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는 16세 때 아버지가 농노들로부터 살해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음에 분노를 가지고 있던 그는 글을 쓴다고 교만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젊은 작가로서 명성을 떨쳤지만, 알아주는 이 하나도 없이 유배 생활이 계속되었습니다. 낮에는 강제노동에 시달렸고, 저녁이 되면 어둡고 추운 골방에서 외로이 인생을 달래게 되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성경책을 건네주었습니다. 저녁마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성경의 진리를 문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까 고민하였습니다. 사형 직전에 기적적으로 황제 특사로 사면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도스트예프스키는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내놓았는데 바로 양심의 문제를 취급한 ‘죄와 벌’이라는 유명한 소설입니다. 성경만이 인간을 변화시킵니다. 불행한 인생을 살던 사람에게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는 책입니다. 시편 119편은 176개의 구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히브리 알파벳 문자의 순서를 따라 이루어지는 22개의 단락으로 되어 있으며, 각 단락은 8개의 구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를 어크로스틱(acrostic)이라고 부르는데 본 시편은 이러한 형식의 대표적인 시입니다. 본 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어떠한 역할을 하며, 그 말씀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 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이라는 단어 대신에 ‘증거, 계명, 율법, 법, 법도, 도, 율례, 규례, 명령’을 사용하여 말씀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온갖 기쁘고 즐겁고 괴롭고 고통스러움을 말씀에 비추어 교훈하면서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내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는 자들에 의해 조롱과 억압과 박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통이 하나님의 시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말씀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고 환난에서 구해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법을 행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명예나 재산, 또는 건강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올바르게 살기를 더 소원합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악을 행치 않고 주의 도를 행합니다. 악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의 말씀대로 사는 길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개혁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 개혁의 방법은 오직 믿음으로, 개혁의 근거를 오직 말씀에 두고 개혁의 대업을 이룩하였습니다. 제도나 교육으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심성이 개조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의 말씀대로 행할 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주의 말씀대로 어떻게 구해야 합니까? 주의 말씀대로, 첫째로 나를 인도하여 주소서 나그네가 사막에서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물은 떨어지고 방향감각을 상실한 그는 초조하게 사막을 헤매다가 발자국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살았다고 소리치며 발자국만 따라가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동안 따라가다 보니 발자국 수가 점점 많아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을이 가까워 온 줄 알고 더욱 열심히 발자국을 따라갔지만 아무리 가도 동네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발자국은 다름 아닌 자신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곳을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절망한 나머지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곰곰이 생각하다가 하늘의 북두칠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별자리를 통하여 방향을 확인하고 위기에서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05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기자는 인생의 안내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 지 어디를 향해야 할 지 알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 말씀만이 나아갈 길을 안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접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갈 길을 비춰주는 등이요 행할 길을 인도하는 빛임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십니까? 말씀대로 살 때 빛 되신 주님으로 실족할 염려가 없습니다. 어두운 밤길에 넘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낭떠러지에 떨어질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하나님에게로 인도해주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나침반이 언제나 정북방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주의 말씀은 항상 하나님에게로 가리키며 우리를 인도하고 있기 때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790년 영국 군함 바운티호(號)의 반란자 10명이 타히티 원주민 남녀 88명을 납치하여 타이티 동쪽에 위치한 핏캐언(Pitcairn Island)섬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술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으며 매일 술에 취해 인종 갈등 때문에 싸우고, 서로의 것을 빼앗기 위해 죽이고 죽었습니다. 섬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난 후 아담스(Adams)라는 남자와 10명의 여자, 23명의 어린이들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아담스는 죽은 사람의 소지품을 뒤지다가 성경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을 위해 성경을 읽어주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섬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술을 끊게 되고 도둑질이 없어지고 싸움이 줄어들어 평화로운 섬이 되었습니다. 1808년 미국 상선이 들어왔을 때 그 섬은 35명의 주민이 사는 행복한 섬으로 바뀌었습니다. 1991년 열방대학 총재 로렌 커닝햄(Loren Cunningham)이 섬에 갔을 때 55명의 주민이 살았는데 그야말로 천국이었습니다. 죄짓는 사람이 없고 주일이면 모든 주민들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유리관을 만들어 그 속에 성경을 넣어놓았습니다. 성경 때문에 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107절입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은 삶을 소성케 합니다. 본문을 기록한 시인은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의 ‘살아나게’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야’인데 이는‘생명을 주다’라는 뜻입니다. 즉 활력을 다시 찾아 번성케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쳐 올 때에 말씀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살 길은 말씀뿐이 없음을 알고 오직 말씀이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고난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생길에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질병, 가난, 실패, 따돌림이 괴롭히고 있습니다. 비참한 상태에서 살아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말씀만이 죽은 영혼을 살려줍니다. 나태한 영혼을 깨워줍니다. 쓰러진 영혼을 일어나게 합니다. 말씀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혹시 어려운 상황을 만났습니까? 낙심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의지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로지 주의 말씀대로 사는 자만이 소성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나로 즐겁게 하소서 작가 카우만(C.E. Cowman)은 정상에 올랐던 성악가 제니 린드(Jenny Lind)의 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9세기의 대표적 소프라노인 제니 린드의 경력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일은 그녀의 화려한 시기가 매우 짧았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오페라 극장에서 불과 2년을 노래했을 뿐이며, 실질적으로 모습을 나타낸 지 불과 5년 만에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수년간 가끔 자신을 위한 음악회에 모습을 나타냈을 뿐입니다.” 젊은 여성으로 이토록 높은 인기를 버리고 시골로 은퇴해 버린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해변에서 있을 때, 그녀를 아끼는 사람이 찾아가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인기의 절정에서 돌아서 버렸나요?” 그러자 제니 린드는 읽고 있던 성경책 위에 손을 놓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성경을 읽을 시간이 날마다 줄어드는데, 어떻게 제가 그만두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사람들은 부, 명예, 인기 같은 것들을 높이 평가하며 이러한 것들을 위해 자신의 생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제니 린드는 이런 것들보다 생명이며 영혼을 만족하게 하는 성경을 읽는 생활을 더욱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111절입니다.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말씀으로 마음이 즐겁기에 시편기자는 말씀을 영원한 소유로 삼겠노라 고백합니다. 말씀을 기업으로 삼고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은 그 어떤 경우에도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고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업으로 삼겠다는 작정은 평생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것뿐 아니라 후손에게도 물려주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말씀을 최고의 유산으로 삼는 이유는 삶의 즐거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사울 왕을 비교해 볼 때 사울은 비록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척도 안 했습니다. 그러나 목동인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말씀이 정금보다 귀하고 꿀송이보다 더 달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즐겁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즐기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말씀을 즐거워하는 생활을 으뜸으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올바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까?
20세기의 기적으로 알려진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여사는 독서의 양이나 사상에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잃어버린 세계를 되찾게 한 것은 책의 힘입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애독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용기와 기쁨을 얻기 위해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도 많이 읽어서 어떤 곳은 점자가 문드러져 나갈 정도였습니다. 내 손가락 끝에서 점자가 닳고 닳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나의 생애의 지침이 되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삼중고를 짊어진 나에게 불굴의 정신을 갖게 한 것은 성경입니다. 나는 날마다 성경을 읽을 적마다 기력을 새로 회복하고 포부를 확대해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고 영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힘쓰십니까? 어려울 때일수록 성경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만이 삶의 길을 인도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용기와 희망을 주어 영혼과 생명을 살려줍니다. 그리고 삶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책이 됩니다. 성경을 들고만 다니는 책이 아니라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부디 행복의 길로 안내하는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