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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통일을 소망하는 신앙인의 자세/왕하23:24-25

통일을 소망하는 신앙인의 자세/왕하23:24-25

지난 한 주간 동안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는 축제의 분위기였습니다. 아마 이산의 아픔을 앓고 있는 이산 가족은 참으로 감격을 가지고 매시간 뉴스를 지켜 보았을 것입니다. 남북한은 6.15선언으로 다섯 가지를 합의하여 점차적으로 통일을 지향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도 그랬는데 말만하고 끝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도 어떤 분은 최고 정상들이 성사한 것이니 잘 되겠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통일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언젠가 이 민족이 통일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통일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신앙인들이 통일 한국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1. 우리는 철저하게 주체 사상 우상으로 세뇌된 그들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으로 쓰임받도록 준비되어야 합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북한 사람들을 보고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열광적일까? 어떻게 저렇게 아이들도 아니고 어른들이 60만이나 동원될 수 있을까?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군대 전부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어린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김정일을 하나님 모시듯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김정일의 은덕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사고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저렇게 열렬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열정적인 것을 보았습니다. 북한 사회는 철저히 의식화되어 있는 사회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무엇으로 의식화되어 있습니까? 그것은 주체 사상입니다. 그들은 자주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번 합의에도 첫 번째 항목이 민족의 통일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7.4 공동 선언문에도 이 내용은 어김없이 가장 우선순위로 들어 가있습니다.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는 자주적 해결"이라는 것입니다. 왜 북한에서 자주라는 말을 즐겨하는 지는 북한 체제의 원리인 주체 사상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창시하였다는 주체사상이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유일한 지도이념이 되고 있습니다. 당규약 전문에는 "조선 로동당은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에 의해 지도된다."고 되어 있으며, 1992년 4월 개정된 사회주의헌법 제3조에는 북한정권이 "조선 로동당의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 주체 사상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자연을 개조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즉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고 혁명과 건설을 주동할 수 있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고 말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고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모든 것을 사람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혁명과 건설의 주인공은 인민 대중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상에서의 主體, 정치에서의 自主, 경제에서의 自立, 국방에서의 自衛' 등으로 주체 사상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우리만의 사회주의, 스탈린, 네린, 모택동과는 다른). 이렇게 단편적으로 보면 상당히 좋은 이론처럼 보입니다. 그러니까 한 때 대학생 중에 이 사상을 추종하는 주사파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상을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얼마나 허황된 이론인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의하면 사회 유기체설을 변형한 것이지만 그들은 이 사회를 마치 생물처럼 보는 것입니다. 수령-당-대중을 인간의 신체에 비유하여 수령을 뇌수라고 합니다. 김일성이 머리라면 김정일은 중추신경입니다. 사람은 자연적 생명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치적 생명체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는 죽지만 사회 정치적 생명체는 그 사회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은 "수령론"에서 "인민대중은 당의 령도 밑에 수령을 중심으로 조직 사상적으로 결속됨으로써 영생하는 하나의 사회 정치적 생명체를 이룰 때 력사의 자주적인 주체가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김일성과 김정일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사람이야말로 가장 '고상하고', 가장 '보람있는' 삶을 산 사람이며, 비록 '육체적 생명은 죽었으나 수령이 안겨 준 고귀한 정치적 생명은 영원히 남아 있는 영생의 삶을 산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혁명의 주체는 다름아닌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이며 "수령, 당, 대중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생사 운명을 같이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 정치적 생명체 이론은 곧 바로『혈연론』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민대중이 혁명위업을 승리의 한 길로 이끌어 주는『어버이 수령』으로부터 영생하는 생명을 받았다는 데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온 사회가 하나의 사회 정치적 생명체를 이루고 개인과 집단의 자주성이 다 같이 실현되는 완전한 집단주의적 사회 관계"로 북한이 되어가고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우리식 사회주의라고 말하고 이것이 영원불멸의 탁월한 주체사상에 기초한 가장 독창적이고 우월한 사회주의, 다시 말해서 인류의 참된 복지생활이 보장되는 이상사회를 구현한 정치제도라고 말합니다. 주체 사상의 끝은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입니다. 주체사상은 혁명전략으로 출발하여 통치 이데올로기로 굴절되었으며, 나중에는 윤리의 이데올로기화를 통하여 종교적으로 변신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화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요시야 왕이 나오는데 이 때 남 북은 분단된 때였습니다. 