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7. 7. 성령과 거듭남 요한복음 3:1-8
I.
재주가 메주란 말이 있듯이 저는 손재주가 메주입니다.
학창시절 그림 그리는 시간이 제일 싫었습니다. 데생 시간에 내 주먹을 그리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지나가시다가 영모야, 주먹 그려라 그랬지 감자 그리랬냐? 스케치북을 찢고 다시 그리는데 영모야, 그게 고구마지 주먹이냐? 주먹 흉내만 내면 점수 줄테니 잘해 봐라.
제가 스케치북을 여나무 장을 찢어가며 그리고 또 그려서 겨우 과락을 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림이야 그리다 잘못되면 찢고 다시 그리면 되지만 인생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일생이라 합니다. 한번 태어나 한번 살고 한번 죽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졸업한 시골에 초등학교, 중학교가 붙어 있었는데 그 학교를 모두 졸업했습니다. 어느날 초등학교에 불이나서 중학교까지 몽땅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날밤에 이분이 너무 기분이 좋더랍니다. 왜냐하면 어린시절 내 성적표가 모두 불타 없어졌구나. 얼마나 자유가 오는지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 성적표를 보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여러분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보고 싶으십니까?
지금의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녀로 태어나 보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하고 싶었던 일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지금의 배우자가 아닌 다른 배우자를 만나서 살아보고 싶으십니까?
그럴 수 없는 일입니다. 어리석은 인생들의 공상일 뿐입니다.
불교에서는 윤회설을 주장하는데 이 땅에 살았던 공적을 따져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돼지로 소로 심지어는 벌레 한 마리로 태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저희 할머니가 제사를 지내는데 제삿날 가마솥에 밥을 한 솥해서 척~ 열더니 저를 불러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할아버지가 젊어서 일만 좋아하시더니 소로 태어났는가 보다. 왜냐하면 가마솥 밥에 소 발자국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여러분 다시 태어나면 지금보다 용모가 더 아름다울까요?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날 수 있을까요? 성격은 더 아름다운 성격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요?
모두 쓸데없는 백일몽일 뿐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성령과 거듭남」 다시 태어나는 법을 가르쳐 드리려고 합니다.
II.
교회에 나가지 않던 아이가 친구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그 다음 주일날도 교회에 가겠다고 주섬주섬 챙기는 겁니다. 얘야 교회 가면 그렇게 재미있니? 엄마 무지 재미있어. 노래시간도 재미있고 이야기 시간도 재미있지만 진짜 재미있는 시간이 있다. 예배가 끝나갈 무렵 동전주머니가 우리 앞에 지나가. 아이들이 다 손을 넣어서 하나씩 다 가져가. 나도 지난주일 몇 개 가져왔다. 이번주일엔 나 많이 가져올래. 얼른 교회 가야 돼.
여러분 교회 왜 오십니까?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일까요?
밥 먹고 살아가는 일 일까요? 좋은 옷을 입고 살아가는 일 일까요?
성공하고 출세하는 일 일까요?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거듭나는 일입니다. 구원 받는 일입니다. 영생을 얻어 천국 가는 일입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할지라도 천국에서 눈을 뜨는 일입니다.
성경의 첫 번째 책은 창세기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27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제일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2장에 가면 동화적으로 설명되어져 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living soul 영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지으신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무엇을 먹든지 괜찮다. 그런데 동산중앙에 있는 선악을 아는 열매, 하나님과 교제하며 선한 동산에서 살아야 되는데 악을 함께 알 수 있는 열매를 먹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번제였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어떻게 되는가?
창세기 2장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뱀의 꾀임에 빠져서
창세기 3장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때부터 인간은 타락한 아담의 형상을 가지고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고 죽음을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이때부터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었는가?
창세기 5장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범죄한 아담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아담의 형상, 범죄한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거듭나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3장 3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거듭나야 한다.
