다른 한 가지 일 이전에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한 가지 일 이후에 아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나 일하고 계시면서 인간의 자유를 파괴시키지 않고 감독하신다. 웨슬리의 예지론의 약점은 자유는 예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하나님이 미리 안다면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는데 있다.


웨슬리는 칼빈과는 달리 이방인과 유태인을 막론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롬9:30-33)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미 멸망 받기로 예정되어 하나님의 은총이 역사하지 않는다는 예정의 교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IV.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새로운 인간


하나님은 자신을 거역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과 사랑의 교제를 끊고 인간을 고통과 죽음의 상태로 남겨두지 않고 선행 은총을 베푸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새로운 인간, 즉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하나님의 선행은총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사건을 통하여 우리를 의인과 성화의 사람으로 만든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능력을 통하여 자신의 형상대로 새로운 인류를 다시금 창조하고 계신다.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그의 구원사역에 복종하게 될 때 우리가 아담을 통하여 상실한 본래의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웨슬리는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이 선행 은총으로 인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게 됨을 주장한다.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인간


이미 전술한바와 같이 웨슬리는 선행은총으로부터 구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죄책과 형벌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원죄를 용서받고, 그 원죄의 죄책은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제거된다. 웨슬리는 원죄로 인한 죄책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모든 인간에게 주시는 선행은총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무조건적인 공로로 해결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웨슬리는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시 위해서 돌아가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당신은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은혜는 구원의 근원이요, 믿음은 구원의 조건"이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곧 선행은총에 의한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웨슬리 신학에서는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이 은혜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공로를 믿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될 수 있다. 인간은 본래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비록 부분적으로 그 형상을 상실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여전히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을 회복하여 구원받는 새로운 인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을 지상에서 지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2. 성화의 길을 가는 존재로서의 인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인간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인간은 성화의 길을 가는 존재로서 새로운 인간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은 성화의 길을 가는 존재이다. 웨슬리의 인간관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인간은 바로 이 성화의 길을 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원형적(prototypical)인간, 즉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볼리비아 감리교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소명(vocation), 사명, 운명을 완전히 깨닫고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인간은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며 인류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는 인간이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닮고 변화를 받아 그에게 헌신한다면 그들은 진실된 인간이 될 것이다.


위의 선언서는 하나님을 닮고 변화를 받아 그에게 복종하고 헌신하는 인간을 진실된 인간으로 선언하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인간관을 선언한 것이다. 일본의 웨슬리 전문 연구 신학자인 노로요시오는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에 기초를 두고 일생 동안 성화의 과정을 걸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웨슬리의 인간 이해에는 시시각각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응답의 관계 속에서 사는 인간으로 파악되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웨슬리 신학에서의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자기의 삶의 모양을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가의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인간은 매 순간마다 사랑에 의해 지배해 나가는 실존적 결단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86년 나이로비에서 있었던 세계 감리교회 대회에서는 "감리교인들은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 [우리는] 완전을 위한 성결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이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미치지 못했음을 유감으로 여기고 있다"고 선언하였다. 같은 선언서에서 "감리교인들로서 … 성화의 문제는 단순히 숨겨지거나 묻혀져 있는 보물처럼 우리가 간직하려고 하는 우리의 유산의 일부일 수는 없으며, 우리가 매일 매일 먹는 … 삶을 위한 식량"이라고 하였다.


상기한 선언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웨슬리의 후예들의 인간관은 성결의 추구에 목표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감리교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 훈련의 생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생활 즉, 성결로 나타날 것을 요구한다. 특히 이웃에 대한 사랑의 생활을 요구한다.


"웨슬리는 첫 창조의 인간을 완벽한 도덕적 순결의 대표자로 이해하였다. 도덕적 순결로서의 인간 이해는 웨슬리로 하여금 죄의 실재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가능케 했다." 린드스트롬(H. Lindstrom)은 웨슬리의 죄관이 죄책관념에 집중되어 있으면서 언제나 죄를 선천적 타락으로 본다고 한다. 인간은 죄책에서 해방됨으로써 선천적 죄의 지배에서 벗어난다. 죄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에게 그 권세를 상실한다. 인간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는 동시에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으로 성화될 수 있다.


웨슬리는 죄를 질병으로 보고 구원은 질병을 치유받는 것으로 본다. 웨슬리가 질병을 죄로 간주하는 경향은 질병이 서서히 치료되는 것과 같이 성화의 과정을 그 배경으로 한 죄의 이해로부터 나온 것이다. 웨슬리는 원죄를 문둥병으로 다른 죄들은 원죄에서 기인하는 상처, 질병, 타락으로 묘사한다. 인간은 자신의 질병을 의식하기 전에 의원되시는 그리스도께 나올 수 없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인간본성의 타락에 대한 지식이 성화의 주관적 조건임과 동시에 구원과정의 첫단계이며 그 구원의 목적은 성화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일은 인간은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고 그 자신의 죄성과 죄책, 그리고 무력함을 깨닫기 전에는 그리스도를 신앙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온 인류를 위한 치유자요 의원이 되신다. 웨슬리가 죄를 질병으로 보며 구원은 그 질병을 치유하는 보는 것은 웨슬리가 인간을 성화의 길을 가는 존재로 보는 것과 무관하지가 않다.


인간의 삶 속에서 재현되고 있는 타락의 여러 양상들로 인해 사람들은 죄를 짓고 있다. 오늘날 아무리 죄를 질병이나 질환으로 이해하고 의학이나 정신의학적 처방으로 치료해 보려고 애쓰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치유책이 발견되기까지 죄는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치유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역을 분명하게 받아들이는 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치명적인 도덕적 병폐에 대한 유일한 치유책이며, 지금까지도 유일한 치유책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치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그의 구원사역에 복종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본래 아담의 인격 속에 만들어 두신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 것이다.




3. 새로운 관계 속에 있는 희망의 인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상실하였던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면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는 물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다시 사랑의 관계로 회복된다. 웨슬리는 인간을 하나님의 선행은총에 근거를 두고 아담 안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회복함으로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인간으로 이해한다. 웨슬리의 인간론은 그리스도인에게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우리가 다시 새로워 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복음이다. 우리는 웨슬리의 말에서 타락한 인간에게 완전한 절망을 느끼고 있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사실상 인간은 자신이 창조될 때 지니고 있었던 하나님의 형상의 상당부분을 다시 획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다시 획득하게 되든지 간에 우리는 이 흙으로 만들어진 우리 안에 이 보물을 아직도 갖고 있다." 웨슬리는 하나님을 등진 타락한 인간들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다고 여긴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왜냐하면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웨슬리는 타락한 인간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계속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간의 철저한 타락은 믿지 않았다. 인간이 비록 타락했을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이 심각하게 훼손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인간이 창조될 때 지니고 있던 자연적이고 정치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했다.


우리 인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회복하면서 상실하였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하나님과 인간이 어떠한 관계를 맺느냐에 달려있다. 타락으로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회복될 수 있다. 이 회복의 사건은 모든 인간에게 열려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형상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와 관계 -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속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관계 - 를 맺으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생명과 행복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 것은 인간의 자유 의사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그의 선행은총에 의하여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을 터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은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게 된다. 선재은총을 통하여 인간의 도덕적 형상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 놓고 하나님은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기를 요청하고 계시다. 이제 인간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데서 비로소 관계가 형성되어 진다. 이 관계는 곧 신앙의 관계인데, 이 신앙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절망은 사라지고 희망이 오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생명과 행복을 희망할 수 있게 된다.


