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 29. 절대희망 왕상18:41-46
I. 절대절망의 시대에
역사가 찰스 베어드는 자신이 일평생 인류의 역사를 연구하는 가운데 소중한 4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첫째, 나는 인간들의 잔인한 파괴 속에서도 더 힘 있게 건설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다.
둘째, 하나님의 연자 맷돌은 비록 천천히 돌아가지만 정확하고 섬세하시다.
셋째, 꿀벌이 꽃의 꿀을 따면서도 수정을 시키는 신비를 보았다.
넷째, 나는 캄캄한 밤중에 하늘의 별이 더욱 빛나는 모습을 보았다.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도 희망의 별은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신앙인만이 볼 수 있는 눈입니다. 파괴 속에서 건설을, 어둠속에서 빛을, 부정 속에서 긍정을, 작은 것들 속에서 큰 것을, 손바닥만한 구름 속 에서 천지를 뒤덮는 소낙비를 보고 사는 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지팡이는 험한 길을 갈 때 필요한 것이고, 밧줄은 높은 산 오를 때 필요한 것입니다. 빛은 어두운 땅에 필요한 것이고, 믿음과 소망은 시대가 암울할 때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승리의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이 그리운 때입니다. 역사는 절망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는 않습니다. 절대절망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절대희망입니다.
오늘 본문 엘리야야 말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던 절대절망의 시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절대희망을 하나님의 역사를 노래하고 간증했던 사람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엘리야가 되어 어둠속에서 빛을 노래하고 슬픔 속에서 기쁨을 노래하고, 절대절망의 땅에서 절대희망을 노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II. 다시 갈멜산에 올라
암울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킨 가장 위대한 선지자가 있다면 우리는 엘리야를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상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출연한 시기를 보면 그 시대가 어느 때 보다도 암담했던 시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절망적인 시대에 능력있는 종을 보내는 것은 언제나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비상조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갈멜산에 불이 떨어졌던 멋진 승리 이후의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방 선지자 850명과의 대결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당당하게 승리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그는 승리이후에 무엇을 했을까요? 이때쯤 그는 승리의 감격에 도취되어 잔치를 벌여놓고 축하객을 영접할 만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꽃동산을 찾아 휴식을 즐길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42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그는 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승리에 오만하지 않았고 승리에 도취되지도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기다리며 곧장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비를 거두어가신 하나님, 이제 당신의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비를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온갖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다시 갈멜산을 향해 터덜거리며 올라가는 엘리야의 모습! 그 모습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는 사명자의 모습이요, 그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진실한 모습이 아닐런지요.
이스라엘에 기근이 시작 된지 3년이 좀 지난 어느 날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18:1)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면 구태여 기도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기적은 언제나 기도의 사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엎드릴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분의 보배로운 약속을 붙들고 또 갈멜산으로 올랐던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느니라”(고후1:20)
주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풍성한 약속을 하셨습니까? 그분의 약속은 “무엇이든지”, “얼마든지”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구하면 “무엇이든지” 주십니다. “얼마든지”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디서”, “언제든지”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엘리야의 기도 장면을 신약 성경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야고보5:17)
엘리야가 기적을 일으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와 다른 어떤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아니합니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는 우리처럼 실수 할 수도 있었고 때로 낙심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도 우리처럼 연약하여 넘어질 수도 있었고 어두운 길을 방황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토록 능력있는 사람, 역사를 일으킨 사람이 된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간절한 기도 때문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옳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간절한 기도는 교회 부흥의 역사를 가져옵니다. 기적의 시대가 사라진 것 아닙니다. 기적을 믿을 만한 믿음의 시대가 사라져 간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순종의 시대가 지나간 것이지 기적의 시대가 우리곁에서 떠난 것 아닙니다.
