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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일반 예화

[스크랩] 오늘의 예화(165)

오늘의 예화(165)

 

15년 동안 세 마디

 

감옥에서 오랜 동안 수감생활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사람은 불평과 남을 탓하는 것이 체질화되어 한 순간도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오랜 수형생활을 끝내고 출옥하게 되었을 때 수도원에 찾아가 수도원장에게 “나를 받아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수도원장은 이 사람에게 “좋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침묵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단, 5년 후에 한마디만 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5년이 흘렀습니다. 이 사람의 첫마디는 “잠자리가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5년이 흘렀습니다. 두 번째 말은 “음식이 나빠 못 먹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5년이 흘렀는데 그 때는 “더 못살겠다”고 했습니다. 15년 동안의 세마디는 모두 불평뿐이었습니다. 수도원장은 이 사람을 쫓아내며 말했습니다. “그대가 여기있는 동안 불평뿐이었으니 나가주기 바랍니다.”

당신은 하루 동안 무슨 말을 많이 하며 살고 있나요? 거기에 감사가 빠져 있다면 몹시 불행한 인생일 것입니다.

 

영혼이 병든 사람

 

22년 동안 108번의 교회를 옮긴 장로가 있었습니다. 이민교회의 특성상 이합집산이 심하기 때문에 한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매우 특별한 경우였습니다. 1년에 약 5번 정도 교회를 옮긴 셈이고 평균 두 달에 한 번 정도 교회를 바꾼 셈이 됩니다. 더 큰 문제는 108개의 교회를 대하는 그의 태도였습니다. 교회를 옮기는 날로부터 그 교회의 단점을 찾기 시작합니다. 목사의 허물을 맨 먼저 찾아냅니다. 그리고 자기 눈에 드러난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합니다. 교회주보, 성가대, 주방, 교인들의 태도 등 108개 교회의 단점을 낱낱이 노트에 적어서 마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가 병으로 죽게 되자 어느 교회도 그의 장례식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그가 섬긴 교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죽기 전 108번째 교회 목사님이 불쌍히 여겨 그의 장례식을 해주었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천국에 올라가 주님 앞에 108개 교회의 허물을 기록한 두툼한 노트를 펴놓는다면 주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주님은 그 사람의 허물이 적힌 수십 권의 노트를 던져주시지는 않았을까요? 그의 후손들도 아버지 못지않게 불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 영혼이 건강하려면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점을 따르고, 좋은 점을 말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남의 흉만 찾고 입을 놀려대거나 나쁜 것만을 찾아 탐닉하는 사람은 그 영혼이 병든 사람입니다.

 

칭찬이 주는 힘

 

한 소년이 극도의 컴플렉스에 빠졌다. 아홉 살 때 있었던 한 사건 때문이었다. 우물가를 지나던 소년은 물긷는 여인들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저 애는 참 못생겼다. 얼굴은 홀쭉하고 눈은 왜 저렇게 움푹할까”

소년은 그날부터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무지한 여인들이 실없이 던진 한마디 말이 가슴속에 상처로 남았다. 머리가 명석한 소년은 스물네살 때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 유학했다. 그러나 6년이 지나도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아름다운 한 미국여성의 칭찬에 힘을 얻었다.