이 관계 회복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로 끝나지 않고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까지 확장되어져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인간은 자기와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도 살게 창조되었다. 인간이 하나님과 가지는 관계가 사랑의 관계이듯이 인간이 타인과 자연에 대한 관계도 역시 사랑의 관계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사랑의 회복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은 하나님은 물론 형제와 이웃 그리고 인간 이하의 피조물을 사랑으로 다스려야 한다. 인간이 이렇게 하나님, 형제와 이웃 그리고 자연에 대한 사랑의 관계 속에 있을 때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시에 원하셨던 본래적인 참 인간을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살아간다. 인간은 태초에 인류가 저지른 잘못을 다시금 열심히 반복하고 있다. 매일 매일의 뉴스 속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도저히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죄악을 범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악마와 짐승의 형상을 따름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시키고 있다. 하지만 웨슬리의 인간론에 따르면 그들도 하나님께서 흙으로 창조하신 인간이기에 그들 역시 보물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웨슬리의 인간론은 타락한 인간들이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살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하나님은 실패와 변절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신실하고 의로운 남은 자를 두시고, 그 신실한 남은 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세계 복음화와 그의 의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들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 바 된 새로운 재창조의 인간으로서 곧 이해와 의지의 자유와 여러 능력들을 부여받은 영적인 존재로서 "의로움과 참된 성스러움"(엡4:24)의 상으로 원 창조의 모습인 사랑이 가득 찬 흠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다시 이 땅에 도래할 수 있도록 그 본래적인 모습을 다시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V. 나오는 말


웨슬리는 본래적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거룩한 인간, 무죄한 인간임을 전제한다. 그러나 인간은 인류의 시조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여 악마와 짐승의 형상을 입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사망은 물론 의지의 자유까지 상실하게 되었으나 하나님의 선행은총으로 회복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는 새로운 인간을 말하였다. 이런 웨슬리의 인간론은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인간론이다. 그의 인간론과 죄론에는 실존주의적 경향이 농후하다. 은총에 대한 지금 여기서(here and now)의 응답의 강조는 실존주의적이다. 인간은 주체적 단독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책임있는 존재로 서있는 동시에 인간은 예수 안에 있는 새로운 인간으로서 성화의 길을 가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훌륭한 하나님의 창조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나약하고 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미천한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으면 한시라도 살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이다. 웨슬리가 가르쳐 준바와 같이 "구원은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총과 인간이 그 은총에 적극적인 응답에 의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웨슬리의 인간론은 은총 안에서 비관주의가 아닌 낙관주의 인간론을 표방하고 있다. 웨슬리의 인간론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희망을 가진 인간론을 목적하고 있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이고 또한 영으로 하나님과 만나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영적이고 윤리적이고 현세적인 목표들을 실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여섯째 날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인간을 보시고 너무도 좋아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미소를 외면하고 악마와 짐승의 형상을 입고 삶을 살아왔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미소를 돌려드려야 한다. 우리가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날 하나님께서는 또 한번 미소를 지으시며 좋아하실 것이다. 오늘의 웨슬리안들은 물론 모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웃기셔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의 참된 길을 가는 희망의 인간이 됨으로서 그래서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웃기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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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 부흥운동의 사회개혁 활동



1. 병자와 가난한 자 구호

2. 교육활동

3. 교도소 개혁 활동

4. 여성의 지위 향상과 지도력 배양

5. 노예제도 반대 투쟁






1. 병자와 가난한 자 구호



웨슬리는 가난한 자들에 관해 구호 차원을 넘어 이들의 비참한 상황을 개선하고 제거하는 것을 기독교의 참된 사명으로 강조하고 실행한 영국의 첫 번째 인물이며, 이를 통해 영국의 사회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웨슬리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사역에 관해 믹스(M. Douglas Meeks)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웨슬리의 사역은 가난한 자들을 먹여주고 입혀주며 거처할 곳을 제공해 주는 일, 실직자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고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 가난한 병든 자들과 수감되어 있는 자들을 방문하는 일, 곤궁에 처한 자들을 위해 새로운 형태의 건강교육을 고안해 전달해 주는 일, 가난한 자들에게 책을 배포해 주는 일, 그리고 가난을 낳는 경제문제에 대한 구조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일들을 포함했다. 그러나 웨슬리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행위는 단순히 가난한 자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한 삶이라는 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는 실제로 그들의 침상으로부터 병에 전염되기까지 하는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그들과 삶을 공유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삶의 형태를 취하는 것을 의미했다.


참으로 웨슬리는 에드워즈의 말처럼, “가난한 자들을 발견했고…가난한 자들의 가장 중요한 친구였다.” 그는 일생 가난한 자들을 보살폈고 그들에게 모든 것을 다 주었다. 그는 1743년에 “만일 내가 내 뒤에 10 파운드를 남겨 둔다면 당신과 모든 사람들이 내가 강도와 도둑으로 살았다고 내게 대해 증거하라”고 했다. 이는 가난한 자들에게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그의 결심임을 1776년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뒷바침 해준다: “나는 런던과 브리스톨에 은수저 둘씩을 소지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금은제 식기류 전부이다. 나는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빵을 필요로 하는 동안에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날밤에, “86년 넘게 나는 정확하게 나의 셈을 해왔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저축했고, 될 수 있는 대로 내 가진 모든 것을 주었다고 확신 되기에 만족스럽다”라는 말로 그의 회계장부를 마감함으로써 그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그는 마지막 길도 가난한 자들과 동행하길 원했던 그의 뜻에 따라 “6명의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무덤으로 운구 되었는데, 그는 그 몫으로 그들에게 각 1 파운드씩을 남겨 두었다. 이처럼 웨슬리는 가난한 자들에게 모든 것을 주는 정신으로 살았고 또 그렇게 죽었다.


웨슬리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러한 애정과 관심은 본질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에서 연유된 것이겠지만, 그들과의 밀접한 접촉을 통해 그들의 비참한 상황을 목격함으로 더 심화되고 활력화 되었다 하겠다. 그가 가난한 자와 병든 자에 대한 구호를 새롭게 시작한 1740년 후반부와 1741년 초의 저널과 일기에는 이러한 접촉에 대한 언급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접촉을 통해 그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벌레가 끼고 난방이 안되며 의류와 음식이 제대로 없는 지하실과 다락방에 거주하고 있고, 병이 들었으나 도움의 손길은 물론 의약품도 없이 지내는 비참을 체감했다.


이러한 곤궁에 처해 있는 자들을 돕기 위해 메도디스트들은 매주 모금을 했다. 그것이 메도디스트들이 구호활동을 위해 시도한 최초의 그리고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추수작황이 나쁘거나 혹독한 추위 또는 다른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어려움이 야기된 경우에는 구제를 위해 특별모금이 행해졌고, 때로는 웨슬리가 직접 거리에 나가 모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웨슬리와 메도디스트들은 이러한 협의적 의미의 자선만으로 만족해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적극적인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한 어떤 제도적인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 결과로 모금을 통한 긴급구제에 덧붙여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한 적극적인 두 방법이 시도되었는데 하나는 실업자 고용 프로젝트이고 다른 하나는 대여금고(lending- stock) 프로그램이었다. 이러한 계획의 진의에 대해 브레디는 “특혜를 입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진취적인 기상과 독립심 표출에 자극을 주고, 특권층들에게는 사회적인 책임성 분출에 자극을 주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적합하게 해석했다. 웨슬리의 1740년 11월 25일자 저널에 보면 그 실업자 고용 프로젝트의 시도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실업자들을 고용하기 위한 몇 몇 방안이 제안된 후에 우리 형제 몇이 추천한 것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목적하는 바는 가능한 적은 비용으로 그들을 가난과 나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가장 가난한 자 12명을 교사 1명의 지도 하에 봄이 오기까지 4달간 신도회의 방에서 목화 손질과 방적 일을 할 수 있도록 고용하기로 했다. 그 계획은 이루어져 그들은 고용되었고 자신의 노동력을 통해 생산을 했다.


이러한 영역에서의 노력은 남자들에게만 그치지 않고 여자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확대 되었다. 웨슬리는 1741년 5월 7일의 저널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현재 일거리가 없으나 고용을 희망하는 여인들을 뜨개질하는 일에 모두 고용할 것을 그들(연합 신도회 회원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들에게 처음에는 그들이 일한 것에 상응하는 품삯을 지불할 것이고 후에는 그들 생활의 필요에 따라 더 주도록 할 것이다.


