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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성경공부교재

[스크랩] 제자의 길: 제9단원 - 천국같은 가정

 


square11_bronze.gif 제자의 길: 제9단원 - 천국같은 가정

 

제 1과 성령충만의 첫 열매는 가정생활에서 나타난다

제 2과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

제 3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

제 4과 자녀는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

제 5과 부모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라!

 

제 9단원 천국같은 가정

요절

[딤전 3: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제 1과 성령충만의 첫 열매는 가정생활에서 나타난다

 

성도들이 매주 은혜를 받는데도,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가정에서 은혜가 새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부부싸움을 왜 그리 자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모 자녀들의 마음의 골은 더욱 깊어가고, 가족이면서도 한 주간에 한 자리에 만날 시간이 없고, 함께 모여도 대화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는 매주 가정예배문을 발간하여 주일저녁에 가정예배를 실시하였는데, 각 가정들 마다 간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가족 사이에 "사랑해요, 감사해요'라는 말을 처음 해 보았다는 가정도 있었고, 아버지와 처음 포옹해 보았다는 딸도 있었고, 어떤 여 성도는 가족들이 "우리 집에서 가장 수고가 많은 사람"으로 자기를 꼽을 때, 가족들이 말은 안해도 자신의 수고를 알아 주고 있었음을 알고는 자꾸만 눈물이 나오더라고 했습니다.

 

지금 도처에서 가정의 행복이 깨어져 가고 있습니다. 마귀는 가정 안에 불행을 심고, 가족 사이에 상처를 주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가정과 부부가 불행을 느끼며, 살아 가고 있습니다.

 

가정 사역을 전공하는 어느 교수님께서 결혼하기 전의 예비 신랑 신부를 만나서, 질문지를 나누어 주고, 상대방의 장점을 써 보라하면, 한 장 가득 메운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단점을 쓰라 하면 서로 쳐다 보고 웃기만 한답니다. 그런데 결혼 후 1년이 지나서, 다시 질문지를 주고, 상대방의 장점을 쓰라 하면 쓸 것이 없다고 한답니다. 그러나 배우자의 단점을 쓰라 하면 뒷면까지 써도 모자란답니다.

부부생활에 대한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 속에서 그리며 살고 20대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엔 서로가 체념하며 살고 50대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니까 살고 70대엔 서로가 고마와서 산다"했습니다. 맞습니까?

행복을 원하여, 결혼하면서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부부를 찾아 보기 어려운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결혼 생활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질문> 시127:1의 말씀을 가정에 적용하면 어떤 교훈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은 성도들의 가정마다 가정천국을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천국을 이루는 열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그 해결책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질문>

① 엡 5:18의 성령충만은 어떤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까? (3단원 참고)

② 이 명령 후에 가장 먼저 어떤 생활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명령 다음에, 제일 먼저 가정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성령충만한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곳이 가정이라는 뜻입니다.

한 부인이 암 수술을 받고, 회복되고 나니, 아이들 도시락 싸는 일, 남편 출근을 돕는 일이 그렇게 행복한 일임을 깨달았답니다. 가정 일이 많으냐 적으냐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감사했습니다. 성령충만하면 이렇게 바뀌게 됩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모든 가족 관계의 중심에 계셔야 합니다.

<질문> 엡 5:22-6:4을 읽고 아래 질문에 답해 보십시오.

① 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 복종해야 합니까? (5:24)

② 남편은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5:25)

③ 자녀는 부모에게 어떻게 순종해야 합니까? (6:1)

④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합니까? (6:4)

⑤ 이상의 모든 관계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보십시오.

한동대 이기복교수,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께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한 후,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 서원을 안 지키면, 사업이 안되거나, 병이 들거나,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한 결혼 서약, 이것을 어겼기 때문에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교인들은 거의 찾아 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부부 서약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증인들 앞에서 하는 공개 약속입니다. 저는 결혼식 주례를 하면, 서약문을 인쇄하여 꼭 본인이 읽게 합니다. 그리고 성경책 속에 넣어 줍니다. [나 000은 /그대 000를 /아내로 맞아, 이제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평생토록 괴로우나 /즐거우나,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그대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순종하여, 오늘의 이 약속을 지키기로 하나님과 /여러증인들 앞에서 /굳게 다짐합니다. 아멘] 부부 싸움 할 경우, 부부 갈등이 생길 때, 서로 서약한 것을 읽어 보면, 거기에 답이 다 나옵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 서약을 까맣게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가정 문제는 부부문제부터 먼저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동원목사님께서 미국에서 어느 결혼식에 참석하였더니, 서약시간에 부모도 다음과 같이 서약을 하더랍니다. "신랑(신부)의 부모는 앞으로 사랑하는 아들(딸)이 결혼한 후에 이 두사람 사이의 중간에 서지 않기로 약속하십니까?"