“당신처럼 잘 생긴 동양학생은 처음이오”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열심히 공부해 곧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소년의 이름은 문동환박사이다. 말에는 강한 파괴력과 생명력이 있다. 현명한 부모는 자녀를 위해 ‘생명의 언어’를 심는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 인간의 혀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임금이 광대 시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구해오게 하고, 천치 요한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을 찾아오게 했다. 얼마 후 두 사람이 돌아와 임금께 상자를 바쳤다. 시몬의 상자를 열었더니 사람의 혀가 나왔다. 요한의 상자를 풀었더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혀, 곧 말은 가장 유익한 것이 될 수도, 가장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함부로 내뱉는 말은 싸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잔인한 말 한마디가 남의 생명에 관계될 수도 있다. 쓴 말 한마디가 상처를 만들 수도 있다. 가시돋힌 한 마디가 돌이킬 수 없는 비수를 가슴에 박을 수도 있다. 무책임한 구설수가 한 인간을 매장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부드러운 말은 앞길을 환하게 한다. 기쁨에 넘친 한 마디가 즐거운 이웃을 만든다. 격려하는 짧은 말이 한 인생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 좋은 말은 약보다 낫다. 그것은 치료의 성분에 예방의 능력까지 지녔기 때문이다. 나뭇잎에 앉은 한 방울의 빗 방울이 “나는 너무 작아, 아무 것도 아냐” 하고 읊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선가 그것이 떨어져주기를 기다리는 목마른 꽃잎이 있다. “나 같은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하고 입을 다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위로와 사랑의 한마디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 두 수도자

 

두 수도자가 어떤 개울을 건너게 되었다. 개울가에는 건너기를 주저하는 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었다. 한 수도자는 여인을 못 본 체하고 혼자 물을 건너가 버리고, 다른 수도자는 여인에게 등을 들이대며 말했다. “업히시지요. 건네드리겠습니다.”하며 여인을 시내 저쪽에 내려놓았다. 두 수도자는 다시 길을 재촉했는데 좀전에 여인을 업지 않았던 수도자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게, 수도하는 몸으로 여인의 몸에 손을 대다니 자네는 부끄럽지도 않은가?” 여인을 업은 수도자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다른 수도자는 더욱 화가 나서 동료 수도자는 나무랐다. “자네는 단순히 그 여인이 개울을 건널 수 있게 도왔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겠지. 하지만 여인을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것이 우리의 신성한 계율이라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 그 수도자는 계속해서 동료 수도자를 질책했다. 여인을 업었던 수도자는 두어 시간쯤 질책을 듣고 나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아, 나는 벌써 두어 시간 전에 그 여인을 냇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자네는 아직도 업고 있군 그래.”

동료 수도자는 이 말을 듣자 자신의 생각함이 부족하였음을 깨닫고 부끄러워 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5)

 

▣ 말 한 마디의 힘

 

영국의 한 교도소에 조셉 파트러라는 교화원이 있었다. 그녀가 맨처음 교도소에 들어섰을 때 죄수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담요속에 숨었다. 파트러는 수인들의 이마에 손을 얹어주거나 베개를 바로잡아 주었다. 죄수들에게 연설이나 교훈을 늘어놓지 않고 사랑을 실천했다. 이런 일이 몇 개월간 계속되자 죄수들이 오히려 그녀에게 연설을 부탁했다. 결국 그녀를 통해 수많은 죄수들이 참회했다.

말보다 강한 것이 사랑의 손길이다. 활의 시위를 떠난 화살과 지나가버린 기회와 입에서 나온 말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이 말이다. 가시 돋친 말 한 마디가 태풍을 일으키고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는 바람을 잠잠하게 만들고 상처를 치유한다. 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인다. 사람에게 입은 하나인데 귀는 둘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말은 적게 하고 남의 말을 듣는 것은 두 배로 하라는 뜻이다. 좋은 말은 약보다 낫다.

▣ 혀의 권세

 

의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도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잠18:21)의 말씀을 진리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어떤 의사로부터 자기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가 자기 환자 가운데 한 사람에게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고 말했는데, 그 환자가 “만일 당신이 저를 수술하게 되면 저는 죽습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 때문에 그 의사는 수술을 하지 못하고 환자를 퇴원시켰습니다. 나중에 한 젊은 의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수술받아야 할 환자를 퇴원시켰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지요?” 그 의사는 “그 이유는 내가 죽음을 가져올 것이라고 그가 말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의사는 말의 권세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통치권을 주어 다스리라고 말씀하셨고, 그 통치권은 바로 그의 말을 통해서 행사되도록 하셨습니다. 당신이 하는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가득찬 말을 하는 것은 마치 자석이 금속을 끌어들이듯 하나님의 복을 당신에게로 끌어옵니다. 어려운 문제가 닥치기 전에 먼저 부요나 성공을 말하고 고백하십시오. 성공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고백하며 시인할 때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입술에 두고 고백하십시오! 이것을 생활화하십시오!