이 일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로써 도움을 받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웨슬리가 이 일을 시도한 주된 가치는 그 규모나 물질적 성공의 측면보다는 수반된 문제들에 접근해 간 그의 인도주의적인 정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웨슬리는 이 일로 인하여 공개적인 모욕과 의심을 감수해야 했다.


‘대여기금’(Benevolent Loan Fund) 프로젝트는 더 흥미롭다. 이 프로그램은 3개월간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긴급지원 제도로, 웨슬리가 1746년 6월에 30파운드의 기금으로 시작했다. 대출 한도는 처음에는 20실링이었는데, 기금이 1767년에 120파운드로 증가되면서 대출액도 5 파운드로 인상되었다. 이 대여기금으로 래킹톤(James Lackington) 같은 사람은 서적상으로 성공하여 유명한 인물이 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입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웨슬리는 가난한 병자들에 대해서도 기금을 통한 후원을 넘어 더 근본적인 도움을 주고자 다방면으로 인도주의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병자들을 방문하고 보살핀 것은 물론, 1746년 12월에 ‘무료 진료소’(dispensary)를 열고 이듬 해 6월에는 원시 의학(Primitive Physic)을 출판했다. 이는 진료도 받지 못한 채 황폐화 되어가는 많은 가난한 병자들에게 더 전문적인 도움을 제공해 주고자 하는 결심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영국 최초의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 ‘무료 진료소’를 통해 메도디스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의학적인 혜택을 입었다. 웨슬리의 원시 의학에 대해서는 여러 해 동안 비난과 조소가 있었으나, 영국의 공중보건 감시인인 의사 뉴맨(George Newman)은 이 책이 영국인들의 가정 위생, 개인의 청결, 가정의 건강법과 일반 건강에 현격한 공헌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위어마우스에 의하면 런던의 한 신문도 그 책의 처방전을 높이 추천했다고 한다. 이 책은 웨슬리의 생존 시에 23판이나 출판될 정도로 폭 넓게 순환되었고, 1828년에 마지막으로 32판이 출판되었다. 웨슬리의 이러한 가난한 병자들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애정은 그가 1747년에 스미스(John Smith)에게 보낸 그의 의학에 대한 관심과 유의를 정당화하는 다음과 같은 편지에 잘 드러나 있다.


내가 정규 의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저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이 죽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나는 당신을 치료할 길을 알고 있지만 나는 의과대학 출신이 아니니 당신은 미드(Mead) 박사에게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라고 말하라는 것인가? 미드 박사가 그의 마차를 타기도 전에 그 사람은 죽어 관속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의사가 도달 했다해도 사례비는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가?… 그러므로 합당한 치료대신 환자는 죽고 하나님은 그의 피 값을 내 손에서 찾으실 것이다!


이러한 것들과 연관되어 1785년 9월에 “메도디스트 고유의 독창적이라 할” ‘나그네 우호 신도회’(Strangers’ Friend Society)가 메도디즘 내에 등장하였다. 이것은 가난하고 병들고 친지가 없는 일반 사람들을 위한 봉사 센터로, 이후에 메도디스트 신도회가 설립되는 곳마다 함께 세워졌다.


웨슬리와 메도디스트들은 이처럼 가난한 자와 병든 자에 대해 다방면의 구체적이고 인도주의적인 도움의 손길을 폈다. 그리하여 그린은 이 메도디스트 운동에 관해 “가난한 자들의 죄, 무지, 육신적인 고통, 그리고 사회적인 퇴화를 치유해 주려는 한결 같은 시도가 그 부흥운동의 고귀한 결실이었다”고 했다. 참으로 웨슬리와 그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이러한 그의 운동은 영국의 무시당해 온 대중들에게는 희망과 포부 그리고 자기존중과 통제라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은택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그가 빈곤의 원인을 분석함으로 가난한 자들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당시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장기적인 개선을 방해하는 주요인들 중의 하나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가난을 신적인 형벌의 징표 혹은 게으름이라는 자기책임의 결과로 보는 잘못된 견해였다. 이 때문에 가난한 자에 대한 무관심이나 냉대가 팽배하여 문제해결을 어렵게 했다. 그러나 웨슬리에게 있어 가난의 진정한 원인은 신의 형벌이나 가난한 자들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그것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극복해야 할 불행이었다. 그의 다음과 같은 기록은 가난은 그들의 게으름 때문이라는 전통적인 견해를 강하게 부정한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방문했다. 나는 지하의 작은 방에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어떤 사람들은 다락방에서 추위와 굶주림, 게다가 허약과 고통으로 반쯤은 기아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방 둘레를 기어 다닐 수 있는 실직자는 발견치 못했다.


나는 가난하고 병든 많은 사람들을 방문했다. 간신히 걸을 수 있는 몇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일반적인 견해를 악의적이고 악마적인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더 나아가 그는 1772년에 작성된 현재의 생필품 부족에 대한 사고들(Thoughts upon the Present Scarcity of Provisions)이라는 글을 통해 자신의 대중 경제적 지식과 스스로 체험한 목격에 근거하여 일반적인 빈곤의 원인들을 밝혀내려 노력했다. 마르크바르트의 말처럼, 이것은 웨슬리의 “뜨거운 항의”였다. 웨슬리는 그 글에서 일자리 부족의 문제, 밀을 술제조에 소비함으로 생기는 곡물부족의 문제, 상당량의 곡물들이 부자들의 말사육에 소요됨으로 생기는 곡물 결핍의 문제, 농장에 대한 소수 자본가들의 독점 문제, 과도한 세금부과의 문제들을 지적했던 것이다. 그는 그 글을 결론적으로 요약하길, “식량이 부족하여 전국에서 수 천명이 죽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특히 양조, 세금 및 사치가 주요인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웨슬리의 노력, 곧 전통적인 견해를 수정하며 사회적인 불의를 근본부터 찾아 내려는 웨슬리의 문제제기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입장을 철저히 변화시켰고 사회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비로소 해결 가능한 영역으로 이끌어 내는 중대한 영향력을 이룩했다.


이처럼 메도디즘은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 관해 처음에는 기금을 통한 구호로 출발했으나, 점차 새로운 제도를 통해 그들의 상황을 호전시키고 타개해 나가려는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차원을 높였고, 후기에 들어서는 가난을 만들어 내는 불의한 구조를 개선하려는 단계로 발전해 나갔다.




2. 교육활동


복음화 사업, 사회구호활동과 더불어 웨슬리와 그의 운동에 걸출한 특징을 이루는 것은 교육적인 활동과 공헌이다. 웨슬리와 그의 운동이 당시 영국의 상황에 기여한 교육적인 공헌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영국의 대중들에게 보편적인 교육의 기회를 증진시킨 개척자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교육의 질을 높였다는 점이다.