 

<질문> 만약 어느 남편이 아내와 의논없이 따로 사시는 부모님을 찾아 뵙고, 용 돈을 드렸다면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까?

 

부부가 행복하지 않은데, 부모님을 모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서 효도를 받으려면, 자녀 부부 사이가 행복하도록 만들어 주면 됩니다.

우선, 부부 스스로가 이 점을 바로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다.


제 2과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

<질문>

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누구에게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까? 엡 5:22

② 당신은 남편에게 그렇게 순종하십니까? 아니라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신의 아내는 당신에게 순종합니까?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③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엡 5:23

④ 몸의 각 지체가 머리의 통제를 받지 않고, 제 멋대로 움직인다면 그 사람의 모습은 어떻겠습니까?

교회가 예수님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교훈은 실제로 지켜 보려면 대단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아내가 남편 보다 더 지혜롭고, 더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순종만 할 수 있습니까?

어떤 여 성도가 "목사님 같으면 제 남편에게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볼멘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 여성도의 남편되시는 분에게 복종하기란 대단히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아내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히 "남편에게 순종하라" 입니다.

아내의 능력도 중요합니다. 매력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내에게 그 무엇보다 있어야 하는 것은 순종입니다. 아내인 이상 '순종'이 있어야 자신의 역할을 잘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의 결정이 잘못된 것 같아 보여도, 몇 번은 고생할 각오를 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되 마음도 바꾸어 기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정 천국을 이루게 하실 지혜를 아내에게 주십니다.

아내는 남편이 바가지를 긁어서 변화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자는 아내가 시켜서 하는 것을 대단히 자존심 상해 합니다. 아내는 이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남편이 바로 결정하도록 돕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가정에 남편이 차를 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차를 너무 과속으로 모는 것입니다. 아내가 과속하지 말라고 아무리 잔소리를 퍼 부어도 막무가내입니다. "당신 꼭 사고를 당해 보아야 정신차리겠어요?" 해도 그대로고, "당신 나를 생과부만들 작정이예요?" 해도 더 하더랍니다. 그런데 이 부인이 지혜롭게 남편의 과속 습관을 고쳤습니다. 남편이 하루는 운전석에 앉아 보니, 메모지 한 장이 붙었는데, "여보, 운전하실 때는 찬송을 부르세요. 당신이 60km로 달릴 때는 [주와 함께 길가는 것]이란 곡이 좋겠구요, 80km로 달릴 때는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 100km로 달릴 때는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그리고 120km로 달릴 때는 [주여, 나 이제 갑니다]를 부르세요". 아무리 바가지를 긁어도 운전 습관을 안 바꾸던 이 남편이 그날 너무나 웃더니, 아내의 재치에 감탄하여 속도를 줄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남편의 가장 우선적인 욕구가 존경받는 욕구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섭리에 의하면, 남자는 인정받고, 존경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며, 무시당하고, 자존감이 눌릴 때, 가장 불행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세워 주지 않으면 남편은 어디에서 삶의 기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때때로 아내가 잘 살아 보려고 애를 쓰는 것까지는 좋은데 자신도 모르게 남편을 파괴하고 있는 것을 모릅니다. 남편에게 제일 중요한 [자존감]을 아내가 파괴시켜 버립니다.