III.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고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엘리야가 엎드려 기도하자마자 소낙비가 쏟아진 것이 아닙니다. 엎드려 간절히 기도한 엘리야는 사환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고 오라” 살피고 돌아온 사환이 보고를 합니다. “아무것도 없나이다” 다시 엎드려 기도합니다. 다시 눈을 뜨고 사환을 보냅니다. 사환의 보고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나이다”였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여섯번이나 반복합니다. 기도의 응답이 지연될 때 “소용없는 일이다. 깨끗이 그만두자” 사탄은 우리에게 포기를 종용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일곱번째 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일곱번째 살피고 돌아온 사환이 말합니다. “저 먼 바다에서 사람의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저 먼 바다에서 사람의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내 손바닥만한 구름 한 조각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엘리야는 손바닥만한 구름속에서 큰 비 구름을 보았습니다. 천둥소리 우뢰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위인된 모습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산을 옮깁니다. 밀알 하나가 백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어린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가 오천명을 먹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애굽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바로와 대항할 만한 능력도, 백성들을 인도할만한 지도력도, 저들을 설득할 만한 웅변술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는 모세를 향해 하나님이 묻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 하나입니다.” “그 지팡이를 이용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라” 홍해를 가르게 될 것이다. 반석에서 생수가 쏟아지게 될 것이다. 너희 백성들을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이 지팡이 하나 아무쓸모 없다고 집어던졌을 때에 뱀이 되어 모세를 물려고 했지만 모세가 그 지팡이 붙들고 전능한 하나님 의지하여 기도할 때에 이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고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노만 빈센트 필목사님이 후두염으로 고생을 하며 병원을 찾았습니다. 늘 목사님을 치료하던 의사가 묻습니다. “목사님 요즘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많은 설교사역에 지쳐있습니다. 어려움 당하는 성도들을 보면 내가 어려움 당하는 것만큼이나 마음이 아픕니다. 많은 사역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지요.” 그때 의사가 말합니다. “닥터 필. Dont't focus on your problem. But on God!” 문제를 보지말고 하나님을 보시지요. 문제에 초점을 두지 말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께 초점을 두시지 그래요. “닥터 필. Dont't focus on your problem. But on God!” 「문제에 초점 두지 말고 하나님에게 초점 두고 살아라.」 이것이 그 주간 필 목사님의 설교 제목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언제나 밝은 곳을 보고 하늘의 풍성과 능력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신앙인의 눈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당신은 절망을 볼 수도 있고 희망을 볼 수도 있습니다. 실패를 볼 수도 있고 실패 속에서 역사하는 사랑스런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가 있습니다.
R.W. 에머슨은 “믿음은 종달새 앞에서 종달새의 노래를 듣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종달새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새가 입을 여는 어느날 종달새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당신의 귀에 들릴 것입니다.
안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불행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 스스로 당신의 입으로 불행을 예언하지 마십시오. 실패를 예언하지 마십시오. 당신 인생의 종달새가 입을 열게 될 것입니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는 인생의 한 모퉁이에서 은혜의 비가, 축복의 비가 당신앞에 내려지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될 것입니다. “비록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손바닥만한 구름일지라도 그것이 분명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구름이라면 나는 이 구름속에서 은혜의 소낙비를 보겠다. 축복의 소낙비를 보겠다. 기적의 소낙비를 보겠다. 나는 실망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손바닥만한 구름을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리라! 할렐루야.
권투사상 최고의 복서로 꼽히는 무하마드 알리. 수 많은 대전에서 꼭 두 번 참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두 번 참패의 공통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늘 시합하기 전 당당히 승리를 선포하던 그가 꼭 이 두 번만큼은 “만일 내가 이번 싸움에서 지게 되면 은퇴를 하리라는”등 부정적인 말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파괴의 씨앗과도 같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파괴의 폭탄과도 같은 힘이 있습니다.
IV. 축복받을 준비를 하라
확신에 가득찬 엘리야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하늘이 새까만 구름으로 뒤덮이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기도생활속에도 이런 은혜의 큰비가 내리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부지런히 성경 찬송들고 다니지만 왠일인지 비가 내릴 것 같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도 기도하고 집에서도 기도하고 밤에도 낮에도 기도해 보지만 응답의 비가 내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 올라도 그 속에서 장대비를 볼 수 있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뻐 소리칠 수 있을 만큼 응답의 큰 비가 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중한 내 남편이 영적인 거인이 되기를 원하는데 저는 초라한 신앙인으로 오늘도 비틀거리고 초라한 인격으로 오늘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손바닥만한 구름을 품에 안고 저를 위하여 축복하고 격려하는 말을 아끼지 마십시오.
소중한 내 아이를 나는 역사상에 영웅이 되기를 기도했건만 저는 왜 저렇게 어리석은 모습을 내게 보여줄까? 포기하지 마십시오. 실망하지 마십시오. 손바닥만한 구름을 품에 안고 저를 위하여 끊임없이 축복하십시오. 은혜의 소낙비가 저들의 생애 가운데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내 기업은 창대하기를 원했는데 지금은 손바닥만한 구름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포기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기도하여 응답을 얻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을 보고 엘리야는 말을 합니다. “올라가 아합에게 이르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엘리야는 손바닥만한 구름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보고 환경을 준비했습니다. 축복받을 그릇을 준비했습니다.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고서도 마치 모든 기도의 응답이 완성된 것으로 믿었습니다. 또 그렇게 말했습니다. 축복의 비를 받기 위한 그릇을 준비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구출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는 사람들을 찾아와 대문을 두드립니다. 이때 로데라는 계집아이 하나가 베드로의 음성을 듣고 너무 기쁜 나머지 대문 열어주는 것도 잊고 베드로 사도가 돌아왔다고 소리칩니다. 그때 기도하던 사람들의 반응을 기억하십니까?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더라”(행12:15) 이 얼마나 불신앙으로 가득찬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장면입니까?