웨슬리 운동의 교육적인 업적은 당시의 교육적인 이상과 실천을 비교해 보면 뚜렷이 드러난다. 18세기 영국의 상황을 보면 교육은 특수 계층을 위한 것이었다. 대중, 특히 가난한 자들은 교육적인 혜택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하나의 어떤 조직적인 정책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당시 유럽에는 교육을 소수의 계층에만 제한시켜야 한다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 소수 지배계층의 영속적인 특권화에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베이컨(Francis Bacon)이 교육을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제한시키자는 견해를 표명한 후 이것이 교육적인 상황을 지배했다. 1714년에 맨데빌(Bernard de Mandeville)은 그의 악명 높은 자선과 자선학교들에 대한 소론(Essay on Charity and Charity Schools)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자녀들에게 읽고 쓰는 것을 가르치는 관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재능들은 경건심을 저하시키고 게으름과 악행을 촉진시키며 범죄율을 증가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가난한 노동자의 지식 정도는 그들 직업의 테두리 내에 제한되어야 하며 그들 직업에 관련된 것 이상을 능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1763년에 이르러 좀더 개혁적인 성향의 넬슨(James Nelson)이 어린이들의 관리에 관한 소론(An Essay on the Government of Children)에서 하층민들에게 읽기 교육을 시키면 그들이 머물고 있는 암흑과 무지를 제거해 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제안을 하면서 그러한 생각이 교육 개혁자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가난한 자들은 쓰기와 산수의 기초를 배울 수도 있다는 사상은 바람직한 정책영역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버렸다. 소위 개혁적인 교육가로 유명한 한웨이(James Hanway)는 1786년에 그 당시 편만해 있던 견해를 표명했는데, “읽기는 사람들의 도덕에 도움이 되지만 쓰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당시 영국에는 가난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선학교들이나 기타 사설 기관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 운영체계나 교육의 질적 내용에 있어서는 크게 평가할만한 정도가 못되었다. 바디(Alfred A. Body)는 “노동 계층들에게는 18세기 말까지는 교육이라는 개념조차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자선학교는 그 목표조차 노골적으로 공리주의적이었을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웨슬리와 그가 중심을 이룬 부흥운동은 영국의 대중 교육사에 새롭고 중대한 전기를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에드워즈는 말하길, “조지 왕조 시대에 영국에서 누구도 대중교육의 성장을 그처럼 촉진시킨 자는 없었다”고 평했다. 브레디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교육이 인격을 확립시키고 삶을 고귀하고 유용하게 그리고 협동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분급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할 것이면, 그런 측면에서 웨슬리는 당시대의 비할 바 없는 가장 위대한 교육자요 전 시대를 망라해 가장 훌륭한 교육자의 한 사람이었다.


웨슬리와 그의 설교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반(semi)미개인적인 상태에 있고 무지와 부도덕에 깊이 빠져 있으며, 더러움과 비참함 속에 내던져져 있음을 발견해 그 시대의 그러한 사회적 상황에 주의를 기울여 그것에 훌륭하게 대처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메도디스트 운동의 교육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은 무엇이었는가? 웨슬리의 교육적 관심은 그의 옥스포드 신성클럽 시절에 가난한 자들과 수감자 자녀들을 위해 세웠던 학교들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웨슬리의 대중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공헌은 그가 1739년 6월에 설립을 추진한 브리스톨 킹스우드(Kingswood)의 광부들을 위한 학교로부터 출발한다. 웨슬리는 이 학교에 연이어 브리스톨(1739년), 런던(1739년), 뉴캐슬(Newcastle)과 다른 지역에도 영세민과 고아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다. 물론 이 학교들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18 세기 영국에는 자선학교들이 산재해 있었고 종교적인 기숙사 학교들도 새로운 현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가 설립한 이 학교들은 그가 기울인 교육적 노력을 통해 교육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교육에 있어서의 계층적인 편견을 제거하는데 중대한 기여를 하게 되는 기틀이 되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학교들과는 구별이 된다. “이 학교들은 18 세기 말의 영국국교와 비교해 메도디즘을 영국 대중교육의 가장 중대한 힘이 되게 한 많은 주간 학교들(day schools)의 선구자였다”는 말드윈의 평가가 이를 뒷바침해 준다.


이 학교들은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성인 교육에도 기여를 했다. 웨슬리는 킹스우드 첫 번째 학교를 설립한(1739) 후 이 학교의 본분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평상적인 시간에는 주로 가난한 자의 자녀들에게 주로 읽고, 쓰고, 셈하는 것을 가르치도록 계획되어 있다.… 어린이들과 한자리에서 교육시키기에 적합치 않은 나이든 사람들은(우리는 회색의 머리가 된 자를 포함한 모든 연령층의 학생들을 기대했다) 그들의 일에 지장을 받지 않게끔 이른 아침이나 밤 늦은 시간에 교육을 받게 된다.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사람들은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하위 계층 출신의 성인들이 분명하다. 특히 광산 노동자들과 서민들로서 유년기에 학교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문맹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웨슬리는 이들에게 인간의 존엄한 삶과 새로운 자의식 및 더 분명한 자기고찰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바디는 이를 “최초의 정규 성인 야간학교”로 평한다.


웨슬리가 기숙사 학교제도로 1748년에 설립한 새로운 킹스우드 학교는 교과과정상의 괄목할만한 점을 보여 준다. 거기에는 읽기, 쓰기, 셈하기는 물론 영어, 불어, 라틴어, 희랍어, 히브리어, 수사학, 역사, 작문, 지리, 대수, 물리, 원예, 음악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당시의 관점으로 볼 때 매우 혁신적인 것으로서, “참된 교육의 목표에 대한 선각자로서의 웨슬리의 식견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할 것이다. 이 학교는 시설이나 수준 등 여러 면에서 훌륭했으나, 휴일도 없고 노는 행위도 금지된 채 아침 5시에서 오후 8시까지 엄중한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규율의 지나친 엄격성에 대해서는 후대 학자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웨슬리는 또한 대학을 설립하여 가난한 계층 출신들도 최고 지성의 자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예비하기도 했다. 그는 6명의 메도디스트 학생들이 옥스포드 대학에서 붸겨나고 한 명이 입학 거부를 당했을 때, 이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킹스우드에 대학을 세웠다. 이 킹스우드 대학에서 학생들은 3년 동안에 대다수 옥스포드 학생들이 7년 동안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야 되었다. 교과과정은 신학분야와 고전어 뿐만 아니었고 고대 저술가들, 역사, 철학, 수학, 물리학, 지리학, 및 고전과 현대문학까지도 포괄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졸업하게 되면 상당한 학문적인 수준에 도달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가난한 가정 출신의 대다수에게 기초적인 학교 교육, 특히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없게 했던 계층간의 장벽을 극복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날 수 있는 원칙적인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웨슬리의 교육활동에 있어 더 중시해야 할 점은 어린이 교육과 양육에 대한 책임의식을 일깨우고 유지하려 했던 그의 넓고 깊은 의식의 측면이다. 웨슬리는 메도디스트 단체를 통해 어린이 교육에 대한 당시의 결핍된 자리를 보충하여 메꾸려고 노력했다. 이를 위해 웨슬리가 노력한 구체적인 부면들에 대해 마르크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그는 어린이 양육과 교육에 대하여 반복하여 설교하고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가 설립한 학교들을 정기적으로 점검했고, 어린이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스스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며, 독자적인 교과서를 저술했고, 수업과 교과과정을 구상했으며, 부모들과 교육문제에 대한 상담을 했고, 교사들을 찾아가서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어려운 점들을 해결해 나가곤 하였다. 학교의 운영은 처음부터 여러 사람들에게 맡겨 졌으나 그렇다고 그의 학교에 대한 상급 감독권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설교자들은 정기적으로 교육문제를 그들의 설교 주제목록에 넣었다.…


이렇게 해서 영국의 모든 메도디스트 신도회들에서는 이 분야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감 속에 어린이들의 교육 장소와 주의 깊은 교육에 힘을 기울여야 된다는 의식이 일깨워 졌다. 이로 인해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에게 거의 유일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던 소규모의 기초 학교들이 지역 공동체의 차원에서 수 없이 세워지게 되었던 사실은 결코 기이한 일이 아니었다.


웨슬리는 주일학교와 문서 교육이라는 두 가지 다른 면을 통해서도 대중 교육에 기여 했다. 그 주일학교는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는 개념이 다른 것으로 어린이들에게 읽기와 쓰기, 교리 공부, 그리고 셈하기 등을 가르치는 일반 교육과 종교교육을 병합시킨 것이었다. 이 주일학교 활동은 다른 교육적인 조치들을 효과적으로 보충할 수 있었다. 평일에 수업하는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어린이들이 돈벌이가 필요 없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했다면 주일학교는 평일의 돈벌이에 관계 없이 모든 어린이들에게 개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 주일학교는 대다수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유일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는데, 웨슬리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메도디스트 신도회의 그러한 주일학교가 영국 전역에 산재해 있었다. 물론 웨슬리가 이 주일학교를 창안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그 길을 다졌고 메도디스트들이 그것을 발전시켰으며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것을 장려하였다. 메도디스트들은 웨슬리로 하여금 영국 전역에 이 제도를 개척하도록 후원하였고, 그 주일학교들은 대중 교육에 많은 효력을 발휘했다.