여기 사람은 모든 인간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흉악범, 창녀나 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도 거듭나야 합니다.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낮은 사람도 높은 사람도, 착하고 선한 사람, 똑똑한, 모든 인간들은 거듭나야 한다.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어머니 뱃속의 열 달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70년 80년 인생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70년 80년 삶은 중요합니다. 영원히 살 천국과 지옥이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19세기초 D.L. 무디라는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62세때 있었던 일입니다. 이 당시 평균나이가 60이 훨씬 안되던 될 때이니까 요즘으로 80이 훨씬 지난 나이였습니다. 아침 조간 신문에 무디에 관한 기사가 났는데 Old 무디, 늙은 무디. 老 무디가 어떻다 하는 내용입니다. 실상 그 내용은 칭찬하는 내용인데 Old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무디가 화가 난 겁니다. 주일날 강단에 서서 여러분 오늘 아침 신문 보셨지요? 저를 보고 늙었다고 썼습니다. 제가 늙었습니까? 교인들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진짜 늙었거든요. 제가 곧 죽을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저는 62세밖에 안되었습니다. 100년을 살 것입니다. 교인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습니다. 노망이 들었나 봐. 아닙니다. 저는 1천년을 살 겁니다. 저는 1만년 10만년을 살아 영생을 얻었습니다. 나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교인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아멘. 했다는 겁니다.
III.
지난주 제가 강단에 설 때 다리를 절고 섰더니 교우들이 많이 걱정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부교역자들과 운동을 하다가 종아리에 쥐가 났습니다. 쥐가 나면 발목을 꺾어 주물러 주면 되거든요. 그런데 주무를수록 아픈 겁니다. 피부 살갓은 만질 수가 없습니다. 하루밤 자고 다음날 병원에 갔더니 단순한 쥐가 아니라 종아리 근육이 늘어나서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간 겁니다.
부목사들이 다리를 꺾고 뜨거운 핫팩을 하고 계속 주물렀는데 핫팩하고 주물러서 종아리 근육이 더 늘어난 겁니다.
핫팩을 하면 근육 터진게 잘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냉찜질을 해야 하는데 계속 뜨거운 물을 끓여서 핫팩을 했습니다. 만지지 말아야 하는데 계속해서 꺾었습니다.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병원에 가면 되는 것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 이미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은 인생,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핫팩으로 안되는 겁니다. 종아리 주물러서 안되는 겁니다. 다리 꺾어서 안되는 겁니다. 선행으로 안된는 겁니다. 공으로 안되는 겁니다. 지식과 철학으로 안되는 겁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 천국 우주에 주인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오늘 본문 요한복음은 인간의 거듭남에 관한 대단히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칼빈은 마태, 마가, 누가 – 공관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요한복음은 주님의 영혼을 보여준다고 얘기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이 20장 31절에 나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 중 오늘 본문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요한복음에는 11개의 예수님의 대화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은 첫 번째 대화입니다. 가장 먼저 있었던 대화가 아니라 요한복음의 기록상 가장 중요한 기록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결론이 났습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기독교가 이 땅에 존재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죄인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다. 거듭난다. 구원받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영생을 얻는다는 말과 꼭 같은 말입니다.
주님과 대화를 하러 어떤 본문의 주인공은 니고데모라는 인물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입니다. 주님께서 가끔은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니까 바리새인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그렇게 생각 하는데 아닙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대단히 애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을 모아서 6천명이 넘지 않는 범위내에서 바리새인들을 선별했습니다. 한국교회안에서 바리새인들을 선별한다면 여러분에게 포함될 수 있을까요?
더더구나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관원이었습니다. 대법원 판사였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죽으신 다음에 거기다가 주님의 몸에 발라드리기 위해서 몰약과 침향 섞은 것 100근 정도를 가지고 왔습니다.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부자였다는게 문제가 아니라 돈을 근사하게 쓸 줄 아는 멋진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분이 찾아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분이 거듭남의 도리, 천국 가는 원리를 알지 못하여 주님 앞에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는 내용이 오늘의 내용입니다.
더더구나 니고데모가 주님을 찾아온 시간은 성경에 보니까 밤에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니고데모가 주님과 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에 찾아왔다고 그러는데 주경가들의 설명대로 이 사건이 주님이 십자가를 목전에 두셨던 고난 절기 그리고 말년에 있었던 일이었다고 한다면 주님을 만나는 사람은 교회에서 출교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겁하게 밤에 찾아온 것이 분명합니다.
