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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남준목사

네 부모와 화해하라 룻1:16

네 부모와 화해하라             룻1:16                

 

자기 부모와 원수지간이 되어 고통 중에 살아가시는 분들을 위한 설교

 

 

▲부모와 원수 된 사람들도 있다.

해마다 어버이날, 명절날이 다가오면 우울해지는 크리스천들이 꽤 있습니다.

그 날이 되면 깨어진 가족들과 마주 대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자신에게 상처 준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자신이 옳지 않다는 양심의 가책이 따라 다닙니다.

 

최근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젊은이 100명 가운데 약 70명이 자신의 부모를 미워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물론 크리스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사랑해야 할 관계가 오히려 가장 상처가 많은 관계로 변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믿음)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자연스런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부모’라는 두 글자는 눈물 젖은 이름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계명 중

가장 터놓고 어기는 계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경하기 이전에, 미워하는 자신의 부모와 화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움을 간직한 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니와

미운 마음으로 공경하는 척 하는 것은 외식이기 때문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무슨 기념식이나 하듯이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달아 주고, 선물 하나 건네고는

다시 예전의 상처를 붙들고 살아가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마음 없이 행하는 모든 선한 일은... 위선일 뿐입니다.

 

 

◑ 온전하지 못한 부모도 있다.

 

▲별로 존경하지 못할 시어머니를 따른 룻

나오미의 가족은 흉년이 들어 기근을 모면해 보려고

온 가족들이 함께 타국 모압 땅에 건너갔습니다.

거기서 호의호식하기는커녕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둘을 몽땅 잃고,

나오미는 홀몸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이러한 불행이, 하나님 앞에 자기가 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당하는 징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룻1:21참조

 

룻이 어머니인 나오미를 죽기까지 따라가려고 한 것은

나오미가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신앙적인 감화를 끼쳤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자기 죄로 인해 징계를 받아 슬픈 마음으로 초라하게 귀향하는 나오미에게서

무슨 감동을 받았겠으며,

무슨 존경할 만한 신앙인격을 발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룻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 어머님을 떠나며 어머님을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님이 어디에 가시든지 따를 것이며 어디 유숙하시든지 거기 유숙하겠나이다. 룻1:16

 

비록 실패하고 떳떳치 못한 시어머니지만,

며느리 룻은, 그를 꿋꿋이 따르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오늘 우리 모두가 따라야할 모범입니다.

 

▲결코 존경하지 못할 부모를 가진 사람들

이 세상에는 나오미처럼, 온전하지 못한 부모를 가진 자식들이 많습니다.

부모에게 상처를 받는 원인도 여러 가지입니다.

 

때로는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무능한 까닭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아니면 어머니가 자기의 향락을 좇아 방종하고 무책임한 가정생활을 한 것이

자녀들의 가슴을 멍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을 버리고 자기의 쾌락을 쫓아간 어머니의 방탕한 삶과

가족들을 폭행하는 아버지의 야비하고 폭압적인 모습들은

세월이 흘러가도 자녀들의 가슴속에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그 영상이 남아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짐승 같은 자식들도 있지만, 짐승 같은 어미 아비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상처들과 아픔이 가슴에 많이 맺혀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찌하여 네 마음을 부모님께 안 드리느냐?

자식으로 어찌 부모님을 이처럼 공경하지 않느냐?”라고 도전하면

마음에 큰 심적 고통을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은 단지 요구에 의하여 기계처럼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요구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순종을 위해서는, 참된 치유의 과정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 대를 물리는 불행 - 내 대(代)에서 끊어야 한다.

 

▲내 세대에서 받는 고통 - 부모의 형벌을 대물림하는 것인지도...

이 세상에는 부모들이 준 아픔 때문에

도무지 가슴속에서 진심으로 부모와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와 고통의 기억들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기꺼이 순종하지 못하게 하지만,

 

그가 겪는 그 마음 속 깊은 상처와 고통 자체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한 그의 부모가 겪는 형벌을

지금 그가 대물림으로 받고 있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내가 부모를 용서 못 하면, ‘가계의 저주’가 대물림된다.