웨슬리가 교육의 성장을 촉진시킨 또 다른 길은 대중들에게 읽고 지식을 얻을 문서들을 출판하고 또 그것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널리 배포시킨 것이었다. 그린(Richard Green)에 의하면 웨슬리 형제들은 생애 동안 453편의 작품을 출판하였는데 그 중 233개는 자신들의 직접적인 저작이고 220편은 편집이나 발췌한 것이었다. 이 작품들은 종교와 윤리로부터 과학, 의학, 역사, 그리고 영어 드라마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웨슬리가 1749-1755년 사이에 고전과 현대문헌을 망라해 50권으로 편집해 출판한 “기독교 총서”(Christian Library)였다. 이러한 그 자신의 저작들, 정기 간행물들, 그리고 50권으로 된 그의 기독교 총서는 대중들에게 유용한 문헌을 덧붙여 주었다. 낮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입할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이 책들이 선물로 주어지기도 했다.


이 책들과 독서를 통해 메도디스트 모임이 교육의 증진에 미친 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메도디스트 모임들은 웨슬리를 통해 교육의 장이 되었으며 이곳에서 웨슬리가 출판한 책들에 대한 체계적인 독서가 행해졌다. 이러한 독서를 통해 이들은 삶과 신앙의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고 또 서로 간에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되었는데, 마르크바르트는 그로 인해 “이들의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지식의 지평은 확대되었고 이로부터 영국 전체의 교육제도에 일련의 충격과 자극을 주게 되었다”고 한다.


18세기의 영국의 사회적 상황에서 반추해 볼 때, 웨슬리와 메도디스트들이 대중 교육에 남긴 이러한 자취들은 사막의 오아시스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3. 교도소 개혁 활동


교도소 방문과 수감자들에 대한 구호는 옥스포드의 신성크럽 시절부터 웨슬리의 사역에 있어 중요한 국면이었다. 그러나 그의 교도소 사역은 복음적인 회심 이후 더욱 밀도 있게 실행되었다. 단순한 구호 차원을 넘어 교도소 개혁을 위한 노력에로까지 발전해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복음주의 운동 속에서 웨슬리가 행한 교도소의 첫 번째 활동은 수감자들을 위한 설교였다.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그의 설교는 사형선고를 받은 많은 이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갖게 했고, 그 신앙은 그들로 하여금 영생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여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내적인 평화 속에서 단두대로 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봉사와 복음선포라는 웨슬리 운동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로 볼 수 있는 이 교도소 설교 활동은 웨슬리에게 남다른 의미를 주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1738년 9월 이후 9개월 동안에만 런던, 브리스톨, 그리고 옥스포드에 있는 교도소에 67회 이상 방문 및 설교를 수행했고, 80세가 넘어서도 그 일을 지속했다. 그리고 1778년의 연회에서는 메도디스트 설교자들에게 교도소 방문을 의무로 규정했다.


‘모든 인간에게 무제한으로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과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의인’에 관한 웨슬리의 설교는 수감자들로부터 조소를 당하기도 했으나 거의 항상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리하여 수감자들은 그와 대화하길 원했고 설교해 주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국가 관리들과 교구 목사들의 방해가 웨슬리로 하여금 수감자들의 바라는 바에 자유롭게 응할 수 없게 했다. 웨슬리가 자주 방문 금지를 당한 이유는 웨슬리가 대상자들을 “악하고 미치게 만든다”는 억지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마르크바르트는 웨슬리가 단순한 임석을 넘어 수감자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심지어는 몇몇 수감자들의 사면을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싫었고 또한 그의 다른 활동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 관리들과 교구 목사들이 웨슬리의 교도소 활동을 차단하려 했다고 더 설득력 있는 지적을 하였다.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 볼 것은 웨슬리 운동의 수감자들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구호 활동이다. 웨슬리의 모범에 따라 수감자들에 대한 활동은 병들고 가난한 자에 대한 활동과 마찬가지로 메도디스트 내에 자동적인 활동이 되었다. 메도디스트들의 수감자들에 대한 활동은 설교와 위로 권면에만 머물지 않고 필요한 물품 전달, 병간호, 석방을 위한 탄원서 제출, 그리고 사형수들에 대한 형장까지의 동행과 보호 등을 수반했다. 이 일들은 물질적인 부담, 건강의 위협, 그리고 공개적인 조소를 감내할 헌신이 필요했는데, 피터스(Sarah Peters)와 톨드(Silas Told)는 그러한 수행과 헌신의 대표적인 실례였다.


웨슬리와 메도디스트들의 이러한 활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리 낮은 처지에 있는 자라도 그의 영혼의 고귀성으로 인해 고귀한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게 했고, 빚진 자들이 더 이상 비속한 짐승이나 무도하고 헤픈 무뢰한으로 간주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은 이러한 간접적인 효과만으로 끝난 것은 아니라, 교도소 상태를 개선시킨 실질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메도디스트의 부흥운동에 영향을 받은 데이지(Abel Dagge)라는 간수가 브리스톨의 뉴게이트 교도소를 개선케 되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데이지는 존슨(Samuel Johnson) 박사의 칭찬을 받았던 인물로 그의 교도소 개선사업은 웨슬리의 충심어린 찬탄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1761년에 [런던 신문](The London Chronicle)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내 브리스톨의 뉴게이트에서 발생한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지옥의 가장 저주스러운 자리들 중에서 나는 (런던의) 뉴게이트와 동등하거나 능가하는 곳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일 그 곳을 능가하는 가공스러운 지역이 있었다면 바로 몇 년 전 브리스톨의 뉴게이트였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인간성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충격을 금치 못할 정도로 불결하고 악취가 진동하며 비참함과 사악함이 대단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주 전에 그 곳을 방문했을 때 나는 얼마나 크게 놀랐던지요! 1. 그 곳의 모든 부분들은…신사의 집처럼 청결하고… 2. 싸움질이나 소란스러움이 없으며… 3. 싸움의 일상적인 원인들이 제거되었고… 4. 술취함도 없고… 5. 매춘도 없어졌고… 6. 자신의 직업적인 일을 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분적으로는 그 간수가 합당한 이윤으로 빌려주는 신용대부에 의해,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최대한 공평하게 분배되는 의연금에 의해 연장과 재료가 제공되는 등 게으름을 방지하기 위한 가능한 모든 배려가 취해집니다. 7. 주일날에는 그들은 일하거나 놀거나 하지 않고 최대한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 모두가 예배실의 공적인 예배에 참석합니다…. 8. 영적인 문제나 세상적인 문제를 돕기 위해 주일과 목요일마다 설교가 행해집니다. 예배당 한편에는 수감자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큰 성경을 줄로 매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웨슬리는 그 메도디스트 간수에 대해 “누가 그의 모범을 따를 수 있겠는가?”라는 경탄의 말로 끝을 맺었다. 실로 데이지의 이러한 사역은 18세기의 부패하고 암울한 상태에 있는 영국의 교도소들이 닮아야 할 개선의 모델이었다. 벱은 데이지의 그러한 노력을 평하여, “하워드(John Howard)의 기념비적인 교도소 개혁운동 보다 15년 이상 앞선 것이었고 하워드 사상의 많은 부분을 예기한 것이었다”고 했는데 합당한 지적이라고 본다. 브레디는 “데이지의 사역이 하워드에게 도전과 영감을 주었음이 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웨슬리와 메도디스트들의 인도주의적이고 개혁적인 교도소 활동은 동족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외국인 수감자들, 특히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꺼리는 영국의 적군들에게까지도 확대되었다. 웨슬리는 1759년 10월에 브리스톨 근방의 노울(Knowle)에 수감되어 있는 7년 전쟁의 프랑스 포로군 교도소를 방문했다. 거기에는 1,100여명의 프랑스 포로수들이 불결하고 얇은 넝마조각들만 걸친 채 밀짚 위에 누워 추위에 떨며 허약한 양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이를 목격한 그는 브리스톨의 저녁집회에서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출 23:9)는 본문을 택해 학대를 비난하는 설교를 통해 전형적인 방법으로 대응하였고 그것의 시정을 위해 대중들을 조직화 하였다. 그 결과 의복구입을 위해 24 파운드가 모금되었고, 브리스톨 시당국으로부터 많은 양의 매트리스와 담요가 제공 되었으며, 런던과 영국 각지에서 기부금 모금이 이루어 졌다. 그는 1779년 8월에는 펨브로크(Pembroke)에 있는 미군 죄수들과, 1783년 10월에는 윈체스터(Winchester)의 독일군 죄수들도 방문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인도적 구호는 물론 포로 교도소의 개선을 위한 웨슬리의 관심과 노력의 일단을 보여 준다.


