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1. 4. 절대 감사 하박국3:16-19
I. 절대 감사
토요일 오후에 결혼식 주례가 있었습니다. 토요일 길 사정을 예견하기가 힘들어 조금 일찍 출발했더니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차안에서 쉬다가 나와서 팔운동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어떤 분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끄집어내더니 담배가 다 떨어졌던 모양입니다. 저에게 다가오더니 담배 한 대만 얻어 피겠습니다. 제가 담배가 없습니다. 이분이 몇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어떤 분을 만났습니다. 담뱃갑을 끄집어내니까 벌써 90도 절을 두 번 합니다. 담배 한 대 받아들고는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입니다. 불을 붙여 주었더니 굽실거리면서 계속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더라구요.
야 담배 한 대 얻어 피우고 “감사합니다”를 여러 번 하는데, 우리 교인들이 은혜 받으러 오면서 저렇게 감사하는 사람 있을까?
“아이고 은혜 받으러 왔네?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러고 인사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학창시절에 담배를 피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쓰레기통에서 담배를 찾는데 꽁초 하나 주우면 그렇게 좋아합니다.
그러다 반쯤 피우고 버린 새끼 손가락만한 것을 장초라고 합니다.
장초 하나 주우면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담배꽁초 하나마도 못한지, 우리가 정말 어떻게 감사하고 사는 것인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년 한해 시작하면서 「절대 희망, 절대 신앙」 제목으로 집회를 하고 한해의 문을 열었습니다. 한해를 갈무리하는 이 시간 우리는 「절대 감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한국 초기 교회 시절 어느 시골교회에 “제조기”라는 별명을 가진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뭘 제조하는 사람이길래 “제조기”, “제조업자”라는 별명을 가졌을까? 이 분은 어떤 사건,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그 문제를 가지고 비판을 합니다. 불평 원명거리로 만들어 내는 기가 막힌 재주가 있습니다. 이분은 불평 제조기, 비판 제조업자라는 별명이 붙은 집사님이십니다.
이 분이 회갑잔치를 하게 되었는데 먼곳에 있는 선교사님을 초대해서 회갑잔치 예배를 인도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추운 겨울날 눈이 많이 와서 선교사님이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쯤 뒤늦게 도착했는데 한 시간 동안 이 제조기 집사님은 온갖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온갖 비판을 쏟아 냅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시간 후에 선교사님이 도착해서 미안합니다. 예배를 인도하십니다.
선교사님이 오면서 모시고 오는 분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잔치 무슨 잔치입니까?”
“네. 회갑잔치입니다. 회갑잔치라고 하고 육순 잔치라고도 합니다.”
예배를 인도하는데 선교사님이 헷갈리셨습니다. 회갑잔치도 아니고 육순잔치도 아니고 육순회갑이 아니라 육갑이 된 겁니다.
“오늘 육갑잔치 축하합니다. 육갑 맞으셨는데...” 이렇게 예배를 인도하신 겁니다.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아이고 육갑 떨더니 오늘 육갑 잔치 한다...” 이렇게 된 겁니다. 이 집사님이 크게 회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불평 제조기들이 의외로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습니다.
봄이 되면 을씨년스럽다고 불평합니다.
여름이 되면 더워도 너무 덥다고 불평합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많이 떨어져 청소하기 힘들다고 불평하고
겨울이 되면 눈 쌓여 얼음길 외출하기 힘들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감사 제조업자들은-
봄에 꽃 기가 감사하고, 여름에 무성한 가지가 감사하고
가을에 맛난 과일들이 있어 감사하고, 겨울에 흰 눈 쌓여 온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불평촌에서 살던 사람들이 감사 촌에 놀러 갔더래요.
입만 벌리면 감사를 하거든요. 별것 아닌데 감사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배워 와서 하잘것없는 일들을 만날 때마다 감사하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불평촌이 달라지기 시작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감사란 흉내만 내어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추수감사절은 처음부터 궁궐 같은 저택에서 산해진미 진수성찬 차려놓고 드린 감사예배가 아니었습니다.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은 오직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신대륙을 찾아 길을 떠나갑니다. 당시 항해술은 취약했습니다. 준비된 메이플라워호는 146명의 가족을 태우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파도의 위험, 추위와 기아, 질병의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어렵사리 도착한 계절이 겨울입니다. 그 해 겨울 추위, 식량부족으로 영양실조, 전염병이 온 가족을 괴롭혔습니다. 무려 44명의 가족이 죽어갔습니다. 그 나마 다음해 농사를 지었는데 완전히 망쳐버렸습니다. 가져온 씨앗도 농사기술도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 겁니다. 다행히 착한 인디언 원주민들을 만나서 농사기술을 배웠고 이분들이 씨앗을 나누어 주어서 농사를 지어 그 해 가을 얼마의 옥수수, 호박, 감자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준 원주민들을 초대해서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추수 감사예배의 시작입니다.