* 기도: 주님, 말하기 전에 다시한번 생각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내 마음에 주님의 위로를 담게 하시어 고단하고 괴로운 자에게 주님의 뜻을 지혜롭게 전하게 하소서. 나의 말이 상처내는 칼이 아니라 듣고 전할 때마다 달콤한 열매가 되게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마음을 발산하는 입술

 

우리의 혀와 입술은 모두 우리 내면의 영적인 상태를 드러내주는 신체의 일부분이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어떤 질병은 숨 쉴 때마다 매우 지독한 악취를 뿜어낸다고 한다. 죄도 마찬가지이다. 죄는 입을 통하여 발산되고 말에 의해서 퍼지며 그 입술에는 언제나 치명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선생님께 버릇없는 말을 했던 어느 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나는 선생님께 입닥치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그 방을 뛰쳐나와서 곧장 집을 향해 걸었다. 마을 어귀에 이르자 뒤뜰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저만치 보였다. 순간 나는 멈춰서서 생각했다. ‘어머니께 뭐라고 말씀드리지?’ 나는 다시 유치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문 앞에서 마주친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화장실로 가시더니 비누로 내 입술을 닦아주셨다. 그것은 커다란 교훈이었다. 올바르지 못한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더 많이 입을 씻어야 했고 마음도 더불어 씻어야 했다.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의 영혼은 입에 의해 그 죄악의 본성이 드러나고 말았던 것이다. 말의 재갈은 기수에 의해 조정되며, 배의 키는 조타수에 의해 다루어지고, 불은 불꽃에 의해 생겨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혀는 마음의 주장에 따라 말을 하게 된다.

* 기도: 거룩하신 주님, 나의 입술을 정결케 하시고 주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소서. 내 마음과 생각을 주님께 드리게 하셔서 악한 것들에 지배되지 않게 하시고, 선한 생각과 거룩한 습관으로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언행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자 되게 하소서.

 

▣ 칭찬과 용기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매우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서 학업성적이 매우 부진했다. 학교에서는 ‘열등반’에 포함돼 보충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느 날 소년은 유명한 시인들의 전시회에 참석했다. 이 모임에는 스코틀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즈도 참석하고 있었다. 번즈는 한 작품을 가리키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 시의 저자가 누구입니까. 아주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소년이 작가의 이름을 말하며 시를 암송했다. 번즈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칭찬했다. “너는 위대한 시인이 될거야”

소년은 이 칭찬 한마디에 고무돼 문학에 전념했다. 그리고 위대한 작가로 성장했다. 이 사람이 바로 영국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윌터 스코트경이다. 칭찬은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그러나 비난과 절망적인 말은 희망과 꿈을 갉아먹는 좀벌레와 같다.

 

▣ 두루미의 지혜

 

타우라스산은 독수리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독수리들에게는 두루미가 가장 맛있는 먹이로 손꼽힌다. 독수리들은 곧잘 타우라스산을 넘어가는 두루미들을 공격해 배를 채운다. 그런데 항상 독수리의 먹이가 되는 것은 ‘소음을 내는 두루미’들이다.

원래 두루미는 요란스럽게 떠들기를 좋아한다. 하늘을 날 때도 계속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이 소리는 독수리들에게 먹이감을 알려주는 좋은 신호가 된다. 독수리들은 요란스런 두루미를 공격해 어김없이 먹이로 삼는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노련한 두루미들은 거의 희생을 당하지 않는다. 노련한 두루미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 입에 가득 돌을 물고 하늘을 난다. 두루미들은 입에 문 돌 때문에 침묵을 지키며 무사히 여행을 마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귀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입이 너무 오래 열려 있으면 공격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이 당하는 시련의 대부분은 입에서 비롯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아낀다. 물고기는 항상 입으로 낚인다.