웨슬리의 교도소 개혁을 위한 더 강력한 노력은 불의한 상태에 대한 그의 공개적이며 분명한 항의제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하워드가 1777년에 분노에 찬 영국과 웨일즈의 교도소 상황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 이전에 이미 교도소의 상태들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교도소들을 방문하여 자세히 탐사한 바 있다. 그리하여 그는 불의한 면들을 공개적으로 널리 알리고, 시정되어야 할 상황개선을 위해 가능한 조치들을 강구하고 시행했던 것이다. 마르크바르트에 의하면 웨슬리가 여러 신문이나 단행본을 통해 발표한 항의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이다. 첫째는 지옥을 방불케 하는 교도소 환경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오히려 악을 배우게 되는 교도소의 도덕적 자세에 관한 것이며, 셋째는 몇 달 혹은 몇 년씩 걸리는 긴 시민 재판과정에 관한 것이요, 넷째는 가난한 자와 부자에 관한 불공평한 처리에 관한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전쟁포로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에 관한 것이다. 웨슬리는 이러한 항의들을 통해 대중들의 관심을 촉발하고 의식을 일깨워 교도소의 상태를 개선시키려 노력했다.


이러한 여러 면에서 볼 때, 웨슬리는 교도소의 개선을 위해 아무런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지 않았다는 비난은 타당하지 않다. 물론 웨슬리가 당시 교도소와 형법의 문제들에 대해 근본적인 책임이 있는 국회의 입법이나 왕과 각료들의 행정에 대해 직접적인 공격은 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의 개혁활동은 하워드를 중심으로 프라이(Elizabeth Fry), 그리고 그녀의 시동생인 박스톤(T. Fowell Buxton)에 의해 전개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웨슬리가 하워드의 그러한 눈부신 사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하워드 자신이 다음과 같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나는 그(웨슬리)의 격려로 내 계획을 활기차게 계속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한 사람이 열심과 인내심에 의해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는가를 보았다. 그리고 내가 열심과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다면 웨슬리 씨가 그의 삶에서 행한 것처럼 나의 길에서 많은 것을 나는 왜 행하지 못하겠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전보다 더 민활하게 내 일을 수행할 결심을 했다.


브레디는 하워드를 가리켜 “웨슬리의 열성적인 제자”라고 까지 평한다. 이런 면에서 웨슬리의 교도소 개혁 사역은 하워드를 통해 결정적인 결실을 맺었다고 볼 수 있다. 하워드를 통해 이룩된 교도소 개혁활동과 그 결실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구체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4. 여성의 지위 향상과 지도력 배양


웨슬리와 메도디즘은 여성들의 지위향상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런연은 주장하길, “여성들이 종교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취하는 것에 반대하는 전통적인 장벽이 메도디즘에서 허물어 지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당시 영국 국교내의 여성은 그들의 남편과 목사와의 관계에 있어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고 교회 내에서 극소수의, 그것도 종속적인 것 외에는 거의 지도력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그것이 통념이고 관례였다. 그러나 웨슬리는 초대 기독교의 선례를 모범으로 하여 그러한 관례를 거부했다. 그리하여 그는 여성들로 하여금 메도디즘 속에서 다양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여 여성들의 지위향상과 지도력 배양에 혁신적인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면에서 벱은 웨슬리를 “18세기에 가장 두드러진 페미니스트”로 평한다. 당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기회가 부여되지 못했던 여성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메도디즘에서 여성들이 지도력을 발휘하게 된 출발점은 조장과 속장의 역할을 통해서 였다. 여성들은 처음에는 여성들로 형성된 속회에서만 속장으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나, 어떤 여성들은 남성들에게도 영적인 안내와 양육을 제공하는데 비범한 능력을 나타냈기에 여성이 남성에 대해서도 영적인 리더로 봉사하는데 대한 반대는 점차 극복되었다. 그 결과 메도디즘에서 여성 리더가 남성 리더보다 18세기 내내 항상 2배가 넘었다. 1742년의 파운더리 신도회(Foundery Society)를 보면 총 66명의 리더 중 여성이 47명 남성이 19명이었다. “교회 역사상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 이래로 메도디즘보다 여성적 특색이 더 풍부했던 때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라고 한 스티븐스(Abel Stevens)의 단언은 과장 만은 아니라 하겠다.


속회원들을 지도하며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인도하는 여성의 이러한 지도력은 설교라는 영역에로까지 여성들의 참여 폭을 증진시켰다. 당시 영국 국교의 전통에서는 설교는 오직 성직안수를 받은 남성만의 범접할 수 없는 권위였다. 평신도에게는 남성이라 해도 결코 설교자로서의 역할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 그러기에 평신도 여성의 설교는 그야말로 당시 사회의 관례를 대혁신하는 것으로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웨슬리는 평신도 남성의 설교문제에 대해서는 어머니 수산나의 충고와 자신이 직접 그 설교의 열매들을 목격하여 1744년 연회에서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그러나 여자들의 설교 문제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고전 14:34)라는 사도 바울의 주장을 근거로 하여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입장을 점차 철회하게 되어 1761년에 크로스비(Sarah Crosby)의 간증사역을 허용하였고, 1771년에는 보산큇(Mary Bosanquet)의 요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답하므로 여성 설교의 특수소명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당신이 특별한 소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의 평신도 설교자들이 모두 그러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어떻게 그들 각자의 설교를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내게 있어 메도디즘이라는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의 시여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계율 아래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몇 가지 일들이 메도디즘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여자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바울 사도의 규율은 일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특수한 경우, 특히 고린도 교회에서 몇 가지 예외규정을 두었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은 교회가 부과한 경계표를 뛰어 넘으실 수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여성 리더들의 사역을 축복하셨고 그들의 효력이 의심의 여지 없다는 것을 인정하였기에 점차 많은 수의 여성들에게 설교사역의 권위를 부여하였다. 런연은 모두 27명쯤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들 대다수는 정식적인 임명을 받지는 않았으나 설교를 원하는 신도회들의 요청에 응했고 영국, 웨일즈,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에까지도 활동하면서 명성을 드높였다. 그리고 마침내 1787년 맨체스터(Manchester) 연회에서는 사라 말렛이 설교자로 다음과 같이 공식 승인되었다.


우리는 사라 말렛이 메도디스트 교리를 설교하고 규율에 순응하는 한, 그녀를 우리의 동역자로 삼으며 우리와 함께 설교하는데 대해 아무런 반대도 없습니다.


당시 영국의 모든 종교 단체 중에서 오직 퀘이커 교도들만이 이와 유사한 약속을 천명할 수 있었다.


