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공동체/행1:1-11
오늘부터 시작하여 주일 오전 예배는 사도행전을 본문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 말씀으로 본문을 1:1-11절까지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제목을 희망의 공동체로 정하였습니다. 희망을 전하는 공동체로 할까 희망의 공동체로 할까 고민하다가 희망의 공동체가 본문의 중심 사상과 더 근접할 것 같아 그렇게 정했습니다. 이 제목을 볼 때 성도님께서 어떻게 그런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라고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에는 희망이라는 말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나누워 보면 1-2절은 본문의 기록자인 의사 누가가 로마 관리로 보이는 데오빌로(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 데오스+필로스)에게 보낸 문안 인사입니다. 여기서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을 말씀합니다. 그 누가 복음에 예수님의 행하심, 가르치심,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것까지 기록했다는 말씀입니다. 3-8절까지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내용과 약속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세가지입니다. 4절에 1)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2)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는 두가지 명령이 나오고 세 번째는 8절에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이 하나 나오는데 그것은 5절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다리면 성령의 세례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락은 9-11절까지인데 이 말씀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그것은 11절입니다. 다시 재림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본문에서 희망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이 쓰여진 상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 때 그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통치자는 아주 잔인한 헤롯이었습니다. 그들은 발견되면 예수님의 잔당으로 알아 처형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이 말씀을 부탁하시고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실 때 천사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11절 다시 읽어 보겠습니까? 얼마나 이들의 마음이 허전하겠습니까? 얼마나 이들의 마음이 불안하겠습니까? 가슴 깊은 곳에서 절망이 소리를 흘러 나왔을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다시 온다. 재림한다." 이것입니다. 희망을 주는 말씀 아닙니까? "죽었던 부모님이 다시 살아나신다. 해어졌던 애인이 다시 만날 수 있다. 망했던 사업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실패했던 사람이 다시 성공할 수 있다. 병들어 절망하고 있는 사람이 고칠 수 있다." 이 얼마나 희망적입니까? 가난하여 중동에 일하러 가는 남편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걱정 마라 내 곧 돌아 올께"라고 말한다면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가 금의 환향하신다는 희망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사도행전은 죽음을 이긴 희망의 공동체의 살아 있는 기록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런 현장입니까? 사도들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돌로 맞아 순교를 당합니다. 집과 땅을 버리고 도망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당시 사회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산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교회란 바로 이런 희망의 공동체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집단이 교회만큼 희망을 주는 공동체가 있겠습니까? imf, un, 복지 제단, 국가, 학교, 사교 모임 이런 것들이 교회만큼 희망을 주겠습니까? 우리는 희망의 공동체의 사람들입니다.
1. 그러므로 먼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갖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재림한 다는 희망을 주었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이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은 죽음 때문에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까? 혹시 이 무더운 여름철 삶에 지쳐 교회에 나왔습니까?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오고 있습니까? 해도 해도 않되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습니까? 현실의 답답함으로 기쁨을 잃고 있습니까? 무기력 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불만 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 때문에 삶의 평강이 없어졌습니까? 우리 주님 다시 오십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구호가 바로 그것아닙니까? "아멘 주 예수여 다시 오시옵소서" "예수님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도 만나는 사람마다 희망을 가졌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 삶에 대한 희망이 회복됩니다. 가난에 굶주린 자들, 병든 문둥병자가, 간음하여 현장에 잡힌 여인이, 38년된 병자가, 앉은 뱅이가, 혈루증 앓는 자가 예수님을 만나면 희망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에서 잃어나게 되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고 질병에서 낳게 되고 죄의 종에서 자유의 몸이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단테는 그의 작품 신곡에서 지옥문에 "여기에 들어가는 자는, 모든 희망을 다 버린자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희망이 없다면 인생 살이는 마치 지옥과도 같을 것입니다. "사람은 음식 없이는 약 40일을, 물 없이는 약 3일을, 공기 없이는 약 8분을, 그러나 희망이 없다면 단 일초도 살 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라의 모습을 보고, 가정의 형편을 보고, 자신의 능력을 보고, 믿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 바라보고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억울한 일 있어도 언제가 주님께서 풀어 줄 날이 있습니다. 고통이 변해 슬픔이 변해 기쁨이 될 날이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까?
2. 나를 통하여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희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3).
A.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가졌습니다.
1)예수님은 이미 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워 놓으셨습니다(1-3)
희망의 공동체를 이루시는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님이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1-3)
(1)행하였습니다(1). 행하심의 대표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일입니다(3). 승천하신 일입니다(3). 해받음심은 십자가의 돌아가심을 말합니다. 친히 사심은 부활을 말씀합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우리를 참 자유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죄의 종에서 참 자유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2)가르쳤습니다(1). 무엇을 가르쳤습니까?(3)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3)명하였습니다(2). 행10:38절을 보십시오. 고치심입니다. 사탄을 결박하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나라를 재림하심으로 완성하십니다.(9-11).-완성될 하나님 나라
하늘로 올라가신 그대로 재림하십니다. 재림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됩니다.