 

▣ 침묵의 소리

 

일본에 한 후덕한 군주가 살고 있었다. 백성들은 모두 태평성대를 누렸다. 그런데 하루는 군주가 말에서 떨어져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이 숨지고 말았다. 군주의 대를 이어 외동딸 유미코가 군주직을 물려받았다. 유미코도 선친처럼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했다.

유미코가 나이가 들어 결혼할 때가 되자 재상들이 신랑감 물색에 나섰다. 그때 그녀가 신랑감을 자신이 직접 고르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녀는 커다란 북통에 무명천을 씌워 ‘이상한 북’을 만든 후 신랑을 선발한다는 방을 써붙였다.

전국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그녀는 그들앞에서 명주북을 힘껏 내리치며 물었다. “북소리가 들립니까”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무명북이 소리가 날 리가 없었다. 그런데 한 청년이 대답은 달랐다.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소리요” “침묵의 소리입니다.” 이 청년이 유미코의 신랑으로 결정됐다.

참된 지도자는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 침묵

 

일본의 기독교 작가 엔또슈사꾸가 쓴 “침묵”이라는 소설에 보면 세반스찬 로드리꼬라고 하는 포르투갈 신부의 일본선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기독교인 박해로 수만 명이 순교합니다. 그 순교 사화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믿는 사람들을 죽일 때에 나가사키 영주인 이노우에가 고안했다고 하는 ‘후미에’라고 하는 ‘사상 조사법’을 씁니다. ‘후미’라는 것이 밟는다는 뜻이고 ‘에’는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도인지 아닌지 식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나 마리아 상 등을 새긴 널쪽을 밟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후미에입니다. 그래가지고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그 그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을 밟는다는 것은 신앙을 배반하는 것이 됩니다. 사실 이것을 처음 만들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기독교인을 살려주자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닌 그림인데 밟고 지나가면 어떠냐, 밟고 지나가면 산다, 하고 살려주기 위해서 만든 법인데 의외였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을 줄 몰랐답니다. 로드리코 신부 앞에 천주교 신자인 농부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이 밟으면 살고 옆으로 지나가면 죽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들은 예수믿는 신앙을 절대 버릴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십자가에 매어 죽게 됩니다. 십자가 형틀에 두 농부의 몸을 비끄러매어 밀물이 이는 바닷가에 박아놓습니다. 물이 불어나면 그들은 속절없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부인하라고 협박당합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끝까지 예수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이제 물이 들어와 허리에서 어깨로, 목으로 자꾸 차오릅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로드리코 신부는 하도 괴로워서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들을 도와주시옵소서. 어찌하여 침묵하고만 계십니까?” 신부의 귓가에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들과 고통을 함께 하고 있느니라.”

 

▣ 비판과 불평

 

어느 교회에 명문대학교 출신으로서 박사학위를 가진 매우 똑똑한 집사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나면 어김없이 시비를 걸었다.

“우리 목사의 설교는 교리에 맞지가 않아. 어법도 엉망이야. 또 헌금을 너무 강조하기 때문에 도무지 은혜를 받을 수가 없어”

어느날 담임목사가 그 집사를 조용히 불렀다. “집사님, 나는 집사님보다 공부를 많이 못했어요. 어법이나 맞춤법이 틀리는 일도 있겠지요. 그러나 내가 아는 지식을 모두 동원해서 하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그 많은 지식과 박사학위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남을 비판하기는 쉽다. 애정이 따르지 않는 비판은 언어의 폭력일 뿐이다. 남을 탓하고 비판하는데 익숙한 사람은 항상 외롭다. 그의 주변에는 좋은 친구가 모이지 않는다. 불평과 불만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그 자신이다.

(모퉁이돌)

 

http://www.je333.com(한태완 목사 설교 예화 자료홈)

http://hanachurch.net(하나교회 홈페이지)

한태완 목사 이메일: jesuskorea@naver.com

출처 : 한태완 목사 설교자료집
글쓴이 : 희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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