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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심문을 당하신 예수님 (막 14:53-59)

심문을 당하신 예수님 (막 14:53-59)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심문을 당하시는 광경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처음 세 번은 유대인에 의한 심문이었고, 나중 세 번은 이방인에 의한 심문이었습니다.

요18:13 말씀과 같이, 맨 먼저 예수님은 안나스에게로 끌려가셨습니다. 그런 후 오늘 본문 말씀처럼, 예수님은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로 끌려가셨습니다. 그 후 눅22:66 말씀처럼, 날이 새자 예수님은 또다시 유대인들의 공회 앞에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이로써 유대인에 의한 심문은 끝이 났습니다. 예루살렘의 공회는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로 갔습니다.

이 때부터 이방인에 의한 심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그런 후 눅23:6∼7 말씀처럼, 빌라도는 예수님을 분봉 왕 헤롯에게로 보냈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심문한 후에, 도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유대인의 종교법에 의해서 세 번, 또한 이방인의 사회법에 의해 세 번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도합 여섯 번의 심문이 불과 몇 시간 안에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후 빌라도는 최종적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신16:18 말씀처럼, 재판은 공의롭게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모든 재판은 공개되어야만 했습니다. 또한 재판을 받는 당사자는 변호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불리한 증거가 제시될 때는 두 사람 이상의 참 증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이 모든 사항들이 철저하게 외면을 당했습니다. 비록 예수님이 여섯 번에 걸쳐서 심문을 당하셨다고 하나, 그 모든 심문이 불법적으로 행해졌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며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로 끌려가셨습니다.


막14:53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룟 유다는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가룟 유다의 입맞춤을 신호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예수님을 잡아 결박했습니다. 이 때 무리는 주로 로마의 군대와 성전의 경비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18:12∼13 말씀과 같이, 무리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었습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간 것은 그가 배후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는 실세였기 때문입니다. 

안나스도 본래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대제사장은 종신직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는 그의 권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서 그를 대제사장직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그 뒤로 20년 동안 안나스의 아들들과 사위가 번갈아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비록 안나스가 대제사장직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그는 배후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눅3:2 말씀과 같이, 그는 대제사장직에서 물러나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대제사장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안나스와 그의 일가는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일과 돈 바꾸는 일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이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두 번이나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 때문에 안나스와 그의 일가는 예수님을 미워해서 예수님을 없애고자 했습니다. 그래야 자기들이 부와 권력을 누리는 일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무리는 먼저 예수님을 끌고서 당시 최고의 실력자인 안나스에게로 갔습니다.

요18:19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이 때의 대제사장은 안나스를 가리킵니다. 그는 대제사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대제사장이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안나스에게 첫 번째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물론 안나스는 예수님을 심문을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을 심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이것은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는 식의 심문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전혀 범죄 사실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 예수님의 범죄 사실을 입증할 무슨 증거나 증인이 있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따라서 안나스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예수님이 스스로 자기의 죄를 자백하도록 유도하는 일뿐이었습니다.

요18:20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책잡히실 일을 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계속해서 요18:21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예수님은 안나스에게 자신을 책잡을 만한 증거를 제시할 것과 또한 이를 증언할 증인을 세울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안나스의 심문이 불법임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안나스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나스가 아무리 노련해도, 유한한 인간의 꾀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무한한 지혜를 당할 수 없었습니다.

요18:22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예수님을 손으로 친 아랫사람은 분명 안나스에게 자기를 잘 보이려고 그와 같이 행했을 것입니다.

이어서 요18:23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죄 없는 자를 치는 것도 역시 불법적인 행위였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을 심문했지만,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18:24 말씀처럼, 그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냈습니다. 이로써 일차 심문이 끝나고, 예수님은 가야바 앞에서 이차 심문을 당하게 되셨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막14:53 말씀으로 돌아옵니다.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마26:57 말씀과 같이, 이 때의 대제사장은 가야바를 가리킵니다. 무리는 예수님을 끌고 안나스의 집에서 나와서 그 해의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의 집으로 갔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니.” 안나스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동안, 가야바는 공회를 소집했습니다. 그래서 공회원들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만큼 공회원들은 예수님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공회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를 비롯한 대제사장들 24명과 장로들 24명, 그리고 서기관들 23명, 도합 71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같은 대제사장이라도 요즘말로 하면 가야바는 총회장이었고, 다른 대제사장들은 노회장이었습니다.

때는 깊은 밤중이었습니다. 아직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닭이 우는 시각인 새벽 세 시 이전이었습니다. 낮이면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대제사장 가야바는 그 깊은 밤중에 은밀하게 공회를 소집했습니다.

게다가 공회가 소집된 장소도 가야바의 집이었습니다. 본시 공회가 공식적인 모임이 되려면,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회집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공회가 소집된 시간도 불법이었고, 공회가 소집된 장소도 불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결박한 채로 안나스에게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끌려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구하여 당장이라도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일을 묵묵히 받아들이셨습니다.

사53:7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잠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요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며,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따랐습니다.