미국 어느 지역에 계속된 가뭄으로 인하여 지역교회가 연합으로 어느 토요일을 기도의 날로 선포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적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연합하여 기도하는데 2,800여명의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우산을 들고 나온 사람은 단 세사람 뿐이었다고 합니다.
기도하고도 응답받을 준비를 하지 아니하고 간구하고도 그 간구가 이루어 졌을 때 적용할 환경을 준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불신앙을 놀려주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V. 빗길을 달리며
보십시요. 손바닥만한 구름속에서 장대비를 보았던 엘리야의 믿음을 하나님이 저버리셨나요? 갈멜산 꼭대기에서 무릎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기도하던 엘리야의 기도를 하나님이 외면하셨나요?
마지막 46절을 보면 엘리야가 소낙비를 맞으며 빗길을 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합왕은 마차를 타고 자기 별장이 있는 이스르엘까지 가는 중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마차 앞에서 비를 흠뻑 맞으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합왕이 함께 마차를 타고 가자고 권면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50리길 비를 맞으며 달려갔던 것입니다.
왜 그가 빗속을 뛰었을까요? 이것은 응답을 주신 하나님을 시위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을 표현하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비가 너무나 고마워 송두리채 맞고 싶었던 것입니다. 빗속을 달리는 엘리야의 이 장엄한 퍼레이드를 보십시오. 그의 이 페레이드는 한폭의 위대한 웅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보라! 비를 주신분은 하나님이시다. 비를 주신 하나님앞으로 돌아오라. 그분만이 참 하나님이시요, 그분만이 우리의 사랑이시다. 그 분은 하늘을 닫을 수도 있고 그 분은 하늘을 여실 수도 있다.” 모르기는 하지만 엘리야의 두뺨에는 빗물과 함께 감격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힘차게 달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응답의 빗길, 축복의 빗속을 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메마른 땅을 걸어가면서도 언젠가 여러분 가정에, 한국교회에, 이 민족 한가운데 복된 장대비를 부어 주실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절대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보는 축복입니다.
1958년 5월. 축구시합을 하다가 공에 눈을 맞는 사고를 당한 후 맹인이 되었던 중학교 3학년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맹인이 된 자식을 고치기 위해 1년 3개월여 동안 병원을 옮겨 다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망막 박리’라는 최종 진단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어머니는 시골에 남아 있는 논을 팔아 수술비용을 마련해 장남의 수술을 힘겹게 마쳤습니다.
수술을 마쳤지만 그 소년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병상에서 절망의 끝을 보아야 했습니다. 어느 주일, 당직 의사로부터 재활의 길을 찾으라는 마지막 선고를 받게 됩니다. 결국 그는 생을 마감하기 위해 그날 밤부터 ‘머리가 아파 잠이 안 온다’는 핑계로 수면제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면회를 온 어머니에게 그는 “당신의 아들은 맹인이 될 수 밖에 없다”라고 털어 놓았습니다.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8시간 후 그의 어머니는 뇌일혈로 쓰러져 돌아가십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18세의 누나가 고교를 중퇴하고 살림을 맡았고,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평화시장 의류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이런 생활을 몇 달 지속하던 누나는 심신이 지쳐 쓰려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 채 어머니 곁으로 떠나가게 됩니다.
의지할 곳 없었던 그 남자 아이는 아홉 살짜리 여동생과 열세 살짜리 남동생을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결국 남동생은 친지의 소개로 철물점에서 먹고 자는 점원이 되었고,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맹인 재활 기관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 속에 놓여 있었던 그 남자 아이를 일으킨 것은 경기도 양평군 작은 시골 교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들었던 말씀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늘 신학교에 가서 장차 목사가 되라고 말씀 하셨고, 또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 어머니의 소원과 기도가 그의 가슴속에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맹학교를 졸업하면 보통은 안마사나 점쟁이가 되지만 그는 이러한 운명을 거부합니다. 맹학교에 5년 지각생으로 입학했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더 나아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일급 전문인이 되겠다는 큰 꿈을 꾸었습니다. 갈 곳이 없는 외로운 고아지만 언젠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성공적인 자녀 교육도 하리라는 큰 꿈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이에게 부담이 되는 자신의 현실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눈 뜬 사람들까지 섬기고 봉사하는 삶으로 바꾸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결국 그는 가난과 맹인이라는 편견을 뒤집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야간학교와 검정고시를 거쳐 연세대학교 교육과에 입학 하게 되고, 졸업할 때에는 2등으로 졸업합니다. 그리고 피츠버그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심리학 석사, 교육 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최초의 맹인박사가 됩니다. 그가 바로 한국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로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까지 지낸 강영우박사입니다.