외향적인 사람은 쉽게 화를 내고, 쉽게 화를 풉니다. 화를 내는 것이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기 보다는 감정 표현의 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내성적인 사람은 쉽게 화를 내지 않고 쉽게 화를 풀지 않습니다. 한 번 화를 내면 모든 관계를 끝내겠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표현이 강한 외향적인 성격이고 남편은 표현이 없는 내성적인 부부일 경우, 아내가 자주 화를 내는 것은 남편에게 엄청난 고통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생일을 맞은 남편이 밥상에 김치와 밥만 올라온 것을 보고 가벼운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내 생일인데 미역국이라도 좀 끓이지" 그러자 아내가 매섭게 반박했습니다. "돈만 벌어다 줘 봐. 미역국이 아니라 고깃국은 못 끓여 주나" 남편은 IMF 이후 회사의 부도로 8개월 째 월급을 받아 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아내 역시 속이 부글부글 끓는 터라 부드럽게 반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남편은 아무 말없이 수저를 내려 놓고 출근을 했습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남편은 아침을 거르고 출근을 합니다. 아침을 안 먹으면 죽는 줄 알던 남편이 그 한 마디에 매일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을 합니다. 아내는 몇번 화해를 시도했지만 그의 굳은 입은 풀릴 줄 모릅니다. 어느날, 여전히 아침식사를 거르고 출근하는 남편의 앙상한 어깨를 보라보며 아내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복받치는 슬픔과 애처러움이 교차하는 흐느낌이었다가, "남편은 어떻게 위로할까? 누가 나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해줄까? 누가 나와 함께 울어 줄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며, 아내는 결국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아내의 순종이 없이는 남편의 권위는 없습니다. 남편이 바로 서지 못하는 데 결코 부부생활에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행복하지 않는데 그 가정이 천국 같아질 수 있습니까? 가정천국을 하나님께서 안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거절한 것입니다.

세째, 예수님을 믿고, 남편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진정으로 남편을 돕는 길은 남편에게 소망을 갖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소망과 비슷하지만 너무나 다른 것이 기대와 요구입니다. 아내의 기대와 요구는 남편에게 부담을 줍니다.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의 순종은 힘을 줍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족한 남편에게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예수님 안에서 남편을 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롬 4:17) 이 믿음으로 보면 어떤 남편이라 할지라도 소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넷째,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며 고통을 겪는 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며 고통을 당하는 것 보다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 몸이 머리와 상관없이 따로 움직이는 모습보다는 낫다는 사실을 믿고. 조급해 하지 말고,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몰라도, 아내가 기도하고 순종하고, 순종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남편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쉬운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남편이 결정하게 하는 것은 남편이 하나님 앞에 무릅 꿇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남자들이 사회에 나가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할 때, 남편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어느 사모님은 남편되는 목사님을 "주여"라고 부른답니다. 목사님께서 처음에는 대단히 기분이 좋으셨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잘못할 때마다 사모님께서 조용히 "주님께서 이러시면 됩니까?" 하셨다는데, 그 말 한마디에 목사님께서 꼼짝을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제 3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

<질문>

①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엡 5:25

② 당신은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십니까? 아니라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편은 당신을 사랑합니까?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③ 예수님은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셨다고 하셨습니까?

:26

:27

④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방법을 아내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28

:29

:31

서울 강남구의 통계입니다. 아내의 78%가 다시 태어나면 지금 남편과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한 부인이 자기는 다시 태어나도 현재의 남편과 결혼할 것이라고 대답을 해서 기자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부인의 대답은 "이제 겨우 맞추어 살게 되었는데, 이 지긋지긋한 과정을 또 반복해야 한다구요? 끔찍해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남편에게 주신 이 명령도 실제로 지켜 보려고 하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사랑스러워야 사랑하지!' 하는 원칙을 가진 남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없습니다. 연애할 때, 신혼 시절에는 사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내의 약점이 드러나고, 때로는 실망이 되거나, 못난 점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때도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편은 왜 아내를 사랑해야 할까요? 남편은 아내를 사랑함으로 행복해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남자는 받을 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줄 수 있을 때 행복을 느끼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양육하고 보호할 때"(엡 6:29) 행복을 느낍니다. 남편은 아내로부터 양육을 받고 보호를 받을 때,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참함을 느낍니다. 남편은 아내를 행복할 때, 행복합니다. 아내가 불행해 할 때, 자신도 불행해 집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가정 (아내) 외에 다른 데서 행복과 기쁨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데서는 결단코 행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내에게 만족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남편은 사실상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여자에게도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사모님이 코를 골기 시작하자, 하나님께 귀가 먹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해서 듣는 사람들을 감동시킨 적이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라고 하였는데, 머리는 지시하고 명령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는 교훈의 진정한 뜻입니다.