남북한 모두가 심각하게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먼저 24절에 나온 것처럼 우상을 제거하는 일을 합니다. 24절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박수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하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4-23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모든 우상 숭배적인 사당과 제단, 그리고 그 형상들의 행사와 그 행사를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제거해 버렸습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15절 말씀입니다. 북쪽 여로보암이 세웠던 우상을 다 헐어 버렸습니다. 여로보암은 북쪽 이스라엘의 초대왕입니다. 그는 분열된 북쪽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통치 이데오로기를 만듭니다. 그 내용이 왕상 12:28-33까지 잘 나와 있습니다. 북쪽 사람들이 남쪽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게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없으니까 보통 사람들을 제사장을 만듭니다(31). 또 한가지는 본래 7월 15일인 초막절을 8월 15일로 옮깁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붙들어 놓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이 북쪽의 우상마저 다 제거해 버립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통일 한국에서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주체 사상으로 세뇌된 그들의 마음을 바꿀 주인공으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철저한 유물주의와 인본주의, 김일성 우상화로 무장된 그들의 마음을 무엇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이론들을 기독교에서 도용한 것입니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은 1911년 평양의 기독교 계통의 학교인 숭실 중학교에 입학하고 그는 기독교 항일 운동단체인 조선 국민회를 결성 평안장로신학교 개교 일을 전후하여 많은 조직원을 확보하여 항일 운동을 하다 옥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어머니 강반석(베드로의 별명)은 창덕학교 교장으로 있던 강돈욱 장로의 둘째 딸입니다. 신앙심 깊은 외할아버지 강장로는 김일성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었고 강반석은 고향 칠골에 있던 교회에서 집사로 봉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어린시절 어머니를 따라 매주 교회에 출석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회고록에 기록하였고 젊을 때는 술을 먹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손정도 목사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길 만큼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답니다. 김일성 부자가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기독교 경험을 바탕으로 주체 사상을 만들었습니다.
주체사상은 그러므로 기독교를 오용하여 만들어 낸 냄세를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공산주의자를 "무신론자들이 아니라 무신론을 종교처럼 믿는 무리"라고 보았고,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루나 차르스키도 "생산력을 성부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성자로, 과학적 사회주의를 성령"으로 비교하면서 무신론을 하나의 종교현상으로 파악하였다. 북한의 최덕신은 김일성을 천도교에서 말하는 '한울님'이라고 공언하였습니다.
1)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과 김일성의 유일성
김일성은 출생부터 성장과정 및 정치활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신성화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출생한 만경대와 혁명전적지의 성역화 및 각종 상징물 제작 등이 신성한 작업입니다. 김일성이 솔방울로 폭탄을 만들 수 있었다든가 낙엽을 타고 강을 건넜다고 신격화하는 것은 예사입니다. 또한 김일성의 결정은 항상 옳다는 김일성 무오설은 하나님 무오설과 같은 것입니다. 김정일의 육성을 보내지 않는 것도 신성화 작업의 하나일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상징으로 십자가를 지니고 있드시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뺏지를 상징으로 가슴에 달고 다니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름은 언제나 고딕체로 표기하여 유일적 존재로 구별하는 상징적 기제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북한을 종교적으로 묘사하기를, 기독교의 성부 하나님은 김일성, 성자 예수님은 김정일, 성령님은 주체사상이라고 말하기 까지 합니다.
2) 기독교의 십계명과 유일사상 10대원칙
기독교의 구약 율법의 핵심인 10계명이 있듯이 북한의 주민들은 <유일사상 체계확립의 10대 원칙>에 근거하여 행동하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10대원칙은 처음 5계명(1-5)은 김일성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말하고, 나머지 5계명(6-10)은 나름대로의 행동원리를 제시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기 위하여 목숨바쳐 투쟁하여야 한다. ②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 모셔야 한다. ③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절대화 하여야 한다. ④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을 신념으로 삼고 수령님의 교시를 신조화하여야 한다. 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 집행에서 무조건성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⑥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사상의 지적 통일과 혁명적 단결을 강화하여야 한다. ⑦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따라 배워 공산주의적 풍모와 혁명적 사업방법, 인민적 사업작풍을 소유하여야 한다. ⑧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안겨 주신 정치적 생명을 귀중히 간직하며 수령님의 크나큰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높은 정치적 자각과 기술로써 충성으로 보답하여야 한다. ⑨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유일적 령도 밑에 전당, 전국, 전군이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한 조직 규률을 세워야 한다. ⑩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개척하신 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하며 완성하여 나가야 한다.