몇 년 전 저희 교회를 방문해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지요? 그는 말합니다.
‘나는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보았고, 절망 속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의 실명은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이다’ 라고 말했던 강영우박사는 하나님의 꿈을 이룬 청지기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연말 강영우박사가 한 달여 밖에 더 살지 못할 것이라는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강영우박사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남긴 편지가 이번호 아니 다음 2월호 어느 교계 잡지에 실렸습니다.
전쟁이 휩쓸고 가 폐허가 된 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두 눈도, 부모도, 누나도 잃은 고아가 지금의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덕분입니다. 실명으로 인하여 당시 중학생이라면 꿈도 못 꿨을 예쁜 누나의 팔짱을 끼고 걸을 수 있었고, 실명으로 인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실명으로 인하여 책을 쓸 수 있었고, 세상 방방곡곡을 다니며 수 많은 아름다운 인연들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아름다운 인연들로부터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봉사를 결심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강연들도 하게 됐습니다. 두 눈을 잃고, 저는 한 평생을 살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에게 몇 자 적어 봅니다.
시각 장애인의 아내로 살아 온 그 세월이 어찌 편했겠습니까? 힘들었죠? 아이들 키우고, 일을 하고, 가사를 돌보고, 바깥일에 바쁜 나를 위해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쓰던 당신. 매일매일 예쁜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뛰어 다니던 당신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 한쪽이 먹먹해 옵니다. 편안하게 앉아 식사하던 날보다, 운전하며 끼니를 때우던 때가 더 많았던 당신. 나를 위해, 우리 가정을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항상 주기만 한 당신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좀 더 배려하지 못해서, 너무 많이 고생 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기만 합니다. 마음보다 머리로 먼저 생각하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따뜻하게 품고 살아가는 당신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지난 50년간 늘 나를 위로해 주던 당신에게, 난 오늘도 이렇게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당신이 있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아직도 봄날 반짝이는 햇살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당신을 난 가슴 한 가득 품고 떠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진석아. 아버지는 고사리 손을 있는 힘껏 모으고, 아버지의 눈을 고쳐 달라고 기도하던 너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꼭 안과 의사가 돼서 아버지의 눈을 고쳐 주겠다고 너의 그 작은 가슴을 있는 힘껏 부풀리고 큰 소리로 약속하던 너의 모습을 말이다...
진석아, 진영아. 나의 말에 항상 귀 기울여준 너희들이 난 고맙구나. 시도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해보기 전에는 결코, 결코,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나의 말을 가슴속 깊이 새긴 채로 자라준 너희들이 고맙다.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꿈을 향해 항상 달려가는 너희들이 이제는 최고의 안과 의사로, 최고의 법조인으로 더 좋은 세상, 그리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이 아버지는 뿌듯함을 넘어선 감동을 느낀단다. 아들과 함께 목욕하고, 뒹굴며 뛰노는 즐거움을 선물해 준 너희들, 손주들과 오붓한 낮잠을 즐길 기회를 준 너희 두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난 정말 감사한다. 너희들 덕분에 난 복된 삶을 살았구나.
나를 아껴주신 모든 분들게 올립니다.
여러분들이 저로 인해 슬퍼하시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렇게 하나, 둘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할 시간도 허락 받았습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고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12월 16일 강영우 드림.
강영우 박사는 헬렌켈러의 이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맹인도 농아도 아닌, 시력은 있으되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
강영우박사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면서, 세상과 미래를 선명하게 내다보고,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 즉 ‘비전’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중학생 때 불의의 사고로 앞을 볼 수 없게 됐지만 한국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가 됐고, 세계 장애인 복지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미 연방정부 최고 공직자로 영광스럽게 은퇴를 했습니다. 강영우 박사가 가진 유일한 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세상 사람들 앞에 보여 줍시다. 그들보다 성공하지 못했고 그들보다 잘난 것이 없다 할지라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주신다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이상, 우리는 늘 즐겁게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처럼 기도하여 응답의 큰 비를 체험합시다. 그리고 세상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빗속을 힘차게 달리는 오늘의 엘리야가 됩시다.
세상 사람들이 절망하는 그 곳에서 절대 신앙, 절대 희망을 보여 줍시다. 가난해도 당당하기만한 당신. 실패 속 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당신. 병들은 몸으로도 품위를 잃지 않는 당신. 당신의 삶은 절대희망의 표상입니다.
하나님! 나를 지켜 주셨군요. 하나님! 드디어 은혜의 비를 주셨군요. 세상 사람들아, 나를 보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라!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은혜의 소낙비를 맞으며 빗속을 당신은 반드시 달려가게 될 줄을 믿습니다. 약속의 구름을 붙들고 기도하는 당신! 절대희망의 사람 당신 앞에 하나님은 큰 비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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