부모의 경건한 신앙 때문에, 우리가 분에 넘치는 축복을 받기도 하지만,

그들의 옳지 못한 삶 때문에, 아픔과 고통을 유산처럼 대물림받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대를 이어 흐르는 불행의 원인을 끊어 버리고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가계에 흐르는 하나님의 징벌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가 준 그 상처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고 

그래서 깊은 상처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한 사람은,

똑같이 자기의 자녀들에게 자기가 겪는 똑같은 상처를 주고

그 자녀로 하여금 부모인 자기를 공경하지 못하게 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대물림 되는 실제적 예

*어머니를 늘 폭행하는 아버지를 혐오하던 아들이 장성하여

자기의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는 것을 흔히 봅니다.

 

*성적으로 방종한 어머니 때문에 피눈물 나는 세월을 보낸 딸이

어머니를 증오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방종한 패역을 본받게 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보복적 모방의 심리”라고 부릅니다.

 

▲내 대(代)에서 부모를 용서하고, 저주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불변의 원리인 십계명을 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20:5~6

 

내 부모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타락하여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주었다면

우리가 책임을 묻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부모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당대에 끝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은 자녀인데,

하나님 앞에서 그 상처를 신령한 방법으로 치유 받지 아니하면,

유사한 죄와 상처와 고통을 여러분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내 대(代)에서, 그 저주의 대물림을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그를 진정 공경하는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 상처의 치유, 관계의 회복은 어떻게?

 

만약 방탕한 부모로 인해 상처받은 자녀가

하나님의 참사랑을 모르고 그러한 은혜를 깨닫지 못했다면,

그는 아마 자기에게 상처와 고통을 가져다 준 부모보다

배나 더 방탕하고 악독한 부모가 되어서

자기의 자녀들에게 더 큰 상처와 고통을 남겨 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자녀들이, 지금의 자기보다도

더 많이 고통하며 괴로워하도록 만들어 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1. 네 부모를 공경하라 - 명령이다.

물론 오랫동안 굳어진 마음속에 존재하는 미움의 고리와

상처받은 사람 속에 생기는 독특한 독소의 감정들을 정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불을 품고야 어찌 데지 않을 수 있으며

예리한 미움의 칼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 칼에 피를 묻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의 상태와 관계없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나를 사랑으로 길러 준 경건한 부모만을 공경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나를 낳아 준 부모를 (그가 누구든지 간에)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부모의 모습에서 ‘숨겨진 나’를 본다.

부모가 여러분들을 아프게 한 것보다도

여러분은 하나님께 더 많은 고통을 주고 아프게 하였지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용서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패역하고 완고한 부모가 있다면,

그 모습에서 ‘숨겨진 내 이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그것을 직시해서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내가 그런 끔찍한 부모를 만나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내 부모와 똑같이 패역하고 완고한 나 자신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회개를 통해 먼저 주님께 용서, 치유 받아야 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아직 용서받지 못하고 치유 받지 못한 내 부모를

내가 긍휼한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여전히 미워하는 사람은,

자기가 부모를 용서하기 이전에,

똑같이 완고하고 패역한 자기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용서 받고, 치유 받아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주님께 용서 받아야,

진정 부모님을 포함한 타인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부모를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다는 사람은,

사실 자기가 진정으로 주님께 깨어져서 용서받은 체험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용서 위에 사랑을 보태도록 촉구 받을 때에는

심적 고통을 느끼기까지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거기에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십자가의 크신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할 뿐만 아니라,

도저히 용서 못 할 부모라도, 기꺼이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제자는 큰 시험 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용서 못할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 진정한 제자라는 표입니다.

