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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최일환목사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반응요나3:1~10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반응

요나3:1~10

2008년 11월 30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설교:

최근에 어느 지방 명문대학 출신이 여러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냈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한번은 장난삼아 서울대학교 졸업이라고 썼답니다. 그랬더니 당장 면접을 하자고 연락이 오더라는 글이 인터넷에 올랐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학력, 능력, 경력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제일 중요한 참고 자료로 이력서를 받습니다. 이력서가 뭡니까? “내 과거가 이렇다. 그러니 미래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거짓으로 이력서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사람들은 전과기록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우리 사회 특성입니다. 사람들은 전과자를 신뢰하지 않고 두려워하며 멀리 합니다. 왜죠? 재범 가능성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과거를 중요시 하지 않습니다. 또 사람을 대할 때 再犯(재범)의 가능성보다 再生(재생)의 가능성을 보십니다.

우리가 매주 살펴보는 요나는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전과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대명령을 거부하고 도망을 칩니다. 하나님의 끈질긴 추적과 설득에도 돌이키지 않았던 자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물고기 뱃속까지 가서야 회개하고 돌아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가 돌아서자 그의 과거를 완전히 무시하고 다시금 기회를 주어 들어 쓰십니다. 여기에 저와 여러분의 소망이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요나서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나요?   

1.회개하면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1절을 보세요.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였습니다. 내용이나 문구가 동일한  명령입니다.

또 2절을 보세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글씨가 다른 것이 있다면 1장에서는 “그것을 향하여 외쳐라”였고 3장에서는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여 도망쳤던 전과자 요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니 동일한 내용의 mission을 주신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 하나님은 “한 번의 죄로 사람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단,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다시금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아멘?

사람은 용서를 한다고 하지만 그 사람을 다시는 상대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과거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는 분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무순 보험회사 광고 문구같은데.. 하나님은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아노습니다.

한번은 물어 보실 만도 한데, 절대로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너 왜 도망쳤냐? 하고 요나에게 물어 보실 수 있을텐데... 너 왜 날 부인했냐? 베드로에게 물어보시고 싶으실 텐데... 안 물어 보십니다.

왜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 과거의 죄를 한번도 언급치 않는지 않으실까요?

이유는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즉시 잊어버리시기 때문입니다. 잊어 버리셨는데 어떻게 따진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사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라 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용서하십니다.

또 “도말”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塗抹(도말)이란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paint out” 입니다.“칠하여 없애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다 덮어 버립니다. 

 

성경을 깊이 살펴보세요.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상당수가 일종의 전과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사도바울도 전과자입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 아닙니까? 죄 없는 성도들을 잡아 가두고 때로는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회개시켜 위대한 사도로 들어 쓰십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그는 원치 않게 동족을 박해하던 애굽인을 주먹으로 쳐 죽인 살인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40년간 훈련시켜 들어 쓰십니다.

요나도 그렇습니다. 그도 전과자입니다. 그런데 쓰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요나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요나를 찾아서 또 일을 시키는 것일까요?

우리가 이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과거를 무시하시고 변화시켜 다시 불러 쓰시는 분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일정의 전과자입니다. 죄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라” 하십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명령이 우리와 상관없는 명령으로 여기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 자리에 계신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는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한 소명을 받은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환경을 핑계 삼고 형편을 앞세워 소명을 포기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거부한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 Mission 이 여러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과와 상관없이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두 번째로 동일한 사명을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사6:8절을 보면 이사야가 환상 중에 말을 듣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 이사야가 벌떡 일어납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세요.”

오늘도 우리를 보시고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누구를 보낼꼬?”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들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개의치 않으시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2.순종하면 예상치 못한 기적이 일어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4~5절을 보세요.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갑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한 바를 전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생각과 내 뜻과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와 상상을 뛰어 넘어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습니까?

 

말씀을 잘 보세요.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긴 하지만 그러나 니느웨 백성에 대한 사랑이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니느웨는 크기는 얼마나 큰지 그 성읍을 한 바뀌 도는데 3일이 걸립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 중 하루만 돌았습니다. 요나는 그 땅과 백성들에게 민족적인 감정과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웠습니다. 심판과 멸망을 눈앞에 둔 니느웨 백성들을 조금도 측은히 여기거나 불쌍히 여기질 않습니다.

왜요? 한마디로 긍휼이 없습니다.

 

요나가 외친 내용을 보세요.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이것만 외칩니다.

사실은 알맹이가 빠진 것이지요.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여기에다 이것이 추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것이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결과는 엄청납니다. 왕을 비롯한 고관대작들과 온 백성이 회개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왜 이웃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전하지 않는 것일까요? 왜 남편이 안믿어도 전하지 않을까요? 왜 부모가 안 믿어도 전하지 않을까요?

복음을 담대히 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셋 중에 하나입니다.

1)천국과 지옥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고 2)전해 봐도 안된다는 마귀의 계략 때문이고 3)긍휼과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요나의 모습이 혹 우리가 아닐까요?

그래도 억지로라도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웃집에 불이 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집안에서 자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불구경을 합니다. 그때 여러분이 그곳에 계셨다면 어쩔 것입니까?

아직 불길이 번지지 않아 지붕만 타고 있습니다. 그냥구경만 하실 것입니까? 그런데 그 불을 보는 순간 소리 지르고 그 집에 뛰어 들어가 그 집 식구들을 깨우고 할 사람은 누굴까요? 가족입니다. 사랑하는 친척입니다. 왜요? 그들은 사랑과 긍휼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뛰어 들어 갔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집사람이 잠결에 안 일어납니다. 그럼 어쩝니까? 강제로 끌고 나오지 않겠습니까? 죽을려면 죽으라 하고 그냥 나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두들겨 패서라도 데려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엎어서라도 끌고 나와야 합니다.