메도디스트 여성들은 다른 리더십에도 참여 했다. 그들은 학교를 세워 교육활동을 이끌고 또한 자선사업 단체도 창설하여 병원이나 교도소의 병든 여성들에 대한 구제활동도 전개하므로 여성들의 지도력을 확대하였고 여성들의 역할을 증대시켰다.


웨슬리의 남녀 평등의 관념을 보여주는 또 다른 현저한 측면들이 있다. 그것은 용어를 통해 표현된 그의 의식이다. 두 가지의 예를 들 수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여성 메도디스트들에 대한 웨슬리의 ‘자매’라는 용어 사용이다. 잉글리쉬(John C. English)는 웨슬리가 그 용어를 사용한 의도는 남성은 물론 여성도 교회의 온전한 일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남녀 간의 사회적인 거리감도 좁히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녀에 의하면 당시에는 성직자와 여성 성도들 간의 영적인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아버지와 딸’이라는 용어가 종종 사용되었는데, 그 용어는 어버이라는 남성의 능력을 강조하고 자녀라는 여성의 허약성을 단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웨슬리는 그 용어 대신 자매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18세기 영국은 형제와 자매가 동등하지 않고 남성으로서의 형제가 자매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거리감이 아버지와 딸 간의 것보다는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경우는 웨슬리가 아메리카에서 사용하기 위해 39개조를 편집할 때, “크리스챤 멘” (Christian Men)이라는 용어를 “크리스챤”(Christian)으로 바꾸었고, 하나님께 간구할 때의 “아버지”(Father)라는 용어를 “거룩하신 어버이”(Divine Parent)로 대치시켰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것은 역시 여성 차별을 완화시키고 여성의 위치를 높이려는 웨슬리의 노력을 보여 준다 할 것이다.


웨슬리는 1788년에 “병자 방문에 대하여”(On Visiting the Sick)라는 설교에서 오늘날에도 급진적으로 들릴 정도의 그러한 급진적인 여성 해방론을 다음과 같이 펼쳤다.


여자는 남자처럼 이 명예로운 봉사의 일부를 감당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여자들도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구별이 없습니다.” “여성은 단지 눈요기일 뿐 귀기울여 들어줄 필요는 없는 존재다”라는 말이 실로 오랜 동안 많은 사람에게 격언으로 통해 왔습니다. 따라서 많은 여성들은 마음에 드는 노리개로 만들어졌을 뿐인 것처럼 양육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여성을 존중하는 일입니까? 혹은 그것이 그들에게 진정한 친절을 베푸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가장 철저한 불친절이며, 무섭도록 잔인한 것입니다. 그것은 터키인처럼 야만스러운 것일 뿐입니다. 또한 나는 분별력 있고 정신이 올바른 여성이 어떻게 거기에 복종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에게 권리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 권리를 단호히 주장하십시오. 그 비열한 노예상태에 더 이상 굴복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남성들과 같은 이성적인 피조물입니다. 여러분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동등한 영생의 후보자들입니다.


웨슬리는 여성들에게 스스로 책임의식을 가지고 그들이 속한 사회의 일원들에게 기여하도록 그들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능동적인 행위자가 될 것을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위어마우스는 “여성해방이 웨슬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약간 과장된 느낌이 있다 할 것이지만, 웨슬리와 메도디즘이 18세기에 여성들의 지위를 향상시켰고 후세대에게 그 유산을 넘겨 주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할 것이다.




5. 노예제도 반대 투쟁


18세기의 영국은 앞에서 본 바처럼 가난, 부족한 교육, 그리고 형법과 교도소 상태의 열악성 등 해결해야 할 많은 난제들을 안고 있었지만 그보다도 더 큰 난제는 18세기 최대의 스캔달이라할 노예제도 문제였다. 웨슬리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중대한 공헌을 하였다. 비록 웨슬리가 이 문제에 대해 다른 것들 보다 늦게 대응하긴 했지만, 공격의 강도 면에서는 가장 강렬했다. 웨슬리는 1774년에 출판된 그의 노예제도에 대한 사고(Thoughts upon Slavery)라는 소책자를 통해 노예제도를 생생하게 비판했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1770년대 이전에는 노예제도를 악으로 탄핵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단지 노예제도에 대한 그의 사적, 공적인 반감이 1770년 대에 전시체제로 바뀌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공정한 평가일 것이다.


웨슬리의 노예제도에 대한 관심은 조지아 선교사 시절의 경험에서 기인되었다. 1736년 7월말 남부 캐롤라이나(South Carolina) 챨스톤(Charleston) 방문에서의 흑인 노예들과의 직면과 그 해 8월 20일의 흑인 옹호자(The Negro’s Advocate)라는 책자를 통한 노예제도의 잔인성에 대한 자각은 그에게 노예매매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증오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한 체험은 웨슬리로 하여금 흑인 노예들에게 목회적, 교육적인 접근을 체계적으로 시도하고자 하는 열망을 촉발시켰고, 조지아에 노예제도를 금하는 오글레토프 장군의 정책을 강력히 지원케 했다.


웨슬리는 영국으로 되돌아 온 후 그의 부흥운동 전개 속에서 노예들에 대한 목회적이고 교육적인 사역의 열망을 실행에 옮겼다. 그는 목회사역에서 흑인과 백인 그리고 자유자와 노예 사이의 구별을 철폐시켜 노예들에게도 세례를 베풀고, 흑인 노예들로 하여금 백인들과 함께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또한 흑인 노예들의 교육에도 관심하여 그는 1740년 6월에 흑인학교를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했고, 1755년에는 버지니아(Virginia)에서 노예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데이비스(Samuel Davies)를 후원하여 그들의 교육에 필요한 책들을 공급해주는 운동도 전개 했다. 이러한 일들은 소수의 퀘어커 교도들 이외에는 거의가 노예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시기에 참으로 빛나는 것이었음에 틀림 없다. 그러나 웨슬리와 메도디즘이 이 초기 단계에서는 노예제도에 대한 공개적인 저항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메도디즘의 노예제도 폐지를 위한 적극적인 투쟁은 웨슬리가 퀘이커교도인 베네제트(Anthony Benezet)의 기니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Some Historical Account of Guinea)이라는 책을 읽게 된 1772년을 기점으로 출발되었다 하겠다. 웨슬리가 그 책을 통해 얼마나 자극을 받게 되었는가는 1772년 2월 12일자 저널의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잘 드러내 준다.


나는 한 정직한 퀘이커 교도가 일반적으로 노예매매라 불리는 가장 저주스러운 악행에 대해 출판한 아주 색다른 책을 읽었다. 나는 고대나 현대를 막론하고 이방세계 안에서도 그와 같은 것에 대해 읽어 보질 못했다. 그것은 야만성 면에서 마호멧 국가의 기독교인 노예들이 겪을 수 있는 어떠한 것도 분명히 능가하는 것이었다.


웨슬리가 노예매매에 대해 역사상 그렇게 나쁜 것은 없을 것이라고 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곧바로 베네제트에게 감사를 표하는, 그리고 노예제도 폐지 운동의 아버지라 할 샤프(Granville Sharp)와 연합해 그 운동을 함께 전개할 것을 제의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웨슬리는 그 일에 동참한 2년 후인 1744년에 “사람들에게 노예 소유자의 비인간적인 모습과 무방비적인 노예들의 모습을 응시하게 해주고 그 가공할 불의에 더 이상 냉담할 수 없게 만든” 노예제도에 관한 사고(Thought upon Slavery)라는 소책자를 출판했다. 이 책이 노예제도 폐지 운동에서 점하는 가치는 샤프와 베네제트의 평가에서 잘 드러난다. 샤프는 베네제트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이 책에 대해 말하길, “그는(웨슬리) 노예매매의 불법행위 전반에 관한 논의의 요점을 간결하게 잘 간추려 놓았다”고 했다. 베네제트는 웨슬리가 그에게 보낸 그 책자에 대한 답신에서 “시대의 정황이 저 비중 있는 주제(노예매매)에 대한 크지 않으면서도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 그 책을 대하게 되어 특히 더 기쁘다”라고 했다. 브레디나 워너 같은 후대의 학자들도 그 책에 대해 높이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브레디는 이 책에 대해 “아마도 이제까지 노예제도에 반대해 쓰여진 것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논문일 것”이라 했고, 워너는 “노예제도 반대 문헌 중 하나의 가장 효력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노예제도에 관한 사고를 통해 표현한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웨슬리의 논증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었는가? 노예제도에 관한 사고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노예제도의 불의성을 체계적으로 지적하며 설득력 있는 호소를 통해 노예매매 철폐를 요청하고 있다.