용서 못할 원수이므로, 도저히 용서 못 하겠다는 사람은

- 아직은 제자로서의 자격이 멀었다는 표이며,

자기가 진실로 예수님께 용서 받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계기가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것은 ‘동정심’ 때문에 그리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명하심은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을 준 우리의 부모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바라보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는 우리를 버렸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더 긍휼히 여기셨으며

상처보다 더 큰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완전한 사랑이 그분의 품안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미움과 상처로부터 벗어나는 방법과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인간은 인생의 시기마다 받아야 할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부모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대신 상처와 아픔을 당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그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이 ‘상대적인 것’이 되어 버리는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상처 많은 자녀들도 치료하고,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사랑 대신) 고통을 받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과 깨어진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부모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용서하고 화해하게 만들어 줍니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의 사랑이 거의 절대적입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굽어진 인격과 심성은

어른이 되어서도 치료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결핍된 사랑’에 대하여 절대적 치료책이 됩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은, 이처럼 인간의 사랑을 하찮게 만들어 버리는

위대하고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원래 상처가 많은 곳입니다.

그러나 복음(하나님의 사랑)은 상처를 뛰어 넘습니다.

 

우리의 부모도 우리에게 만족스런 부모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만족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은 망가진 사람들을 고치는 위대한 능력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진실로 변했다면, 어떻게 그 관계가 고쳐지지 않을 수 있겠으며,

미움과 상처의 사람이 용서와 화해의 사람으로 변했다면,

어떻게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치는 말

우리는 우리의 자녀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아름다운 신앙과

부모인 우리를 향한 존경심은 물려주지 못할망정

그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안겨 주고

저주를 유업으로 남기는 부모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부모들로 말미암아 얻었던 상처와 고통은

이제 우리 세대에서 종식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용납하여야 합니다.

 

억만 죄인인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내 부모들조차도 용납하고

그들을 진실로 사랑하게 만듭니다.

 

<인터넷 설교 발췌, 정리 07.05.13. *원제목 : 네 부모를 공경하라, 룻1:16

 

 

 

 

▲관련 예화 : 아버지를 미워해서 살해한 코모두스

영화 [글래디에이터] 중에서, 주인공 검투사 막시무스와 대항하는

황제의 아들 코모두스가 절규한 대사가 생각납니다.

 

황제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했지만 그것을 얻지 못한 황제의 아들,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 아들 코모두스의 절규 말입니다.

 

“아버지는 제게 언제나 네 가지 덕목을 가르치셨습니다.

지혜, 정의, 용기, 절제를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면 이 모든 것을 지키고 싶었고,

신이라도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제가 정말로 필요로 했던 사랑을, 그리고 인정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안고 따뜻한 말 한 마디만 주셨더라도,

그 말은 제게 태양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버지는,...”

 

이렇게 절규하며 그는 조용히 어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목을

조르기 시작합니다.

용서하지 못한 아버지와, 용서하지 못한 아들의 상처가 만들어내는

비극적 드라마의 한 장면입니다.

 

물론 이 장면은 역사의 사실과 달랐다는 비평이 많았습니다만,

그러나 용서하지 못하는 가정에서 연출되는 비극은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우리들 가정의 보편적 경험이 아닙니까!

 

 

▲관련글 : 용서한다는 것은

 

설혹 상대가 많은 모욕과 증오로

나를 해쳤다 하드라도

상대를 용서 한다는 것은,

사실 내 자신이 용서 받는 것이다.

 

상대가 잘못한 것을

내속에 품고 괴로워 함 보다는

 

용서할 때 우리는 마음의 고통에서

스스로 풀려나는 것이므로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가 있다.

 

상대를 미워하고 증오에 차 있으면

나 자신이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

그러므로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한 것.

 

상대의 잘못을 이해하고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 자신 스스로를 해방 시키는 일이다.

 

상대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 하려면,

상처를 준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를 통해

나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대를 용서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사랑 하는 것이다. (蘭草 권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