「평생 감사」라는 책에 보면 이분들이 드렸던 7가지 감사가 나옵니다.
1. 비록 작지만 배를 주셔서 항해를 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2. 한없이 느리지만 끝가지 항해를 할 수 있었으니 감사합니다.
3. 항해 중에 두 사람이 죽었지만 한 아기가 태어났으니 감사합니다.
4. 항해 중에 큰 돛이 부러졌지만 파선하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5. 여인들이 파도에 휩쓸렸지만 한 사람도 떠내려가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6. 원주민들의 호의가 감사합니다.
7. 그 어려운 항해 여정 속에서도 돌아가자고 하는 가족이 한명도 없었으니 감사합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지속적으로 지키는 힘은 절기신앙입니다. 우리가 콧구멍으로 숨 쉬는 것 -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요.
하루 세끼 밥 먹고 사는 것 - 별것 아니지요.
하루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드는 것 - 일상적인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듯이 믿음의 백성들의 절기를 지키는 신앙, 이것이 그들의 신앙을 지켜주었다는 것입니다.
생명 걸고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자신이 가진 최고의 것으로 절기를 지켜 냈습니다. 이 신앙이 수천년 믿음을 이어오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내 신앙을 절대 신앙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내 신앙을 최고의 신앙이라고 자부했던 것입니다.
감사절을 지키라. 이것은 성경의 명령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추수 감사절, 수장절을 지키라.
너희들이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는 유월절을 지키라.
성경의 명령입니다.
풍년이 들고 주가는 상승하고 경제지표가 높을 때에만 감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위기와 고난 속에서 더욱 뜨겁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최악의 환경에서 최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요, 최악의 여건 속에서 최고의 감사를 드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감사는 “절대 감사”입니다.
II. 고난을 껴안고서(하박국)
하박국은 고통의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나라가 외적의 침입을 받았고 질병이 온 나라에 번져있었고 농사를 지어놓으면 강대국들이 몽땅 빼앗아 갔습니다. 아내가 끌려가고 젊은이들이 끌려가고 어린아이가 비참하게 길바닥에 팽개쳐져 죽어가는 처절했던 모습을 지켜보았던 선지자였습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고난의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기도하는가?
신앙인들은 어떻게 예배하는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어떻게 찬양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 선지자가 하 박국 선지자입니다.
일본의 우쭈무라 간조는 “하박국이야 말로 선지자 가운데 최고의 선지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의 모토가 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이 신앙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인은 환경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속에서 최고의 감사를 드릴 때에 최고의 신앙인이 되는 것을 가르쳐 준 선지자가 하박국 선지자였다고 합니다.
하박국이란 뜻은 “포옹한다. 껴안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지자 하면 문제가 있을 때마다 걸핏 책망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불평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불평하는 대신 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았습니다. 책망하는 대신에 그 문제의 중심으로 뛰어 들어가서 그 문제를 가슴에 부둥켜안고 주의 전에 나아가 기도했던 것입니다.
문제를 끌어안고 기도했던 선지자, 오늘 이 땅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나라의 문제를 내 문제로 끌어안고, 교회의 문제를 내 문제로 끌어안고, 시대와 역사의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어떻게 기도하는가? 가르쳐준 선지자가 바로 하박국 선지자였습니다.
3장 1절을 시작하면서 이 기도의 무게를 그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시기오놋이 무엇인지가?
어떤 주경가들은 “악기 이름”이라고 하고, 어원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절정-크라이막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절정의 노래”라고도 합니다.
종합해 보면 위기가 있을 때에 감사제를 드리며 한 악기를 치면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 악기가, 그 예배가, 그 기도가, 그 감사가 절정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 있을 때 감사하는 것 - 좋은 일이지요. 감사가 사라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어려운 여건과 형편 속에서 없는 것 속에서 고난과 절망과 좌절 속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최고의 감사를 하는 신앙이 시기오놋 - 절정의 예배요 절정의 감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III. 나라가 어려울 때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오늘 우리의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했습니다.