빌리도는 자기의 지위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건이, 우리의 지적 능력이, 환경이, 건강이, 주님을 만나는데 쓰임받는 다는게 복이지요. 그러나 이것 때문에 신앙생활이 게을러야 하고 기도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주님을 배신해야 된다면 그 모든 것들이 저주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시골에서 한 가난한 집 얘가 똑똑하게 공부를 잘 해서 소 팔아, 논 밭 팔아, 어머니가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돈 모아서 대학을 졸업시켰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시간에 어머니가 아들 졸업하는 학교에 오고 싶어서 비녀 꽂고 대학 졸업장에 왔습니다.
온 캠퍼스를 찾아다니다 아들이 잔디밭에 여학생과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보고 창호야~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습니다. 아들이 달려오더니 엄마 저 그늘 아래 가만히 앉아 계세요. 그러마. 내가 기다릴테니 얼른 와라. 돌아서는데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자기 저 촌스러운 아줌마 누구야? 어 우리 엄마가 보낸 하인이야.
피 눈물이 나더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에 당당하게 때로는 손해볼 수 있고 핍박 받을 수 있고 억울함을 겪을 수 있어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다. 한소망교회 집사다. 당당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니고데모. 나 같으면 만나지 않았어요. 나무라지 아니하고 비겁을 지적하지 아니하고 만나 주셨던 것입니다.
IV.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의 주제가 무엇이었습니까?
한 마디로 요약하면 「거듭남과 성령」 「성령과 거듭남」이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3절-5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복음서를 읽어 내려가다 “진실로 진실로” – 이런 말이 나오면 그 다음에 의미심장한 내용이 나옵니다. 반드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여기서 예수님은 1인칭 2인칭 단수를 쓰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모든 인류는 - 인간이면 누구나란 뜻입니다.
인간은 육적으로 반드시 태어난 경험이 있어야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거듭난 경험이 있어야 천국시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인간이면 누구나. 사람이.
누구나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동서고금, 피부색깔, 신분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거듭나야 한다.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시민이 될 수 없고 천국을 볼 수 없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무엇일까요?
인간에게 처세술을 가르치기 위해 성경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농사법, 사업수완을 가르치기 위하여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성공술, 요리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는 병든자를 치유하는 치유방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성경이 기록된 것도 아닙니다.
거듭남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거듭남의 복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천국의 복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에게 거듭남을 확증해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을 영원히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하여 천국을 준비하러 승천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있을 곳을 예비하면 내가 너에게로 다시 오리라.
이 거듭남의 원리, 법칙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란 사실이 믿어지시는 것입니다.
앵무새가 사람 말 몇 줄 따라 했다고 인간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원숭이가 사람 흉내 낸다고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착한 일 좀 하고 거듭난 사람들이 가지는 기쁨의 순간을 누렸다고 해서 구원얻은 백성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하나님이 아바 아버지라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여기 오셔서 기도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 그럴 때에 기쁨이 있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란 사실이 추호도 의심없이 믿어지셨습니까?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구세주이심이 믿어지십니까?
어떤 핍박이 와도 믿어 주님과 영원히 더불어 사시겠습니까?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내 몸에서 태어난 우리 아들 딸은 나를 보고 아버지라 부릅니다.
제가 어디에 가든 나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아이들은 그들밖에 없는 것이지요.
제가 예배를 드리고 나가는데 우리 딸이 아들이 저를 보고 달려와서 아빠 오늘 점심시간에 친구들하고 만나야 해요. 용돈 좀 주세요.
제가 주지요. 돈을 주면서 아껴 써라. 2천원을 줍니다. 우리 아이들이니까. 내 딸, 내 아들이니까요.
V.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 진리 하나가 있습니다.
거듭남은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 짐을 담당하시고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가 되도록 그 죄사함의 은총이 나의 은총이 되도록, 천국이 나의 천국이 되도록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느니라.
성령은 알겠는데 물은 무엇인가?