3) 기독교의 유기체적 직분론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북한에서는 수령은 뇌수로서 모든 사고의 활동을 지시하고, 당은 혈관과 중추의 기능으로 수령의 지시를 전달하며, 인민대중은 각 지체로서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유기체적 관계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5장에 나오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연상하게 만든다. 교회 조직에 적용하면 예수님이 생명 유기체의 머리가 되고, 교회의 지도자와 직분자들이 중추적 역할 또는 혈관의 역할을 하며, 신자들은 몸의 각 지체로서 각자의 소명대로 실천한다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4) 공동체 조직의 생활원리
북한의 조직생활 패턴은 기독교인의 생활양식과 매우 비슷합니다. 우리가 주일예배, 매일의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금요구역예배, 가정예배 등이 있듯이 북한에서도 정기적인 모임을 갖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인민반별로 <인민반회의> 모임을 갖고 주체사상 학습을 하는데, 이 인민반회의는 북한체제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모임으로 북한 건국초기부터 실시되어 온 제도입니다. 수요일 저녁에는 직장 단위별로 <수요 강연회>를 개최합니다. 이 때는 국가적으로 토론되는 정책, 세계적으로 논의되는 국제문제, 자유적이고 퇴폐적인 행위에 대한 대응책 등을 설명하는 모임으로 교회의 '주일설교 및 수요예배'와 비슷하게 진행됩니다. 토요일에는 직장의 각 조직을 중심으로 <총화학습>을 실시합니다. 주 총화학습은 일주일의 자기생활을 반성하고 사상적으로 재무장하는 시간이므로 북한에서는 이 모임을 가장 중요하게 취급합니다. 이 모임에는 각 연맹의 조직 지도원이 파견 나와 총화를 진행하는데 우선 김일성 교시를 듣고 자기생활을 반성하여 노트에 적고, '김일성 찬가'를 부르며 사상적으로 재무장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에서 성경을 보고 설교를 들으며 회개 기도하는 예배형식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 외에도 북한은 가정 단위로 주체사상을 학습하는 <가족 독보회>가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의 '가정예배'와 비숫하고, 아침에 출근해서 30분간 행하는 <아침 독보회>는 기독교인의 'Q.T'에 해당하며, '월생활총화'시 월급의 2-3%를 <맹비 혹은 직맹비>라는 명목으로 당에 바치는 것은 기독교의 '십일조와 헌금'에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행위규범의 유사점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행동의 규범으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도 성경의 일종인 <주체사상 경전, 즉 김일성 교시>를 갖고 있고, 기독교에서 찬송가와 같이 김일성에 대한 찬양을 노래로 부르는 <칭송가 혹은 찬양가>가 있는데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우렁차고 힘있게 김일성 칭송가, 찬양가를 부르게 함으로서 마음문을 열게 합니다. 또한 북한에서 행하는 <자아비판>은 기독교의 '회개기도'와 비슷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식사 전에 김일성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식전에 드리는 식사기도와 비슷합니다.
이들을 누가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신앙인들의 몫입니다. 한국에 1000만 기독교인과 6만 교회를 세워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북한의 김일성 대신에 하나님을, 김정일 대신에 예수님을, 주체사상 대신에 복음을, 4월15일 대신에 성탄 절을, 만경대 대신에 베들레헴을 대입하면 북한 사회는 그대로 기독교 구조가 되고 맙니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리를 마땅이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사람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인 것을 분명하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모든 세상의 물질에 의해서만 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들에게 분명히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2.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도 신앙에 대한 확신이 없고 말씀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주체 사상으로 철저히 세뇌된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요시야를 보십시오. 그는 8살에 왕이 되었습니다(22:1). 그 때 나라는 온통 우상의 나라로 변하여 있었습니다. 그가 26살이 되었을 때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는 다윗의 생활을 본보기로 삶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관심을 가지고 성전을 수리합니다(왕하22:3-7). 하나님의 사람들을 존중합니다(왕하23:15-18) 철저하게 신앙으로 무장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왕하22:2). 헌신하고 하나님을 따랐습니다(왕하22:3). 요시야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살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2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22장 8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 수리를 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였습니다. 11절을 보니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옷을 찢었습니다. 회개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조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13).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깨달은 후에는 유월절에 관한 지시사항, 우상숭배의 금지 등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통일을 소망하고 준비하는 우리 신앙인도 바로 이점에 철저히 준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되지 않으면 통일이 되었을 때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지금 북한에는 공식적으로는 종교가 있습니다. 북한에는 현재 천도교교당 8백개, 불교사찰 60개, 교회 2개, 성당 1개가 있다고 합니다.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조선 기독교도 연맹 산하에 있는 1988년 건립된 봉수교회와 1990년에 건립된 칠골교회(반석교회)가 있고 한 개의 천주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가정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교회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교회가 아닙니다. 어용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주체사상의 범위 안에 존재하는 체제 존속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북한 정권의 초기 종교관은 "인민에 대한 아편"이라고 한 마르크스 교리를 받아들여 예수교든 불교든 본질상 다 미신이라고 김일성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종교 단체의 필요에 따라 1992년 4월 9일에 개정된 헌법 제 68조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 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누구든지 종교를 외세를 끌어 들이거나 국가 사회 질서를 헤치는데 이용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여 종교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시 그들의 주체사상을 수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들을 공개적으로 "기독교 교리를 연구하는 데서도 지도적 지침으로 되는 것은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탈북자의 간증을 읽어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1987년 10월경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에서 기독교 생활을 하는 교포가 친척 방문을 온다는 소식이 당 중앙위원회 외교부를 통해 우리 군단에까지 하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국 교포가 이번 방문길에 신앙인들의 생활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였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하나님소리만 하여도 집단 숙청당하는 현실에 기독교라는 말조차 사라졌는데 그 어디에 이런 사람들(기독교인)이 있겠습니까?