막14: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무리에게 잡히실 때,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러다가 베드로는 예수님이 끌려가시는 곳으로 되돌아와서,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의 말과 같이, 베드로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또한 그의 말과 같이, 베드로는 늘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다가, 다시금 예수님을 찾아 예수님이 끌려가시는 곳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차마 예수님을 가까이 따를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예수님을 멀찍이 따랐습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갔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은 가야바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요18:15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 뜰에 들어간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은 서로 모순된 말씀이 아닙니다.

당시 안나스가 살던 집과 가야바가 살던 집은 한 울타리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가운데 있는 큰 뜰을 중심으로 각자가 살던 저택이 마주 보며 서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당시에 돈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살아가던 모습이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들어간 뜰은 안나스의 집 뜰이기도 했지만, 또한 가야바의 집 뜰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요18:15∼16 말씀처럼, 베드로는 그와 함께 예수님을 따르던 또 다른 한 제자 덕분에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베드로는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었습니다. 날씨가 추웠던 것입니다. 이미 로마의 군대는 그들의 진영으로 되돌아갔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때의 아랫사람들은 주로 대제사장의 종들과 성전의 경비대였을 것입니다.

마26:58 말씀처럼,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간 것은 그 결말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미 막10:33에서 예수님은 공회가 자신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베드로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기가 예수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힘 있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이 안나스 앞에서 심문을 당하실 때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번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가야바와 예루살렘의 공회 앞에서 심문을 당하시는 동안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간 것은 베드로가 자신을 과신했기 때문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그를 잡으러 온 무리에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

아직은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하시기 전이었기에, 제자들은 권능을 받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마치 자기 힘으로 설 수 있는 것처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따라 들어갔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지적하신 대로, 베드로의 마음에 원하는 바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육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느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서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베드로가 있어서는 안 될 곳이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모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그들 사이에 함께 앉아 불을 쬐었습니다.

이렇듯 베드로는 자만했습니다. 또한 그는 기도하지 않아서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있으면 안 될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베드로는 시험에 들어,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 줄로 생각하지 맙시다. 넘어질까 늘 조심하면서,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합시다. 있으면 안 될 자리에는 아예 가지를 맙시다. 우리의 피난처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면서 모든 시험을 이기고, 늘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온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심문했습니다.


막14: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드디어 공회의 심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공회는 예수님에게 죄가 있느냐 아니면 예수님에게 죄가 없느냐를 결정짓기 위해서 예수님을 심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공회의 결론은 나있었습니다. 공회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정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 공회가 예수님을 심문한 목적은 진실을 밝히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일 증거를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야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증거가 있어야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회는 부지런히 예수님을 칠 증거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뻔했습니다. 공회는 예수님을 칠 증거를 전혀 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는 어떠한 죄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마26:59 말씀과 같이, 공회는 예수님을 칠 거짓 증거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 날 한밤중에 공회가 소집된 목적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공회는 어쩔 수 없이 뇌물을 주어서 거짓 증인들을 세워야만 했습니다.

이미 대제사장들은 성전고에서 은 삼십을 달아 가룟 유다에게 뇌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 그들은 거기에 있는 돈으로 뇌물을 주어서 거짓 증인들을 세웠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에게도 뇌물을 주어서 거짓말을 하게 했습니다.

신16:19 말씀과 같이, 율법은 재판 시에 뇌물을 주고받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가장 철저하게 지켜야 할 곳이 바로 공회였습니다. 그런데도 공회는 예수님을 칠 거짓 증거를 찾기 위해서, 뇌물을 주고 거짓 증인들을 세웠습니다.


막14: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때는 깊은 밤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26:60 말씀과 같이, 그 곳에 거짓 증인들이 많이 왔습니다. 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거짓 증인들은 뇌물을 받은 대로, 각자가 이 말과 저 말로 예수님을 쳐서 거짓 증언을 했습니다.

거짓 증인들은 없는 죄를 억지로 거짓되게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사전에 함께 모여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거짓 증언은 서로 일치할 수 없었습니다.


막14: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막14: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막14:59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마26:60 말씀과 같이, 마침내 공회는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웠습니다. 물론 그 두 사람도 돈에 매수된 거짓 증인들이었습니다. 공회는 그들의 입에 예수님을 칠 거짓 증언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회 앞에서 거짓 증언을 했습니다.

몇 년 전 요2:19에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물론 이 때의 성전은 예수님의 육체를 가리키며,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짓 증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덧붙였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헐겠다고 말씀하신 적도 없으셨고, 또한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그 두 사람의 증언조차도 서로 일치할 수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증언은 오늘 본문 막14:5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의 증언은 마26:61에 나옵니다.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두 사람의 증언을 비교해보면, 비슷하지만 정확하게는 서로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려면, 두 사람의 증언이 정확하게 일치해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 후로 그들의 거짓 증언은 쓸모없이 되어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로 끌려가셨습니다. 둘째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따랐습니다. 셋째로, 온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심문했습니다.

안나스도 가야바도 온 공회도 다 불의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불법적으로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그들은 돈을 주고 거짓 증인들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들이 의도한 대로, 의로우신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했습니다.

예수님은 묵묵히 그 모든 수모를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영벌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멀찍이 따르지 말고, 늘 예수님과 함께 합시다. 또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침묵하셨으니, 우리는 입을 열어 예수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증언합시다. 그리해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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