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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스크랩]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고후6:1-2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집회인도를 위하여 비행기를 탔는데 한 남자 승객이 술에 취하여 욕설을 하면서 지나가는 스튜디어스를 희롱 하는가하면, 자기가 조종사에게 지시해야 한다고 하며 조종석으로 가려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승무원들이 그를 가까스로 붙들어 좌석에 앉혔는데, 빌리그래함 목사님의 바로 앞자리였습니다. 그 사람이 계속 소란을 피우고 있을 때 앞좌석의 한 신사가 그에게 “여보시오. 선생, 당신 뒤에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앉아 계신 것도 모르오? 좀 조용히 하시오”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술 취한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를 향해 서서 “아, 당신이 그 유명한 설교자 빌리그래함 목사시오? 악수나 한 번 합시다. 나도 교회에 나가는데 당신의 설교에 은혜를 아주 많이 받고 있소.”라고 하더랍니다.

사람도 가지가지이고 은혜도 가지가지인가 봅니다. 우리는 은혜를 제대로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은혜가 풍성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느라고 은혜를 헛되이 받고 있습니다.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참된 은혜를 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시제는 “여기 그리고 지금”입니다. 영어로 "here and now"입니다. 나중에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이 중요합니다.
 

첫째로, 은혜로 채워야

R. A. 토레이 목사님에게 어느 날 여자 성도 한 사람이 찾아와서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예수를 바로 믿고 싶습니다. 좀 더 뜨겁게 믿고 싶고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부흥회도 여러 번 다니면서 애를 썼는데 은혜가 오지를 않습니다. 뜨거운 은혜 속에서 살아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때 토레이 목사님께서 지혜로운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은 뭐라고 기도하십니까?" "기도제목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 들으셨을 테니까 이제부터는 한가지 제목으로만 기도하십시다." "무엇인데요?" "하나님 아버지, 나 자신을 알게 해주세요. 자신을 똑바로 알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그녀는 그대로 순종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 자신을 알게 해주세요. 나 자신을 바로 바로 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데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 속에서 자기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지 머리끝서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시기, 질투, 명예, 욕심, 게다가 거짓, 너무 너무 더럽고 추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남편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부끄러워서 아이들을 대할 수도 없습니다. 다시 목사님께 와서 "목사님, 이제는 너무 창피해서 살수가 없는데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다음 기도를 하세요. '십자가를 알게 해주세요. 십자가의 은혜를 알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날마다 십자가를 생각하세요."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를 위하여 피 흘리시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음성을 듣고 뜨겁게 감격했습니다. 그녀는 그 때 비로소 충만한 은혜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누구입니까? 나의 나됨을 똑바로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누구를 비방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삶의 빈자리를 은혜로 채워야 합니다. 그리하면 섭섭하고 억울하고 분한,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집니다. 오로지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부터 걱정, 근심, 고통들을 쫓아버리고 그 빈자리를 은혜로 가득 채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은혜를 놓치지 말아야

