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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버이의 사랑 (눅 15:20-24)

어버이의 사랑 (눅 15:20-24)

 

누가복음 15장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 개의 비유가 나옵니다. 순서대로 말씀을 드리면 이와 같습니다. 첫째,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비유입니다. 둘째,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자의 비유입니다. 셋째, 잃은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비유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들 중 셋째 비유, 곧 잃은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에는 아버지와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 흔히들 그 중 둘째 아들을 부각시켜서, 이를 탕자의 비유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서, 자녀를 향한 어버이의 사랑과 자녀들이 화목하기를 바라는 어버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부모님을 공경합시다. 그리고 부모님이 바라시는 대로, 형제 사이에 화목하게 지내도록 합시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른바 탕자의 비유를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순서대로 먼저 둘째 아들, 곧 탕자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런 다음 아버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맏아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둘째 아들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눅15: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눅15: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와서,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미리 나누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물론 율법에 의하면 아버지의 재산은 장남에게 2/3, 그리고 차남에게 1/3이 물려지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 물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그것을 미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동생이 아버지에게 잘못된 요구를 하면, 형이 나서서 동생을 나무라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형은 침묵했습니다.

형의 관심도 아버지의 재산에 가있었을 것입니다. 이 때 아버지는 얼마든지 둘째 아들의 요구를 묵살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버지는 그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의 살림을 두 아들에게 각각 나누어주었습니다.    


눅15: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눅15: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그 후 며칠이 안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둘째 아들은 잠시도 지체하고 싶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도 없었고, 또한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시라도 빨리 그 곳을 떠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의 재물을 다 모았습니다. 그런 후에 그는 먼 나라, 곧 이방 나라로 갔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허랑방탕하며 그의 재산을 낭비했습니다. 그는 부도덕한 삶으로 그의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그 때문에 탕자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지금 둘째 아들의 수중에는 돈이 남아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머물던 이방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그는 먹고 살기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했습니다. 


눅15: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눅15: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둘째 아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 곧 이방인에게 붙여 살았습니다. 그 이방인은 그를 들로 보내서 돼지들을 치게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신의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를 먹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돼지들이 그들의 먹이를 둘째 아들에게 빼앗길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은 계속해서 굶주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결국 둘째 아들은 돼지보다도 더 못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눅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드디어 둘째 아들은 정신을 차렸습니다. 사실 그는 그 동안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저버리고 멀리 떠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제야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그는 그 동안 아버지를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궁핍하게 되니까, 그는 비로소 아버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품꾼은 그 날 벌어서, 그 날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에게 있는 품꾼들은 양식이 풍족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넉넉한 삯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둘째 아들의 처지는 어떠했습니까?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는 자기가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의 회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렇듯 회개는 자기 자신을 바르게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눅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눅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둘째 아들은 그 동안 자기가 걸어가던 길에서 돌이키기로 했습니다. 그는 그 길이 자기를 죽음으로 인도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자비하심을 바라면서,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가서, 그가 아버지에게 지은 죄가 하늘에까지 미칠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고백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자기의 죄에 대해서 변명을 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기를 아들로 여기지 말고, 종도 아닌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애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자비하심에 그 자신을 맡기기로 마음을 정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둘째 아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둘째 아들의 잘못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저버리고, 아버지를 멀리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의 회개는 어떠했습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아버지께로 되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요6:37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님에게 오면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내쫓지 아니하십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아버지에게 되돌아온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언제나 예수님에게 되돌아오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아버지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이제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그의 피골은 상접해있었습니다. 그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몸에는 돼지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동네사람들에게서 받을 멸시를 생각하면, 그의 마음은 심히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아직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미 아버지는 그가 돌아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계속해서 동네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보고 측은히 여겼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그를 괘씸히 여겨야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저버렸으며,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의 위신과 명예를 떨어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측은히 여기고, 그에게 달려갔습니다. 유대인들은 뛰지 않습니다. 뛰다보면 몸에 두른 옷 사이로 하체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체를 보이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뛰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동네로 들어오면, 동네사람들이 그에게 침을 뱉을 수도, 돌을 던질 수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그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그에게 재빨리 달려갔습니다. 말하자면 아버지는 아들이 당해야 할 수치를 자신이 대신 당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안았습니다. 지금 아들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의 몸에서는 역한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러한 것들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안고서,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그를 사랑해서,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며, 다시금 그를 아들로 맞이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를 향한 어버이의 사랑입니다. 또한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얼룩진 우리를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당하실 멸시를 무릅쓰고, 우리에게 달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을 안으시고, 우리에게 입을 맞추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셨습니다.