천주교와 성공회에서는 세례가 물이다 그렇게 이름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구원예식인 세례예식을 받아야 구원이 완성된다. 그렇게 주장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물이다. 그렇게 이름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이 물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이때 성령이 역사하게 되면 말씀이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회개하고 죄 씻음 받는 사건이 물이다. 그렇게 이름합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믿지 못했던 죄를 회개하고 죄 씻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죄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성령에 대한 또 다른 단어 – 동의어가 물이다. 그렇게 이름합니다.
아무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야 밖에서 바람이 불어오지 않니 바람은 신비하단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지나간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지 않겠니.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우리 이마에 시원한 바람이 지나 간 것을 왜 못 느끼겠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이렇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게 되면 예수가 그리스도란 사실이 믿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압니다. 예수님이 내 구세주란 사실을.
성령 받은 사람은 압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란 사실을.
성령 받는 사람은 압니다. 오늘이 내 인생에 마지막 날이라도 천국에서 눈을 뜬 다는 확실한 사실을.
이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느냐.
요한복음 3장 14일 이후에 재미있는 얘기를 했습니다.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불평원망하다가 불뱀떼가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백성을 버리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에 장대를 달고 높이 놋뱀 하나를 매달아라.
믿음으로 누구든지 쳐다본즉 살게 될 것이다.(민21:6-9)
바로 믿음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고 그 십자가가 나를 위한 십자가인줄 믿으면 구원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뱀은 참 무섭습니다. 오랫동안 햇빛을 받았기 때문에 누구든지 한번 물리면 죽는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의심없이 알았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놋뱀을 쳐다보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대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 보는 것이 무슨 치유의 효과가 있겠습니까?
얼마나 어이 없는 일입니까? 그러나 여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놋뱀에 무슨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그 장대 위에 달려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한 두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은 독이 없지만 뱀의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백성들을 물어 죽였던 불뱀떼가 나타나서 불뱀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놋뱀은 언제나 단수로 되어져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죽이는 멸망시키는 죄는 그 가지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은 하나입니다.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니라.
약을 발라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려내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목 놓아 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쳐다본즉 살리라.
어떤 사람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달려왔습니다. 쳐다보고 낳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억지로 끌려와서 하나님이 약속하셨어.
이 미련한 놈아. 엄마 그것 쳐다본다고 낳아.
멀리서 끌려와서 어렴풋이 쳐다보아도 낳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주님 앞에 달려옵니다.
어떤 분들은 억지로 옵니다. 체면 때문에 옵니다. 가족의 손에 이끌려 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어떤 사람들은 가까이 와서 놋뱀을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멀리서 어렴풋하게 그림자처럼 놋뱀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두 다 쳐다본즉 살았더라.
신구약 성경을 여러번 읽어서 구원의 진리를 똑바로 깨닫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은 얻었지요. 그러나 성경을 읽은 적이 없고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구나. 예수님이 내 죄를 감당하셨구나. 그분이 내 인생의 구세주이구나. 믿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타인 벡이라는 사람은 화가입니다. 돈을 받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의 요청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부활하시는 예수님, 승천하시는 예수님, 말씀을 증거하시는 예수님,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 예수님에 관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어느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리는데 늘 그 집에 들락거리는 어린아이 한 명이 왔습니다. 아저씨 이분은 왜 이렇게 피를 흘려요? 오 예수님이시란다. 하나님의 아드님이야.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하시고 지금 죽으시는 거야. 우리의 죄요? 그럼 아저씨 죄도? 내 죄도 이 분이 다 담당하시는 거예요? 잠시 후에 아이가 떠났습니다.
이 아이에게 예수님에 관하여 무심코 설명하는 가운데 아저씨의 죄도요?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그림 밑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 주님, 수많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그리면서도 당신이 내 죄 때문에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많은 그림을 그리고 돈 받는 것은 감사했지만 내 죄를 담당하신 당신앞에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부활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내 부활을 거듭남을 확정하시기 위하여 당신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내가 알지 못했습니다.
승천하시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나를 위하여 천국을 예비하셨다는 사실을 내가 알지 못했습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천장 만장 그림을 그려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십자가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에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면 예수님과 우리가 관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죽임이 나의 죽음이 되며 그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준비하신 그 천국 영원한 세계가 나의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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