예수님은 줌으로 행복을 느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인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할 때, 예수님도 행복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쳐 주심으로, 죄와 저주에서 구원해 주심으로 기뻐하십니다. 남편은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행하신 이 자세로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부부세미나를 해 보면, "여보 사랑해" 라는 말을 못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 때 아내는 얼마나 서운해 하는 지 모릅니다. 또 혼인 서약 갱신식 때, 사랑의 고백이 담긴 남편의 서약을 듣고서 많은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주신 가장 큰 욕구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여자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어떤 고생도 견딜 힘이 생깁니다. 대부분의 남편은 "나는 여전히 제 아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남편이 판단할 것이 아니고, 사랑을 받는 아내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아내가 사랑받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면, 남편은 변명하지 말고, 사랑하는 태도와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아내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는 남편의 자세가 없다면, 아내는 결코 행복할 수 없고, 가정이 천국같아 질 수 없는 것입니다. 누가 가정 천국을 훼방하는 것입니까? 남편의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질문> 벧전 3:7에서 남편이 아내를 귀하게 여겨야 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였 습니까?

저는 금방 시드는 꽃을 왜 사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 아내는 꽃 한송이의 선물에 모든 피곤이 다 녹아진다고 했습니다. 누가 "목사님, 사랑합니다" 하고, 제 앞에서 말하면, 내성적인 저는 좋기보다는 어색해서 눈둘 곳을 찾지 못합니다. "그냥 마음으로 사랑하시지 꼭 말로 하시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제 아내는 제가 "여보 사랑해" 하는 말 한마디에 삶의 기쁨을 찾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힘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 말을 왜 못해 주었는지 회개했습니다.

저는 언젠가 '나 자신은 과연 아내를 위하여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쇼핑하는 문제입니다. 제 아내는 쇼핑을 즐겁게 합니다. 그러나 제게는 고역스런 일입니다. 그래서 쇼핑할 때, 우리 부부는 갈등을 겪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잠깐의 쇼핑 시간도 아내와 함께 즐거워 해 주지 못하면서, 아내를 위하여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쇼핑을 가게 되면 입구에서 마음 속으로 기도합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즐겁게 쇼핑하게 해 주시옵소서"

 

남편은 결단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할 때, 남편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순종이 얼마나 기쁨을 주는 지 잘 압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더욱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의 결정이 아내와 자녀, 온 가정의 행복과 직결됩니다. 남편이 잘못 결정하면 모두 고생합니다.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아내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아내는 하나님께서 남편을 위하여 짝지어 준 지혜로운 "돕는 베필" (창 2:20)이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혜도 주시고, 믿음도 주시며, 가정의 행복도 주십니다.

첫째 딸인 지영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과외를 시켜야 하나, 학원에 보내야 하나, 집에서 공부하게 해야 하나?' 결정할 때, 결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일은 지영이의 장래를 위하여 더욱 기도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영이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이것이 남편이 결정하도록 하게 하신 이유임을 알았습니다.



제 4과 자녀는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

<질문>

① 자녀들은 부모를 어떻게 순종하라고 하셨습니까? 엡 6:1

② "주 안에서" 순종한다는 것은 다른 순종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③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에게는 어떤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엡 6:3-4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라는 말은, 부모의 말씀이 신앙적이면 순종하고, 불신앙을 강요하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라도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라"는 말을 다시 고쳐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부모를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유교가 다른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효도가 마땅한 도리라고 가르칩니다. 곧 법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효도는 진정한 용서와 사랑이라고 가르칩니다.

왜 이런 교훈이 필요할까요? 안타깝게도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알게 모르게 받은 어릴 적 상처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조금만 성장하면,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집을 나가기 원합니다. 심지어 부모를 증오하는 자녀들도 많습니다.

청소년 수련회를 인도해 보면, 마지막 날, 간증시간에 "이제 집에 돌아 가면 아버지를 용서하겠어요. 어머니를 사랑하겠어요" 하면서 울며 간증하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질문> 여러분이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를 찾아 써 보십시오.

우리가 부모에 대하여 생각할 때, 당연히 효도해야 한다는 의식 아래, 깊은 곳에는 부모에 대한 마음의 상처가 쓴 뿌리처럼 자리잡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를 사랑하면서도, 한편 원망하고 미워하는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기 앞서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부모님과 먼저 화해해야 합니다.

상처는 부모가 주었어도, 풀기는 자녀가 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처를 준 부모님은 그 사실을 모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부모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 놀랍니다. 심지어 섭섭해 하기도 하고, 오히려 노여워 하기도 합니다.