현대는 어디를 가나 교회가 있고, 어디를 가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의 시대입니다. 은혜의 문이 활짝 열려 있으며, 누구든지,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많은 사람들이 은혜 받는 일에 무관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 받을 기회가 우리의 시간 속에 숨어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의 기회도, 성공의 기회도, 축복의 기회도, 은혜 받을 기회도 바로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지금’이란 기회를 잘 잡은 자요, 실패한 사람은 ‘지금’이란 기회를 놓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지금이란 말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2년 6개월된 아기를 가진 엄마가 교육학자를 찾아가 “박사님, 이 아이에게 어느 때부터 교육을 시작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더니, 박사가 아기엄마에게 “부인, 때는 이미 2년6개월 늦었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만큼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지금, 더 이상 늦지 않도록 지금이란 때를 놓치지 말고 은혜 받을 축복의 시간으로 붙잡아야만 됩니다. ‘지금’이란 헬라어 ‘뉜 헤메라’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때임과 동시에 인간이 그 구원에 응답해야 할 때임을 상기시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빌리그래함 전도대원 중에 단 피아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전도집회를 하는데 예수를 모알지 못하는 부자가 참석했음을 보고 이튿날 그를 전도하려고 찾아갔습니다. 부자는 피아트에게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흥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백만달러의 큰 사업계획을 하기 위해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안됩니다. 오늘밤에 당신에게 전화할 것이니 그때 만나서 얘기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 날밤 피아트는 늦도록 그의 전화를 기다렸으나 연락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지난 밤에 그 부자가 병원에서 죽었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피아트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담당의사는 그 부자가 죽기 전 “내가 왜 그 사람을 안 만났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란 말만 되풀이하다가 숨을 거두었다는 것을 피아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지금이라는 때를 놓치면 이미 늦습니다. 내일은, 아니 잠깐 후도 지금은 아닙니다. 기회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지만 이를 이용할 줄 모르는 자에게는 아무리 좋은 기회라 할지라도 무가치한 것입니다. 은혜 받을 기회는 바로 지금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천국에는 "아멘"과 "할렐루야" 소리로 충만한데 지옥에는 "걸", "걸" 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은 무슨 걸일까요? ‘이럴 줄 알았다면 예수 믿었을 걸, 죄 짓지 않았을 걸, 너무 인색하지 말았을 걸, 그렇게 교회 가서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당 가자고 했을 때 예수 믿을 걸, 형제간 서로 사랑하고 살았을 걸, 구제하고 살았을 걸’ 하는 소리가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지옥이란 곳은 기회를 잃은 사람들이 영원히 후회하는 곳입니다. 은혜의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은혜의 때로 바꾸어야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들은 환란의 날을 은혜의 날로 바꾼 사람들입니다. 비록 환난의 날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세상에서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믿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환난의 세상을 이기고 은혜의 날로 만들어 살아가는 복된 자입니다.

높은 산에는 식물의 한계점이 있답니다. 어느 높이 이상은 식물이 자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두산 정상에 가보니 나무보다는 이끼 종류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식물이 자랄 수 없는 한계점을 넘어서서 종종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은 자라는 가운데 비바람이 있고, 춥고 눈보라가 늘 강하니까 꼿꼿하게 자라지 못하고 그것들을 견디느라고 나무가 땅으로 고개를 숙이고 자란답니다. 그러면서 10년, 20년, 30년 세월이 지나갑니다. 그런 나무의 모습을 보고 어떤 신앙인이 "무릎 꿇은 나무다."라고 하였답니다. 그렇게 크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견디며 자란 나무가 어디에 쓰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데도 쓸데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이 나무로 만든 바이올린이 가장 공명(共鳴)이 잘된다고 합니다. 가장 공명이 잘되는 바이올린은 바로 그런데서 자란 나무를 가지고 제작한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눈보라 속에서 은혜의 꽃을 피우는 증인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늘은 스스로 다른 바늘을 들어 올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석에 붙어 있는 바늘은 다른 바늘을 줄줄이 들어 올릴 수가 있습니다. 환난의 날을 은혜의 날로 바꿀 수 있는 믿음만 있으면 어려운 일들을 은혜의 능력으로 들어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게는 환난 날이 은혜의 날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환난 날의 회복처방은 믿음으로 은혜를 힘입어 주님만을 온전히 바라보고 나아가 주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인생은 순간자체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는 지금의 행동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최대의 전략 방법은 ‘다음에’ 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이란 숨쉬는 그 순간, 살아 있는 이 순간을 의미합니다. 이 순간, 맥박이 뛰고 심장이 고동 치고 손발이 움직이고 두 눈이 껌벅거리고 있는 순간을 말합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순간에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이란 말은 시간적으로 종말을 말합니다. 마지막 순간을 의미합니다. 몹시 긴박한 시간을 말합니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됩니다. 은혜를 카이로라고 합니다. 그 뜻은 "유쾌하다,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유쾌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행복합니다. 본문은 은혜와 구원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기쁘고 은혜를 받아야 행복하고 은헤를 받아야 구원의 날에 자랑스럽게 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은혜는 지금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지금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종을 귀한 벧엘 제단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여러 성도들과 함께 은혜 받고 기쁘게 살기를 원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만남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주님께 합당한 믿음과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벧엘 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벧엘/김광일목사

 

2003-12-14 12:04:34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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