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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효를 행하라-딤전 5:4(어버이날)

효를 행하라

 

딤전 5:4

 

일제시대 이흥렬(李興烈)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일본에 음악공부를 하러 갔는데 피아노가 없어 공부가 잘되지 않자 어머니께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피아노가 없어서 음악공부를 잘 할 수 없으니 피아노를 한 대 사주십시오.” 그러나 어머니는 혼자의 몸으로 아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어 피아노를 살만한 돈을 마련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산에 가서 솔방울을 모아 팔기 시작했습니다. 수 십 만개, 수백만 개의 솔방울을 주워서 팔아 당시 돈으로 400원을 만들어 아들에게 부쳤습니다. 이흥렬은 그 돈으로 피아노를 사서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은혜와 사랑에 마음 깊이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 작곡한 노래가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입니다. 같이 불러봅니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 이 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에 대한 효()가 강조되어 왔습니다. 부모를 무시하거나 경멸해도 된다는 어떠한 종교도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가부장적 제도가 강화되어 있었기에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성경적 효는 제5계명입니다. ()는 모든 행실의 근본인 것입니다. 새번역 마가복음 7장에 보니 예수께서 바리새인에게 모세가 말하기를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하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말한다.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게서 받으실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그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너희는 너희가 물려받은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며, 또 이와 같은 일을 많이 한다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 드린다는 핑계로 어버이를 공경하지 않는 위선을 비판하신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적인 이유로도 어버이에게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 4절입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여기의 효를 행하여유세베오는 좋은 일을 뜻하는 라는 말과 경배하다를 뜻하는 세보마이의 합성어입니다. 즉 어버이께 좋은 일 하기를 하나님께 하듯이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디 효()를 행하시기 바랍니다. 어버이에게 효를 행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순종함으로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문학가였던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의 일화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장터 한 쪽에 사무엘 존슨이 몇 시간을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어도 대답 없이, 그냥 서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반나절이 지나자 그의 행동에 걱정이 되었던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50년 전, 우리 아버지께서 이 자리에서 헌책장사를 하셨다네. 그날도 장사를 위해 일어나셨지만 몸이 몹시 안 좋으셨는지, 나에게 대신 하루만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 줄 수 있냐고 물으셨었지” “선생님은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우리 집이 헌책장사 하는 것도 창피한데, 내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하느냐며 거절했지. 그런데 너무 무리를 했던 탓인지, 아버지는 그날 이후 몸이 약해져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고 말았다네. 오늘은 그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네.” 존슨은 50년이 지난 후에도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한 자신의 행동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버이에게 순종하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깨닫고 나면 때늦은 후회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효를 행하는 길입니다.

골로새서 320절입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여기의 순종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파쿠오입니다. ‘귀 기울여 듣다라는 뜻입니다. 순종이란 어버이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어버이의 말씀을 들었을 때 납득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납득하기 힘들 때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따를 수 없을 때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효를 행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순종하는 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공경함으로

어느 엄마가 초등학교 3학년 다니는 아들 때문에 속상하고 힘들었습니다. 한마디하면 열 마디를 대꾸하며 덤벼듭니다. 그 집 사정을 잘 아는 목사님이 그 아이를 불러 너 요즘도 어머니한테 덤비냐?” 물었더니 아무 말도 못합니다. “너 교회 다니지?” “”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 것을 믿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성경에 부모님한테 대들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모른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들을 죽이라고 하셨다.” 잠시 후에 다시 물었습니다. “너 죽고 싶으냐?” 아이는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엄마 말씀 잘 들어 알았지?” “다음날 아침 그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아들한테 무슨 말씀을 하셨길래 애가 달라졌어요?” 하며 좋아했습니다. “엄마 말씀 안 들으면 하나님이 죽이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죽는다고 하면 듣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죽인다고 해도 듣지 않습니다.