부모가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그것을 알리없는 아이가 엄마에게 무엇을 해 달라고 조릅니다. 전에는 귀엽다고 잘 해 주던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엉덩이를 때립니다. 이 아이 영문을 모르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물론 엄마가 잘못했지만, 부모가 그때 매우 감정적으로 어려운 때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엄마는 그 사실 조차 잊어 버렸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므로 자녀가 먼저 부모와 화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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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부모가 준 조그만 상처도 기억하지만, 부모는 자녀들이 준 큰 상처도 잊어 버립니다. 이것이 부모와 자녀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부모 용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부모가 계셨다는 것 자체가 복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뉴욕시 양육기관에 맡긴 1세이하의 유아들이 거의 죽자, 조사에 나섰습니다. 결론은 어머니의 사랑의 결핍이었습니다. 미국 뉴욕의 린 스피츠 박사는 비슷한 조건의 두 어린이 양육기관을 선정하였는데, 처음의 경우는 어머니들이 그들의 아기를 직접 돌보는 경우이고, 두번째는 기아 양육원으로 버린 어린아이들을 여러명의 전문 보모들이 양육하는데 한 사람이 12명의 아기를 돌보는 곳이었습니다. 발달 계수를 측정해 보니, 가정적 육아원의 경우가 101.5에서 1년 내에 105로, 양육원의 아이들은 124에서 2년내에 45로 떨어지는 무서운 현상이 나타났고, 2년 내에 37%의 어린이들이 죽었으나 가정적 육아원의 아이들은 5년동안 한명도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지 어머니가 길렀다는 하나만 가지고도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있다는 것 자체가 부모님의 은혜입니다. 이 점을 감사해야 합니다.

한신대 정태기 박사님의 간증입니다. 정박사님이 어릴 때,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렸는데, 6등 곧 꼴찌를 했답니다. 그 날따라 엄마가 운동회에 와서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 운동회가 마치고 집에 오니, 어머니가 마당에서 "나가 죽어라! 꼴찌하는 자식은 내 아들 아니다"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집 밖에 나가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어머니의 "나가 죽어!" 하는 말만 머리에 맴 돌았습니다.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생겼습니다. 그 이후에 매사에 자신감을 잃어 버렸습니다. 대인 공포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반장을 시켜 주어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유학을 가서, 상담 공부를 하는데, 잠재되어 있던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그 아픈 상처가 되살아 났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쓰라린지, 견딜 수 없어서 울고 또 울었답니다. 그러나 그렇게 울면서, 상상으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그 어머니가 말하더랍니다. "태기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아니? 너를 사랑했기에 네가 꼴찌한 것을 보고서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란다!" 정태기박사님은 그때 비로서 깨달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셨구나, 단 그것을 교양있게 표현하실 없으셨을 뿐이구나!" 이것을 깨닫고 나니 그렇게 눈물이 나더랍니다. "어머니 마음을 이해못하고, 원망하고 미워했던 것,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그 내용을 편지에 써서 어머니께 보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온 아들의 편지를 반갑게 받아 든 어머니가 이모가 읽어 주는 편지를 듣고는 "내가 나 아들 마음에 멍이 들게 하였구나" "나를 용서해라" 하고 며칠을 우시더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전해 들은 정 교수님도 몇번 씩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면서 울었답니다. 그 이후에 허약하던 정태기 박사의 체중이 10KG이 늘었고, 지지부진하던 학위 논문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아버지를 용서하십시오. 어머니를 용서하십시오. 당신에게 부어 주시는 폭포수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님에게 적용하십시오. 혈기로 매를 든 부모, 돈, 돈 하였던 부모, 모범이 못된 부모, 상처를 준 부모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이것이 치유되지 않으면, 당신의 배우자, 자녀들에게 그 쓴 뿌리가 전해지게 됩니다.