왜요? 일단 살려야 하니까. 그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말 한마디도 전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갑니다.”라고 말 한 마디도 안합니다. 그러니 안 믿는 것입니다. 

 

요나가 왜 도망쳤지요? 니느웨가 망하라고 도망도 쳤겠지만 니느웨는 절대로 안 믿을 것이라는 판단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어떤 남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외치면서 수원성을 돌면서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진다.” 고 외치고 다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받으실 것입니까?

“별 미친놈 다 있네.”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5-6절을 보세요.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니느웨 백성이 요나가 전하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요나가 전한 말씀을  두려워합니다. 무론 남녀노소하고 모든 사람들이 굵은 베를 입고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왕도 그 소식을 듣고 당장 그 왕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땅바닥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사람들, 어린아이까지 금식해라. 짐승까지도 금식시켜라”고 선포합니다.그리고 왕은 백성에게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지어다”라고 명령합니다.

 

더욱이 요나가 전한 말은 원문 히브리어에 의하면 다섯 단어밖에 안됩니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은 네 단어입니다. 40일/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여기 무너지리라 한 이 부분을 영어 holy 바이블은 "Overthrown" 이란 단어로 썼습니다. 뒤 엎어진다  전복된다, 타도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 불안죄”에 해당하는 죄로 체포당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내용 가운데서 최대의 집단 회심이 일어난 것입니다. 10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으니 이것만큼 큰 사건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반응입니다. 요나도 몰랐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응입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요나의 순종과 하나님의 회심케 하심의 작품입니다.

구원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사람이 도구로 쓰임 받을 뿐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나요?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 것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복음에 반응하여 믿고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하기만 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후4:2절에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믿고 회개하는 것은 네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파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대에서도 이런 기적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요~나입니다. 요~나의 순종이 기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남이 아닌 나의 순종이 기적을 만듭니다. 여러분이 전도하여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분은 몇 명이나 됩니까?   

 

3. 성령의 회개역사를 위해 기도하라 하십니다. 

현대판 니느웨는 어디일까요?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저 중국일 수도 있고 저 북한의 평양일 수도 있고 저 회교권 국가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현대판 요나인 요~나가 주님의 복음을 들고 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전도를 명하실 때 늘 가라는 말씀이 따라 다닙니다. 행1:8절에 “땅 끝까지 이르러” 라고 했습니다. 마28장에 “모든 족속으로 가서”라고 했고 막16장에 “온 천하에 다니며”라고 했습니다.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딜 가야 할까요?

여러분의 니느웨로 가야 합니다.

 

제가 지난주 인도네시아를 다녀왔습니다. 인도네시아에 가서 우리 교단 선교사 14가정의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그들과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며 선교보고도 받고 교제도 하며 위로도 했습니다.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은 평신도 선교사였습니다. 선교사 자녀들(MK)을 가르쳐 달라는 것입니다. 숙식은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낮에는 언어 연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 저녁에 자녀들을 가르쳐 달라는 것입니다. 선교사 자녀들이 한국말을 배워야 하고 수학과 과학, 역사를 배워야 하는데 현지에서는 역부족이라는 것입니다.

인도의 양재일 선교사는 협력할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지금 몸이 안좋은 것 같습니다. 너무 힘이 든 것입니다.

탄자니아의 최재명 선교사는 어린이를 가르칠 교사와 선교원 교사를 가르칠 선교사를 찾아 달랍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도처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부자 나라들은 부자나라대로, 가난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대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민족간의 갈등, 종교간의 갈등, 경제적 갈등..... 이 문제를 해결할 방책은 복음을 통한 회개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저는 저 북한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에 북한을 위한 중보 기도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저 북한에는 이 추위에 수많은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난방을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남북 교류를 끊으려 합니다. 저 평양 땅에 니느웨의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김정일이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예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언제쯤 남북통일이 이루어질까요? 그때 김정일 위원장이 한 말이 있습니다. “그거야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지요” 아주 무서운 말입니다. 그리고 교만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회개의 영을 주시고 부흥의 영을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누군가가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 일을 누가 해야 합니까? 대답하세요. 요~나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운동의 기폭제는 요~나 한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구원을 판단하면 안됩니다.

“저 사람은 잘대로 안 믿을 거야” “저 사람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안 믿을 거야.” 이것은 죄악이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와 예상치를 넘어 놀랍게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회개하면 심판하시기로 했던 뜻을 돌이키십니다. 저 북한도 회개하면 뜻을 돌이키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고의 목적이 징계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살리려 하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오늘 우리나라에는 니느웨 같은 회개운동이 안 일어날까요?

우리의 악독이 하늘에 상달되었다고 경고하시고 계시는 그분의 메시지를 듣지도 못하고 전해주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하나님의 심판의 위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탐욕과 이기심에 사로잡힌 우리부터 회개하고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심판을 받을 것을 알지도 못한 니느웨 백성들이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엄청난 경제 위기, 정치위기, 남북관계의 위기, 대 환난과 위기가 눈앞에 있습니다. 

누가 열쇠를 갖고 있을까요? 정치인?, 경제인?, 교육자? 아닙니다. 요~나입니다. 

 

왜 오늘날 한국교회는 성장이 멈추어 있을까요? 왜 한국 사회는 기독교인이 20%가 넘는데 부패와 타락이 만연할까요? 왜 회개하지를 않고 왜 부흥이 일어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아닌 요~나 문제입니다. 내가 먼저 회개하고 내가 먼저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제가 가끔 부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가사를 생각해 보세요. 한번 불러 봅시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 하소서 이 땅 고쳐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하나님의 긍휼과 우리의 순종으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이런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나가기길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통성기도)