눅15: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이는 둘째 아들이 그의 아버지에게 실제로 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과 그가 이전에 혼자서 독백으로 했던 말을 비교해보면, 여기에 한 부분이 빠져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는 말이 빠졌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아들로 맞아주신 것은 자기가 앞으로 품꾼으로 해야 할 일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아버지의 은혜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행위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만일 여기서 그가 자기의 행위를 내세우려 했다면,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모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은혜를 욕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품꾼의 하나가 되어 일하겠다는 말을 빼버렸습니다.


눅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눅15: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2절에서 아버지는 종들에게 명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혀라. 손에 가락지를 끼워라. 발에 신을 신기라.” 아버지는 아들의 품위와 권위와 신분을 회복시켜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받아주되, 바로 그 자리에서 그의 모습 그대로 받아주었습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종들에게 명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한 마디로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모두가 함께 먹고 즐길 수 있는 큰 잔치를 베풀라는 것이었습니다.  

곧이어 24절에서 아버지는 종들에게 큰 잔치를 베풀어야 할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둘째 아들을 잃었다가, 다시 얻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말에 종들은 즐거워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는 누구를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까? 종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둘째 아들을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다시 얻은 것이 너무도 기쁘고 즐거워서, 아버지는 그 자신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푼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버이의 마음입니다. 자녀가 바르게 행하며 자녀가 잘 되면, 부모님은 자녀로 인하여 그 자신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십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잘 헤아려, 부모님을 늘 기쁘시게 해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맏아들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눅15: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눅15: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눅15: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잔치를 베풀기 전에, 아버지는 맏아들과 상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잔치를 베풀고 난 후에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어 맏아들을 밭에서 불러오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버지와 맏아들 사이가 그만큼 멀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아무튼 맏아들이 집에 가까이 왔을 때였습니다. 그는 집안에서 들려오는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맏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했다면, 그는 즉시 집안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종을 불러서 무슨 일인지를 물었습니다. 종을 통해서, 그는 자기 동생이 돌아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의 동생을 다시 맞아들여 그 기쁨으로 큰 잔치를 베풀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맏아들은 그 동안 아버지가 동생을 애타게 기다려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얼른 집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옳았습니다. 아버지의 기쁨이 그의 기쁨이 되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눅15: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맏아들은 노했습니다. 아버지가 동생을 영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맏아들은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를 벌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이미 말씀드린 대로, 그 잔치는 아버지를 위한 잔치였습니다. 그 잔치의 주인공은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맏아들을 위해서, 잔치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맏아들을 찾아와서, 여기 있지 말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함께 즐기자고 그에게 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버이의 사랑입니다. 둘째 아들을 보고서, 아버지는 모든 수치를 무릅쓰고 그에게 달려갔었습니다. 또한 아버지를 공경하지도 않는 맏아들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를 찾아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사랑으로 그를 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몸소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권하시며, 우리를 천국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때 맏아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눅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눅15: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여기서 맏아들은 자기의 행위를 내세우며, 스스로를 의롭게 여겼습니다. 더 나아가서 맏아들은 아버지를 탓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의인인 자기에게는 염소 새끼라도 준 적이 없었으면서, 죄인인 동생에게는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고 불평했습니다.

이렇듯 맏아들은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틀렸다고 감히 아버지를 비난했습니다. 이 때 아버지는 엄하게 맏아들을 꾸짖으면서, 그에게 큰 벌을 내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맏아들이 잘 알아듣도록, 다음과 같이 부드럽게 그를 타일렀습니다.

  

눅15: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눅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가 의도하는 바는 이러했습니다. “얘야, 들어가서 함께 즐거워하며 기뻐하자.” 그러면서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함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버지가 기뻐하면, 아들도 기뻐해야 마땅합니다.

이른바 탕자의 비유는 여기서 끝을 맺었습니다. 비록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탕자의 비유가 이와 같이 끝났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이에 맏아들이 돌이키고 아버지와 함께 들어가니 모두가 즐거워하더라.” 우리 모두의 모습은 이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긴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부모님을 공경합시다. 아울러 형제들 사이에 화목합시다. 그리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우리 모두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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