어릴 때, 정신적으로 학대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던 아버지를 살해했던 김성복교수는 미국 유학 시절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마음으로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 실린 실화입니다. 악성 췌장암에 걸려 6개월 밖에 더 살지 못하게 된 아버지가 있었는데, 그에게 의사가 된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너무 고지식하고 완고하고 감정이 매말라서 아들에게 한 번도 애정을 표현해 준 적이 없었습니다. 이 아들은 자라면서 아버지에 대하여 언제나 분노를 느꼈습니다. 아들이 자라면서 자연히 부자 간에 사이가 점점 멀어졌습니다. 아들의 삶이 행복하지 못하였습니다. 쓴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세상을 떠날 때가 임박한 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와 화해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어요" 아버지는 놀라서 온 몸이 잔뜩 긴장했습니다. 반응이 없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가망이 없는가?" 그런데 몇 달이 지났을 때, 아버지 팔이 아들을 안았습니다. 그리고 또 몇주가 지난 후, "얘야, 널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아들로서는 평생 처음 아버지로부터 들어 본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반드런트 선교사님이 성격이 괴팍하여, 도무지 사람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여 매우 고통스러워 하는 한 교인을 상담했습니다. 특히 부부 관계가 어려웠습니다. 그 문제의 뿌리가 아버지와의 문제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이 사람이 어렸을 때, 간질인 것을 알고, 사랑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 아들은 더욱 상심했습니다. 그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이 후, 어떤 사람과도 사랑과 믿음의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깨달았지만, 아버지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 가셨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님 "내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형제님에게 말하겠습니다" "000야, 네가 나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 지 몰랐단다. 내가 너를 버린 것은 참으로 미안하구나. 그 때는 나 자신도 너무나 문제가 많아서 너와 같은 아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지 못햇단다. 내가 너를 너무 아프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런데 이 말을 하는데, 이 사람이 막 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버지를 용서한다고 했습니다. "내 안에 무엇인가가 막 뜁니다" 아버지 앞에 뛰는 아이를 느낀 것입니다. 부인도 상담을 했습니다. 서로 상처가 많아 서로 상처를 주고 산 것입니다. 부모님과 관계가 해결되고 나니, 가정이 너무나 행복해 진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은 아버님이 어려서 너무나 엄격하셔서, 고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이모에게 편지로 상담하기까지 했던 것이 기억나서, 울면서 고백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 후 마음이 시원해졌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아버지를 용서하십시오. 어머니를 용서하십시오. 그러러면 자녀가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이렇게 부모에게 효도할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복을 주십니다.

어느 가정에 부부와 딸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부산의 직장이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잠시 뿐이라 온 가족이 서울에서 이사할 수가 없어서 고생스러워도 아버지만 잠시 부산으로 이사하기로 하였습니다. 잠시 두 집 살림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아버지를 보러 부산으로 갔습니다. 뜻밖에도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한 방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딸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켰습니다. 그날 밤 딸과 아버지는 말이 없었습니다. 딸은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 어떻게 살고 계시더냐?>라고 물었습니다. 딸은 <아버지 혼자서 고생이 말이 아니에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몇 일 후에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그는 낮에 서울에 도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낮에 집으로 들어올 수가 없어서 밤에 고개를 푹 숙히고 할 수 없이 들어 왔습니다.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아내가 무어라 말하든지 다 받겠다는 각오였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들어 왔을 때 의외에도 아내는 <여보 얼마나 고생하였어요? 미안해요. 같이 가 있지 못해서> 처음에도 어리둥절하였지만 딸이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감격의 눈물을 혼자 흘렸습니다. 딸이 시집가는 날, 아버지는 <내 딸은 내 딸이 아니라 내 구세주입니다>라고 주례 목사님에게 말하며 펑펑 눈물을 흘렸고, 결혼을 앞두고 아버지는 재산을 더 준다고 하고 딸은 그만 가지고 가겠다고 심한 다툼을 벌렸다는 것입니다.

<질문> 당신의 당신의 부모님을 용서하셨습니까?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십니까?

제 5과 부모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라!

<질문>

① 아비들은 자녀들에게 먼저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엡 6:4

②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을 노엽게 한 적이 없습니까?

언제 당신의 자녀들은 노여워 합니까?