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북쪽은 타락하여 하나님도 성경도 잃어버리고 예배도 잃어버리고 앗수르의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남쪽 유다는 룰루랄라. 우리는 성전이 있잖아. 우리는 예배했잖아. 아름다운 성전이 있는데 우리를 버리실 수 있겠어. 이때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나타서 북쪽 이스라엘보다 남쪽 유다는 더 비참하게 망해 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북한이 망하는 거야 - 성경도 없고 자유도 없고 예수도 없고 예배도 없으니 당연한 것이지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좋은 예배당이 있잖아. 큰 교회들이 있잖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천만이나 되잖아. 하나님이 이 나라를 치시겠어? 하나님이 버리시겠어? 하나님이 복 주실걸? 게으르고 나태하고 방종한 신앙자세. 바로 이것이 하박국 시대, 오늘 우리 시대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예민하여 크게 깨닫고 크게 기도한 선지자가 하박국 선지자였습니다.
하박국의 문이 열려지면 1장 2-3절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 민족을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한국교회를 짓밟으십니까?
어찌하여 우리를 이렇게 어렵게 만드십니까?
어찌하여, ‘어느 때까지리이까’를 반복적으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나라가 얼마나 어려웠든지 3장 2절에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16절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내 창자가 흔들린다. 단장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새끼를 빼앗긴 원숭이가 백 여리를 따라오다가 배에 몸을 던져 피를 토하고 죽습니다. 선원들이 배를 갈라봤더니 새끼를 빼앗긴 고통이 너무나도 처절하여 울부짖다가 창자가 난도질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토막토막 끊어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해간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젊은이들이 노예로 끌려가는 비참한 상황 속 에서 백성들이 타락하고 위정자들이 부정부패에 오염되어 질 때에, 제사장들이 비웃음거리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하박국 선지자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내 창자가 뒤틀렸다고 흔들렸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가운데에 심판의 실체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민족이 이렇게 망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성전은 무너지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나라가 패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예요. 맞아도 싸요. 망해도 싸요.
하오나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3:2)
“하오나”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맞아도 당연하지만, 맞아도 싸지만 그러나 당신의 백성이니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기회를 주세요. 살려주세요.
그 옛날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순수했던 그 신앙, 일제강점기 고난과 고통가운데 백성들의 고통을 짊어지고 기도했던 나라와 민족을 살렸던 민족의 선진들처럼 이 백성,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한국교회에 주십시오. 그 얘기입니다.
IV. 하박국의 감사
이 시대의 하박국의 누구입니까?
나라의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는 사람, 교회의 문제를 가슴에 부둥켜안고 기도하는 사람, 모든 백성들이 이제는 끝났다고 비판하고 원망할 때 비난의 화살을 퍼부어 댈 때에 그 문제를 내 문제인줄 알고 가슴에 끌어안고 나아가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돌아가면 주님이 살려주실 것입니다. 주님 앞으로 백성을 이끌어 가는 선지자가 이 시대에 하박국입니다.
기도했더니 하루아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졌나요?
나라가 평안해 지고 농사가 풍요로워졌나요?
이렇게 기도할 때에 선지자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3:17)
여기 6가지가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춤이 덩실덩실 추어집니다. 행복해집니다. 기뻐집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8)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이 이 백성과 고난 받는 백성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조롱거리로 전락한 이스라엘, 유다 백성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이 교회를 지키십니다. 이 백성을 지키십니다. 한국교회를 붙들고 계십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고난의 밤에 부르는 노래가 시기오놋 절정의 노래였던 것입니다.
고난 중에 드리는 감사가 시기오놋 절정의 감사라는 얘기입니다.
절대 감사라는 것입니다.
♪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내게는 죄가 있지만 그 죄를 용서하는 십자가가 있으니 예수가 있으니 기쁘고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을 주경하던 많은 주경가들은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인생의 절벽에서 정상으로, 인생의 밑바닥에서 그 꼭대기로 올라간 선지자라고 요약하게 된 것입니다.
윌리암 로우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오늘 본문을 주경하며 그렇게 얘기합니다. “최고의 승자는 자선을 많이 베푼 사람이 아니다. 최고의 승자는 금식을 오랫동안 한 사람도 아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며 살았던 사람이 최고의 승자다.”