이 책 첫 단원에서 웨슬리는 노예제도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노예제도의 역사를 간략히 개괄한 다음, 두 번째 단원에서는 노예들이 붙잡혀 오는 나라의 상황과 관습, 그리고 그 사람들의 성품에 대해 당시 널리 퍼져있던 선입견들을 반박한다. “그 곳은 끔찍하고 메마르고 황량한 곳이며… 그들은 어리석고, 분별력이 없고, 우둔하고 게으르고, 사납고, 잔인하고, 불성실한 야만인”이라는 당시의 선입견들에 대해, 그는 아프리카 여행기 등의 자료를 근거로 하여 “그 곳은 풍요롭고 유쾌한 곳이며… 그들은 분별력이 있고, 근면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고 정직하고…사랑이 많으며, 온순하고, 우호적”이라고 반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단원에서는 노예들의 포획과 수송과정, 그리고 그들이 농장주들로부터 받게 되는 대우의 잔인성과 비인간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노예들에게 가해지는 그러한 잔인함과 비인간적인 행위들에 대한 웨슬리의 분개는 “조물주께서 세상의 가장 고귀한 피조물들이 이와 같은 삶을 살도록 의도하셨는가?”라는 물음에서 절정을 이룬다.


네 번째 단원에서는 웨슬리는 어느 정도 자연법적인 정의, 그리고 자비심을 토대로 하여 노예제도가 합법적인 상거래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부도덕한 상거래를 하느니 차라리 상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덕을 희생시켜서 부를 획득하는 것보다 부를 소유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같은 피조물인 인간 동료들의 눈물과 땀, 그리고 피로 얻어지는 온갖 부보다 정직한 빈곤이 더 낫다”는 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단원에서는 앞의 언급들을 노예선 선장들, 노예 상인들, 그리고 미국에 농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시킨다. 그는 그들에게 “영혼을 잃지 말고, 인간을 삼키는 늑대가 되지 말며, 더 이상 사자나 곰보다 야만적이 되지 말라”고 호소한다.


이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켜 많은 부수가 팔려 나갔고, 웨슬리의 책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던 월간 평론(The Monthly Review)으로 하여금 그 책에 대해 세 페이지나 할애해 호의적인 논평을 게재하게 했으며, 조지아의 노예들을 과도한 잔인성에서 법적으로 보호받게 했다. 이 책은 미국에서도 같은 해인 1774년에 출판되어 30년이 지나는 동안 13판 이상을 거듭하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또한 이 책이 메도디스트들에게 미친 여파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책은 1780년에 미국에서 열렸던 메도디스트 첫 연회의 노예제도에 대한 공개적인 반대 선언과, 모든 메도디스트들은 소유하고 있는 노예들을 해방시킨다는 1784년 총회의 결의를 이끌어 낸 초석이기도 했다.


웨슬리는 이 후에도 노예제도의 불행한 상황과 타락성을 상기시키는 책자들을 출판하여 노예제도 반대 운동의 강도를 높여 나갔다. 특히 미국혁명 전쟁의 격정이 최고조에 달했던 1778년에 쓴 국가의 상태에 관해 영국 사람들에게 드리는 진지한 요청(A Serious Address to the People of England, With Regard to the State of the Nation)에서 그는 아래와 같이 노예매매에 대해 통렬히 탄식하며 탄핵하였다.


나는 흑인 노예매매가 더 이상 결코 발견되지 않게 되길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우리의 형제들을 짐승처럼 도둑질해 파는 일과 그들을 수천 수만 명씩 살해하는 일이 없게 되길 간구한다! 오 회교나 이교적인 것보다 더 악하고 혐오스러운 이 일이 우리에게서 영원히 제거될지어다! 영국이 설립된 이래 영국에 이와 같이 저주스러운 매매에 손을 대는 치욕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었다.


웨슬리는 글을 통해서만 노예제도 탄핵 운동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설교를 통해서도 그 운동을 지원했다. 그 중 1788년 3월 3일에 브리스톨에서 행한 설교가 가장 기억에 남고 담대한 것이었다 할 것이다. 항구도시인 브리스톨은 왓슨(Watson)이 “노예매매자들의 음침한 소굴”이라고 칭했을 정도로 노예무역의 요충지였기에 적대감이 예상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웨슬리는 노예제도에 관해 설교할 것임을 예고했고 그 집회장은 상류층, 하류층, 부자, 그리고 가난한 자들로 대만원을 이루었다. 유일한 방해가 있었다면 그 집회를 일시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든 무시무시한 뇌우 뿐이었다. 다음날 그는 금식을 선포하고 “노예들이 벗어날 길을 찾고 그들의 사슬이 분쇄되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회를 열어 노예제도 폐지운동을 확산시켰다.


웨슬리는 이처럼 노예해방을 위해 다양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그가 노예해방을 위해 남긴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큰 공헌은 그가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입법적인 활동을 벌려 끝내 법적인 승리를 일궈낸 노예제도 폐지를 위한 활동가들을 길러냈고, 또한 그들의 힘을 북돋우어 주었다는 점이다. 그 대표자라 할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브레디의 지적처럼 “웨슬리의 영적인 아들”이었다 할 것이다. 웨슬리는 세상을 떠나기 1주일이 채 못 되는 때에 쓴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윌버포스의 노예제도 폐지 투쟁을 다음과 같이 격려했다.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을 아다나시우스(Athanasius)로 불러 세우지 않으셨다면, 종교와 영국, 그리고 인간성의 수치인 저 저주스러운 악행을 대적하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일을 어떻게 완수할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일을 위해 당신을 불러 세우지 않으셨다면 당신은 사람들과 악마들의 반대에 의해 기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신다면 누가 당신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 모두를 합친들 하나님보다 강하겠습니까? 선행을 행함에 있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의 전능하신 능력 안에서 계속해 나아 가십시요. 온 세계에서 가장 악한 미국의 노예제도마저도 사라져 없어지게 될 때까지 말입니다.


윌버포스는 웨슬리의 이 편지에 대해 비망록에 “존 웨슬리, 그의 마지막 말들. 노예매매”라고 메모해 놓았는데, 이는 윌버포스에 대한 웨슬리의 영향력을 입증해 준다 할 것이다. 윌버포스는 그 두 달 후에 의회로부터 자신의 탄원에 대해 거부를 당했지만, 웨슬리의 격려대로 “사람들과 악마들의 반대에 의해 기진”하지 않고 1807년에 노예매매 금지 조치가 내려질 때까지 행진을 지속했다. 이러한 긴 행진의 여정에 메도디스트들은 윌버포스의 든든한 동맹군이 되었고, 웨슬리의 노예제도에 관한 사고는 사람들에게게 지속적으로 도전을 던져 주었다.


지금까지의 고찰 결과 웨슬리와 그의 부흥운동이 18세기의 제반 사회적인 문제들 속에서 개혁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고 또 큰 결실들을 이루었음을 볼 수 있다. 실로 웨슬리에게 있어 성결은 사회적인 성결이었고, 그의 종교적인 열정과 사회적인 열정은 궁극적으로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확인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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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주님의 뜰-행원소구
글쓴이 : xi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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