③ 아비들은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하라고 하였습니까? 엡 6:4

"주의 교양과 훈계"란 무엇일까요? 예수 믿는 여러분의 가정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많은 성도가 믿기는 하나님을 믿지만, 가정 분위기는 유교적인 가정이 많습니다. 유교적인 분위기라 함은 법도가 엄격하여 야단치고, 잔소리하고, 꼭 재판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화가 나는 것입니다. 부모가 이중적이라고 느끼고, 부모가 원하는 경건생활이 정말 좋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것이 경건한 부모에게서 망나니같은 자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성령충만한 성도의 가정의 분위기는 기쁨과 감사와 사랑입니다

많은 성도의 가정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지만, 자녀들이 가정 예배를 너무나 싫어합니다. 이유는 가정예배 드리는 것을 율법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가정 예배 때마다 야단치고, 심지어 회초리로 맞기도 합니다. 준비 기도없이 드리므로, 가정 예배는 의무감으로 드리는 지겨운 시간이 되고, 사랑과 은혜의 분위기를 만들지 못합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호남신대 교수인 김의식교수께서 미국에서 목회하실 때, 한 번은 [용서하라, 사랑하라]는 제목의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는, 그 교회에 한 분 계신 장로님이 마음에 걸려서, 그 장로님을 토요일 밤에 심방을 하셨답니다. 그리고 그 장로님과 평소에 마음에 불편하던 것들을 먼저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장로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의 아버지가 서울에서 목회하시던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셨는데, 매우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강요하셨기에,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월요일에 시험이 있어도, 주일은 안식일이라고 절대 공부를 못하게 하시더니, 주일 밤 12:00가 지나면, 자던 아들을 깨워서 이제 주일이 지났으니 공부하라고 하실 정도였답니다. 김의식목사님은 그 장로님의 학생 시절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장로님께서 교회 일을 결정할 때마다 이상하게, 사사건건 반발만 하셨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 안에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 쓴 뿌리로 남아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담임목사님을 향하여 일어났었던 것입니다. 그 날 김의식목사님과 장로님은 장로님 안에 있는 쓴뿌리를 발견하고, 서로 붙들고 눈물로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은혜]와 [사랑] 삶을 통하여,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것이 부모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대전의 어느 남자 고등학교에서 2등을 하던 학생이 자살을 했습니다. 유서에 기록하기를 "효도하지 못할 바에야 먼저 갑니다" 했습니다. 2등이 된 그 아들이 1등을 하기를 원하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결국 공부잘하는 아들을 자살로 몰고 갔습니다.

서을의 어느 장로님은 매일 밤, 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000, 이화여대 영문과 수석으로 합격하게 하소서" 그런데 그 딸이 고2학년 때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지금 28살인데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이 아버지도 딸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딸을 정신병에 들게 만들었습니다.

캐나다에서 목회하시는 한 목사님의 사모님께서 아들이 2살 때, 교인의 아들을 때리는 것을 보고, "앞으로 절대 남을 때려서는 안된다"고 엄히 꾸짖었었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나이가 들면서 얼마나 나약한지(?) 여자애들이 꼬집고 놀려도 아무 댓구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모님의 마음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가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들에게 "이제는 누가 때리면 너도 때리라"고 가르쳤답니다. 그리고 엄마를 대상으로 때리는 실습까지 시켰답니다. 그 이후, 이 아들이 놀리는 한 여자아이를 정말 때려 주었고, 그 이후 어떤 여자아이도 이 아들을 놀리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 이 아들이 점점 더 거칠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는 다른 애들을 때리고, 놀리고, 괴롭히는 아이가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사모님이 회개하였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 안의 악한 본성을 자극한 것입니다. 이제는 7살된 이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고 바로 잡아 주어야 할지 걱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 잘되기를 원한다고, 자녀가 다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 주어야 자녀가 잘 되는 것입니다.

길선주 목사님의 아들은 술주정뱅이에, 망나니였습니다. 길선주목사님은 그 아들을 볼 때마다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빗나가는 것입니다. 한번은 미국 선교사님께서 길선주 장로에게 "아들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보세요"하고 권면했습니다. 그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닫고, 길장로님께서 매일 새벽에 100일 축복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100일 기도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새벽기도회에 그 아들이 술이 취하여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는 예배당 바닥에 앉아 대성 통곡을 하고 우는 것입니다. 그 날 이후, 그 아들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고 용서하되 끝까지 용서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가 가르친 용서와 사랑이 진짜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한동대 이기복교수님은 고등학교에 올라간 딸의 성적이 떨어졌을 때, 끌어 안고서 "난 널 성적과 상관없이 사랑한단다" 하였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도 또 성적이 떨어졌답니다. 그 때도 마음을 굳게 먹고, 딸을 격려하고 칭찬했답니다. 세 번째 성적표를 가져 왔을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데, 그렇게 얼굴이 밝더랍니다. 그런데 성적표는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순간 이 교수님에게 실망감이 다가 오더랍니다. "내가 잘못했나?" 그런데 그 순간 깨달아지기를 "요즘 학교 성적 때문에 방황하고, 거짓말하고, 심지어 가출하는 아이들이 많다는데, 내 딸은 성적이 계속 떨어지는 데도, 밝고, 어머니에게 담대한 것이 너무나 감사하더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누구나 자녀들에게 유산을 물려 주게 되어 있습니다. 재산만 유산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유산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산을 물려 받았습니까?