B.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나라가 구성될라면 있어야 할 필수 요소가 무엇입니까? 주권, 국민, 영토 아닙니까?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주권입니다.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정체가 달라집니다. 한 사람에게 있으면 군주 국가입니다. 백성에게 있으면 민주국가입니다. 공화정이냐 왕정이냐가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나누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이 미국에 가있다고 미국이 우리나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의 통치권 미치는 나라입니다. 나를 통하여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게 하여야 합니다. 그것에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하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 나라가 되게하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하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하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돈이 통치하거나 권력이 통치하거나 쾌락이 통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통치하시며 영광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나라의 주인공으로 제자들을 불러 희망을 주는 것처럼 우리도 불렀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쓰임받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할 수 없다. 우리 교회는 힘이 없다. 우리 교회는 무능력하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받은 인물들을 보십시오. 아브라함 어떻습니까? 그렇게 뛰어난 사람입니까? 그는 우상 장사의 아들입니다. 그가 부름받은 때는 75세였습니다. 그는 곧바로 순종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네 부모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을 때도 아버지를 떠나지 못하고 조카 롯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주겠다고 그렇게도 많이 약속했지만 그는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낳았고 그것 때문에 오늘 인류는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는 순종훈련을 받는데 무려 25년이 걸린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를 절망 시킵니까? 아닙니다.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때 나타나셔서 희망을 줍니다.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그는 한 시대 희망의 사람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받았습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거짓말 장이입니다. 욕심 꾸러기입니다. 부모를 속이고 가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도망가는 그에게 나타나 약속을 하고 희망을 주지 않습니까?
모세는 다윗은 어떻습니까? 살인자, 간음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절망시키지 않았습니다. 희망을 주고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무능하다고 없다고 핑계하지 마십시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사 41:14)"
우리에게 각자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과업이 있습니다. 주부는 주부대로, 학생은 학생 대로, 직장인은 직장인 대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희망을 어떻게 이루어 갑니까?
3. 복음의 증인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정치력으로 경제력으로 군사력으로 이루어 갈 수 있겠습니까? 제도를 바꾸어 이루어 갈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야로 생각하였습니다(6-7). 로마의 압제하에 있었습니다. 헤롯의 수하에 있었습니다. 헤롯은 폭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어 봅니다. 이 때가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이냐는 것입니다. 이 때가 참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때이냐는 것입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때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1)먼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4-5).
(1)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4)
살기 등등한 헤롯의 일당과 제사장 무리들에게 언제 붙잡혀 고초를 당할지 모릅니다. 제자들은 떠나고자 했을 것입니다. 사방에 감시의 눈초리가 번뜩이는 예루살렘을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혼란이 있고 모순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떠나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2)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3)몇날이 못되어 성령의 세례를 받으리라.(5) 성령입니다.
우리가 희망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받지 않은 공동체 결코 희망의 공동체가 될 수가 없습니다. 물세례로만 되지 않습니다. 교회 회원이 되는 것만으로는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2)성령의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세례로만도 부족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1)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두나미스 다이나 마이트입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닙니다. 지식의 능력,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능력이 아닙니다. 힘없는 사람 무시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경제력, 정치력, 군사력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2)그러면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사도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예루살렘(1:6-8:1) 온 유대와 사마리아(8:2-11:18) 땅끝까지(11:19-28:31) 로마까지 이제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이 남아 있습니다.
증인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자신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고 예수님을 증거하여 결국 이 세상을 희망의 공동체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지 않고 성령의 권능을 받지 않으니까 쉽게 지칩니다. 봉사하면서도 재미가 없습니다. 교회 나와도 희망을 발견하기보다는 절망합니다. 남의 잘못만 보입니다. 평강이 없습니다. 늘 초조합니다. 내 힘으로 하면 쉽게 지치는 것입니다. 내 힘 아닙니다. 성령의 힘입니다. 사도 행전은 인간 사도들의 행전이기 전에 성령 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예수님으로부터 그렇게 많이 배웠는데도 다 도망가던 제자들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나약한 베드로가 변하여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 옵니다. 앉은 뱅이를 일으킵니다. 비결을 보십시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4)"
도망 가던 베드로가 담대히 죽음 앞에서 말합니다.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행 4:8)"
스데반이 죽음 앞에 담대히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행 6:3)"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행 6:5)
바울이 그렇게도 많은 사역을 지치지 않고 했던 비결이 어디있습니까?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행 13:9)"
바울이 지치지 않고 항상 기쁨과 평강을 가지고 그렇게도 사역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감옥에 가서도 찬송을 외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골1:29장을 보십시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29)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으로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건능(건물의 능력)이 아닙니다. 권능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사랑의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 충만하면 찬양의 기쁨이 샘솟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기도에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 충만하면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 충만하면 은사를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지혜가 생깁니다. 성령 충만하며 고전 12장에 말씀하신 갖가지 신비한 은사가 나타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
성령은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과 소망을 주십니다. 바울은 엄청난 핍박과 크나큰 시련을 겪은 데살로니가교인들을 향여 "너희는 많은 환란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 되었다"(살전1:6)고 칭찬합니다. 많은 환란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 이 사람이야 말로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죄를 단절케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삼상10:6,9) D.L 무디는 비록 그가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성령의 권능을 받아 일생동안 5천만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능력있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빌립집사, 바나바, 실라, 청년 디모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등이 성령님에 붇잡혀서 성령님의 강력한 힘으로 일했습니다. 이들이 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러나 능력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을 받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해
1) 사모하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하셨다.(행1:4)
2) 기도하라. 제자들은 놀면서 성령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기도에 힘쓰며 기다렸다.(행1:14)
3) 회개하라. "너희가 회개하여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행2:38)
우리는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룹시다. 그래야 자신 자랑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습니다. 자기 왕국 건설하지 않습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하이든은 천지창조를 작곡하였습니다. 비엔나에서 그 곡이 연주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 76살이었습니다. 이제 병이 들어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앉아 있었습니다. 곡이 끝나자 군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습니다. 사회자는 이 곡은 하이든이 만든 곡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 때 군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하이든에게 보내었습니다. 그는 군중을 행해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그는 쓰러졌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1년 동안 치료를 하였습니다. 그는 죽어 가면서 "나는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이란 말을 남기고 하나님 앞에 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희망의 공동체에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맙시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희망을 가집시다.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일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희망의 공동체/행1:1-11/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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