가장 평범한 일상생활 한 가운데서 감사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할렐루야.
V. 365일 감사
한소망교회 개척초기에 있었던 일이니 한20년쯤 전인 것 같습니다.
당시 강원도에 가는 길은 마냥 꼬부랑 길이었습니다.
태백에 있는 KBS공개홀에서 청소년집회가 있어서 아내가 운전을 하고 가파른 언덕 외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촉박한데 앞선 차량 한 대가 너무나도 여유 있게 운전을 하는 겁니다. 제가 아내에게 “밟아 밟아” 그러자 옆으로 비켜서 반대 차선으로 밟아 오르는데 그렇게 느리게 가던 앞차가 같이 밟아서 빨리 달려갑니다. 드디어 추월을 막해서 언덕에 올라갔더니 <급커브길> 청천벼락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벼랑입니다. 급브레이크를 잡았더니 차가 돌기 시작합니다. 두 바퀴를 돌더니 구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가는구나. 앞에 준비된 설교를 마치고 다음 설교를 준비하고 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는 게 목사의 생이구나. 그런데 이것이 끝이구나. 하고 하나님을 만날 생각을 하는데 짧은 시간인데 살아왔던 기간들이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다 지나갑니다. 그러고 하나님을 만날 생각을 하는데 평안이 차는 굴러가는데 얼마나 평안한지요. 평안~ 해 집니다. 이젠 죽었나 싶었는데 차가 벼랑으로 굴러 떨어졌으면 죽었을 텐데 반대편으로 떨어져 나뭇가지에 걸려 밭두렁에 뒤집혔습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오더니 차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가만히 있었더니 “죽었다” 그럽니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저희들을 구해 주었는데 차는 종이처럼 꾸겨져 있는데 우리는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손가락 끝에 상처 하나 나지 않았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찌어찌하여 KBS 공개홀에 도착해서 설교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종말론적인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그 다음날이 금요일이라서 금요철야에 갔는데 교인들이 기다려 주었습니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목사의 설교를 들어주는 교인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어린아이들이 엄마 하고 반겨 맞아 주었으니 감사하고 모든 것이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사고 난 것만 감사합니까?
사고하나 없이 살았는데, 큰 수술하나 없이 살았는데.
수술하여 살아난 것만 감사합니까? 아무런 수술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전쟁터에서 살아난 것만 감사합니까? 전쟁 겪지 않고 한 인생 살아가는데.
모든 것이 감사로소이다. 할렐루야.
결론은 분명해졌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감사, 신앙인의 감사는 환경감사가 아닙니다. 절대감사였습니다.
두 아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순교를 당합니다.
장례식에서 10가지 감사를 드린 손양원 목사님이 그 주일날 감사헌금 1만원을 드립니다. 당시 목사님의 생활비는 80원 20년 생활비를 꼬박 모으면 1만원이 되던 때였습니다.
연봉 4천만 원쯤 된다고 생각해 보면 약 8억 정도의 재산을 몽땅 정리하여 순교 감사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왜요? 그 아들과 함께 나도 죽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입에 발린 감사가 아니라 진정으로 감사하며 순교자의 가문으로 주신 것을 감사했던 것입니다.
전 광 목사님이 선물해 주신 「평생 감사」라는 책을 지난주간에 읽었습니다.
거기 나오는 감사 명귀들을 몇 가지 소개함으로 오늘 말씀을 맺습니다.
- 종은 울릴 때 종이고 장작은 탈 때 불이 되듯 믿음은 감사할 때 참된 믿음이 된다.
-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 평범한 삶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감사이다.
- 사람에게 가장 큰 저주는 감사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 기쁨만 아니라 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
- 성공만 아니라 실패도 감사하겠습니다.
- 가진 것만이 아니라 없는 것도 감사하겠습니다.
- 풍족할 때만이 아니라 부족할 때도 감사하겠습니다.
- 건강할 때만이 아니라 아플 때도 감사하겠습니다.
- 이 땅에 사는 생명만이 아니라 죽는 그 날도 감사하겠습니다.
- 감사하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선물을 포장만 하고 주지 않는 것과 같다.
- 하나님이 거하시는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감사하는 이 마음이다.
- 감사한다고 오늘 환경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감사할 때 우리의 마음이 바뀌고 그 마음은 우리의 환경을 바꾸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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