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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온전한 사람을 이루라-엡 4:13~16

온전한 사람을 이루라-엡 4:13~16
이름 김광일목사
첨부


제목 없음

 

김남준 목사의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라는 저서에 나오는 한상동(韓尙東)목사에 관한 글입니다. 한 교회를 목회하셨을 뿐만 아니라 교계에도 영향력을 끼치시던 분이었는데 그가 일찍이 신학교에 입학하셨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교과목을 따라서 영어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성경이나 신학 과목이라면 설교라도 은혜스럽게 한 편 작성하고라도 시험장을 나오겠는데, 시험이 외국어였으니 성령 충만한 한상동 전도사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시험지를 앞에 놓고 한숨을 쉬며 주여!”를 연발하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학생의 시험 답안지가 자꾸만 한상동 전도사 쪽으로 밀려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옆에서 동료의 처지를 보다 못한 학생이 자기의 답안을 보도록 그의 옆으로 밀어준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한상동 전도사는 그 자리에서 시험지를 덮고 교실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주님, 제가 평소에 살아온 삶이 어떤 것이었길래 나를 가장 잘 아는 급우가 자기의 시험지를 보여 주면 제가 보고 쓸 것으로 생각하였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살고서도 어떻게 목회를 하겠습니까?” 영어 답안지를 보여 준 그 전도사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그날 정직한 시험을 치르기 위하여 영어 답안을 백지로 제출하고 나간 그 학생, 한상동 목사는 후일 그 신학교의 학장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불행 중 하나는 예수를 오래 믿었어도 그 신앙이 유치하고 어린아이 같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지극히 수동적입니다. 스스로 일어서지 못합니다. 작은 것에 시험이 들고 신앙생활을 지탱하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교회마다 만년 갓난아기 신자의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수년 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수많은 설교를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과 전혀 다른 바가 없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세례를 받은 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신앙수준이 유아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13절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온전한 사람은 자기가 믿는 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믿는 것과 다르게 살기에 온전한 신앙이 되지 못합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 있으면 반드시 성장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마틴 루터는 말하길 모든 그리스도인은 작은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작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 속에서 보여야 합니다. 온전한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온전한 사람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오직 요동하지 않아야

리처드 스턴스(Richard Stearns)1998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월드비전 미국의 회장이 되어 15년째 하나님 나라의 최전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도 소위 잘 나가는 기업인이었습니다. 고급 주방기기를 생산하는 레녹스(Lenox) 회사의 회장으로서 경건한 크리스천 가정의 헌신적인 사역, 그리고 축복으로 주신 큰 집과 좋은 차, 순종적이며 착한 자녀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월드비전의 헤드헌터로부터 전화가 온 것입니다. 자신이 돕는 단체, 그리고 늘 하나님의 일에 헌신한다는 자신에게 월드비전의 수장을 맡아 줄 수 없느냐고. 그러나 그는 대답합니다.“저요? 아닙니다. 저는 자격도 안 되고, 관심도 없고, 게다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절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기도해 보겠습니다.”“하지만 제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많은 경우에 기도해 보겠다는 것은 우리가 내려야 하는 결단의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피하고 싶은 순간이 아닙니까? 그렇게 막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상대방이 말했습니다. “하나만 더 여쭤 보겠습니다.”“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열어 놓고 계십니까?” 그는 이 질문에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혹여 라도 누리고 있는 세상 것 때문에 흔들리거나 요동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온전케 한다는 의미는 견고한 성도가 되라는 뜻입니다. 물질문명과 과학과 우상과 철학과 많은 사상들이 있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말씀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도록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성숙하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신앙이면 마귀의 속임수와 죄악에 대한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세상적인 풍조에 흔들리며 요동합니다. 어린아이는 지금 맛있고 좋으면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약합니다. 항상 지금이 좋은 것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기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온전한 사람을 이루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 것 때문에 요동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살며 요동치 말아야 합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말씀에 붙잡혀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요동하지 않는 온전한 사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오직 사랑으로 행해야