평양시에는 외국인들이 오면 보이기 위해 여러 곳에 기독교,불교에 대한 처소를 만들어 놓고 여러차례 련습들을 하여 숙련이 되었지만 우리 군과 같은 지역은 이런 연극이 처음인 것이었습니다.
군당국에서는 급기야 깨끗한 집을 한채 집수리도 하고 바람 벽에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걸어 놓고 몇명을 선발하여 대기시켜 놓았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 애를 먹었습니다. 이들은 영화에서 본 기억들을 더듬어 무조건 처음부터 상대방이 말마디가 끝날 때마다 아멘하면 된다는 데 락착이 되여 아멘 훈련을 하였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미국 교포가 "무엇을 믿습니까?"라고 물으니, "아멘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였고, "누가 구원했습니까" 하자 "아멘이 구원했습니다." 오직 아는 것은 "아멘"하는 소리뿐이니 그 교포가 이상하여 "무슨 교파입니까"라고 물으니 "아멘교파입니다".이분은 너무도 한심스러워 "북한은 기독교도 창조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같다"는 소리를 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상부에 보고되어 이 연극을 담당했던 간부는 제대로 훈련을 못시킨 죄로 혁명화(보수가 없는 노동으로 막일을 하는 기간) 1년을 걸치고야 원대복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는 아직도 지하에서 순수한 신앙을 지키고 있는 지하 교인들이 있습니다. 전쟁이후 1958년 평북 용천의 이관화목사 사건, 1959년 박천에서의 인민학교 여교사 체포와 그 이후 1966년 잔여 교인들의 색출사건, 1968년 평남 온천군 운하리의 박목사 사건, 1974년 10월 함흥에서 적발된 김대용목사와 교인들 소탕사건, 더욱이 1970년대 이후 적발된 기독교인들을 섬에 수천명을 유배시킨 일과 최근에 신의주 자강도, 함북, 황해도 등지에서의 지하교회 적발사건들, 등은 분명 지하교회가 살아 움직이며 성도들의 신앙이 조직을 이루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하교회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망명한 김복남 목사는 최소한 1백만명은 된다고하며 1980년 3월 기독교 연합회에서 종합된 자료에 의하더라도 도,시,군급 교회는 2,700여개, 저급교회는 4만여개, 공장 기업소 교회는 30만여개, 가정교회는 20만여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북한에 최소한 15만-30만명의 지하교인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무서운 핍박이 있었는데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핍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기독교의 생명력은 끈질기고 우리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로마제국시대 240년간 기독교는 무서운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기독교는 무서운 생명력을 유지하여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가 선포되었을 때 로마市 인구 절반, 로마제국 인구의 10%인 500만명의 기독교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증언은 공산권의 여러곳에서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바우 목사는 증언하기를, 1973년 베트남이 공산화되기 직전에는 기독교인이 72,000명 이었으나 1993년 조사한 결과 72만 명의 기독교인으로 10배의 성장을 가져왔다고 하고, 중국같은 경우도 1950년 공산혁명으로 선교사 추방시 300만명의 신도가 1966년 문화혁명의 핍박을 통과하면서 1988년에는 5천만-7천만명의 신도로 성장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북한교회는 남한교회를 "정치적 기독교, 도망친 기독교, 자본가편에서 농민을 착취하는 계급을 옹호하는 부패한 기독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지하교인들은 "부패하고 타락한 남한교회가 생명을 걸고 신앙을 지킨 북한교회에 선교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통일된 나라에서 기독교인으로 신앙적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잘 무장하여 통일이 될 때 북으로 간다면 이들과 함께 신앙을 회복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통일을 소망하는 신앙인의 자세/왕하23:24-25/김필곤목사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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