신명기 516절입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공경은 원어로 베드인데 존경하다, 가치있게 여기다인데 어원은 간장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간장이 인간의 내장 중에서 가장 무겁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어버이를 간과 같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어버이 공경을 하나님을 섬기듯 해야 합니다. 공경은 사람과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일입니다. 효는 미덕이 아니라 신앙입니다. 어버이가 존경할 만한 분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땅에 태어난 자식이라면 어버이에게 영원히 갚지 못할 빚을 진 채무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버이가 살아 계시는 동안 그 사랑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보려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루터는 부모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버이를 공경하지 않는 죄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죄와 버금가는 무서운 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불효할 때 하나님이 저주를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식은 마땅히 어버이를 공경해야 합니다. 성경은 자녀에게 어버이를 공경할 때 어버이의 자격이나 부모 됨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단지 부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공경 받을 만하기에 공경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부디 어버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공경하는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기쁘게 함으로

82세의 노인이 45세 된 아들과 거실에 마주 앉아 있습니다. 그 때 우연히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았습니다.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저게 뭐야?” 아들은 말했습니다. “까마귀에요. 아버지!” 조금 후 다시 물었습니다. “저게 뭐야?” 아들은 다시 까마귀라니까요.” 조금 뒤 또 물었습니다. 세 번째였습니다. “저게 뭐야?” 아들은 짜증이 났습니다. “글쎄 까마귀라구요.!” 아들의 음성엔 아버지가 느낄 만큼 분명하게 짜증이 섞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다시 물었습니다. 네 번째였습니다. “저게 뭐야?” 아들은 그만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까마귀, 까마귀라구요! 그 말도 이해가 안되세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물으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가 묻은 일기장을 들고 나왔습니다. 펴서 아들에게 읽어보라 했습니다. 아들은 읽었습니다. 거기에는 자기가 세 살 때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 퍼 23번을 똑 같이 물었다. 나는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 “까마귀라고!” 아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게 기뻤다.” 어버이는 끝없이 우리를 기쁘게 해주셨는데 우리는 얼마나 어버이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잠언 2325절입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를 행하는 일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생명의 연장으로 생각합니다. 자식이 잘되면 자기가 잘되는 것보다 더 기뻐합니다. 자기가 성공한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 자랑하고 싶어서 못 견딥니다. 그것이 자식을 낳은 부모의 보람이기 때문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시절 어버이날에 발표했던 글 중의 한 구절입니다. “내 아프면 나보다 더 아픈 사람, 내가 슬프면 나보다 더 슬픈 사람, 내가 기쁘면 나보다 더 기쁜 사람이 바로 주고도 잊으신, 주고도 더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시는 부모님이십니다.”

어느 아버지가 5남매 대학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켰습니다. 몸이 쇠약해지면서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자식과 며느리, 사위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말을 꺼냅니다. “사실은 내가 사업 하다 빚을 졌다. 이자가 불어서 7억이 됐구나. 그렇다고 빚을 남기고 죽을 수도 없고. 그래서 너희들이 조금씩 갚아주면 좋겠구나. 종이에 갚아줄 수 있는 액수를 적어라.” 아버지의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보고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어렵게 사는 셋째 아들이 5천만원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형제들도 마지못해 천만원, 5백만원, 2천만원 이렇게 적었습니다. 몇 달 후 아버지가 다시 소집합니다.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걱정하며 모였습니다. 아버지가 입을 엽니다. “그동안 고민 많이 했다. 유산 조금 남은 것 갖고 내가 죽은 후에 너희들이 반목할까봐 걱정하다 이런 생각을 해냈다. 지난 번 적은 액수에 5배씩 계산해서 주겠다. 이것으로 상속은 끝이다.” 자녀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버렸습니다.

얼마나 어버이를 잘 섬겼느냐가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왕대밭에 왕대 나듯 어버이에게 효성을 다하는 부모 밑에 효성스런 자녀들이 있습니다. 부디 어버이에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어버이를 경홀히 여기지 말고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어버이에게 효를 행하는 일이 축복의 약속임을 믿고 효를 행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05-12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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