서을 어느 교회 부흥회를 인도할 때, 강사 숙소인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창 밖을 내다 보면서, 갑자기 할아버지 생각을 하며, 울었습니다. 6.25 전쟁 때, 할머니까지 다 떠나 보내시고, 홀로 교회를 지키시다가, 순교하신 할아버지, 저는 얼굴 뵌 적도 없습니다만, 마지막 순간의 할아버지의 고독, 고통, 기도가 얼마나 강하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괴로왔을까?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런데 손자인 저는 분에 넘치는 호강을 하고 있군요! 할아버지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손자에게 물려 주신 유산이 있었습니다.

<질문>

① 출 20:5에서 아비의 죄가 아들에게로 몇 대까지 전해진다고 하였습니까?

② 출 20:6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는 몇 대까지 전해진다고 하였습니까?

③ 이 말씀을 읽고 당신의 가정에 있는 저주와 축복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는 쓴뿌리 유산은 끊어 버려야 하고, 축복의 유산은 계속하여 심어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물려 가장 큰 유산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믿음으로 살고, 사랑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미국의 가계를 연구하는 학문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연구 케이스가 [조나단과 사라] 부부입니다. 미국 건국 초, 조나단과 사라 두 사람이 하나님만 신실하게 믿고 살기로 약속하고 통나무집을 짓고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11명의 자녀를 길렀는데, 그들이 200년 미국 역사책 들쳐보면 다 나온답니다. 10년 전 당시, 부통령 1명, 주지사 3명, 대학총장 13명, 변호사 139명, 판사 33명, 대법원 11명, 75명의 대사업가 68명의 의사 116명의 목사, 82명의 차관급 이상 공무원, 66명 교수 25명의 대 발명가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가문을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그 집안 사람들은 정작 자녀 교육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단지 부부가 아이들 앞에서, 믿음 소망 사랑으로 행복하게 살아 가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다 잘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유산입니다.

부모의 관계가 자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부모가 싸우는 것을 보면, 자녀들은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 잡힙니다. 부부가 싸우다 보면, 말을 막하게 되지 않습니까? "죽여라! 못 살겠다! 헤어지자" 그러나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하루만 지나면, "여보, 이것 드셔 보세요"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듣는 자녀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슴이 철렁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주 싸우는 것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쓴 뿌리를 가지고 삽니다. 그러니 사람의 그릇이 쪼그라들 수 밖에 없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으로는 정신병을 가지고 자랍니다. 폭력배가 되든지, 방탕한 유혹을 이기지 못합니다. 무절제하게 됩니다, 욕심이 한이 없습니다. 욕구 불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서 학원에 보내면 뭘합니까? 좋은 대학에 보내면 뭘합니까?

 

1930-50년대, 어렵고 어려운 때, 서울 달동네에 한 가정에 어머니가 콩나물 장사를 해서 아이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보니까 어머니가 새벽 4시만 되면 무거운 콩나물 통을 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새벽 종 치는 소리에 일어나셔서 새벽기도회를 가시는 것입니다. 콩나물 통을 교회 마당에 내려 놓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한 후,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 콩나물을 팔아 먹고 살면서, 공부도 시켰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아이들은 다행히 잘 자라서, 큰 아들이 큰 회사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이 아들이 어느 날, 지나간 고생스러웠던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는 중에, 불현 듯, 어머니 생각이 나는데, 새벽기도 나가셔서 기도하시던 일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구나! 그리고 어머니를 깨우던 교회 종소리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회사 이름을 [종근당]이라 지었습니다. 이것이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부모의 영적 유산입니다.

<질문>

① 당신은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십니까?


② 당신의 자녀에게 어떤 영적 유산을 물려 주고 있습니까?

출처 : 믿음으로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글쓴이 : 덩울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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