우리나라 최초의 목사 중 한 분인 한석진 목사가 안동교회에서 목회할 때입니다. 안동교회는 지체 높은 양반들이 많이 모인 교회로서 양반의식을 깨뜨리는 게 큰 과제였습니다. 교회 안에서까지 양반 행세를 하니,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 때 안동교회의 양반의식을 깨뜨리는 데 크게 공헌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체 높은 양반 출신 박승봉(朴勝鳳)장로입니다. 이 분은 담임 목사의 의도에 전적으로 동감했습니다. 어느 날 장덕창이란 교인의 모친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가난해서 남의 집 행랑채에 살고 있었고, 장례를 치르기에 힘이 들었습니다. 이 때 박 장로는 담임목사와 함께 손수 시신에 옷을 입히면서 장례를 치르게 했습니다. 지체 높은 양반이 천한 백성에게 베푼 사랑은 장안의 화제 거리가 되었습니다. 외무대신을 지낸 바 있는 개화파 지도자 유길준도 이 일에 감동을 받고 안동교회 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이 부분을 새번역은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라고 했고, 공동번역은 도리어 사랑 가운데서 진리대로 살면서라고 했습니다. 즉 사랑과 진리입니다. 성숙한 신앙을 가지려면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내 중심적인 태도에서 남을 생각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주는 것을 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시집을 간 후 남편을 뜨겁게 사랑합니다. 그리고 남편을 진정으로 대합니다. 그것을 말로도 표현하고, 삶을 통해서도 표현합니다. 결국 여인이 시댁에 익숙해지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익숙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멀면 계속 서툴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그것을 말과 삶으로 고백하십시오. 오직 사랑으로 행하며 나아가십시오. 세월이 흐르다보면 주님처럼 되어 갈 것입니다.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오직 주님만 생각해도 마음이 기뻐집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사랑에 대해 말은 많이 하면서도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은 사랑하는 일에 익숙해야 합니다. 오직 사랑으로 섬기고 도와야 합니다. 오직 사랑으로 위로하는 일에 익숙해야 합니다. 조금도 못마땅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오직 도움을 받아야

장영희(張英姬)교수의 유작 중에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1장의 제목이 당신은 나의 천사입니다. 장 교수는 미국의 대표적 여류작가 앤 타일러(Anne Tyler)의 소설을 소개합니다. 주인공 바너비는 명문가 출신이면서도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심부름센터 직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삶이 곤고해지고 절망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한 어느 날, 그는 가문의 전통 하나를 떠올리게 됩니다. 인생에서 자기가 만난 천사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있었던 전통을 생각하며 막연히 자기도 천사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는 소원을 품게 되면서 기적처럼 기차역에서 소피아라는 여섯 살 연상의 은행 여직원을 만나게 됩니다. 마침내 그녀가 그의 인생에 천사가 되어줍니다. 그런데 장영희 교수가 뜻밖에 소설의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재미삼아 당신은 천사를 만나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냥 소설속의 이야기라고 웃어넘길 것을 기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작가 타일러는 뜻밖에 정색을 하며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물론이지요. 이제껏 살아오면서 저는 수많은 천사를 만났습니다. 오늘 만난 당신도 나의 천사가 될 수 있고, 나 역시 당신의 천사가 될 수 있지요. 우리는 서로에게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장 교수는 그 말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고 회고합니다. 사역의 본질은 나 자신을 넘어 서로에게 천사가 되어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온전한 자로서 세상에 기여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여기에 사용되는 두 개의 동사연결되다결합되다의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예수에게 내가 연결되어 있고 결합되어 있는 것은 과거의 것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렇게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서로의 짐을 지고, 서로의 존재 이유가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있으나 없으나 관심이 없는 남남입니까? 우리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그 몸에 연결되어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각 지체들은 분량대로 활동함으로, 맡겨진 직분을 충실하게 감당함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도우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리처드 스턴스는 구멍난 복음이란 저서에서 짐 월리스(Jim Wallis)라는 친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트리니티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한 가지 실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성경 66권을 살펴보면서 가난, , 정의, 억압을 다루는 대목과 구절마다 밑줄을 치고, 가위를 가지고 와서 그 구절을 모두 잘라 냈습니다. 그 결과 너덜너덜해진 채로 간신히 붙어 있는 성경책이 남았습니다. ‘가난과 정의에 대한 2천여 개의 구절을 다 잘라내고 나니 성경이 구멍 난 채로 너덜너덜해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도전합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은 온전한가? 아니면 구멍 난 복음을 가지고 있는가?” 온전한 복음을 이룬다는 것은 예수의 생각을 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에 구멍이 난 것은 매 순간 예수의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취사선택하여 사용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합니다.

과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나타나야 합니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오직 세상 풍조로 요동치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사랑으로 범사에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